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끝났고 해서 원고 폴더를 정리하다 보니까, 책에 쓰려고 모아 뒀다가 못 쓴 사진들이 좀 있네요. 아니 사실은 많다는 ㅠㅜ. 북극 여행 팁을 쓰면서 혹시 사진이 필요할까 싶어서 정리를 해 뒀는데, 결국 그 팁 섹션은 사진 없이 가는 걸로 정리되면서 못 쓴 사진들입니다. 제 노트북 구석에 처박혀 영원히 울고 있는 것보다는, 방출하는 게 낫다는 자세로-. 




아이슬란드 F도로에서 볼 수 있는 표지판입니다. F도로는 4륜 구동 차량만 공식적으로 갈 수 있는 비포장 도로인데, 말이 비포장 도로지 길과 길 아닌 것의 경계가 모호한 곳들도 좀 있죠. 그리고, 굳이 길 아닌 곳을 찾아가는 모험심 강한 여행자들도 적지 않으셔서, 이렇게 '이러시면 안 됩니다' 표지판이 있습니다. 빙하 위나, 빙퇴석 자갈길 같은 곳들을 오프로드 차량이 너무 많이 휩쓸고 다니면, 연약한 툰드라의 생태계가 망가진다는...취지인 것 같습니다. 맨 오른쪽 사진은, 이만큼이나 땅이 패어 버렸어요! 이런 뜻인 것 같아요. 





아이슬란드 기상청 홈페이지 캡처. 너무하지 않습니까. 전국이 비. 하긴, 런던도 주간 예보를 보면 '앞으로 5일 내내 비' 뭐 이런 날들이 없지 않군요. 




아이슬란드 베루네스 호스텔에서 먹은 아침 식사. 봉지 안에 쌀이 들어 있어서 물 붓고 끓이면 되는 쌀밥, 3분 카레 데운 것, 그리고 검은 빵이랑... 에 저 거무튀튀한 것은 놀랍게도 즉석 미역국인 것 같습니다. 저랑 함께 다니는 북극곰은 (토끼도 아니면서) 정체성 모호하게도 당근을 좋아한다는... 통조림 당근도 있네요. 




알래스카 코르도바의 수퍼마켓에서 발견한 한국 김치 만들기 키트! 오른쪽 아래에 자세히 보시면 '메이드 인 하와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하와이와 알래스카가 보통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니까요. 




이건 아이슬란드 유스호스텔 멤버십 카드군요. 비크 호스텔에서 만들었습니다. 비크 호스텔 방 열쇠가 예뻐서 찍은 것 같아요. 열쇠 고리 자세히 보면 나무와 집이 있는 호스텔 아이콘이 있습니다. 




여긴 아이슬란드 흐볼 호스텔. 여기 마음에 들어서 가는 길에 한 번, 오는 길에 한 번, 두 번 묵었습니다. 침대 외에 없는 초간단 시설처럼 보이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거에요. 일단 히터도 있잖아요. 따뜻하고, 숙소도 깔끔하고, 귀신 나올 것 같지도 않고, 뭐 창 밖 풍경도 예쁘고 기타 등등... 




알래스카 원주민 센터에서 파는 인형입니다. <주간경향>에도 책에도 안 썼는데, 앵커리지 근교에 훌륭한 원주민 문화센터가 있어요. 몹시 좋은 곳입니다. 야외에 알래스카 5개 원주민 유형 별로 주택을 만들어서 전시해 놓고, 안에서는 공연도 보여주고 그래요. 상업 시설이 아니라 원주민 연합 조직에서 운영하는 곳이어서 문화적 자긍심도 높고요. 여기 가고 싶어서, 앵커리지에서 차 빌리자 마자 달려갔었거든요. ....그런데 왜 안 썼을까요? 그냥 앵커리지 편 쓸 때 홀랑 까먹었던 것...같습니다. (쿨럭)




같은 문화센터의 기념품 가게입니다. 원주민 수공예품 파는데 이런 스티커가 붙어 있었어요. 멋집니다.. 




여긴 어디냐...알래스카 페어뱅크스의 월마트이거나, 캐나다 매니토바주의 브랜든 월마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곰 접근 방지용 벨.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팔고 있었습니다. 곰 퇴치 스프레이도 있고, 사냥한 동물을 담아올 수 있는 큰 주머니도 팝니다. 앞에 사슴 비슷한 엘크가 그려져 있었어요. 대형 마트에서 파는 지역 물건은 재미있는 듯. 앵커리지 월마트에서는 랩에 말아놓고 파는 장작도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건 2004년 아이슬란드네요. 자작 네비게이션. 이 때 빌린 차가 토요타 야리스인데요, 이 차 정말 좋았습니다. 차도 조그맣고 기름도 적게 먹고 시속 140까지 씽씽 나갔어요. 맘에 들어서, 이 차 한국에 수입되면 내가 앞장서 산다고 생각도 했지요. 아이슬란드 링로드만 두 분이서 여행하실 거면 이 차면 될 것 같긴 해요. 


인랜드를 조금 들어갈 생각이 있으신 분들은 토요타 짐니Jimny 정도면 좋을 것 같고요. 짐니는 4륜이긴 한데 작고 가벼워서, 기름도 적게 먹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었습니다. 짐니도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이 차 한국에 수입되면 내가 산다, 고 했지요. 흑 사실은 수입 안 되고 운전석이 반대여도 갖고 싶어요. 차도 너무 예쁘다는... 음 혹시 누가 이 포스팅을 보시고 일본 수입차만 좋아하는 정신없는 된장녀로 몰아가실... 분들은 안 계시겠죠. 정작 저희 집은 몇년 전 자동차가 북극곰을 살리고 장렬히 한 줌의 고철로 산화한 뒤로 언제나 721번 버스를 제 차로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네, 피스 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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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에 다녀왔습니다! 런던에서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까지 17파운드짜리 비행기표가 있더라고요. 물론 배보다 배꼽이 커서 항공세와 공항이용료가 60파운드이긴 했지만, 뭐 이 정도면 쉽게 나오는 가격은 아니잖습니까?


그러나 실상은, ㅠㅜ 아이슬란드가 IMF 금융지원을 받은 뒤 놀라운 속도로 물가를 올렸더군요. 결국 현지 비용이 비싸, 비행기값 아낀 것은 티도 안 나게 됐습니다ㅠㅜ 어쨌거나, 아이슬란드 여행기는 차차 올리기로 하고, 일단 오늘은 레이캬비크 샷들을 올립니다.



아이슬란드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 블루라군 입니다. 바닷물과 민물을 2대 1의 비율로 섞고 그걸 지열로 데워요. 진짜 하늘색 물입니다. 그런데 깊이 1미터~1.5미터 정도여서, 우아하게 떠 있는 사람들이 알고 보면 땅 짚고 헤엄치고 있다는... 공항 가는 길에 있어서 아이슬란드 오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녀갑니다. 아이슬란드 외화벌이의 일등공신 정도 될까.



웁스! 아이슬란드가 또 일쳤어-티셔츠입니다. 지난해 이름 몹시 복잡한 화산이 폭발하면서 유럽 항공기가 발이 묶였었죠? 그거 재빠르게도 관광상품으로 만들었습니다. 놀랍습니다.




그 문제의 화산 이름은 참 쉬워요-티셔츠에요. 에이야프얄라요쿨 되겠습니다. 이거, 책도 벌써 나왔고, 화산재를 손톱만큼 담아 주는 엽서도 나왔고, 심지어 그 분화구까지 가는 관광 상품도 나왔더군요. 헐. 진정 관광 대국 되겠습니다.




아이슬란드 제 1의 커피체인, 아이슬란드의 홀리스, 카피타르. 아이슬란드엔 아직까지 스타벅스도, 커피빈도 없더라고요. 그러나, 카피타르와 카피 앤 티가 전국 주유소 구석구석까지 점령하고 있어서...ㅠㅜ 커피는 맛있어요. 아메리카노가 우리랑 좀 다르더라고요? 에스프레소와 일반 컵의 중간 크기 컵에 담아주는데, 으으 몹시 써요.




마트에 박스 째 쌓여있길래 사온 과자. 쌀 튀긴 것 같은데 초콜릿을 바른 건데,오오 맛있습니다. 코코넛맛도 있어요. 집에 올 때 세 상자를 사 왔다는...ㅠㅜ 보통 아이슬란드를 가면 초코바 니짜, 요구르트 스카이르를 먹나봐요. 음 니짜는 괜찮지만, 제 입에 스카이르는 넘 진해서...





역시 아이슬란드는 어업 국가. 편의점에서 생선포 간식을 팝니다. '등산갈 때 가져가세요'로 만든 한입크기 등산용 대구포도 있어요.




오렌지 주스가 맛있습니다. 이거 큰 통 사서 들고 다니면서 먹었어요. 동네 수영장에서 놀고 나와 한 컷. 그.. 수영장 사진은 못 찍게 돼 있어서 없는데요,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생활의 중심이 수영장이래요. 동네마다 따뜻한 물이 나오는 워터파크 비슷한 게 있더라고요. 거기서 몸 뎁히면서 이야기도 하고, 모임도 하고 그러나봐요. 저희가 갔을 때도 근처 학교 애들이 수영수업 받으러 왔더라고요. 입장료가 450아이슬란드 크로나 정도니까, 음음 블루라군의 15분의 1정도 되는군요.




포스 있지 않습니까? "일요일에도 영업"을 마치 "여기 오면 너 죽는다" 같은 글씨로 써 놨어요. 거기 급하게 쓴 '그리고 목요일도'도 넘 웃겨요. 무슨 공포영화 포스터 같이 생긴 친절한 영업 간판.




핀란드 국민 건축가 알바 알토가 설계한 노르딕 하우스. 노르딕 언어 도서관 겸, 행사장 겸으로 쓰더라고요. 아이슬란드 대학 근처에 있어요.





도서관이에요. 너무 예쁘죠. 천장이 엄청나게 높고 빛이 잘 들어와서 좋더라고요.




레이캬비크 시내의 채식식당이에요. 내스토 그루썸 인가 이름이 그런데, 좋더라고요.




메뉴 중 세 개를 골라 담으면 돼요. 빵은 갖다 먹고요. 아아 넘 맛있어서 자다가도 생각납니다. 저도 언젠가 저런 채식식당 차릴 겁니다. 불끈! 그런데 사진은 별로 맛 없어 보이네요ㅎㅎ

저는 아이슬란드를 다녀와서 지금은 런던에 있습니다. 여기서 몇년 공부를 하게 됐습니다. 운명이 이끌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해 두죠, 험험. 그래서 앞으로 블로그에도 일 이야기보다는, 여기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쓰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 전에 아이슬란드 여행기를 업뎃하고요. 넵, 넵. 네 약간의 근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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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여행기는 이번 회로 끝납니다. 다음회부터는 스웨덴을 쓸까 해요. 나름대로는 지구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 설정입니다. 이렇게 한바퀴를 돌면, 하루를 잃겠군요. -_-

어쨌거나 아이슬란드, 5년에 한번씩은 가 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레이캬비크 메트로폴리탄 호텔 침대에 누워 발가락으로 리모컨을 이리 저리 돌리다 보면 영국 방송 스카이 뉴스가 나온다. 그러나 스카이뉴스 세계 일기 예보에는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가 나오지 않는다. 물론 고개만 들어 창 밖을 보면 날씨를 알 수 있긴 하다. 어차피 흐렸다 개었다 때때로 비이기 때문에 일기 예보 쯤은 나도 할 수 있었다. 다만 좀 안됐다, 싶은 생각이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리에게야 어차피 이지만, 나름대로 대륙판을 공유하는 유럽에서도 아이슬란드는 잊혀진 변방의 저 먼 나라인 모양이었다. 아이슬란드가 가득 하트를 날리며 위성 접시로 영국 뉴스를 받아 보는데, 영국은 아이슬란드 방송은커녕 일기예보에 한 줄 넣어 주는 것도 홀랑 잊고 있는 것이다.
 

