책도 끝났고 해서 원고 폴더를 정리하다 보니까, 책에 쓰려고 모아 뒀다가 못 쓴 사진들이 좀 있네요. 아니 사실은 많다는 ㅠㅜ. 북극 여행 팁을 쓰면서 혹시 사진이 필요할까 싶어서 정리를 해 뒀는데, 결국 그 팁 섹션은 사진 없이 가는 걸로 정리되면서 못 쓴 사진들입니다. 제 노트북 구석에 처박혀 영원히 울고 있는 것보다는, 방출하는 게 낫다는 자세로-. 




아이슬란드 F도로에서 볼 수 있는 표지판입니다. F도로는 4륜 구동 차량만 공식적으로 갈 수 있는 비포장 도로인데, 말이 비포장 도로지 길과 길 아닌 것의 경계가 모호한 곳들도 좀 있죠. 그리고, 굳이 길 아닌 곳을 찾아가는 모험심 강한 여행자들도 적지 않으셔서, 이렇게 '이러시면 안 됩니다' 표지판이 있습니다. 빙하 위나, 빙퇴석 자갈길 같은 곳들을 오프로드 차량이 너무 많이 휩쓸고 다니면, 연약한 툰드라의 생태계가 망가진다는...취지인 것 같습니다. 맨 오른쪽 사진은, 이만큼이나 땅이 패어 버렸어요! 이런 뜻인 것 같아요. 





아이슬란드 기상청 홈페이지 캡처. 너무하지 않습니까. 전국이 비. 하긴, 런던도 주간 예보를 보면 '앞으로 5일 내내 비' 뭐 이런 날들이 없지 않군요. 




아이슬란드 베루네스 호스텔에서 먹은 아침 식사. 봉지 안에 쌀이 들어 있어서 물 붓고 끓이면 되는 쌀밥, 3분 카레 데운 것, 그리고 검은 빵이랑... 에 저 거무튀튀한 것은 놀랍게도 즉석 미역국인 것 같습니다. 저랑 함께 다니는 북극곰은 (토끼도 아니면서) 정체성 모호하게도 당근을 좋아한다는... 통조림 당근도 있네요. 




알래스카 코르도바의 수퍼마켓에서 발견한 한국 김치 만들기 키트! 오른쪽 아래에 자세히 보시면 '메이드 인 하와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하와이와 알래스카가 보통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니까요. 




이건 아이슬란드 유스호스텔 멤버십 카드군요. 비크 호스텔에서 만들었습니다. 비크 호스텔 방 열쇠가 예뻐서 찍은 것 같아요. 열쇠 고리 자세히 보면 나무와 집이 있는 호스텔 아이콘이 있습니다. 




여긴 아이슬란드 흐볼 호스텔. 여기 마음에 들어서 가는 길에 한 번, 오는 길에 한 번, 두 번 묵었습니다. 침대 외에 없는 초간단 시설처럼 보이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거에요. 일단 히터도 있잖아요. 따뜻하고, 숙소도 깔끔하고, 귀신 나올 것 같지도 않고, 뭐 창 밖 풍경도 예쁘고 기타 등등... 




알래스카 원주민 센터에서 파는 인형입니다. <주간경향>에도 책에도 안 썼는데, 앵커리지 근교에 훌륭한 원주민 문화센터가 있어요. 몹시 좋은 곳입니다. 야외에 알래스카 5개 원주민 유형 별로 주택을 만들어서 전시해 놓고, 안에서는 공연도 보여주고 그래요. 상업 시설이 아니라 원주민 연합 조직에서 운영하는 곳이어서 문화적 자긍심도 높고요. 여기 가고 싶어서, 앵커리지에서 차 빌리자 마자 달려갔었거든요. ....그런데 왜 안 썼을까요? 그냥 앵커리지 편 쓸 때 홀랑 까먹었던 것...같습니다. (쿨럭)




같은 문화센터의 기념품 가게입니다. 원주민 수공예품 파는데 이런 스티커가 붙어 있었어요. 멋집니다.. 




여긴 어디냐...알래스카 페어뱅크스의 월마트이거나, 캐나다 매니토바주의 브랜든 월마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곰 접근 방지용 벨.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팔고 있었습니다. 곰 퇴치 스프레이도 있고, 사냥한 동물을 담아올 수 있는 큰 주머니도 팝니다. 앞에 사슴 비슷한 엘크가 그려져 있었어요. 대형 마트에서 파는 지역 물건은 재미있는 듯. 앵커리지 월마트에서는 랩에 말아놓고 파는 장작도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건 2004년 아이슬란드네요. 자작 네비게이션. 이 때 빌린 차가 토요타 야리스인데요, 이 차 정말 좋았습니다. 차도 조그맣고 기름도 적게 먹고 시속 140까지 씽씽 나갔어요. 맘에 들어서, 이 차 한국에 수입되면 내가 앞장서 산다고 생각도 했지요. 아이슬란드 링로드만 두 분이서 여행하실 거면 이 차면 될 것 같긴 해요. 


