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파나마에서 열리는 국제포경위원회(IWC) 에서 과학적 목적의 포경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했죠. 그 소식이 채 우리나라에 알려지기도 전에 전세계로 빠른 속도로 타전됐습니다. 미국 국무부도 성명을 발표하고, 호주와 뉴질랜드도 '좌시할 수 없다'고 강력하게 반대 뜻을 밝혔지요. 특히 호주는 주한 호주 대사를 시켜 항의도 하면서 펄쩍 뛰고 있지요.

왜 그럴까요? 왜? 다른 나라도 아닌 호주가 그렇게 펄쩍 뛰는 걸까요? 호주가 유난히 자연보호 의식이 높은 '선진국'이어서 그럴까요?

 

(바로 이 분이 한국의 포경 재개를 강력 반대하시는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십니다. 사진은 연합뉴스)

 

호주가 전세계에서 가장 동물과 자연을 사랑하는 나라여서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뭐 호주는 광활한 대자연이 있으니까 좀 사랑할 것 같긴 합니다만, 그런 이유로 외교 분쟁을 불사하지는 않겠죠. 그보다는 한국이 일본처럼 되는 건 아닌가 싶어 경계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일본이 과학 목적으로 매년 밍크 1000마리를 남빙양에서 잡고 있습니다. 남빙양이 어디냐, 남극해입니다. 호주 앞...은 아니고 뒷바다죠. 일본의 포경 때문에 호주 인근의 밍크 고래가 줄어들고 있고, 이건 호주의 고래 관광 산업을 위협하는 거죠.

 

호주는 뉴질랜드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고래관광이 발달한 곳 중 하나입니다. (네, 호주와 함께 뉴질랜드도 한국의 포경 재개에 펄쩍 뛰었습니다) 지금에야 그렇지만 호주도 우리나라처럼 예전엔 고래를 잡았답니다. 호주가 본격적으로 포경에 뛰어든 것은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일인데요, 10년 정도 잡다가 고래 개체수가 현저히 줄어들면서 그만뒀죠. 그러다 90년대 초반부터 고래 관광으로 전환합니다.

 

슬그머니 시작해 본 고래 관광은 엄청난 수의 관광객을 불러들였습니다. 호주 고래 관광객이 91년에 33만5200명이었는데, 98년에는 2배가 넘는 73만5000여명으로 늘어납니다. 고래를 돈으로 세자니 좀 아니다 싶지만 어쨌거나, 98년 고래 관광 수입이 직접 수입만 1187만 달러, 호텔이며 교통편이며 해서 간접 수입까지 합치면 5600만 달러였습니다. 고래 아마 지금은 몇 배 이상 늘었을 겁니다. 이 조사를 하신 국제야생동물보호기구(IFAW)의 호이트 박사께서 2001년 이후로 조사를 안 하셔서...ㅠㅜ 이 분은 스코틀랜드에 사시는데, 언젠가 아마존으로 이분 책을 샀더니 본인이 직접 파시는 거더라고요. 어쨌거나, 고래를 잡아서 이용하는 것보다, 살려서 이용하는 게 이익이 된다는 거죠.

 

이렇게 포경에서 고래 관광으로 탈바꿈한 대표적인 지역이 바로 탕갈루마 리조트 입니다. 요즘은 한국인 신혼 여행객들도 많이 간답니다. 심지어 홈페이지에 한국어 버전도 있습니다. 호주 북동부, 브리스번 근처의 모튼이란 섬에 있네요. 인터넷에 탕갈루마 리조트 쳐 보시면, '야생 돌고래 먹이 주기는 꼭 하고 오세요' 뭐 이런 것 나옵니다. 이 리조트의 대표적인 상품이 고래 관광 보트를 타는 것과, 돌고래 먹이 주기 두 가지죠.

 

 

(네 여깁니다. http://www.qldtravel.com.au)

 

 

(탕갈루마 리조트 근처에서 보이는 고래. 등지느러미로 보니 밍크인 것 같습니다. 바로 우리나라 연근해에서 많이 보이는 고래도 밍크죠. http://www.whalewatchingqueensland.com.au)

 

이 탕갈루마 리조트는 사실 호주 최대의 포경 항구였답니다. 포경기지가 1952년에 세워졌는데, 그 뒤 10년간 혹등고래만 6700여마리를 잡아들였죠. 지금 탕갈루마 리조트 관계자들이 이 사실을 상기하면 땅을 칠 겁니다. 혹등고래가 고래 관광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멋진 고래 중 하나거든요. 몸집도 커서 15-20미터쯤 되고 (밍크는 4-5미터 '밖에' 안됩니다), 물 위로도 펄쩍 펄쩍 잘 뛰어올라요. 고래 관광 사진에 항상 나오는 바로 그 고래, 이겁니다.  

 

(멋진 혹등고래 입니다. 위키피디아에서 퍼왔습니다)

그러나 포경으로 혹등고래는 씨가 말라버렸죠. 포경 기지가 세워진 52년만 해도 1만여마리가 있었다는데, 60년대 이후엔 300 마리도 안 남았다고 합니다. 대부분은 잡혔고, 일부는 '내 이 땅, 아니 이 물을 다시 밟나 봐라' 면서 박해를 피해 떠났겠죠. 고래는 영리한 동물이니까요. 어쨌거나 60년대 이후엔 고래가 안 보였고, 포경기지는 문을 닫았습니다. 원래 풍경이 나쁜 곳은 아니어서 그 뒤로 관광 산업을 좀 해 보려고 했지만 쉬원찮았죠.

 

그 탕갈루마 리조트가 고래 관광지로 바뀐 것은 1992년입니다. 현재 이 리조트를 운영하는 회사가 망해 가던 숙소를 사 들여서 업스케일 휴앙지로 대대적으로 리모델링 했습니다. 지금 리조트 자리가 바로 포경선 선원들의 숙소 자리입니다. 인터넷 블로그를 보면 탕갈루마 리조트 부두에서 배를 탔다, 비치에서 맥주 한 잔 했다, 이런 이야기 자주 나오는데, 그 부두가 바로 50년 전 포경선을 정박시키던 항구입니다. 리조트에서 고래 관광 보트도 운영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고작 30년 안 잡은 걸로는 고래 개체수가 회복이 안 됐나 봅니다. 고래 목격 확률이 조금씩 높아지긴 했지만 허탕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리조트가 고안해 낸 게 '야생 돌고래 먹이 주기' 였습니다. 근처에 돌고래가 좀 보인다는 사실에 착안해서, 해변에서 먹이 들고 기다리고 있는 거죠. 영리한 돌고래는 밥 때가 되면 공짜 밥을 찾아서 잘 찾아왔습니다. 먹이도 먹고, 관광객과 눈인사도 했죠. 이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탕갈루마 리조트의 대표 상품이 됐습니다. 덕분에 탕갈루마 리조트도 친환경, 친동물, 에코투어의 선봉 뭐 그런 이미지를 갖게 됐죠. (이거 뭐 리조트 광고를 하는 기분이...ㅠㅜ) 더불어 호주 전체가 캥거루와 고래와 월러비를 사랑하는 나라, 자연의 나라 뭐 이렇게 인식됩니다.

 

(바로 이 프로그램입니다. 저도 꼭 해보고 싶어요 흑흑 http://www.tm6.net/travel/whale-watching-at-tangalooma/)

 

호주가 남의 나라 포경 재개에 펄쩍 뛰는 건 바로 이런 이유와 경험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고래를 죽여서 이용하는 것보다 살려서 이용하는 것이 훨씬 이익이 된다는 거죠. 우리나라가 과학 목적으로 포경을 재개한다고 해서, 일본처럼 당장 남빙양까지 달려가 고래를 잡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일단 포경을 허용하면, 우리나라 주변에서 남빙양으로 영역이 확대되는 것은 순간일 겁니다. 그러니 호주가 펄쩍 뛰는 것 같습니다. 고래가 죽은 고래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걸 그들은 경험적으로 배웠으니까요.

 

사실 우리나라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2009년부터 울산 장생포에서 고래 관광 을 하고 있답니다. 고래를 살려서 이용하는 관광을 하면서, 동시에 고래를 죽여서 이용하는 고래 고기를 파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형태의 고래 관광지입니다. 정부의 포경 선언 이후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보면 '고래가 불쌍해요' '왜 포경을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런 글들이 많은데, 그렇다면 울산으로 고래 관광을 가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관광객 백만명이 살아있는 고래를 보러 오겠다는데, 정부가 포경을 재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장생포 고래 관광, 나름 재미가 있습니다. 장생포 고래 탐조 배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싼 고래 탐조 보트 여행일 겁니다. 외국에서 고래 탐조배 한 번 타려면 한 사람이 100달러는 쥐어야 하는데, 여긴 2만원입니다. 물론 배가 엄청 크고 (대신 큰 배는 덜 흔들리는 장점이...) 갑판이 한낮의 가요무대로 바뀌는 (뒷 갑판으로 피신하면 됩니다) 단점이 있긴 하죠. 고래가 잘 안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고래 탐조 관광 자체가 원래 그렇습니다. 세계 어디서나 고래 관광을 하면, 운이 아주 좋지 않은 이상, 아마 고래의 등짝을 잠깐 보거나, 고래 그림자 비슷한 걸 보는 정도에 그칠 겁니다. 또 모르잖아요? 고래가 떼로 나타나 주실지도. 저는 장생포에서 관광 탐조선 세 번, 조사선 한 번 이렇게 네 번 배를 탔는데, 한번은 밍크 보고, 다른 한번은 바다의 이 쪽에서 저 쪽 끝까지 메운 돌고래 떼를 봤습니다.