스코가 민속 박물관 으로 가는 길엔 괜히 대인배의 심정이 되어 아이슬란드를 걱정했다. 물론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내 마음을 알았다면 한국은 도대체 어디 붙어있는 나라냐며 어이없어 했을 것이다. 지난번 아큐레이리 우체국에서 한국에 보낼 우표를 달라고 했더니, 머리를 총총 땋은 우체국 직원이 5초쯤 뒤 난감한 얼굴로 물어본 적도 있다. “그거, 유럽에 있는 나라죠?” “그럼요. 터키와 몰도니아 사이의 산악 국가에요.” (엽서는 한달 뒤 무사히 도착했다.)


스코가 민속 박물관은 아이슬란드에 오기 전부터 가고 싶었다
. 전통 가옥부터 옛 주방도구, 공구, 화석, 자동차, 버스표까지 아이슬란딕 라이프의 모든 것이 수집, 전시돼 있는 아이슬란드 최고의, 그리고 유일의 민속 박물관이다. 장흥 같은 유원지에 가면 가끔 있는 그 때 그 시절박물관이지 싶었다. 가이드북이 제작된 당시에 85살이던, 그러니 지금은 이미 90세가 넘었거나 저 세상으로 가셨을 지도 모를 수집가 쏘르도르 토마슨 이 평생 되는 대로 다 긁어모아 만든 박물관이다.



(아이슬란드 전통 주택, turf house 입니다. 지붕에 풀이 나요)

이 토마스 할아버지의 수집벽과 포부는 상상 이상이어서, 전통 아이슬란드 마을 하나를 아예 이 박물관에 구현했다. 박물관 건물을 중심으로 교회, 학교, 창고, 옛날식 초가집, 근대 나무 주택, 현재 주택까지 건물을 옮겨 오거나 새로 짓고, 그 안에 학교면 학교, 교회면 교회 식으로 수집품을 채워 넣었다. 이쯤 되면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골치 아픈 사람이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 속을 뛰어 박물관으로 달려가면서 나는 이 영감님이 개량 바이킹 복을 입고 배꼽까지 내려오는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박물관 입구에서 거드름을 피우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토마슨 할아버지는 안내 창구 앞에서 풍금을 치고 있었다
. 백발은 성성했지만 짙은 회색 조끼에 감색 조끼 차림이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을 박자 맞춰 불러도 되는 걸로 보아, 모르긴 해도 아이슬란드 전통 민요인 것 같았다. 많지는 않았고, 십수명의 관광객이 하얀 레이스 커버가 씌워진 풍금 옆에서 박자를 맞췄다. 벽에 걸린 액자는 나라 문화 창달에 이바지한 바가 크다는 취지의 공로패였다. 그는 풍금에서 일어나더니 관광객들에게 고개를 까딱여 보이고는 가이드 투어 마이크를 꽂았다. 쭈뼛거리던 관광객들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


나는 전시물들이 꽤 마음에 들었다
. 아이슬란드를 달린 자동차와 기차 객차, 헬기 같은 것들을 전시해 놓은 창고도 나쁘지 않았고, 영국이나 독일에서 수입해 썼다는 200년 전의 찻잔이나 가구도 흥미로웠다. 자동차만 10대가 넘어서, 이걸 다 모은 토마슨 할아버지는 얼마나 대단한 재력가인가라는 생각을 한두 번도 아니고 세 번은 했다. 지붕에 풀이 돋아 오르는 전통 주택에서는, 내가 누워도 발목은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작은 침대를 보면서,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혹시 체구가 작았던 것일까 혹은 <백설공주>처럼 난장이 침대를 가로로 붙여 놓고 잤던 것일까 고민도 해 봤다. 엉뚱하게 아프리카 지도가 걸려 있는 학교 교실에서는 저요! 저요! 손을 들고 학교 놀이도 했다.


그러나 안경까지 꺼내 쓰고 들여다 본 것은 아이슬란드 전통 생활사 전시실이었다. 죄다 뼈였다. 아이 몸통만한 고래 척추 뼈는 한 칸을 떼어내 도끼 받침으로 썼고, 속을 파내 그릇으로도 썼다. 양 뼈는 갈아서 신발에 달아 스케이트로 썼고, 말 방광은 바람을 불어 넣어 습도계로도, 축구공 대신으로도 썼다. 이게 다 아이슬란드에 나무다운 나무가 없어서다. 절반은 툰드라에 절반은 화산 지형인 아이슬란드에는 나무랄 게 없었다. 잘 자라지도 않았고, 기껏 애써 자라봐야 화산 한번 폭발하면 그대로 묻혀 버리기 일쑤였다.아이슬란드 숲에서 길을 잃었을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일어서면 됩니다라는, 리얼리티가 번뜩이는 농담도 있다. 그러니 바다에 밀려 온 고래와, 생선과, 한 여름 겨우 돋는 귀한 풀을 놓아먹인 말과 양은 가시 하나 버릴 것 없는 존재였을 것이다.



(양뼈에 짚을 붙여 만든 장난감. 목각 말인형 비슷한 것 같습니다)

뼈로 만든 생활용품 중에서도 가장 애틋한 것은 아이들 장난감이었다
. 토마스 기차나 건담 로봇 대신에 아이슬란드 아이들은 말 뼈에 말린 건초를 조금 붙여놓은 말 인형을 갖고 놀았다. 레고세트 쯤은 될 농장 세트도 있었다. 말 뼈는 말, 양 뼈는 양, 개 뼈는 개. 이렇게 뼈들을 죽 세워놓고 농장이라고 생각하면서 놀았다는 거다. 농장 세트를 갖추려면 엄청난 수의 말과, 양과, 개가 필요했기 때문에 부잣집 아이들이나 농장 세트를 갖고 놀 수 있었다고 한다. 호두까기 인형으로 병정 놀이를 하던 유럽의 아이들이 아이슬란드의 친척을 찾아 왔다 으아앙 울음을 터트리지 않았을까.



(말뼈 소뼈로 만든 아이슬란드 레고 세트.)

먹을 건 더 심각했다
. 풀이 자라지 못하니 곡식이 없고, 곡식이 없으니 빵이 없고, 나무가 없으니 과일이 없었다. 먹을 것이라곤 바다에서 나는 생선밖에 없었다. 박물관 큐레이터는 벽에 걸린 대구포를 내려 통째 뜯는 시늉을 하며 삼시 세끼 이것만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했다. 대구포는 그래도 문명화 된음식이었다. 간식으로는 생선 머리의 뺨 부분을 뜯어 오물오물 씹었고, 상어를 삭혀 별미로 먹었으며, 생선의 눈알이나, 양의 창자나, 양의 뇌 같은 몬도가네음식도 즐겼다고 한다. 독일, 영국, 프랑스에서 온 관광객들은 으으, 라며 고개를 돌렸다. 나도 덩달아 혀를 내밀고 으으, 하려고 했는데,


잠깐
, 그게 다 우리도 먹는 것 아니었던가. 홍어는 삭혀 먹고, 소의 창자는 볶아 먹고, 생선의 눈알은 눈에 좋다고 꼭꼭 씹어 먹고 흑염소의 눈깔도 눈에 좋다고 꿀꺽 삼키면서 살아왔다. 호두까기 인형을 들고 놀던 노란 머리 유럽 어린이들이 나를 보고 으아앙 울며 엄마에게 달려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달려가 엉덩이를 때려줄까 싶었다. 어떻게 잡은 생선이고 어떻게 기른 양인데, 피 한 방울까지 아껴서 먹어야지, 요놈.


다음날 아침 레이캬비크 사가 박물관 에 갔더니 정말 대구포를 뜯어먹는 여자가 있었다. 사가 박물관은 아이슬란드 역사의 주요 17장면을 골라 밀랍 인형으로 만들어 놓은 전시관이다. 한마디로, 유물 한 조각 없이 과거를 관광 어트랙션으로 만들어놓은 곳이라 할 수 있겠다. 입장료도 더럽게 비쌌다. 미술관의 음성 가이드 같은 걸 나눠주는 데, 귀에 꽂고 설명을 들으며 순서대로 밀랍 인형을 보는 거다. 헤드폰에서는 으악! 푸시식! 챙강! 화르르! ! 꺄악! 같은 단말마가 민망하게 터져나왔다. 눈 앞은 더 난감했다. 땟국물이 졸졸 흐르는 치마를 입고 대구포를 뜯어먹는 여자는 그렇다 치고, 그 옆은 이제 막 불이 붙어 화형을 당하려는 수녀였다. 흑사병으로 죽어 나가는 시체와 해골들과, 장렬하게 순교한 주교의 목이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가장 화끈한 것은 동족을 살리기 위해 자기 한 몸 희생했다는, 말하자면 아이슬란드판 논개였는데, 자기 젖가슴을 칼로 잘라내기 위해 칼을 들이대고 있었다.


아아 이 북국에는
,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거친 정서가 있다. 예전에 노르웨이 오슬로의 스칸센 야외 박물관에서, ‘18세기 노르웨이 농가의 모습이라며 아버지는 술 취해 엎어져 있고, 아이는 바닥에서 엉엉 울고 있는 모습을 재현해 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이 과격한 분들의 조상 되시는 노르웨이 바이킹이 아이슬란드의 초기 정착자다. 한 뿌리에서 난 정서라 할 수 있겠다.


사가 박물관의 설명에 따르자면
, 아이슬란드에 처음 정착한 이들은 노르웨이 바이킹 이었다. 거기에 도저히 고향 땅에서 살 수 없게 된 범죄자나 도망자들이 인생 세탁하는 심정으로 세상의 끝을 찾아 아이슬란드로 왔다. 여자들은 대체로 아일랜드 북부와 주변 섬에 흩어져 살던 켈트 족이었다. 여자가 필요했던 초기 정착자들이 아일랜드로 침공해 들어가 잡아왔던 것이다. 그 중엔 아일랜드의 공주도 한 명 있었다. 노예로 잡혀 와 바이킹의 아들까지 낳은 그녀는 그제서야, 나는 사실 공주다, 라고 비밀을 털어 놓았다고 한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유럽의 선진 문화에 대해 경외심과 열등감을 가진 채 지난 1000년을 살아왔을 것으로 보인다.


