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의 캐치프레이즈는 전세계 북극곰의 수도 the Polar Bear Capital of the World. 처칠역 입구에 처칠역글자보다도 더 커다랗게 간판이 붙어 있다. 세계 어디나 지방 관광 활성화를 위해 나름의 캐치프레이즈를 고안해 붙이고 있다.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우리나라 강원도 양구군의 병영 추억의 고장’ (도대체 누가 다시 오고 싶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이었고, 그래도 가장 현실에 가까운 캐치프레이즈가 처칠이었다. 심지어 바다 건너 스발바르 관광 정보를 공유하는 스발바르 포럼에서도 정녕 북극곰이 보고 싶다면 캐나다 처칠로 가라고 안내하고 있다. 아무렴 처칠엔 북극곰이 난무했다. 수퍼마켓에서 파는 민트 사탕에도 북극곰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북극곰 입냄새도 박멸!’), 북극곰 출몰 주의 안내판(‘북극곰 떴다하면 654-BEAR’)도 팔았다. 정말 자동차에 붙어 있는 건 못 봤는데, 북극곰 모양으로 만들어진 자동차 번호판도 있었다.


다만 북극곰만 없었다
. 툰드라 버기를 타고 종일 북극곰을 찾아다닌 끝에 우리가 본 북극곰은 도합 두 마리였다. 곰 찾다가 눈에 핏발이 선 우리에게 가이드는 미안한 얼굴로 이게 다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지구가 빠른 속도로 온난해져도, 지난해 40마리이던 북극곰이 올해 2마리로 줄 수는 없다! 진실을 향한 불타는 열망으로 우리는 직접 북극곰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일단 차부터 빌려야 했다. 북극곰의 습격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무기도 없었고, 곰보다 빨리 뛸 자신도 없었다. 북극곰은 내키면 시속 50킬로로 뛸 수 있다. 나는 간신히 시속 5킬로로 걸을 수 있다.차를 빌리고 싶다고 하자 호스텔 주인이 잠시 꿰뚫는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북극곰 좇아갔다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 철없는 관광객이 또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너희들 말이야, 여기 도로를 다 합쳐 봐야 22킬로 밖에 안 된다는 건 알고 있는 거지?”


(전세계 북극곰의 수도 처칠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5월말부터 9월까지는 조류 탐조의 천국!)

중고차 전문 탐락 렌터카엔 차 한 대가 남아 있었다. 렌터카 업체 주인은 코를 훌쩍이면서 싹싹하게 물었다. “북극곰 찾으러 가려는 거죠? 여기, 동네 쓰레기 매립장. 뭐랄까, ‘북극곰 식탁이라고나 할까. 해질 때 가면 꼭 나와.” 숨길 것도 없었다. 도로도 없는 처칠에서 굳이 렌터카를 빌리는 관광객들은 우리처럼 툰드라 버기에 한을 품은 사람들인 모양이었다. 기름은 이미 만땅으로 채워져 있었다. 돌려줄 때 채워주지 않아도 된다. 뛰어봐야 벼룩, 달려봐야 22킬로다.

론리 플래닛캐나다편은 처칠에 북극곰 외에도 볼 것이 많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골프공 두 개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로켓 관제 센터였던 빈 건물이라든가, 시스템 변경으로 용도 폐기된 로켓 발사대라든가, 실제로는 발사되지 않았던 미사일이라든가, 처칠 앞바다에서 좌초한 전함 같은 것들이었다. 압권은 미스 피기였다. 애칭까지 붙은 이 관광 어트랙션은 1979년 추락한 C46 수송기의 잔해다. 가까이 다가가면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비행기 부품도 볼 수 있다. , 사고가 나서 추락한 뒤 아직까지 치우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보물찾기를 하는 심정으로 마을 외곽에 띄엄띄엄 흩어진 과학 문명의 잔해들을 찾아 다녔다. “오옷! 여기 날개 일부는 형체가 온전해!” “, 여기 유리처럼 보이는 반짝이는 것이 있어!” 망가진 부품 같은 걸 주워들고 기뻐하고 있자니, ‘미래소년 코난에 나오는 코난이라도 된 심정이었다. 핵전쟁으로 인류가 한 번 멸망한 뒤 새로 만들어진 과학 문명 세계 귀퉁이에서 옛 문명의 잔해를 모아 소꿉장난을 하는 소년소녀라고나 할까. 가뜩이나 을씨년스러운데, 날씨까지 한바탕 비라도 뿌릴 듯 흐려졌다.


인류를 멸망시킨 핵전쟁이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은유한다면
, 처칠은 과학 문명의 귀퉁이가 맞았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북국의 이 작은 마을은 냉전 시대 과학 기지로 개발됐다. 처칠 앞바다인 허드슨만에서 직선으로 똑바로 배를 몰고 가면 러시아 최북단의 과학 기지 무르만스크다. 북극을 가로지르는 말 그대로 북극 항로. 그야말로 대단한 지정학적 위치다. 처칠이라는 마을 자체가 이 위치 때문에 만들어졌다. 캐나다 인디언들과 비버며 여우며 북극곰의 모피를 교역하던 유럽의 상인들이 유럽과 북미를 잇는 가장 빠른 루트로 처칠 뱃길에 주목했다.