 

돌고래 쫓아가다 월북할 뻔한 이야기는 여기를 클릭! 허접하지만 돌고래 동영상도 있습니다

 

(고래 바다 여행선입니다)

 

그리고 다른 자잘한 재미들도 있습니다. 고래 박물관이 있는데 -환경단체들은 포경 박물관이라고 걱정하는 곳이기도 하죠 - 여기서 우리나라 포경의 역사와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포경사가 재미있었는데, '반구대 암각화에 고래가 나온다' 그 다음이 '1900년대 일본이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포경을 시작했다' 입니다. 중간에 서너 줄 더 있긴 하지만, 고래가 목격됐거나, 어떻게 이용했다는 거지, 고래를 잡았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목격됐다는 것과 포경을 했다는 건 좀 다른 문제죠. 아, 1900년대 초반에 노르웨이 포경 선원이 장생포에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을 겁니다. 세상에 그 분은 어떻게 까마득한 그 시절에 '세상의 끝'에 오셨을까요.

 

(고래 박물관 전경이에요)

 

(고래 생태체험관입니다. 살아있는 돌고래가 전시돼 있는 곳이죠)

 

(장생포 부두의 고래 고기 전문점 중 하나입니다.)

 

장생포에서 고래 관광을 하시고 나면 많은 분들은 복잡한 심정이 되실 것 같아요. 저도 그랬거든요. 고래를 해체하는 사진도 한 장 걸려 있었는데, 전시하는 입장에선 지역 문화로 걸어 놓으셨겠지만, 그걸 '살해 장면'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거고요. 어쨌든 장생포에서 1900년대 이후 고래를 잡은 것은 사실이고, 그것이 지역 문화의 일부인 것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고래 고기 식용 문제 때문에 장생포가 겪은 우여곡절도, 지금의 포경 재개 논란도 바로 그 문화의 일부일 것 같고요. 그렇지만 우리가 멸종 위기에 있는 야생동물을 전통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서라며 잡아도 되는 걸까요? 아니, 멸종 위기에 있지 않다 하더라도 그런 대형 포유류를 잡아도 되는 걸까요? 혹시 우리가 고래를 보호한다면서 장생포의 주민들을 '아직도 고래고기를 먹는 사람들'이라며 따돌리고 있는 건 아닐까요? 혹시 고래 고기와 포경은 이제는 청산해야 할 우리 모두의 역사적 과거는 아닐까요? 

 

장생포에서 관광객들은 지역 문화, 전통 문화, 지역 개발, 우리의 일부인 자연, 살아있는 생명의 보존, 수족관에 갖힌 돌고래, 식민지 문화 이런 것들에 대해, 고민하게 되실 겁니다. 바로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바로 지금의 장생포에 가는 거죠. 그리고 그런 (머리 아픈) 여행이 내 삶의 방식을 바꾸고, 그런 여행자가 십만명 백만명이 될 때 우리 문명의 방향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여행은 힘이 세니까요.

 

참, 고래 고기는 아마 못 드실 거에요. (다행히도) 비쌉니다 ㅠㅜ. 고래가 아니어도 식당에는 이것 저것 많이 팝니다. 저는 부둣가 어디에서 자장면을 먹었는데, 그게 어찌나 맛있었는지 지금도 가끔 생각 납니다.

 

 

장생포 어딘가 벽에 그려져 있던 그림입니다. 초등학생들이 그린 고래 그림이랍니다. 나와 도요새와 상괭이가, 그리고 울산 앞바다의 밍크 고래와 돌고래가 함께 행복한 세상, 괜히 뭉클한 그림입니다. 그런 세상을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Posted by orca35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딸기 2012.07.07 1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재밌다. 언젠가 기사로 쓴 적이 있긴 한데, 아주 짧게 건드리느라고 제대로 보지를 못했는데...
    역시 고래전문가가 설명해주니 다르네! 호주의 돌고래 관광은 정말 꼭 해보고 싶다 ㅠ.ㅠ
    (참 그런데 '국무성'->국무부. 국무성은 일본 표현... 지금은 국무성, 수상, 이런 말 안 씀)
    근데 왜 울나라가 포경산업 하겠다고 저 난리인지... 하는 짓이 어째 허구헌날 그 모양인지...

  2. 쎾쓰 2012.07.08 0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쎾쓰

  3. 이인숙 2012.07.09 1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배, 글 너무 잘봤어요...지금 이 상황이 한눈에 이해되는. 때맞춰 넘 잘올려주셨어요^^ 열씨미 여기저기 알려야겠네요.

  4. Ray 2012.07.14 0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의 글 반가웠어요^^
    들어올때마다 업뎃은 안되있나 궁금햤는데 오랜만에 기자님 글 보니 넘 즐겁게 읽었답니다^^ 며칠전엔 경향에 연재하신 북극권 나라 이야기를 정주행 했더랬죠 ㅋ
    고래 포경 뉴스는 얼마전 봤었는데 호주가 반대하는 이유가 있었군요. 전 왜 반대하나 했는데 속사정이 따로 있군요. 늘 깊이 있고 좋은정보를 재밌게 풀어주시니 좋네요^^
    아직 영국에 계시나요? 한국은 이제 장마 아닌 우기로군요. 늘 건강 조심하시길 바랄게요. 아참, 글도 자주 뵈었음 좋겠네요^^



최근에 인도양의 섬에서 원시 부족 '인간 사파리' 투어를 한다고 해서 논란이 됐었죠. 영국 일간 <가디언>의 주간지 격인 <옵저버>에서 폭로 기사를 썼는데요, 저희도 학교에서 이걸로 토론도 하고, 분개도 하고 시끄러웠습니다.


문제가 되었던 게 바로 이 비디오 클립들이었습니다. 거의 벌거벗은 부족 여성들이 관광객 앞에서 춤추고, 노래도 부르고 그러죠. 이 필름 클립들은 가디언 온라인(클릭)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 로이터>


일단 이 '인간 사파리'가 이뤄진 곳이 어디냐. 바로 여깁니다. 인도와 버마 사이의 인도양, 벵갈만에 안다만 제도가 있습니다. 거기 섬 중 하나죠. 여기 안다만 섬의 남쪽에 거대한 정글 보호 구역이 있는데, 거기가 바로 자라와 Jarawa 부족이 사는 곳입니다.  



<출처: 가디언 웹사이트 Credit: Giulio Frigieri>



자라와 부족은 현재 400명 정도 남아 있는 소수 부족입니다. 원시 부족이나 자연이 별로 없는 우리로선 상상하기 어렵지만, 아마존이나 보르네오 섬의 정글 같은 곳엔 아직까지 외부 세상과 거의 접촉하지 않은 부족들이 살고 있답니다. 자라와 족은 96년에야 외부 세계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젊은 사냥꾼 하나가 사냥하다 조난당했는데, 어찌어찌 도움을 받아 외부 세계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답니다. 돌아온 그가 '바깥 세상은 어떻더라 저떻더라' 하면서 98년 처음 외부와 접촉이 시작됐죠. 40-50명 정도가 무리를 이뤄서 노마드처럼 사는데, 남자들은 화살로 돼지나 거북이를 잡고, 여자들은 꿀이나 과일을 채집해서 먹고 삽니다.

외부와의 접촉 통로가 바로 이 도로입니다. 정글 보호 구역을 가로지르는 '안다만 트렁크 로드' 예요. 관광은 98년 시작됐는데, 그냥 차로 이 도로를 가로지르는 겁니다. 정글 구경도 하고, 그러다 자라와 족이 보이면 하이, 인사도 하는 그런 취지였겠죠. 그러나 문제는, 이게 말 처럼 안 된다는 거죠.



<출처: Survival International>

일단 관광객들은 '희귀한 장면'을 사진에 담아 가져오고픈 강한 욕망이 있죠. 분명 보호구역 입구에 '사진 찍지 마시오' '자연이고 동물이고 아무것도 건드리지 마시오' 라고 적혀 있지만, "나 하나 쯤이야" 생각한 관광객들이, 한두명도 아니고, 하루에 차량 130대에 버스 25대 분량으로 꾸역꾸역 밀려 들어왔습니다. 원래 합의한 것은 차량 8대였다더군요. 관광객들이 사진만 찍는 게 아니라, 주민들에게 바나나도 던지고, 비스킷도 던지면서 그야말로 '인간 사파리'가 됩니다. 관광객을 '아빠'로 태어난 아이들도 있답니다. 부족 공동체 사회에서 용인되지 않기 때문에 이 아이들은 살아남지 못한답니다.



<출처: Survival International>

부족민들도 관광객들을 굳이 찾아 왔습니다. 사냥 하려면 힘들고 귀찮지만, 도로변에 가면 관광객들이 먹을 걸 주거든요. 관광객들이 돈을 주면, 잘 모아 두었다가 경찰에게 주면, 경찰이 술도 갖다 주고, 담배도 갖다 주고 그랬답니다. 관광객들이 부족민들 방해 못하게 감시하라고 경찰을 붙여 놨더니, 경찰들이 돈 개념 없는 부족민들을 이용해 '장사'를 한 거죠.


인근 대도시에 가면 "100% 원주민 목격하게 해 드립니다"는 여행 상품을 파는데, 그게 경찰들에게 200파운드, 우리 돈으로 40만원 정도 뇌물을 주고 하는 거라네요. 그럼 경찰들이 원주민들도 (소떼처럼) 몰아 오고, 구걸하는 것도 가르치고, 춤 추라고도 시키고 한답니다. 관광객-원주민-경찰-여행사가 뭔가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지기는 하지만 참 어이가 없는....ㅠㅜ



<출처: Survival International>

'인간 사파리'에 전세계가 광분한 것을 보면, 적어도 우리가, 인간이 다른 인간을 상품화하고 소비해서는 안 된다는 데 대체로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어쩌면 그보다는 이 '인간 사파리'라는 용어 자체가 언론이나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해서일수도 있겠지만요. (이 포스팅의 제목을 '인간 사파리'로 달고 쓰고 있는 저도..ㅠㅜ )


인간 사파리 14년째를 맞는 자라와 부족의 삶은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이 사진을 보시다시피, 멀쩡히 사냥해야 할 청년이 애를 데리고 와서 관광객 지나가는 길목에 기다리고 앉아 있습니다. 사냥을 안 해도 되어서 좋을까요? 원주민들도 좋든 싫든 외부 세계와 접촉할 수밖에 없는 걸까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방식이 옳은 것일까요?


