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잘들 보내셨나요? 저는 설날 전날 식구들이랑 지리산에...어쩌다 보니... 길은 나섰고 어디 갈 지 몰라 방황하다 구례 화엄사에 갔습니다. 거기 마침 국립공원 종복원센터가 있지요. 지금은 이름이 종복원기술원으로 바뀌어 도대체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 지 잘 모르겠는 뭐 그런 이름이 됐지만, 여튼 여기가 지리산 반달가슴곰들의 집, 비슷한 겁니다, 네네. 일반 관광객에게도 개방하는 곳입니다. 

 



구례 화엄사 입구 주차장에 지리산 탐방지원센터가 있어요. 탐방지원센터=관광안내소 비슷한 건데, 거기서 길 건너에 종복원기술원이 있습니다. 



나무다리 입구에도 이렇게 곰들이 서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종 복원을 하는 동물이 반달곰 외에도 산양이나 여우도 있는데, 반달곰이 가장 유명하죠. 2001년부터 반달곰 방사 사업을 해서 죽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고, 그러다 새끼들이 태어나기도 하고 등등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26마리가 있습니다. 종복원기술원에는 반달곰 생태학습장이 붙어 있는데요, 거기에는 방사됐다 실패한 곰들, 방사하려고 교육시키는 곰들, 뭐 그런 애들이 모여 있지요




그러나 지금은 겨울. 반달곰들은 겨울잠을 자고 없습니다ㅠㅜ. 곰들이 겨울잠을 자는 건 잘 아시다시피 겨울철에 먹이가 없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동물원의 곰도 겨울잠을 잘까요? 대체로 자지 않습니다. 사육사가 먹이를 지속적으로 공급해 주는 한 자지 않죠. 그러나 구례 생태체험장의 곰들은 겨울잠을 잔답니다. 야생과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 주려고, 겨울철엔 먹이를 줄이고 재운다고 하더라고요. 저 울타리 안 쪽 나무 등걸 어디에선가 자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재빨리 기념품 가게로 직행. 박물관이건 미술관이건 가장 재미있는 곳은 기념품 가게라는...(혹시 저만 그런가요?ㅠㅜ)  역시 반달곰의 고향...까지는 아니어도 하숙집 정도는 되니까, 여긴 기념품 가게도 반달곰 모양이네요. 국립공원의 마스코트도 반달곰이죠. 




네, 이런 식으로. 외모로 보아 아빠 반달곰과 새끼 반달곰으로 추정됩니다만, 수컷은 양육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 반달곰의 생태를 감안한다면 엄마곰과 아기곰일 겁니다. '곰 세마리가 한 집에 있어 엄마곰 아빠곰 아기곰' 노래는 사실 곰의 생태를 반영하지 못하는 노래죠. 곰은 한번에 보통 새끼를 두 마리 낳으니까 정확하게는 '곰 세마리가 한 집에 있어 엄마곰 아기곰 아기곰'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는...엄마곰 이름은 반달이, 아기곰은 꼬미에요. 




기념품 가게 안에는 곰 박제가 있습니다. 혹시 '장군이'란 이름을 기억하시나요? 2001년 지리산에 처음으로 시범 방사됐던 곰입니다. 농가에 찾아와 꿀 훔쳐 먹고, 절에 가서 공양미 훔쳐오고 그랬던 말썽꾸러기 곰이었죠. 이 박제가 바로 그 장군이입니다.


장군이는 사실 복원 대상곰은 아니었어요. 지금 현재 지리산에 방사돼 있는 곰들과 유전자가 좀 다르다네요. 지금 지리산의 곰들은 대부분 러시아 곰들인데, 장군이는 농가에서 기른 사육곰이었거든요. 우리나라 야생곰은 러시아 곰과 유전자가 비슷하고요. 장군이를 야생에 풀어놓으면 '순수 한국 반달곰'의 혈통이 섞이거나 끊어질지 모른다는 걱정이 있었다네요. 장군이는 2004년 회수돼 여기 생태복원장에서 지내다 2006년 겨울잠을 자다 죽었답니다. 죽고 나서도 이렇게 박제가 되어 우리나라 반달곰 인식 증진에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훈장이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문득..




손을 넣어서 만져볼 수 있어요. 그러나 입을 만져보려니 무서워서 저절로 손이 움츠러 들더라는...




반달곰 캐릭터 상품이 많더라고요. 머그컵도 나쁘지 않았고, 




억새 젓가락 사겠다고 설쳤으나 식구가 '그냥 나가서 떨어진 나뭇가지 주워서 쓰라'며 극구 말리는 통에 포기. 그렇지만 반달곰 티셔츠는 샀습니다. 아싸! 




