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파나마에서 열리는 국제포경위원회(IWC) 에서 과학적 목적의 포경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했죠. 그 소식이 채 우리나라에 알려지기도 전에 전세계로 빠른 속도로 타전됐습니다. 미국 국무부도 성명을 발표하고, 호주와 뉴질랜드도 '좌시할 수 없다'고 강력하게 반대 뜻을 밝혔지요. 특히 호주는 주한 호주 대사를 시켜 항의도 하면서 펄쩍 뛰고 있지요.

왜 그럴까요? 왜? 다른 나라도 아닌 호주가 그렇게 펄쩍 뛰는 걸까요? 호주가 유난히 자연보호 의식이 높은 '선진국'이어서 그럴까요?

 

(바로 이 분이 한국의 포경 재개를 강력 반대하시는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십니다. 사진은 연합뉴스)

 

호주가 전세계에서 가장 동물과 자연을 사랑하는 나라여서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뭐 호주는 광활한 대자연이 있으니까 좀 사랑할 것 같긴 합니다만, 그런 이유로 외교 분쟁을 불사하지는 않겠죠. 그보다는 한국이 일본처럼 되는 건 아닌가 싶어 경계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일본이 과학 목적으로 매년 밍크 1000마리를 남빙양에서 잡고 있습니다. 남빙양이 어디냐, 남극해입니다. 호주 앞...은 아니고 뒷바다죠. 일본의 포경 때문에 호주 인근의 밍크 고래가 줄어들고 있고, 이건 호주의 고래 관광 산업을 위협하는 거죠.

 

호주는 뉴질랜드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고래관광이 발달한 곳 중 하나입니다. (네, 호주와 함께 뉴질랜드도 한국의 포경 재개에 펄쩍 뛰었습니다) 지금에야 그렇지만 호주도 우리나라처럼 예전엔 고래를 잡았답니다. 호주가 본격적으로 포경에 뛰어든 것은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일인데요, 10년 정도 잡다가 고래 개체수가 현저히 줄어들면서 그만뒀죠. 그러다 90년대 초반부터 고래 관광으로 전환합니다.

 

슬그머니 시작해 본 고래 관광은 엄청난 수의 관광객을 불러들였습니다. 호주 고래 관광객이 91년에 33만5200명이었는데, 98년에는 2배가 넘는 73만5000여명으로 늘어납니다. 고래를 돈으로 세자니 좀 아니다 싶지만 어쨌거나, 98년 고래 관광 수입이 직접 수입만 1187만 달러, 호텔이며 교통편이며 해서 간접 수입까지 합치면 5600만 달러였습니다. 고래 아마 지금은 몇 배 이상 늘었을 겁니다. 이 조사를 하신 국제야생동물보호기구(IFAW)의 호이트 박사께서 2001년 이후로 조사를 안 하셔서...ㅠㅜ 이 분은 스코틀랜드에 사시는데, 언젠가 아마존으로 이분 책을 샀더니 본인이 직접 파시는 거더라고요. 어쨌거나, 고래를 잡아서 이용하는 것보다, 살려서 이용하는 게 이익이 된다는 거죠.

 

이렇게 포경에서 고래 관광으로 탈바꿈한 대표적인 지역이 바로 탕갈루마 리조트 입니다. 요즘은 한국인 신혼 여행객들도 많이 간답니다. 심지어 홈페이지에 한국어 버전도 있습니다. 호주 북동부, 브리스번 근처의 모튼이란 섬에 있네요. 인터넷에 탕갈루마 리조트 쳐 보시면, '야생 돌고래 먹이 주기는 꼭 하고 오세요' 뭐 이런 것 나옵니다. 이 리조트의 대표적인 상품이 고래 관광 보트를 타는 것과, 돌고래 먹이 주기 두 가지죠.

 

 

(네 여깁니다. http://www.qldtravel.com.au)

 

 

(탕갈루마 리조트 근처에서 보이는 고래. 등지느러미로 보니 밍크인 것 같습니다. 바로 우리나라 연근해에서 많이 보이는 고래도 밍크죠. http://www.whalewatchingqueensland.com.au)

 

이 탕갈루마 리조트는 사실 호주 최대의 포경 항구였답니다. 포경기지가 1952년에 세워졌는데, 그 뒤 10년간 혹등고래만 6700여마리를 잡아들였죠. 지금 탕갈루마 리조트 관계자들이 이 사실을 상기하면 땅을 칠 겁니다. 혹등고래가 고래 관광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멋진 고래 중 하나거든요. 몸집도 커서 15-20미터쯤 되고 (밍크는 4-5미터 '밖에' 안됩니다), 물 위로도 펄쩍 펄쩍 잘 뛰어올라요. 고래 관광 사진에 항상 나오는 바로 그 고래, 이겁니다.  

 

(멋진 혹등고래 입니다. 위키피디아에서 퍼왔습니다)

그러나 포경으로 혹등고래는 씨가 말라버렸죠. 포경 기지가 세워진 52년만 해도 1만여마리가 있었다는데, 60년대 이후엔 300 마리도 안 남았다고 합니다. 대부분은 잡혔고, 일부는 '내 이 땅, 아니 이 물을 다시 밟나 봐라' 면서 박해를 피해 떠났겠죠. 고래는 영리한 동물이니까요. 어쨌거나 60년대 이후엔 고래가 안 보였고, 포경기지는 문을 닫았습니다. 원래 풍경이 나쁜 곳은 아니어서 그 뒤로 관광 산업을 좀 해 보려고 했지만 쉬원찮았죠.

 

그 탕갈루마 리조트가 고래 관광지로 바뀐 것은 1992년입니다. 현재 이 리조트를 운영하는 회사가 망해 가던 숙소를 사 들여서 업스케일 휴앙지로 대대적으로 리모델링 했습니다. 지금 리조트 자리가 바로 포경선 선원들의 숙소 자리입니다. 인터넷 블로그를 보면 탕갈루마 리조트 부두에서 배를 탔다, 비치에서 맥주 한 잔 했다, 이런 이야기 자주 나오는데, 그 부두가 바로 50년 전 포경선을 정박시키던 항구입니다. 리조트에서 고래 관광 보트도 운영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고작 30년 안 잡은 걸로는 고래 개체수가 회복이 안 됐나 봅니다. 고래 목격 확률이 조금씩 높아지긴 했지만 허탕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리조트가 고안해 낸 게 '야생 돌고래 먹이 주기' 였습니다. 근처에 돌고래가 좀 보인다는 사실에 착안해서, 해변에서 먹이 들고 기다리고 있는 거죠. 영리한 돌고래는 밥 때가 되면 공짜 밥을 찾아서 잘 찾아왔습니다. 먹이도 먹고, 관광객과 눈인사도 했죠. 이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탕갈루마 리조트의 대표 상품이 됐습니다. 덕분에 탕갈루마 리조트도 친환경, 친동물, 에코투어의 선봉 뭐 그런 이미지를 갖게 됐죠. (이거 뭐 리조트 광고를 하는 기분이...ㅠㅜ) 더불어 호주 전체가 캥거루와 고래와 월러비를 사랑하는 나라, 자연의 나라 뭐 이렇게 인식됩니다.

