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캐나다 북부에서 범고래들이 얼음 밑에 갇히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국내 저녁 뉴스 (클릭) 에 나오기도 했고, 유튜브나 SNS에서는 크게 관심을 끌었다고 합니다. 국내 언론에서는 이 고래들이 '사라져 버렸다'고 하는데, 그린피스 캐나다나 해외 언론은 지역 주민의 말을 인용해 '무사히 큰 바다에 도착했다' '해피 엔딩이다' 라고 전하고 있네요. 



(사진:로이터)


바로 이 사진이 그 얼음 밑에 갇힌 범고래들입니다. 범고래는 영어로는 오르카, 킬러 웨일이라고 하는데, 특별히 사람을 잡아먹는 건 아니고, 육식성 고래여서 그렇게 부릅니다. 물범도 잡아먹고, 다른 고래도 공격하죠. 대부분 고래들은 사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플랑크톤이나 새우, 커 봐야 오징어 멸치 뭐 이런 걸 먹거든요. 


고래 관련해서 뉴스가 나왔다, 하면 둘 중 하나는 아마도 얘들, 범고래가 주인공일거에요. 재작년에 미국 수족관에서 고래가 조련사를 익사시킨 사건이 있었잖아요? 걔도 범고래였고. 멀리는 영화 <프리윌리>의 주인공 윌리, 걔도 범고래였습니다. 혹시 작년에 나온 BBC 자연다큐 <프로즌 플래닛>을 보신 분들은, 고래떼가 물범을 사냥하는 장면을 기억하실 거에요. 걔도 범고래죠. 영리하고, 또 사나워서 매력적인 이 범고래는 보통 떼로 다닙니다. 고래 잡으러 다니던 옛날 포경선 선장들도 범고래의 높다란 등 지느러미가 보이면 슬금슬금 도망을 쳤대요. 뭐 이쯤 되면 가히 고래계의 '조폭'스럽습니다 ^^. 



(사진 BBC)


이번에 갇혔던 범고래는 11마리, 혹은 12마리의 무리랍니다. 얘들이 8일, 지난 주 화요일에 갇힌 곳이 바로 저기 지도의 '이누크야크', 캐나다 북서쪽의 이누이트 마을입니다. 이누이트는 에스키모와 같은 종족인데, 알래스카 에스키모들은 스스로를 '에스키모'라고 부르고, 캐나다 북부와 그린란드에서는 '이누이트'라고 불러요. 이누크야크는 그 이누이트 1600명 정도가 사는 작은 마을입니다. 오른쪽의 푸른 바다가 허드슨 만인데, 여기가 북극해와 연결되죠. 그래서 아마 북극해와 그 주변을 왔다갔다 하던 범고래들이 이 마을 앞바다까지 들어오게 된 것 같아요. 


그런데, 고래가 물 속에 갇힌다고 뭐가 문제인가, 물고기가 물 속에 있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실 분들도....없진 않겠지요ㅎ. 그러나 일단 고래는 물고기가 아니죠. 고래는 폐로 호흡하는 포유류라서, 이따금 물 위로 올라와 숨을 쉬어줘야 합니다. 그래서 고래를 사냥하는 에스키모들은 봄이 되면, 얼음이 갈라진 틈으로 가서 기다린답니다. 물 속을 유유히 유영하던 고래가 그 틈으로 올라와 숨을 쉬거든요. 고래마다 숨을 참는 시간이 다 다르지만, 범고래는 짧게는 20초, 길게는 3분, 아주아주 길면 12분 정도 된답니다. 이번엔 이누크야크 마을부터 앞바다 20킬로가 쫙 얼어붙었대요. 그러니 마을 앞바다의 조그만 구멍 하나에, 고래 11마리가 목숨을 걸고 번갈아가며 숨을 쉬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이런 사건이, 북극에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랍니다. 이번 '범고래 구조 요청' 사건과 똑같은 일을 다룬 영화가, 작년에 개봉한 '빅 미라클' 입니다. 1988년 알래스카 북부 포인트호프에서 벌어졌던 실제 사건, '귀신고래 구출 작전'을 영화화한 겁니다. 88년이면 우리나라는 아직 올림픽 하던 때고, 뭐 고래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던 시절이지만, 전세계적으로 고래 인식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은 대단한 사건이었답니다.