인랜드를 조금 들어갈 생각이 있으신 분들은 토요타 짐니Jimny 정도면 좋을 것 같고요. 짐니는 4륜이긴 한데 작고 가벼워서, 기름도 적게 먹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었습니다. 짐니도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이 차 한국에 수입되면 내가 산다, 고 했지요. 흑 사실은 수입 안 되고 운전석이 반대여도 갖고 싶어요. 차도 너무 예쁘다는... 음 혹시 누가 이 포스팅을 보시고 일본 수입차만 좋아하는 정신없는 된장녀로 몰아가실... 분들은 안 계시겠죠. 정작 저희 집은 몇년 전 자동차가 북극곰을 살리고 장렬히 한 줌의 고철로 산화한 뒤로 언제나 721번 버스를 제 차로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네, 피스 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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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틀랜드에는 배를 타고 갔다. 스웨덴과 라트비아 사이, 발트해에 떠 있는 섬이다. 스웨덴엔 참고로 Gotland도 있고, Götland도 있다. (아마도 발음이) 괴틀랜드는 뭍이다. 스웨덴 남부의 평야지대다. 인쇄가 잘못됐나 싶은 öland도 있었는데, 거기도 실존하는 지명이었다. 가이드북을 펼쳐 고틀랜드를 찾으면 자꾸만 Götland가 나왔다. 몇 줄을 읽다 아, 참 여기가 아니지, 하며 목차를 다시 펼쳤다. 고틀랜드는 우리로 치자면 제주도나 강화도 비슷한 섬인 모양이었다. 선착장에는 수학여행이라도 가는지 청소년들이 바글바글했다. 배낭에 주렁주렁 꽃을 매단 히피 포스의 배낭여행객들도 보였다.


이들 모두는 지치지도 않는지 스톡홀름을 출발한 배가
3시간 뒤 고틀랜드에 도착할 때까지 결연하게 떠들었다. 배에서 읽으려고 스웨덴이 자랑하는 세계명작동화, <닐스의 이상한 여행><삐삐는 개구장이>를 챙겨 왔는데, 닐스나 삐삐나 저 애들이나 우당탕거리기는 매한가지지 싶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아이는 삐삐였다. 어렸을 때 텔레비전에서 볼 때는, 그저 사랑스러운 개구쟁이인줄만 알았는데, 이제 와 새삼 다시 읽어보니 이 아이 진짜 이상하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약속은 지키는 법이 없다. 그 시간 대 다른 채널에서 하던, 역시 주근깨 빼빼마른 빨강머리 앤과 헷갈렸던 것 같아서 앤 셜리한테 새삼 미안했다. 백 년 전 이미 삐삐를 읽게 한 스웨덴 부모들은 정말 개방적인 분들이다. 반쯤 읽다 도저히 삐삐를 이해할 수 없어 접어두고, 배 안에서 파는 핫도그를 사 먹었다. 빵 대신 감자를 으깬 매쉬드 포테이토를 소시지와 함께 준다.




(매쉬드 포테이토와 함께 주는 핫도그)

스톡홀름을 출발한 배가 도착한 비스비는 아름다운 중세 도시였다
. 얼마나 아름답냐면, 스페인 남부의 중세 도시 톨레도보다도 특이하고, 스위스 꽃의 도시 루체른보다도 화려하고, 프랑스 남부의 성곽 마을 보나보다도 사랑스럽다. 즉 그 때까지 내가 알던 그 어떤 유럽의 중세 마을보다도 아름다웠다. 호이징거의 <중세의 가을>을 시멘트로 쓴다면 그것은 비스비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낮은 언덕을 성이 둘러싸고 있고, 자갈을 깐 구불구불한 골목들이 그물처럼 이어진다. 길을 잃고 고개를 들면 폐허가 된 돌 건물이 나타나는데, 교회다. 무너져 내린 것처럼 지붕의 벽돌이 떨어진 교회들이 수백 년 전부터 그랬다는 듯이 서 있다. 담쟁이덩굴이 벽돌을 따라서 뻗어 올라가고, 바닥에는 물기를 머금은 풀들이 무성하다. 폐허가 되지 않은 교회에서는 아직도 일요일 아침 미사가 열린다.









(비스비의 무너진 교회들. 여름 한철에만 문을 열어서 창틀 속으로 손을 넣어 사진을 찍었습니당-_-)

교회들은 수백 년 보다 더 오래 전 만들어졌다
. 비스비는 12~13세기 한자동맹의 중심 도시였다. 냉정한 상인들은 돈을 모아 교회를 세우고 자신들의 배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었다. 겨우 제주도만한 섬인데, 고틀랜드에는 150여개의 개척교회가 세워졌다. 늦은 밤 교회에서 종소리가 울리면, 사람들은 횃불을 들고 항구로 모여들었다. 일요일 아침이면 상인과 그들의 가족이 목까지 빳빳하게 하얀 칼라가 올라오는 검은 옷을 입고 평안과 부를 빌었다. 유럽 대륙을 떠나 먼 섬으로 온 수도사들은 흰 벽에 프레스코를 그렸다. 어른보다도 더 고뇌에 찬 아기 예수의 얼굴을 채 다 그리지도 못했는데, 비스비는 번영의 절정에서 무너졌다.