 

(바로 이 프로그램입니다. 저도 꼭 해보고 싶어요 흑흑 http://www.tm6.net/travel/whale-watching-at-tangalooma/)

 

호주가 남의 나라 포경 재개에 펄쩍 뛰는 건 바로 이런 이유와 경험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고래를 죽여서 이용하는 것보다 살려서 이용하는 것이 훨씬 이익이 된다는 거죠. 우리나라가 과학 목적으로 포경을 재개한다고 해서, 일본처럼 당장 남빙양까지 달려가 고래를 잡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일단 포경을 허용하면, 우리나라 주변에서 남빙양으로 영역이 확대되는 것은 순간일 겁니다. 그러니 호주가 펄쩍 뛰는 것 같습니다. 고래가 죽은 고래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걸 그들은 경험적으로 배웠으니까요.

 

사실 우리나라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2009년부터 울산 장생포에서 고래 관광 을 하고 있답니다. 고래를 살려서 이용하는 관광을 하면서, 동시에 고래를 죽여서 이용하는 고래 고기를 파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형태의 고래 관광지입니다. 정부의 포경 선언 이후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보면 '고래가 불쌍해요' '왜 포경을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런 글들이 많은데, 그렇다면 울산으로 고래 관광을 가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관광객 백만명이 살아있는 고래를 보러 오겠다는데, 정부가 포경을 재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장생포 고래 관광, 나름 재미가 있습니다. 장생포 고래 탐조 배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싼 고래 탐조 보트 여행일 겁니다. 외국에서 고래 탐조배 한 번 타려면 한 사람이 100달러는 쥐어야 하는데, 여긴 2만원입니다. 물론 배가 엄청 크고 (대신 큰 배는 덜 흔들리는 장점이...) 갑판이 한낮의 가요무대로 바뀌는 (뒷 갑판으로 피신하면 됩니다) 단점이 있긴 하죠. 고래가 잘 안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고래 탐조 관광 자체가 원래 그렇습니다. 세계 어디서나 고래 관광을 하면, 운이 아주 좋지 않은 이상, 아마 고래의 등짝을 잠깐 보거나, 고래 그림자 비슷한 걸 보는 정도에 그칠 겁니다. 또 모르잖아요? 고래가 떼로 나타나 주실지도. 저는 장생포에서 관광 탐조선 세 번, 조사선 한 번 이렇게 네 번 배를 탔는데, 한번은 밍크 보고, 다른 한번은 바다의 이 쪽에서 저 쪽 끝까지 메운 돌고래 떼를 봤습니다.

 

돌고래 쫓아가다 월북할 뻔한 이야기는 여기를 클릭! 허접하지만 돌고래 동영상도 있습니다

 

(고래 바다 여행선입니다)

 

그리고 다른 자잘한 재미들도 있습니다. 고래 박물관이 있는데 -환경단체들은 포경 박물관이라고 걱정하는 곳이기도 하죠 - 여기서 우리나라 포경의 역사와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포경사가 재미있었는데, '반구대 암각화에 고래가 나온다' 그 다음이 '1900년대 일본이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포경을 시작했다' 입니다. 중간에 서너 줄 더 있긴 하지만, 고래가 목격됐거나, 어떻게 이용했다는 거지, 고래를 잡았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목격됐다는 것과 포경을 했다는 건 좀 다른 문제죠. 아, 1900년대 초반에 노르웨이 포경 선원이 장생포에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을 겁니다. 세상에 그 분은 어떻게 까마득한 그 시절에 '세상의 끝'에 오셨을까요.

 

(고래 박물관 전경이에요)

 

(고래 생태체험관입니다. 살아있는 돌고래가 전시돼 있는 곳이죠)

 

(장생포 부두의 고래 고기 전문점 중 하나입니다.)

 

장생포에서 고래 관광을 하시고 나면 많은 분들은 복잡한 심정이 되실 것 같아요. 저도 그랬거든요. 고래를 해체하는 사진도 한 장 걸려 있었는데, 전시하는 입장에선 지역 문화로 걸어 놓으셨겠지만, 그걸 '살해 장면'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거고요. 어쨌든 장생포에서 1900년대 이후 고래를 잡은 것은 사실이고, 그것이 지역 문화의 일부인 것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고래 고기 식용 문제 때문에 장생포가 겪은 우여곡절도, 지금의 포경 재개 논란도 바로 그 문화의 일부일 것 같고요. 그렇지만 우리가 멸종 위기에 있는 야생동물을 전통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서라며 잡아도 되는 걸까요? 아니, 멸종 위기에 있지 않다 하더라도 그런 대형 포유류를 잡아도 되는 걸까요? 혹시 우리가 고래를 보호한다면서 장생포의 주민들을 '아직도 고래고기를 먹는 사람들'이라며 따돌리고 있는 건 아닐까요? 혹시 고래 고기와 포경은 이제는 청산해야 할 우리 모두의 역사적 과거는 아닐까요? 

 

장생포에서 관광객들은 지역 문화, 전통 문화, 지역 개발, 우리의 일부인 자연, 살아있는 생명의 보존, 수족관에 갖힌 돌고래, 식민지 문화 이런 것들에 대해, 고민하게 되실 겁니다. 바로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바로 지금의 장생포에 가는 거죠. 그리고 그런 (머리 아픈) 여행이 내 삶의 방식을 바꾸고, 그런 여행자가 십만명 백만명이 될 때 우리 문명의 방향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여행은 힘이 세니까요.

 

참, 고래 고기는 아마 못 드실 거에요. (다행히도) 비쌉니다 ㅠㅜ. 고래가 아니어도 식당에는 이것 저것 많이 팝니다. 저는 부둣가 어디에서 자장면을 먹었는데, 그게 어찌나 맛있었는지 지금도 가끔 생각 납니다.

 

 

장생포 어딘가 벽에 그려져 있던 그림입니다. 초등학생들이 그린 고래 그림이랍니다. 나와 도요새와 상괭이가, 그리고 울산 앞바다의 밍크 고래와 돌고래가 함께 행복한 세상, 괜히 뭉클한 그림입니다. 그런 세상을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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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딸기 2012.07.07 1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재밌다. 언젠가 기사로 쓴 적이 있긴 한데, 아주 짧게 건드리느라고 제대로 보지를 못했는데...
    역시 고래전문가가 설명해주니 다르네! 호주의 돌고래 관광은 정말 꼭 해보고 싶다 ㅠ.ㅠ
    (참 그런데 '국무성'->국무부. 국무성은 일본 표현... 지금은 국무성, 수상, 이런 말 안 씀)
    근데 왜 울나라가 포경산업 하겠다고 저 난리인지... 하는 짓이 어째 허구헌날 그 모양인지...

