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인간동물원 포스팅은 이걸 하려고, 시작했다가 엉뚱한 이야기만 하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ㅠㅜ. 동물원에 대해서 좀 기록해 두려고 했는데, 하겐베크 동물은 워낙 '인간동물원' 동물원이어서... 일단 하겐베크 동물원을 올리고, 틈 나는 대로 싱가포르 동물원과 런던 동물원도 올려 보려고 해요. 넵, 틈...나는 대로. 




하겐베크 동물원 입구입니다. 옛날 동물원 입구에 비하면 시시하기 짝이 없습니다만, 그래도 산뜻한 6월의 어느 오후입니다. 




제가 독일어를 못 읽어서 알수는 없지만, 전체적으로 '동물에게 먹을 걸 주지 마시고, 주려면 이런 걸 사서 주세요' 취지인 것 같습니다. 바로 옆에 무슨 단체에서 나와서 과일 주머니를 팔고 계셨거든요. 사람이 먹는 음식을 동물에게 주면, 그게 나트륨 함량이 너무 높아서 안 좋답니다. 도심의 비둘기들이 병이 많다는 연구 결과가 간간이 나오는데, 그게 사람이 먹는 쓰레기를 먹어서일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우리 사람은, 동물에게 먹이를 주고 싶은 마음을 정말 참기 힘들잖습니까. 그것도 코가 손인 코끼리 아저씨한테 줘 보고 싶은 이 마음은... 단체와 동물원이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이렇게 운영하시는 것 좋은 것 같아요. 단체도 그 돈으로 좋은 일 쓰시고요. 




음, 그러나 코끼리는 너무 먼 곳에 있어서.. 좀처럼 먹이를 주기가 어렵습니다. 코끼리와 사람 사이에 해자가 파져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공간을 만들어서 울타리 대신 안전을 확보하는 것 같아요. 이 동물원은 창살이 거의 없더라고요. 




X이 아닙니다! 흙이에요. 코끼리 사 안에 조그만 웅덩이가 있어서 코끼리가 흙목욕을 할 수 있답니다. 코끼리는 흙목욕 하는 걸 좋아한다더라고요. 




지금은 비어 있지만, 코끼리의 겨울 우리입니다. 코끼리는 더운 나라에서 왔으니까 겨울엔 춥겠죠. 겨울엔 실내에서 전시를 하는데, 전시관이 꽤 괜찮았어요. 건물도 고풍스럽고, 연못 같은 것도 있고, 꽤 널찍하고요. 




이게 뭘까요? 유인원사입니다. 나무가 꽤 커서 유인원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건물도 예전에 뭐 박람회장 같은 걸로 썼던 모양이에요. 이렇게 리모델링을 해 놓으니 꽤 좋아 보였습니다. 




이 새장 같은 게 '뷰잉 데크'입니다. 사람이 나무 높이로 올라가면 원숭이가 놀라잖아요? 그래서 위협을 느끼지 않도록 나무 집을 만들어서 가려 놓은 겁니다. 




유인원에게 먹을 걸 던져주심 안됩니다는 취지. 저 아저씨 손 자세가, 자 옛다 먹어라,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저 이거 꽤 맘에 들었어요. 유인원의 앞발과 뒷발을 어떻게 구분하나. 왼쪽이 손이고, 오른쪽이 발이겠죠? 애들도 다들 한번씩 만져보고 갑니다. 




요즘 동물원엔 이게 많은 것 같더라고요 - 타이거 패스. 호랑이가 보통 인기 전시물인데, 잘 보기 힘들잖아요? 언제나 자고 있고... 일종의 대체 전시 겸 교육물인데, 조그만 대나무 숲을 만들어서, 호랑이 사는 숲에 가시면 이런 걸 볼 수 있습니다, 라는 취지로 전시해 놓습니다.




호랑이 패스 지도. 뭐 별 건 없어요. 발자국이나 나무 더미 같은 거... 




무슨 뜻일까요? 호랑이는 냄새도 잘 맡고 귀도 밝으니 조심하세요? 




이건 무슨 새 전시장이었던 것 같은데, 어디 기업에서 후원했습니다. 이거, 외국 동물원엔 꽤 많은 것 같아요. 대기업들이 동물원의 특정 동물 보호 프로그램을 후원하는 거죠. 동물원의 본래 목적이 동물을 전시하는 것 보다는, 동물의 종을 보존하는 일종의 '은행'이거든요. 그래서 일단 여기 한 마리 데려다 놓았지만, 얘를 데려온 그 지역에서 얘네 동물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보전 프로그램을 실시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 보전 프로그램을 대기업들이 후원합니다. 약간 '그린워시' 같긴 하지만, 그래도 좋은 방법 아닌가 싶어요. 런던 동물원도 아시아 호랑이 보전 프로그램을 하는데, 후원자가 그 석유 기업 Esso죠. 




얘가 누굽니까! 두루미 아닙니까. 헐 두루미가 여기 사람들한테는 동물원에 한 두 쌍 전시된 희귀한 새군요. 




얘들은 농장 동물들 비슷한 시설이었던 것 같습니다. 쓰다듬고 싶지만 너무 먼....




대체로 정말 '공원'처럼 넓더라고요. 전시 공간도 넓고, 철조망 대신 대부분 조그만 나무 울타리나 냇물 같은 걸로 구획을 지어 놓고, 동물들이 구석에 숨어 있어서 찾기가 힘들었다는...




네, 뭐 이런 식으로...




