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파나마에서 열리는 국제포경위원회(IWC) 에서 과학적 목적의 포경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했죠. 그 소식이 채 우리나라에 알려지기도 전에 전세계로 빠른 속도로 타전됐습니다. 미국 국무부도 성명을 발표하고, 호주와 뉴질랜드도 '좌시할 수 없다'고 강력하게 반대 뜻을 밝혔지요. 특히 호주는 주한 호주 대사를 시켜 항의도 하면서 펄쩍 뛰고 있지요.

왜 그럴까요? 왜? 다른 나라도 아닌 호주가 그렇게 펄쩍 뛰는 걸까요? 호주가 유난히 자연보호 의식이 높은 '선진국'이어서 그럴까요?

 

(바로 이 분이 한국의 포경 재개를 강력 반대하시는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십니다. 사진은 연합뉴스)

 

호주가 전세계에서 가장 동물과 자연을 사랑하는 나라여서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뭐 호주는 광활한 대자연이 있으니까 좀 사랑할 것 같긴 합니다만, 그런 이유로 외교 분쟁을 불사하지는 않겠죠. 그보다는 한국이 일본처럼 되는 건 아닌가 싶어 경계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일본이 과학 목적으로 매년 밍크 1000마리를 남빙양에서 잡고 있습니다. 남빙양이 어디냐, 남극해입니다. 호주 앞...은 아니고 뒷바다죠. 일본의 포경 때문에 호주 인근의 밍크 고래가 줄어들고 있고, 이건 호주의 고래 관광 산업을 위협하는 거죠.

 

호주는 뉴질랜드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고래관광이 발달한 곳 중 하나입니다. (네, 호주와 함께 뉴질랜드도 한국의 포경 재개에 펄쩍 뛰었습니다) 지금에야 그렇지만 호주도 우리나라처럼 예전엔 고래를 잡았답니다. 호주가 본격적으로 포경에 뛰어든 것은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일인데요, 10년 정도 잡다가 고래 개체수가 현저히 줄어들면서 그만뒀죠. 그러다 90년대 초반부터 고래 관광으로 전환합니다.

 

슬그머니 시작해 본 고래 관광은 엄청난 수의 관광객을 불러들였습니다. 호주 고래 관광객이 91년에 33만5200명이었는데, 98년에는 2배가 넘는 73만5000여명으로 늘어납니다. 고래를 돈으로 세자니 좀 아니다 싶지만 어쨌거나, 98년 고래 관광 수입이 직접 수입만 1187만 달러, 호텔이며 교통편이며 해서 간접 수입까지 합치면 5600만 달러였습니다. 고래 아마 지금은 몇 배 이상 늘었을 겁니다. 이 조사를 하신 국제야생동물보호기구(IFAW)의 호이트 박사께서 2001년 이후로 조사를 안 하셔서...ㅠㅜ 이 분은 스코틀랜드에 사시는데, 언젠가 아마존으로 이분 책을 샀더니 본인이 직접 파시는 거더라고요. 어쨌거나, 고래를 잡아서 이용하는 것보다, 살려서 이용하는 게 이익이 된다는 거죠.

 

이렇게 포경에서 고래 관광으로 탈바꿈한 대표적인 지역이 바로 탕갈루마 리조트 입니다. 요즘은 한국인 신혼 여행객들도 많이 간답니다. 심지어 홈페이지에 한국어 버전도 있습니다. 호주 북동부, 브리스번 근처의 모튼이란 섬에 있네요. 인터넷에 탕갈루마 리조트 쳐 보시면, '야생 돌고래 먹이 주기는 꼭 하고 오세요' 뭐 이런 것 나옵니다. 이 리조트의 대표적인 상품이 고래 관광 보트를 타는 것과, 돌고래 먹이 주기 두 가지죠.

 

 

(네 여깁니다. http://www.qldtravel.com.au)

 

 

(탕갈루마 리조트 근처에서 보이는 고래. 등지느러미로 보니 밍크인 것 같습니다. 바로 우리나라 연근해에서 많이 보이는 고래도 밍크죠. http://www.whalewatchingqueensland.com.au)

 

이 탕갈루마 리조트는 사실 호주 최대의 포경 항구였답니다. 포경기지가 1952년에 세워졌는데, 그 뒤 10년간 혹등고래만 6700여마리를 잡아들였죠. 지금 탕갈루마 리조트 관계자들이 이 사실을 상기하면 땅을 칠 겁니다. 혹등고래가 고래 관광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멋진 고래 중 하나거든요. 몸집도 커서 15-20미터쯤 되고 (밍크는 4-5미터 '밖에' 안됩니다), 물 위로도 펄쩍 펄쩍 잘 뛰어올라요. 고래 관광 사진에 항상 나오는 바로 그 고래, 이겁니다.  