1361
년 덴마크의 침공으로 이 아름다운 도시는 폐허가 됐다. 2000명이 죽었고, 200년 넘게 버려졌다. 비스비에 사람이 다시 살기 시작한 것은 1600년 이후의 일이었다. 그러나 교회를 재건하고 도시를 다시 세울 수 있을 만큼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폐허를 이웃삼아, 빨간 지붕의 중세 성곽 마을에서 여전히 살고 있다. <닐스의 이상한 여행>에도 비스비가 나온다. 기러기 떼를 따라 라플란드로 날아가던 닐스가, 이 예쁜 마을은 폐허가 되었구나, 하고 쓸쓸해한다.


운타운의 노천 카페에 앉아 있으니, 발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다른 많은 중세 마을들과 마찬가지로 비스비도 관광이 제 1산업이다. 덕수궁 앞 해태처럼, 돌로 깎은 양에 앉아서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었다. 자동차가 들어오지 못하게 받쳐놓은 턱이었다. 양 머리가 진짜 찜질방에서 수건으로 만드는 양 머리와 똑같이 생겼다. 거위 몰텐의 목에 매달려 북쪽으로 날아가던 닐스처럼, 우리도 자동차를 타고 북쪽으로 달려가야 했다. 이번엔 보통 때보다 더 털털거렸다. 물가 비싼 스웨덴에서 한 푼이라도 아끼겠다는 자세로 중고차만 전문 취급렌터카에서 빌렸기 때문이다. 16만 킬로를 뛴 빨간색 골프 자동차였다.


목적지는 고틀랜드의 북쪽 끝
, 페로 섬 이었다. 그 섬에 가면 아무것도...이번엔 없지가 않다. 석회암 거석들이 있다. <론리플래닛> 가이드북의 손바닥 만한 사진 속에서 페로 섬 최북단의 석회암 거석들은 이스터 섬의 모하이들 같았다. 열 몇 기의 거대한 바위 기둥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정체 불명의 고대인들이 깎아 세워놓고 간 것은 아니고, 바람과 파도가 수십만 년 깎아 만든 것이었다. 띄어읽기 따위는 없는 Langhammarshammaren 이란 긴 이름의 이 거석군은 간단히 줄여 망치라고 부른다. 고틀란드 끝까지 달려 페로 섬으로 가는 페리에 차를 실은 것은 해가 아직 한 뼘쯤 남아 있는 늦은 오후였다.


그 뒤로 여러 번
여기가 세상의 끝으로 가는 길이구나싶은 길들을 다니게 됐지만, 그 때는 망치로 가는 그 길의 세상의 끝으로 가는 길 같았다. 길가에는 언덕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낮은 둔덕이 이어졌다. 여기 전체가 석회암 지대인지 잘게 부서진 하얀 흙들이 한 움큼 집어들고 흩뿌려 놓은 것처럼 둔덕을 덮고 있었다. 풀과 나무가 자라 보려고 애는 썼지만 자라지는 못하고 배를 비집고 뒤틀어 누운 것처럼 땅으로만 뻗어 있었다. 양들이 도도하게 고개를 들고 줄을 지어 걸어가다 차를 보고 멈추어 서 우리를 빤히 쳐다봤다. 둔덕을 넘어 다음 번 양떼도, 그 다음번 양떼도 마찬가지였다



(망치 가는 길의 돌 달팽이. 스톡홀름에 있는 민속촌 비슷한, 스칸센에도 이런 게 있어요)

때가 묻은 건지 원래 그런 건지 군데군데 털이 새카만 양들이 정면으로 차를 노려보자 괜히 무서워졌다
. 뿔도 크고 둥글게 말려 있어서, 그림책에 나오는 순하고 착한 양이 아니라, 데쓰메탈 음악 재킷 표지에나 출연하는 악마적인 양처럼 생겼다. 저 먼 북쪽 나라에서 목동이 되는 것이 장래 희망인 북극곰도 양 떼와의 눈싸움을 견디지 못하고 재빨리 눈을 내리깔았다. 양들의 사악한 시선을 뒤로 하고 우리는 바다로, 바다로 달렸다.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자동차가 반갑다고 헤드라이트를 두 번 깜빡 깜빡 했다. 그 차가 그날 페로 섬에서 본 유일한 차였다.


포장도로가 끝나고
, 덜컹거리는 흰 자갈밭도 끝이 났을 때, ‘망치가 나왔다. 기둥의 아랫 부분이 파도에 깎이고 패여, 망치들은 마치 먼 바다를 응시하는 사람의 모습 같았다. 망치를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의 속도가 자꾸만 떨어졌다. 바람이 거세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다. 망치들은 4-5층 건물 높이는 되어 보였다. 아무도 없었다. 여기는 너희가 올 곳이 아니라고 양 떼들이 그렇게 빤히 쳐다봤을까. 사색적인 망치들의 긴 그림자 사이로 북극의 긴 여름해가 잦아들었다






(망치는 키가 큽니다. 코 모양 끝에 보이는 점탱이가, 앉아있는 접니다)