100
년 전만 해도 채 5000명이 살지 않던 곳에서 고등 교육이나 문화의 부흥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난 놈들은 덴마크나 노르웨이의 덕망 높은 귀족이 알아보고 데려가 교육을 시켰다. 스카타펠 국립공원의 한 마을엔 공덕비비슷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이 마을 출신으로 덴마크에서 법학자가 됐다는 난 놈의 동상이었다. ‘우리 마을에서도 서울대 갔어요비슷한 거다. 서울대를 졸업해도 고향 마을로 돌아오진 않듯이, 이 유학파들도 좀처럼 아이슬란드로 돌아오지 않고 유럽에서 평생을 보냈다.



(먼 바다를 향한 바이킹 조형물. 레이캬비크 해안에 세워져 있습니다)

아이슬란드가 먹고 살 만하게 된 것은
20세기 이후의 일이다. 동력선이 개발되면서 어업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했다. 마침 북극 한류가 연안을 끼고 돌아 대구며 헤링이며 생선 하나는 풍부했다. 근근이 말 키우고 양 키워서 먹고 살던 이 작은 국가는 세계적 어업 전진 기지로 부상한다. 영국과 스페인에 생선을 수출하고, 납작한 생선들은 말려 멀리 일본으로 수출했다. 우리집 앞 마트에도 아이슬란드 날치알을 판다. 어민은 전 국민의 10%이지만 어업은 국내총생산의 90%. 심지어 동전에도 생선을 종류별로 그려 놓은 나라다. 그렇게 번 돈으로 아이슬란드는 유럽 곳곳의 부동산을 사 들였고, 세계 최고의 부자 국가 중 하나가 됐다. 그러나 2008년 미국발 부동산 금융 위기가 대서양 건너 아이슬란드를 타격하면서 모래성은 무너졌다. 아이슬란드는 결국 IMF에 긴급 금융을 신청하게 된다. 1000년 가난 속에서 힘겹게 살아오다 좀 살 만 해 지는가 싶더니, 다시 가난 속으로 곤두박질 친 것이다.


박물관 밖엔 전 방위로 우박이 쏟아지고 있었다. 휘청거리는 3단 우산으로 힘겹게 우산을 막아 냈다. 영리하게도 스프링을 달아 놓은 피자집 간판이 바람 따라 한껏 삐걱거리고 있었다. 피자와 음료 세트에 550 아이슬란드 코로나, 우리 돈으로 5000원쯤 된다. 나름대로 우리나라 IMF 때 나왔던 ‘1000원 자장면인 모양이었다. 귀와 입술에 피어싱을 한 두 청년이 건들거리며 피자집에서 걸어 나왔다. 쟤들도 우리처럼 일자리 찾기가 어려울까. 영국 가수 트래비스 노래를 틀어놓고 소극적 헤드뱅잉을 멈추지 않다 결국 세 번이나 계산을 틀리게 했던 렌터카 회사 직원도 우리처럼 미래가 갑갑할까. 저들도 우리처럼 물범을 살리기 위해 댐 공사 반대 운동을 하고, 경제를 파탄에 빠트린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일자리와 집값을 걱정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인이니까.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가, 하루 아침에 IMF에 긴급 금융을 지원받고, 제어할 수 없는 속도로 세계 자본주의 속으로 편입되는 한국에서 온 나는 더 이상 아이슬란드가, 케플라비크 공항에 도착하던 첫 날처럼 낯설지가 않았다. 그것은, 아이슬란드처럼 우리도 생선을 삭혀 먹고, 북어를 말려 뜯어먹으며 천년 넘게 살아왔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북극곰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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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갈매 2011.02.25 15: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아이슬란드의 전통주택은 <고고학의 모든 것>에서 본, 캐나다 어디엔가 남아있는 10세기 무렵 바이킹 족의 거주지와 매우 유사하구랴.
    에 또.. 동물뼈로 만든 놀잇감을 보니, 중국 내몽골 에벤키족 박물관에서 본 동물뼈로 만든 장기판 등도 생각나고. 나무가 없으니, 동물의 뼈를 이용해 생활용품을 만들었다는 생각을 그때는 못했을까..

    정말이지 이따금 한국과 다른 스케일의 지형, 기후가 있는 지역에 가면, 인간의 생활양식 뿐 아니라 사고관, 가치는 지형이나 기후 등 자연에 종속될수 밖에 없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한다니까.

    시리즈를 보니 나도 북반구를 따라 돌고싶구려..

  2. 2011.04.09 0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이세연 2011.07.12 0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코로나?~~~~ Krona 를 아무리 대충 읽어도 어떻게 코로나라고 읽을수 있는지.... 유치원생이 웃고 가겠네요

  4. 2013.10.16 14: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잘 읽었어요. 8월에 아이슬란드 다녀왔는데(영세민인 전 걍 링로드만 ㅠㅠ) 아직도 놓여나질 못해서 기웃거리고 정독했습니다. 전 5년에 한번은...힘들것 같지만 10년내 다시 가려구요 재미있게 잘 봤어요 ㅎㅎ



우리는 결국 인랜드로 가기로 했다. 그 전에 레이캬비크부터 들러야 했다. 포장도로만 정속운행기능을 몰래 내장한 털털이 피에스타 렌터카를 반납하고, 수직 절벽도 거침없이 오를 수 있는 4륜 구동 이스케이프를 빌렸다. 렌털비가 두 배였다. 카드를 내미는 손이 떨렸지만 레이캬비크 트리프티 지점 직원은 방긋 웃으며 냅다 채어갔다.


인랜드 어디를 갈 지도 어렵잖게 정했다. 전세계 네티즌이 앞다퉈 저 다녀 왔어요여행 인증샷을 올리는 플리커 닷컴에 인랜드를 검색했더니 영화 <반지의 제왕>의 모르도르 같은 풍경들이 계속 나왔다. 영화가 나온지도 10년이 다 되어가는 마당에 잊어가는 분들을 위해 다시 한 번 설명하자면, 모르도르는 어둠의 제왕 사우론이 오크와 우르크하이를 조종해 지배하는 어둠의 땅이다. <반지의 제왕> 풍경이라고 요정들이 잠자리 날개를 달고 팔라랑 거리는 이그드라실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막 구워낸 것처럼 시커먼 땅에서 김이 마구 솟아오르고, 화가가 깜빡 잊고 나무 그리는 것을 잊어버린 것처럼 벌거벗은 산들이 침입자를 막아서는 땅. 산 너머 저쪽에는 도저히 무슨 풍경이 나타날 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땅. 그래서 바닷가에 터를 잡고 살아가던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유령과 트롤만이 살고 있다고 두려워한 땅. 그러다 보니 4륜 구동 차량만 가까스로 여름 한철에 오갈 수 있는 땅. 거기가 아이슬란드의 지붕’, 인랜드다.


그 광활한 인랜드에서도 우리는
Landmannalaugar, 아마도 랜드만나라우가로 읽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 곳으로 가기로 했다. 여름마다 인랜드를 찾아와 사진을 찍는다는 정체불명의 유럽 네티즌이 플리커에 올린 사진에 꽂혔기 때문이었다. 적사장처럼 생긴 모랫빛 산이 압도적으로 저 끝까지 펼쳐져 있었다. 그 위에 포토샵으로 그린 것처럼 무지개가 걸쳐져 있었다. 일단 도로가 열려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랜드만날라우가, 랜들만날라우가, ‘낸들 만날라우가 하나 붙어 있다고 생각하면 발음도 쉽다며 몇 번 연습하고 산장에 전화를 했다.

저기, 낸들만날라우인가요?”

, 긴장해서 를 빼먹었다.

, @#$%입니다

역시, 여기를 뭐라고 부르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거기까지 도로 나 있나요?”

“4륜이신가요? 산 넘고 물 몇 개만 건너 오시면 돼요.”

호호호 당연 4륜이죠라고 자랑하고 싶은 걸 애써 참고 물었다.

방 있나요?”

방이야 있지만, 침낭 있으세요? 침낭 없으면 부르나이의 술탄이라도 재워줄 수 없어요. 대여 서비스? 그런 거 없어요. 여기 오시는 분이 그 쯤은 챙겨 오셔야지. 어머어머, 전기가 떨어지려고 하네. 그럼 이만.”


4
륜도 빌렸고, 값비싼 카메라도 빌렸으며, 한국에서부터 그 무겁다는 국민 삼각대도 짊어지고 왔으며, 트레킹을 하려고 고어텍스 등산화도 장만했고, 비에 대비해 레이캬비크 시장에서 어부 냉동창고 작업복도 샀으나 침낭이, 침낭이 없었다. 주말 벼룩시장이 열리려면 일주일이 남았고, 아이슬란드 대표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66’은 배낭여행자를 위한 초저렴 특가 침낭 같은 건 팔고 있지 않았다. 국제통화기금에서 돈을 꿔 올만큼 폭삭 망했으면서, 아직까지 반성의 기미가 없다, 이 나라는. 재워만 준다면 가져간 모든 옷을 다 껴입고서라도 잘 수 있는데. 여기까지 와서 침낭 하나 때문에 인랜드를 포기할 순 없었다. 일단 가 보는거야


아이슬란드 남부 링로드에서 랜드만날라우가로 가는
F225 도로를 탔다. ‘마지막 주유소라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물도 샀다. 칫솔부터 목장갑과 망치까지 모든 걸 다 파는 주유소 구석에는 불과 얼음의 땅 아이슬란드라는 아이슬란드 남부 공짜 지도가 있었다. 인랜드에 대한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빙하와 화산이 나란히 놓여있을 뿐 아니라, 가끔은 빙하 아래에서 화산이 폭발도 한다. 마그마 열기에 녹은 빙하물이 빙하 틈새를 타고 콸콸 흘러 내려와 빙하가 끝나는 곳에서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그게 빙하 홍수, 요쿨라훕이다. 아이슬란드 남부 스케이다라르는 1996년 요쿨라훕으로 도로 교량이 휠 정도로 큰 홍수를 겪었다. 스카타펠 국립공원 방문자 센터에 가면 당시 요쿨라훕의 동영상을, 근처 커큐백클로이스터 마을에 가시면 아이슬란드 주요 화산 다큐멘터리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같은 안내문이 붙어 있는 주유소를 뒤로 하고 우리는, 문명 세계를 떠났다. 눈 앞에는 막막할 정도로 검은 사막이 펼쳐져 있었다.


빙하호수 요쿨라훕이 궁금하세요? 클릭! 하늘에서 떨어지는 쓰나미 요쿨라훕


나는 이날, 그 동안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며 남발한 압도적이라는 말을 죄다 거둬들였다. 그 단어는 인랜드를 위해 아껴 놓아야 했었다. 무엇을 상상했든, 그 이상이었다. 수족관 바닥에서 건져 올린 것처럼 이끼가 덮인 돌들이 이어지다, 흰 눈이 설탕 가루처럼 내린 코코넛빛 언덕과, 마법사의 고깔모자 같은 뾰족한 산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또 나타났다. 갑자기 수백 수천마리의 양떼가 차 앞을 막아섰을 때엔, 눈을 비비고 이게 파타 모르가나는 아닌가 싶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파타 모르가나는 환상을 보는 일종의 북극 신기루다
. 갑자기 북극의 너무 차갑고 맑은 공기에 노출되면 거리 감각이 상실되는 형태로 종종 나타난다. 예전에 아이슬란드 북쪽 아큐레이리에서 비행기 한 대가 착륙하다 강물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을 봤다고, 그게 파타 모르가나라고 나는 우겨왔다. 이 양떼도 파타 모르가나가 아닌가 싶어 운전대를 잡고 있던 북극곰의 손을 꼬집으려고 했지만, 북극곰은 이미 양떼 속으로 뛰어들어 있었다. 평생의 꿈인 아이슬란드 목동이 되기 위해 양떼몰이 아저씨에게 인턴으로라도 써 달라 협상하려는 듯했지만, 그와 아저씨 사이엔 꾸역꾸역 양들이 360도 전방위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아무리 비포장도로라지만, 랜드만날라우가 산장까지 53킬로를 달리는 데 3시간이 걸렸다. 도저히 차창 밖으로 보는 데 끝내지 못하고, 문턱이 닳도록 차에서 내렸다 올랐기 때문이었다.