 

(멋진 혹등고래 입니다. 위키피디아에서 퍼왔습니다)

그러나 포경으로 혹등고래는 씨가 말라버렸죠. 포경 기지가 세워진 52년만 해도 1만여마리가 있었다는데, 60년대 이후엔 300 마리도 안 남았다고 합니다. 대부분은 잡혔고, 일부는 '내 이 땅, 아니 이 물을 다시 밟나 봐라' 면서 박해를 피해 떠났겠죠. 고래는 영리한 동물이니까요. 어쨌거나 60년대 이후엔 고래가 안 보였고, 포경기지는 문을 닫았습니다. 원래 풍경이 나쁜 곳은 아니어서 그 뒤로 관광 산업을 좀 해 보려고 했지만 쉬원찮았죠.

 

그 탕갈루마 리조트가 고래 관광지로 바뀐 것은 1992년입니다. 현재 이 리조트를 운영하는 회사가 망해 가던 숙소를 사 들여서 업스케일 휴앙지로 대대적으로 리모델링 했습니다. 지금 리조트 자리가 바로 포경선 선원들의 숙소 자리입니다. 인터넷 블로그를 보면 탕갈루마 리조트 부두에서 배를 탔다, 비치에서 맥주 한 잔 했다, 이런 이야기 자주 나오는데, 그 부두가 바로 50년 전 포경선을 정박시키던 항구입니다. 리조트에서 고래 관광 보트도 운영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고작 30년 안 잡은 걸로는 고래 개체수가 회복이 안 됐나 봅니다. 고래 목격 확률이 조금씩 높아지긴 했지만 허탕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리조트가 고안해 낸 게 '야생 돌고래 먹이 주기' 였습니다. 근처에 돌고래가 좀 보인다는 사실에 착안해서, 해변에서 먹이 들고 기다리고 있는 거죠. 영리한 돌고래는 밥 때가 되면 공짜 밥을 찾아서 잘 찾아왔습니다. 먹이도 먹고, 관광객과 눈인사도 했죠. 이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탕갈루마 리조트의 대표 상품이 됐습니다. 덕분에 탕갈루마 리조트도 친환경, 친동물, 에코투어의 선봉 뭐 그런 이미지를 갖게 됐죠. (이거 뭐 리조트 광고를 하는 기분이...ㅠㅜ) 더불어 호주 전체가 캥거루와 고래와 월러비를 사랑하는 나라, 자연의 나라 뭐 이렇게 인식됩니다.

 

(바로 이 프로그램입니다. 저도 꼭 해보고 싶어요 흑흑 http://www.tm6.net/travel/whale-watching-at-tangalooma/)

 

호주가 남의 나라 포경 재개에 펄쩍 뛰는 건 바로 이런 이유와 경험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고래를 죽여서 이용하는 것보다 살려서 이용하는 것이 훨씬 이익이 된다는 거죠. 우리나라가 과학 목적으로 포경을 재개한다고 해서, 일본처럼 당장 남빙양까지 달려가 고래를 잡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일단 포경을 허용하면, 우리나라 주변에서 남빙양으로 영역이 확대되는 것은 순간일 겁니다. 그러니 호주가 펄쩍 뛰는 것 같습니다. 고래가 죽은 고래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걸 그들은 경험적으로 배웠으니까요.

 

사실 우리나라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2009년부터 울산 장생포에서 고래 관광 을 하고 있답니다. 고래를 살려서 이용하는 관광을 하면서, 동시에 고래를 죽여서 이용하는 고래 고기를 파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형태의 고래 관광지입니다. 정부의 포경 선언 이후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보면 '고래가 불쌍해요' '왜 포경을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런 글들이 많은데, 그렇다면 울산으로 고래 관광을 가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관광객 백만명이 살아있는 고래를 보러 오겠다는데, 정부가 포경을 재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장생포 고래 관광, 나름 재미가 있습니다. 장생포 고래 탐조 배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싼 고래 탐조 보트 여행일 겁니다. 외국에서 고래 탐조배 한 번 타려면 한 사람이 100달러는 쥐어야 하는데, 여긴 2만원입니다. 물론 배가 엄청 크고 (대신 큰 배는 덜 흔들리는 장점이...) 갑판이 한낮의 가요무대로 바뀌는 (뒷 갑판으로 피신하면 됩니다) 단점이 있긴 하죠. 고래가 잘 안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고래 탐조 관광 자체가 원래 그렇습니다. 세계 어디서나 고래 관광을 하면, 운이 아주 좋지 않은 이상, 아마 고래의 등짝을 잠깐 보거나, 고래 그림자 비슷한 걸 보는 정도에 그칠 겁니다. 또 모르잖아요? 고래가 떼로 나타나 주실지도. 저는 장생포에서 관광 탐조선 세 번, 조사선 한 번 이렇게 네 번 배를 탔는데, 한번은 밍크 보고, 다른 한번은 바다의 이 쪽에서 저 쪽 끝까지 메운 돌고래 떼를 봤습니다.