  2. 쎾쓰 2012.07.08 0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쎾쓰

  3. 이인숙 2012.07.09 1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배, 글 너무 잘봤어요...지금 이 상황이 한눈에 이해되는. 때맞춰 넘 잘올려주셨어요^^ 열씨미 여기저기 알려야겠네요.

  4. Ray 2012.07.14 0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의 글 반가웠어요^^
    들어올때마다 업뎃은 안되있나 궁금햤는데 오랜만에 기자님 글 보니 넘 즐겁게 읽었답니다^^ 며칠전엔 경향에 연재하신 북극권 나라 이야기를 정주행 했더랬죠 ㅋ
    고래 포경 뉴스는 얼마전 봤었는데 호주가 반대하는 이유가 있었군요. 전 왜 반대하나 했는데 속사정이 따로 있군요. 늘 깊이 있고 좋은정보를 재밌게 풀어주시니 좋네요^^
    아직 영국에 계시나요? 한국은 이제 장마 아닌 우기로군요. 늘 건강 조심하시길 바랄게요. 아참, 글도 자주 뵈었음 좋겠네요^^




알래스카 인사이드 패시지를 다니는 여객선 타쿠호 선실의 2층 침대가 편한 것은 아니었다. ‘최소 공간에 최대 적재를 목표로 만들어진 세상의 모든 배 시설물답게, 누우면 정수리와 발바닥이 양쪽 벽에 짝 하고 달라붙었다. 나보다 한 뼘 쯤 긴 북극곰은 발목을 잘라내거나 무릎을 세워야 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자세로 잤다. 계속 잤다. 잘 수밖에 없었다. 원인을 찾으려면 72시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플로리다를 강타한 태풍 메이의 영향이 캐나다는 건너뛰고 알래스카에 미쳤기 때문이었다


미국 시애틀 다코마 공항을 정시에 출발한 우리의 알래스카 항공 69편은 케치칸 상륙을 20분 남겨놓고 시치미라도 잡아떼듯 운항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케치칸 대신 싯카로 갑니다며 방향을 틀었다.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내리는 싯카 공항에 망연히 서 있던 비행기는 다시 케치칸으로 향했으나 시간당 100밀리의 폭우에 넋을 잃은 케치칸 공항은 상륙 따윈 허가하지 않았다. 우리의 비행기는 공중에서 맴만 돌다 결국 알래스카의 주도, 주노로 향했다. 항공사에서 끊어 주는 호텔에서 2시간 20분을 자고, 새벽 비행기로 케치칸으로 날아와 2시간을 자다 나가 놀았다. 그날 밤 다시 3시간을 자고 새벽 배를 타서, 배 탐험에 정신을 팔다 다시 4시간을 자고, 일어나 점심을 먹고 다시 2시간을 잤다


(주노 공항에서 케친칸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자고 있는 북극곰)

3시간씩 몰아 잠자기를 몇 번 했더니, 그렇잖아도 시차 때문에 없는 정신이 시간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오늘이 어제인지, 어제가 내일인지 모를 지경이 됐다. 일 년의 3개월은 낮만, 3개월은 밤만 계속돼 시간 개념이 우리의 그것과 다르다는 에스키모의 사정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이 비몽사몽의 와중에서도 기항지에 도착했다는 뱃고둥은 어김없이 울렸다. 우리는 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두르고 몽유병 환자처럼 비틀거리며 갑판으로 나갔다. 케치칸에서 싯카까지 23시간의 항해 동안 타쿠호는 세 번 기항지에 들른다. 차례로 랭겔 Wrangell, 피터스버그 Petersburg, 케이크 Kake 라는 조그만 마을이었다


(피터스버그에서 비를 뚫고 인증샷을 찍고 있는 북극곰. 주요 시설물은 모두 화살표 왼쪽으로...)

다행히 랭겔과 피터스버그에는 터미널 주변으로 집도, 사람도 있었다. 다시 말해, 케이크에는 터미널 주변에 아무 것도 없었다는 이야기다. 원두막 같은 대합실과 케이크 원주민 투어 Kake Native Tours'라는 스티커가 붙은 버려진 버스 한 대가 전부였다. 틀링깃 인디언 중에서도 케이크 부족인 이 마을 사람들도 관광 산업에 뛰어들 긴 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서너 걸음을 더 걸어가 못 쓰는 주유소로 보이는 케이크 원주민 정유 Kake Tribal Fuel’ 앞에서 사진을 찍고 돌아왔다. 그래도 모든 것이 스타벅스’ ‘월마트아니면 인 미국에서 원주민 여행사나 주유소는 의미 있는 시도가 아니냐며, 대규모 독점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케이크의 현재와 그리고 미래를 기원했다.


한편 랭겔에서는 열심히 걸어 두 블록이나 떨어진 도서관까지 다녀왔다. 집집마다 마당에 색색깔 꽃과 풀을 가꾸는 예쁜 마을이었다. 부두로 돌아오니 아홉 살 쯤 돼 보이는 소녀가 조약돌같은 조그만 돌을 펼쳐놓고 팔고 있었다. 돌에는 자줏빛 구슬 같은 게 박혀 있었는데,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랭겔의 석류석이라고 했다. 아프리카 킴벌리의 다이아몬드는 들어봤어도 랭겔의 석류석은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어쨌거나 어른들은 캘 수가 없고, 아이들만 캐어서 조금씩 팔 수 있게 돼 있다고 했다. 구슬이 반쯤 묻혀 있는 돌을 하나 샀다. ‘돌 사세요말 한마디 못하던 아이가 수줍어하며 몸을 배배 꼬았다


(배는 랭겔을 향해 접근하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관련사진임.)


피터스버그는 이름이 같은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 페테르부르크와는 무관한 곳이었다. 피터라는 사람이 발견을 했는지, 건설했는지 해서 피터스버그라고 이름이 붙었는데, 지명은 러시아식, 공식적으로는 미국령, 실제로는 노르웨이인들이 모여 사는, 정체성이 혼란스러운 마을이었다. 크기로는 케치칸만 못 하지만 목재업이 발달해 형편은 훨씬 낫다고 했다. 그래서 케치칸처럼 관광 산업에 올 인할 필요가 없단다. 지역 안내 브로셔에 나올 법한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이유는, 피터스버그에 도착하자마자 장대비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터미널 의자에 앉아 브로셔를 꼼꼼하게 읽었다.


