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인사이드 패시지를 다니는 여객선 타쿠호 선실의 2층 침대가 편한 것은 아니었다. ‘최소 공간에 최대 적재를 목표로 만들어진 세상의 모든 배 시설물답게, 누우면 정수리와 발바닥이 양쪽 벽에 짝 하고 달라붙었다. 나보다 한 뼘 쯤 긴 북극곰은 발목을 잘라내거나 무릎을 세워야 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자세로 잤다. 계속 잤다. 잘 수밖에 없었다. 원인을 찾으려면 72시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플로리다를 강타한 태풍 메이의 영향이 캐나다는 건너뛰고 알래스카에 미쳤기 때문이었다


미국 시애틀 다코마 공항을 정시에 출발한 우리의 알래스카 항공 69편은 케치칸 상륙을 20분 남겨놓고 시치미라도 잡아떼듯 운항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케치칸 대신 싯카로 갑니다며 방향을 틀었다.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내리는 싯카 공항에 망연히 서 있던 비행기는 다시 케치칸으로 향했으나 시간당 100밀리의 폭우에 넋을 잃은 케치칸 공항은 상륙 따윈 허가하지 않았다. 우리의 비행기는 공중에서 맴만 돌다 결국 알래스카의 주도, 주노로 향했다. 항공사에서 끊어 주는 호텔에서 2시간 20분을 자고, 새벽 비행기로 케치칸으로 날아와 2시간을 자다 나가 놀았다. 그날 밤 다시 3시간을 자고 새벽 배를 타서, 배 탐험에 정신을 팔다 다시 4시간을 자고, 일어나 점심을 먹고 다시 2시간을 잤다


(주노 공항에서 케친칸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자고 있는 북극곰)

3시간씩 몰아 잠자기를 몇 번 했더니, 그렇잖아도 시차 때문에 없는 정신이 시간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오늘이 어제인지, 어제가 내일인지 모를 지경이 됐다. 일 년의 3개월은 낮만, 3개월은 밤만 계속돼 시간 개념이 우리의 그것과 다르다는 에스키모의 사정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이 비몽사몽의 와중에서도 기항지에 도착했다는 뱃고둥은 어김없이 울렸다. 우리는 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두르고 몽유병 환자처럼 비틀거리며 갑판으로 나갔다. 케치칸에서 싯카까지 23시간의 항해 동안 타쿠호는 세 번 기항지에 들른다. 차례로 랭겔 Wrangell, 피터스버그 Petersburg, 케이크 Kake 라는 조그만 마을이었다


(피터스버그에서 비를 뚫고 인증샷을 찍고 있는 북극곰. 주요 시설물은 모두 화살표 왼쪽으로...)

다행히 랭겔과 피터스버그에는 터미널 주변으로 집도, 사람도 있었다. 다시 말해, 케이크에는 터미널 주변에 아무 것도 없었다는 이야기다. 원두막 같은 대합실과 케이크 원주민 투어 Kake Native Tours'라는 스티커가 붙은 버려진 버스 한 대가 전부였다. 틀링깃 인디언 중에서도 케이크 부족인 이 마을 사람들도 관광 산업에 뛰어들 긴 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서너 걸음을 더 걸어가 못 쓰는 주유소로 보이는 케이크 원주민 정유 Kake Tribal Fuel’ 앞에서 사진을 찍고 돌아왔다. 그래도 모든 것이 스타벅스’ ‘월마트아니면 인 미국에서 원주민 여행사나 주유소는 의미 있는 시도가 아니냐며, 대규모 독점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케이크의 현재와 그리고 미래를 기원했다.


한편 랭겔에서는 열심히 걸어 두 블록이나 떨어진 도서관까지 다녀왔다. 집집마다 마당에 색색깔 꽃과 풀을 가꾸는 예쁜 마을이었다. 부두로 돌아오니 아홉 살 쯤 돼 보이는 소녀가 조약돌같은 조그만 돌을 펼쳐놓고 팔고 있었다. 돌에는 자줏빛 구슬 같은 게 박혀 있었는데,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랭겔의 석류석이라고 했다. 아프리카 킴벌리의 다이아몬드는 들어봤어도 랭겔의 석류석은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어쨌거나 어른들은 캘 수가 없고, 아이들만 캐어서 조금씩 팔 수 있게 돼 있다고 했다. 구슬이 반쯤 묻혀 있는 돌을 하나 샀다. ‘돌 사세요말 한마디 못하던 아이가 수줍어하며 몸을 배배 꼬았다


(배는 랭겔을 향해 접근하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관련사진임.)