다음날 아침엔 산책을 나섰다
. 페로 섬에 있는 단 세 개의 숙소 중 유일하게 주인이 집에 있어 우리를 노숙 신세에서 구원해 준 (고마우신) STF 호스텔은 바다 가까이 있었다. 달맞이꽃이 그려진 호스텔 머그컵에, 한국에서 가져 간 커피믹스 커피를 한 잔씩 담아서 한 손에 들고, 나머지 한 손은 뒷짐을 졌다. 페로 섬은 영화감독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고향이었다. <7의 봉인>이나 <화니와 알렉산더>처럼 대학 때 영화의 이해교양과목 시간에 자주 나오던 감독이다. 페로 섬의 댐바라는 마을에서 죽기 전까지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이 세계적인 감독은 해외 영화제 한번 다녀오려면 정말 산 넘고 물 건너 집에 오셔야 했겠다. 일단 세계 어딘가에서 비행기로 스톡홀름으로 와서, 고틀랜드 행 배가 출발하는 니샴까지 차로 와서, 고틀랜드까지 배를 타고 온 뒤, 차로 다시 페로섬 입구까지 와서, 페리를 타고 페로섬에 도착한 다음, 다시 차를 타고 집에 오면 된다. 우리도 그렇게 왔다. 닭이 울고, 기러기가 날아 오르고, 문자 그대로 아침 이슬에 젖은 풀이 발목을 감싸는 길이었다




(바닷가의 조그만 낚시 오두막이에요. 북극곰이 어흥, 들여다보고 있어요)


길의 끝까지 가니 바다가 나왔다
. 신이 실수로 푸른색 잉크를 엎지르고는 어이쿠, 하고 머리를 감싸 쥔 것처럼 검푸른 발트해다. 북유럽 신화는 최고신 오딘의 한쪽 눈알이 떨어져 발트해가 되었다고 한다. 차갑고 거친 이 바다가 햇살이 자갈 틈새까지 스며든 아침에는 한껏 부드러워 보였다. 나무로 지은 낚시 오두막 몇 채가 바닷가에 그림처럼 서 있었다. 기러기들이 닐스를 매달고 북쪽 하늘로 날아가기 시작하는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나는 팔을 앞으로 쭉 뻗어 손바닥을 바다로 향하게 하고는 눈을 감았다. 주문을 외우는 거다. 시간아 멈추어라, 너는 참으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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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은 쌀쌀맞은 도시였다. 공기부터가 쌀쌀했다. 공항버스 안에서 오오 역시 북유럽은 춥다며 긴 팔 남방을 꺼내 입었는데, 결국 돌아가는 공항버스를 탈 때까지 벗지 못했다. 8월말이었다. 해는 길었지만 자주 뜨지는 않았다


감라스탄 구시가 도 잔뜩 흐려 있었다
. 커다란 삐삐 인형 앞에서 브이자를 그리며 사진을 찍고 있으니, 점원이 나와 주먹을 입에다 대고 헛기침을 했다. 지도도 불친절했다. 골목은 좁았고, 그 골목이 그 골목 같아서 자꾸만 길을 잃었다. 쌀쌀맞지 않은 건 수학여행이라도 온 듯한 꼬마들뿐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좁은 골목길저편에서 한 놈씩 돌림노래로 니하오” “니하오키득거리며 뛰어갔다. 요놈, 딱 걸렸다. 이게 세계에서 제일 좁은 골목길이면 너희 나라 지리 지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거다, 고 주장이라도 할까 싶었다. 스무 시간 가까이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서 세수하고, 기차역에 짐 맡겨 놓고, 지도 들고 헤맨 끝에 찾은 게 겨우 이 골목일 수는 없었다



(감라스탄 구시가의 우울한 골목길)

증권거래소
1층의 노벨상 전시관 찍고, 시청사 돌아, 왕궁 앞에 다다랐을 즈음엔 손으로 다리를 한 짝씩 들어 옮겨야 할 판이었다. 부릅떠도 자꾸만 눈이 감겼다. 마침 근위병 교대식이었다. 빨간 베레모를 쓴 근위대가 4열종대로 보무도 당당하게 왕궁으로 다가왔다. 내 평생 이렇게 군기 빠진 근위병들은 처음이었다. 다른 나라 근위병들은 얼굴에 파리가 붙어도 눈썹 하나 깜짝 않는다는데, 빨간 베레모 몇 개는 좌향 좌! 구호에 결연히 오른쪽으로 돌았다. 어이없어하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겸연쩍게 웃기도 했다. 역시 북유럽의 공기는 자유로운 모양이었다. 군악대는 잘 맞지 않는 박자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하고 있었다. 풍경이, 예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학교 앞 팬시점에서 파는 노트 표지 사진 같았다. 좁고 높은 집들이 벽도 없이 어깨를 기대고 골목의 끝까지 이어졌다.


스톡홀름에서는 배에서 잤다. 물가 비싼 스톡홀름에는 두 개의 저가 숙소가 있다. 하나가 감옥을 개조한 호스텔이고, 나머지 하나가 여객선을 개조한 호스텔이다. 곰곰이 생각을 해 봤는데, 감옥과 배와 호스텔은 싼 값에 독방을 제공한다는 공통점이 있긴 하다. 운명은 모를 일이어서, ()감옥이 ()여객선보다 훨씬 비쌌다.