종복원기술센터 건물 한 켠에 조그만 생태전시관이 있어요. 국립공원의 주요 야생동물을 박제로 전시해 놓고, 생태 설명도 해 주고 뭐 그런 곳입니다. 바닥에 반달이와 꼬미가 보이네요.




얘가 멸종위기종 2급 담비입니다. 얘는 족제비처럼 생겼지만 몸털이 노란 색이어서 마치 코트를 입은 것 처럼 보입니다. 예전에 러시아 사람들이 모피 때문에 엄청 잡았다더라고요. <데르수 우잘라>라고, 러시아 사람이 쓴 극동 시베리아에 관한 책이 있는데, 거기에도 '조선인의 담비 사냥'이라는 챕터가 있습니다. 예쁘지 않습니까, 담비? 




뭐냐, 입니다. 사실 우리가 야생동물을 직접 맞닥뜨리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통 발자국, 털이나 똥을 보고 얘들을 찾아 다닌답니다. 동물마다 똥 생김새가 다르고, 뭐 그다지 맡아보고 싶진 않지만 냄새도 다르답니다. 에코숍 같은 데서 파는 손수건 중에 '야생동물 발자국' 손수건이 있는데, 같은 시리즈로 '야생동물 똥'도 있습니다. 발자국은 예쁘지만 똥은 좀...ㅠㅜ 




곰은 이런 굴에서 잔답니다. 고개를 들이밀면 새끼 반달곰이 엄마 반달곰한테 파고 드는 동영상이 나옵니다. 곰은 태어날 때 정말 조그마해서 어른 팔뚝 크기밖에 안된다네요. 이런 걸 보면 얘가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 중의 하나이고, 나 정도는 가볍게 해 치울 수 있다는 사실 같은 건 그냥 희미해지고,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2층에 올라가면 반달곰 생태학습장의 CCTV가 나옵니다. 잠자다 깨어나 물마시러 오는 곰은 없군요. 아, 그건 토끼인가? 네네. 




올무랍니다. 지리산에 방사돼 있는 곰들을 위협하는 것 중 하나가 이런 밀렵 도구랍니다. 덫은 뭐 어렸을 때 쥐덫도 봤으니 어떻게 생겼는지 알겠지만, 올무는 이렇게 생긴 거였군요. 이걸로 어떻게? 올무에 걸려 죽거나 다치는 반달곰도, 숫자는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꽤 됐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곰 스프레이입니다. 곰이 싫어하는 냄새가 있어서 장비에 뿌려 놓으면 곰이 가까이 안 온다고 하더라고요. 신기합니다. 




방사곰의 귀에 부착했던 발신기. 곰은 봄여름에 교미를 하고 겨울잠을 자면서 새끼를 낳는데요, 곰이 임신한 줄을 어떻게 아느냐, 이 발신기를 보고 안답니다. 곰마다 늘 돌아다니는 경로가 있는데, 곰 A와 곰 B의 GPS 발신기가 같은 지역에 같은 기간 놓여 있으면 그 사이에 곰이 교미를 했겠구나, 라고 추정할 수 있다네요. 




세계의 곰 관련 용품입니다. 중국의 팬더 마트료시카가 재미있네요. 




종복원 기술센터 브로슈어 뒷면입니다. 반달곰과 마주치면 죽은 척을 해서도, 나무에 올라가서도 안 됩니다. 나무에 올라가기는 음... 쉽진 않겠습니다만. 사실 지리산 야생에서 반달곰을 마주칠 일은 거의 없고, 이 주의사항은 생태학습원 내에서의 이야기인 것 같은데요, 제일 중요한 게 '먹이를 주지 마라' 랍니다. 곰이 사람들이 주는 단 것을 너무 많이 먹어 이빨이 다 썩은 사진도 생태학습장에 가면 있다네요. 


봄에는 생태학습장을 돌아다니며 해설을 해 주는 프로그램도 있답니다. 운이 좋으면 놀고 있는 반달곰들도 볼 수 있고요. 봄이 되면 한번 더 가보려고요. 뭐 그 동안에는 아쉬운 대로 이렇게라도. 지금 현재로는 꼼꼼이 둘러봐도 1시간이 채 안 걸릴 것 같아요. 굳이 찾아가시면 실망하실 것 같고, 그래도 근처에 가실 일 있으시면, 애들 겨울방학숙제도 할 겸, 겸사겸사 가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멸종위기종 복원센터 홈페이지: http://bear.knp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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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반달곰 2013.02.20 15: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저는 종복원기술원에서 일하는 직원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4월 이후에 반달가슴곰 만나러 꼭 한번 들러주세요 ^^
    또 다른 느낌이실거에요