이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일단 세계지도를 접어서 치우고 지구본을 꺼내야 한다
. 지구본을 두 다리 사이에 끼우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보인다. 프랑스와 영국을 출발한 상선들이 북해를 거슬러 올라와 그린란드를 스쳐 지나 캐나다 북부의 섬과 섬을 가로질러 허드슨만으로 쏙 들어오는 것이다. 지금의 처칠항에 교역센터가 만들어진 것은 1717년의 일이었다. 그 처칠항에는 이제 페인트가 벗겨진 건물에 나무 간판만 처량하게 삐걱거렸다. ‘관광용인지 경고용인지 북극곰 경계 안내판이 앙증맞게 서 있었다.

(처칠 외곽의 북극곰 출몰 주의 표지판)

그 때 싸이렌을 울리며 경찰차 한 대가 눈앞을 가로질렀다. 우리도 재빨리, 싫다는 차를 달래 힘겹게 시동을 걸고 경찰차를 쫓아갔다. 달려봐야 2차선 일직선 도로인데, 경찰차는 쏜살같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거대한 쓰레기 매립장 앞이었다. 쓰레기를 실은 트럭 한 대가 천천히 쓰레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재빨리 차 안을 훑어보고 콜라 캔이며 과자 봉지며 먹다 남은 빵이며를 주섬주섬 챙겼다. 물어보면 쓰레기 버리러 왔다고 할 참이었다. 20미터쯤 차를 몰고 들어왔을까. 쓰레기 더미 위로 하얀 물체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북극곰이었다. 어미곰과 아기곰 두 마리. 곰 가족은 머리를 흔들며 쓰레기 더미를 헤치고 있었다.

어미곰의 배는 멀리서도 홀쭉해 보였다. 북극곰은 자고로 물범을 먹고 살아야 하는데, 물범 사냥을 떠나는 시기가 자꾸만 늦어지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허드슨만이 얼어붙는 시점이 늦어지기 때문이다. 내륙 체류가 생각보다 길어지면서, 배가 고픈 북극곰들은 마을로 마을로 내려오고 있다. 마을 입구의 쓰레기 매립장은 그들의 식탁이 됐다. 어미곰은 쓰레기 더미를 헤치다 말고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아기곰 두 마리가 제대로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는 모양이었다. 천천히 북극곰을 향해 접근하던 인간 북극곰이 자동차의 시동을 껐다. 오른쪽 어깨에 카메라를 걸친 그가 훌쩍 차에서 뛰어내렸다. “안돼! 돌아와!”

(포클레인을 향해 다가가는 북극곰 가족)

내 비명은 그러나 입모양 뿐이었다. 소리를 질렀다간 북극곰이 놀라 도망가실 것 같고, 그대로 두고 보자니 신혼여행 왔다 과부로 돌아가헤드라인이 머릿속에서 번쩍거렸다. 발을 구르고 주먹으로 가슴을 치고 있는데, 쓰레기차 아저씨가 경적을 울렸다. 빵빵. 클락션 소리에 놀란 어미곰이 벌떡 일어났다. 2분 같은 2초였다. 잠시 우리를 빤히 쳐다보던 북극곰은 뒤로 돌아 겅중겅중 뛰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덩어리를 힘겹게 빨던 아기곰 두 마리도 엄마곰을 따랐다. 매립지 언덕 위에 세워 놓은 포클레인의 긴 그림자 너머로 곰 가족은 사라졌다. 가봐야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온 지구가 작정하고 뜨거워지고 있는데. 그 해 겨울엔 이따금씩, 그 곰 가족의 안부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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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ugg boots 2013.07.18 01: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눈을 감아봐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면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널 사랑하고 있는거야.



내가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잘 안 믿는데, 정말이다. 우리는 캐나다 처칠을 가기 위해 결혼했다. 벌써 10년도 더 전인데, 북극곰이 인도를 갔다 오면서 일본항공 비행기 기내지를 하나 가져왔다. 하얀 북극곰들이 어리광을 부리며 눈밭을 뒹굴고, 사람들은 컨테이너 박스 같은 건물의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고 북극곰을 보고 있었다. (앞으로 몇 회는 사람 북극곰과 동물 북극곰이 난무할 테니, 편의상 사람이 붙어 있지 않으면 동물 북극곰인 걸로 해 두자.) 일본어 학원 3개월 만에 드디어 가타카나 읽는 법을 깨우친 내가 기특하게도 손가락으로 한 자 한 자 짚어가며 읽었다. 카나다 처어치루. 북극해로 연결되는 허드슨 만에 면해 있는 조그마한 마을인데, 바다가 얼어붙는 10월말이면 수백 수천마리의 북극곰이 마을을 가로질러 북극해로 떠난다.