범선 호스텔이 정박돼 있는 스톡홀름 항구로 가면서 그래도 마음이 들떴다
. 바야흐로 물 위의 하룻밤 아닌가. 그러나 선원실이라는 것이 최소 공간에 최대 인원을 적재하기 위해 설계된 곳임을, 방문이 꽝 하고 닫히는 순간 비로소 깨달았다. 2층 침대를 중심으로 거울, 샤워기, 세면기가 모두 빌트 인돼 있었다. 누우면 머리와 다리가 정확하게 벽과 벽에 닿았다. 바람이 부는지 배가 천천히 삐그덕거렸다. 그래, 그래도 바다다. 손바닥만한 창문을 비틀어 열었다. 앞이 새카맸다. 물에 젖은 이끼 위로 거미 한 마리가 슬금슬금 지나갔다. 항구에 닻을 내린 배에서는, 누군가의 창문은 부두를 보게 돼 있다. 그게 이 방이었다. 창문 틈으로 부둣가를 달리는 자동차들의 불빛이 달빛인 양 들어왔다. 그날 밤 밤새 뒤척이며 나는, 세상의 모든 선원을 존경하게 됐다. 타이타닉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넜으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존경하기로 했다.


다음날에는 기차를 타고 라트비크로 갔다. 스웨덴 중부 실잔 호숫가의 작은 마을이다. 스톡홀름 같은 대도시엔 남아 있지 않은 스웨덴 고유의 시골 풍경을 찾아서 갔다고 하면, 미안하지만 거짓말이다. 기차를 타 보고 싶었는데, 적당한 거리에 호수가 있었고, 마침 호숫가 마을에 호스텔도 있기에 갔다. 열차는 스톡홀름 중앙역을 저녁 555분에 출발했다. 3시간30분 거리니까, 도착해도 해가 남아 있을 것이었다. 북극곰은 역 앞 마트에서 산 파스타 샐러드를 먹고, 나는 스웨덴 돈을 꺼내 놓고 접사를 시도했다. 지폐 뒷면에 닐스가 거위 몰텐을 타고 날아가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스피커에서 웅얼웅얼 소리가 났다. 세 번 났다. 그 때 뒷자석 남자가 의자를 쿡쿡 찔렀다. 혹시 안내방송 들으셨어요? 그렇죠, 스웨덴 말이어서. 지금 선로에서 사고가 났대요. 다음 역에 내려서 버스를 타고, 다시 기차를 타라고 하네요."



(거위 몰텐을 타고 가는 닐스가 그려져 있는 스웨덴 돈입니다)

정말로 사람들은 다음 역에서 모두 내렸다
. 내가,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 일단 차장에게라도 따져야겠다며 소매를 걷어붙였다. 사회 시스템 잘 갖춰 있기로 소문난 북유럽에서, 1365일 중 오늘, 그것도 내가 탄 기차 시간에 맞춰, 그 노선에서 사고가 날 건 뭐란 말인가. 마침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승객들은 그러나 불평 한 마디 없이 조용히 철도 회사가 대기시켜 놓은 버스에 오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한 할머니가 싱긋 웃으며 신문을 펴고 사과를 꺼내 베어 물었다. 이 사람들은 바쁘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우리 차례가 왔다. 슬그머니 소매를 내리고 온 몸의 힘을 모아 차장에게 한 마디 던졌다. “땡큐


버스는 웁살라역에서 살라역까지 가는 것이었다. 웁스, 이런 헷갈리는 지명으로 나더러 어찌 살라고. 헷갈리는 것은 지명만이 아니다. 가이드북에도, 스웨덴 역사책에도, 관광지 안내문에도 보면 스웨덴 남자들은 이름이 카를’ ‘구스타프아니면 바싸. 웁살라에는 심지어 카를 구스타프 바싸라는 이름의 왕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 날 아침 메뉴에 호밀을 갈아 바싹 구운 것 같은 얇은 빵이 나왔는데, 그 빵 브랜드도 바싸였다. 몇 안 되는 고유명사를 알뜰하게 이용하는 스웨덴의 합리성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버스에서 후다닥 내렸다. 우리도 덩달아 뛰었다. 배낭에 매달아 놓은 등산컵이 의자 손잡이마다 부딪쳐 창피하게도 챙강챙강거렸다.


이름 모를 간이역이었다. 플랫폼에 매달려 있는 역의 이름은 Morgongava, ‘모르고()가바. 정말 모르고 가고 있는 중이었다. 알뜰할 뿐 아니라 여행자의 마음까지 읽는 인공지능 지명이아닐 수 없었다. 맞은편 선로로 들어오는 열차를 타고, ‘살라역에서 다시 갈아타고, 라트비크에 도착한 것은 밤 11시가 넘어서였다. 그 긴 북유럽의 여름 해도 이미 저물어 있었다. 은하계를 헤매는 철이와 메텔처럼 눈동자를 불태워 호스텔에 도착했다. 현관 도어매트 아래 열쇠와 함께 내 이름이 적힌 봉투가 놓여 있었다. “라트비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숙소는 깨끗이 쓰시고요, 저쪽에 대걸레와 빗자루가 있으니 자기가 어지른 방은 자기가 치우고 가세요. 안 치우면 벌~! -에바북극곰의 코에서 주르륵 코피가 흘렀다.