혹시 해외에서 렌터카 여행해 보신 적 있으신 지 모르겠습니다. 유럽 렌터카 여행책이 처음 나온 게 90년대 말이니까, 지금은 렌터카 여행 하셨다는 분도 많으시고, 유럽 렌터카 여행 가이드북도 있고 그렇죠. 렌터카가 사실, 사람 넷 만 모이면 대중교통보다 싼 경우도 많고, 대중교통 잘 안 닿는 곳도 많아서 꽤 괜찮은 여행 수단인 것 같아요. 한국에서 여행할 때 차 있으면 편한 것처럼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저같이 걱정 많은 사람은, 숙소 못 구하면 일단 차에서 자도 된다는 마음의 큰 위안도 되고...


그런데 영국이나 일본처럼 운전석이 반대 방향인 곳은 렌터카 할 엄두가 잘 안 나죠. 그렇잖아도 정신 없는데, 반대 방향으로 운전하다 사고 날 것 같기도 하고... 지난 여름에 스코틀랜드를 여행할 일이 있었는데, 큰 맘 먹고 차를 빌려봤습니다. 




네, 여기가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 공항입니다. 공항에서 자동차 그림 따라서 가면 렌터카 업체들이 모여 있는 건물이 나옵니다. 거기 부스에 가서 차 받아오면 되는데, 반드시 국내운전면허증을 국제운전면허증이랑 함께(!) 가져 가세요. 보통 대부분 둘 중 하나만 내도 차 내 주는데, 원칙적으로는 국제면허증은 국내면허증과 함께 있어야 유효하답니다. 아는 분이 차 빌리러 갔다가 국내 면허증 없어서 결국은 결제 다 해 놓은 차 그냥 못 받고 왔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들어서... 겁많은 저는 '세금 고지서'도 두 장 챙겨 갔습니다. 렌터카 약관에 보니까 '결제한 카드 주소지를 증명할 수 있는 세금 고지서 두 장 가져올 것'이라고 돼 있더라고요. 뭐 결국 보자고는 안 하더라고요. 


자동차는 엑스피디아 닷컴에서 오토매틱 중 제일 작은 차 (2인승)으로 빌렸습니다. 5일 150파운드니까, 약 30만원이라는 경이로운 가격에..흐흐. 보통 렌터카 가격은 세계 어디나 (제일 작은 차 기준으로 했을 때) 1일 10만원 정도인 것 같아요. 




직원이 차 확인해 보라고 해서 나가서 열심히 확인. 조그만 흠집 찾아서 동전 놓고 사진 찍고, 직원에게 보여줬습니다. 이거 우리가 낸 거 아니라고... 직원은 뭐, 이런 걸로, 대수롭잖은 반응이었지만요. 


여기서 골치 아픈 게 하나 있었는데, 한참 계약서 쓰다 직원이 갑자기 "자차 보험 한도를 600파운드에서 100파운드로 낮추는 옵션이 68파운드인데 선택하실래요?" 물어봅니다. 마치 꼭 해야 한다는 말투로.... 분명히 홈페이지에서 결제할 때 자차 보험 추가했는데, 뭔 이야기인가 싶어서 다혹했습니다. 이건 뭥미 얼굴을 하고 있는데 직원이 연타로 "반환 때 연료를 제로로 만들고, 그 연료를 우리가 시세보다 싸게 채워주는 옵션이 있는데 선택하실래요?" 라고 또 물어봅니다. 


이게, 요즘 엑스피디아 같은 외국 저가 업체를 이용해 여행할 때 나오는, '여행자를 헷갈리게 해 푼돈 뜯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자세인 것 같습니다. 저게 뭐냐면, 엑스피디아에서 자차 보험을 선택했더라도, 거기 약관을 자세히 읽어 보면 배상 규모가 600파운드 이상일 때만 해 준다, 라고 되어 있나 봅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차 받을 때, 돈을 더 내면 그 배상 규모를 100파운드로 줄여 준다는 거죠. 그러니 100파운드 이내의 잔 손상이 생기면 내가 물고, 그 이상은 보험이 물어준다는 겁니다. 이거 이해하는데 정말 힘들었습니다. 


두번째, 반환 때 연료를 제로로 만드는 옵션도, 사실 생각해 보면 말 안 됩니다. 저 얘기는 결국, 연료통 하나 분의 돈을 지금 내고 연료 빵으로 만들어 와라, 는 건데요. 아니 어떻게 연료를 제로로 만들어서 반환할 수 있나요? 그러다 렌터카 반환 업체를 3미터 앞에 두고 차가 멈춰 못가는 일이... 벌어지면 업체는 견인차 부르겠죠. 그리고 견인차 값 백만불 내고 울면서 돌아와야 하는...