이게 최고입니다. 오른쪽 끝에 사자가, 왼쪽 끝에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도 맹수는 맹수니까요, 이렇게 몇 겹으로 장치를 해 뒀습니다.




이 산양은 사람들 귀찮은지 집에 가고 있습니다. 저 바위 사이의 조그만 공간 보이시죠? 저기로 들어가 숨어 버립니다. 환경/동물단체들이 동물원 전시 관련해서 권고하는 원칙들이, 첫째 바닥이 시멘트가 아니어야 한다, 둘째, 동물이 숨을 공간이 있어야 한다, 등등인데요, 동물을 보기는 힘들어도 마음은 훨씬 좋았습니다. 




대신에 이렇게, 실내 전시실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이게 산양사였던 것 같습니다. 산양은 다 어디로 가고....ㅠㅜ 




이건 불곰사. 꽤 큽니다. 사진 한 장에 다 못 담았는데, 오른쪽 끝엔 조그마한 폭포도 있어요. 이런, 제 눈엔 괜찮아 보이는 환경 속에서도 불곰은 이상 행동을 보이더군요. 이쪽 끝과 저쪽 끝을 계속 왔다갔다 합니다. 곰은 워낙 영리한 동물이어서, 동물원 전시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이런 데 가둬 놓으면 그야말로 '멘붕' 상태가 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가 이런데 하물며, 우리나라의 조금 더 작은 전시실에서 살고 있는 곰들을 생각하니까, 좀 마음이....




조류사입니다. 새는 도대체 다 어디로 가고! 저 조형물은 예전에, 동남아시아 원주민들을 전시하던 공간이었습니다. 




북극곰과 해양동물사는 수리중이었어요. 동물원의 전시 '수준'을 보려면 북극곰사를 보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북극곰이 동물원에 전시하기에 적합치 않은 종이라네요. 일단 영리한 곰이어서 정신적으로 스트레스 받고, 또 기후가 좀처럼 안 맞죠. 예전에 싱가포르에서 북극곰 전시하다가 너무 더워서 온몸에 녹조가 끼는 바람에 '녹색곰'이 돼 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북극곰 전시에 대해서는 예전에 환경면에 한 번 쓴 적이 있어요. 베를린 동물원에서 태어난 아기곰, 크누트가 죽었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여기를 클릭!




능동 어린이 대공원의 북극곰 '썰매'가 최근에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어린이 대공원에 산책 갈 때마다 손 흔들고 인사했는데, 저와 함께 산책하는 인간 북극곰이 '썰매를 보내고' 취지의 조사를 신문에 썼죠. 여기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수리 중인 북극곰사입니다. 지금쯤은 다 끝났을래나요? 언제 기회가 되어서, 다시 한번 함부르크 박물관에 다녀오면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그 동안 혹시 다녀오시는 분들 계시면, 북극곰사 소식 좀 알려주세요, 넵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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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동물원'을 아시나요? 이 더운 여름에 갑자기 인간 동물원에 대해서 쓰고 있는 것은, 최근에 '인간 동물원'에 대한 책을 읽기도 했고, 지난번에 안다만 제도의 '인간 사파리'에 대해서 쓴 뒤로 뭔가 좀 더 후속으로 써야 할 것 같기도 했고, 동물원에 대해서 좀 정리해 둘까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갑자기 요 몇 주 블로그에 많은 분들이 들어오시는 바람에, 뭔가 업데이트를 해야 할 것 같다는 강력한 책임감 때문에...ㅠㅜ, 그렇습니다. 



인간 동물원이 어디 있나 - 없습니다. 다만, 인간 동물원이 있던 곳은 남아 있죠. 독일 함부르크의 하겐베크 동물원입니다. 정식 이름이 '티에르파크 하겐베크Tierpark Hagenbeck'일 거에요. 작년에 함부르크에 출장을 갈 일이 있었는데, 마침 세 시간이 딱 남아서 잽싸게 다녀 왔습니다. 시내에서 가까워요. 지하철로 대여섯 정거장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이 하겐베크 동물원에 왜 갔냐, 여기가 세계 최초로 '인간 동물원'을 만든 곳이거든요. 




하겐베크 동물원의 옛날 입구입니다. 지금 게이트는 따로 있고, 이 게이트는 '유적'으로 남아서 동물원 구석에 있어요. 이 동물원이 만들어진 게 1848년부터니까, 세계에서도 가장 오래된 동물원 중 하나일 겁니다. 하겐베크는 참, 사람 이름입니다. 어부... 라기엔 생선 잡이를 좀 크게 하시던 분이었는데, 생선 잡다가 딸려온 바다사자를 전시하기 시작했대요. 그 때부터 이 동물원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렇지만 통상 우리가 하겐베크 동물원을 이야기할 때 떠올리는 하겐베크는 아들, 카를 하겐베크에요. 이 카를 하겐베크는 유럽 최대의 동물 중개상이었죠. 아프리카에 지사 비슷한 걸 운영하면서, 유럽 전역의 동물원에 동물을 공급했답니다. 



하겐베크 동물원의 역사를 중심으로 동물원에 대해 쓴 훌륭한 책이 <동물원의 탄생> 입니다. 여기를 클릭하시면 서평 나옵니다.




하겐베크가 사람을 전시하기 시작한 건, 당혹스럽지만, 동물 값이 올라서였대요. 하겐베크의 큰 거래처가 아프리카 수단이었는데, 수단에서 1874년엔가 내전 비슷한 게 일어났대요. 동물도 구하기 힘들어지고, 동물 값도 오르고 해서 하겐베크가 떠올린게 '사람을 전시하자' 였답니다. 이듬해에 하겐베크는 핀란드 북부의 라플란드로 가서 랩 족 원주민들을 데려옵니다. 그게 세계 최초의 '인간 동물원'이 되는 거죠. 



