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발바르 유일의 수퍼마켓, 스발바르부티켄에 가서 식빵을 한 줄 사 왔다. 빵 봉지에 북극곰이 그려져 있었다. 이제와 새삼 생각하지만, 스발바르에서 북극곰의 위협은 박물관이나 테마파크나 국립공원과 같은 관광 어트랙션이 아니었던가 싶다. 스발바르의 인구는 1800, 북극곰은 5000~7000마리. 그러나 사람들은 좁은 마을에 모여 살고, 북극곰은 광활한 스발바르 제도 전역에 퍼져 산다. 말하자면 곰구밀도가 낮은 것이다. 일주일, 길면 한 달 머무는 관광객이 북극곰을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롱이어비엔에 곰이 나타난다면 그건 지역 신문 스발바르 포스텐’ 1면 톱거리다.


그러나 스발바르에서 북극곰은 실체는 아니고
, 상품이나 이미지로 도처에 출몰한다. 빵봉지에도 있고, 수퍼마켓 비닐봉지에도 있고, 모든 브로슈어와 포스터에도 있고, 심지어 짐승의 가죽을 벗기고 빨갛게 물든 피바다에서 북극곰이 쓰윽, 피로 물든 입을 닦는 엽서도 판다 (이걸 도대체 누가 살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북극곰 모양의 귀걸이도 판다 (내가 샀다). 그러나 어쨌든 북극곰의 위협 때문에 독립 여행은 불가능하다. 패키지 당일 투어에 잇달아 사인하고 돈을 내고 나니, 북극곰의 위협이란 게 스발바르 관광 산업 진흥을 위해 관광업계와 스발바르 정부가 짜고 만든 게 아닌가 싶었다. 의심을 가득 담아 째려보자 트레킹 가이드가 두 손을 저으며 펄쩍 뛰었다. “스웨덴 교사가 롱이어비엔 뒷빙하에서 곰한테 습격당해 죽었다는 이야기 못 들었어?” , 그게 언제였는데? “...8년 전에...딱 한번...”


(트레킹을 마치고 돌아오는 관광객들. 저 뒤로 롱이어비엔 전경이 보입니다)

어쨌거나 우리도 롱이어비엔 뒷빙하 트레킹을 하기로 했다. 사냥총을 어깨에 짊어진 가이드 지그문트가 앞장서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왔다는 중년 커플, 이탈리아에서 왔다는 가족, 광부 숙소에서 만난 지성인 형제, 인간 북극곰과 나 둘, 그리고 가이드 크리스틴 순서였다. 남아공 커플은 돈이 주체할 수 없이 많은 한량들로 보였다. 북극 크루즈를 타고 왔다는데, 롱이어비엔 시내의 등산용품 가게에서 바지, 재킷, 등산화, 등산용 지팡이와 아이젠까지 일습을 장만했다. 이 비싼 북극에서!

이탈리아 가족은 교대로 싸워댔다
. 큰 딸이 화를 내고 나면, 둘째 딸이 발을 구르고, 막내가 엉엉 울었다. 슬슬 비만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아빠는 계속 이마의 땀을 닦았다. 세계 어디나 아빠는 괴롭다. 지성인 형제와 우리 둘은 묵묵히 그들의 뒤를 따라 걸었다. 지성인 형제는 오슬로 대학 박사과정 학생들로 판명됐다. 역시, 지성인이었다. 두 사람은 한 해 내내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스발바르에 일주일 동안 왔다.


(우리 앞을 기다리고 있는 운명을 모른 채 묵묵히 빙하를 향해 걸어가는 일행들.)

우리의 루트는 롱이어비엔 뒷빙하, 롱이어 빙하였다. 빙하의 왼쪽 봉우리를 타고 올라간 뒤 빙하를 타고 내려오는 4시간 코스다. 여름 한 철만 얼음이 풀리는 땅은 폭신폭신했다. 스폰지를 밟는 기분이었다. 개울도 잇달아 건넜다. 빙하가 녹은 물이 졸졸 흘러 만들어진 개울이었다. 한 시간쯤 올랐을까. 남아공 아저씨가 두 팔을 번쩍 벌렸다. “, 정상! 저 아름다운 풍경 좀 보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부신 빙하를 정면에서 본 게 아니다. 안개가 너무 짙어서였다. 점심시간이었다.