 

돌고래 쫓아가다 월북할 뻔한 이야기는 여기를 클릭! 허접하지만 돌고래 동영상도 있습니다

 

(고래 바다 여행선입니다)

 

그리고 다른 자잘한 재미들도 있습니다. 고래 박물관이 있는데 -환경단체들은 포경 박물관이라고 걱정하는 곳이기도 하죠 - 여기서 우리나라 포경의 역사와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포경사가 재미있었는데, '반구대 암각화에 고래가 나온다' 그 다음이 '1900년대 일본이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포경을 시작했다' 입니다. 중간에 서너 줄 더 있긴 하지만, 고래가 목격됐거나, 어떻게 이용했다는 거지, 고래를 잡았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목격됐다는 것과 포경을 했다는 건 좀 다른 문제죠. 아, 1900년대 초반에 노르웨이 포경 선원이 장생포에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을 겁니다. 세상에 그 분은 어떻게 까마득한 그 시절에 '세상의 끝'에 오셨을까요.

 

(고래 박물관 전경이에요)

 

(고래 생태체험관입니다. 살아있는 돌고래가 전시돼 있는 곳이죠)

 

(장생포 부두의 고래 고기 전문점 중 하나입니다.)

 

장생포에서 고래 관광을 하시고 나면 많은 분들은 복잡한 심정이 되실 것 같아요. 저도 그랬거든요. 고래를 해체하는 사진도 한 장 걸려 있었는데, 전시하는 입장에선 지역 문화로 걸어 놓으셨겠지만, 그걸 '살해 장면'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거고요. 어쨌든 장생포에서 1900년대 이후 고래를 잡은 것은 사실이고, 그것이 지역 문화의 일부인 것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고래 고기 식용 문제 때문에 장생포가 겪은 우여곡절도, 지금의 포경 재개 논란도 바로 그 문화의 일부일 것 같고요. 그렇지만 우리가 멸종 위기에 있는 야생동물을 전통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서라며 잡아도 되는 걸까요? 아니, 멸종 위기에 있지 않다 하더라도 그런 대형 포유류를 잡아도 되는 걸까요? 혹시 우리가 고래를 보호한다면서 장생포의 주민들을 '아직도 고래고기를 먹는 사람들'이라며 따돌리고 있는 건 아닐까요? 혹시 고래 고기와 포경은 이제는 청산해야 할 우리 모두의 역사적 과거는 아닐까요? 

 

장생포에서 관광객들은 지역 문화, 전통 문화, 지역 개발, 우리의 일부인 자연, 살아있는 생명의 보존, 수족관에 갖힌 돌고래, 식민지 문화 이런 것들에 대해, 고민하게 되실 겁니다. 바로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바로 지금의 장생포에 가는 거죠. 그리고 그런 (머리 아픈) 여행이 내 삶의 방식을 바꾸고, 그런 여행자가 십만명 백만명이 될 때 우리 문명의 방향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여행은 힘이 세니까요.

 

참, 고래 고기는 아마 못 드실 거에요. (다행히도) 비쌉니다 ㅠㅜ. 고래가 아니어도 식당에는 이것 저것 많이 팝니다. 저는 부둣가 어디에서 자장면을 먹었는데, 그게 어찌나 맛있었는지 지금도 가끔 생각 납니다.

 

 

장생포 어딘가 벽에 그려져 있던 그림입니다. 초등학생들이 그린 고래 그림이랍니다. 나와 도요새와 상괭이가, 그리고 울산 앞바다의 밍크 고래와 돌고래가 함께 행복한 세상, 괜히 뭉클한 그림입니다. 그런 세상을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Posted by orc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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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딸기 2012.07.07 1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재밌다. 언젠가 기사로 쓴 적이 있긴 한데, 아주 짧게 건드리느라고 제대로 보지를 못했는데...
    역시 고래전문가가 설명해주니 다르네! 호주의 돌고래 관광은 정말 꼭 해보고 싶다 ㅠ.ㅠ
    (참 그런데 '국무성'->국무부. 국무성은 일본 표현... 지금은 국무성, 수상, 이런 말 안 씀)
    근데 왜 울나라가 포경산업 하겠다고 저 난리인지... 하는 짓이 어째 허구헌날 그 모양인지...

  2. 쎾쓰 2012.07.08 0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쎾쓰

  3. 이인숙 2012.07.09 1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배, 글 너무 잘봤어요...지금 이 상황이 한눈에 이해되는. 때맞춰 넘 잘올려주셨어요^^ 열씨미 여기저기 알려야겠네요.