(라트비크 실잔 호숫가의 조그만 교회에요. 마굿간이 87개나 있다는 믿을 수 없는...)

라트비크는 조그마한 시골 마을이었다
. 자전거로 한나절 둘러보기 딱 좋을 크기였다. 마굿간이 87개나 있었다는 믿을 수 없는 주장의 라트비크 교회에 가 보고,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긴 부두라는 몹시 회의적인 이름의 628미터짜리 긴 부두도 구경하고, ‘구스타프 바싸왕이 덴마크인을 무찌르고 세웠다는 가짜 룬스톤도 구경했다. 기차역 앞에도, 식당 선반에도, 서점에도 나무로 깎은 작은 말들이 있었다. 스웨덴 중부 지방 특산품이라고 했다. 오후에는 라트비크 도서관에 가서 이메일도 확인하고, 스웨덴의 이마트쯤 될 헴콕 수퍼에서 과자도 사 먹고, 강둑에 앉아 다리도 흔들었다. 오리 가족이 지나가면서 물에 비친 건물 그림자가 흔들리는 걸 보는 게 좋았다. 헤세의 소설에 나올 것 같은 목가적인 풍경이었다.



(라트비크의 명물 목마. 또가닥 또가닥)

스웨덴에서 돌아오고 일주일 쯤 뒤 북극곰에게서 전화가 왔다
.


라트비크 호스텔 그 때 밤에 청소했었지?”
... 대걸레로 닦진 않았지만 쓸긴 쓸었지. ?”
“‘청소대마왕에바한테 메일이 왔는데? 너희 청소 안 해서 벌금 물린다고.”


뭐라고? 혹시 방 안 닦은 걸 들켰나? 빗자루 대충 세워놓은 게 걸렸나? 옷걸이 위의 먼지를 안 닦아서 그런가, 커피잔에 물이 남아 있었나. , 정말이지 쌀쌀맞은 나라 같으니라고. 그렇다고 투숙객을 추적해 벌금까지 물리는 데가 어디 있어. 씩씩거리느라고, 북극곰이 뭐라고 하는 소리가 기차에서 왕왕거리던 스웨덴말처럼 들렸다.



<생각해 볼 문제>
글쓴이는 정말로 청소대마왕 에바에게서 메일을 받았을까요? 받았다면 무엇이라고 적혀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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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ws1070 2011.03.08 2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지금 스웨덴 진켄스담(T13,14라인)에 있는데 요기도 함 가봐야 겠네요 ㅎㅎ

    아이슬란드 정보 찾다가 우연히 접한 글들 재미나게 읽는 중입니다 ^^

    제가 묶은 숙소에는 다행이 벌금 물리진 않더군요 ㅋ

    지금도 스웨덴에 계신건가요??

    실시간 업데이트??




아이슬란드 렌터카에는 두 종류가 있다. ‘부자렌터카와 가난뱅이렌터카다. 공학적으로는 '4륜'과 '2륜'이다. 4륜은 아이슬란드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있지만 2륜은 포장도로만 달릴 수 있다. 그런데 그 포장도로가 아이슬란드를 한 바퀴 도는 일종의 해안도로, 링로드밖에 없다. 잊을만 하면 화산이 활동하는 내륙은 비포장이라기엔 한없이 오프로드에 가까운 길이 나 있다. 비가 한번 오면 길이 바뀐다. 새로 파인 구덩이도 지나가고 강물도 건너가야 한다. 도로 이름 앞에 ‘F’가 붙어 있으면 ‘Four wheel’, 4륜 전용이란 이야기다. ‘F285’-얼마나 여행자의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이름이란 말인가.


그러나
4륜 렌터카는 2륜의 2배값이었다. 레이캬비크에서 남쪽으로 가는 S1번 도로를 달리고 있던 우리의 빨간색 피에스타2륜이었다. 렌탈 계약서에는 “F도로를 절대 달리지 않는다도 들어 있었다. 털털거리는 소리 만큼은 4륜 못지 않았다. 시속 90킬로 정속으로 달리고 있는 우리 옆으로 부자’ 4륜차들이 빵빵거리지도 않고 추월해 지나갔다.



(아스팔트 도로만 정속으로 다리는 우리의 피에스타)


햇살과 비와 먹구름이 교대로 오가는 날씨였다
. 조수석에는 햇살이 비치고, 운전석 창 밖으로는 이름도 알 수 없는 실폭포들이 떨어지고, 차창 정면으로는 비가 뿌려대는 진기한 기상 현상들도 나타났다. 먹구름 아래 햇살이 낮게 스며들어 들판의 풀과 이끼들이 반짝거렸다. 카메라 플래시를 아래에서 터트린 것처럼 땅은 밝고 하늘은 어두운 풍경, 그 음산한 아름다움이 아이슬란드의 정서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멀리 차창 밖으로는 화산 헤클라가 따라왔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인지, 그 경계가 희미한 바다. 아릅답다고 생각합니다)


모자, 혹은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 활화산은 아이슬란드의 심장쯤 되겠다. 8세기부터 분출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헤클라1104년 크게 폭발해 근처 바이킹 거주지를 싹 쓸어버린 뒤 지금까지 적어도 15번은 분출했다. 100년 동안 줄기차게 연기를 뿜어대던 헤클라가 1947년 마지막 김을 힘겹게 뿜어내고 휴식에 들어가자, 사람들은 이제 드디어 헤클라가 활동을 중단했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 화산은 1970년 다시 한번 크게 폭발한 뒤 10년 단위로 폭발하고 있다. 다음번 폭발은 2010년이다. 헤클라는 16세기에 지옥의 입구로 결정됐다고 한다. 사람들이 모여 여기는 지옥의 입구, 땅땅땅’, 하고 정했다는 게 어이없지만, 그렇게 믿었을 만은 하다. 화산의 검은 연기와 재가 언제나 덮고 있어 헤클라의 정상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따금 까마귀떼라도 날아들면 지옥의 전령처럼 보였을 것이다.