그런데 사실, '인간을 전시한다'는 건 하겐베크가 처음 한 생각은 아니에요. 당시 유럽에서는 '원주민 쇼' 같은 형태의, 원주민 구경이 큰 인기였답니다. 1870년대, 영국과 미국이 열심히 제국주의 세력을 확장하던 때죠. 식민지 나라에서 피부 색 다르고, 생활 관습 다른 원주민들을 데려와서, 사람들에게 구경을 시켰답니다. 19세기 후반의 유럽은 몹시, 한편으로는 괴기한 시절이어서, 그 땐 별걸 다 전시했던 것 같아요. 왜, 신경숙의 소설 <리진>에 보면, 프랑스 공사를 따라 파리에 간 조선 궁녀 리진이 '모르그' 전시에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르그가 뭐냐, 영안실이죠. 괴기하게 죽은 시체들을 모아서 전시하고, 숙녀들은 파라솔 들고 구경 가서, 손수건 코에 대고 쓰러지고 뭐 그런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원주민 쇼는 '문화인류학적 관심'이 더 높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미국의 '인디언 쇼'가 상륙하면서 진정한 '원주민 쇼'로 거듭나게 됩니다. 미국의 '인디언 쇼'가 뭐냐 - 미국이 서부를 개척하면서 인디언들을 싸그리 멸망을 시키죠. 좌시하지 않겠다던 자세로 싸우던 인디언 부족들이 항복한 것 까지는 기억나는데....살아남은 인디언들은 '쇼 비즈니스'에 동원됐답니다. 피부색도, 복장도, 눈빛도 다른 원주민들을 구경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또 '위대한 우리 백인들이 이렇게 무식하고, 도끼 휘두르는 놈들을 정말 노력 끝에 몰아냈다'는 그런 인종차별적 정체성이나 역사관도 확립할 겸 해서요. 



그 인디언 쇼 중에 가장 유명한 게 '버팔로 빌의 와일드 웨스트'였답니다. 네, 버팔로 빌, 저는 언제나 버팔로 빌이 패밀리 레스토랑 스테이크 이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버팔로 빌은 '윌리엄 코디'라는 미국의 인디언 '정복자'의 별명이었습니다. 버팔로 빌이, 자기가 전투에서 이긴 추장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여기 저기 전시를 했죠. 그 중 가장 유명한 인디언 추장이 아마도, 제로니모와 시팅불인 것 같습니다. 



(http://www.bbc.co.uk/news/world-us-canada-13265069)



제로니모입니다. 아파치 인디언 추장이었던 제로니모는 버팔로 빌과 '운명을 건 한판승'을 실제에서도 벌이고, 인디언 쇼에서도 재연하게 됩니다. 차라리 어디 감옥에 넣어버리지, 사람을 그렇게 수십번 죽여서는 아니 되었던 것 아닐까 싶은...ㅠㅜ 얼마나 치욕스러웠을까요. 이 '제로니모'라는 이름이 혹시, 익숙하지 않으세요? 미국이 작년에 빈라덴을 사살한 그 공격명이 원래 '제로니모'였답니다. 제로니모는 실제와 쇼를 통해서, 울던 아이도 이름만 들으면 뚝 그치는, 야만족 전사로 이미지가 정리됐던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그 제로니모의 후손들이, 왜 우리 조상의 이름을 그런 추악한 공격에 써먹냐며 항의해, 공격명은 나중에 바뀌었습니다.) 이 제로니모는 영국 드라마 <닥터후>에서 (제가 사랑하는) 11번째 닥터의 캐치 프레이즈이기도 하죠. 뭐 시작할 때 닥터가 '제로니모!' 합니다. 


 (11대 닥텁니다. 제로니모!) 


(http://en.wikipedia.org/wiki/File:Sitting_Bull_2.jpg)



시팅불입니다. 시팅불은 수우 족 인디언의 전투 추장이었죠. (어찌 얼굴이, 민주노조 간부처럼 생기지 않았나요? 조끼만 입혀 놓으면 경향신문사 11층 민주노총 사무실 옆에서 왔다갔다 하셔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은....) 이 사진은 아마도 쇼 비즈니스를 위해서 찍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시팅불은 한국에도 번역돼 널리 읽혔던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의 그 인디언 추장입니다. 이 분은 안타깝게도 운디드니 전투가 채 벌어지기 전에, 암살 비슷하게 유명을 달리하시게 되죠. 



시팅불에 대한 이야기는 <시팅불, 인디언의 창과 방패>라는 책에 잘 나와 있습니다. 7년전에..ㅠㅜ 쓴 서평이 있네요(클릭). 



어쨌거나, 네네, 다시 유럽으로 돌아와서, 이 미국의 '인디언 쇼'가 1800년대 중반 드디어 유럽 순회 공연에 나섭니다. 아, 정숙한 (척하던) 유럽 사람들은 이 인디언 쇼에 깜짝 놀라게 됩니다. 원주민을 갖고 이런 것도 할수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죠. 그 전에 유럽의 '원주민 전시'는 '인류학박물관' 비슷했거든요. 원주민 유골이나 소장품 같은 거 전시하면서, 틈틈이 실제 원주민도 불러서 구경시키는... 뭐 그런 거였는데, 춤추고 노래 시키고 전투 장면 재연도 할 수 있는겁니다. 그 때부터 '원주민 쇼'가 런던과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 곳곳에 투어를 다니게 됩니다. 지금 개념으로 치면 써커스 -지금은 써커스가 거의 없는 것 같지만- 비슷했던 것 같아요. 