  4. Ray 2012.07.14 0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의 글 반가웠어요^^
    들어올때마다 업뎃은 안되있나 궁금햤는데 오랜만에 기자님 글 보니 넘 즐겁게 읽었답니다^^ 며칠전엔 경향에 연재하신 북극권 나라 이야기를 정주행 했더랬죠 ㅋ
    고래 포경 뉴스는 얼마전 봤었는데 호주가 반대하는 이유가 있었군요. 전 왜 반대하나 했는데 속사정이 따로 있군요. 늘 깊이 있고 좋은정보를 재밌게 풀어주시니 좋네요^^
    아직 영국에 계시나요? 한국은 이제 장마 아닌 우기로군요. 늘 건강 조심하시길 바랄게요. 아참, 글도 자주 뵈었음 좋겠네요^^



포인트호프에서의 사흘을 나는 그렇게 빈둥거렸다. 동네 사람들은 언제부터 나를 알았다고,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눈웃음을 치며 손을 흔들었다. 둘쨋날부터는 나도 따라했다. 남의 집 식탁을 싹슬이하고 소파와 텔레비전 중간에서 뒹굴다 시시콜콜한 동네 소문들도 주워들었다. 벨루가 고래 수프를 끓여준 엠마 키니바크는 페어뱅크스로 유학까지 다녀온 똑똑이지만 백혈병에 걸려 고향 마을로 돌아와 공무원으로 있다든가, 고래 고기를 잘라 준 팝시와 에바 키니바크가 포인트호프의 복음화에 앞장서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든가, 일본인 청년 신고가 15년 째 여름마다 포인트호프를 찾아온다는 등이었다. 에스키모가 되고 싶던 이 말 없는 소년은 어느 날 무작정 포인트호프로 찾아와 바닷가에 텐트를 쳤단다. 동네 사람들이 그날 밤 손짓 발짓으로 이러다 북극곰에게 잡혀 먹힌다며 마을로 데려와 귀한 생명 하나 구했다고 한다.


하루는 마을 외곽 고래뼈 무덤에 앉아서 징징 짜는 비행 청소년 상담도 해 줬다
. 조카를 봐 주러 오빠네 갔는데, 오빠가 배고프냐고 물어보지 않았다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 그의 고민이었다. 포인트호프에서는 누구든 다른 사람의 집에 들어가 냉장고 문을 열고 먹고 마실 권리가 있다. “안녕하세요대신 배고프지 않니?”가 인사다. 틈틈이 일도 했다. 레게머리에 검정 선글라스를 낀 양아치포스의 부족장 잭 세이퍼를 만났고, 인디언과 에스키모의 혼혈인 시 정부 공무원 릴리 투츨루유크를 인터뷰했으며, 전현직 고래잡이 선장들을 만나 지구 온난화로 겪는 고충에 귀를 기울였다. 결코 이 글이 나를 출장 보낸 매체에 실리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포인트호프 부족장 잭 셰이퍼. 한 때 좀 놀아보신 포스다)

포인트호프의 고래가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포인트호프가 국제포경위원회(IWC)로부터 받은 북극고래 포획 쿼터는 한 해 10마리다. 한 때 3만마리가 드넓은 북극해를 헤엄쳤지만, 이제는 7000~9000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그나마 한 마리는 엊그제 내가 먹었다.) 원주민 생존 포경이 허용된 알래스카에서도 세인트로렌스섬에서 카크토비크까지 10개 마을에서만 북극고래를 잡을 수 있다. 포인트호프에서는 고래가 얼음의 갈라진 틈으로 숨을 뿜으며 북상하는 늦은 봄 고래 사냥을 한다. 해빙이 얼어붙으면 너무 이르고, 녹으면 너무 늦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로 얼음이 녹는 시기가 빨라지면서 고래잡이 시즌은 짧아지고 있다. 올해는 2마리, 지난해에는 3마리를 잡았다. 루크 크누크가 고래잡이 선장을 하던 1970년대만 해도, 못해도 한해 예닐곱 마리는 거뜬히 잡았다고 한다. 여든 살의 루크는 포인트 호프 최고령 고래잡이 선장이었다.


루크는 포인트호프의 소년이면 누구나 그랬듯 열세 살부터 고랫배를 탔다
. 고래잡이는 그들이 가혹한 북극에서 살아남는 생존 방식이었다. 젊고 힘깨나 쓰는 장정 30여명이 고랫배의 선장을 맡았고, 배마다 10여명의 선원이 따라붙었다. 여자들은 봄이 오기를 기다리며 우미아크를 수선했다. 물범의 가죽 예닐곱 장을 붙여 만드는 고래잡이 보트다. 나무배는 빙산과 충돌하면 그대로 박살나지만, 우미아크는 급한 대로 재빨리 꿰매 쓸 수 있다. 고래잡이 시즌이 되면 마을 전체가 흥성거렸다. 남자들은 작살과 노를 손에 들고 바다로 나갔고, 여자들은 바닷가에 텐트를 치고 스토브에 물을 끓였다. 지난해 잡은 고래는 이미 바닥이 났고, 새알을 줍고 열매를 따기엔 이른 계절이었다. 먹을 것이라고 해 봐야 차와 비스킷이 전부였다.
 