피터스버그의 역사와 문화와 전통에 대해 다 알게 됐는데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 다리를 박자 맞춰 흔들며 앉아 있는 우리만큼이나 승무원들도 심심해 보였다. 요리사처럼 흰 옷을 입은 바 승무원은 자동차가 주차돼 있는 카 데크에서 농구를 하고 있었다. 어젯밤 형광 막대를 흔들며 우리의 신분증을 검사하던 승무원은 어디서 구해 왔는지 종이컵에 흙을 담고 풀 한포기를 심고 있었다. 키울 모양인가보다. 그러고 보니 오늘 새벽 빈 식당의 승무원은 몇 번을 망설이다 다가와 볼이 빨개진 채로 니혼진 데스까라고 물어봤었다. 나는 정말이지 다정하게 대해 주고 싶었지만, 일본어로 아닙니다이에인지 아리마스인지 자꾸만 헷갈려 결국은 노 재패니즈라고 손을 흔들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배를 타고, 모든 기항지에 30분씩, 1시간씩 들르는 저들에게 시간은 아다지오의 속도로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어두움이 깔리는 먼 바다로 나가는 우리의 타쿠호. 수평선 위로 구름인가 꿈인가 머나먼 곳입니다)

그날 밤엔 전망 라운지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양 옆 외에 정면에도 창문이 나 있는 조그만 라운지였다. 오늘의 기항지를 모두 들른 배는 푸르스름하게 어두움이 깔리는 바다로 천천히 몸을 밀고 나아갔다. 쌍안경으로 내다본 바다의 끝에는 산들이 있었고, 산들의 머리엔 어김없이 만년설이 덮여 있었다. 저것이 구름인가, 빙산인가, 혹은 흘러내린 빙하인가.


이어폰에서는 아이슬란드 밴드 시규어 로스
잇츠 유 It's You’가 무한 반복 중이었다. 낮도 밤도 아닌 시간대에서, 눈 앞에선 빙하와 구름이, 귓전에선 바람 소리 같은 음악이 영원히 반복되고 있었다. 머리를 기대는데, 북극곰이 어깨를 툭툭 치더니 창 밖을 가리켰다. 저 멀리, 까마득한 끝에, 세 개의 점이 보였다. 바다사자나 바다새가 아니다. 저 정도면 고래다. 창에 눈을 갖다 댔더니 검은 지느러미가 우뚝해도 보였다. 나는 지금도 그들이 범고래 오르카라고 믿고 있다. 이것이 세계의 끝에서 내가, 고래를 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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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사비크에는 가로등에 점점이 불이 들어오는 저녁 무렵 도착했다. 민박집 주인인 엄마는 딸을 보러 갔다며, 70년대 미국 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단발 파마머리 아주머니가 나는 집을 봐 주러 와 있을 뿐이라며 문을 열어줬다 (즉 본인도 딸이다). 7년 전에도 후사비크에서는 민박집에 묵었다. 호텔이랄 게 없는 작은 바닷가 마을이다. 창틀에 올려놓은 가족들의 사진과 꽃 화분을 보니, 아무래도 이 집이 그 때 그 집 같았다. 창틀을 식탁삼아 도너츠와 커피를 놓고 먹은 기억이 났다.


골목에 나와 보니 그러나
, 집집마다 창틀에 화분이 올라와 있었다. 모두 민박집이었다. 딱히 간판이랄 것도 없고, 그냥 가정집 빈 방에 여름 한 철 손님을 받는다. 분필로 현관문에 ‘X’ 표시라도 그려야 하는 것 아닌가 심각하게 고려할 즈음 주유소와 편의점이 나왔다. 여기서부터 바닷가를 따라 식당, 여행사, 성당, 박물관, 문 닫은 보너스 마트, 공구점 같은 가게들이 쭉 나온다. 성당 맞은편 통나무집은 고래 관광 매표소다. 편의점에 분필은 없고, 콜라와 맥주 한 캔을 샀다.



(점점이 불이 들어오는 후사비크의 저녁 풍경. 빙하가 쌓인 산들이 오르카 등짝 같습니다)

후사비크고래를 보러 온 길이었다
. 예전부터 고래가 보고 싶었다. 누구는 현빈을 좋아하고, 누구는 ‘2PM’을 보고 싶어하는 것처럼, 나는 그냥 고래가 보고 싶었다. 기왕이면 송대관이나 설운도보다 공유나 이선균이면 좋겠듯이, 기왕이면 범고래 오르카면 좋을 것 같았다. 몸에 흰 얼룩이 있고, 지느러미가 우뚝한 대형 고래다. 다른 고래를 잡아 먹어서 킬러 웨일이라고도 하는데, 얼마 전 미국 올랜도 씨월드에서 조련사를 익사시킨 것도 바로 이 오르카였다. 영화 프리윌리의 그 고래다.



-오르카는 왜 조련사를 공격했을까.
Dying to entertain you
-조련사를 익사시킨 돌고래 틸리컴 이야기- 안까먹으려고 쓰는 블로그가 안 까먹고 알려주기를 클릭,
-돌고래쇼를 더 봐야 할까요. 영국엔 돌피나리움이 없다



프리윌리의 주연, 오르카 케이코의 고향이 바로 아이슬란드다. 아이슬란드 앞바다에서 잡혀 미국으로 팔려간 케이코는 각종 고래 쇼를 전전하다 헐리우드까지 진출하게 된다. 영화 속 윌리는 방파제를 뛰어 넘어 자유를 얻었지만, 현실 속 케이코는 영화 촬영이 끝난 뒤 수족관 속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 황당한 아이러니에 전세계가 프리 케이코(케이코를 풀어주세요)’ 캠페인을 벌였다. 결국 케이코는 자유를 찾았지만, 일평생 야생에서 한 번 제대로 살아보지 못했던 이 고래는 자꾸만 인간을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케이코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두 달 동안 먹지도 쉬지도 않고 헤엄을 쳐 북극해를 건너 노르웨이에 닿았다. 그리고 며칠을 시름시름 앓더니 죽고 말았다. 후사비크 고래 박물관에는 케이코의 안타까운 사연이 패널로 전시돼 있었다. 대학생들이 봉사활동 나온 김에 벽화라도 그려 놓고 간 것처럼 생긴 컨테이너 가건물이지만, 후사비크 고래 박물관은 유네스코로부터 상도 받은 세계 최고의 고래 박물관이다.



(정박되어 이는 두 척이 고래 탐조선이에요. '오늘은 안하니 내일 오세요')

고래 관광선은 이틀 뒤에야 탈 수 있었다
. ‘미리 공부를 하고 가겠다며 고래 박물관에서 종류별 고래 골격과, 고래의 한 평생과, 중세 괴물과 현대 고래의 대차 대조표까지 꼼꼼히 다 읽고 매표소로 갔지만, 후사비크 제 1의 고래 관광 여행사 노스 세일링날씨가 개어야 표를 판다며 기다리라고 했다. 박물관 기념품 가게에서 아이슬란드에서 보이는 다양한 고래들티셔츠를 사고, 길 건너 일반 기념품 가게로 건너가 웨일 와칭 가이드를 훔쳐보고, 텅 빈 성당에 들어가 고래 보게 해 달라며 간절히 기도까지 올렸지만, 후사비크 제 2의 고래 관광 여행사 젠틀 자이언트사람도 없고 고래도 안 보이니 내일 다시 오라며 매정하게 셔터를 내렸다. 3의 여행사는 없다. 이 두 업체가 후사비크 고래 관광을 맡고 있다. 고래가 꽤 잘 보이는 아이슬란드에서도 고래 관광 하면 후사비크다. 아이슬란드 고래 관광의 90%가 여기서 이뤄지고, 고래 관광객의 95%가 고래를 본다.