(자세히 보면 무지개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인랜드)

산장은 조그마했다
. 지리산이나 덕유산에서 볼 수 있는 국립공원 대피소 같은 통나무 집이었다. 사무실과, 숙소와, 화장실 겸 취사장까지 세 채였다. 노천 온천도 한 곳 있었는데, 아이슬란드의 전형적 온천답게 거짓말 같은 하늘색 물이었다. 몇 년 전 여기서 피부병을 일으키는 벌레가 발견됐는데, 구제하느라고 하긴 했지만 아직 남아있을지 몰라요. 온천할 분들은 알아서 하세요라는, 책임의식이 있다고 해야 할지 무책임하다고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안내판이 잉크가 물에 젖어 뿌옇게 된 채로 걸려 있었다. 기세 좋은 여행자 두 명이 웃통을 벗고 와다다다 달려와 온천물에 풍덩, 뛰어들었다. 역시 젊음은 피부병 따윈 두려워하지 않는다.


투숙객은 거의 없어 보였다
. 사무실 나무문을 열고 직원이 엉덩이를 흔들면서 다가왔다. “투숙하시게요? 2층 더블룸 보여 드릴까요? 어휴, 난방 다 돼서 따뜻해요. 침낭요? 저희 것 남는데 그냥 쓰세요. 오호호호.” 역시, 전화 문의는 많아도 투숙객은 거의 없나보다. 전기가 안 들어온다기에, 돌아가려는 듯 오버액션을 취하자 사무실 전원을 잠깐 빌려 주겠단다. 전봇대가 들어올 리 없는 이 산장은 태양열을 모아서 오후 730분부터 밤 10시까지만 전기를 공급한다. 당연히 인터넷도 안 된다. 부엌 오븐은 가스로 작동한다. 부엌에서 양초를 하나 훔쳐 19세기 남극 원정대가 된 심정으로 비장하게 일기를 썼다. 북극곰은 비상용 손전등을 켜고 랜드만나라구아 트레킹 지도를 연구했다. 직원한테 들켜 혼날까봐 창문에 담요를 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산장 밖으로 보이는 풍경. 수채화는 아니고..., 유채화 같은 풍경 아니겠습니까?)

다음날은 산장 옆 산을 트레킹했다
. “오늘 오를 산이라며 북극곰이 엄숙하게 손가락을 들어 해 뜨는 저편을 가리켰지만, 시멘트를 찌그러진 피라미드 모양으로 잘 쌓아 올려놓은 흙더미밖에 보이지 않았다. 300미터만 올라가면 된다고, 트레킹 가이드에도 1시간이면 올라갈 수 있다고 나와 있었다. 그런데 그 등산로라는 게, 정확히 피라미드의 빗변 위를 하염없이 걸어가야 하는 것임을 20분쯤 오른 뒤에야 깨달았다. 한 사람이 겨우, 그것도 미스코리아처럼 일자로 걸어가야 하는 길이었다. 빗면에는 풀 한 포기 나 있지 않았다. 내 발에 채인 돌들이 데굴데굴 굴러서 저 멀리 아득한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한 발짝이라도 헛디디면 내가 저 돌 신세가 될 판이었다.


새삼 아이슬란드가 얼마나 대담한 나라인지
, 피부병 뿐 아니라 관광객의 생명도 관광객 스스로에게 맡겨 놓은 나라임이 저절로 깨달아졌다. 유럽 최대의 폭포라는 데티포스에도 울타리 하나 없어 폭포 가까이 다가가 그 물에 손도 씻을 수 있는 나라 아니던가. 부들부들 다리를 떠는 내게 북극곰은, 여긴 모래밭이어서 떨어져도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위로로 보기 어려운 위로와 격려를 보냈다. 도대체 누가 이런 데 길을 내 놓은 것인지 그 사람을 원망하고, 이걸 등산로라고 실어놓은 트레킹 가이드 편집자를 원망하고, 이 길을 따라나선 나를 원망하고, 떨어져봐야 죽기밖에 더 하겠냐는 말을 문자 그대로 이해까지 했지만, 아직도 올라야 할 산은 까마득했다. 이 봉우리가 정상인가 싶으면 저 봉우리가 나타나고, 저 봉우리에 올랐다 싶으면 또 다른 봉우리가 고개를 내밀었다. 결국 오른 정상은 해발 900미터.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이었다. 어제 오후 우러러보던 랜드만나라우가의 복숭아빛 첩첩산이 발 아래 펼쳐져 있었다. 여기는 인랜드다, 사람아 너는 내려가라, 고 풍경은 웅변했다. 나는 그렇게 들었다. 마침 눈과 안개가 섞인 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등산로 표지판입니다. 그 뒤로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던 ㅠㅜ)


감당할 수 없는 적을 만난 병사들처럼
, 우리는 퇴각하기로 결정했다. 남측으로 돌아 랜드만날라우가를 빠져나가는 F208번 도로의, 역시나 불가해한 풍경이 발목을 잡았지만, 서둘렀다. 그렇게 쉽게는 보내줄 수 없다는 듯, 모퉁이를 틀 때마다 출렁이는 강물이 나타났다. 자동차의 기어를 1단으로 낮추고, 속력을 다해 건너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발목이 잠기는 얕은 개울부터, 자동차의 바퀴가 다 잠기는 개울까지 건너고 또 건넜다. 자동차가 강바닥의 한가운데를 뚫고 달릴 때면 물방울이 내가 앉아 있는 조수석 유리창까지 튀어 올랐다. 산장에서 만난 네덜란드 청년들은 두어 개만 건너면 된다고 했는데, 십여 개를 건넜는데도 또 개울이 나왔다. 네덜란드에선 자동차 차체가 푹 빠지지 않는 한 개울로 안 치는 건가, 얘들이 등산로 입구에서도 조금만 더 가시면 됩니다고 태연히 말하는 동료 등산객 모드로 말한 건가, 아니면 땅이 변한 건가.



(조심해서 강을 건너세요! 라는 안내판과 강 건널 준비를 하고 있는 우리의 이스케이프)

아이슬란드에서 강물 건너기 동영상-안 까먹으려고 하는 블로그가 안 까먹고 알려줍니다


마지막 개울을 건널 때 쯤에야 땅이 변한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혹시 오늘 아침 내린 눈에 개울물이 불어난 걸까. 잊을 만하면 화산이 폭발하고, 홍수가 나고, 강물이 생겼다 없어지고, 지각이 서로를 밀어내는 인랜드에서는 등고선과 갈림길을 꼼꼼히 표시한 대축적 지도가 의미가 없다. 그래서 길도 났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 또 난다. 포장도로로 들어서자 자동차 소리가 이상했다. 아무래도 아까 끝에서 두 번째 강을 건너다 부속을 하나 망가뜨린 것 같다.


Posted by orc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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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세연 2015.06.21 1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부좀 제대로 하시지....인랜드라니요... 당췌 내가 모르는 아이슬랜드 지명도 있나해서 봤더니 내륙지방을 말씀하시는거였구요..

    아이슬랜드 내륙지방을 부르는 말은 인랜드가 아니라 하이랜드입니다... 기자라고 하시는분이 여기는 가본사람이 없을거라는 거만한 태도로 글쓰시는거에 비해서 성의가 없으시네요.

    그리고 말씀하신 그곳은 아이슬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중에 하나이고 또 세계 3대 트레킹코스에 뽑히는 유명한 지역인데 뭐 혼자만 다녀온것처럼 자랑하시는 것도 그렇네요.

    • 홍성균 2011.07.24 15: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을 참 감정적이고 교양 없이 쓰셨네요. 최기자님한테 억하심정 있는 분인가요? 글을 보니 거만하고 한심하게 느껴지는 건 이세연씨네요...



후사비크에는 가로등에 점점이 불이 들어오는 저녁 무렵 도착했다. 민박집 주인인 엄마는 딸을 보러 갔다며, 70년대 미국 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단발 파마머리 아주머니가 나는 집을 봐 주러 와 있을 뿐이라며 문을 열어줬다 (즉 본인도 딸이다). 7년 전에도 후사비크에서는 민박집에 묵었다. 호텔이랄 게 없는 작은 바닷가 마을이다. 창틀에 올려놓은 가족들의 사진과 꽃 화분을 보니, 아무래도 이 집이 그 때 그 집 같았다. 창틀을 식탁삼아 도너츠와 커피를 놓고 먹은 기억이 났다.


골목에 나와 보니 그러나
, 집집마다 창틀에 화분이 올라와 있었다. 모두 민박집이었다. 딱히 간판이랄 것도 없고, 그냥 가정집 빈 방에 여름 한 철 손님을 받는다. 분필로 현관문에 ‘X’ 표시라도 그려야 하는 것 아닌가 심각하게 고려할 즈음 주유소와 편의점이 나왔다. 여기서부터 바닷가를 따라 식당, 여행사, 성당, 박물관, 문 닫은 보너스 마트, 공구점 같은 가게들이 쭉 나온다. 성당 맞은편 통나무집은 고래 관광 매표소다. 편의점에 분필은 없고, 콜라와 맥주 한 캔을 샀다.



(점점이 불이 들어오는 후사비크의 저녁 풍경. 빙하가 쌓인 산들이 오르카 등짝 같습니다)

후사비크고래를 보러 온 길이었다
. 예전부터 고래가 보고 싶었다. 누구는 현빈을 좋아하고, 누구는 ‘2PM’을 보고 싶어하는 것처럼, 나는 그냥 고래가 보고 싶었다. 기왕이면 송대관이나 설운도보다 공유나 이선균이면 좋겠듯이, 기왕이면 범고래 오르카면 좋을 것 같았다. 몸에 흰 얼룩이 있고, 지느러미가 우뚝한 대형 고래다. 다른 고래를 잡아 먹어서 킬러 웨일이라고도 하는데, 얼마 전 미국 올랜도 씨월드에서 조련사를 익사시킨 것도 바로 이 오르카였다. 영화 프리윌리의 그 고래다.