지금은 집에서 스파게티를 삶고 도넛을 데워 스노머신에 실어 배로 보낸다. 예전처럼 목숨을 걸고 작살을 던지는 대신, 총을 쏘아 잡는다. 사람들은 더 이상 카리부 가죽으로 만든 파키나, 울버린 털로 만든 부츠, 마클락을 신지 않는다. 고래 뼈와 카리부 가죽으로 지탱한 땅속 집에서 나고 자란 루크는 조립식 주택의 거실에 앉아 인터넷으로 미국 본토의 손자들을 만난다. 인생은 너무, 쉬워졌다. 그의 한 평생 동안 모든 것이 변했다. 변하지 않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그의 옆에 앉아 있는 부인 앤지 뿐이다. 부모를 잃고 친척에게 입양돼 포인트호프로 온 소녀는 에스키모 언어 이누피아크를 말하지 못해 외톨이가 돼 울고 있었다. “그 때 루크가 나를 알아봐줬지. 조숙한 소년이었어. 나는 아홉 살, 루크는 열두 살.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됐고, 스무 살이 되던 해에 결혼했어.”

(할머니가 만들어준 전통 파키를 입고 활짝 웃는 설정의 에스키모 소녀)

팝시 키니바크는 처음 고래를 잡았던 그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어지게 좋았지.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에 쳐들어와 아무거나 다 벗겨 가는데, 그래도 그냥 좋더라고.” 고래잡이 선장이 첫 고래를 잡은 날 하루는 동네 노인들이 선장의 집에 와 무엇이든 집어갈 수 있다. 새로 장만한 혼다(4륜 바이크), 울버린 모피 코트도, 심지어 우미아크의 가죽까지 벗겨갔지만, 팝시는 그저 좋기만 했단다. 고래가 도착하면 동네 사람 모두가 모여들어 23일 횃불을 밝히고 고래를 처리한다. 동네 개들도 좋아서 날뛰는 때다. 컷팅의 영광은 작살수의 몫이다. 선장과 선원들이 가장 좋은 부위를 갖고, 고래잡이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조금씩 몫을 떼어 준다. 고래는 마을 사람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에스키모들은 고래가 잡힌것이 아니라 잡혀준것이라고 믿는다. 바다에도 신이 있다면 그것은 고래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팝시는 내게 죽은 고래의 눈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설마, 그랬을 리가.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쓰풀, 베리 피-쓰풀.


콧수염을 길러 에스키모보다는 중앙아시아의 부족장처럼 보이는 팝시는 포인트호프에서도 알아주는 동네 유지였다
. 조립식 주택이지만 서울의 34평 아파트보다 큰 집에서 없는 것 없이 산다. 선물이라고 파인애플을 내밀었는데, 바나나를 넣고 구운 케이크를 잘라 주는 바람에 민망했다. 냉장고에는 가족 여행으로 다녀온 하와이 워터파크 사진이 붙어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고래를 잡고, 겨울이 되면 전통춤을 연습해 페어뱅크스에서 열리는 에스키모 올림픽에 나간다. 에바 키니바크는 세상에 별 일도 다 있다는 말투로, “신고가 일본에서 처음 왔을 때 보니 음식을 숨기고 먹더라고. 우리가 에스키모 문화를 가르쳐야 했어. 눈을 마주치면 인사하는 법,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 법, 그런 거 말야라고 했다. 나는 귀를 의심했다. 북극의 조그만 마을에서 고래를 잡아먹고 사는 사람들이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 일본, 그것도 도쿄진에게 미개하다고 훈계하는 것이었다. 신고는 멋쩍은 웃음만 짓고 있었다. 포인트호프의 그들처럼 자부심과 자존감이 드높은 원주민 집단을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나는 본 적이 없다.


(마을 외곽의 고래뼈 무덤에서 비행하고 있는 청소년들. 둘은 '보이'와 '프렌드'사이다)

그러나 알래스카의 여느 원주민 마을처럼 포인트호프도 높은 청소년 자살율과 마약 문제를 겪고 있다. 원주민 차별, 낮은 교육 기회, 취업의 어려움 등 세상의 벽 앞에서 미래가 없는 아이들은 자살을 택한다. 청소년 혼전 임신률도 높다. 고래 뼈 무덤에서 만난 틸리는 열 세 살인데, 형제가 10명이 넘는 것까지는 맞는데, 몇 명인지는 정확하게 모른다고 했다. 아빠는 세 번 이혼했고, 엄마는 지금까지 결혼한 적이 없다. 아홉 살 난 에이미는 사탕을 빨면서 태연하게 내가 두 살 때 언니가 술 취해서 가스 중독 비슷한 걸로 죽었다고 말해 나를 당혹케 했다. 혼전 임신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가족과 친척들이 입양해 거둬 키우고 있었다. 30년 뒤에도 고래는 여전히 이들의 운명일까. 내 수첩의 마지막 페이지는 이런 환경에서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는 아이는 사실상, 거의 없어 보인다로 끝나고 있었다.