몇 년 뒤
, 우리는 정말로 처칠에 북극곰을 보러 가기로 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처칠에 가려면 한국에서 캐나다 밴쿠버로 날아가서, 밴쿠버에서 다시 위니펙으로 날아가서, 위니펙에서 일주일에 세 번 다니는 기차를 타야 한다. 일주일 휴가에 주말을 붙여도 도저히 견적이 나오지 않았다. 그 때 번개처럼, 결혼하면 일주일 휴가를 준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과년한 딸과 아들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결혼하겠다고 하자 양가 부모님은 할렐루야를 부르셨다. 일단 북극곰 출몰 시기에 맞춰 10월말로 결혼 날짜를 잡았다. 그 때가 봄이었는데, 벌써 동나기 시작한 기차의 좌석을 아슬아슬하게 잡고, 처칠의 북극곰 투어도 예약했다. “신혼여행인데, , 평생 꼭 한번, , 지구 반대편에서, 으로 점철된 메일을 보내 간신히 숙소도 잡았다. 청첩장보다, 북극곰 투어 여행사 프런티어 노스의 안내 브로슈어가 집 우체통으로 먼저 날아왔다.


(처칠을 가기 위해 몹시 달리던 어느 새벽의 풍경. 사진만 찍고 다시 냅다 달렸습니다)

사람 북극곰과 내가 렌터카에 장비를 싣고 의기양양하게 브랜던으로 입성한 것은 결혼식으로부터 사흘 뒤였다. 위니펙에서 기차를 타면 곧장 처칠이었지만, 우리는 차를 빌렸다. 도로가 끝나는 곳까지는 한번 달려가 보고 싶었다. 위니펙에서 처칠까지 1282킬로, 도로는 처칠 남서쪽 548킬로의 톰슨에서 끊긴다. 차를 빌린 김에 조금 에두르더라도 사람 북극곰이 동물 북극곰을 향한 갈망을 키웠던 브랜던에도 가 보기로 했다. 북극곰은 이 조그만 캐나다 중부 평원 지대의 조그마한 소도시에서 어학연수를 빙자해 반 년쯤 잘 놀았다. 4층 이상 건물이 한 채도 없는 조그만 마을에서, 일요일마다 자전거를 타고 호숫가로 달려가 피자를 먹었다고 한다.


(브랜든 버거킹 드라이브 인에서 어니언링 설욕전 중)

다시 온 브랜던은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레고 블록 같던 사진 속의 브랜던 대학교와 나지막한 건물들은 여전했지만, 북극곰이 방을 얻어 살던 집의 불은 꺼져 있었다. 주말에 문 여는 유일한 식당이었다던 중국집 웨이난은 평일 점심에도 뷔페 메뉴를 팔았다. 북극곰과 그의 친구들의 문화 중심지였던 월마트는 교외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는 북극곰이 자전거를 타고 갔다 빠꾸먹었다던 버거킹 드라이브 인에 자동차를 몰고 가 어니언링을 사 먹었고, 북극곰이 혼자 앉아 떠나는 버스들의 시간표를 읽었다던 버스터미널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월마트에 가서는 할인 스티커가 붙어 있는 아바의 씨디와, 두르기만 해도 보풀이 일어나는 싸구려 목도리를 샀다. 여행의 동반자로 챙겨 간 슬픈 흰 곰의 노래라는 책에서는 스발바르 제도에 사는 늙은 현자, 유트빅의 이야기가 나왔다. 추억이란, 세월의 체로 걸러낸 뒤 남은 좋은 시절의 기억을 먹고 사는 감미로운 쓸쓸함이라고 적혀 있었다.


브랜던에서 톰슨으로 달리는 우리의 자동차는 추억보다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 정확히는 평지 구간 시속 140킬로, 커브 구간 시속 110킬로였다. 속도 감시 카메라에 찍히면 어떡하나 걱정이 잠깐 들었지만, 경찰이 우리 차 한 대 잡자고 기름 아깝게 수백 킬로 달려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2차선 고속도로의 앞으로도, 뒤로도 차 한 대 보이지 않았다. 문명 세계와 우리를 연결시켜 주는 것은 도로의 양쪽으로 가느다랗게 이어지는 전력선과 전화선뿐이었다. 끝없는 밀밭만 계속되던 평원엔 자작나무와 침엽수가 숲을 이뤘고, 숲과 숲 사이엔 인디언이 부족을 이뤄 살았다. 태양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졌고, 평원은 짧은 여름 동안 푸르렀다 바람이 차가워지면 잿빛으로 변했다. 오늘이 내일과 같고, 내일이 그 다음날과 같은 대평원, 프레리였다.


지금 그 프레리에는
, 자기의 땅에서 쫓겨난 인디언들과, 지구 반대편의 또 다른 평원에서 건너온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산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러 왔다 순교했다는 선교사의 추모비 앞에서 사과 머핀을 먹고, 양파 모양의 둥근 돔이 세워져 있는 우크라이나식 성당 앞에서 커피를 마셨다. 첫날에는 600킬로쯤, 둘째날에는 300킬로쯤 달렸던 것 같다.
 