자라와 족은 2000년대 이후 두번의 큰 돌림병을 겪었답니다. 고립된 채 살아왔기 때문에 외부 세계의 질병에 면역력이 없는 거죠. 홍역이나 말라리아가 이들에겐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서구의 습격' 이후 에스키모의 90%가 다른 것도 아니고, 감기로 죽었다고 하잖아요. 그리고 외부 세계와 접촉하면서 받게 되는 문화 충격도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런 원시 부족들이 외부와 본격 접촉하게 되면, 보통 정부에서 나서서 집도 주고, 돈도 주고, 직업도 주면서 먹고 살게 해 준답니다. 원주민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다시 구걸을 하거나, 아파 죽거나, 혹은 자살을 해 버린대요. 문화와 언어에 대한 자긍심이 없어지면서, 삶과 미래에 대한 의지도 사라진답니다. 안다만 섬의 가장 큰 원주민 부족은 18세기 말만 해도 1만명이었는데, 지금은 50여명으로 줄었답니다. 그 동안 세계 인구는 풍선처럼 늘었는데도요. 이 자라와 족이 그 원주민 부족의 전철을 밟을까 두렵습니다.

이 사태가 전세계에 일파만파 알려진 뒤, 인도 정부가 여행사 3곳을 영업정지 시키고, 여행사 직원 2명에게 7년형을 구형했답니다. 이 직원들은 강력히 항의했답니다 - 우린 관광객을 데리고 갔을 뿐이다, 거기서 사진 찍고 먹을 것 던져 준 건 관광객 잘못이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죠. 관광객들도 할 말이 없지 않겠죠 - 우린 상품이 있어서 갔을 뿐이다. 춤 추길래 돈이나 먹을 것으로 답례를 했다. 자라와 족 입장에서도, 사람들이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기에 갔을 뿐이다. 우린 원래 외부인에게 친절한 부족이다, 라고 말하겠죠.

 

자라와 족 등의 원주민 부족 보호 운동을 펼치고 있는 국제 단체 '서바이벌 인터내셔널'이 내놓은 답은 이겁니다. 정글 보호구역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폐쇄하라고. 이미 2002년에 인도 상급법원이 이 도로를 폐쇄하라고 했지만, 여행사들도 미적거리고, 동네 주민들도 미적거리면서 아직까지도 폐쇄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모두가 이 '인간 사파리'의 공범인 거죠.


'서바이벌 인터내셔널'은 인도 정부에 도로 폐쇄를 촉구하는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여기 를 클릭하시면, 페이스북으로도 할 수 있습니다.


<출처: Survival International>

자라와 부족 어린이의 모습입니다. 자라와 족은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현생 인류 가운데 아시아로 건너온 무리의 후손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나무 밑에서 썩도록 두었다가, 그 뼈를 추려서 가지고 돌아온답니다. 사냥할 때 행운을 준다네요. 문화적 자긍심이 높고 아름다운 이 부족이, 오랫동안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때로는 관광을 멈추는 것이, 윤리적 관광객이 되는 길이 아닐까요. 





Posted by orca35

댓글을 달아 주세요



처칠의 캐치프레이즈는 전세계 북극곰의 수도 the Polar Bear Capital of the World. 처칠역 입구에 처칠역글자보다도 더 커다랗게 간판이 붙어 있다. 세계 어디나 지방 관광 활성화를 위해 나름의 캐치프레이즈를 고안해 붙이고 있다.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우리나라 강원도 양구군의 병영 추억의 고장’ (도대체 누가 다시 오고 싶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이었고, 그래도 가장 현실에 가까운 캐치프레이즈가 처칠이었다. 심지어 바다 건너 스발바르 관광 정보를 공유하는 스발바르 포럼에서도 정녕 북극곰이 보고 싶다면 캐나다 처칠로 가라고 안내하고 있다. 아무렴 처칠엔 북극곰이 난무했다. 수퍼마켓에서 파는 민트 사탕에도 북극곰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북극곰 입냄새도 박멸!’), 북극곰 출몰 주의 안내판(‘북극곰 떴다하면 654-BEAR’)도 팔았다. 정말 자동차에 붙어 있는 건 못 봤는데, 북극곰 모양으로 만들어진 자동차 번호판도 있었다.


다만 북극곰만 없었다
. 툰드라 버기를 타고 종일 북극곰을 찾아다닌 끝에 우리가 본 북극곰은 도합 두 마리였다. 곰 찾다가 눈에 핏발이 선 우리에게 가이드는 미안한 얼굴로 이게 다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지구가 빠른 속도로 온난해져도, 지난해 40마리이던 북극곰이 올해 2마리로 줄 수는 없다! 진실을 향한 불타는 열망으로 우리는 직접 북극곰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일단 차부터 빌려야 했다. 북극곰의 습격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무기도 없었고, 곰보다 빨리 뛸 자신도 없었다. 북극곰은 내키면 시속 50킬로로 뛸 수 있다. 나는 간신히 시속 5킬로로 걸을 수 있다.차를 빌리고 싶다고 하자 호스텔 주인이 잠시 꿰뚫는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북극곰 좇아갔다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 철없는 관광객이 또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너희들 말이야, 여기 도로를 다 합쳐 봐야 22킬로 밖에 안 된다는 건 알고 있는 거지?”


(전세계 북극곰의 수도 처칠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5월말부터 9월까지는 조류 탐조의 천국!)

중고차 전문 탐락 렌터카엔 차 한 대가 남아 있었다. 렌터카 업체 주인은 코를 훌쩍이면서 싹싹하게 물었다. “북극곰 찾으러 가려는 거죠? 여기, 동네 쓰레기 매립장. 뭐랄까, ‘북극곰 식탁이라고나 할까. 해질 때 가면 꼭 나와.” 숨길 것도 없었다. 도로도 없는 처칠에서 굳이 렌터카를 빌리는 관광객들은 우리처럼 툰드라 버기에 한을 품은 사람들인 모양이었다. 기름은 이미 만땅으로 채워져 있었다. 돌려줄 때 채워주지 않아도 된다. 뛰어봐야 벼룩, 달려봐야 22킬로다.

론리 플래닛캐나다편은 처칠에 북극곰 외에도 볼 것이 많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골프공 두 개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로켓 관제 센터였던 빈 건물이라든가, 시스템 변경으로 용도 폐기된 로켓 발사대라든가, 실제로는 발사되지 않았던 미사일이라든가, 처칠 앞바다에서 좌초한 전함 같은 것들이었다. 압권은 미스 피기였다. 애칭까지 붙은 이 관광 어트랙션은 1979년 추락한 C46 수송기의 잔해다. 가까이 다가가면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비행기 부품도 볼 수 있다. , 사고가 나서 추락한 뒤 아직까지 치우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보물찾기를 하는 심정으로 마을 외곽에 띄엄띄엄 흩어진 과학 문명의 잔해들을 찾아 다녔다. “오옷! 여기 날개 일부는 형체가 온전해!” “, 여기 유리처럼 보이는 반짝이는 것이 있어!” 망가진 부품 같은 걸 주워들고 기뻐하고 있자니, ‘미래소년 코난에 나오는 코난이라도 된 심정이었다. 핵전쟁으로 인류가 한 번 멸망한 뒤 새로 만들어진 과학 문명 세계 귀퉁이에서 옛 문명의 잔해를 모아 소꿉장난을 하는 소년소녀라고나 할까. 가뜩이나 을씨년스러운데, 날씨까지 한바탕 비라도 뿌릴 듯 흐려졌다.


인류를 멸망시킨 핵전쟁이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은유한다면
, 처칠은 과학 문명의 귀퉁이가 맞았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북국의 이 작은 마을은 냉전 시대 과학 기지로 개발됐다. 처칠 앞바다인 허드슨만에서 직선으로 똑바로 배를 몰고 가면 러시아 최북단의 과학 기지 무르만스크다. 북극을 가로지르는 말 그대로 북극 항로. 그야말로 대단한 지정학적 위치다. 처칠이라는 마을 자체가 이 위치 때문에 만들어졌다. 캐나다 인디언들과 비버며 여우며 북극곰의 모피를 교역하던 유럽의 상인들이 유럽과 북미를 잇는 가장 빠른 루트로 처칠 뱃길에 주목했다.


이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일단 세계지도를 접어서 치우고 지구본을 꺼내야 한다
. 지구본을 두 다리 사이에 끼우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보인다. 프랑스와 영국을 출발한 상선들이 북해를 거슬러 올라와 그린란드를 스쳐 지나 캐나다 북부의 섬과 섬을 가로질러 허드슨만으로 쏙 들어오는 것이다. 지금의 처칠항에 교역센터가 만들어진 것은 1717년의 일이었다. 그 처칠항에는 이제 페인트가 벗겨진 건물에 나무 간판만 처량하게 삐걱거렸다. ‘관광용인지 경고용인지 북극곰 경계 안내판이 앙증맞게 서 있었다.

(처칠 외곽의 북극곰 출몰 주의 표지판)

그 때 싸이렌을 울리며 경찰차 한 대가 눈앞을 가로질렀다. 우리도 재빨리, 싫다는 차를 달래 힘겹게 시동을 걸고 경찰차를 쫓아갔다. 달려봐야 2차선 일직선 도로인데, 경찰차는 쏜살같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거대한 쓰레기 매립장 앞이었다. 쓰레기를 실은 트럭 한 대가 천천히 쓰레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재빨리 차 안을 훑어보고 콜라 캔이며 과자 봉지며 먹다 남은 빵이며를 주섬주섬 챙겼다. 물어보면 쓰레기 버리러 왔다고 할 참이었다. 20미터쯤 차를 몰고 들어왔을까. 쓰레기 더미 위로 하얀 물체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북극곰이었다. 어미곰과 아기곰 두 마리. 곰 가족은 머리를 흔들며 쓰레기 더미를 헤치고 있었다.