공항에는 비릿한 고래 비린내가 안개처럼 깔려 있었다. 비행기 프로펠러 아래서 조종사가 출석을 불렀다. “...묭아이초이? 몸무게는요?” 비행기가 작아 무게 균형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좌석도 시키는 대로 앉아야 한다. 뒷좌석 사람이 어깨를 쳤다. 팝시 키니바크의 아내, 에바였다.
가는 거야?”
, .”
다음에 칼르기 때 다시 와. 6월에 하는 고래축제인데, 그 때는 정말 볼만하다우. 참 그런데...”
에바가 귓속말이라도 하듯 몸을 붙여왔다.
“‘
라는 설교자가 있지 않나? 미국 한인 방송에서 봤는데...정말 복음이 가득하신 분이더라고. 한국 가면 꼭 한번 이야기 해 줘요. 여기 북극 에스키모들이 설교해 주십사 한다고.”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님, 알래스카 에스키모의 성도들께도 복음의 은총을 꼭 한번 부탁드립니다.


Posted by orc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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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나가는과객 2012.07.06 1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3년전에 저도 알래스카 다녀왔습니다. 렌트해서 달튼 하이웨이 따라 데드호스 다녀왔는데, 가는길의 풍광을 잊을수가 없네요. 전에 어느 신문기사에서 본것같은데 북극곰님은 한겨레 기자가 아니신지요?

  2. jhdh 2012.12.07 16: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아 방주 발견 뉴스 보시러 오세요. 성탄절 맞아 츄리도 예쁘게 했습니다. 그럼



후사비크에는 가로등에 점점이 불이 들어오는 저녁 무렵 도착했다. 민박집 주인인 엄마는 딸을 보러 갔다며, 70년대 미국 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단발 파마머리 아주머니가 나는 집을 봐 주러 와 있을 뿐이라며 문을 열어줬다 (즉 본인도 딸이다). 7년 전에도 후사비크에서는 민박집에 묵었다. 호텔이랄 게 없는 작은 바닷가 마을이다. 창틀에 올려놓은 가족들의 사진과 꽃 화분을 보니, 아무래도 이 집이 그 때 그 집 같았다. 창틀을 식탁삼아 도너츠와 커피를 놓고 먹은 기억이 났다.


골목에 나와 보니 그러나
, 집집마다 창틀에 화분이 올라와 있었다. 모두 민박집이었다. 딱히 간판이랄 것도 없고, 그냥 가정집 빈 방에 여름 한 철 손님을 받는다. 분필로 현관문에 ‘X’ 표시라도 그려야 하는 것 아닌가 심각하게 고려할 즈음 주유소와 편의점이 나왔다. 여기서부터 바닷가를 따라 식당, 여행사, 성당, 박물관, 문 닫은 보너스 마트, 공구점 같은 가게들이 쭉 나온다. 성당 맞은편 통나무집은 고래 관광 매표소다. 편의점에 분필은 없고, 콜라와 맥주 한 캔을 샀다.



(점점이 불이 들어오는 후사비크의 저녁 풍경. 빙하가 쌓인 산들이 오르카 등짝 같습니다)

후사비크고래를 보러 온 길이었다
. 예전부터 고래가 보고 싶었다. 누구는 현빈을 좋아하고, 누구는 ‘2PM’을 보고 싶어하는 것처럼, 나는 그냥 고래가 보고 싶었다. 기왕이면 송대관이나 설운도보다 공유나 이선균이면 좋겠듯이, 기왕이면 범고래 오르카면 좋을 것 같았다. 몸에 흰 얼룩이 있고, 지느러미가 우뚝한 대형 고래다. 다른 고래를 잡아 먹어서 킬러 웨일이라고도 하는데, 얼마 전 미국 올랜도 씨월드에서 조련사를 익사시킨 것도 바로 이 오르카였다. 영화 프리윌리의 그 고래다.



-오르카는 왜 조련사를 공격했을까.
Dying to entertain you
-조련사를 익사시킨 돌고래 틸리컴 이야기- 안까먹으려고 쓰는 블로그가 안 까먹고 알려주기를 클릭,
-돌고래쇼를 더 봐야 할까요. 영국엔 돌피나리움이 없다



프리윌리의 주연, 오르카 케이코의 고향이 바로 아이슬란드다. 아이슬란드 앞바다에서 잡혀 미국으로 팔려간 케이코는 각종 고래 쇼를 전전하다 헐리우드까지 진출하게 된다. 영화 속 윌리는 방파제를 뛰어 넘어 자유를 얻었지만, 현실 속 케이코는 영화 촬영이 끝난 뒤 수족관 속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 황당한 아이러니에 전세계가 프리 케이코(케이코를 풀어주세요)’ 캠페인을 벌였다. 결국 케이코는 자유를 찾았지만, 일평생 야생에서 한 번 제대로 살아보지 못했던 이 고래는 자꾸만 인간을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케이코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두 달 동안 먹지도 쉬지도 않고 헤엄을 쳐 북극해를 건너 노르웨이에 닿았다. 그리고 며칠을 시름시름 앓더니 죽고 말았다. 후사비크 고래 박물관에는 케이코의 안타까운 사연이 패널로 전시돼 있었다. 대학생들이 봉사활동 나온 김에 벽화라도 그려 놓고 간 것처럼 생긴 컨테이너 가건물이지만, 후사비크 고래 박물관은 유네스코로부터 상도 받은 세계 최고의 고래 박물관이다.