(영화 포스터)


(영화 스틸: 그린피스 캠페이너로 나오는 드류 베리모어가 귀신고래를 쓰다듬고 있습니다) 



포스터에서 보시는 것처럼, 이 고래들은 범고래는 아니었고, 귀신고래 세 마리였습니다. 어, 귀신고래 어디서 들어봤는데, 싶으시다면 고래, 좀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나라 울산 앞바다에 살던 애들이 바로 귀신고래죠. 귀신고래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우리나라에 오던, 그러나 지금은 거의 오지 않아서 현상금까지 붙어 있는 한국계 귀신고래가 있고, 캘리포니아와 알래스카를 오가는 캘리포니아계 귀신고래가 있습니다. 얘들은 아마 캘리포니아계 군이었던 것 같아요. 

 


(사진:http://www.all-hazards.com/loring/greenpine/index.html)



1988년 10월7일, 알래스카 북쪽 포인트 배로에서, 마을 주민들이 얼음에 갇힌 귀신고래 세 마리를 발견합니다. 포인트 배로가 어디냐, 저기 지도에서 왼쪽에서 두 번째 동그라미, 알래스카 최북단의 에스키모 마을입니다. 우리 눈에는 뭐 다 고만고만한 에스키모 마을이지만, 배로는 에스키모 마을 중에서는 그래도 꽤 큰 마을입니다. 원주민 포경이 허가된 마을이어서, 주민들이 고래를 잡고 살죠.


귀신 고래 세 마리 소식은 1주일 뒤 알래스카에서 가장 큰 대도시, 앵커리지로 전해졌고, 곧 전국 뉴스가 됩니다. 고래 세 마리가 목욕탕 만한 좁은 구멍 밖으로 올라와 번갈아가며 숨을 쉬고 있는 모습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기 충분했죠. 겨울은 다가오고, 고래가 숨쉬는 구멍은 내일이라도 얼어 붙어 사라질 지 모를 일이었거든요. 거기다 가족 고래잖아요. 고래는 새끼가 태어나면, 어미 고래가 새끼를 등에 업고 물 위로 나가 숨을 쉬게 해 준답니다. (그 장면이 영화에도 살짝 나와요) 얼마나 얼음을 뚫고 나가려고 했던지, 고래들의 머리와 코는 벗겨지고 피멍이 들어 있었답니다. 미국에 이어 유럽, 전세계가 이 고래 가족의 안타까운 처지에 채널을 고정하게 됐죠


처음엔 고래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그냥 죽여 버리자던 원주민들이, 가장 먼저 고래 살리기에 나섰습니다. 체인톱이 있으면 체인톱으로, 없으면 작대기라도 들고 나와 얼음 구멍이 막히는 걸 막았습니다. 



(사진: 그린피스 캐나다)



(사진: 그린피스 캐나다)



(사진: 영화스틸)



 



그렇지만 얼음 구멍을 막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이죠. 얘들이 큰 바다로 나가도록 해 줘야 하는데, 포인트 배로 앞바다는 꽁꽁 얼어 있었거든요. 이 때 알래스카 석유 기업 사장, 빌 앨런이 나서서 프루도 베이에 정박돼 있던 자기의 바지선을 내놓습니다. 당시 선거를 앞두고 '녹색 공화당'의 이미지가 필요했던 레이건 정부에서도 돕기에 나섭니다. 알래스카에 주둔하던 미군에게 헬기로 바지선을 끌고 포인트 배로로 가라고 합니다. 바지선으로 수면의 얼음을 깨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이번엔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혹한 때문에 바지선은 얼음을 뚫고 나아가기는 커녕, 얼음에 좌초하고 맙니다. 고래들이 먹이가 부족하다, 공포에 떨고 있다, 뭐라도 하자, 이렇게 있을 수는 없다, 라고 생각했던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은, 고래가 갇힌 곳부터 큰 바다까지 '고래 길'을 만듭니다. 고래가 숨을 쉴 수 있도록 60피트..면 180미터 정도 될나요? 간격으로 구멍을 뚫었습니다. 고래를 이 길로 유도하기 위해, 본토에서 녹음한 '귀신고래 소리'도 가져옵니다. 