 

(라이딩 마운틴 파크인가요, 거기 근처를 지날 때쯤이었던 것 같아요. 아직 나무가 많군요)

도로의 끝은 톰슨이었다
. 황량하기 그지없는 전형적 북극 도시였다. 톰슨은 1956년 니켈 광산이 발견되면서 급조됐다. 대충 컨테이너 같은 가건물을 쌓아올려 집으로 삼고,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파는 패스트푸드 식당 몇 곳이 전부다. 니켈이 고갈되면 언제라도 철수할 기세였다. 지역 헤리티지 박물관을 한 바퀴 돌아보고, 소 닭 개 양 말 같은 가축을 전시해 놓은 동물원을 보고 나니 할 일이 없었다. 동물원 앞에 세워져 있는 광부동상 앞에서 사진도 찍고,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감자와 치즈를 옹심이처럼 찐 우크라이나 만두, ‘페로기도 먹었다. 까마귀들이 녹슨 연료통 앞에서 깍깍대는 것을 구경하면서 매니토바 관광지도를 첫 글자부터 마지막 글자까지 샅샅이 읽었다.


북극곰이 그렇게 많아도 지난
50여년간 매니토바주에서 북극곰에 습격당해 죽은 사람은 2명밖에 안 된다.북극곰 주의!’ 프로그램을 잘 실시한 덕분이란다. 북극곰 주의 사항도 적혀 있었다. 1. 달려서 도망가지 말 것 2.죽은 척 하지 말 것. 곰은 시속 50킬로로 달릴 수 있고, 곰이 한번 툭 치면 허리가 나간다는 것이다. 물론 나무 위에도 올라가면 안 된다. 곰은 나무타기 선수다. 이솝이 인류 전체를 상대로 곰이 나타나면 나무에 올라갈 것인가 죽은 척 할 것인가의 실존적 질문을 던졌건만, 답은 둘 다 안된다였던 것이다.


시간을 삽으로 퍼내다 지쳐 우리는 톰슨 역에 들어가 기차를 기다리기로 했다
. 동양인 세 사람이 조용히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두어 사람이 가방을 메고 씩씩거리며 대합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해가 저물고, 출발 시간을 넘겼지만 기차는 오지 않았다. 연착이었다. 그것도 3시간. ‘상습 연착에 익숙한 사람들은 출발 시간을 한참을 넘기고도 태연하게 대합실로 들어왔다. 기차가 열심히 꾸역꾸역 달려오고 있으니, 30분만 더 기다리면 된다는 소식이 전해질 즈음엔 대합실은 거의 피난민 수용소였다. 사람들은 흥분하고 있었다. 내 사돈의 팔촌의 친구는 엊그제 북극곰 두 마리가 레슬링하는 걸 보고 왔다던데? 요즘 기차 안에서 오로라 본다는 이야기 못 들었어? 10시쯤 북쪽 하늘에서 눈을 떼지 말라던데...그렇다면 나는 반드시 창가에 자리를 잡아야겠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멀리서 철걱철걱, 얼었다 녹은 툰드라의 평원을 엉금엉금 달려오는 기차의 바퀴소리가 들렸다. 정말이다.

(열차는 씩씩하게 처칠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오로라만큼 아름다운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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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을 보러 가는 투어 버스는 아침 해도 뜨기 전에 숙소 앞으로 왔다. 노란색 스쿨 버스였다. 먼저 버스에 타고 있던 관광객들이 손을 들고 아는 척을 했다. 노란 점퍼가 써스캐춘 아줌마, 빨간 바바리가 똑똑이 아줌마다. 피난 열차 같은 처칠행 열차에 몸을 싣고 하룻밤을 함께 보낸 우리들 사이에는 이미 끈끈한 동지애가 넘쳐흘렀다. 빈 좌석이 보이면 일단 가방부터 던져 놓았던 그 밤, 점퍼를 담요 삼아 온 몸을 구겨 넣었던 그 새벽, 기차 안 화장실에서 줄을 서서 차례로 이를 닦았던 그 아침, 3시간 늦게 출발한 기차가 반성의 기미도 없이 정확하게 3시간 연착해 처칠역에 도착했던 그 낮. 어차피 사흘 뒤에야 돌아가는 기차가 있을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한 열차를 타고 와서 한 열차를 타고 돌아갈 운명이었다.


(나름 고풍스러운 처칠역. 우리를 데려왔다 데려갈, 연착전문 기차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날 오후 내내 처칠 시내에서 마주쳤다. 처칠은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인구 850. 북극곰 관광객이 몰려드는 10월 말에서 11월 초엔 1200명으로 불어난다. 그래도 수만명의 관광객을 감당하긴 어려워, 북극곰 보러 왔다 아르바이트생으로 한 철을 나고 돌아가는 관광객들도 있다. 주민의 서너 배는 족히 될 관광객들은 식당에서, 박물관에서, 수퍼마켓에서, 그리고 골목에서 수없이 마주쳤다. ‘처칠 모텔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창 밖으로 지나가는 관광객을 세고 있는데, 싹싹한 써스캐춘 아줌마가 우체국에 가면 북극곰 소인 찍어준다!”며 여권을 꺼내 자랑했다. 식당 옆 기념품 가게에서 컵 받침이며 머그컵이며를 구경하고 있는데, 똑똑이 아줌마가 오늘 저녁에 초등학교에서 북극곰 강좌 있다는 이야기 들었어?”라며 뜨거운 동지애로 정보를 나눠줬다.