(정박되어 이는 두 척이 고래 탐조선이에요. '오늘은 안하니 내일 오세요')

고래 관광선은 이틀 뒤에야 탈 수 있었다
. ‘미리 공부를 하고 가겠다며 고래 박물관에서 종류별 고래 골격과, 고래의 한 평생과, 중세 괴물과 현대 고래의 대차 대조표까지 꼼꼼히 다 읽고 매표소로 갔지만, 후사비크 제 1의 고래 관광 여행사 노스 세일링날씨가 개어야 표를 판다며 기다리라고 했다. 박물관 기념품 가게에서 아이슬란드에서 보이는 다양한 고래들티셔츠를 사고, 길 건너 일반 기념품 가게로 건너가 웨일 와칭 가이드를 훔쳐보고, 텅 빈 성당에 들어가 고래 보게 해 달라며 간절히 기도까지 올렸지만, 후사비크 제 2의 고래 관광 여행사 젠틀 자이언트사람도 없고 고래도 안 보이니 내일 다시 오라며 매정하게 셔터를 내렸다. 3의 여행사는 없다. 이 두 업체가 후사비크 고래 관광을 맡고 있다. 고래가 꽤 잘 보이는 아이슬란드에서도 고래 관광 하면 후사비크다. 아이슬란드 고래 관광의 90%가 여기서 이뤄지고, 고래 관광객의 95%가 고래를 본다.


다음날 아침 노스 세일링의 고래 탐조선을 탔다. 아무래도 우리가 이 배의 평균 연령을 힘겹게 끌어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관광버스로 온 노인 단체 관광객 팀에 끼어 있었다. 무릎을 두드리며 배에 오르던 할머니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빛의 속도로 탐조복을 챙겼다. 3시간 동안 배 위에서 고래가 오시기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바지부터 모자까지 우주복처럼 하나로 연결된 탐조복이 준비돼 있다. 역시 노스 세일링친환경 방침이 있는 업체다. 탐조복은 십수년 째 재활용한 듯 솜도 튀어나오고 얼룩도 져 있었다. 다리 한 쪽에 두 다리가 다 들어가고도 남을 큼직한 탐조복을 질질 끌고 갑판을 구경했다. 배도 30~40년 된 낡은 포경선을 개조해 만들었다. 후사비크는 아이슬란드 11개 포경 기지 가운데서도 가장 고래를 많이 잡던 곳의 하나였다. 지금은 완전히 고래 관광으로 전환했다. 노스 세일링도 공공연하게 포경을 반대하며, 수익금의 일부를 국제 고래 보호 프로그램에 기부한다. 고래 박물관 연구자도 수첩과 쌍안경을 들고 고래 탐조선에 매번 동승한다.



(망망대하를 떠도는 경쟁사의 고래탐조선. 배가 거의 가라앉을 듯 갑니다)

그 많다는 포포이스 돌고래도
, 파일럿 고래도, 관광객 앞에서 펄쩍펄쩍 뛰어 오른다는 혹등고래도 모두 파업 중이었다. 2시간을 꼬박 망망대해를 떠돌았으나, 고래는커녕 암초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눈이 빠질 때 쯤 되자 머리에 빙하를 인 먼 산도 오르카처럼 보였다. 심심한 갈매기들만 배를 따라 날아오다 수면 위로 내려앉았다. 새우깡이 없어 아쉬운 대로 아이슬란드 초코바 니짜를 흔들어봤지만 갈매기들은 코웃음만 쳤다. 고래 목격 확률 95%라는 주장이 한국 기상청의 일기 예보 적중도 90% 주장과 비슷한 것임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당사자의 주장과 일반인의 체감 사이에 엄청난 거리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디든 한 방울이라도 비가 오면 예보가 맞은 것처럼, 고래의 등짝이든 지느러미든 물줄기든 뭔들 한번 어렴풋하게라도 보이면 고래를 본 거다. 그러나 이대로는 고래 그림자도 보기 어려워 보였다.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우리는 갑판 아래 선실로 내려가 어깨를 기대고 잠시 졸았다. 고래가 나타난 것은 그 때였다.