하겐베크는 이 원주민 쇼를 '동물원'에 유치한 최초의 사람이었습니다. 동물원 공간 넓지, 동물은 지금 돈 없어서 못 사오지, 그러니 대신 사람들 데려와서 '여기 살라'고 하고, 공연을 시킨 거죠. 랩 족을 데려온 게 1875년, 그 뒤로 세계 여기저기서 데려 옵니다. 인도네시아 자바 섬, 스링랑카, 아프리카 줄루 족, 에스키모, 그리고 당시로서는 세계 최남단이었던, 남아메리카의 땅끝, 티에라 델 푸에고에 가서 푸에고 사람들도 데려 왔습니다. 






(http://circusnospin.blogspot.co.uk/)



하겐베크 동물원에 전시돼 있던 원주민들입니다. 스링랑카에서 오신 분들인 것 같습니다. 원주민들은 그렇다고 목에 쇠사슬을 걸어 감금해 놓거나 그런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책 같은 걸 보면, 동물원의 '공연자'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계약서도 쓰고들 왔는데, 하루에 8-10시간 정도 일을 했다고 합니다. 전통 공연 보여주고, 동물원 동물들이랑 퍼레이드 하고, 나중엔 일상 생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나무 조각도 하고, 밥도 해 먹고 그랬답니다. 하겐베크는 이 원주민 문화가 '순수'하게 유지되도록 갖은 조치를 했던 것 같습니다. 통역 한 두 명 빼고는 유럽어 못 배우게 하고, 현지인과 접촉 못하도록 애썼죠. 그래야 '공연'이 되니까요. 그래도 사랑은 싹트는 법이어서, 원주민 청년과 독일 여성들 사이에서 애가 태어났다는 기록이 1870년대부터 있답니다. 




지난해에 찍은 하겐베크 동물원의 조류사에요. 여기가 예전에 동남 아시아 원주민들을 전시했던 곳입니다. 저 사진의 분들도 아마 이런 데서 지내셨겠죠.




(사진 출처 http://eng261.blogspot.co.uk/2011/02/savages-on-display.html)


이누이트(에스키모) 가족들도 떼로 왔습니다. 그렇지만 이누이트에게 유럽의 박테리아는 치명적이었죠. 이누이트 공연단은 모두 유럽 풍토병으로 죽었고, 저 멀리 땅끝에서 데려온 티에라 델라 푸에고의 원주민들도 병으로 다 세상을 떴습니다. 결국 기후에 적응을 그럭저럭 했던 랩족과 자바 주민 정도가 오랫동안 남았다고 합니다. 하겐베크의 '인간 동물원' 모델이 꽤 인기를 끌면서,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됐답니다. 



이 인간 동물원은 그러나 20세기로 넘어가면서 슬슬 인기를 잃게 됩니다. 원주민들 중 일부가 유럽식의 생활 방식을 빠르게 받아들이셔서, 술마시고 담배피고, 카드를 치는 바람에 전시 관계자들을 당혹케 하셨답니다. 무엇보다도, '원주민 쇼' 자체가 인기가 없어졌답니다. '영화'가 등장한 거죠. 세계의 끝에 사는 원주민들을, 굳이 여기서 인공적인 환경 만들 것 없이, 현지에서 찍어 와서 극장에서 보여 주는 게 더 인기가 있었답니다. 



또 배나 기차 같은 교통 수단이 발달하면서, 이제는 더 이상 대단한 식민지 사업가가 아니어도 아시아나 아프리카에 갈 수 있게 됐답니다. 가서 볼 수 있는데, 굳이 여기서 인공적인 쇼를 할 필요가 없는 거죠. 그러나 현지 원주민들의 생활도 빠르게 바뀌었고, 관광객들은 여전히 '이국적 원주민'을 기대하면서, 현지에서 '원주민 쇼'들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게 요즘 우리가 앙코르와트에 가서 보는 압사라쇼나, 하와이에서 보는 폴리네시안 원주민 쇼의 기원이죠. 거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따로 한번 쓸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전에 어디 써 놓은 게 있어서...




다시, 하겐베크 동물원의 옛 정문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중간에 코끼리가 있고, 기둥 위에 북극곰이랑 호랑이가 있고, 양쪽 가장자리 기둥에 사람이 보입니다. 




네, 인디언입니다. 이 정문이 몹시도 상징적으로, 이 동물원이 한때 사자와 호랑이와 북극곰과 인디언을, 다 함께 전시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게 하겐베크 동물원에 남아있는 유일한, 인간 동물원의 흔적입니다. 나머지는 싸그리 다 없앴어요. 한 줄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저는 '예전에 우리가 이랬는데 앞으로는 안 그러겠다, 이런 끔찍한 시절도 있었다' 뭐 이런 안내판이라도 있을 줄 알았지요. 그러나 없습니다. 나중에 박물관 기념품 가게에 갔더니, '하겐베크 동물원의 역사' 책을 팔더라고요. 거기에 보면, 당시 사람들을 전시했던 사진이 나옵니다. 책이 서울의 집에 있는 관계로 찍어서 올릴 수가 없다는...ㅠㅜ



왜 그랬을까요? 왜 하겐베크 동물원은 '인간 동물원'의 역사를 싹 지우고 시치미를 떼고 있을까요? 