 

털털거리는 우리의 스쿨버스는 흰 털만 보여도 자지러질 준비가 돼 있는 관광객들을 태우고 고든 곶 으로 향했다. 처칠 시내에서 30분 거리. 처칠만 야생관리구역의 일부인 고든 곶은 북극곰들이 바다가 얼기를 기다리는 일종의 대합실이다. 북극곰이라고 일년 내내 얼음 위에서 보내는 것은 아니다. 처칠의 북극곰들은 여름 한 철은 내륙의 와푸스크 국립공원에서 보내고, 바다가 얼기 시작하는 10월 말 우르르 줄을 지어 바다로 달려간다. 이 때 전세계 관광객과, 사진작가와, 방송국과, 다큐멘터리 제작자도 처칠로 달려온다. 내가 확신을 갖고 이야기하건대, 내셔널지오그래픽도, BBC 북극곰 다큐도, ‘북극의 눈물, 북극곰이 나오는 장면은 대부분 처칠에서 찍었다. 전세계 북극곰은 22000여마리, 그 중 절반이 허드슨만에 살고, 처칠 일대에만 1200마리가 산다. 사람보다 북극곰이 더 많다. ‘물 반 곰 반인 거다. 우리의 투어 버스에도 커다란 렌즈를 둘러멘 프로 삘의 작가가 한 명 타고 있었다.

 

우리는 고든 곶 입구에서 트랙터처럼 바퀴가 커다란 툰드라 버기로 갈아탔다. 표면만 얼었다 녹았다 또 얼기를 거듭하는 툰드라 들판을 방황하며 북극곰을 찾아다니는 것이 오늘의 과업. 가이드를 겸해 국제 북극곰 보호단체 폴라 베어 인터내셔널활동가도 버기에 올랐다. 북극곰의 생태적 중요성과 기후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교육하려고 탔겠지만, 관광객들은 그녀가 1킬로 밖의 북극곰도 찾아내는 소머즈의 눈을 가졌으리라는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손가락만 바라보는 관광객들의 눈을 의식한 듯 그녀가 멀리 희끄무레한 물체를 가리켰다. “저기!....아 북극 토끼네요. , 우리가 아는 토끼보다 약간 큰데 털이 희죠. 보호색이라고나 할까.” 잠시 말을 멈춘 그녀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걱정 마세요, 작년엔 40마리나 우글거렸거든요.”
 

(곰 발견! 오옷 온몸이 새하얀 북극곰입니다)

고래도 곰도
, 내가 나타나면 자기들끼리 텔레파시라도 보내는 걸까. “어이, 이야기 들었어? 걔 또 왔대. 몇 시간은 꼼짝 말고 집에 있어야겠어.” 그것은 마치 우리 동네에서 회사 앞으로 가는 721번 버스가 내가 기다릴 때마다 작정하고 배차시간을 조정해 절대 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40마리나 우글거렸다는 북극곰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흰 것은 토끼요, 여우요, 북극 뇌조였다.


처칠엔 북극곰이 너무 많아 동네 쓰레기통까지 뒤진다더니
, 오늘은 일제히 소풍이라도 갔단 말인가. 숙소인 빙하장 카운터에서 보고 외워온 북극곰 비상전화 654-2327이 무색했다. 일종의 북극곰 119’ 전화번호다. 654를 누르고 영문 철자로 B-E-A-R를 누르면된다. 즉각 출동한 구조대가 말썽꾸러기 북극곰을 포획해, 헬기에 대롱대롱 매달아 고든곶이나 와푸스크 국립공원에 풀어 놓는다. 개전의 정 없이 꾸준히 마을에 출몰하는 죄질 나쁜북극곰들은 허드슨만이 얼 때까지 철창 신세를 지게 된다. 공항 근처에 북극곰 감옥이 있다. 28마리까지 수용할 수 있는데, 작년엔 어찌나 호기심 많고 씩씩한 곰들이 많았는지 감옥이 다 찼다고 한다. 그 인간 친화적인 곰들은 다 어디로 가고 고든곶엔 찬바람만 불었다. 북극곰 인터내셔널 활동가가 민망한 손가락을 움직여 수프와 빵을 날라줬다.


(몹시 빠른 속도로 돌진해오는 북극곰!)

갑자기 버기 안이 웅성거렸다. 먹던 수프를 내려놓고 똑똑이 아줌마가 창가로 다가갔다. “오 마이...” 곰이었다. 흰 점 하나가 지평선에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곰은 성큼성큼 다가와 버기 앞을 지나갔다. 이미 벌떡 일어나 있던 사람들이 이쪽 창가에서 저쪽 창가로 몰려왔다. 훌륭한 차다. 그래도 기울지 않는다. 놈은 우리 옆의 또다른 버기를 향해 정면 돌진했다. 오전 내내 나란히 허탕을 쳤던 경쟁 여행사 차다. 곰은 바퀴를 붙들고 벌떡 일어섰다. 표효는 아니고, 가르랑거리는 북극곰의 말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면 이 쯤 됐을 것이다. “혹시 남는 밥이 있으시면...”