이렇게 쓰면 드라마틱해 보이지만, 실상은 갑판으로 올라와 잠시 하품을 하는 동안 마스트에서 망을 보던 가이드가 “3시 방향!”을 외친 것이었다. 거무스름한 그림자 비슷한 것이 비쳤다. 겨울 아침 종각역 비둘기떼처럼 오종종 모여 떨던 관광객들이 일제히 3시 방향으로 카메라를 들이댔다. 수면 위로 잠시 삼각형 모양의 지느러미가 보였다. 밍크, 일 것이다. “11시 방향!” 관광객들이 일제히 반대쪽 갑판으로 뛰었다. 배도 덩달아 기우뚱거렸다. 그러나 고래는 이미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배 아래로 잠수해 이 쪽에서 저 쪽으로 옮겨간 뒤 유유히 사라졌을 것이다. 북극곰이 가이드의 메가폰 소리에 선실에서 튀어나와 갑판으로 뛰어올라올 만큼의 시간이었다. 밍크 고래의 등짝 2초씩 두 번. 그것이 그날 우리가 본 고래의 전부였다.



(고래는 못 보고, 돌아오는 길엔 시나봉과 몹시 단 코코아를 나눠줍니다. 줄을 서서 먹고 있는 관광객들)

고래는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첨예한 환경 이슈다
. 아이슬란드는, 먹지도 않으면서 매년 100여마리의 고래를 잡는 포경 국가다. 주로 밍크를 일본으로 수출한다. 노르웨이, 일본과 함께 사실상의 상업 포경을 허용한 몇 안 되는 국가여서 전 세계 동물 운동가와 환경 운동가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의 모라토리움 선언에 따라 공식적으로 포경을 중단 했지만 계속 잡았다, 말았다 하다가 2007년엔 아예 과학적 목적의 포경을 허용했다. 그러나 이번엔 이미 포경에서 고래 관광으로 전환한 후사비크와, 아이슬란드 관광 업계와, 전세계 여행자들의 항의가 쏟아졌다. 더 많은 고래를 살려서 보여줘야 하는 고래 관광과, 고래를 사냥해서 줄이는 포경이 공존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실제로 그 해 아이슬란드의 관광 수입은 감소했고, 아이슬란드 정부는 수출용 고래는 안 잡고 내수용 고래만 잡겠다는 애매한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고래 고기가 딱히 인기있는 것도 아니어서, 내수용 고래는 좀처럼 팔리지 않고 있다.


다음날 우리는 흐발 피요르드 포경 기지로 잠입 여행했다. 흐발 피요르드 포경 기지는 현재 아이슬란드에서 유일하게 고래를 잡아서 해체하는 곳이다. 상업포경이 재개되면서 20년 된 낡은 기지의 먼지를 털어 다시 돌린다. 멀리 포경 기지가 보이는 곳부터 참을 수 없는 이상한 냄새가 공기를 타고 흘러왔다. 에스키모들이 고래를 잡아 뼈를 세워놓는 알래스카 해안의 고래 비린내도 아니고, 고래 고기의 냄새도 아니었다. 동물 기름을 34일쯤 끓여서 나오는 것처럼 메스꺼운 냄새였다. 자연스러운 관광객처럼 보여야 한다며, 실제로 관광객이지만, 우리는 브이자를 그리며 차례로 사진을 찍었다.



(철조망 안 쪽이 고래 기지에요. 바다도 손수건만큼 보입니다)

이 고래 기지는
1986년 포경에 반대하는 환경운동가로부터 테러를 당한 바로 그 곳이다. 그린피스 활동가 두 명이 몰래 잠입해 포경선에 구멍을 내고 유유히 사라져 아이슬란드 포경 업계를 국제 망신시켰다. 혹시라도 붙잡혀 고문 받다 차가운 레이캬비크 감옥에서 일평생을 썩게 될까봐, 우리는 수백 미터 거리에서 망원 렌즈로 몰래 사진을 찍고, 혹시 직원이 물어보면 가이드북에 있어 신기해서 와 봤다고 명랑하게 말하기로 입도 맞췄다. 론리플래닛 가이드북에 진짜로 한 줄 나오긴 나온다. 그러나 이 고래 기지는 그 뒤로도 보안에 있어 별 반성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공장 앞마당의 직원은 우리를 흘낏 보더니 호수로 물을 뿌려 마당을 쓸어냈다. 분홍빛 살점이 떨어져 있었다. 고래였다. 혹시라도 어제 우리 배 밑을 지나갔던 그 밍크일까. 혹시 그 아이의 친구나 동생은 아닐까. 바람에 진한 비린내가 실려와, 한 손으로 다시 코를 움켜쥐었다.



(창살 속으로 손을 넣어 몰래 찍은 고래 해체장 작업 풍경. 고래야 돌아와)


Posted by orc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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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kygirl 2011.02.09 02: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프리윌리의 고래이야기는 정말 슬프네요. 고래 대차대조표에서 빵 터졌습니다 ㅋㅋ 글과 사진 정말 잘 보다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