-오르카는 왜 조련사를 공격했을까.
Dying to entertain you
-조련사를 익사시킨 돌고래 틸리컴 이야기- 안까먹으려고 쓰는 블로그가 안 까먹고 알려주기를 클릭,
-돌고래쇼를 더 봐야 할까요. 영국엔 돌피나리움이 없다



프리윌리의 주연, 오르카 케이코의 고향이 바로 아이슬란드다. 아이슬란드 앞바다에서 잡혀 미국으로 팔려간 케이코는 각종 고래 쇼를 전전하다 헐리우드까지 진출하게 된다. 영화 속 윌리는 방파제를 뛰어 넘어 자유를 얻었지만, 현실 속 케이코는 영화 촬영이 끝난 뒤 수족관 속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 황당한 아이러니에 전세계가 프리 케이코(케이코를 풀어주세요)’ 캠페인을 벌였다. 결국 케이코는 자유를 찾았지만, 일평생 야생에서 한 번 제대로 살아보지 못했던 이 고래는 자꾸만 인간을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케이코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두 달 동안 먹지도 쉬지도 않고 헤엄을 쳐 북극해를 건너 노르웨이에 닿았다. 그리고 며칠을 시름시름 앓더니 죽고 말았다. 후사비크 고래 박물관에는 케이코의 안타까운 사연이 패널로 전시돼 있었다. 대학생들이 봉사활동 나온 김에 벽화라도 그려 놓고 간 것처럼 생긴 컨테이너 가건물이지만, 후사비크 고래 박물관은 유네스코로부터 상도 받은 세계 최고의 고래 박물관이다.



(정박되어 이는 두 척이 고래 탐조선이에요. '오늘은 안하니 내일 오세요')

고래 관광선은 이틀 뒤에야 탈 수 있었다
. ‘미리 공부를 하고 가겠다며 고래 박물관에서 종류별 고래 골격과, 고래의 한 평생과, 중세 괴물과 현대 고래의 대차 대조표까지 꼼꼼히 다 읽고 매표소로 갔지만, 후사비크 제 1의 고래 관광 여행사 노스 세일링날씨가 개어야 표를 판다며 기다리라고 했다. 박물관 기념품 가게에서 아이슬란드에서 보이는 다양한 고래들티셔츠를 사고, 길 건너 일반 기념품 가게로 건너가 웨일 와칭 가이드를 훔쳐보고, 텅 빈 성당에 들어가 고래 보게 해 달라며 간절히 기도까지 올렸지만, 후사비크 제 2의 고래 관광 여행사 젠틀 자이언트사람도 없고 고래도 안 보이니 내일 다시 오라며 매정하게 셔터를 내렸다. 3의 여행사는 없다. 이 두 업체가 후사비크 고래 관광을 맡고 있다. 고래가 꽤 잘 보이는 아이슬란드에서도 고래 관광 하면 후사비크다. 아이슬란드 고래 관광의 90%가 여기서 이뤄지고, 고래 관광객의 95%가 고래를 본다.


다음날 아침 노스 세일링의 고래 탐조선을 탔다. 아무래도 우리가 이 배의 평균 연령을 힘겹게 끌어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관광버스로 온 노인 단체 관광객 팀에 끼어 있었다. 무릎을 두드리며 배에 오르던 할머니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빛의 속도로 탐조복을 챙겼다. 3시간 동안 배 위에서 고래가 오시기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바지부터 모자까지 우주복처럼 하나로 연결된 탐조복이 준비돼 있다. 역시 노스 세일링친환경 방침이 있는 업체다. 탐조복은 십수년 째 재활용한 듯 솜도 튀어나오고 얼룩도 져 있었다. 다리 한 쪽에 두 다리가 다 들어가고도 남을 큼직한 탐조복을 질질 끌고 갑판을 구경했다. 배도 30~40년 된 낡은 포경선을 개조해 만들었다. 후사비크는 아이슬란드 11개 포경 기지 가운데서도 가장 고래를 많이 잡던 곳의 하나였다. 지금은 완전히 고래 관광으로 전환했다. 노스 세일링도 공공연하게 포경을 반대하며, 수익금의 일부를 국제 고래 보호 프로그램에 기부한다. 고래 박물관 연구자도 수첩과 쌍안경을 들고 고래 탐조선에 매번 동승한다.



(망망대하를 떠도는 경쟁사의 고래탐조선. 배가 거의 가라앉을 듯 갑니다)

그 많다는 포포이스 돌고래도
, 파일럿 고래도, 관광객 앞에서 펄쩍펄쩍 뛰어 오른다는 혹등고래도 모두 파업 중이었다. 2시간을 꼬박 망망대해를 떠돌았으나, 고래는커녕 암초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눈이 빠질 때 쯤 되자 머리에 빙하를 인 먼 산도 오르카처럼 보였다. 심심한 갈매기들만 배를 따라 날아오다 수면 위로 내려앉았다. 새우깡이 없어 아쉬운 대로 아이슬란드 초코바 니짜를 흔들어봤지만 갈매기들은 코웃음만 쳤다. 고래 목격 확률 95%라는 주장이 한국 기상청의 일기 예보 적중도 90% 주장과 비슷한 것임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당사자의 주장과 일반인의 체감 사이에 엄청난 거리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디든 한 방울이라도 비가 오면 예보가 맞은 것처럼, 고래의 등짝이든 지느러미든 물줄기든 뭔들 한번 어렴풋하게라도 보이면 고래를 본 거다. 그러나 이대로는 고래 그림자도 보기 어려워 보였다.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우리는 갑판 아래 선실로 내려가 어깨를 기대고 잠시 졸았다. 고래가 나타난 것은 그 때였다.


이렇게 쓰면 드라마틱해 보이지만, 실상은 갑판으로 올라와 잠시 하품을 하는 동안 마스트에서 망을 보던 가이드가 “3시 방향!”을 외친 것이었다. 거무스름한 그림자 비슷한 것이 비쳤다. 겨울 아침 종각역 비둘기떼처럼 오종종 모여 떨던 관광객들이 일제히 3시 방향으로 카메라를 들이댔다. 수면 위로 잠시 삼각형 모양의 지느러미가 보였다. 밍크, 일 것이다. “11시 방향!” 관광객들이 일제히 반대쪽 갑판으로 뛰었다. 배도 덩달아 기우뚱거렸다. 그러나 고래는 이미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배 아래로 잠수해 이 쪽에서 저 쪽으로 옮겨간 뒤 유유히 사라졌을 것이다. 북극곰이 가이드의 메가폰 소리에 선실에서 튀어나와 갑판으로 뛰어올라올 만큼의 시간이었다. 밍크 고래의 등짝 2초씩 두 번. 그것이 그날 우리가 본 고래의 전부였다.



(고래는 못 보고, 돌아오는 길엔 시나봉과 몹시 단 코코아를 나눠줍니다. 줄을 서서 먹고 있는 관광객들)

고래는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첨예한 환경 이슈다
. 아이슬란드는, 먹지도 않으면서 매년 100여마리의 고래를 잡는 포경 국가다. 주로 밍크를 일본으로 수출한다. 노르웨이, 일본과 함께 사실상의 상업 포경을 허용한 몇 안 되는 국가여서 전 세계 동물 운동가와 환경 운동가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의 모라토리움 선언에 따라 공식적으로 포경을 중단 했지만 계속 잡았다, 말았다 하다가 2007년엔 아예 과학적 목적의 포경을 허용했다. 그러나 이번엔 이미 포경에서 고래 관광으로 전환한 후사비크와, 아이슬란드 관광 업계와, 전세계 여행자들의 항의가 쏟아졌다. 더 많은 고래를 살려서 보여줘야 하는 고래 관광과, 고래를 사냥해서 줄이는 포경이 공존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실제로 그 해 아이슬란드의 관광 수입은 감소했고, 아이슬란드 정부는 수출용 고래는 안 잡고 내수용 고래만 잡겠다는 애매한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고래 고기가 딱히 인기있는 것도 아니어서, 내수용 고래는 좀처럼 팔리지 않고 있다.


다음날 우리는 흐발 피요르드 포경 기지로 잠입 여행했다. 흐발 피요르드 포경 기지는 현재 아이슬란드에서 유일하게 고래를 잡아서 해체하는 곳이다. 상업포경이 재개되면서 20년 된 낡은 기지의 먼지를 털어 다시 돌린다. 멀리 포경 기지가 보이는 곳부터 참을 수 없는 이상한 냄새가 공기를 타고 흘러왔다. 에스키모들이 고래를 잡아 뼈를 세워놓는 알래스카 해안의 고래 비린내도 아니고, 고래 고기의 냄새도 아니었다. 동물 기름을 34일쯤 끓여서 나오는 것처럼 메스꺼운 냄새였다. 자연스러운 관광객처럼 보여야 한다며, 실제로 관광객이지만, 우리는 브이자를 그리며 차례로 사진을 찍었다.



(철조망 안 쪽이 고래 기지에요. 바다도 손수건만큼 보입니다)

이 고래 기지는
1986년 포경에 반대하는 환경운동가로부터 테러를 당한 바로 그 곳이다. 그린피스 활동가 두 명이 몰래 잠입해 포경선에 구멍을 내고 유유히 사라져 아이슬란드 포경 업계를 국제 망신시켰다. 혹시라도 붙잡혀 고문 받다 차가운 레이캬비크 감옥에서 일평생을 썩게 될까봐, 우리는 수백 미터 거리에서 망원 렌즈로 몰래 사진을 찍고, 혹시 직원이 물어보면 가이드북에 있어 신기해서 와 봤다고 명랑하게 말하기로 입도 맞췄다. 론리플래닛 가이드북에 진짜로 한 줄 나오긴 나온다. 그러나 이 고래 기지는 그 뒤로도 보안에 있어 별 반성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공장 앞마당의 직원은 우리를 흘낏 보더니 호수로 물을 뿌려 마당을 쓸어냈다. 분홍빛 살점이 떨어져 있었다. 고래였다. 혹시라도 어제 우리 배 밑을 지나갔던 그 밍크일까. 혹시 그 아이의 친구나 동생은 아닐까. 바람에 진한 비린내가 실려와, 한 손으로 다시 코를 움켜쥐었다.



(창살 속으로 손을 넣어 몰래 찍은 고래 해체장 작업 풍경. 고래야 돌아와)


Posted by orc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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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kygirl 2011.02.09 02: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프리윌리의 고래이야기는 정말 슬프네요. 고래 대차대조표에서 빵 터졌습니다 ㅋㅋ 글과 사진 정말 잘 보다 갑니다~




아이슬란드 렌터카에는 두 종류가 있다. ‘부자렌터카와 가난뱅이렌터카다. 공학적으로는 '4륜'과 '2륜'이다. 4륜은 아이슬란드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있지만 2륜은 포장도로만 달릴 수 있다. 그런데 그 포장도로가 아이슬란드를 한 바퀴 도는 일종의 해안도로, 링로드밖에 없다. 잊을만 하면 화산이 활동하는 내륙은 비포장이라기엔 한없이 오프로드에 가까운 길이 나 있다. 비가 한번 오면 길이 바뀐다. 새로 파인 구덩이도 지나가고 강물도 건너가야 한다. 도로 이름 앞에 ‘F’가 붙어 있으면 ‘Four wheel’, 4륜 전용이란 이야기다. ‘F285’-얼마나 여행자의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이름이란 말인가.


그러나
4륜 렌터카는 2륜의 2배값이었다. 레이캬비크에서 남쪽으로 가는 S1번 도로를 달리고 있던 우리의 빨간색 피에스타2륜이었다. 렌탈 계약서에는 “F도로를 절대 달리지 않는다도 들어 있었다. 털털거리는 소리 만큼은 4륜 못지 않았다. 시속 90킬로 정속으로 달리고 있는 우리 옆으로 부자’ 4륜차들이 빵빵거리지도 않고 추월해 지나갔다.