아마도 '쪽팔리는 줄 알아서' 일 것 같습니다. 인간을 동물원에, 동물과 함께 전시했다는 사실은, 지금의 인류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지 않습니까. 특히 독일처럼 특정 인종을 다른 인종과 분리해서 차별했던 나라는, 더욱 그런 수치스런 과거는 지우고 싶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위에 쓴 것처럼, 그렇다고 사람들을 노예처럼 채찍으로 때린 것도 아니었고, 하루에 16시간씩 일 시킨 것도 아니었는데, 뭐가 그렇게 부끄럽다는 걸까요?



그것은 아마도, 이 '인간 동물원'이라는 것이 '식민주의'의 표현이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겐베크와 유럽의 나라들이 전시했던 원주민들은, 대부분 영국과 프랑스 제국주의의 '식민국가'에서 왔습니다. 미국의 인디언 쇼도 마찬가지고요. 그 식민지 국가의 원주민들을 전시한 것이, 이렇게 이국적인, 그러나 미개한 식민지 주민들을 우리가 '문명화' 시켜야 한다는, 자기들 나름의 식민주의 정당화 차원이었던 것 같습니다. 더불어 우리가 이렇게 저 멀리 이국적인 애들까지 다 관리한다, 는 제국에의 도취였기도 하고요. 



뭐, 걍 돈이 되니까 했겠지, 싶기도 하지만, 일본도 비슷한 원주민 쇼를 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일본이 1895년에 교토에서 세계 박람회 비슷한 걸 했는데, 거기서 '원주민 전시관'을 만들었답니다. 누구를 전시했을까요? 아이누, 타이완 원주민, 오키나와 원주민, 말레이 원주민, 자바 원주민, 그리고 네, 조선인이었습니다. 일본의 제국주의는 그 지도대로, '원주민'들을 근대화시키면서, 뻗어나가게 됩니다. 



우리가 '인간 동물원'에 분개하는 것은 -사실 '인간 동물원'은 이름만 들어도 분개가 저절로 되지 않습니까? - 기본적으로는 인류가 다른 인류를 가두고 전시해서는 안된다는 인도적인 차원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정치적'인 차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식민주의가, 실제로는 형태를 바꿔 여기저기서 하고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우리의 세계에서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반성이겠지요. 



원주민들, 이국적인 게 사실입니다. 멋지잖습니까? 얼굴에 물감을 칠하고 전투에 나가는 수우 족 전사들이나, 바다코끼리의 뿔을 갈아 파이프를 만드는 이누이트나, 구슬이 가득 달린 머리 장식을 쓰는 태국 고산족이나, 그런 다른 세상의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정말로, 큰 즐거움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 '차이'를 이유로 그들을 '차별'해서는 아니 되는 것 같습니다. 인간 동물원은 그런 '차이'에 대한 우리의 열망을 이용해, '차별'을 정당화하는 도구였습니다. 그리고 인류는 이제 더 자랐으니까, 그 '차별'이 부끄러운 줄 알고 있습니다. 올 여름, 다른 세상의 어디론가 떠나실 때, '차이'에 감탄하시돼, '차별'은 경계하는, 에에, 꽤 괜찮은 여행자가 되자고, 주장해 봅니다. (아, 이거 왜 이렇게 끝나고 있죠? 저 하겐베크 동물원 사진 올리려고 시작했는데, 그건 시작도 못하고 딴 이야기만 실컷 하다가...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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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코츠월드 2012.08.01 1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랫만에 함브르크이야기 들으니 귀가 솔깃
    24년전 공부할 때 시부모님이 함브르크에 오셔
    갈 곳 찾다가 간 곳이 Hagenbek Tierpark 에 갔지요.
    유럼 최초의 동물원인데 Hagen이 돈벌이의 귀재라 결국
    사람도 전시를 했다는 소리는 들었죠.
    동물원 어디에도 그 흔적이 없는데 인디언 상이 있다는 것에 대해
    의아해 했거든요 ㅎㅎㅎ

  2. 포탈 2012.08.05 17: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
    인간 동물원이 있었다는게 놀랍네요. 다시는 저런일이 일어나지 않겠지요?

  3. 여행객 2012.08.05 2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북극곰을 보러 가는 투어 버스는 아침 해도 뜨기 전에 숙소 앞으로 왔다. 노란색 스쿨 버스였다. 먼저 버스에 타고 있던 관광객들이 손을 들고 아는 척을 했다. 노란 점퍼가 써스캐춘 아줌마, 빨간 바바리가 똑똑이 아줌마다. 피난 열차 같은 처칠행 열차에 몸을 싣고 하룻밤을 함께 보낸 우리들 사이에는 이미 끈끈한 동지애가 넘쳐흘렀다. 빈 좌석이 보이면 일단 가방부터 던져 놓았던 그 밤, 점퍼를 담요 삼아 온 몸을 구겨 넣었던 그 새벽, 기차 안 화장실에서 줄을 서서 차례로 이를 닦았던 그 아침, 3시간 늦게 출발한 기차가 반성의 기미도 없이 정확하게 3시간 연착해 처칠역에 도착했던 그 낮. 어차피 사흘 뒤에야 돌아가는 기차가 있을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한 열차를 타고 와서 한 열차를 타고 돌아갈 운명이었다.