어미곰의 배는 멀리서도 홀쭉해 보였다. 북극곰은 자고로 물범을 먹고 살아야 하는데, 물범 사냥을 떠나는 시기가 자꾸만 늦어지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허드슨만이 얼어붙는 시점이 늦어지기 때문이다. 내륙 체류가 생각보다 길어지면서, 배가 고픈 북극곰들은 마을로 마을로 내려오고 있다. 마을 입구의 쓰레기 매립장은 그들의 식탁이 됐다. 어미곰은 쓰레기 더미를 헤치다 말고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아기곰 두 마리가 제대로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는 모양이었다. 천천히 북극곰을 향해 접근하던 인간 북극곰이 자동차의 시동을 껐다. 오른쪽 어깨에 카메라를 걸친 그가 훌쩍 차에서 뛰어내렸다. “안돼! 돌아와!”

(포클레인을 향해 다가가는 북극곰 가족)

내 비명은 그러나 입모양 뿐이었다. 소리를 질렀다간 북극곰이 놀라 도망가실 것 같고, 그대로 두고 보자니 신혼여행 왔다 과부로 돌아가헤드라인이 머릿속에서 번쩍거렸다. 발을 구르고 주먹으로 가슴을 치고 있는데, 쓰레기차 아저씨가 경적을 울렸다. 빵빵. 클락션 소리에 놀란 어미곰이 벌떡 일어났다. 2분 같은 2초였다. 잠시 우리를 빤히 쳐다보던 북극곰은 뒤로 돌아 겅중겅중 뛰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덩어리를 힘겹게 빨던 아기곰 두 마리도 엄마곰을 따랐다. 매립지 언덕 위에 세워 놓은 포클레인의 긴 그림자 너머로 곰 가족은 사라졌다. 가봐야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온 지구가 작정하고 뜨거워지고 있는데. 그 해 겨울엔 이따금씩, 그 곰 가족의 안부가 궁금했다.




Posted by orca35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ugg boots 2013.07.18 01: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눈을 감아봐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면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널 사랑하고 있는거야.



북극곰을 보러 가는 투어 버스는 아침 해도 뜨기 전에 숙소 앞으로 왔다. 노란색 스쿨 버스였다. 먼저 버스에 타고 있던 관광객들이 손을 들고 아는 척을 했다. 노란 점퍼가 써스캐춘 아줌마, 빨간 바바리가 똑똑이 아줌마다. 피난 열차 같은 처칠행 열차에 몸을 싣고 하룻밤을 함께 보낸 우리들 사이에는 이미 끈끈한 동지애가 넘쳐흘렀다. 빈 좌석이 보이면 일단 가방부터 던져 놓았던 그 밤, 점퍼를 담요 삼아 온 몸을 구겨 넣었던 그 새벽, 기차 안 화장실에서 줄을 서서 차례로 이를 닦았던 그 아침, 3시간 늦게 출발한 기차가 반성의 기미도 없이 정확하게 3시간 연착해 처칠역에 도착했던 그 낮. 어차피 사흘 뒤에야 돌아가는 기차가 있을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한 열차를 타고 와서 한 열차를 타고 돌아갈 운명이었다.


(나름 고풍스러운 처칠역. 우리를 데려왔다 데려갈, 연착전문 기차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날 오후 내내 처칠 시내에서 마주쳤다. 처칠은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인구 850. 북극곰 관광객이 몰려드는 10월 말에서 11월 초엔 1200명으로 불어난다. 그래도 수만명의 관광객을 감당하긴 어려워, 북극곰 보러 왔다 아르바이트생으로 한 철을 나고 돌아가는 관광객들도 있다. 주민의 서너 배는 족히 될 관광객들은 식당에서, 박물관에서, 수퍼마켓에서, 그리고 골목에서 수없이 마주쳤다. ‘처칠 모텔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창 밖으로 지나가는 관광객을 세고 있는데, 싹싹한 써스캐춘 아줌마가 우체국에 가면 북극곰 소인 찍어준다!”며 여권을 꺼내 자랑했다. 식당 옆 기념품 가게에서 컵 받침이며 머그컵이며를 구경하고 있는데, 똑똑이 아줌마가 오늘 저녁에 초등학교에서 북극곰 강좌 있다는 이야기 들었어?”라며 뜨거운 동지애로 정보를 나눠줬다.

 

털털거리는 우리의 스쿨버스는 흰 털만 보여도 자지러질 준비가 돼 있는 관광객들을 태우고 고든 곶 으로 향했다. 처칠 시내에서 30분 거리. 처칠만 야생관리구역의 일부인 고든 곶은 북극곰들이 바다가 얼기를 기다리는 일종의 대합실이다. 북극곰이라고 일년 내내 얼음 위에서 보내는 것은 아니다. 처칠의 북극곰들은 여름 한 철은 내륙의 와푸스크 국립공원에서 보내고, 바다가 얼기 시작하는 10월 말 우르르 줄을 지어 바다로 달려간다. 이 때 전세계 관광객과, 사진작가와, 방송국과, 다큐멘터리 제작자도 처칠로 달려온다. 내가 확신을 갖고 이야기하건대, 내셔널지오그래픽도, BBC 북극곰 다큐도, ‘북극의 눈물, 북극곰이 나오는 장면은 대부분 처칠에서 찍었다. 전세계 북극곰은 22000여마리, 그 중 절반이 허드슨만에 살고, 처칠 일대에만 1200마리가 산다. 사람보다 북극곰이 더 많다. ‘물 반 곰 반인 거다. 우리의 투어 버스에도 커다란 렌즈를 둘러멘 프로 삘의 작가가 한 명 타고 있었다.

 

우리는 고든 곶 입구에서 트랙터처럼 바퀴가 커다란 툰드라 버기로 갈아탔다. 표면만 얼었다 녹았다 또 얼기를 거듭하는 툰드라 들판을 방황하며 북극곰을 찾아다니는 것이 오늘의 과업. 가이드를 겸해 국제 북극곰 보호단체 폴라 베어 인터내셔널활동가도 버기에 올랐다. 북극곰의 생태적 중요성과 기후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교육하려고 탔겠지만, 관광객들은 그녀가 1킬로 밖의 북극곰도 찾아내는 소머즈의 눈을 가졌으리라는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손가락만 바라보는 관광객들의 눈을 의식한 듯 그녀가 멀리 희끄무레한 물체를 가리켰다. “저기!....아 북극 토끼네요. , 우리가 아는 토끼보다 약간 큰데 털이 희죠. 보호색이라고나 할까.” 잠시 말을 멈춘 그녀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걱정 마세요, 작년엔 40마리나 우글거렸거든요.”
 

(곰 발견! 오옷 온몸이 새하얀 북극곰입니다)

고래도 곰도
, 내가 나타나면 자기들끼리 텔레파시라도 보내는 걸까. “어이, 이야기 들었어? 걔 또 왔대. 몇 시간은 꼼짝 말고 집에 있어야겠어.” 그것은 마치 우리 동네에서 회사 앞으로 가는 721번 버스가 내가 기다릴 때마다 작정하고 배차시간을 조정해 절대 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40마리나 우글거렸다는 북극곰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흰 것은 토끼요, 여우요, 북극 뇌조였다.


처칠엔 북극곰이 너무 많아 동네 쓰레기통까지 뒤진다더니
, 오늘은 일제히 소풍이라도 갔단 말인가. 숙소인 빙하장 카운터에서 보고 외워온 북극곰 비상전화 654-2327이 무색했다. 일종의 북극곰 119’ 전화번호다. 654를 누르고 영문 철자로 B-E-A-R를 누르면된다. 즉각 출동한 구조대가 말썽꾸러기 북극곰을 포획해, 헬기에 대롱대롱 매달아 고든곶이나 와푸스크 국립공원에 풀어 놓는다. 개전의 정 없이 꾸준히 마을에 출몰하는 죄질 나쁜북극곰들은 허드슨만이 얼 때까지 철창 신세를 지게 된다. 공항 근처에 북극곰 감옥이 있다. 28마리까지 수용할 수 있는데, 작년엔 어찌나 호기심 많고 씩씩한 곰들이 많았는지 감옥이 다 찼다고 한다. 그 인간 친화적인 곰들은 다 어디로 가고 고든곶엔 찬바람만 불었다. 북극곰 인터내셔널 활동가가 민망한 손가락을 움직여 수프와 빵을 날라줬다.


(몹시 빠른 속도로 돌진해오는 북극곰!)

갑자기 버기 안이 웅성거렸다. 먹던 수프를 내려놓고 똑똑이 아줌마가 창가로 다가갔다. “오 마이...” 곰이었다. 흰 점 하나가 지평선에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곰은 성큼성큼 다가와 버기 앞을 지나갔다. 이미 벌떡 일어나 있던 사람들이 이쪽 창가에서 저쪽 창가로 몰려왔다. 훌륭한 차다. 그래도 기울지 않는다. 놈은 우리 옆의 또다른 버기를 향해 정면 돌진했다. 오전 내내 나란히 허탕을 쳤던 경쟁 여행사 차다. 곰은 바퀴를 붙들고 벌떡 일어섰다. 표효는 아니고, 가르랑거리는 북극곰의 말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면 이 쯤 됐을 것이다. “혹시 남는 밥이 있으시면...”


(먹을 걸 달라고 없는 꼬리를 흔들고 있는 북극곰)

헐리우드 연예 스타도 부럽지 않을 카메라 세례 속에서 곰은 바퀴만 툭툭 쳤다. “북극곰은 정말 하얗구나.” 인간 북극곰이 문득 생각났는 중얼거렸다. 눈처럼 새하얗지는 않지만 깨끗한 베이지색이었다. 얼룩덜룩 녹색 이끼가 끼어 있는 우리 동네 어린이 대공원의 북극곰 썰매와는 달랐다. 살고 있는 곳의 기온이 너무 높으면 북극곰 털 속에서 남조류가 번식해 이끼가 낀다. 그렇지만 이 하얀 북극곰은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북극곰은 차가운 북극 바다의 물범을 잡아먹고 산다. 지구 온난화로 북극의 얼음이 줄어들면서 사냥을 하기 위해 수영하는 거리가 길어졌고, 배고프고 지친 북극곰들은 익사하고 있다. 전세계 어린이의 친구, 북극 생태계의 제왕, 세계적 멸종위기종이 처해 있는 오늘의 현실이다.