다음날 아침 노스 세일링의 고래 탐조선을 탔다. 아무래도 우리가 이 배의 평균 연령을 힘겹게 끌어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관광버스로 온 노인 단체 관광객 팀에 끼어 있었다. 무릎을 두드리며 배에 오르던 할머니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빛의 속도로 탐조복을 챙겼다. 3시간 동안 배 위에서 고래가 오시기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바지부터 모자까지 우주복처럼 하나로 연결된 탐조복이 준비돼 있다. 역시 노스 세일링친환경 방침이 있는 업체다. 탐조복은 십수년 째 재활용한 듯 솜도 튀어나오고 얼룩도 져 있었다. 다리 한 쪽에 두 다리가 다 들어가고도 남을 큼직한 탐조복을 질질 끌고 갑판을 구경했다. 배도 30~40년 된 낡은 포경선을 개조해 만들었다. 후사비크는 아이슬란드 11개 포경 기지 가운데서도 가장 고래를 많이 잡던 곳의 하나였다. 지금은 완전히 고래 관광으로 전환했다. 노스 세일링도 공공연하게 포경을 반대하며, 수익금의 일부를 국제 고래 보호 프로그램에 기부한다. 고래 박물관 연구자도 수첩과 쌍안경을 들고 고래 탐조선에 매번 동승한다.



(망망대하를 떠도는 경쟁사의 고래탐조선. 배가 거의 가라앉을 듯 갑니다)

그 많다는 포포이스 돌고래도
, 파일럿 고래도, 관광객 앞에서 펄쩍펄쩍 뛰어 오른다는 혹등고래도 모두 파업 중이었다. 2시간을 꼬박 망망대해를 떠돌았으나, 고래는커녕 암초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눈이 빠질 때 쯤 되자 머리에 빙하를 인 먼 산도 오르카처럼 보였다. 심심한 갈매기들만 배를 따라 날아오다 수면 위로 내려앉았다. 새우깡이 없어 아쉬운 대로 아이슬란드 초코바 니짜를 흔들어봤지만 갈매기들은 코웃음만 쳤다. 고래 목격 확률 95%라는 주장이 한국 기상청의 일기 예보 적중도 90% 주장과 비슷한 것임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당사자의 주장과 일반인의 체감 사이에 엄청난 거리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디든 한 방울이라도 비가 오면 예보가 맞은 것처럼, 고래의 등짝이든 지느러미든 물줄기든 뭔들 한번 어렴풋하게라도 보이면 고래를 본 거다. 그러나 이대로는 고래 그림자도 보기 어려워 보였다.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우리는 갑판 아래 선실로 내려가 어깨를 기대고 잠시 졸았다. 고래가 나타난 것은 그 때였다.


이렇게 쓰면 드라마틱해 보이지만, 실상은 갑판으로 올라와 잠시 하품을 하는 동안 마스트에서 망을 보던 가이드가 “3시 방향!”을 외친 것이었다. 거무스름한 그림자 비슷한 것이 비쳤다. 겨울 아침 종각역 비둘기떼처럼 오종종 모여 떨던 관광객들이 일제히 3시 방향으로 카메라를 들이댔다. 수면 위로 잠시 삼각형 모양의 지느러미가 보였다. 밍크, 일 것이다. “11시 방향!” 관광객들이 일제히 반대쪽 갑판으로 뛰었다. 배도 덩달아 기우뚱거렸다. 그러나 고래는 이미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배 아래로 잠수해 이 쪽에서 저 쪽으로 옮겨간 뒤 유유히 사라졌을 것이다. 북극곰이 가이드의 메가폰 소리에 선실에서 튀어나와 갑판으로 뛰어올라올 만큼의 시간이었다. 밍크 고래의 등짝 2초씩 두 번. 그것이 그날 우리가 본 고래의 전부였다.



(고래는 못 보고, 돌아오는 길엔 시나봉과 몹시 단 코코아를 나눠줍니다. 줄을 서서 먹고 있는 관광객들)

고래는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첨예한 환경 이슈다
. 아이슬란드는, 먹지도 않으면서 매년 100여마리의 고래를 잡는 포경 국가다. 주로 밍크를 일본으로 수출한다. 노르웨이, 일본과 함께 사실상의 상업 포경을 허용한 몇 안 되는 국가여서 전 세계 동물 운동가와 환경 운동가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의 모라토리움 선언에 따라 공식적으로 포경을 중단 했지만 계속 잡았다, 말았다 하다가 2007년엔 아예 과학적 목적의 포경을 허용했다. 그러나 이번엔 이미 포경에서 고래 관광으로 전환한 후사비크와, 아이슬란드 관광 업계와, 전세계 여행자들의 항의가 쏟아졌다. 더 많은 고래를 살려서 보여줘야 하는 고래 관광과, 고래를 사냥해서 줄이는 포경이 공존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실제로 그 해 아이슬란드의 관광 수입은 감소했고, 아이슬란드 정부는 수출용 고래는 안 잡고 내수용 고래만 잡겠다는 애매한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고래 고기가 딱히 인기있는 것도 아니어서, 내수용 고래는 좀처럼 팔리지 않고 있다.


다음날 우리는 흐발 피요르드 포경 기지로 잠입 여행했다. 흐발 피요르드 포경 기지는 현재 아이슬란드에서 유일하게 고래를 잡아서 해체하는 곳이다. 상업포경이 재개되면서 20년 된 낡은 기지의 먼지를 털어 다시 돌린다. 멀리 포경 기지가 보이는 곳부터 참을 수 없는 이상한 냄새가 공기를 타고 흘러왔다. 에스키모들이 고래를 잡아 뼈를 세워놓는 알래스카 해안의 고래 비린내도 아니고, 고래 고기의 냄새도 아니었다. 동물 기름을 34일쯤 끓여서 나오는 것처럼 메스꺼운 냄새였다. 자연스러운 관광객처럼 보여야 한다며, 실제로 관광객이지만, 우리는 브이자를 그리며 차례로 사진을 찍었다.



(철조망 안 쪽이 고래 기지에요. 바다도 손수건만큼 보입니다)

이 고래 기지는
1986년 포경에 반대하는 환경운동가로부터 테러를 당한 바로 그 곳이다. 그린피스 활동가 두 명이 몰래 잠입해 포경선에 구멍을 내고 유유히 사라져 아이슬란드 포경 업계를 국제 망신시켰다. 혹시라도 붙잡혀 고문 받다 차가운 레이캬비크 감옥에서 일평생을 썩게 될까봐, 우리는 수백 미터 거리에서 망원 렌즈로 몰래 사진을 찍고, 혹시 직원이 물어보면 가이드북에 있어 신기해서 와 봤다고 명랑하게 말하기로 입도 맞췄다. 론리플래닛 가이드북에 진짜로 한 줄 나오긴 나온다. 그러나 이 고래 기지는 그 뒤로도 보안에 있어 별 반성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공장 앞마당의 직원은 우리를 흘낏 보더니 호수로 물을 뿌려 마당을 쓸어냈다. 분홍빛 살점이 떨어져 있었다. 고래였다. 혹시라도 어제 우리 배 밑을 지나갔던 그 밍크일까. 혹시 그 아이의 친구나 동생은 아닐까. 바람에 진한 비린내가 실려와, 한 손으로 다시 코를 움켜쥐었다.