(사진:그린피스)



'고래 길 만들기' 작전의 마지막에는 그러나, 더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얼음이 끝나고 물이 나타나는 곳까지 길을 만들었지만, 바로 바다가 시작되는 지점은 아예 수면부터 바닷속까지 통째로 얼어붙어 버린 겁니다. 뭐 폭탄이라도 떨어뜨리지 않는 한, 이 얼음의 장벽을 뚫을 가능성은 없어 보였죠. 이 와중에 아기 고래는 그만 더 이상 얼음 위로 숨을 쉬로 나오지 않게 되었죠. 안타깝게도, 죽은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바로 이 때, 바다 건너 러시아 해군이 닻을 올립니다. 위로 올라가 지도를 다시 보시면, 포인트 호프의 건너편은 러시아라고 되어 있죠. 88년이면 아직 냉전의 기운이 가시지 않던 시대, 미국과 러시아는 서로의 가장 큰 적이었죠. 미국이 러시아에 손을 내밀었고, 러시아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얼음을 깨는 쇄빙선 두 대를 보냅니다. 고래들이 사람들의 인도를 따라 바다 끝에 도착할 무렵, 러시아 쇄빙선은 바로 그 얼음 장벽을 깹니다. 몇 시간 뒤, 살아남은 고래 두 마리는 유유히 추크치해의 넓은 바다로 헤엄쳐 갔고, 사람들은 환호를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때가 10월28일, 3주간의 구조 작전은 그렇게 비교적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사진:그린피스 캐나다)


당시 그린피스 고래 캠페인 담당자가 갖고 있는 '고래 구출 작전'의 기념품입니다. '작전명 돌파'. 위에는 영어로, 아래는 러시아어로 적혀 있어요. 나중에 러시아 쇄빙선이 미국 기자들을 배로 초청했는데, 선장이 쉴 새 없이 전화 받느라 바쁘더래요. 모스크바의 기자들이 어떻게 됐냐고, 계속 물어왔다는 거죠. 아마도 미국에서는 지리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가장 멀었을 모스크바에서도, 귀신고래 세 마리의 이야기가 계속 보도가 돼 전 소련 국민이 알고 있었답니다. 



(사진: 그린피스 캐나다)


자랑스러웠겠죠? 미국과 소련, 석유 업계와 환경운동가, 고래를 잡고 사는 원주민과 자원봉사자들이 한 마음이 돼 3주 동안 펼친 작전 끝에, 고래는 무사히 큰 바다로 돌아갔습니다. 


이 사건은 그 후 미국과 세계의 '고래 인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당장 그 때부터 미국과 영국의 기업들이 아이슬란드 수산물 수입을 중단합니다. 아이슬란드가 당시 전세계의 손가락질을 받던 포경 국가였거든요. 그린피스가 그 전부터 귀따갑게 '수산물 수입 금지하라'고 했지만 귓등으로 듣던 기업들이, 순식간에 태도를 바꾼 거죠. 전 국민이 '고래를 보호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당시 고래 구출작전을 담당한 그린피스 활동가는 180개던가...하여간 엄청난 수의 학교를 돌아다니며 강연을 하게 됩니다. 고래 보호 단체 회원들이 급증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몇 년 뒤 <프리 윌리>에 출연한 범고래 케이코 방사를 위해 전세계가 힘을 보태게 되는데, 그것도 아마 이런 '달라진 고래 인식'의 영향이 아니었을까요.


아, 물론 이 '구출 작전'에 대해 '쌩쑈'라는 비난이 없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죠. 이 작전에 1백만달러가 들었는데, 도대체 그 만큼의 돈을 써서 고래 세 마리를, 아니 겨우 두 마리를 구하는 게 말이 되냐 는 지적부터, 귀신 고래 소리 대신 범고래 소리를 트는 바람에 새끼 고래가 죽었다는 지적, 실제 고래 구출보다는 '얘깃거리'를 만들기 위해 구출을 질질 끌었다는 지적 뭐 별 이야기들이 다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장면은, 전세계가 숨 죽이고 지켜봤던 1988년이 아니면 나올 수 있었을까요?