, 도시락 싸 오라는 설명 들으셨죠? 저런, 어떡하지. 커피와 비스킷이라도 드셔야겠네요선생님 말씀 잘 듣는 한국인인 우리 둘만 도시락을 싸 왔다. 식빵 사이에 계란 스프레드를 바른 우리의 울트라 초 소박 샌드위치를 이탈리아 가족도, 지성인 형제도, 심지어 남아공 한량 커플도 부러운 듯이 쳐다봤다. 바람을 피하는 척 하면서 바위 뒤로 갔다. 숨어서 마저 다 먹었다. 달고 뜨끈한 커피도 한 모금 홀짝 마셨다. 녹다가 얼던 발도 풀리는 것 같았다.


오후부터는 본격적인 빙하길이었다
. 크리스틴이 배낭에서 로프 뭉치를 꺼내더니 한 사람씩 차례로 묶었다. 순식간에 굴비 두름에 엮인 꼴이 됐다. 영어의 몸이 되어 단장의 미아리고개를 넘고 있는 전쟁 포로를 생각하면 된다. 크레바스 때문이었다. 빙하 틈새로 떨어져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것을 막기 위해 사람으로 저지선을 치는 거다. 서로가 한 몸이라는 동지애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앞을 쳐다봤다. 이탈리아 가족은 여전히 투닥거렸고, 남아공 아저씨는 도처에 키스를 날리며 뷰티풀을 연발하고 있었다.

지그문트가 조용히 다가왔다. “저기, 근데 눈 위에서 걸어본 적 있어요?” 멀고 먼 동양의 신비한 나라에서 온 내가 가장 걱정거리였나 보다. “그럼요, 겨울에 눈이 얼마나 많이 오는데.” “, 그래도 쌓이지는 않죠?” “한국은 말이죠, 당신 생각보다 훨씬 북쪽에 있어요. 아니, 당신들 말야, 한국이 태국 옆 어디라고 생각하는데...” 굴비 두름에 엮이지 않은 지그문트는 잽싸게 대열 앞으로 내뺐다. 내 뒤로는 인간 북극곰이 외로이 자신의 빙하 삼겹살이론을 완성하고 있었다. 남극과 북극과 칠레의 빙하를 모두 본 북극곰에 따르면 빙하는 삼겹살구조다. 맨 밑바닥이 물, 가운데가 얼음, 표면이 눈이다. “즉 삼겹살의 살코기-비계-껍질과 대응한다고 할 수 있어. 크레바스는 찢어진 삼겹살’, 얼음이 없는 빙하 지류는 이겹살이라고나 할까.” 내가 과연 이 사람들을 믿고 빙하를 건너야 하는 것일까.

 

(조용히 줄을 지어 걷고 있는 빙하 트레킹 동지들. 형광색으로 가방을 싼 두 남자가 지성인 형젭니다)

빙하 트레킹은 싱겁게 끝났다. 비명을 지르며 크레바스 틈으로 사라지는 사람도 없었고, 북극곰이 쫓아오지도 않았다. 맹렬하게 떠돌던 사람들이 지쳐 조용해질 무렵엔 정말로 어디선가 졸졸 물소리가 들렸다. 저 아래 빙하의 밑바닥은 얼마나 고독할까. 트레킹의 마지막은 화석줍기였다. 빙퇴석 무더기로 우리를 인도한 두 가이드는 , 마음껏 골라 잡으세요!” 라며 팔짱을 끼고 앉았다. 자갈 더미를 잘 뒤지면 나뭇잎이나 은행잎 모양이 찍힌 화석이 나온다. 지금은 풀 한 포기 보기 어려운 툰드라 지대지만 6000만년 전 이곳은 울창한 숲이었다. 믿을 수밖에 없다. 돌 열 개도 채 뒤지기 전에 내 손에도 희미한 나뭇잎의 윤곽선이 찍힌 돌이 쥐어졌으니까.