피터스버그는 이름이 같은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 페테르부르크와는 무관한 곳이었다. 피터라는 사람이 발견을 했는지, 건설했는지 해서 피터스버그라고 이름이 붙었는데, 지명은 러시아식, 공식적으로는 미국령, 실제로는 노르웨이인들이 모여 사는, 정체성이 혼란스러운 마을이었다. 크기로는 케치칸만 못 하지만 목재업이 발달해 형편은 훨씬 낫다고 했다. 그래서 케치칸처럼 관광 산업에 올 인할 필요가 없단다. 지역 안내 브로셔에 나올 법한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이유는, 피터스버그에 도착하자마자 장대비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터미널 의자에 앉아 브로셔를 꼼꼼하게 읽었다.


피터스버그의 역사와 문화와 전통에 대해 다 알게 됐는데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 다리를 박자 맞춰 흔들며 앉아 있는 우리만큼이나 승무원들도 심심해 보였다. 요리사처럼 흰 옷을 입은 바 승무원은 자동차가 주차돼 있는 카 데크에서 농구를 하고 있었다. 어젯밤 형광 막대를 흔들며 우리의 신분증을 검사하던 승무원은 어디서 구해 왔는지 종이컵에 흙을 담고 풀 한포기를 심고 있었다. 키울 모양인가보다. 그러고 보니 오늘 새벽 빈 식당의 승무원은 몇 번을 망설이다 다가와 볼이 빨개진 채로 니혼진 데스까라고 물어봤었다. 나는 정말이지 다정하게 대해 주고 싶었지만, 일본어로 아닙니다이에인지 아리마스인지 자꾸만 헷갈려 결국은 노 재패니즈라고 손을 흔들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배를 타고, 모든 기항지에 30분씩, 1시간씩 들르는 저들에게 시간은 아다지오의 속도로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어두움이 깔리는 먼 바다로 나가는 우리의 타쿠호. 수평선 위로 구름인가 꿈인가 머나먼 곳입니다)

그날 밤엔 전망 라운지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양 옆 외에 정면에도 창문이 나 있는 조그만 라운지였다. 오늘의 기항지를 모두 들른 배는 푸르스름하게 어두움이 깔리는 바다로 천천히 몸을 밀고 나아갔다. 쌍안경으로 내다본 바다의 끝에는 산들이 있었고, 산들의 머리엔 어김없이 만년설이 덮여 있었다. 저것이 구름인가, 빙산인가, 혹은 흘러내린 빙하인가.


이어폰에서는 아이슬란드 밴드 시규어 로스
잇츠 유 It's You’가 무한 반복 중이었다. 낮도 밤도 아닌 시간대에서, 눈 앞에선 빙하와 구름이, 귓전에선 바람 소리 같은 음악이 영원히 반복되고 있었다. 머리를 기대는데, 북극곰이 어깨를 툭툭 치더니 창 밖을 가리켰다. 저 멀리, 까마득한 끝에, 세 개의 점이 보였다. 바다사자나 바다새가 아니다. 저 정도면 고래다. 창에 눈을 갖다 댔더니 검은 지느러미가 우뚝해도 보였다. 나는 지금도 그들이 범고래 오르카라고 믿고 있다. 이것이 세계의 끝에서 내가, 고래를 본 이야기다.

 


Posted by orc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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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사비크에는 가로등에 점점이 불이 들어오는 저녁 무렵 도착했다. 민박집 주인인 엄마는 딸을 보러 갔다며, 70년대 미국 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단발 파마머리 아주머니가 나는 집을 봐 주러 와 있을 뿐이라며 문을 열어줬다 (즉 본인도 딸이다). 7년 전에도 후사비크에서는 민박집에 묵었다. 호텔이랄 게 없는 작은 바닷가 마을이다. 창틀에 올려놓은 가족들의 사진과 꽃 화분을 보니, 아무래도 이 집이 그 때 그 집 같았다. 창틀을 식탁삼아 도너츠와 커피를 놓고 먹은 기억이 났다.