(사진:연합뉴스)


2005년 호주의 한 만으로 몰려든 범고래들을 구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애쓰는 모습입니다. 밀물을 따라 몰려들었다가, 썰물 때 미쳐 빠져나가지 못한 범고래 85마리가 다시 밀물이 밀려올 때까지 해변에 좌초해 있었습니다. 15마리는 무사히 바다로 돌아갔고, 70마리는 헤엄칠 힘이 없어 치료를 받은 뒤 바다로 돌려보낼 계획이라고, 옛날 뉴스에 나오네요. 



고래가 얼음 밑에 갇히는 일은 아마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 같아요. 석유 개발로 북극권의 고래 서식지가 많이 파괴됐고, 석유 시추선의 소음 때문에 음파로 교신하는 고래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자주 나오죠. 거기다 기후 변화로 얼음이, 갑자기 얼고 빨리 얼어 붙고 있습니다. 허둥지둥 하다 길을 잃은 고래들이, 정신 차려 보니 머리 위가 얼음으로 갇혀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게 되는 거죠. 기후변화와 석유 경제로 고통을 겪는 것은 북극곰만이 아닌가봐요....쓰다 보니 빨리 보일러 온도라도 낮춰야겠다는ㅠㅜ.



(사진 연합뉴스)


제작년 11월 우리나라 여수 앞바다에서 발견된 범고래입니다. 범고래가 이따금 서해까지도 오거든요. 이 범고래는 안타깝게도 정치망 유도 그물에 걸려 버렸답니다. 해경과 지역 주민들이 열심히 그물을 걷어내서 바다로 돌려보냈다는 흐뭇한 이야기가, 짧게 뉴스에 나왔습니다. 제법 큰, 7미터짜리 고래였답니다. 



고래가 얼음 밑에 갇히는 일은, 뭐 요즘 엄청 춥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당분간 없...겠지요? 그렇지만 호주처럼 밀물에 밀려든 고래가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하고 좌초된다든가, 그물에 걸려 갇히는 일은 언제라도 생길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그런 일은 없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이 생기면 우리도, 달려가 고래야 힘내, 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착한 어린이 일기 같네요ㅎ. 고래야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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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인숙 2013.01.14 2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정말 '물 속에 사는 고래를 왜, 무엇으로부터 구출한다는 거지?'라고 생각했어요. ㅎㅎ 얼음을 뚫고 나가려고 머리에 피멍이 들었다는 대목에 가슴이 찡~

  2. 하바네라 2013.01.24 0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포스트 정말 잘읽었습니다!! 고래보호를 외치는 한사람으로 글읽다가 울컥ㅠㅠ눈물이 그렁그렁했답니다!! 혹시 포스팅 공유해도될련지요??

  3. 하나 2013.05.31 14: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가슴이 뭉클한요...어찌보면 인간때문에 동물들이 얼마나 피해를 입는지...지나친 포경때문에 멸종위기에까지 몰린 종이잖아요...우리나라도 포경금지국가긴하지만, 단기이득에만 쏠린 업자들이 불법포경을 해서 고래고기음식점에 넘긴다는 소릴 들을때마다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고래란게 포유류고 인간에 가까운 사고를 한다는점에서 보호해야할 종이지요.....좋은 사연 감사합니다.

    이런거, 초,중등학생대상으로 동화로 만들어도 되겠어요




돌피나리움이라는 말이 있다. 아쿠아리움에서 '아쿠아'를 '돌핀'으로 바꾼 건데, 말 그대로 돌고래 수족관이다. 멸치 같은 다른 물고기를 잡아 먹고 살아서인지, 행동 반경이 넓어서인지, '있어' 보여서인지 모르겠으나 어쨌거나 돌고래들은 대체로 돌고래만 따로 수족관에 넣어서 전시한다. 많이 전시되는 종들은 대체로 큰돌고래, 병코돌고래 어쩌고 하는 돌고래들이고, 덩치가 집채만한 범고래(오르카)도 종종 전시한다. 올해 초 미국 씨월드에서 조련사를 익사시킨 그 고래, 영화 '프리윌리'에 나오는 그 고래, 바로 그 고래가 오르카다. 더불어 내가 앞으로 꼭 한번 야생에서 보리라고 마음 먹은 고래이기도 하다.