지금 스발바르에서는 전세계
200만종의 식물 씨앗을 보관할 저장고를 짓고 있다. 이름하여 노아의 방주프로젝트다. 폐광된 롱이어비엔 3호 광산 아래 지하 50미터에 동굴을 만들고, 1미터 두께의 벽을 세워 씨앗을 보관하게 된다. 노르웨이 정부가 건설 비용을 대고, 지구곡물다양성트러스트가 운영 비용을 맡기로 했다. 운영 기간은 영원. 지구 최후의 날이 오면 이 씨앗들이 날아가 생육하고 번성해 미래의 세대들을 먹일 것이다. 6000만년 뒤, 혹은 그 보다 더 먼 미래의 후손들에게 지금의 인류가 주는 선물이다. 마음은 헤아릴 수 없이 까마득한 시간대를 여행하는데, 이탈리아 꼬마가 다가와 갑자기 손을 내밀었다. 은행잎이 선명하게 그려진 화석이었다. “예쁘구나.” 아이가 으쓱한 표정으로 검지 손가락을 코 밑에 문질렀다. 코 밑이 새카매졌다.

(고이 닦아 창틀에 말려둔 화석들. 오른쪽의 모자가 여기 어디에 나오는 '나의 몹시 사랑하는 우크라이나 모자' 되겠습니다)

숙소에 돌아와 미지근한 물을 틀어 놓고 주워온 화석들의 흙을 떼어냈다. 이걸 정말 집으로 가져가도 되는 걸까. 가이드는 방긋 웃으며 박물관에 팔고 가시는 분들도 많아요라고 했다. 화석들을 하나하나 닦아서 나란히 창틀에 올려 놓았다. 이 글이 영화라면, 마지막은 그 화석들이 지금 서울의 우리집 창틀에 나란히 놓여 있는 장면으로 끝날 것이다.

노르웨이 여행기는 여기서 끝납니다. 다음주부터는 캐나다 북부입니다. 인간 북극곰의 손을 잡고 동물 북극곰을 보기 위해 바다까지 떠난 이야기....는 구제역과 원전과 환경면이 다 끝나는 대로 속속 업데이트 하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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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ondandy 2011.04.24 2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고 갑니다. 기자님 덕에 미처 있는 줄도 몰랐던 마을을 알게 되네요. 사진 보고 있으니 참 시원하구요.^^



스발바르와 한국 사이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 신발을 벗어야 한다. 남의 집에 들어갈 때에도, 교회에 갈 때에도, 심지어 박물관에 들어갈 때에도 신발을 벗는다. 광부 기숙사를 개조해서 만든, 롱이어비엔 초저렴 숙소인 게스트하우스 102도 마찬가지다. 커다란 시베리안 허스키를 푸들처럼 데리고 다니는 주인 아주머니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신발 털어라며 현관 옆 발털개 비슷한 것을 가리키곤 했다. ? 여기가 광산 지대여서다.


그렇다
, 18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두 북극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거나, 빙하와 북극곰과 지구 온난화를 연구하러 스발바르를 찾아온 것이 아니다. 다 먹고 살자고 왔다. 롱이어비엔도, 나머지 두 개의 마을도 광산촌이었다. 어쩐지 북극에 달라붙은 이 조그만 마을까지 비행기가 다닌다 싶었더니, 광부들에게 가족과 물자를 실어 나르기 위해 생긴 것이었다. 2차 대전 당시엔 독일군의 집중 폭격 대상이 될 만큼 대단한 석탄 단지였다. 1941년 불붙은 2호 광산은 14년 내리 활활 탔다. 한때는 광부와 그들의 가족들로 흥성거렸겠으나 스발바르의 광산업은 1960년대 석유가 발견되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스발바르 전역의 광산은 롱이어비엔의 7호 광산과, 광산 마을인 바렌츠버그와 스베아그루바의 군소 광산만 남았다. 한 해 7만톤의 석탄을 캐어 핀란드, 독일, 덴마크로 수출한다.