 

지금은 씩씩한 트레커들이 정상까지 열심히 기어 올라간다. 8시간이면 지옥의 입구까지 간다. 정상에는 빙하가 있지만 화산의 열기 때문에, 혹은 8시간 산을 타서 온 몸에서 열이 나서, 전혀 춥지가 않다고 전해진다. 그 헤클라로 가는 입구 헬라에서, 우리는 계속 달려야 했다. 오직 4륜차만이 헤클라 입구로 갈 수 있다. 뒤따라오던 은색 부자차가 보무도 당당하게 좌회전 깜빡이를 켰다. 앞머리를 단정하게 자른 것처럼 착하게 생긴 아이슬란드 말들이 풀을 뜯다 말고 가엾다는 듯 우리를 쳐다봤다. 몇 시간 뒤 라키입구에서도 우리의 피에스타는 잠시 주춤하다 직진할 수밖에 없었다. ‘라키19세기 후반 폭발해 지구 반대편 일본의 농작물에까지 피해를 입혔다는 악명 높은 화산 아니었던가.


이대로 우리는 기름 떨어질 때까지 바닷가만 달려야 한단 말인가. 다음날 바닷가 마을 비크 뒷동산에서 자동차 성능 시험을 해 봤다. 원래 차란 것이 웬만한 곳은 달릴 수 있게 만들어진 게 아니었던가. 그러나 피에스타의 바퀴는 자갈밭 언덕을 채 20미터도 올라가지 못하고 헛돌았다. 엑셀을 밟으니 아예 푹 빠졌다. 결국 조용히 후진으로 언덕을 내려왔다. 이 자동차는 아이슬란드 렌터카 협회가 2륜차로 F도로를 달리지 못하게 하려고 개조해 내놨음에 틀림없다.


비크
는 작고 예쁜 마을이다
. 여기서 작다는 개념이 다른데, 아이슬란드 인구가 30만명이고 4분의 3이 레이캬비크에 산다. 나머지 대부분이 제2의 도시 아큐레이리와 제 3의 도시 에길스타디르에 산다. 그리고 나머지가 손으로 집어 휙 뿌려놓은 것처럼 점점이 바닷가에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다. 많으면 수백 명, 적으면 수십 명이 한 마을이다. 아이슬란드의 여느 바닷가 마을처럼 비크도 식당과 수퍼마켓도 겸하는 주유소가 마을의 중심지다. 커피숍을 겸해 여름에만 문을 여는 호텔이 한 곳 있고, 교회와 호스텔도 하나씩 있다.


이 작은 마을 앞바다는 미국의 한 여행잡지가 선정한
세계 10대 해변에 들어간다. 모래사장이 새카만, 몹시 보기 드문 검은 해변이어서다. 아스팔트를 갈아 뿌린 것 같은 새카만 해변 끝에는 비크가 자랑하는 기암 괴석 3점이 있다. 딱 애국가 화면에 나오는 촛대바위여서, 코끼리 바위, 신선암, 형제봉, 곰바위 등 현무암 해안 절경에 익숙한 우리 두 한국인 여행자의 눈길은 끌지 못했다.



(비크 전경. 언덕 중턱에 빨간 지붕의 교회가 있어요)



(세계적 사진작가의 포스를 풍기는 북극곰의 고독한 모습)


비크에서는 호스텔에 묵었다. 다음날 흐볼에서도 호스텔에 묵었다. 그 다음날 베루네스에서도 호스텔에 묵었으며 다음 다음날도 다음 다음 다음 날도 호스텔에 묵었다. 가난뱅이여행자이기도 했지만, 대부분 호스텔이 유일한 숙소였다. 아이슬란드엔 아직까지 쉐라톤도 래디슨 호텔도 없다. 여름엔 학생들이 빠져나간 학교 기숙사에 에다 호텔 체인이 깃발을 걸고 영업하지만, 그 외의 계절엔 전국에 30여개 점점이 흩어진 호스텔밖에 없다. 냄새나는 양말을 벗어 거는 독일인 트레커도, 미국 패키지 노인 관광객도, 역시 부자나라에서 와서 번쩍이는 4륜차를 끌고 다니던 일본인 커플도, 하루에 세 번씩 네놈은 차도 아니야라며 자동차를 구박하던 우리도 모두 평등하게 호스텔에 묵었다. 흐볼 호스텔 부엌에서는 낮에 트레킹을 하다 마주친 여행자들이 파스타를 끓이고 수프도 데우고 있었다.