(나름 고풍스러운 처칠역. 우리를 데려왔다 데려갈, 연착전문 기차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날 오후 내내 처칠 시내에서 마주쳤다. 처칠은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인구 850. 북극곰 관광객이 몰려드는 10월 말에서 11월 초엔 1200명으로 불어난다. 그래도 수만명의 관광객을 감당하긴 어려워, 북극곰 보러 왔다 아르바이트생으로 한 철을 나고 돌아가는 관광객들도 있다. 주민의 서너 배는 족히 될 관광객들은 식당에서, 박물관에서, 수퍼마켓에서, 그리고 골목에서 수없이 마주쳤다. ‘처칠 모텔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창 밖으로 지나가는 관광객을 세고 있는데, 싹싹한 써스캐춘 아줌마가 우체국에 가면 북극곰 소인 찍어준다!”며 여권을 꺼내 자랑했다. 식당 옆 기념품 가게에서 컵 받침이며 머그컵이며를 구경하고 있는데, 똑똑이 아줌마가 오늘 저녁에 초등학교에서 북극곰 강좌 있다는 이야기 들었어?”라며 뜨거운 동지애로 정보를 나눠줬다.

 

털털거리는 우리의 스쿨버스는 흰 털만 보여도 자지러질 준비가 돼 있는 관광객들을 태우고 고든 곶 으로 향했다. 처칠 시내에서 30분 거리. 처칠만 야생관리구역의 일부인 고든 곶은 북극곰들이 바다가 얼기를 기다리는 일종의 대합실이다. 북극곰이라고 일년 내내 얼음 위에서 보내는 것은 아니다. 처칠의 북극곰들은 여름 한 철은 내륙의 와푸스크 국립공원에서 보내고, 바다가 얼기 시작하는 10월 말 우르르 줄을 지어 바다로 달려간다. 이 때 전세계 관광객과, 사진작가와, 방송국과, 다큐멘터리 제작자도 처칠로 달려온다. 내가 확신을 갖고 이야기하건대, 내셔널지오그래픽도, BBC 북극곰 다큐도, ‘북극의 눈물, 북극곰이 나오는 장면은 대부분 처칠에서 찍었다. 전세계 북극곰은 22000여마리, 그 중 절반이 허드슨만에 살고, 처칠 일대에만 1200마리가 산다. 사람보다 북극곰이 더 많다. ‘물 반 곰 반인 거다. 우리의 투어 버스에도 커다란 렌즈를 둘러멘 프로 삘의 작가가 한 명 타고 있었다.

 

우리는 고든 곶 입구에서 트랙터처럼 바퀴가 커다란 툰드라 버기로 갈아탔다. 표면만 얼었다 녹았다 또 얼기를 거듭하는 툰드라 들판을 방황하며 북극곰을 찾아다니는 것이 오늘의 과업. 가이드를 겸해 국제 북극곰 보호단체 폴라 베어 인터내셔널활동가도 버기에 올랐다. 북극곰의 생태적 중요성과 기후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교육하려고 탔겠지만, 관광객들은 그녀가 1킬로 밖의 북극곰도 찾아내는 소머즈의 눈을 가졌으리라는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손가락만 바라보는 관광객들의 눈을 의식한 듯 그녀가 멀리 희끄무레한 물체를 가리켰다. “저기!....아 북극 토끼네요. , 우리가 아는 토끼보다 약간 큰데 털이 희죠. 보호색이라고나 할까.” 잠시 말을 멈춘 그녀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걱정 마세요, 작년엔 40마리나 우글거렸거든요.”
 

(곰 발견! 오옷 온몸이 새하얀 북극곰입니다)

고래도 곰도
, 내가 나타나면 자기들끼리 텔레파시라도 보내는 걸까. “어이, 이야기 들었어? 걔 또 왔대. 몇 시간은 꼼짝 말고 집에 있어야겠어.” 그것은 마치 우리 동네에서 회사 앞으로 가는 721번 버스가 내가 기다릴 때마다 작정하고 배차시간을 조정해 절대 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40마리나 우글거렸다는 북극곰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흰 것은 토끼요, 여우요, 북극 뇌조였다.


처칠엔 북극곰이 너무 많아 동네 쓰레기통까지 뒤진다더니
, 오늘은 일제히 소풍이라도 갔단 말인가. 숙소인 빙하장 카운터에서 보고 외워온 북극곰 비상전화 654-2327이 무색했다. 일종의 북극곰 119’ 전화번호다. 654를 누르고 영문 철자로 B-E-A-R를 누르면된다. 즉각 출동한 구조대가 말썽꾸러기 북극곰을 포획해, 헬기에 대롱대롱 매달아 고든곶이나 와푸스크 국립공원에 풀어 놓는다. 개전의 정 없이 꾸준히 마을에 출몰하는 죄질 나쁜북극곰들은 허드슨만이 얼 때까지 철창 신세를 지게 된다. 공항 근처에 북극곰 감옥이 있다. 28마리까지 수용할 수 있는데, 작년엔 어찌나 호기심 많고 씩씩한 곰들이 많았는지 감옥이 다 찼다고 한다. 그 인간 친화적인 곰들은 다 어디로 가고 고든곶엔 찬바람만 불었다. 북극곰 인터내셔널 활동가가 민망한 손가락을 움직여 수프와 빵을 날라줬다.


(몹시 빠른 속도로 돌진해오는 북극곰!)