 
버기 차량 사이를 어슬렁거리던 북극곰은 결국 수확 없이 떠났다
. 북극곰 인터내셔널 활동가에게 귀 따갑게 잔소리를 들은 관광객들은 콩고물 하나 던져주지 않았다. 엉덩이를 흔들며 사라지던 곰은 멀찌감치 툰드라 덤불 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배를 긁으며 낮잠이라도 잘 모양이었다. 그날 오후에 만난 또 다른 북극곰도 낮잠을 자고 있었다. 쪼그리고 엎드려 자는 모습이 인형처럼 귀여운 곰이었다. 그게 끝이었다. 그날 오후 내내 고든 곶의 지형지물을 외울 만큼 뺑글뺑글 돌았지만 더 이상의 곰은 보지 못했다. 전 세계 북극곰의 수도 처칠, 그 중에서도 곰이 떼로 몰려다닌다는 고든 곶에서. “어린이 대공원 북극곰한테 처칠 친구들 안부라도 전해 주려고 했는데...” 인간 북극곰이 혼잣말처럼 대답했다. “영 면목 없게 됐어, 그러게.”


Posted by orca35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ondandu 2011.05.08 1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으면서, 우글거리는 곰 사진을 기대했는데...다음 글 기다릴게요. 포스트 책으로 나와도 재밌을 것 같아요^^




(울산 장생포 가는 길 어느 공장 담벼락. 장생포초등학교 어린이들의 그림으로 벽화를 만들었다.)


불길한 영화의 시작처럼 이야기하자면, 그 하루가 그렇게 길 줄 알았더라면 아예 떠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침부터 어딘가 이상했다. 고래 목시조사 배를 태워주겠다던 울산시청 박선생님은 전날 밤 전화통화에서, 아침 9시30분까지 장생포 냉동창고 뒤로 오라, 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정류장을 놓쳐 직업훈련소 종점까지 갔다가 터덜터덜 냉동창고로 향하는 길. 마침 갓길도 없어 차도의 흰 선을 밟으며 걸어야 했다. 찬바람 부는 냉동창고 앞에는, 배 한척 뿐 아무것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나 속은 거 아닐까. 이 배에 그대로 실려 새우잡이로 팔려가는 거 아닐까. 전화를 할까 말까. 5분만 더 기다려 볼까. 제자리에서 신발로 땅바닥을 쿡쿡 차며 동그라미 맴돌기를 10여분, 저쪽 가건물에서 손 흔드는 사람이 보였다. "배 타시기로 하신 분이시지요?"


정말 작은 배였다. 선장과 선원 2명, 박선생님, 그리고 나였다. 닻을 올리고, 줄을 감고, 시동을 걸고, 배는 천천히 장생포 미포산업단지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바다는 '장판' 처럼 평온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멀미가 쏟아진다기에 어젯밤 급히 사다 붙인 멀미약 자리가 괜히 머쓱할 정도였다. 좁은 만을 빠져나가자, 박 선생님은 의자를 세워 놓은 선실 위로 담요를 감고 올라갔다. 고래가 보이는지, 얼마나 보이는지, 어디서 보이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울산시청이 매주 실시하는 목시조사다. 파도가 몹시 거칠지만 않으면 매주 꾸역꾸역 나간다. 먼 바다에서 고래를 분간할 능력도 없고, 6인용 탁자 하나가 겨우 들어갈 선실에 일없이 앉아 있으니, 괜히 미안한 기분이었다.



(뻘쭘하게 앉아있는 접니다)

고래는, 소리없이 찾아왔다. 갑자기 배가 천천히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바다 저 끝에 갈매기들이 무리를 지어 맴돌고 있었다. 그 아래 거뭇거뭇한 것이, 고래였다. 고래는 물고기를 쫓고, 고래가 먹고 남긴 물고기 부산물을 먹으러 새들이 모여든다. 새 떼 만큼이나 고래도 적지 않아 보였다.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그림자 같던 그것들은, 물 위로 펄쩍 펄쩍 뛰어 올랐다. 참돌고래였다. 한 두 마리가 아니었다. 세마리도 아니었다. 바다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참돌고래 떼가 덮고 있었다. 박선생님이 갑판으로 나오며 말했다. "운 좋네요, 오늘. 올해 들어서 처음 봅니다, 이렇게 많은 건." 


며칠 전 만난 정일근 시인이, 이야기를 하다 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고래 본 적 있어요? 아, 네. 얼마나 봤어요? 뭐 밍크도 좀 보고, 파일럿 고래도 본 적 있고, 오르카처럼 생긴 고래도 멀리서 보고, 또... 정시인이 내 말을 가로막았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고래를 가장 많이 본 사람이에요. 울산 앞에 가면, 돌고래 떼가 수평선 저 끝까지 가득찰 때가 있어요. 수천, 수만마리에요. 고래 한가운데에 내가 있어요. 시간이 딱 정지하고, 고래하고 나만 있어요. 그 감동을, 나는 말로 다 못해요. 고래 보러 가세요. 봐야 압니다.




(똑딱이 디카로 찍은 넘실거리는 고래떼 동영상. 이거 올리려고 지금, 동영상편집기 다운받아 첨 편집(=잘라내기)해 올려봅니다 ㅠㅜ)


수평선의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고래와 나 밖에 없었다. 고래들은 배를 무서워도 않고,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펄쩍 펄쩍 뛰어 올랐다. 배가 하얀 낫돌고래들은 카메라를 아는지 모르는지, 뱃전으로 다가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달리고 또 뛰어올랐다. 카메라의 메모리는 금세 차 깜빡깜빡 빨간 불이 들어왔다. 지우고 찍고, 또 지우고 찍었다. 고래생태관광 가이드라인에는, 고래를 쫓아가지 마라, 고래 뒤에서 접근하지 마라, 피할 거리를 남겨둬라, 속도를 내지 마라, 같은 말들이 나오지만, 지킬 수도 없었다. 뒤로도 고래, 앞으로도 고래, 옆으로도 고래 떼였다. 



(뱃전에서 만져질 듯 가까이 다가오는 돌고래. 네, 가이드라인 따위는 완전 망각했다는 ㅠㅜ)


"관광선에 연락해 줘야지? 요새 못 봤대는데" 선장은 통신 연락망으로 고래바다여행선에, 여기 고래 있으니 관광객 태워서 오라, 고 연락을 보냈다. 울산시 남구청이 주말마다 고래관광선을 운영하는데, 한동안 고래가 보이지 않아 허탕을 쳤다. 평일인데도, 관광선은 곧 출발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그 때까지 고래떼 잘 잡고 있으라는, 주문이었다. 고래는 GPS가 달려 있지 않아 위치를 확인할 수 없으나, 이 배는 찾을 수 있으니, 고래떼를 놓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이 날의 끝나지 않는 항해가 시작된 것은. 


고래떼는 자꾸만 북으로, 북으로 이동했다. 우리도 따라서 북으로 방향을 잡았다. 조금만 한 눈을 팔면, 고래떼는 사라지고 없었다. 고래떼를 따라, 배는 잰걸음으로 달렸다. 장생포에서 1시간 거리에서 목시조사를 할 예정이었는데, 배는 자꾸만 북으로 북으로 향했다. 이러다 월북하지 싶었다. 3시간 안에 장생포항으로 돌아온다고 했는데, 이미 4시간은 훌쩍 넘긴 상태였다. 선장은 어디론가 또 통신을 날렸다. 


한 시간쯤 더 달렸을까. 저 멀리서 검은 점이 보였다. 밥 배였다. 또다른 어업 지도선이, 고래를 좇고 있는 이 배를 위해 국과 찌개를 실어 왔다. 뱃전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밥을 먹으면서, 선원들은 교대로 고래떼를 지켰다. 밥 배가 돌아가고도 한 시간이 지나서야, 저 멀리 관광선이 보였다. 손을 흔들 필요도 없이, 관광선은 고래떼를 향해 달렸다. 관광객들의 환호가, 들리지 않는데도 들리는 것 같았다. 나도 타 봐서 안다. 관광객들은 고래를 보고 환호를 지를 준비가 되어 있다. 그 전 주, 그림자처럼 지나가는 밍크의 지느러미를 보기 위해, 관광객들은 배가 기울만큼 밍크를 향해 달려왔다. 저 멀리 푸른 바다에 불량화소처럼 찍혀 있는 밍크의 등을 보고도 관광객들은, 감탄과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거기가, 생태관광의 희망과 가능성이 있는 지점이다. 



(고래관광여행선의 관광객들. 그다지 환호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 환호하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동해 한가운데서 이제 돌아갈 일만 남았다. 지금 달리면 터미널 가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출발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배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정신없이 고래떼를 좇던 어디쯤에선가, 밧줄이 스크류에 걸려 버린 모양이었다. 경운기처럼 털털거리면서 배는, 꾸역꾸역 서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이 대로라면 오늘 중으로 돌아가기도 어려워 보였다. 나는 다시 선실 안으로 들어갔다. 


파도에 넘실거리는 배의 진동은, 출근길 지하철 진동 만큼이나 규칙적이었다. 어느 순간 이미 졸고 있었다. 중간에 깨어 좀더 빠르다는 다른 배로 갈아타고, 다시 계속 졸았다. 내가 기자에 연구자인데, 무엇보다 이 배에 승선한 유일한 여성인데, 이렇게 머리를 기둥에 쳐박으며 졸아도 되는 것인가, 라는 자각이, 기둥에 머리를 박을 때마다 잠깐잠깐 들었으나 곧 사라졌다. 장생포에 도착할 즈음, 바다 건너편에 고래 해체장 자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사진을 찍으려 애썼던 기억이 얼핏 난다. 