호스텔 브로셔엔
식사 제공 가능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호스텔 주인 아줌마는 방 키를 주면서 그제서야 여름에만이라고 덧붙였다. 햇반과 3분 카레를 데우고, 물만 부으면 되는 냉동동결건조 김치찌개로 저녁을 차렸다. 한국에서 고이 공수해 온 김치찌개는 그러나 정말이지 아무 맛도 없었다. 썰매의 가죽끈을 끓여 국물을 마셨다는 프랭클린 선장과 북극탐사 대원들도 이 김치찌개는 꿀꺽꿀꺽 삼키지 못했을 것이다. 유효기간이 지난 김치 사발면에서 빼온 것 같은 김치를 질겅질겅 씹었다. 그 때 종일 마주치던 일본인 커플이 우아하게 두 손 가득 노란 비닐 봉지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섰다.


두 사람은 파스타를 만들어 식탁에 앉더니 와인잔에 콜라를 붓고 짠
, 하고 건배를 했다. 북극곰은 그들의 식탁 위에 놓여 있는 1.5리터 콜라병을 보며 꿀꺽 침을 삼켰다. 나도 꼴깍 침이 넘어갔다. 콜라 한 잔이면, 종일 젖었다 말랐다 퉁퉁 불은 발가락도, 얼었다 녹았다 추위에 떨었던 몸도 다 풀릴 것 같은데. 비포장, 그러나 피에스타가 간신히 기절하지 않을 정도로는 나 있는, 도로를 따라 3킬로를 들어와야 하는 흐볼엔 호스텔과, 주인 집과, 창고로 추정되는 건물 한 채밖에 없었다. 그 흔한 콜라 자판기도 없었다. 오후 7, 가장 가까운, 25킬로 떨어진 키쿠백야르클로시어에 있는 보너스 마트도 이미 셔터를 내렸을 시각이었다.


흐볼 호스텔 창문에는 한 사람이 거울처럼 투명한 바다 위에 서 있는 사진이 붙어 있었다
. 칠레 우유니 소금 사막처럼 하늘과 사람이 반으로 접었다 편 것처럼 바다에 비쳐 보인다. 육지가 둑이 되어 만들어진 이 얇고 아름다운 내해의 이름은 잉골프 쉐파디 라군 이었다. 자동차로는 갈 수가 없다. 그래서 여름에만 동네 농부가 돈을 받고 트랙터에 관광객을 태워 데려간다. 하늘이 파랗고 햇볕이 쨍쨍해야 저렇게 보인다는데, 다음날 아침에도 역시 비가 내렸다. 동네 농두 아저씨네 집 앞 노란 트랙터에도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차를 돌려 다시 링로드로 들어섰다.


 
(스카타펠 국립공원. 하트 모양의 호수입니다. 저 끝의 하얀 건 빙하에요)

트집을 잡자고 작정해서 잡는 그런 불평을 제외하면
, 아이슬란드는 아름답고, 여행하기 좋은 곳이었다. 브루나이의 술탄도 눈을 질끈 감아야 여행할 수 있을 만큼 비싼 곳이었다지만, 경제 위기 이후는 적어도 숙소와 비행기 값은 견딜만한 수준이 됐다. (아직까지 음식점과 여행지의 크고 작은 뮤지엄과 여행사는 좀 더 호되게 위기를 겪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렌터카는 편리했고, 호스텔은 편안했다.



(요쿨살롱의 수륙양용 관광차)


(요쿨살롱 입구 카페에서 파는 생선 수프. 맛있다고 합니다만, -_-)



(빙산들이 둥둥 떠 있는 요쿨살롱입니다. 꽤 괜찮아요)


스케이드라르산두르를 가로질러 왼쪽 차창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빙하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며
, 우리는 잠깐, 알래스카에 넋이 팔려 아이슬란드를 버려 두었던 지난날들을 짧게 반성했다. 스카프타펠 국립공원 에서 요쿨살롱 까지 100킬로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빙하 드라이브 루트였다. 아이슬란드 남부를 덮고 있는 바트나 요쿨의 손가락이라는 작은 빙하들은 끊어지면 또 나타나고 끊어지면 또 나타났다. 빙하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어떤 빙하들은 가까이 다가가, 빙하 앞에 고여있는 호숫물에 발을 담글 수도 있었다. 요쿨 살롱에서는 노란색 수륙양용 오리버스를 타고 수십 수백 개의 빙산으로 다가갔다. 짙은 먹구름 사이로 햇살이, 잊고 있었다는 듯 비쳐들면서, 빙하가 파랗게 빛났다. 얼음을 건져 조금 잘라 씹어 먹었다.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Posted by orc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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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1.20 1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두번째 사진... 환상적이네요.

  2. skygirl 2011.02.09 02: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너무 재밌어요 ㅋ 아이슬란드 검색하다 왔어요 가보고 싶은 곳이네요 :)

  3. Ray 2011.03.03 05: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재밌네요 ㅋㅋㅋ
    혹시 책으로도 출판이 되었나요? 아님 혹시 계획은 없나요?

  4. Ray 2011.03.11 2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럼요 기꺼이 사드리고 광고까지 할 생각인데요 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