(창살 속으로 손을 넣어 몰래 찍은 고래 해체장 작업 풍경. 고래야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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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kygirl 2011.02.09 02: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프리윌리의 고래이야기는 정말 슬프네요. 고래 대차대조표에서 빵 터졌습니다 ㅋㅋ 글과 사진 정말 잘 보다 갑니다~




(울산 장생포 가는 길 어느 공장 담벼락. 장생포초등학교 어린이들의 그림으로 벽화를 만들었다.)


불길한 영화의 시작처럼 이야기하자면, 그 하루가 그렇게 길 줄 알았더라면 아예 떠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침부터 어딘가 이상했다. 고래 목시조사 배를 태워주겠다던 울산시청 박선생님은 전날 밤 전화통화에서, 아침 9시30분까지 장생포 냉동창고 뒤로 오라, 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정류장을 놓쳐 직업훈련소 종점까지 갔다가 터덜터덜 냉동창고로 향하는 길. 마침 갓길도 없어 차도의 흰 선을 밟으며 걸어야 했다. 찬바람 부는 냉동창고 앞에는, 배 한척 뿐 아무것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나 속은 거 아닐까. 이 배에 그대로 실려 새우잡이로 팔려가는 거 아닐까. 전화를 할까 말까. 5분만 더 기다려 볼까. 제자리에서 신발로 땅바닥을 쿡쿡 차며 동그라미 맴돌기를 10여분, 저쪽 가건물에서 손 흔드는 사람이 보였다. "배 타시기로 하신 분이시지요?"


정말 작은 배였다. 선장과 선원 2명, 박선생님, 그리고 나였다. 닻을 올리고, 줄을 감고, 시동을 걸고, 배는 천천히 장생포 미포산업단지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바다는 '장판' 처럼 평온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멀미가 쏟아진다기에 어젯밤 급히 사다 붙인 멀미약 자리가 괜히 머쓱할 정도였다. 좁은 만을 빠져나가자, 박 선생님은 의자를 세워 놓은 선실 위로 담요를 감고 올라갔다. 고래가 보이는지, 얼마나 보이는지, 어디서 보이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울산시청이 매주 실시하는 목시조사다. 파도가 몹시 거칠지만 않으면 매주 꾸역꾸역 나간다. 먼 바다에서 고래를 분간할 능력도 없고, 6인용 탁자 하나가 겨우 들어갈 선실에 일없이 앉아 있으니, 괜히 미안한 기분이었다.



(뻘쭘하게 앉아있는 접니다)

고래는, 소리없이 찾아왔다. 갑자기 배가 천천히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바다 저 끝에 갈매기들이 무리를 지어 맴돌고 있었다. 그 아래 거뭇거뭇한 것이, 고래였다. 고래는 물고기를 쫓고, 고래가 먹고 남긴 물고기 부산물을 먹으러 새들이 모여든다. 새 떼 만큼이나 고래도 적지 않아 보였다.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그림자 같던 그것들은, 물 위로 펄쩍 펄쩍 뛰어 올랐다. 참돌고래였다. 한 두 마리가 아니었다. 세마리도 아니었다. 바다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참돌고래 떼가 덮고 있었다. 박선생님이 갑판으로 나오며 말했다. "운 좋네요, 오늘. 올해 들어서 처음 봅니다, 이렇게 많은 건." 


며칠 전 만난 정일근 시인이, 이야기를 하다 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고래 본 적 있어요? 아, 네. 얼마나 봤어요? 뭐 밍크도 좀 보고, 파일럿 고래도 본 적 있고, 오르카처럼 생긴 고래도 멀리서 보고, 또... 정시인이 내 말을 가로막았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고래를 가장 많이 본 사람이에요. 울산 앞에 가면, 돌고래 떼가 수평선 저 끝까지 가득찰 때가 있어요. 수천, 수만마리에요. 고래 한가운데에 내가 있어요. 시간이 딱 정지하고, 고래하고 나만 있어요. 그 감동을, 나는 말로 다 못해요. 고래 보러 가세요. 봐야 압니다.




(똑딱이 디카로 찍은 넘실거리는 고래떼 동영상. 이거 올리려고 지금, 동영상편집기 다운받아 첨 편집(=잘라내기)해 올려봅니다 ㅠㅜ)


수평선의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고래와 나 밖에 없었다. 고래들은 배를 무서워도 않고,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펄쩍 펄쩍 뛰어 올랐다. 배가 하얀 낫돌고래들은 카메라를 아는지 모르는지, 뱃전으로 다가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달리고 또 뛰어올랐다. 카메라의 메모리는 금세 차 깜빡깜빡 빨간 불이 들어왔다. 지우고 찍고, 또 지우고 찍었다. 고래생태관광 가이드라인에는, 고래를 쫓아가지 마라, 고래 뒤에서 접근하지 마라, 피할 거리를 남겨둬라, 속도를 내지 마라, 같은 말들이 나오지만, 지킬 수도 없었다. 뒤로도 고래, 앞으로도 고래, 옆으로도 고래 떼였다. 



(뱃전에서 만져질 듯 가까이 다가오는 돌고래. 네, 가이드라인 따위는 완전 망각했다는 ㅠㅜ)


"관광선에 연락해 줘야지? 요새 못 봤대는데" 선장은 통신 연락망으로 고래바다여행선에, 여기 고래 있으니 관광객 태워서 오라, 고 연락을 보냈다. 울산시 남구청이 주말마다 고래관광선을 운영하는데, 한동안 고래가 보이지 않아 허탕을 쳤다. 평일인데도, 관광선은 곧 출발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그 때까지 고래떼 잘 잡고 있으라는, 주문이었다. 고래는 GPS가 달려 있지 않아 위치를 확인할 수 없으나, 이 배는 찾을 수 있으니, 고래떼를 놓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이 날의 끝나지 않는 항해가 시작된 것은. 


고래떼는 자꾸만 북으로, 북으로 이동했다. 우리도 따라서 북으로 방향을 잡았다. 조금만 한 눈을 팔면, 고래떼는 사라지고 없었다. 고래떼를 따라, 배는 잰걸음으로 달렸다. 장생포에서 1시간 거리에서 목시조사를 할 예정이었는데, 배는 자꾸만 북으로 북으로 향했다. 이러다 월북하지 싶었다. 3시간 안에 장생포항으로 돌아온다고 했는데, 이미 4시간은 훌쩍 넘긴 상태였다. 선장은 어디론가 또 통신을 날렸다. 