(아스팔트 도로만 정속으로 다리는 우리의 피에스타)


햇살과 비와 먹구름이 교대로 오가는 날씨였다
. 조수석에는 햇살이 비치고, 운전석 창 밖으로는 이름도 알 수 없는 실폭포들이 떨어지고, 차창 정면으로는 비가 뿌려대는 진기한 기상 현상들도 나타났다. 먹구름 아래 햇살이 낮게 스며들어 들판의 풀과 이끼들이 반짝거렸다. 카메라 플래시를 아래에서 터트린 것처럼 땅은 밝고 하늘은 어두운 풍경, 그 음산한 아름다움이 아이슬란드의 정서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멀리 차창 밖으로는 화산 헤클라가 따라왔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인지, 그 경계가 희미한 바다. 아릅답다고 생각합니다)


모자, 혹은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 활화산은 아이슬란드의 심장쯤 되겠다. 8세기부터 분출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헤클라1104년 크게 폭발해 근처 바이킹 거주지를 싹 쓸어버린 뒤 지금까지 적어도 15번은 분출했다. 100년 동안 줄기차게 연기를 뿜어대던 헤클라가 1947년 마지막 김을 힘겹게 뿜어내고 휴식에 들어가자, 사람들은 이제 드디어 헤클라가 활동을 중단했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 화산은 1970년 다시 한번 크게 폭발한 뒤 10년 단위로 폭발하고 있다. 다음번 폭발은 2010년이다. 헤클라는 16세기에 지옥의 입구로 결정됐다고 한다. 사람들이 모여 여기는 지옥의 입구, 땅땅땅’, 하고 정했다는 게 어이없지만, 그렇게 믿었을 만은 하다. 화산의 검은 연기와 재가 언제나 덮고 있어 헤클라의 정상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따금 까마귀떼라도 날아들면 지옥의 전령처럼 보였을 것이다.

 

지금은 씩씩한 트레커들이 정상까지 열심히 기어 올라간다. 8시간이면 지옥의 입구까지 간다. 정상에는 빙하가 있지만 화산의 열기 때문에, 혹은 8시간 산을 타서 온 몸에서 열이 나서, 전혀 춥지가 않다고 전해진다. 그 헤클라로 가는 입구 헬라에서, 우리는 계속 달려야 했다. 오직 4륜차만이 헤클라 입구로 갈 수 있다. 뒤따라오던 은색 부자차가 보무도 당당하게 좌회전 깜빡이를 켰다. 앞머리를 단정하게 자른 것처럼 착하게 생긴 아이슬란드 말들이 풀을 뜯다 말고 가엾다는 듯 우리를 쳐다봤다. 몇 시간 뒤 라키입구에서도 우리의 피에스타는 잠시 주춤하다 직진할 수밖에 없었다. ‘라키19세기 후반 폭발해 지구 반대편 일본의 농작물에까지 피해를 입혔다는 악명 높은 화산 아니었던가.


이대로 우리는 기름 떨어질 때까지 바닷가만 달려야 한단 말인가. 다음날 바닷가 마을 비크 뒷동산에서 자동차 성능 시험을 해 봤다. 원래 차란 것이 웬만한 곳은 달릴 수 있게 만들어진 게 아니었던가. 그러나 피에스타의 바퀴는 자갈밭 언덕을 채 20미터도 올라가지 못하고 헛돌았다. 엑셀을 밟으니 아예 푹 빠졌다. 결국 조용히 후진으로 언덕을 내려왔다. 이 자동차는 아이슬란드 렌터카 협회가 2륜차로 F도로를 달리지 못하게 하려고 개조해 내놨음에 틀림없다.


비크
는 작고 예쁜 마을이다
. 여기서 작다는 개념이 다른데, 아이슬란드 인구가 30만명이고 4분의 3이 레이캬비크에 산다. 나머지 대부분이 제2의 도시 아큐레이리와 제 3의 도시 에길스타디르에 산다. 그리고 나머지가 손으로 집어 휙 뿌려놓은 것처럼 점점이 바닷가에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다. 많으면 수백 명, 적으면 수십 명이 한 마을이다. 아이슬란드의 여느 바닷가 마을처럼 비크도 식당과 수퍼마켓도 겸하는 주유소가 마을의 중심지다. 커피숍을 겸해 여름에만 문을 여는 호텔이 한 곳 있고, 교회와 호스텔도 하나씩 있다.


이 작은 마을 앞바다는 미국의 한 여행잡지가 선정한
세계 10대 해변에 들어간다. 모래사장이 새카만, 몹시 보기 드문 검은 해변이어서다. 아스팔트를 갈아 뿌린 것 같은 새카만 해변 끝에는 비크가 자랑하는 기암 괴석 3점이 있다. 딱 애국가 화면에 나오는 촛대바위여서, 코끼리 바위, 신선암, 형제봉, 곰바위 등 현무암 해안 절경에 익숙한 우리 두 한국인 여행자의 눈길은 끌지 못했다.



(비크 전경. 언덕 중턱에 빨간 지붕의 교회가 있어요)



(세계적 사진작가의 포스를 풍기는 북극곰의 고독한 모습)


비크에서는 호스텔에 묵었다. 다음날 흐볼에서도 호스텔에 묵었다. 그 다음날 베루네스에서도 호스텔에 묵었으며 다음 다음날도 다음 다음 다음 날도 호스텔에 묵었다. 가난뱅이여행자이기도 했지만, 대부분 호스텔이 유일한 숙소였다. 아이슬란드엔 아직까지 쉐라톤도 래디슨 호텔도 없다. 여름엔 학생들이 빠져나간 학교 기숙사에 에다 호텔 체인이 깃발을 걸고 영업하지만, 그 외의 계절엔 전국에 30여개 점점이 흩어진 호스텔밖에 없다. 냄새나는 양말을 벗어 거는 독일인 트레커도, 미국 패키지 노인 관광객도, 역시 부자나라에서 와서 번쩍이는 4륜차를 끌고 다니던 일본인 커플도, 하루에 세 번씩 네놈은 차도 아니야라며 자동차를 구박하던 우리도 모두 평등하게 호스텔에 묵었다. 흐볼 호스텔 부엌에서는 낮에 트레킹을 하다 마주친 여행자들이 파스타를 끓이고 수프도 데우고 있었다.


호스텔 브로셔엔
식사 제공 가능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호스텔 주인 아줌마는 방 키를 주면서 그제서야 여름에만이라고 덧붙였다. 햇반과 3분 카레를 데우고, 물만 부으면 되는 냉동동결건조 김치찌개로 저녁을 차렸다. 한국에서 고이 공수해 온 김치찌개는 그러나 정말이지 아무 맛도 없었다. 썰매의 가죽끈을 끓여 국물을 마셨다는 프랭클린 선장과 북극탐사 대원들도 이 김치찌개는 꿀꺽꿀꺽 삼키지 못했을 것이다. 유효기간이 지난 김치 사발면에서 빼온 것 같은 김치를 질겅질겅 씹었다. 그 때 종일 마주치던 일본인 커플이 우아하게 두 손 가득 노란 비닐 봉지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섰다.


두 사람은 파스타를 만들어 식탁에 앉더니 와인잔에 콜라를 붓고 짠
, 하고 건배를 했다. 북극곰은 그들의 식탁 위에 놓여 있는 1.5리터 콜라병을 보며 꿀꺽 침을 삼켰다. 나도 꼴깍 침이 넘어갔다. 콜라 한 잔이면, 종일 젖었다 말랐다 퉁퉁 불은 발가락도, 얼었다 녹았다 추위에 떨었던 몸도 다 풀릴 것 같은데. 비포장, 그러나 피에스타가 간신히 기절하지 않을 정도로는 나 있는, 도로를 따라 3킬로를 들어와야 하는 흐볼엔 호스텔과, 주인 집과, 창고로 추정되는 건물 한 채밖에 없었다. 그 흔한 콜라 자판기도 없었다. 오후 7, 가장 가까운, 25킬로 떨어진 키쿠백야르클로시어에 있는 보너스 마트도 이미 셔터를 내렸을 시각이었다.


흐볼 호스텔 창문에는 한 사람이 거울처럼 투명한 바다 위에 서 있는 사진이 붙어 있었다
. 칠레 우유니 소금 사막처럼 하늘과 사람이 반으로 접었다 편 것처럼 바다에 비쳐 보인다. 육지가 둑이 되어 만들어진 이 얇고 아름다운 내해의 이름은 잉골프 쉐파디 라군 이었다. 자동차로는 갈 수가 없다. 그래서 여름에만 동네 농부가 돈을 받고 트랙터에 관광객을 태워 데려간다. 하늘이 파랗고 햇볕이 쨍쨍해야 저렇게 보인다는데, 다음날 아침에도 역시 비가 내렸다. 동네 농두 아저씨네 집 앞 노란 트랙터에도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차를 돌려 다시 링로드로 들어섰다.


 
(스카타펠 국립공원. 하트 모양의 호수입니다. 저 끝의 하얀 건 빙하에요)

트집을 잡자고 작정해서 잡는 그런 불평을 제외하면
, 아이슬란드는 아름답고, 여행하기 좋은 곳이었다. 브루나이의 술탄도 눈을 질끈 감아야 여행할 수 있을 만큼 비싼 곳이었다지만, 경제 위기 이후는 적어도 숙소와 비행기 값은 견딜만한 수준이 됐다. (아직까지 음식점과 여행지의 크고 작은 뮤지엄과 여행사는 좀 더 호되게 위기를 겪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렌터카는 편리했고, 호스텔은 편안했다.



(요쿨살롱의 수륙양용 관광차)


(요쿨살롱 입구 카페에서 파는 생선 수프. 맛있다고 합니다만, -_-)



(빙산들이 둥둥 떠 있는 요쿨살롱입니다. 꽤 괜찮아요)


스케이드라르산두르를 가로질러 왼쪽 차창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빙하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며
, 우리는 잠깐, 알래스카에 넋이 팔려 아이슬란드를 버려 두었던 지난날들을 짧게 반성했다. 스카프타펠 국립공원 에서 요쿨살롱 까지 100킬로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빙하 드라이브 루트였다. 아이슬란드 남부를 덮고 있는 바트나 요쿨의 손가락이라는 작은 빙하들은 끊어지면 또 나타나고 끊어지면 또 나타났다. 빙하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어떤 빙하들은 가까이 다가가, 빙하 앞에 고여있는 호숫물에 발을 담글 수도 있었다. 요쿨 살롱에서는 노란색 수륙양용 오리버스를 타고 수십 수백 개의 빙산으로 다가갔다. 짙은 먹구름 사이로 햇살이, 잊고 있었다는 듯 비쳐들면서, 빙하가 파랗게 빛났다. 얼음을 건져 조금 잘라 씹어 먹었다.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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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1.20 1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두번째 사진... 환상적이네요.