(에스마크 빙하를 조용히 관망하는 우리의 빙하 보트 트립. 맨 앞의 흑모 백모가 지성인 형제입니다)

스발바르 관광 프로그램 중에는 그래서 폐광 다녀오기
, 헤드랜턴 두르고 광산 아래 내려가 보기, 이웃 광산 다녀오기 같은 광부 체험 프로그램들이 있다. 꽤 인기다. 할 게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스발바르는 여행사 프로그램을 이용하지 않고는 도저히 여행할 수가 없게 돼 있다. 일단 롱이어비엔 밖으로 벗어날 수가 없다. 첫째, 북극곰이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고, 둘째, 차를 빌려봐야 도로 총 길이가 50킬로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물론 경비행기를 빌려 빙하에 덮인 스발바르의 광할한 대자연을 굽어보거나, 스키를 타고 북극점까지 다녀올 수도 있다. 여행사에서 북극까지 다녀오는 상품도 판다. ‘아문센 난센의 이야기를 듣고 자란 당신이라면 도전할 수 있다!’는 광고 문구와 함께다. 아문센 난센의 이야기를 듣고 자라긴 했지만 돈도 시간도 체력도 없었다. 우리가 고른 것은 이웃 광산 마을 바렌츠버그까지 다녀오는 당일치기 보트 트립이었다.


우리를 실어 나를
폴라걸에는 어제 저녁 숙소에서 본 지성인 형제도 타고 있었다. 전날 밤 호텔 라운지에서 두 사람은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나도 책을 들고 그들의 대각선 자리에 앉아 펴 들었다. 늦은 오후 같은 은은한 빛에 책장에 꽂혀 있던 책등이 반짝이던 나른한 저녁이었다. 잠시 후 책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에 나는 깼고, 나를 찾으러 온 북극곰이 문간에 서서 침을 닦으라는 시늉을 했다. 두 사람은 책에서 눈도 떼지 않고 조용히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지성인 형제가 틀림없다. 흑모백모를 쓴 지성인 형제는 차가운 북극의 바람을 가슴으로 맞으며 뱃전에서 멀리 빙하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의 배는 천천히 바렌츠버그를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파스텔톤의 건물들은 모하이 석상처럼 한 줄로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배에서 밥을 받아 가는 사람들. 저희는 추워서 안에서 먹었어요)

(메뉴는 카레입니다. 저 빵은 정말 맛있더군요.)

녹슨 컨테이너 사이를 비집고 배는 천천히 닻을 내렸다. 밟으면 금방 찌그러질 것 같은 낡은 나무 계단 뒤가 마을이었다. 야구모자를 눌러 쓴 청년이 싹싹하게 관광객들을 모았다. “바렌츠버그에 잘 오셨습니다! 스발바르의 유일한 러시아 타운이죠. 저기 벽에 그려진 스발바르 지도가 보이시나요?...” 청년이 가리키는 건물 뒤로 이 보였다. 검은 산에 흰 돌을 박아서 만든 것이다. 그 아래 알파벳을 떨어뜨렸다 황급히 주워 붙여놓은 것 같은 키릴 문자도 보였다. 멀고 먼 러시아에서 온 광산 노동자들이 할 일 없던 어느 때 만들어 놓은 대지 예술이었다. 힘들게 만들었는데 딱 한 가지 단점이, 흰 돌이어서 눈이 오면 덮여 보이지 않는 거다. 그리고 스발바르는 일년 내내 아무 때나 눈이 온다.

광장 격인 마을 입구에는 먼 바다를 응시하는 레닌의 동상도 있었다
. 레닌을 한번 보고 청년을 다시 보니 저 청년이 바렌츠버그 공산주의청년동맹 간부쯤 되지 않겠나 싶었다. 카메라를 움켜쥐고 우물쭈물하던 관광객들은 줄을 지어 청년의 뒤를 따랐다. ‘메인 스트리트를 따라 교회, 학교를 개조해 만든 박물관, 어린이집, 병원, 우체국이 이어졌다
 

(바렌츠버그 전경. 오른쪽 끝이 부두에요)

건물들은 예뻤다. 레이스를 붙인 듯 섬세하게 조각이 되어 있는 창틀도, 소비에트 풍의 규모로 압도하는 학교와 병원도 이국적이었다. 창틀에는 갈매기가 둥지를 틀고 있었다. 제비들은 처마 밑에 둥지를 틀던데, 쟤들은 역시 외향적인 모양이었다. ‘폴라 스타라는 건물에는 여성 노동자 세 명의 결의에 찬 옆모습이 그려져 있었는데, 선물가게라고 했다. 창문엔 창문형 에어컨처럼 박스가 튀어나와 있었다. “이게 뭔지 아시는 분?” “에어컨요!” ‘저요저요!’ 자세로 번쩍 손을 들고 외쳤으나, 여기는 북극이었다. 에어컨이 아니라 냉장고다. 여름 한철 제외하면 어차피 일년 내내 추우니까, 창 밖 박스에 음식을 넣어 두면 상하지 않는단다.