한 시간쯤 더 달렸을까. 저 멀리서 검은 점이 보였다. 밥 배였다. 또다른 어업 지도선이, 고래를 좇고 있는 이 배를 위해 국과 찌개를 실어 왔다. 뱃전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밥을 먹으면서, 선원들은 교대로 고래떼를 지켰다. 밥 배가 돌아가고도 한 시간이 지나서야, 저 멀리 관광선이 보였다. 손을 흔들 필요도 없이, 관광선은 고래떼를 향해 달렸다. 관광객들의 환호가, 들리지 않는데도 들리는 것 같았다. 나도 타 봐서 안다. 관광객들은 고래를 보고 환호를 지를 준비가 되어 있다. 그 전 주, 그림자처럼 지나가는 밍크의 지느러미를 보기 위해, 관광객들은 배가 기울만큼 밍크를 향해 달려왔다. 저 멀리 푸른 바다에 불량화소처럼 찍혀 있는 밍크의 등을 보고도 관광객들은, 감탄과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거기가, 생태관광의 희망과 가능성이 있는 지점이다. 



(고래관광여행선의 관광객들. 그다지 환호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 환호하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동해 한가운데서 이제 돌아갈 일만 남았다. 지금 달리면 터미널 가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출발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배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정신없이 고래떼를 좇던 어디쯤에선가, 밧줄이 스크류에 걸려 버린 모양이었다. 경운기처럼 털털거리면서 배는, 꾸역꾸역 서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이 대로라면 오늘 중으로 돌아가기도 어려워 보였다. 나는 다시 선실 안으로 들어갔다. 


파도에 넘실거리는 배의 진동은, 출근길 지하철 진동 만큼이나 규칙적이었다. 어느 순간 이미 졸고 있었다. 중간에 깨어 좀더 빠르다는 다른 배로 갈아타고, 다시 계속 졸았다. 내가 기자에 연구자인데, 무엇보다 이 배에 승선한 유일한 여성인데, 이렇게 머리를 기둥에 쳐박으며 졸아도 되는 것인가, 라는 자각이, 기둥에 머리를 박을 때마다 잠깐잠깐 들었으나 곧 사라졌다. 장생포에 도착할 즈음, 바다 건너편에 고래 해체장 자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사진을 찍으려 애썼던 기억이 얼핏 난다. 


배가 냉동창고로 돌아온 것은 오후 5시. 땅에 발을 딛자 파도를 넘는 것처럼 넘실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저 바다 한가운데에서, 조금 전 까지만 해도, 고래떼 속에 있었는데. 그것은 꿈이었을까. 카메라를 켰다. 찍혀 있다. 그럼 사실이었을까. 아니 꿈이었을까. 가슴이 콩콩 뛰는데, 코에서 비린내가 나는 것 같은데, 그럼 그건 사실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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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쏘댕기자 2011.01.05 0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밤중에 뱃가죽 부여잡고, 킄킄킄

  2. 갈매 2011.01.05 14: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너무너무 재밌다~~ㅎㅎ
    론리플래닛 보면 각 여행지에서 할 수 있는 여러가지 아웃도어활동이 나오잖아. bird watching, whale watching 등등. 미국있을때, 보스턴 앞바다에 가면 고래를 볼 수 있다는거야.
    새따윈 관심없지만, '세상에 고래라니!!고래를 볼 수 있다니.'
    큰 기대를 품고 밤버스를 타고 보스턴항에 갔지. 비가 내려 그날은 꽝, 다음날도 비, 마지막날은 흐렸는데 갔더니, 이런날은 고래가 안보인다나. 허탕치고 실패. 고래는 그렇게 사라져갔지.
    근데 멀리갈 것도 없었군. 울산앞바다에 가면 저리 많은 걸.
    왜 한국에선 고래보러 갈 생각을 못했을까? 이래서 에코투어리즘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거겠지?
    9시뉴스로만 보던 돌고래떼 영상을 이렇게 최멍블로그에서보니 감회가 새로우면서, 나도 가면 막 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착각이 든다! 감동의 포스팅임.^^

    그래 이렇게 각종 기술을 익혀가는거야! 대견, 뿌듯하다! 최멍~ (내가 얼마나 뿌듯해하는지, 이 바쁜 와중에, 장문의 댓글을 남긴 걸보니 알 수 있겠지?)ㅋㅋ ~잘했다, 치타!

    • 갈매 2011.01.07 19:14  댓글주소  수정/삭제

      SNS의 세계는 넓고도 깊다는. 만날 새로운 용어가 나오고, 개념이 나오고.. 어려워어려워~~
      어서 감기가 낫길 바래~~

      고래보러 갈 때 나도 좀 데려가주라~~ ^^

  3. ㅇㅇㅇㅇㅇ 2011.03.13 1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




돌피나리움이라는 말이 있다. 아쿠아리움에서 '아쿠아'를 '돌핀'으로 바꾼 건데, 말 그대로 돌고래 수족관이다. 멸치 같은 다른 물고기를 잡아 먹고 살아서인지, 행동 반경이 넓어서인지, '있어' 보여서인지 모르겠으나 어쨌거나 돌고래들은 대체로 돌고래만 따로 수족관에 넣어서 전시한다. 많이 전시되는 종들은 대체로 큰돌고래, 병코돌고래 어쩌고 하는 돌고래들이고, 덩치가 집채만한 범고래(오르카)도 종종 전시한다. 올해 초 미국 씨월드에서 조련사를 익사시킨 그 고래, 영화 '프리윌리'에 나오는 그 고래, 바로 그 고래가 오르카다. 더불어 내가 앞으로 꼭 한번 야생에서 보리라고 마음 먹은 고래이기도 하다.

지난번 무슨 심포지엄에서 "영국에는 돌피나리움이 없다"라는 말을 듣고 내가 잘못 들은 말이 아닐까 생각해 왔는데, 정녕 없나보다. 오늘 낮에 논문을 하나 읽었는데, 영국에서 어떻게 돌피나리움을 없앴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요는, 동물 복지 Animal Welfare 혹은 동물권 Animal Right 그룹들이 계란으로 바위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꽤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 예가 바로 '돌피나리움의 종말'이다, 는 거다. 

세계 최초로 고래를 수족관에 가둔 것은 1860년의 일이었지만, 그 고래들은 바로 죽어버렸기 때문에 돌피나리움의 역사는 1913년 만들어진 뉴욕 아쿠아리움에서 시작된다. 고래/돌고래와 같은 대형 해양 포유류를 수족관에서 관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 최초의 돌피나리움도 마지막 다섯 마리가 21개월만에 몽땅 죽어버렸고, 1938년 미국 플로리다의 '마린 스튜디오'에서 돌고래 순치장을 만들면서 '돌고래 수족관'이 산업으로 발전하게 된다.