지난번 무슨 심포지엄에서 "영국에는 돌피나리움이 없다"라는 말을 듣고 내가 잘못 들은 말이 아닐까 생각해 왔는데, 정녕 없나보다. 오늘 낮에 논문을 하나 읽었는데, 영국에서 어떻게 돌피나리움을 없앴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요는, 동물 복지 Animal Welfare 혹은 동물권 Animal Right 그룹들이 계란으로 바위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꽤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 예가 바로 '돌피나리움의 종말'이다, 는 거다. 

세계 최초로 고래를 수족관에 가둔 것은 1860년의 일이었지만, 그 고래들은 바로 죽어버렸기 때문에 돌피나리움의 역사는 1913년 만들어진 뉴욕 아쿠아리움에서 시작된다. 고래/돌고래와 같은 대형 해양 포유류를 수족관에서 관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 최초의 돌피나리움도 마지막 다섯 마리가 21개월만에 몽땅 죽어버렸고, 1938년 미국 플로리다의 '마린 스튜디오'에서 돌고래 순치장을 만들면서 '돌고래 수족관'이 산업으로 발전하게 된다.

돌고래 수족관이 전성기를 맞게 된것은 1960년대 이후의 일인데, 영화 및 TV 시리즈로 만들어진 '플리퍼 Flipper' 때문이었다. 돌고래를 소재로 한 이 시리즈 덕분에 너도나도 앞다퉈 돌고래를 보고자 했고, 수족관도 덩달아 지어졌다. 영국의 경우 1965년 당시 4곳이었던 돌고래 쇼장이 10년 뒤인 1975년 25곳으로 늘었고, 최대 41곳까지 늘어났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현재, 돌고래 쇼는 서울대공원과 제주퍼시픽랜드 2곳에서 열리고, 돌고래 수족관은 울산고래생태체험관 1곳에 있다. 사진이 바로 울산고래생태체험관의 모습이다.

돌고래 수족관을 성공시키는 관건은 새끼 돌고래를 잡아서, 될 성 부른 놈들을 골라서, 쇼 같은 걸 할 수 있도록 적당히 교육을 시켜서 내다 파는 '순치장'에 달려 있었던 것 같다. 이 돌고래 순치는 미국이 원조요 중심인데, 1938년부터 1980년까지 미국에서만 1500마리의 돌고래가 순치 목적으로 잡혔단다. 동물 학대 등의 이슈가 불거지면서 돌고래 순치장 중심지는 일본의 타이지로 옮겨갔다. 타이지에서는 1980년부터 90년까지 약 10년간 500마리를 조련시켜 내다 판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든 돌고래가 튼실하고, 쇼에 적합한 것은 아니어서 '찌질한 놈'들은 모아서 죽인다. 이 내용이 최근에, 적어도 울산에는, 큰 영향을 끼친 영화 <코브>의 골자다. 어쨌거나, IWC에 따르면 1990년 당시 4500마리의 고래/돌고래가 세계 여기저기 수족관에서 전시되고 있었다고 한다. 

다시, 어쨌거나 영국. 영국의 돌고래 수족관들은 대체로 바닷가 휴양지의 어트랙션 중 하나로 종종 만들어졌다. 부산 해운대에 아쿠아리움이 있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지 싶다. 80년대 동물 학대니, 동물권이니 이런 이슈들이 불거지면서, 더불어 바닷가 휴양지가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80년대 중반 현재 영국의 돌피나리움은 딱 4곳으로 줄었다. 바닷가 휴양지인 브라이튼, 모어캠비, 관광지인 윈저성과, 스카브로인데, 이 중 모어캠비가 앞장서 돌피나리움 철폐 캠페인을 펼치게 된다. 