광부 식당이라는 건물 벽에는 휘장 모양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 광부 한 명이 뻘쭘한 표정으로 서 있고 북극곰 두 마리가 자기 너무 멋져요라는 표정으로 월계관을 씌워 주는 모습이다. 북극 광산 마을을 독려하는 사회주의식 선전물이라 하겠다. 바렌츠버그 광산은 아르티쿨이란 업체가 운영한다. 시내 한가운데에 회사가 있는데, 지하에서 갱도로 통하는 문이 있다고 한다. 광부들은 지하 500미터까지 내려가 매년 12천톤의 석탄을 캐낸다. 지금은 주춤하지만 한 때는 35만톤을 캤다.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은 이 막대한 자원이 나치의 손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며 바렌츠버그를 폭격해 반쯤 폐허로 만들었다. 이어 독일군이 이 막대한 자원을 군수용으로 이용하게 할 수는 없다며 나머지 반을 폭격했다. 그래서 바렌츠버그는 폐허가 됐다. 지금 건물들은 대부분 1950년대 이후 새로 세운 것들이다.


(레닌 얼굴 뒤로 희미하게 별이 보이시나요? 그게 노동자들이 만든 대지예술입니다)

배가 떠나려면 시간도 남았고, 우체국 옆 호텔 식당으로 갔다. 낡은 피아노 위에 순록 뿔이 걸려 있는 바에는 아무도 없었다. 낡은 레이스 커튼이 걸려 있는 창가에서 커피를 마시며 부지런히 엽서를 썼다. 우체국에 가면 북극곰 소인을 찍어준다고 해서다. 낮게 틀어놓은 라디오에서는 알 수 없는 러시아말이 흘러나왔다. 예전엔 러시아인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돈을 벌러 온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이 반반이다. 광산 노동자로 2년 계약을 맺고 오지만, 그냥 여기에 눌러앉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고향에 돌아가도 춥고 고달프고 불편하기는 여기 북극과 마찬가지여서다.

그러나 그런 일자리도 자꾸만 줄어들고 있다. 광산이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른다. 근처 피라메덴 광산도 1998년 문을 닫았다. 바렌츠버그처럼 러시아 정착촌이어서 두 마을의 광부들은 종종 친선 농구 경기를 하곤 했단다. 이제는 헬기를 타고 날아가 롱이어비엔 광부들과 경기를 해야 한다. 바렌츠버그의 인구도 지난 10년새 800명에서 300명으로 줄어들었다. 레이스 창문에 뚫린 구멍 틈으로 머리에 수건을 쓰고 지나가는 아주머니들이 보였다. 저분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밀밭이 바람에 물결처럼 흐르는 우크라이나의 평원 어디쯤에서 왔을까. 문득 체육관 벽에 그려져 있던 그림이 생각났다. 크리스마스 트리 같은 전나무 숲 사이로 강물이 흐르고 있는 그림이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북극 사막에서, 이들은 떠나온 고향 마을의 겨울숲을 이따금씩, 떠올리고 있는 것일까. 어느 건물인가엔 자작나무 숲도 그려져 있었던 것 같다.




(씩씩한 여성들이 그려진 사회주의식 선전물. 실상은 기념품 가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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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스발바르 제도를 다녀왔을까. 자랑하려고 갔다 왔다. 아아,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스발바르는 사람이 마을을 이뤄 사는 곳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북극에 있다. 북극점까지 1338킬로밖에 안 된다. 날씨만 맑으면 북극점이 보인다! “그린란드 알지? 거기서 동북쪽으로 가면 섬 5개가 있어. 아니아니, 거기는 아이슬란드. , 다산기지 알지? 세종기지 말고 북극 다산기지 있잖아. 그게 그 섬에 있어...” 가기 전부터 자랑질은 몇 번을 해도 지치지도 않았다. 관광객이 갈 수 있는 세계 최북단 아니던가. 스발바르로 휴가를 다녀온 한국 사람은 열 명이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자다가도 으쓱했다. 스발바르라는 이름을 들어보기나 했다는 사람은, 모든 국가의 이름과 수도를 외우고 있는 화성인한 명과, 며칠 전 노아의 방주기사를 썼다는 국제부 기자 둘 뿐이었다.