골목에 나와 보니 그러나
, 집집마다 창틀에 화분이 올라와 있었다. 모두 민박집이었다. 딱히 간판이랄 것도 없고, 그냥 가정집 빈 방에 여름 한 철 손님을 받는다. 분필로 현관문에 ‘X’ 표시라도 그려야 하는 것 아닌가 심각하게 고려할 즈음 주유소와 편의점이 나왔다. 여기서부터 바닷가를 따라 식당, 여행사, 성당, 박물관, 문 닫은 보너스 마트, 공구점 같은 가게들이 쭉 나온다. 성당 맞은편 통나무집은 고래 관광 매표소다. 편의점에 분필은 없고, 콜라와 맥주 한 캔을 샀다.



(점점이 불이 들어오는 후사비크의 저녁 풍경. 빙하가 쌓인 산들이 오르카 등짝 같습니다)

후사비크고래를 보러 온 길이었다
. 예전부터 고래가 보고 싶었다. 누구는 현빈을 좋아하고, 누구는 ‘2PM’을 보고 싶어하는 것처럼, 나는 그냥 고래가 보고 싶었다. 기왕이면 송대관이나 설운도보다 공유나 이선균이면 좋겠듯이, 기왕이면 범고래 오르카면 좋을 것 같았다. 몸에 흰 얼룩이 있고, 지느러미가 우뚝한 대형 고래다. 다른 고래를 잡아 먹어서 킬러 웨일이라고도 하는데, 얼마 전 미국 올랜도 씨월드에서 조련사를 익사시킨 것도 바로 이 오르카였다. 영화 프리윌리의 그 고래다.



-오르카는 왜 조련사를 공격했을까.
Dying to entertain you
-조련사를 익사시킨 돌고래 틸리컴 이야기- 안까먹으려고 쓰는 블로그가 안 까먹고 알려주기를 클릭,
-돌고래쇼를 더 봐야 할까요. 영국엔 돌피나리움이 없다



프리윌리의 주연, 오르카 케이코의 고향이 바로 아이슬란드다. 아이슬란드 앞바다에서 잡혀 미국으로 팔려간 케이코는 각종 고래 쇼를 전전하다 헐리우드까지 진출하게 된다. 영화 속 윌리는 방파제를 뛰어 넘어 자유를 얻었지만, 현실 속 케이코는 영화 촬영이 끝난 뒤 수족관 속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 황당한 아이러니에 전세계가 프리 케이코(케이코를 풀어주세요)’ 캠페인을 벌였다. 결국 케이코는 자유를 찾았지만, 일평생 야생에서 한 번 제대로 살아보지 못했던 이 고래는 자꾸만 인간을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케이코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두 달 동안 먹지도 쉬지도 않고 헤엄을 쳐 북극해를 건너 노르웨이에 닿았다. 그리고 며칠을 시름시름 앓더니 죽고 말았다. 후사비크 고래 박물관에는 케이코의 안타까운 사연이 패널로 전시돼 있었다. 대학생들이 봉사활동 나온 김에 벽화라도 그려 놓고 간 것처럼 생긴 컨테이너 가건물이지만, 후사비크 고래 박물관은 유네스코로부터 상도 받은 세계 최고의 고래 박물관이다.



(정박되어 이는 두 척이 고래 탐조선이에요. '오늘은 안하니 내일 오세요')

고래 관광선은 이틀 뒤에야 탈 수 있었다
. ‘미리 공부를 하고 가겠다며 고래 박물관에서 종류별 고래 골격과, 고래의 한 평생과, 중세 괴물과 현대 고래의 대차 대조표까지 꼼꼼히 다 읽고 매표소로 갔지만, 후사비크 제 1의 고래 관광 여행사 노스 세일링날씨가 개어야 표를 판다며 기다리라고 했다. 박물관 기념품 가게에서 아이슬란드에서 보이는 다양한 고래들티셔츠를 사고, 길 건너 일반 기념품 가게로 건너가 웨일 와칭 가이드를 훔쳐보고, 텅 빈 성당에 들어가 고래 보게 해 달라며 간절히 기도까지 올렸지만, 후사비크 제 2의 고래 관광 여행사 젠틀 자이언트사람도 없고 고래도 안 보이니 내일 다시 오라며 매정하게 셔터를 내렸다. 3의 여행사는 없다. 이 두 업체가 후사비크 고래 관광을 맡고 있다. 고래가 꽤 잘 보이는 아이슬란드에서도 고래 관광 하면 후사비크다. 아이슬란드 고래 관광의 90%가 여기서 이뤄지고, 고래 관광객의 95%가 고래를 본다.