돌고래 수족관이 전성기를 맞게 된것은 1960년대 이후의 일인데, 영화 및 TV 시리즈로 만들어진 '플리퍼 Flipper' 때문이었다. 돌고래를 소재로 한 이 시리즈 덕분에 너도나도 앞다퉈 돌고래를 보고자 했고, 수족관도 덩달아 지어졌다. 영국의 경우 1965년 당시 4곳이었던 돌고래 쇼장이 10년 뒤인 1975년 25곳으로 늘었고, 최대 41곳까지 늘어났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현재, 돌고래 쇼는 서울대공원과 제주퍼시픽랜드 2곳에서 열리고, 돌고래 수족관은 울산고래생태체험관 1곳에 있다. 사진이 바로 울산고래생태체험관의 모습이다.

돌고래 수족관을 성공시키는 관건은 새끼 돌고래를 잡아서, 될 성 부른 놈들을 골라서, 쇼 같은 걸 할 수 있도록 적당히 교육을 시켜서 내다 파는 '순치장'에 달려 있었던 것 같다. 이 돌고래 순치는 미국이 원조요 중심인데, 1938년부터 1980년까지 미국에서만 1500마리의 돌고래가 순치 목적으로 잡혔단다. 동물 학대 등의 이슈가 불거지면서 돌고래 순치장 중심지는 일본의 타이지로 옮겨갔다. 타이지에서는 1980년부터 90년까지 약 10년간 500마리를 조련시켜 내다 판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든 돌고래가 튼실하고, 쇼에 적합한 것은 아니어서 '찌질한 놈'들은 모아서 죽인다. 이 내용이 최근에, 적어도 울산에는, 큰 영향을 끼친 영화 <코브>의 골자다. 어쨌거나, IWC에 따르면 1990년 당시 4500마리의 고래/돌고래가 세계 여기저기 수족관에서 전시되고 있었다고 한다. 

다시, 어쨌거나 영국. 영국의 돌고래 수족관들은 대체로 바닷가 휴양지의 어트랙션 중 하나로 종종 만들어졌다. 부산 해운대에 아쿠아리움이 있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지 싶다. 80년대 동물 학대니, 동물권이니 이런 이슈들이 불거지면서, 더불어 바닷가 휴양지가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80년대 중반 현재 영국의 돌피나리움은 딱 4곳으로 줄었다. 바닷가 휴양지인 브라이튼, 모어캠비, 관광지인 윈저성과, 스카브로인데, 이 중 모어캠비가 앞장서 돌피나리움 철폐 캠페인을 펼치게 된다. 

모어캠비는 옛날옛날 광산/산업단지 노동자들의 휴가지로 개발된 곳인데, 대표적인, 쇠락한, 해양 휴양지 되겠다. 가본 적은 없으나 듣기로는, 아마도 월미도 비슷한것 같다. 여기에 마린랜드라고 수족관이 있었고, '록키'라는 이름의 돌고래가 있었다. 그린피스를 비롯해서 Zoo check 같은 동물단체들이 주목한 것은 바로 이 '록키'였다. 1989년/1990년 여름 시즌을 겨냥해, '록키를 자유롭게 해 주자'는 취지의 피켓팅을 이 수족관 앞에서 매일같으 펼치기 시작했다. 첫날에만 절반의 관광객이 피켓을 읽고 돌아갔다고 한다. (아마 가 봐야 볼 것 없을 것 같고, 밖에 나가서 다른 거 보지 뭐, 이런 심리도 없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된다). 이 캠페인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시즌 막판에는 80-90%의 관광객이 걍 돌아갔단다. 틈틈이 수족관 영업 허가권을 갖고 있는 지자체에게 압력도 행사하고 서명도 전달했단다. 이 과정에서 모어캠비의 조그마한 돌고래는 전국적인 이슈가 됐다. 

관건은 이 수족관과 돌고래가, 별 경제적 이익이 없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실제로 별 경제적 이익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수족관도 영업 의지가 없었는지 결국은 이 돌고래 록키를 캠페인 주최측에 단돈 '1파운드'에 팔았다. 캠페인 주최측은 이번엔 '록키를 야생으로 돌려주자' 운동을 펼쳤고, 이런 거 좋아하는 미디어가 함께 엄청 뽐뿌질을 해 100만 파운드를 모금해 결국 록키를 바다에 풀어줬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모어캠비 캠페인에 자극받은 브라이튼도 같은 캠페인을 펼쳐 고래를 야생에 돌려줬다. 욕먹기 싫었던 윈저성과 스카브로도 돌피나리움의 문을 닫고 돌고래들을 외국에 팔았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영국의 돌피나리움은 모두 없어졌다. 

Zoo check는 Born Free라는 이름의 동물 보호 단체로 바뀌어서,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본프리에 따르면,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엔 돌피나리움이 없지만 영국 사람들이 가장 하고 싶은 관광이 '돌고래와 수영을'이란다. 돌고래 수족관이 없으니 그런 소망이 생기는건지, 다양한 형태의 야생 고래 관광이 역시 아무래도 이 세기 사람들에게 가장 먹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거나 '돌고래와 수영을'을 포함해, 야생에서의 고래 관광은 돌고래 수족관과 같은 Captivity 관광의 대안으로 생각되고 있다. 

뭐, 무슨 일이나 그렇지만 야생 고래 관광도 완전한 대안은 아니어서, 이 '돌고래와 수영을' 하던 관광객들이, 교양없게도 고래 숨 뿜는 구멍에 아이스크림 막대기 집어넣고, 괴롭히다가 결국 성난 돌고래가 사람들을 후려쳐 한 명이 죽은 사건도, 있었다. 에, 그럼에도 야생에서의 고래 관광은, 여러가지로, 포기할 수 없는 대안으로 생각된다. 그게, 설명하기 어렵지만, 드넓은 바다를 유영하는 고래를 보고 나면, 이해하게 될 것이다, 왜 고래인지. Believe!


Posted by orc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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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딸기 2010.10.24 1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남아공에서 바닷가에 거대한 고래가 있는 걸 봤어.
    고래의 노래(소리? 울음?)도 들었어.
    살짝 충격적이었지...
    멀리서 고래가 도약하는 것도 봤는데.. 넘 멀어서...

    http://ttalgi21.khan.kr/65 여기 있지롱

  2. myungworry 2010.10.26 0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은 연못>이란 영화가 있었는데, 거기 피난민이 지나는 길 위로 뜬금없이 고래가 헤엄치는 CG가 나와요. 감독한테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고래는 영물이다. 그 울음소리가 참 신성하다. 고래는 평화의 상징이다, 대체로 이런 골자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영화에는 잘 녹아들지 않은 것 같아 의아했는데, 이 글을 읽으니 무슨 말인지 조금 알 것도 같네요.

    • myungworry 2010.10.27 0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개봉했는데 장사가 잘 안됐죠. 지금 노근리 얘기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테니까. 이후 디비디로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