트롬쇠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롱이어비엔 공항에 도착한 것은 새벽
120. 밖은 환했다. 활주로 끝의 바다 위로 해가 떠 있었다. 백야였다. 419일부터 821일까지 4개월은 해가 지지 않고, 10월말부터 4개월은 해가 뜨지 않는다. 지구의 대부분 다른 지역처럼 아침에 해가 떴다 밤에 해가 지는 날은 일 년에 4개월밖에 되지 않는다. 꼭 오후 5시쯤의 빛이었다. 공항버스 세 대가 공항 앞에 기다리고 있다 승객들을 실었다. 공항과 시내를 연결하는, 롱이어비엔 유일의 대중교통 수단이다.

1
개의 도시와 2개의 마을, 1개의 과학기지가 전부인 스발바르에서도 롱이어비엔은 나름 1800명이 사는 스발바르 제 1의 도시다. 세 명 중 한 명은 광부, 한 명은 북극 과학자, 나머지 한 명은 관광객이다. 브이자 모양으로 길게 패인 어드벤트 피요르드 골짜기에서 윗마을과 아랫마을에 나눠 산다. 숙소인 게스트하우스 102’는 윗마을에 있었다. 1960년까지 광부 기숙사로 쓰던 건물을 호스텔로 개조했다. 커튼 틈으로 숙소를 찾아 곰처럼 어슬렁거리는 어르신 관광객 커플이 보였다. 순록 두 마리도 덩달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기묘한 빛 속에서 잠이 들자니, 계속 가위에 눌렸다
 

(살아 보겠다고 열심히 풀을 뜯는 스발바르 순록. 털도 까칠한 것이 참 안 돼 보입니다)

다음날 아침엔 산책삼아 다운타운으로 내려갔다
. 이 집은 마을의 끝에 있었다. 뒷산이겠거니 여겼던 것이 아침에 보니 뒷빙하였다. ‘배빙하 임피요르드의 지세라 하겠다. 뭔가 만들다 만 것 같은 낯선 풍경이었다. 일단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산이 낯설었다. 산자락에는 컨테이너를 옮겨다 놓은 것처럼 생긴 집들이 있었다. 지하철 커피자판기에 보면 지붕이 빨갛고 노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진이 걸려 있을 때가 있는데, 딱 그렇게 생긴 집들이었다.

집들은 원두막처럼 땅 위에서
1미터 정도씩 띄워져 있었다. 눈이 쌓여도 문을 열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순록 뿔이 문패처럼 걸려 있고, 자동차 대신 모터스키가 주차돼 있었다. 집 앞 큰길-포장 같은 건 돼 있지 않다-을 따라 파이프 두 개가 나란히 흘렀다. 상수도와 하수도다. 여름이 되어도 땅 표면만 겨우 녹는 영구동토층이기 때문에 상하수도를 땅 속에 묻을 수가 없었단다. 순록들은 똥개처럼 한낮에도 마을을 어슬렁거렸다. 풀도 보이지 않는데 뭔가 하여간 열심히 뜯어먹고 있었다. 썰매 끄는 아르바이트도 없는데 쟤들은 어떻게 먹고 살지. 나중에 들으니 여름 한철 이끼를 먹고 10킬로까지 지방을 축적해 겨울을 난단다. 겨울엔 눈을 뜯어먹는다. “눈에도 약간의 양분이 있기 때문이란다. 정말 힘든 인생을 선택한 동물들이다.