갑자기 버기 안이 웅성거렸다. 먹던 수프를 내려놓고 똑똑이 아줌마가 창가로 다가갔다. “오 마이...” 곰이었다. 흰 점 하나가 지평선에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곰은 성큼성큼 다가와 버기 앞을 지나갔다. 이미 벌떡 일어나 있던 사람들이 이쪽 창가에서 저쪽 창가로 몰려왔다. 훌륭한 차다. 그래도 기울지 않는다. 놈은 우리 옆의 또다른 버기를 향해 정면 돌진했다. 오전 내내 나란히 허탕을 쳤던 경쟁 여행사 차다. 곰은 바퀴를 붙들고 벌떡 일어섰다. 표효는 아니고, 가르랑거리는 북극곰의 말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면 이 쯤 됐을 것이다. “혹시 남는 밥이 있으시면...”


(먹을 걸 달라고 없는 꼬리를 흔들고 있는 북극곰)

헐리우드 연예 스타도 부럽지 않을 카메라 세례 속에서 곰은 바퀴만 툭툭 쳤다. “북극곰은 정말 하얗구나.” 인간 북극곰이 문득 생각났는 중얼거렸다. 눈처럼 새하얗지는 않지만 깨끗한 베이지색이었다. 얼룩덜룩 녹색 이끼가 끼어 있는 우리 동네 어린이 대공원의 북극곰 썰매와는 달랐다. 살고 있는 곳의 기온이 너무 높으면 북극곰 털 속에서 남조류가 번식해 이끼가 낀다. 그렇지만 이 하얀 북극곰은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북극곰은 차가운 북극 바다의 물범을 잡아먹고 산다. 지구 온난화로 북극의 얼음이 줄어들면서 사냥을 하기 위해 수영하는 거리가 길어졌고, 배고프고 지친 북극곰들은 익사하고 있다. 전세계 어린이의 친구, 북극 생태계의 제왕, 세계적 멸종위기종이 처해 있는 오늘의 현실이다.

 
버기 차량 사이를 어슬렁거리던 북극곰은 결국 수확 없이 떠났다
. 북극곰 인터내셔널 활동가에게 귀 따갑게 잔소리를 들은 관광객들은 콩고물 하나 던져주지 않았다. 엉덩이를 흔들며 사라지던 곰은 멀찌감치 툰드라 덤불 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배를 긁으며 낮잠이라도 잘 모양이었다. 그날 오후에 만난 또 다른 북극곰도 낮잠을 자고 있었다. 쪼그리고 엎드려 자는 모습이 인형처럼 귀여운 곰이었다. 그게 끝이었다. 그날 오후 내내 고든 곶의 지형지물을 외울 만큼 뺑글뺑글 돌았지만 더 이상의 곰은 보지 못했다. 전 세계 북극곰의 수도 처칠, 그 중에서도 곰이 떼로 몰려다닌다는 고든 곶에서. “어린이 대공원 북극곰한테 처칠 친구들 안부라도 전해 주려고 했는데...” 인간 북극곰이 혼잣말처럼 대답했다. “영 면목 없게 됐어, 그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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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ondandu 2011.05.08 1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으면서, 우글거리는 곰 사진을 기대했는데...다음 글 기다릴게요. 포스트 책으로 나와도 재밌을 것 같아요^^




우리말 제목은 '동물원의 탄생'이지만, 원래 영어식 제목은 '야만과 야수 Savages and Beasts'다. 그러나 사실 이 책은 '하겐베크 동물원 이야기'다. 하겐베크는 독일의 유명한 동물원 이름이자, 그 동물원을 만든 사람의 이름이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생선장수를 하던 하겐베크네 집안은 세기말과 세기초,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동물 무역을 해 큰 돈을 벌었다. 유럽에선 '동물원=하겐베크'라는 인식이, '케첩=하인즈' '햄버거=맥도날드' 수준이란다.

사실 이 책은, 언젠가 서평에서 보고 점찍어 두었는데, 남편이 마침 채식까페에 갔다가 비싼 값(!)을 주고 사 왔다. '환경과 생명'이라는 단체에서 꼽은 '우리시대의 구명보트' 100권 중의 한 권이기도 하다. 채식주의, 평화주의, 생태주의 어쩌고에 끼어 있었으니, 읽기도 전에 짐작하는 바, '동물원은 이제 그만!' 일,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처음 '이제는 동물의 동물권을 생각해야 할 때, 그간 우리는 얼마나 야만적이었나'로 기세 좋게 출발하던 이 책은, 마지막에 이르러 모호한 태도로 꼬리를 내린다. 쓴 작가가 이러하니, 읽는 독자는 얼마나 혼란스러웠겠나. 정말, 막판엔 머릿속이 뒤죽박죽 되는 기분이었다. 몇년 전 대학로에서 '제 3세계와 신제국주의와 어쩔 수 없는 돈의 논리와 문화의 상대성' 등등을 취재하러 간 남편을 기다리며, 나는 찻집에서 다리를 달달 떨며 읽었다. 거기다, 깜빡 잊고 지갑을 안 가져 가서, 남편이 올 때까지 찻집에 '감금'돼 있었다. 6시에 온다던 이 사람은 7시 넘어, 7시30분이 넘어도 아니오더니, 결국 7시52분에 왔다.

여튼, 다시 하겐베크. 연극 '빨간 피터의 고백'을 본 사람이면, 거기에 나오는 '하겐베크'라는 이름을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유인원인 빨간 피터는 하겐베크 '사단'에 붙잡혀 유럽으로 실려 온다. 하겐베크는 그 시대의 가장 유명한 동물 중개상이었다. `하겐베크가 떴다 하면, 표범도 코끼리도 치타도 원숭이도 모두 벌벌 떨었다'는 당시 시사만평이 있다. 그가 유독 잔혹해서는 아니었고, 그가 가장 대표적이고, 영향력이 큰 중개상이기 때문이었다. 하겐베크는 '동물원 업계' 최초로, 본격적인 의미의 현대 동물원을 만들었고, 나중에는 이를, 지금 우리가 외국에서나 보는 '생태 동물원'으로 개량했다.