  2. skygirl 2011.02.09 02: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너무 재밌어요 ㅋ 아이슬란드 검색하다 왔어요 가보고 싶은 곳이네요 :)

  3. Ray 2011.03.03 05: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재밌네요 ㅋㅋㅋ
    혹시 책으로도 출판이 되었나요? 아님 혹시 계획은 없나요?

  4. Ray 2011.03.11 2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럼요 기꺼이 사드리고 광고까지 할 생각인데요 ㅋㅋ ^^


아이슬란드에는 한국 사람이 10명 산다. 2004년에엔 7명이었다.외교통상부 홈페이지, 인터넷, 아이슬란드 금융위기 취재를 다녀온 동료기자 등등의 말을 종합하면 유학생 1명과 일가족이 살다가 지금은 남자 셋, 여자 일곱 명이 산다. 어쨌거나, 아주 적은 수다. 아이슬란드 인구가 30만명 밖에 안 되긴 하지만, 우리 동포들이 남태평양의 외로운 섬, ‘축’ 같은 곳에도 봉숭아꽃을 심고 일가를 이뤄 살고 있는 걸 생각하면 정말 적다.

아이슬란드가 그렇다고 한국과 가까운 나라도 아니다.아이슬란드는 우리 역사 사회 문화 정치 경제 등등을 통 털어 딱 두 번 나온다. 냉전을 종식시킨 레이캬비크 회담과, 최근의 금융위기다. 아이슬란드를 갈까 해요, 했을 때 열 명 중 일곱 명은 그거, 영국 옆에 있는 나라죠? 라고 물어봤다. 학교 다닐 때 사회과 부도를 열심히 본 세 명은 아이슬란드가 북유럽에서 10시 방향, 그린란드 근처에 있는 섬나라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는 까닭은, 요약하자면 아이슬란드와 한국은 '남'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새벽 1시 30분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아르나볼 호텔 카운터의 남자 직원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우리를 보자마자 말했다. "한국 사람이죠?" "네?"


어쩜 어떻게 그렇게 한 눈에 알아봤을까. "아이 빌리브 통일교" 그는 헛기침을 두어번 한 뒤 속삭이듯 "문선명"이라고 덧붙였다. '명진'이라는 한국 이름을 중간 이름으로 갖고 있는 그는 수련차 "양푱"(경기 양평인 것 같다)에도 몇 차례 오셨으며, 한국 여자와 결혼한 친구도 있고 한국어를 배우려는 친구도 있다고 했다. 레이캬비크에는 통일교와 무관하지만 '갈비 김'이라는 한국 식당도 있단다.그럼 아이슬란드 동포의 절반을 차지하는 한국인 일가가 운영하나? 안타깝게도 아니란다. 그러나 한국식 온돌은 있었다. 객실 바닥은 전기 온돌로 뜨끈뜨끈했다. 역시 통일교 신도가 운영하는 호텔이어서, 한국의 선진 문물을 일찌감치 수입해 오신 모양이었다.



(홀그림 키르카 종탑에서 본 레이캬비크 시내. 예쁩니다)

아이슬란드도, 레이캬비크도 두 번째였다. 동포 수가 아직 7명이던 2004년, 인도도 유럽도 7박8일이면 찍고 도는 한국인이, 남한 크기만한 조그만 섬 하나 일주일에 못 보겠냐며 호기롭게 떠났으나 결국 절반도 못 보고 꼬리를 내린 채 돌아와야 했다. 일단, 아이슬란드에는 도로가 거의 없기 때문이었고 (섬 전체를 한바퀴 도는 2차선 링 로드가 거의 유일한 고속도로다), 또 지명이 도저히 발음할 수 없도록 생긴지라 지리를 파악하고 물어보는 데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레이캬비크는 뭐, 혀가 좀 꼬일 듯 말 듯 하지만 그렇다고 쳐 주자. 그러나 Kirkjubaejarklaustur 라든가, Landmannalaugar 같은 건 뭐라고 읽어야 할 지 아직도 모른다. (읽어 보시지. 안 읽어진다) 영어에 능통한 우리 아이슬란드 주민들께서 내가 더듬더듬 “커큐백...” 하면 “아! @#$%!”라고 발음해 주셔서 아직도 모른다. 생각난 김에 말해두자면, 시규어 로스나, 비요크는 정말 이름 쉽게 지은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 언덕을 넘을 때마다 나왔기 때문이었다. 초코 파우더를 뿌린 것 같은 붉은 산 입구에 커다란 구멍이 있고, 그 아래 회색 용암이 보글보글 피어오르는데, 바로 옆 기암 절벽 폭포가 있고 맞은편엔 빙하가 둥둥 떠 있는, 뭐 이런 식이었다.



레이캬비크도 만 맞은 편으로 머리가 납작한 ‘이스자’산을 마주하고 있다. 처음 며칠은 산 중턱에 구름이 걸린 줄 았았다. 그러나 산 자체가 그렇게, 상암동 하늘공원처럼 생긴 것이었다. 하루 종일 빗발이 뿌렸다 그쳤다, 우박이 후두둑 떨어지기도 했지만, 레이캬비크는 햇살이 잠시 비쳐들었던 오전 10시의 풍경으로 기억돼 있다. 근대적 의미의 ‘정주’가 시작된 지 채 200년이 안 되는 이 도시는 레고 블록에서 뽑아와 세운 것처럼 아기자기하다. 유럽의 여느 나라처럼 르네상스식의 성당도, 바로크식의 궁전도 없지만 용암이 분출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는 몹시 모던한 교회가 언덕 꼭대기에 있다.




(레이캬비크 다운타운입니다. 토요일밤엔 술취한 청년들이 어슬렁 거렸다는..)

교회 종탑에서 내려다보면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빨갛고, 노랗고, 초록의 지붕을 한 집들 사이로 노란색 버스가 지나다닌다. 맥도날드도, 스타벅스도, HMV도, 세븐 일레븐도 없는 도시. 북위 64도의 세계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수도. 물뿌리개가 아니라, 분무기로 뿌리는 것 같은 빗방울을 피해 우리는 인포메이션 센터로 뛰어가고, 서점으로 달려가고, 식당으로 들어가고, 갤러리와 벼룩 시장도 갔다. 어느 블로그에 보면 비요크가 이 벼룩 시장에서 장 보는 사진도 있단다.


특별히 좋을 기억도 없었는데, 나는 레이캬비크가 그 하루 동안 3배쯤은 좋아졌다. 일요일 오후의 시내는 적당히 한산하고 적당히 붐볐다. 론리플래닛 아이슬란드편을 사려고 기웃거렸던 서점들에서는 커피 볶는 냄새가 났다. 서점마다 커피숍이 딸려 있어서다. 하나, 둘, 셋, 네 번째 서점에서야 비로소 책을 살 수 있었다. 이 작은 도시에 이렇게나 서점이 많다니. 생선창고로 쓰였을 법한 건물에서 열리는 주말 벼룩시장에도 헌책 좌판이 펼쳐져 있었다. 거리마다, 모퉁이마다, 담배 냄새가 날 것 같은 가죽 의자가 놓인 보헤미안 커피숍들이 나타났다. 천장이 유리창이어서 환하게 느껴지는 에이문드슨 북숍에서 커피와 초코케이크를 먹으며, 레이캬비크에 다시 온다면 북숍과 보헤미안 커피숍 투어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내 어딘가에 그려져 있던 벽화에요. 자세히 보면 아랫부분에 가운데 바이킹 모자가 있음)


이따금 ‘건수’를 찾는 사람들이 맥주집이나 식당 앞을 북극곰처럼 어슬렁거렸다. 가이드북에 설명에 따르면 레이캬비크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게 술을 마실 건수를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레이캬비크에서 술은, 맛을 보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주말 저녁 마시고 뻗기 위한 용도다.” 사실 이 설명은 "주 7일 뻗기 위해 술을 마시는" 한국에서 온 내게 좀 어려웠다. 그게 뭐! 어쩐지 어젯밤 자정을 넘긴 시각에도 사람들이 삼삼오오 어슬렁거리며 클럽과 호프의 모퉁이를 서성대더라니.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겨드랑이에 제 팔을 낀채 쭈뼛거리는 사람들은 한밤중의 좀비들처럼 보였다.


한편으로, 주중에는 술을 먹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수요일이나 목요일 오후에 술을 시키면 알콜 중독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란다. 아마도 그것은, 살인적인 술값 때문에 만들어진 관습일 것이다. 식당에서 맥주 한 잔을 시키려면 700코로나, 우리 돈으로 7000원이다. 적어도 2배 비싼 것이어서, 세계 최고의 베지테리안 레스토랑, ‘네스투 그루섬’ 에서 밥을 먹으면서 우리는 맥주 대신 콜라를 시켰다. 이 베지테리언 레스토랑은, 7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곳이었다. 감동한 나는, 나중에 꼭 이 집을 벤치마킹해 베지테리언 메뉴를 파는 북카페를 만들겠다고 씩씩하게 사업 구상을 설명했다. 북극곰은 걱정어린 눈으로, 꼭 그런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 홍대 앞에 훌륭한 베지테리언 식당 겸 카페 겸 헌책방을 냈다가 쫄딱 망했다고, 알려주었다.



(생선창고 벼룩시장에서 파는 아이슬란드 스웨터. 올 겨울 유행하는 노르딕 스웨텁니다)


(만원 주고 산 비옷. 냉동창고에서 생선 장만하는 용도로 보입니당)


어쨌거나, 레이캬비크는 앞으로 아이슬란드 일주를 위한 베이스캠프가 아니었던가.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속아서 어이없는 환율로 환전해 온 아이슬란드 코로나를 다 써버렸다. 벼룩시장에서 생선공장 냉동창고에서나 쓸 법한 비옷을 1만원을 주고 건졌고,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아이슬란드 휴대폰 심카드를 2만5천원에 샀다.
GSM폰 하나만 있으면 세계 어디서나 휴대폰을 쓸 수 있다더니 정말이었다. 몇 년 전 중국에서 헐값에 사 온 GSM폰에 아이슬란드 심카드를 넣으니 바로 개통됐다. 호텔에서는 무선인터넷도 잡혔다.


아이슬란드 유스호스텔 홈페이지에서 지도를 다운받고 새로 장만한 휴대폰으로 다음날 묵을 숙소를 예약했다. 엑스피디아 닷컴에서 최저가 렌트카를 찾아 예약하고, 아이슬란드 도로 교통 정보 사이트로 들어가 교통량도 확인했다. 이 조그만 나라는 놀랍게도 교통량을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추풍령~충주 구간 오늘 4대 지나갔음, 뭐 이런 식이다.
아이슬란드 기상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이주의 기상정보에 따르면, 오늘도 비, 내일은 약한 비, 모레는 강한 비가 온다.북극곰은 오로라 예보 사이트에 들어가 9월말 현재 오로라대가 아이슬란드에 걸쳐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오늘은 미약하지만 모레는 평균 수준은 될 것이다.



(아이슬란드 심카드가 들어있는 GSM 휴대폰. 오른쪽입니다. 노트북에 띄워져 있는 화면은 아이슬란드 교통정보량 사이트에요)


우리는 아이슬란드의 ‘이마트’, 분홍돼지가 그려진 ‘보너스' 로 달려갔다. 마실 물과, 데우기만 하면 된다는 카레와, 물만 넣고 끓이면 된다는 즉석밥과, 론리플래닛 여행정보사이트 가시나무포럼 여행자들이 하나같이 ‘강추’한, 아이슬란드 무공해 젖소들이 한방울 한방울 모아 만든 요거트 스카이르Skyr와 초콜릿 바른 과자를 잔뜩 샀다. 털털거리는 빨간색 중고 피에스타 자동차의 뒷좌석과 짐칸에 옷과 먹을 것을 쑤셔넣고, 컴퓨터를 켜서 시규어 로스의 ‘헤임라’를 틀어놓고, 우리는 남쪽으로 출발했다.