 
다운타운 한 가운데 있는 건물은 여행자 안내센터 겸 스발바르의 유일한 박물관 스발바르 뮤지엄겸 롱이어비엔 대학이었다. 북극 연구소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빙하학, 동물학, 지질학 같은 걸 연구한다는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대학스러운 건물은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 보디숍만 보였다. 그렇다, 백화점 지하에도 있는 그 영국 자연주의 화장품 브랜드 보디숍이었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오직 살이 트는 것을 막기 위해 국기가 그려져 있는 뉴트로지나 화장품만 쓰는 줄 알았는데, 이런 꽃냄새 나는 화장품도 좋아하실 줄이야.

무엇보다 보디숍이 이 정도로 대단한 다국적 브랜드일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
. 맥도날드도 스타벅스도 버거킹도 모두 반성해야 한다. 가게라고 해 봐야 장르별로 하나씩 있는 북극의 작은 마을까지 보디숍이 진출하는 동안 뭘 했단 말인가
. 쓰나미의 속도로 지역 경제를 붕괴시킨다는 공격적 다국적 자본이란 이름이 부끄럽지 않나. 여행자 안내센터에는 문 여는 시간이라고 적힌 A4 용지가 비치돼 있었는데, 그게 롱이어비엔 전화번호부였다. 모든 가게와 상업시설의 영업시간과 전화번호가 다 적혀 있다. 요일별 영업시간까지 별도로 표기해서다.


(롱이어비엔 마을 전경. 이 도로가 메인 도로입니다)

, 그래도 없는 건 없었다. 벤치가 놓여있는 조그만 광장을 둘러싸고 우체국, 수퍼마켓, 여행사, 심지어 신문사도 있었다. 부정기 간행되긴 하지만 스발바르를 대표하는 자유 언론 스발바르 포스텐이다. 세계 최북단에서 발행되는 신문사 옆에는 세계 최북단의 수퍼마켓, 스발바르부티켄이 있었다. 수퍼마켓 한 귀퉁이는 술을 파는 리쿼스토어였다. 외국인에겐 면세다. 점원이 내 여권 사이에 끼어 있던 항공 탑승권을 꺼내더니 뒷면에 연필로 ‘2, 1, 17’ 이라고 썼다. 면세 한도가 앞으로 보드카 2, 와인 1, 맥주 17캔이란다. 인심도 후하다. 세계 최북단의 우체국에도 갔다. 한국에 보낼 우표 두 장을 사는데, 우체국 직원이 나 한국에 가 본 적 있다며 반가워했다. 1997년에 어린이 캠프 활동가로 한 달 동안 가 있었단다.

우체국 문에는
총을 소지하고 들어올 수 없습니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수퍼 입구에도, 여행사 입구에도, 여행자 안내센터에도 똑같은 경고문이 붙어 있다. 스발바르엔 총이 천지였다. 그게 다 북극곰 때문이다. 스발바르 전체에 5000~7000마리의 북극곰이 산다. 사람보다 북극곰이 3배는 더 많이 사는 셈이다. 곰이 다운타운까지 내려오는 일은 좀처럼 없지만, 사람이 다운타운 밖으로 나갈 일은 있다. 그럴 땐 반드시 총을 메고 가야 한다. 북극곰을 쏘라는 게 아니다. 허공에 총을 쏘아 북극곰이 도망가게 하라는 거다. 북극곰은 멸종위기 동물이기 때문에 쏘았다간 비행기가 스발바르를 떠나는 시간까지 경찰서에 앉아 조서를 쓰는 신세가 될 확률이 몹시 높다.

어쨌거나 관광객도 혼자서 다운타운에서 3킬로 이상 벗어나려면 총을 빌려야 한다. 쇼핑몰에 총 빌려주는 가게도 있다. 아무에게나 빌려주는 것은 아니고, 총 쏠 수 있다는 대여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폐광된 3호 광산 근처에 사격 테스트장이 있다. 북극곰은 대한민국 남아치고 사격 안 해 본 사람이 있겠느냐며 가슴을 땅땅 쳤다. 그런데 과녁에 볼펜으로 총구멍을 냈다는 북극곰의 과거가 잊으려 애써도 자꾸만 생각났다. 안내 직원도 북극곰이 못 미더운 모양이었다. “사실 총이 새 건 아니에요. 2차 대전 때 쓰던 것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나치 스와스티카? 맞아요, 그 모양. 그게 붙어 있는 것도 있다고 하던데.”