라인홀트 메스너가 세계 등반의 변화를 견인했다면, 하겐베크는 동물원의 역사를 이끌고 바꿨다. 누구보다도 먼저, 대중이 원하는 것을 알아차렸고, 대중이 원하는지 안 원하는지 헷갈리던 시절에도 분연히 먼저 나서 대중이 원하도록 만들었다. 특히 생태동물원이 그렇다. 하겐베크는 '동물이 보다 편안한 환경에 살게 하기 위해' 생태동물원을 만들었다고 발표했지만, 진짜 이유는 '사람들은 동물이 창살에 갖혀 있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런 잔머리를 100년 전에 굴리다니.

하겐베크를 누구보다도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가 동물원에 '사람들을 전시했다'는 사실이었다. 하겐베크는 1900년대 초기 몇십년에 걸쳐 그린란드, 모하이섬, 아프리카 등지에서 '가족들'을 데려와 동물원에 풀어놓고 살게 했다. 이렇게만 쓰면 잔인해보이는데, 또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다.

당시엔 '외국인 쇼'가 유행이었다. 마치 뉴욕 극장에서 킹콩 쇼를 하듯, 대형 극장에 배경화면 그려넣고 인디언과 미군이 전쟁을 재현하는 류의 쇼가 인기를 끌었다. 우리의 하겐베크가 곰곰이 보니, 사람들은 그런 '가짜쇼' 대신, '원시인'의 평범하고, 전통적인 일상의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그는, 그렇게 했다. 대중은 열광했고, 미디어는 '최고의 교육 기회'라고 극찬했으며, 인류학자와 문화학자들은 하겐베크 동물원의 뒤를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해 인류학 자료를 확보했다. '원시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앞다퉈 하겐베크를 따라나서겠다고 했는데, 덴마크 정부의 경우엔 그린란드 주민들의 '남하'를 법으로 막아야 할 정도였다.

이 '사람쇼'는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유럽으로 온 '원시인'들은 금세 담배를 피우고, 클럽에서 차를 마시고, 트럼프를 배웠다. '대중'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인류학자들은 돈과 노력을 들여서라도 직접 '현장조사'를 해야겠다, 고 결론내렸다. 그래서 하겐베크는 사람쇼를 폐기하고, 꿈과 사랑의 환타지 쇼를 만들었다. 인도인들이 낙타를 몰고 사막을 넘으며 마법을 배우고, 이야기를 듣고 어쩌고 하는 대규모 쇼다. 우리가 태국 고산족 마을에서 보는 '고산족 쇼'나,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보는 '압사라 쇼'나, 다르지 않다.

작가는 마지막에 이르러, 하겐베크가 동물원의 역사를 견인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하겐베크 자신이 대단한 동물애호가였음은 부정할 수 없다, 고 썼다. 그리고 동물원이 없었다면 이 강팍한 20세기에 저만큼이라도 희귀동물이 보존될 수 없었으리라고도 썼다. 또 동물원은 후대 세대를 위한 훌륭한 교육의 장소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뒤에 5줄 정도 덧붙여 '이제는 동물의 권리도 생각할 때'라고도 썼는데, 그 결론은 빈약해보였다.

책은 동물원보다는 오히려, '약한 것'에 대한 시각과, '돈의 논리'에 대해 생각할 바가 많았다. 특히 '원시인'들이 자발적으로 동물원에 전시됐다는 점은 더욱 고민스럽다. 그들이 원하고, 대중이 원하는데 누가 무슨 권리로 '인도주의'를 끌어다 말릴 것인가. 농촌 총각이 원하고, 베트남 처녀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오길 원하는데, 누가 뭐라고 말릴 건가. 미국인이 원하고, 미국 가서 잘 살아보겠다고 '언니'들이 선보러 미국 간다는데, 그걸 뭐라고 말릴 수 있나.

지지난해 겨울 태국 북부 고산족 마을에서 '고산족 쇼'를 볼 기회가 있었다. 여덟살, 아홉 살 먹은 아이들이 목을 길게 늘이기 위해 목에 링을 끼우고 춤을 추고 있었다. 사진을 찍다 말고, 지갑에서 되는대로 돈을 꺼내 집어줬다. 바보같은 짓이었다. 그들이 원하고, 관광객이 원하는데. 고산족 쇼는 태국 북부 관광의 인기 코스 중 하나다. 고산족 마을은 관광 수입으로 먹고 산다. '원래의 생활방식'으로 돌아가면 되지 않냐고? 그들은 주로 '마약'을 재배했다. 자, 어쩔건데? 아, 역시, 여전히,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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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딸기 2010.10.24 1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뇽이가 나더러, 명애씨한테 암체어 트래블 시켰냐고 해서 무슨 말인가 했더니 이 카테고리였구만. 실은 내가 블로그에 암체어 트래블러라는 카테고리를 만들고 뭔가 해보려다가... 포기했거든 ^^;;
    그러고보니 명애씨랑 나랑 관심사가 겹치는 구석이 많네. '동물'도 그렇고...
    <동물원의 탄생> 재밌지? 그런데 애들 그림책 중엔 '동물의 꿈은 동물원에 가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황당한 책들도 있다우...

  2. narwhal42 2010.10.24 17: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명애 기자님, 아이디가 오르카네요. 그래서 제 아이디는 나왈로 했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