(아이슬란드 요거트 스카이르)



(초콜릿 입힌 과자. 빈츠 비슷한 맛이에요)



(맥주입니다. 폴라 '비어')

(마지막으로 한장 더. 레이캬비크 시내에 세워져 있던 '화장실' 안내판입니다. 화장실을 찾기 힘든 걸까요? 엄청 크더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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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까만주름 2011.01.17 2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인들이 좀 늘었나? 내가 자기한테 물어보고 해서 갔던 2008년엔 두가족(두 가족은 친척이라고 들었음)이 살고 있었고 각각 가족수가 3명과 4명이어서 7명이라고 들었는데. 여하튼 나는 게을러서 기록도 거의 해두지 않고 르포기사 하나 쓰고 말았는데 역시나 자기가 자세하게 기록해둔 것을 보면서 그 음울했던 출장을 떠올려 보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스프집'이라는 허름한 식당엘 간 적이 있었는데 정말로 맛있었고, '송장의 맛'이라는 악명이 붙어 있다는 아이슬란드 전통 독주의 알싸한 맛도 기억이 나는군... 여하튼 고마워.

  2. 딸기 2011.01.19 1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행기 넘 재밌다!
    작년에 아이슬란드 화산폭발 했을 때, 그 화산 이름을 어떻게 읽어야하는지를 놓고
    CNN이 현장 리포트까지 했었지. 결국은 대부분 기사에서 화산 이름을 빼어버렸다는...




왜 '에코 롯지'들은 대체로 부담스럽도록 럭셔리 하거나, 무섭도록 비싼 것일까. 나도 언제나 그게 궁금했다. 조금 웃돈을 더 내더라도 '친환경' 숙소에서 자고 싶은데, '친환경 숙소'라는 곳들은 언제나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


이따금 특급 호텔들이 어디어디가 선정하는 '친환경 숙소' 인증을 받았다고 하지만, 건물 디자인이 자연을 닮았다든가, 뭐 욕실에 스파 용품을 갖다 놨다든가 그런 식이었다. 특급 호텔 욕실에 '물과 전기를 아끼기 위해 수건을 다시 쓰시려면 랙에 걸어주세요'라고 적혀 있는 걸 본 적이 있는데, 그 옆에 일회용 샴푸와 비누들, 여름엔 춥고 겨울엔 더운 냉난방, 펑펑 쓰는 물 같은 걸 생각하면, 뭐 그다지 다시 랙에 걸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하룻밤에 수십만원이라는 가격이 더 무서웠다.


해외 여행의 소위 '에코' 숙소들도 마찬가지다. 열대우림을 베어내고 거기 지은 다국적 기업의 화려한 리조트라든가, 히말라야 산자락에 들어앉은 별 다섯 개짜리 호텔이라든가, 그런 곳들이 소위 '에코 롯지'를 지향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안다. '에코투어'라는 것이 지역 주민에게는 중요한 수입원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조금 돈을 더 쓸 자세가 되어 있는 관광객들을 위해, 럭셔리한 숙소를 지어놓고, 많이 쓰시도록 해 지역에 도움이 되도록 하자는 거다. 그러다 보면 말만 '에코'지 사실은 숙소가 환경을 파괴하는 일도 수없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다. 그리고 사실, 다국적 기업의 숙소는 지역 주민에게 그럴싸한 일자리도 못준다. 어쨌거나,


지난번 아이슬란드 여행을 하다가, 호스텔들이 '환경 강령'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이슬란드는 세계 최북단에 있는 섬나라 가운데 하나인데, 남한 정도 크기다. 크지 않다. 섬의 대부분은 화산과 빙하로 덮여 있어서, 싹 난 감자같이 생긴 섬을 한바퀴 도는 '링로드'를 제외하면 변변한 도로도 없다. 아이슬란드 여행자들의 필수 코스는 이 링로드를 따라 한 바퀴 도는 거다. 일주일에서 열흘 걸린다. 30만명밖에 살지 않는 섬인데다, 인구 4분의 3이 수도 레이캬비크에 모여 있기 때문에, 사실 이 링로드에 있는 마을 대부분은 200명, 300명이 사는 조그만 마을들이다. 변변한 숙소가 있을 리 없다. 대신 농가나, 가정집을 개조한 '호스텔'이 있다. 그것도 많다.


아이슬란드 호스텔 연맹 지도


아이슬란드 호스텔 연맹에서는 1999년 환경 강령을 만든 모양이었다. 호스텔마다 게시판에 이 환경 강령이 붙어 있다. 대체로, "자연과 여행에 대해 책임있는 여행을 할 수 있도록 호스텔 주인인 우리와 여행자들이 함께 힘쓰자"는 취지다. 쓰레기를 줄이고, 재활용을 하고, 지속가능한 여행과 환경에 대해 인쇄물과 대화로 알린다... 등등이 내용이 붙어 있다. 매년 '친환경 호스텔'을 선정해 상장도 준다.







비크의 호스텔에 붙어 있던 친환경 강령. 역시 친환경 숙소답게 불 때주는 데 인색했다. 담요 덮고 시트 둘러도 너무 추워서 밤새 벌벌 떨었다는...ㅠㅠ






아이슬란드 제 1의 관광지 중 하나인 스카타펠 폭포 근처의 흐볼 호스텔의 부엌. 쓰레기를 분리 수거하라고 돼 있다. 이 분리수거가, 우리나라는 일상화 돼 있는 편이지만 미국이나 유럽에 가면 보기 힘든 경우가 많다. 아이슬란드가 조그만 섬나라라는 걸 생각하면, 정말 애 쓰는 거다.






우리도 파스타를 끓여 먹고, 쓰레기를 시키는 대로 잘 분리해서 집어 넣었다. 다른 여행자들이 조용하게 쓰레기를 고분고분 분리 수거하는 것을 보면, 뭔가 나도 그래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 휩쓸리는 법이어서...이 호스텔 역시 아이슬란드의 다른 숙소와 마찬가지로 '뚝' 떨어져 있다. 밥을 안 주는데, 가장 가까운 수퍼는 25킬로 떨어져 있다.





이런 깜찍한 사인도.





이거 마음에 들었는데, 읽은 책 꽂아두고 읽을 책 가져가세요 코너. 호스텔마다 있긴 한데, 보통 책등이 다 갈라진 SF 소설이나 촌스런 옛날 배우들이 표지에 등장하는 책들이 많다. 그런데 여기는 꽤 읽을만한 책들이, 주인이 애써 골라놓은 자세의 책들이 꽤 있었다. 다른 '친환경 행동'들과 디자인을 맞춘 것도 예뻤다.



그 밖에 '생수 대신 아이슬란드 물을 드세요. 진짜 깨끗하답니다' 라든가, '카풀을 이용해서 여행하세요' 이런 조언들도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는...






또 다른 인상적인 친환경 호스텔이었던 후세이 호스텔. 후세이는 아이슬란드에서도 가장 구석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메인 도로인 링로드에서 비포장길로 30킬로미터를 들어오면, 이 집과 주인집 한 채가 있다. 그게 전부다. "끝까지 가도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매력" "참을 수 없는 고독을 만나고 싶으면 여기로 가셔라"고 가이드북에도 나온다.


정말이지 아무 것도 없었다. 까치발을 하고 내다봐도 멀리 보이는 것은 수평선과, 수평선이 아니라면 막혀 있는 산들 뿐이었다. 엄청나게 많은 새와, 물범과, 양과, 말들도 함께 있긴 했다. 이 고독함과 쓸쓸함이 무서워서, 배낭을 메고 걸어오는 다른 배낭 여행자 두 명의 그림자만 보고도 기뻐서 박수를 쳤다.







그런데 이 작은 호스텔도 나름대로 분리 수거를 하고 있었다. 우유팩도, 깡통도 다 따로 버린다. 심지어 '적십자 주게 헌 옷은 여기 담아 주세요'도 있었다. 호스텔 주인 겸 농부를 겸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커플은 정말이지, 애쓰고 계셨다. 그물 쳐 놓고 생선도 잡아야지, 물범 잡아 가죽도 벗겨야지, 닭알도 줍고 젖소도 짜고 건초도 말리고, 틈틈이 털실로 옷도 짜야 하는데, 이렇게 나름 노력하시는 거다.






거기다 나름, 유기농 식품도 있었다. 아이슬란드 유스호스텔 가이드북에는 ‘후세이 유스호스텔엔 주방 용품은 있지만 음식을 살 데는 아무데도 없다"고 적혀 있었다. 호스텔 벽에 붙여놓은 농장 물품 리스트에서 약간의 먹을 것을 살 수는 있다. 물범 고기라든가, 농장에서 갓 짠 우유라든가, 계란이라든가, 물범 가죽이나 양털이나 그런 것들을 나쁘지 않은 합리적인 가격에 판다.






베란다를 개조해서 만든 거실. 풍경도 몹시 훌륭하다. 낮에는 채광이 좋아서 따뜻하기도 하다. 벽에는 아저씨가 잡아서 말렸다는 물범 가죽과, 양털과, 손으로 짠 듯한 스웨터와 순록의 두개골과 뿔들이 여기 저기 널려 있었다. 데코레이션으로 게에 실을 달아 걸어놓은, 매우 특이한 장식품도 보였다. 방마다 걸어 놓은 그림이며, 사진들도 예사롭지 않았다. 집 주인들이 직접 찍은 사진에 종이를 덧붙여 만든 엽서들도 보였고, 손으로 쓴 버드와칭 가이드 월페이퍼도 있었다.



그리고 이날 밤 호스텔 창문에 코를 박고, 북쪽 하늘에 떠오르는 오로라도 봤다 (자랑).



호스텔 계단 옆 벽에는 이렇게 '상장'이 붙어 있었다. 이 후세이의 작은 호스텔은 아이슬란드 호스텔 연맹이 선정한 '친환경 호스텔' 가운데 하나다. 할 수 있는 만큼, 소박하지만 착하게, 노력해 보는 것. 이런 게, 친환경 호스텔이 아닐까. '친환경 숙소'라는 말을 들으면, 아무에게라도 후세이 호스텔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진다. "내가 말이지, 이상한 호스텔에 간적이 있는데 말야...,"

 


Posted by orc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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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갈매 2010.12.09 2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베란다에 누워계신 모델은 남*군? 아니 저 뒤로 보이는 풍경이 너무 멋진데.. 이거 막 가고 싶어지잖아!!! 저래서 북반구에 가는 거였던거야?? 아아아. 오로라~~~
    후세이 호스텔의 주소는? 홈페이지는 없는가? 물범고기의 맛은 어때? 너무너무 궁금한게 많다. 답하라 오바.

  2. 쏘댕기자 2010.12.30 1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BBC에서 스웨덴의 tree hotel이 나왔는데, 친환경이라고 하나 무지 비싸보였다오. 아직은 3개 뿐이고, 앞으로 5년간 비행접시 모양(!)을 포함해 24채를 더 지을 거라 하는데... 줄서고 비싸면 난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