 

(롱이어비엔 도로의 끝. 북극곰이 있으니 이 이상 진입하지 마시오, 뭐 이렇게 쓰여있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다)

총 없이 롱이어비엔에서 어슬렁거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 숙소와 롱이어비엔의 딱 중간쯤에 있는 스발바르 유일의 갤러리에 가서 오로라 영상 쇼도 보고, 언덕 위에 있는 스발바르 유일의 교회에도 갔다. 교회 옆은 묘지였다. 20세기 초 유럽을 휩쓴 스페인 인플루엔자로 스발바르에서도 6명이나 사망했다. 하얀 십자가가 꽂힌 그들의 무덤이 남아 있다. 우리 말고도 할 일 없는 관광객들이 십자가와 묘지를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래도 해는 중천이었다
. 질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저녁은 저녁이라고, 스발바르 유일의 바에서는 광부와 관광객과 과학자들이 삼삼오오 저녁을 먹고 있었다. 메뉴판에는 순록, 물개, 북극곰 고기도 적혀 있었다. 북극곰 고기 옆에는 조그마한 글씨로 소송 걸지 않겠다고 서약하면 팝니다라고 적혀 있다. 광부들은 맥주 한 잔에 땀을 식히고, 연구자들은 와인잔을 부딪치며 무지개 너머의 과학적 진실을 토로하는 밤. 여기서 저녁을 먹고 숙소까지 걸어가면 배가 다 꺼지는 건 아닐까. 그래도 해가 나를 따라오니 걸어가는 길이 쓸쓸하지는 않을 것이다.


Posted by orc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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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쏘댕기자 2011.04.13 19: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페인 독감'이 사실은 다른 나라(프랑스?)서 최초 발생했다고. 그러나 1차대전 때메 언론이 통제되었던지라 스페인이 덤터기를 썼대나 어쨌다나.

  2. 갈매 2011.04.14 1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이 좀 더 시원하면 좋겠다는, 독자로서 간절한 소망이 있습니당~~^^

    우와.. 순록(저게 영어로 무쓰야, 레인디어야?)!! 빙하가 덮힌 피요르드 !
    멋지다. 역시 북극이 주는 정취가 있어~~

    북극곰 고기는 어떤 맛일까.. ㅋ 사실 그닥 끌리진 않네.
    예전에 중국갔을때 파미르고원 지나서, 어느 산골마을에서 야크 고기 탕을 먹어봤는데. 냄새는 나지만 쇠고기국 맛이더라구. ^^

    이 여행기를 보니.. 왠지 벌써 최멍은 여름휴가 계획을 한참 세우고 있을 것 같다는..

  3. 레이 2011.04.22 0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 재밌게 읽고갑니다^^
    자주 업뎃 부탁드리면,...민폐인가요? ^^

  4. koreansk 2011.05.11 18: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일리지로 스발바르에 다녀온 사람이 또 있다니!!!! ㅋㅋㅋ

  5. 유진ㅋ 2011.09.09 16: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헐.. 아이폰으로 세계지도 보다가 문득 스발바르라는곳을 발견해서 호기심에여기까지왔네요 관광지중에 가장 북쪽에있는곳이군요ㅎㅎ 뭔가신비롭네요ㅋ

  6. inemajor 2012.06.29 1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혹시나 스발바르를 다녀온 한국 사람이 있을까 싶어 구글 검색해 봤더니
    이 글이 제일 위에 rank되어 있었습니다.

    저 또한 아시아나 마일리지로 갈 예정이라, 이것도 반갑(?)구요.
    보너스 여행권 최저 카테고리(<3000mi) 다녀올 수 있는 마일리지로
    가장 실속있는 여행이 될 것 같아서 계획했지요.
    제가 사는 스톡홀름에서 TOS, LYR, OSL 거쳐 다시 돌아오는 단촐한 여정이지만..

    사진 속 북극곰 주의 표지판에 "Gjelder hele Svalbard"는
    "스발바르 전역(全域)에 적용/해당됨"이라는 뜻입니다.

    저도 가서 열심히 사진찍고 메모하고,
    무엇보다 많이 느끼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드네요.
    잘 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