(먹을 걸 달라고 없는 꼬리를 흔들고 있는 북극곰)

헐리우드 연예 스타도 부럽지 않을 카메라 세례 속에서 곰은 바퀴만 툭툭 쳤다. “북극곰은 정말 하얗구나.” 인간 북극곰이 문득 생각났는 중얼거렸다. 눈처럼 새하얗지는 않지만 깨끗한 베이지색이었다. 얼룩덜룩 녹색 이끼가 끼어 있는 우리 동네 어린이 대공원의 북극곰 썰매와는 달랐다. 살고 있는 곳의 기온이 너무 높으면 북극곰 털 속에서 남조류가 번식해 이끼가 낀다. 그렇지만 이 하얀 북극곰은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북극곰은 차가운 북극 바다의 물범을 잡아먹고 산다. 지구 온난화로 북극의 얼음이 줄어들면서 사냥을 하기 위해 수영하는 거리가 길어졌고, 배고프고 지친 북극곰들은 익사하고 있다. 전세계 어린이의 친구, 북극 생태계의 제왕, 세계적 멸종위기종이 처해 있는 오늘의 현실이다.

 
버기 차량 사이를 어슬렁거리던 북극곰은 결국 수확 없이 떠났다
. 북극곰 인터내셔널 활동가에게 귀 따갑게 잔소리를 들은 관광객들은 콩고물 하나 던져주지 않았다. 엉덩이를 흔들며 사라지던 곰은 멀찌감치 툰드라 덤불 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배를 긁으며 낮잠이라도 잘 모양이었다. 그날 오후에 만난 또 다른 북극곰도 낮잠을 자고 있었다. 쪼그리고 엎드려 자는 모습이 인형처럼 귀여운 곰이었다. 그게 끝이었다. 그날 오후 내내 고든 곶의 지형지물을 외울 만큼 뺑글뺑글 돌았지만 더 이상의 곰은 보지 못했다. 전 세계 북극곰의 수도 처칠, 그 중에서도 곰이 떼로 몰려다닌다는 고든 곶에서. “어린이 대공원 북극곰한테 처칠 친구들 안부라도 전해 주려고 했는데...” 인간 북극곰이 혼잣말처럼 대답했다. “영 면목 없게 됐어, 그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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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ondandu 2011.05.08 1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으면서, 우글거리는 곰 사진을 기대했는데...다음 글 기다릴게요. 포스트 책으로 나와도 재밌을 것 같아요^^



음, 제가 전 지구적인 오지랍으로 잠깐 생각해 보자면, 지금이 북극곰의 이동 시기죠.


전세계에서 북극곰이 가장 많이 모여사는 곳이 캐나다 북부의 처칠이란 마을인데요, 북미 지도에서 보면 오른쪽 끝에 베어먹은 것처럼 쏙 들어간 곳이 있잖아요? 거기가 허드슨만인데, 그 만 안쪽에 쏙 들어와 있는 마을이에요. 북극곰들이 여름내 이 마을 주변에서 뒹굴뒹굴 하다가, 허드슨만이 얼기 시작하면 얼음을 타고 북극으로 가죠.


북극곰들이, 이제 한 번 떠나볼까, 하는 게 10월말 부터예요. 그래서 지금쯤 처칠엔 북극곰 한번 보겠다고 찾아온 전세계 관광객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죠. 이렇게 야생의 북극곰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은 전세계에서도, 처칠 밖에 없거든요.


물론 북극권의 스발바르나, 알래스카나, 시베리아에서도 북극곰을 볼 순 있어요. 그렇지만 북극곰 병목 현상이라고 할까, 수백 마리의 북극곰이 우르르 지나가는 곳은 없죠. 어쨌거나 저도 그래서 몇년 전에, 북극곰을 보러 다녀 왔답니다. ^^



그리고 기사도 썼죠.


어쨌거나, 처칠은 몹시 멀어요. 캐나다 밴쿠버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서,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위니펙으로 가서, 거기서 사흘에 한번씩 출발하는 기차를 타야 한답니다. 기차로 2박3일이 걸리죠.  처칠까지는 길이 안 나 있거든요.






위니펙에서 처칠로 갈 궁리를 하고 있는 중. 유방암 돕기 행사였나, 뭐 그랬던 것 같은데 위니펙 곳곳에 이렇게 북극곰들이 있더라고요. 신문을 훔쳐보고 있는 북극곰.





잠자다 깨어나 기차 안에서 본 새벽 풍경. 뾰족뾰족한 나무들이 그, 타이가의 침엽수림이에요. 이제 이 기차는 침엽수림을 지나, 툰드라로 향합니다. 처칠은 툰드라 기후거든요. 툰드라는 땅이 푸석푸석해서-겨울엔 얼고 여름엔 녹고-철로 지반이 약하대요. 기차가 엉금엉금 기어갔죠.