다음날 아침 노스 세일링의 고래 탐조선을 탔다. 아무래도 우리가 이 배의 평균 연령을 힘겹게 끌어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관광버스로 온 노인 단체 관광객 팀에 끼어 있었다. 무릎을 두드리며 배에 오르던 할머니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빛의 속도로 탐조복을 챙겼다. 3시간 동안 배 위에서 고래가 오시기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바지부터 모자까지 우주복처럼 하나로 연결된 탐조복이 준비돼 있다. 역시 노스 세일링친환경 방침이 있는 업체다. 탐조복은 십수년 째 재활용한 듯 솜도 튀어나오고 얼룩도 져 있었다. 다리 한 쪽에 두 다리가 다 들어가고도 남을 큼직한 탐조복을 질질 끌고 갑판을 구경했다. 배도 30~40년 된 낡은 포경선을 개조해 만들었다. 후사비크는 아이슬란드 11개 포경 기지 가운데서도 가장 고래를 많이 잡던 곳의 하나였다. 지금은 완전히 고래 관광으로 전환했다. 노스 세일링도 공공연하게 포경을 반대하며, 수익금의 일부를 국제 고래 보호 프로그램에 기부한다. 고래 박물관 연구자도 수첩과 쌍안경을 들고 고래 탐조선에 매번 동승한다.



(망망대하를 떠도는 경쟁사의 고래탐조선. 배가 거의 가라앉을 듯 갑니다)

그 많다는 포포이스 돌고래도
, 파일럿 고래도, 관광객 앞에서 펄쩍펄쩍 뛰어 오른다는 혹등고래도 모두 파업 중이었다. 2시간을 꼬박 망망대해를 떠돌았으나, 고래는커녕 암초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눈이 빠질 때 쯤 되자 머리에 빙하를 인 먼 산도 오르카처럼 보였다. 심심한 갈매기들만 배를 따라 날아오다 수면 위로 내려앉았다. 새우깡이 없어 아쉬운 대로 아이슬란드 초코바 니짜를 흔들어봤지만 갈매기들은 코웃음만 쳤다. 고래 목격 확률 95%라는 주장이 한국 기상청의 일기 예보 적중도 90% 주장과 비슷한 것임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당사자의 주장과 일반인의 체감 사이에 엄청난 거리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디든 한 방울이라도 비가 오면 예보가 맞은 것처럼, 고래의 등짝이든 지느러미든 물줄기든 뭔들 한번 어렴풋하게라도 보이면 고래를 본 거다. 그러나 이대로는 고래 그림자도 보기 어려워 보였다.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우리는 갑판 아래 선실로 내려가 어깨를 기대고 잠시 졸았다. 고래가 나타난 것은 그 때였다.


이렇게 쓰면 드라마틱해 보이지만, 실상은 갑판으로 올라와 잠시 하품을 하는 동안 마스트에서 망을 보던 가이드가 “3시 방향!”을 외친 것이었다. 거무스름한 그림자 비슷한 것이 비쳤다. 겨울 아침 종각역 비둘기떼처럼 오종종 모여 떨던 관광객들이 일제히 3시 방향으로 카메라를 들이댔다. 수면 위로 잠시 삼각형 모양의 지느러미가 보였다. 밍크, 일 것이다. “11시 방향!” 관광객들이 일제히 반대쪽 갑판으로 뛰었다. 배도 덩달아 기우뚱거렸다. 그러나 고래는 이미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배 아래로 잠수해 이 쪽에서 저 쪽으로 옮겨간 뒤 유유히 사라졌을 것이다. 북극곰이 가이드의 메가폰 소리에 선실에서 튀어나와 갑판으로 뛰어올라올 만큼의 시간이었다. 밍크 고래의 등짝 2초씩 두 번. 그것이 그날 우리가 본 고래의 전부였다.