배가 냉동창고로 돌아온 것은 오후 5시. 땅에 발을 딛자 파도를 넘는 것처럼 넘실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저 바다 한가운데에서, 조금 전 까지만 해도, 고래떼 속에 있었는데. 그것은 꿈이었을까. 카메라를 켰다. 찍혀 있다. 그럼 사실이었을까. 아니 꿈이었을까. 가슴이 콩콩 뛰는데, 코에서 비린내가 나는 것 같은데, 그럼 그건 사실이었을까. 



Posted by orca35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쏘댕기자 2011.01.05 0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밤중에 뱃가죽 부여잡고, 킄킄킄

  2. 갈매 2011.01.05 14: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너무너무 재밌다~~ㅎㅎ
    론리플래닛 보면 각 여행지에서 할 수 있는 여러가지 아웃도어활동이 나오잖아. bird watching, whale watching 등등. 미국있을때, 보스턴 앞바다에 가면 고래를 볼 수 있다는거야.
    새따윈 관심없지만, '세상에 고래라니!!고래를 볼 수 있다니.'
    큰 기대를 품고 밤버스를 타고 보스턴항에 갔지. 비가 내려 그날은 꽝, 다음날도 비, 마지막날은 흐렸는데 갔더니, 이런날은 고래가 안보인다나. 허탕치고 실패. 고래는 그렇게 사라져갔지.
    근데 멀리갈 것도 없었군. 울산앞바다에 가면 저리 많은 걸.
    왜 한국에선 고래보러 갈 생각을 못했을까? 이래서 에코투어리즘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거겠지?
    9시뉴스로만 보던 돌고래떼 영상을 이렇게 최멍블로그에서보니 감회가 새로우면서, 나도 가면 막 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착각이 든다! 감동의 포스팅임.^^

    그래 이렇게 각종 기술을 익혀가는거야! 대견, 뿌듯하다! 최멍~ (내가 얼마나 뿌듯해하는지, 이 바쁜 와중에, 장문의 댓글을 남긴 걸보니 알 수 있겠지?)ㅋㅋ ~잘했다, 치타!

    • 갈매 2011.01.07 19:14  댓글주소  수정/삭제

      SNS의 세계는 넓고도 깊다는. 만날 새로운 용어가 나오고, 개념이 나오고.. 어려워어려워~~
      어서 감기가 낫길 바래~~

      고래보러 갈 때 나도 좀 데려가주라~~ ^^

  3. ㅇㅇㅇㅇㅇ 2011.03.13 1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



공정여행축제 라고 들어 보셨나요? 평화여행운동단체인 이매진피스(여기 포스팅 뒤져보면 저 아래 어디에 또 나옵니다만)가 여러 단체들과 함께 매년 겨울 개최하는 일종의 여행 난장 인데요, 올해는 지난 주말, 11일 토요일이었습니다. 

2007년 1회 공정여행축제 때 기사를 썼던 기억이 새록새록... (역시 저는 한 뒤끝^^;)

올해는 성미산 공동체가 함께 했답니다. 성미산 학교, 시민공간 나루, 카페 작은나무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다고 하더라고요. 지도를 그려서 들고 찾아갔습니다.




주 행사장은 성미산 학교 였는데요, 이렇게 벽에 '희망의 지도' 만들기를 붙여 놓았더라고요. 가보고 싶거나, 다녀왔거나 그런 곳들에 엽서를 붙이면 됩니다. 뭐 부쳐주는 건 아니지만 우리 여행자들이 이런 곳, 저런 곳을 마음에 품고 있다, 이런 걸 보여주는 거죠.








저도 하나 썼습니다. 3학년쯤 되어 보이는 꼬마가 또랑또랑하게 하나 쓰고 가라기에 꼬여서.... 저게 말이 안 되는데, 대체로 취지는 "지구온난화로 알래스카의 얼음이 다 없어지기 전에 포인트호프에 다시 가고 싶다" 뭐 이런 겁니다. 스티커가 개구리밖에 없어서 붙이다 보니 말이 꼬여서..


실의 끝이 닿아있는 곳이, 포인트 호프는 아니고 그 근첩니다. 이 지도가 축적이 이상해서 포인트호프는 찾을 수가 없더라고요. 포인트호프는 알래스카 북부의 작은 마을인데요, 고래잡이가 허용된 10개 마을 가운데 하나죠. 제가 갔을 땐 봄철 고래잡이가 막 시작됐을 때였는데요, 매년 6월엔 고래 축제를 한답니다. 그 때 다시 꼭 오겠노라며, 친구들을 데리고 다시 오겠노라며, 약속을 했죠.





엽서를 붙였더니 이런 스티커를 주더라고요. 작년 공정여행축제 때 만들었는데 남았다는...





이... 의상실 같은 매대는 이주노동자센터에서 지원하신 겁니다. 이주노동자 센터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공정여행'에 관심이 많으시더라고요. 여기서 만난 외국인 노동자들과 인연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여행이잖아요.





입어보고 싶었지만 어린이들이 많았던 관계로...-_-




역시 함께 하시는 평화헌책방에서 마련한 헌책 매대입니다.




그러나 정작 책 파시는 분들은 독서 삼매경에.




이주노동자센터는 짜이도 팔았습니다. 그 달착지근하고 계피맛 나는 인도식 밀크티요. 친한 여행기자 선배가 하는 출판사에 계시는, 오랫동안 이주노동자센터에 계셨다는 분(한마디로 잘 모르는 분)이 한 잔 사 주셨습니다. ㅎㅎ





공정무역 상품도 많았어요. 목걸이나, 귀걸이나, 스카프 같은 것들. 티베트에서 '공정밀수'를 해 오시는 게 아닐까 생각되는 제품들이었는데, 되게 예쁘더라고요.





저는 노트를 하나 샀죠. 저 오른쪽 가운데 빨간 노트인데요, 펴면 속지를 갈아낄 수 있게 돼 있습니다. 되게 예쁩니다.





4대강 답사 영상을 켜 놓은 가운데, 4대강 삽질 반대 라면도 팔고 계시고요,





사실 제가 이날 여기 간 목적 가운데 하나는 이것! 저 이야기 섹션 가운데 '지구를 생각하는 여행'에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좀 하러 갔거든요. 제가 맡은 주제는 어마어마하게도, 여행과 환경, 이었는데요, 동물원 이야기랑, 요즘은 새로운 여행, 새로운 여행자가 대세다, 뭐 이런 주장을 장황하게 펼치고 왔죠.





이건 같은 세션의 또다른 발표자인, 제 절친 ㅎ신문의 남동기자입니다. 남동기자는 지구 온난화와 북극곰 이야기라는 주제로 요즘 가계 경제에 이바지함과 동시에 청소년 전문 인기 강사가 되어가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분은 역시 같은 세션의 세번째 발표자셨던 박하재홍 쌤. 저희끼리 이야기지만, '보통 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분 랩도 하시고, 채식도 하시고, 평화헌책방도 하시고, 최근엔 세계일주 신혼여행도 다녀 오셨더라고요. 이날은 여행에서 만난 다양한, 동물 관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재미있는게 많았어요! 에...그날 해 놓은 메모를 보면,

-치앙마이 코끼리 자연 공원: 여긴 관광객 코끼리 타기 상품 때문에 학대받는 코끼리들을 사서 돌보는 일종의 공원인데요, 많은 전세계 여행자들이 와서 코끼리 똥도 치우고, 목욕도 시켜주고 한답니다.

-멕시코 바다거북이 보호 국제 워크 캠프 :여긴 바다거북이가 해변에 와서 알을 낳으면, 다른 동물들이 채가기 전에 잽싸게 챙겨와 부화시킨 뒤 바다에 다시 풀어주는 곳이라네요.

-르완다 고릴라 농장: 여긴 고릴라를 야생에서 볼 수 있는 곳인데요, 고릴라 관광이 르완다의 큰 수입원이긴 하지만, 엄격하게 관광객을 관리/교육시켜 고릴라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 시키고 교육적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그런 곳 같았어요.

-케냐 나이로비 기린 센터: 고아가 된 기린을 돌보는 곳이랍니다.



세상은 넓고 아직 가 볼 곳은 많군요. 으흐흐.

Posted by orca35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후후 2010.12.22 15: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착한 여행을 꿈꾸다..
    마음이 울적한 연말에 꾸는 꿈은
    착한 것 이상의, 그 뭔가가 필요한 듯.

  2. 후후 2010.12.22 15: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행이란 무엇보다, 마음 설레는 무엇,
    뭔가 기대하게 만드는 무엇, 그 무엇이 있어야
    스스로가 스스로를 꼬시는 자기최면의 힘이 잘 붙지 않을까요.
    세상은 넓고 가 볼 곳은 많겠지만
    가 본 곳을 또 가더라도.. "설레임"이 기다리는, 그런 "떠남"이 그립습니다.






물론 얘들은 다 해양 포유류다. 바다코끼리, 해표, 해구, 해달, 해우, 바다소, 듀공, 물개, 바다사자, 물범, 매너티 중, 이 아이들의 이름은 무엇일까?


윗 사진의 위는 바다코끼리, 바닥에 누워있는 애는 물범이다. 그럼 아랫 사진도 물범일까? 아니다. 얘는 물개다. 사람들은 바다의 포유류를 뭍의 포유류에 비유해서 이름을 붙였던 것 같다. 그래서 해양 포유류들은 뭍의 포유류처럼 코끼리, 사자, 범, 개, 소 같은 것들이 있다.  문제는 얘들이 몹시 헷갈린다는 거다.



지난번에 멸종위기종 포스팅을 한 다음에 회사의 '일부' 사람들이 걔들은 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A/S 차원+방학을 앞두고 어린이들의 겨울방학 숙제를 돕고자 하는 마음+이참에 나도 한번 정리하고 넘어가자는 생각에 정리해 보면 대체로 이렇다.


일단, 해표, 해구, 해우 어쩌고 앞에 '해'가 붙는 이름은 '해달'만 남기고 머릿속에서 지운다. 한글 이름으로 풀이해서 읽으면 이해가 더 쉽다. 바다XX/물XX=해X다. 즉, 바다소=해우, 물개=해구, 물범=(바다표범)=해표다. 