기차 안에서 아침밥도 먹었어요. 호수를 끼고 달리는 식당칸. 이 식당칸 맞은편에 앉았던 외국인 아주머니는 처칠이 두번째래요. 이거 기차는 뭐, 다들 북극곰 관광객들로 '며칠전에 다녀간 사돈의 팔촌은 몇 마리를 봤대더라' '우리가 운이 좋으면 곰탱이들끼리 싸우는 것도 볼 수 있다' '행운을 빌 수밖에' 등등 하면서 호들갑으로 넘실넘실 댔죠.







드디어 처칠 도착. '전세계 북극곰의 수도'라는 간판이 보이세요? 그 밑의 '조류 탐조의 천국'은 여름용 홍보 캐치프레이즈죠. 여름엔 벨루가라는 흰 고래와-사람처럼 웃어요- 새들과, 에 또 모기로 와글와글 하다고 하더라고요. 처칠의 인구는 800명, 많으면 1200명. 근데 이 북극곰 한 철엔 몇 배로 관광객이 몰려온답니다. 관광 왔다가 식당 종업원으로 한 철 눌러앉았다 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쿨럭.





진짜 조그만 마을이에요. 식당과 숙소, 초중고교 및 운동장과 마을 강당을 겸하는 복합 건물 한 채. 저희는 '빙하장, 아이스버그인에 묵었는데요, 컨테이너 개조해서 만든 것 같은 2인1실 유스호스텔급 숙소가 하룻밤에 12만원인가 했다는... ㅠㅠ 다른 숙소들도 이름이 대체로 '폴라베어인' '폴라베어 롯지' '툰드라 인' 뭐 그런 식이죠. 집집마다 4륜구동차와-도로가 안 닦여 있으니 4륜만 가능하죠- 모터스키가 주차돼 있더라고요.






잘 나가는 동네 식당입니다. '폴라 베어 버거의 고향' 이라고 써 놓은 게 보이세요? 순록 소시지, 벨루가 수프, 북극곰 버거 뭐 이런... 재료의 진실성을 확인하기가 망설여지는-얘네 다들 세계적 보호종들이잖아요-그런 메뉴들을 팝니다만, 저는 먹어보진 못했어요. 감자튀김과 파스타와, 에 또 한국에서 바리바리 싸 간 햇반에 고추장 비벼 먹었죠. 도..돈이 없어서..






마을 외곽엔 이렇게 '조심하세요' 안내판이 있습니다. 멀리 나가려면 총을 갖고 가야 해요. 곰이 나타날 수 있거든요. 북극곰이 귀여워 보이지만, 얘가 북극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에요. 이 놈이 작정하면, 시속 50킬로로 쫓아온다죠. 처칠은 캐나다 마니토바주에 속해 있는데, 마니토바주에서 나눠준 공짜 지도 뒤에 보면 '북극곰 피하는 법' 이런 안내도 나와요. 죽은 척 하면 안된다 등등.


그나저나 저 안내판 참 예쁘지 않나요? 역시, 기념품 가게에 팔더라고요. 저거 하나 사다가 집 현관에 붙여 놓았죠 (자랑).





첫날 저녁엔 그 종합학교 강당에서 북극곰 강의를 했어요. 관광객들이 많이 오니까, 매일 밤 그런 북극곰 교양강좌가 있더라고요. 기후 변화로 북극곰의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뭐 이런 내용이었는데요,


자세한 이야기는 이 책을 클릭하시면 나옵니당. 에, 저희집 가계에 적지않은 도움을 주고 있는 책이랍니다 (쿨럭). '무슨 코카콜라 찍냐'고 응수했다며, 제 이야기도 15쪽에 나와요. 여기서 밝혀두지만, 저는 그런 적 없다니까요, 없어.





다음날 아침에 북극곰을 보러 갔답니다. 이 동네에 여행사가 2곳이 있는데요, 거기서 각각 하루짜리 북극곰 투어를 운영한답니다. 북극곰들이 몰려 있는 고든 곶이라고, 거기에서 하루 종일 차 타고 돌아다니면서 북극곰을 찾는 거에요.


바퀴가 무지 큰 버기인데요, 북극곰인터내셔널이라고, 북극곰 보호단체 활동가가 동승한답니다. 북극곰도 함께 찾고, 북극곰이 왜 중요한가도 알려주고, 북극곰 발바닥이랑 털도 만져보라고 하고, 에, 또 점심밥도 나눠주고 합니다. 이 날 이 분은, 북극곰이 안 보여, 찾느라 애 쓰셨죠.




드디어 북극곰 발견! 동물원에서 보던 놈들보다 뭔가 때깔이 곱지 않습니까? 털도 새하얗고요. 

 




곰 한마리가 갑자기 차로 돌격해 왔으나,






차 바퀴가 이렇게 높아서 크게 위험하진 않답니다. 저 곰은 관광객들에게 먹이를 달라고 조르는 거에요. 이 놈들이 서울대공원 북극곰도 아닌데, 먹을 걸 달라고 자동차 바퀴도 툭툭 치고 그러더라고요.