(고래는 못 보고, 돌아오는 길엔 시나봉과 몹시 단 코코아를 나눠줍니다. 줄을 서서 먹고 있는 관광객들)

고래는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첨예한 환경 이슈다
. 아이슬란드는, 먹지도 않으면서 매년 100여마리의 고래를 잡는 포경 국가다. 주로 밍크를 일본으로 수출한다. 노르웨이, 일본과 함께 사실상의 상업 포경을 허용한 몇 안 되는 국가여서 전 세계 동물 운동가와 환경 운동가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의 모라토리움 선언에 따라 공식적으로 포경을 중단 했지만 계속 잡았다, 말았다 하다가 2007년엔 아예 과학적 목적의 포경을 허용했다. 그러나 이번엔 이미 포경에서 고래 관광으로 전환한 후사비크와, 아이슬란드 관광 업계와, 전세계 여행자들의 항의가 쏟아졌다. 더 많은 고래를 살려서 보여줘야 하는 고래 관광과, 고래를 사냥해서 줄이는 포경이 공존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실제로 그 해 아이슬란드의 관광 수입은 감소했고, 아이슬란드 정부는 수출용 고래는 안 잡고 내수용 고래만 잡겠다는 애매한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고래 고기가 딱히 인기있는 것도 아니어서, 내수용 고래는 좀처럼 팔리지 않고 있다.


다음날 우리는 흐발 피요르드 포경 기지로 잠입 여행했다. 흐발 피요르드 포경 기지는 현재 아이슬란드에서 유일하게 고래를 잡아서 해체하는 곳이다. 상업포경이 재개되면서 20년 된 낡은 기지의 먼지를 털어 다시 돌린다. 멀리 포경 기지가 보이는 곳부터 참을 수 없는 이상한 냄새가 공기를 타고 흘러왔다. 에스키모들이 고래를 잡아 뼈를 세워놓는 알래스카 해안의 고래 비린내도 아니고, 고래 고기의 냄새도 아니었다. 동물 기름을 34일쯤 끓여서 나오는 것처럼 메스꺼운 냄새였다. 자연스러운 관광객처럼 보여야 한다며, 실제로 관광객이지만, 우리는 브이자를 그리며 차례로 사진을 찍었다.



(철조망 안 쪽이 고래 기지에요. 바다도 손수건만큼 보입니다)

이 고래 기지는
1986년 포경에 반대하는 환경운동가로부터 테러를 당한 바로 그 곳이다. 그린피스 활동가 두 명이 몰래 잠입해 포경선에 구멍을 내고 유유히 사라져 아이슬란드 포경 업계를 국제 망신시켰다. 혹시라도 붙잡혀 고문 받다 차가운 레이캬비크 감옥에서 일평생을 썩게 될까봐, 우리는 수백 미터 거리에서 망원 렌즈로 몰래 사진을 찍고, 혹시 직원이 물어보면 가이드북에 있어 신기해서 와 봤다고 명랑하게 말하기로 입도 맞췄다. 론리플래닛 가이드북에 진짜로 한 줄 나오긴 나온다. 그러나 이 고래 기지는 그 뒤로도 보안에 있어 별 반성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공장 앞마당의 직원은 우리를 흘낏 보더니 호수로 물을 뿌려 마당을 쓸어냈다. 분홍빛 살점이 떨어져 있었다. 고래였다. 혹시라도 어제 우리 배 밑을 지나갔던 그 밍크일까. 혹시 그 아이의 친구나 동생은 아닐까. 바람에 진한 비린내가 실려와, 한 손으로 다시 코를 움켜쥐었다.



(창살 속으로 손을 넣어 몰래 찍은 고래 해체장 작업 풍경. 고래야 돌아와)


Posted by orc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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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kygirl 2011.02.09 02: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프리윌리의 고래이야기는 정말 슬프네요. 고래 대차대조표에서 빵 터졌습니다 ㅋㅋ 글과 사진 정말 잘 보다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