(바다코끼리, 해표, 해구, 해달, 해우, 바다소, 듀공, 물개, 바다사자, 물범, 매너티)


먼저, 기각(아)목(Pinnipeds). 얘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물개 물범 어쩌고를 망라한다. 기각은 '지느러미 발' 이란 뜻. 그래서 얘들은 발이 발가락이 없고 지느러미처럼 생겼다. 세 종류가 있다. 바다코끼리(Warlus), 바다사자(Sea lions)/물개(fur seals), 물범(seals)이다. 몸집이 큰 순서대로다. 코끼리>사자>개>범. 범이 개보다 작다는 게 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바다코끼리




얘네는 구분하기 쉽다. 코끼리처럼 상아가 있다. 보시다시피 살도 많고, 움직임도 느릿느릿하다. 마음씨 좋은 콧수염 아저씨 같이 생겼다. 지금은 세계적인 멸종 위기종. 며칠 전 본 남극 다큐에도 나온 걸로 봐서, 남극에도 좀 사는 것 같다.





북극해에 인접한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제도에서 볼 수 있다. 물론, 잘 안 보인다. 스발바르 제도가 얘네의 고향이었는데, 영국 포경 선원들이 고래 잡으러 왔다 식량으로 얘들을 다 해치워서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 사진은 스발바르 북극 박물관에 있는 조그만 디오라마를 접사한 것.


바다사자 / 물개






바다사자와 물개는 영어로는 Eared Seals. 귓바퀴가 없고, 팔이 지느러미처럼 생겼다. 윗 사진이 바다사자, 아랫 사진이 물개다. 그럼 바다사자와 물개의 차이는? 생긴 걸로 봐서는 구분이 어렵다. ㅠㅠ 바다사자가 몸집이 좀 더 크다는 정도다. 행동 방식은 좀 다르다. 바다사자는 평범한데, 물개는 상대적으로 '마초적'인 동물. 일부다처 생활을 한다. 그래서인지 수컷 물개가 암컷 물개보다 몸집이 훨 크다. 2배 정도 크다. 그러니 야생에서 커다란 한 마리에 작은 여러 마리가 오종종종 모여 있으면 물개 군집일 가능성이 높다. 동물원에서 물개쇼를 많이 하는데, 걔들 상당수가 바다사자라고 알고 있다. 



예전에 우리나라에도 바다사자가 살았다. 독도가 바다사자의 고향이... 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바다사자를 꽁치도 아니고, 강치라고 불렀다. 주강현씨가 쓴 <관해기>에 보면, 독도 강치를 사냥하는 사진이 있다. 일제시대에 대체로 마구 잡으면서 독도 강치도 사실상 멸종했다. 울릉도에 있는 독도 박물관에 강치 자료가 약간 남아 있다. 일본의 한 박물관에도 박제가 있다고 한다. 환경부는 몇년 전부터 독도 바다사자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아직 뚜렷한 성과는 없다. 멸종시키기는 쉬워도, 복원하기는 어렵다.





얘가 일본에 있는 독도 강치 박제. 아래가 주강현씨가 쓴 독도 강치에 관한 어린이책. 팔을 잘 보면 지느러미처럼 생겼다.




물범



물범은 귓바퀴가 없고, 손가락이 있다. 발은 지느러미 모양이지만, 손은 손톱까지 잘 보인다.  마우스를 위로 올려 바다사자의 손과 비교해보면 명백하다.




이 귀여운 물범은 종류가 많다. 고리 무늬 물범, 점박이 물범, 잔점박이 물범 등등이 있고, 남극에 있는 웨델해표(웨델해표=웨델해에 사는 해표, 해표=(바다표범)=물범)도 물범의 한 종류다. 이따금 캐나다 북부에서 하프씰(Harp Seal)이 모피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며 외신 기사가 나는데, 걔도 하프물범이라고, 물범의 종류다.



물범은 해양포유류 중에서 아마도 유일하게 현재, 우리나라에 서식하고 있는 종이다. 백령도에 잔점박이 물범 200-300마리가 있다. 얘네는 마치 철새처럼, 중국 랴오동 반도와 백령도를 오가면서 한해를 보낸다. 백령도에 가면 '물범바위'라고 있는데, 거기 가끔 얘들이 나와서 쉬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연평도에 포탄이 떨어져 백령도 물범들은 안녕할까 잠깐 생각도 해 봤는데. 녹색연합 정명희 팀장님이 쓰신 글에 보니, 올해 백령도 물범의 가장 큰 위협요인은 천안함 수색이었다고 한다. 바닷속을 계속 뒤지는 바람에, 얘들이 있을 자리를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는 거다. 랴오동만이 열기 시작하는 지금쯤, 물범들은 씩씩하게 북쪽 찬바다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겠지.



물범바위에 앉아서 쉬다가, 배가 다가가니 물 속으로 도망가는 물범들. 뒤의 검은 새는 바닷새 중 가장 시크한, 가마우지다. 올 블랙에 키도 크고 자세도 무심하다.


백령도 물범들에겐 겨울을 나는 랴오동 반도가 그다지 안전하지 않은 것 같다. 정력제로 팔리는 '해구신'이 있는데, 해구신은 해구=물개의 신체 부위다. (드라마 선덕여왕에 보면, 만덕 따라다니는 고도가 해구신을 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근데 랴오동 반도에서 해구신을 사냥한다며 엉뚱한 물범까지, 아 물론 물개도 사냥하면 안되지만, 마구 잡고 있는게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여기까지가 한 세트다.

바다소

두번째 세트는 바다소. 바다소는 일단 '바다소목'으로 '식육목 기각아목'과는 종류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위의 아이들이 생선 같은 걸 먹고 사는 '육식성'인데, 바다소는 소답게 '초식성'이다. 바다의 채식주의자다.




작년 코엑스 아쿠아리움에 바다소가 왔었다 (사진). 저 사진 속에서는 뭘 먹고 있는지 몰라도, 내가 갔을 땐 한참 배추를 먹고 있었다. 배추를 썰어 물에 뿌려주면, 짧은 팔로 땅짚고 헤엄쳐서, 배추를 손으로 입안에 집어 넣는다. 순하고, 행동도 굼뜨다. 그러다보니, 안타깝게도, 인간들이 대부분 다 사냥해 버렸다. 원래 다섯 종이 있었는데, 스텔라 바다소 한 종은 완전 멸종했고, 매너티 3종과 듀공 1종이 남아있다. 오키나와에 가면 듀공을 볼 수 있다고 들었다.



인간이 멸종시킨 대표적 생물인 스텔라 바다소. 생물학자 스텔라가 베링 따라서 알래스카로 가서 발견했는데, 그 후 선원들이 식량으로 사용하면서 발견 수십년 뒤 멸종됐다.


배추 좀 없소? 하는 얼굴의 매너티들. 무지 순하게 생겼다.


바다소는 학명으로 사이레니아(Sirenia)다. 사이렌....이라는 뜻이다. 바다의 요정 사이렌에서 온 건데, 예전 어부들이 인어공주로 착각했던 게 이 바다소다. 어부들이 얼마나 여자가 그리웠으면, 이 볼륨감 있는 동물을 보고도 여자라고 생각했을까 싶긴 하다.

해달


마지막 세트는 해달. 해달 Sea Otter 은 바다에 사는 수달, 정도 되겠다. 수달보다는 좀 더 동굴동글하게 생겼다. 다른 해양포유들과 헷갈리지 않는다. 그리고 몹시 귀엽다.




알래스카 남부 코르도바에 가면 해달이 많다. 해달은 코르도바와 알래스카 자연 생태계의 상징이었다. 코르도바는 1989년 엑손발데즈 원유유출사건의 피해 지역이다. 기름 파도가 해안을 덮으면서, 해안에서 생선 갉아먹던 해달들은 저 세상으로 갔다. 기름에 흠뻑 젖은 해달 사진이 원유 유출 사건의 피해를 알리는 사진으로 많이 등장했다. 해달이 다시 돌아온 것은 10여년 뒤였다.


몇년 전 코르도바에서 해달을 처음 봤다. 생선 통조림 공장이 많은데, 거기서 나오는 생선 조각을 얻어 먹으려고 해변으로 찾아온다. 조용히 앉아 있으면 해달이 생선을 갉아먹는 사각사각 소리가 들린다. 배영으로 누워 사각사각 하다가, 사람이 다가가면, 옆으로 굴러, 자세로 한바퀴 빙그르르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다. 엄마 배 위에 누워있는 아가 해달도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엄마와 함께 한바퀴 구르고 또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몹시 귀여웠다. 가끔 보고 싶다.




참, 해달은 여러 사람이 귀여워했던 모양이다. 일본 애니메니션 <보노보노>의 주인공 보노보노가 바로 아기 해달이다.




에, 그러니 요약하면 이렇다. 바다소(채식주의자), 해달(보노보노) 은 별도. 나머지는 요약하자면 바다코끼리(상아)>바다사자/물개 (지느러미 팔, 귓바퀴)>물범 (손모양의 팔).


다음번에 동물원 가신다면, 꼭 한번 살펴보셔라.



Posted by orca35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갈매 2010.12.06 1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문형 포스팅~ ^^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바다소=바다의 채식주의자.. 이런식으로 설명해주니 쏙쏙 들어오네요. 매너티와 듀공이 바다소의 한 종류였군요. 뭐니뭐니해도 젤 귀여운 건 물범과 해달~

    근데 물개들은 엄청 냄새나지 않나요? 옛날옛날에 샌프란시스코 pier39가면 죽치고 있는 물개들. 냄새땜에 못있겠더라구요. 그 냄새가 혹시 짝짓기를 위한 호르몬 냄새였으려나요?