그러나 이 날 하루 종일 헤매서 본 북극곰은 달랑 두 마리! "기후변화로 자꾸만 북극곰이 줄고 있다"고 북극곰 활동가가 미안해 했지만, 흑, 북극곰을 보기 위해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저는 어떻게 하라고...ㅠㅠ


다음날은 그래서 차를 빌렸답니다. 처칠엔 도로...라고 주장하는 것이 다 합치면 한 40킬로 쯤 되긴 하거든요. 동네에 딱 한 곳 있는 렌트카 회사에서 딱 한 대 남았다며 털털거리는 4륜 픽업 트럭을 빌려 주더군요. 아아 이날은 몹시 추웠어요.


렌터카 언니가, 북극곰이 종종 나타나는 지역은 동네 쓰레기 매립장이라고 해서, 가 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북극곰 세 마리가 어슬렁 거리고 있었어요. 엄마곰과 아기곰 두 마리인가 보더라고요. 용맹한 북극곰들이 먹을 게 없어서 쓰레기장이나 뒤지고 있다니... 이 놈들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바다로 나가면, 바다는 또 얼음이 줄어들고 있잖아요. 북극곰이 얼음과 얼음 사이를 건너 수영하다, 쉴 얼음이 나오지 않아 물에 빠져 죽는다고 하더라고요.


북극곰 가족은 한참 쓰레기장을 뒤지다가, 쓰레기차 아저씨가 시동을 걸자 후다다닥, 저 너머로 사라졌답니다.



여행사는 우리에게 11월 말이면 북극곰의 이동이 끝난다, 관광철은 끝난다고 했지만, 동네 사람들 말로는 12월 1월에도 북극곰이 다닌대요. 한겨울엔 마을로 찾아오는 일도 왕왕 있다고 하더라고요.


북극곰과 함께 살아가는 처칠 사람들은 그래서, '북극곰 경보 시스템'을 개발해서 쓰고 있어요. 에, 북극곰이 나타나면 전화기를 들고 B-E-A-R을 누르고, 북극곰 처치반이 나타나 마취총을 쏜 다음에 얘들을 헬리콥터에 대롱대롱 매달아 와푸스크 공원에 풀어 놓죠. 그래도 자꾸 마을로 또 내려오는 '상습범'들은, 이듬해 봄이 될 때까지 북극곰 감옥에 가둬 둔답니다.






여기가 북극곰 감옥. 두드리면 곰들이 으르렁, 거릴래나요?






슬슬 돌아갈 시간. 이 고풍스러운 역은 처칠 역이랍니다. 이날도, '길이 푹신푹신해 도저히 속력을 낼 수가 없었다'며 열차가 3시간이나 연착을 했어요. 북극곰아 안녕~







우체국에서 받아왔던 북극곰 소인. 여행이 끝나면 사진과 동전이 남는다지만, 그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남는 것 같아요. 북극곰을 알게 되면서 녹아내리는 빙하가 걱정이 됐고, 기후변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북극곰과, 빙하장의 주인 아저씨가 생각이 났고, 그러다 보니 흘러흘러 여기까지 오게 된 게 아닐까 싶은... 왜요, 루카치가 일찍이 말씀하셨잖아요. "여행이 끝나고, 이 시작됐다고"



Posted by orc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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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딸기 2010.11.17 1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다!!!
    오르카는 추운 지방을 좋아한다더니... 대단하다. 북극곰을 보러 가다니.
    난 더운 데만 가는데... ㅎㅎㅎ

  2. 토토삐삐엄마 2010.11.17 1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구..쓰레기장을 헤매고 사람들에게 먹을걸 달라고 구걸하는 북극곰이라니...마음이 안좋네요.....인간들때문일까요...

  3. 후후 2010.11.26 1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북극곰 무섭다던데..
    육식 아닌가요?

  4. 이성근 2010.12.09 09: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기자님
    배울 게 많습니다.

    북극곰의 눈물,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부산기장 신앙촌 이야기 들어 보셨습니까

  5. 2011.11.07 15: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6. 우와 2012.04.21 03: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 사람들때문에 서식지도 사라지는건데 북극곰이동시기에라도 먹을걸 좀 줬음 싶네요...

    좀 너무 불쌍해요..북극곰이나 회색곰이 생각한것보다 육식성은 아니더라구요
    오히려,사람들한테 애완동물처럼 먹을걸 달라고 조르러 오고그러던데요

    알래스카근처나 러시아? 농장에 북극곰들이 먹이가 없으니까 하루종일 철조망바깥에서 음식냄새맡다가 가는걸 다큐멘터리에서본적이있어요. 야생에서 먹일 찾으면 오지도않을텐데 힘도없어서 돌아다니지도않고 쭈그려앉아있다 마지못해간다고하드라구요..불쌍해서^^;;
    아무래도 지구온난화가 늦춰질거같지가않거든요..석유와 원자력에대한 집착때문에 신기술개발에도 진척이 별 없구말이져...

  7. 억만장자 2012.06.04 19: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용이 얼마나 들었나요?

  8. 기차여행 2012.09.30 14: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처칠에서의 북극곰 투어비용을 알고싶습니다! ^^* 답변해주시면 감사하겠슴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