모어캠비는 옛날옛날 광산/산업단지 노동자들의 휴가지로 개발된 곳인데, 대표적인, 쇠락한, 해양 휴양지 되겠다. 가본 적은 없으나 듣기로는, 아마도 월미도 비슷한것 같다. 여기에 마린랜드라고 수족관이 있었고, '록키'라는 이름의 돌고래가 있었다. 그린피스를 비롯해서 Zoo check 같은 동물단체들이 주목한 것은 바로 이 '록키'였다. 1989년/1990년 여름 시즌을 겨냥해, '록키를 자유롭게 해 주자'는 취지의 피켓팅을 이 수족관 앞에서 매일같으 펼치기 시작했다. 첫날에만 절반의 관광객이 피켓을 읽고 돌아갔다고 한다. (아마 가 봐야 볼 것 없을 것 같고, 밖에 나가서 다른 거 보지 뭐, 이런 심리도 없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된다). 이 캠페인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시즌 막판에는 80-90%의 관광객이 걍 돌아갔단다. 틈틈이 수족관 영업 허가권을 갖고 있는 지자체에게 압력도 행사하고 서명도 전달했단다. 이 과정에서 모어캠비의 조그마한 돌고래는 전국적인 이슈가 됐다. 

관건은 이 수족관과 돌고래가, 별 경제적 이익이 없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실제로 별 경제적 이익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수족관도 영업 의지가 없었는지 결국은 이 돌고래 록키를 캠페인 주최측에 단돈 '1파운드'에 팔았다. 캠페인 주최측은 이번엔 '록키를 야생으로 돌려주자' 운동을 펼쳤고, 이런 거 좋아하는 미디어가 함께 엄청 뽐뿌질을 해 100만 파운드를 모금해 결국 록키를 바다에 풀어줬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모어캠비 캠페인에 자극받은 브라이튼도 같은 캠페인을 펼쳐 고래를 야생에 돌려줬다. 욕먹기 싫었던 윈저성과 스카브로도 돌피나리움의 문을 닫고 돌고래들을 외국에 팔았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영국의 돌피나리움은 모두 없어졌다. 

Zoo check는 Born Free라는 이름의 동물 보호 단체로 바뀌어서,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본프리에 따르면,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엔 돌피나리움이 없지만 영국 사람들이 가장 하고 싶은 관광이 '돌고래와 수영을'이란다. 돌고래 수족관이 없으니 그런 소망이 생기는건지, 다양한 형태의 야생 고래 관광이 역시 아무래도 이 세기 사람들에게 가장 먹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거나 '돌고래와 수영을'을 포함해, 야생에서의 고래 관광은 돌고래 수족관과 같은 Captivity 관광의 대안으로 생각되고 있다. 

뭐, 무슨 일이나 그렇지만 야생 고래 관광도 완전한 대안은 아니어서, 이 '돌고래와 수영을' 하던 관광객들이, 교양없게도 고래 숨 뿜는 구멍에 아이스크림 막대기 집어넣고, 괴롭히다가 결국 성난 돌고래가 사람들을 후려쳐 한 명이 죽은 사건도, 있었다. 에, 그럼에도 야생에서의 고래 관광은, 여러가지로, 포기할 수 없는 대안으로 생각된다. 그게, 설명하기 어렵지만, 드넓은 바다를 유영하는 고래를 보고 나면, 이해하게 될 것이다, 왜 고래인지. Beli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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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딸기 2010.10.24 1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남아공에서 바닷가에 거대한 고래가 있는 걸 봤어.
    고래의 노래(소리? 울음?)도 들었어.
    살짝 충격적이었지...
    멀리서 고래가 도약하는 것도 봤는데.. 넘 멀어서...

    http://ttalgi21.khan.kr/65 여기 있지롱

  2. myungworry 2010.10.26 0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은 연못>이란 영화가 있었는데, 거기 피난민이 지나는 길 위로 뜬금없이 고래가 헤엄치는 CG가 나와요. 감독한테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고래는 영물이다. 그 울음소리가 참 신성하다. 고래는 평화의 상징이다, 대체로 이런 골자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영화에는 잘 녹아들지 않은 것 같아 의아했는데, 이 글을 읽으니 무슨 말인지 조금 알 것도 같네요.

    • myungworry 2010.10.27 0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개봉했는데 장사가 잘 안됐죠. 지금 노근리 얘기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테니까. 이후 디비디로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