  2. 초이 2010.12.20 1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조카랑 물개의 영문이 어케 되는지 시작했다가 왔는데
    바다에 사는 포유류의 친절한 분류 아주아주 쉽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조카에게 주소 복사해서 보내줬어요

  3. ㅋ_ㅋ 2011.01.10 00: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완전 궁금했는데 알고 싶었던 것 그대로 다 설명되어 있네요~ 유익한 포스팅 잘 봤습니다. 너무들 귀여워요>_<

  4. 궁금해 2011.04.30 17: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바다사자 물개 헷갈렸는데. 잘보고 갑니다~

  5. 승욱맘 2011.05.17 18: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갑니다. 3살짜리 울아들 바다사자 모형인형 사줬는데 사준 저만 바다사자란걸 알지
    자꾸 다들 물개라하니.. 둘의 차이가 몬지.. 사진봐도 잘 모르겠고 궁금했는데..ㅋㅋ
    도움이 많이 됐네요~^^

  6. 흐흐 2011.09.28 23: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해양포유류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영상에선 자세한 설명이 없어서 좀 헷갈렸습니다.
    근데 이 포스팅을 보고 나니 말끔히 이해가 되네요!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7. yejin8738 2012.01.23 1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너무 헷갈렸는데 알고나니까 재미있네요 ㅎㅎ 쉽게설명해주셔서 감사해요^^
    잘 보고 갑니다 ~~

  8. Michael Kors outlet 2013.07.15 2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 매력있어, 자기가 얼마나 매력있는지 모르는게 당신매력이야




돌피나리움이라는 말이 있다. 아쿠아리움에서 '아쿠아'를 '돌핀'으로 바꾼 건데, 말 그대로 돌고래 수족관이다. 멸치 같은 다른 물고기를 잡아 먹고 살아서인지, 행동 반경이 넓어서인지, '있어' 보여서인지 모르겠으나 어쨌거나 돌고래들은 대체로 돌고래만 따로 수족관에 넣어서 전시한다. 많이 전시되는 종들은 대체로 큰돌고래, 병코돌고래 어쩌고 하는 돌고래들이고, 덩치가 집채만한 범고래(오르카)도 종종 전시한다. 올해 초 미국 씨월드에서 조련사를 익사시킨 그 고래, 영화 '프리윌리'에 나오는 그 고래, 바로 그 고래가 오르카다. 더불어 내가 앞으로 꼭 한번 야생에서 보리라고 마음 먹은 고래이기도 하다.

지난번 무슨 심포지엄에서 "영국에는 돌피나리움이 없다"라는 말을 듣고 내가 잘못 들은 말이 아닐까 생각해 왔는데, 정녕 없나보다. 오늘 낮에 논문을 하나 읽었는데, 영국에서 어떻게 돌피나리움을 없앴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요는, 동물 복지 Animal Welfare 혹은 동물권 Animal Right 그룹들이 계란으로 바위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꽤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 예가 바로 '돌피나리움의 종말'이다, 는 거다. 

세계 최초로 고래를 수족관에 가둔 것은 1860년의 일이었지만, 그 고래들은 바로 죽어버렸기 때문에 돌피나리움의 역사는 1913년 만들어진 뉴욕 아쿠아리움에서 시작된다. 고래/돌고래와 같은 대형 해양 포유류를 수족관에서 관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 최초의 돌피나리움도 마지막 다섯 마리가 21개월만에 몽땅 죽어버렸고, 1938년 미국 플로리다의 '마린 스튜디오'에서 돌고래 순치장을 만들면서 '돌고래 수족관'이 산업으로 발전하게 된다.

돌고래 수족관이 전성기를 맞게 된것은 1960년대 이후의 일인데, 영화 및 TV 시리즈로 만들어진 '플리퍼 Flipper' 때문이었다. 돌고래를 소재로 한 이 시리즈 덕분에 너도나도 앞다퉈 돌고래를 보고자 했고, 수족관도 덩달아 지어졌다. 영국의 경우 1965년 당시 4곳이었던 돌고래 쇼장이 10년 뒤인 1975년 25곳으로 늘었고, 최대 41곳까지 늘어났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현재, 돌고래 쇼는 서울대공원과 제주퍼시픽랜드 2곳에서 열리고, 돌고래 수족관은 울산고래생태체험관 1곳에 있다. 사진이 바로 울산고래생태체험관의 모습이다.

돌고래 수족관을 성공시키는 관건은 새끼 돌고래를 잡아서, 될 성 부른 놈들을 골라서, 쇼 같은 걸 할 수 있도록 적당히 교육을 시켜서 내다 파는 '순치장'에 달려 있었던 것 같다. 이 돌고래 순치는 미국이 원조요 중심인데, 1938년부터 1980년까지 미국에서만 1500마리의 돌고래가 순치 목적으로 잡혔단다. 동물 학대 등의 이슈가 불거지면서 돌고래 순치장 중심지는 일본의 타이지로 옮겨갔다. 타이지에서는 1980년부터 90년까지 약 10년간 500마리를 조련시켜 내다 판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든 돌고래가 튼실하고, 쇼에 적합한 것은 아니어서 '찌질한 놈'들은 모아서 죽인다. 이 내용이 최근에, 적어도 울산에는, 큰 영향을 끼친 영화 <코브>의 골자다. 어쨌거나, IWC에 따르면 1990년 당시 4500마리의 고래/돌고래가 세계 여기저기 수족관에서 전시되고 있었다고 한다. 

다시, 어쨌거나 영국. 영국의 돌고래 수족관들은 대체로 바닷가 휴양지의 어트랙션 중 하나로 종종 만들어졌다. 부산 해운대에 아쿠아리움이 있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지 싶다. 80년대 동물 학대니, 동물권이니 이런 이슈들이 불거지면서, 더불어 바닷가 휴양지가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80년대 중반 현재 영국의 돌피나리움은 딱 4곳으로 줄었다. 바닷가 휴양지인 브라이튼, 모어캠비, 관광지인 윈저성과, 스카브로인데, 이 중 모어캠비가 앞장서 돌피나리움 철폐 캠페인을 펼치게 된다. 

모어캠비는 옛날옛날 광산/산업단지 노동자들의 휴가지로 개발된 곳인데, 대표적인, 쇠락한, 해양 휴양지 되겠다. 가본 적은 없으나 듣기로는, 아마도 월미도 비슷한것 같다. 여기에 마린랜드라고 수족관이 있었고, '록키'라는 이름의 돌고래가 있었다. 그린피스를 비롯해서 Zoo check 같은 동물단체들이 주목한 것은 바로 이 '록키'였다. 1989년/1990년 여름 시즌을 겨냥해, '록키를 자유롭게 해 주자'는 취지의 피켓팅을 이 수족관 앞에서 매일같으 펼치기 시작했다. 첫날에만 절반의 관광객이 피켓을 읽고 돌아갔다고 한다. (아마 가 봐야 볼 것 없을 것 같고, 밖에 나가서 다른 거 보지 뭐, 이런 심리도 없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된다). 이 캠페인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시즌 막판에는 80-90%의 관광객이 걍 돌아갔단다. 틈틈이 수족관 영업 허가권을 갖고 있는 지자체에게 압력도 행사하고 서명도 전달했단다. 이 과정에서 모어캠비의 조그마한 돌고래는 전국적인 이슈가 됐다. 

관건은 이 수족관과 돌고래가, 별 경제적 이익이 없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실제로 별 경제적 이익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수족관도 영업 의지가 없었는지 결국은 이 돌고래 록키를 캠페인 주최측에 단돈 '1파운드'에 팔았다. 캠페인 주최측은 이번엔 '록키를 야생으로 돌려주자' 운동을 펼쳤고, 이런 거 좋아하는 미디어가 함께 엄청 뽐뿌질을 해 100만 파운드를 모금해 결국 록키를 바다에 풀어줬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모어캠비 캠페인에 자극받은 브라이튼도 같은 캠페인을 펼쳐 고래를 야생에 돌려줬다. 욕먹기 싫었던 윈저성과 스카브로도 돌피나리움의 문을 닫고 돌고래들을 외국에 팔았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영국의 돌피나리움은 모두 없어졌다. 

Zoo check는 Born Free라는 이름의 동물 보호 단체로 바뀌어서,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본프리에 따르면,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엔 돌피나리움이 없지만 영국 사람들이 가장 하고 싶은 관광이 '돌고래와 수영을'이란다. 돌고래 수족관이 없으니 그런 소망이 생기는건지, 다양한 형태의 야생 고래 관광이 역시 아무래도 이 세기 사람들에게 가장 먹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거나 '돌고래와 수영을'을 포함해, 야생에서의 고래 관광은 돌고래 수족관과 같은 Captivity 관광의 대안으로 생각되고 있다. 

뭐, 무슨 일이나 그렇지만 야생 고래 관광도 완전한 대안은 아니어서, 이 '돌고래와 수영을' 하던 관광객들이, 교양없게도 고래 숨 뿜는 구멍에 아이스크림 막대기 집어넣고, 괴롭히다가 결국 성난 돌고래가 사람들을 후려쳐 한 명이 죽은 사건도, 있었다. 에, 그럼에도 야생에서의 고래 관광은, 여러가지로, 포기할 수 없는 대안으로 생각된다. 그게, 설명하기 어렵지만, 드넓은 바다를 유영하는 고래를 보고 나면, 이해하게 될 것이다, 왜 고래인지. Believe!


Posted by orca35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딸기 2010.10.24 1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남아공에서 바닷가에 거대한 고래가 있는 걸 봤어.
    고래의 노래(소리? 울음?)도 들었어.
    살짝 충격적이었지...
    멀리서 고래가 도약하는 것도 봤는데.. 넘 멀어서...

    http://ttalgi21.khan.kr/65 여기 있지롱

  2. myungworry 2010.10.26 0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은 연못>이란 영화가 있었는데, 거기 피난민이 지나는 길 위로 뜬금없이 고래가 헤엄치는 CG가 나와요. 감독한테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고래는 영물이다. 그 울음소리가 참 신성하다. 고래는 평화의 상징이다, 대체로 이런 골자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영화에는 잘 녹아들지 않은 것 같아 의아했는데, 이 글을 읽으니 무슨 말인지 조금 알 것도 같네요.

    • myungworry 2010.10.27 0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개봉했는데 장사가 잘 안됐죠. 지금 노근리 얘기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테니까. 이후 디비디로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