결국 머리를 모아 고민한 끝에, 자본주의의 수치심을 모르는 뻔뻔한 얼굴, 이라고 결론내리고 안 하는 방향으로 했습니다. 둘 다, 일단 웹페이지 상의 렌터카 가격으로 낮추려고 나온 방법입니다. 그렇게 낮추고, 이상한 옵션들을 현장에서 달아서 가격을 올리는 거죠. 차 기다리면서 보니까 렌터카 빌리러 온 사람들이 다들 그 옵션 설명을 듣고 잠시 멘붕 상태에 계시더라고요.ㅎㅎ




뭐 이름 기억나지 않는 차입니다. 2인승 선택했는데, 4인용으로 업그레이드 해 줬습니다. 렌터카는 언제나 2인승을 선택했는데, 항상 4인승을 주더라고요. 2인승 차는 실제로는 없고, 홈페이지의 미끼 상품인 것 같기도 해요. 어쨌거나 그래서 이번에도 공짜 업그레이드라고 좋아하면서ㅎ





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습니다. 이렇게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는 나라가 의외로 많더라고요. 영국, 아일랜드, 일본 외에도 영연방이었던 호주, 뉴질랜드, 홍콩, 싱가포르, 인도, 말레이시아 등등이랍니다. 




공항을 빠져나오는 길에 대문짝 만하게 적혀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영국과 아일랜드만 반대방향이니까요. 의외로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어요. 앞 차 따라 가면 되니까... 다만 차 없는 데서 우회전 좌회전 할 때 어느 차로로 들어가야 할 지 잠시 헷갈릴 때가 있더라고요. 두 사람 이상 함께 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희도 닷새 동안 두 번, 당황해서 반대쪽 차로로 들어갔다 깜놀했으나 큰 사고는 없었다는...




무사히 고속도로를 탔습니다. 저희 목적지는 던디. M=motorway 고속도로인 거 같습니다. 국도는 A로 시작하더라고요. 여기서 첫번째 난관이, 제한속도가...!! 도로 어디에 동그라미 안에 70 그려진 게 있었어요. 그러나 그게 킬로미터인지 마일인지..ㅠㅜ 차들이 달리는 속도로 봐서 마일로 추정했습니다. 던디까지는 46마일 남았네요. 


저희가 사실, 전날 동네 도서관에서 '영국 도로표지판 읽는 법' 책을 빌려 갔답니다. 렌터카 여행 할 거라고 했더니, 영국 애가 그 책 보고 가라고 하기도 했고, 며칠 전 텔레비전 뉴스에서 '영국 도로 표지판 진짜 이상한 거 많다'고 방송도 해서 겸사겸사...오바 아닌가 반신반의했는데 의외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이 나라 표지판 낯선 거 많더라고요. 




로터리입니다. 영국은 대부분 교차로가 로터리 시스템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선 진입한 차에게 우선권이 확실히 있습니다. 이건 뭐, 꽤 유용했습니다. 어디로 갈 지 잘 모르겠으면 그냥 로터리 계속 뱅글뱅글 돌면 되니까...




이것도 저희를 괴롭힌 표지판. 군대 상병도 아니고... 저 앞에 보면 작대기 두 개 짜리도 있습니다. 영국 도로표지판 책에 따르면, 작대기 셋은 300야드, 둘은 200야드, 하나는 100야드입니다. 그 앞에 뭐, 신호등 같은 거 있다는 뜻이에요. 야드...끙... 야드는 멉니까. 야드는 미터보다 조금 작은 것 같아요. 대충 300야드면 300미터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얼추 맞습니다. 




이런 것 때문에 더 헷갈립니다. 동네에 진입하니 제한속도 40...마일. 아니, 40마일이면 64킬로인데, 어떻게 이런 동네 골목에서 시속 64킬로로 달립니까. 딱 제한속도 40킬로면 될 것 같은데. 


동네를 빠져나오면 하얀 바탕에 검은 동그라미 있는 표지판도 나옵니다. <영국의 도로표지판>에 따르면, '내셔널 리미트'가 적용된다, 는 뜻이랍니다. 내셔널 리미트는 또 뭡니까... 아무리 찾아도 안 나와서 아는 사람한테 문자 보내서 물어봤습니다. 4차선 도로는 70마일, 2차선 도로는 60마일이래요. 그냥 좀 적어 놓으면 되지 70, 60이라고... 까만 페인트가 없나..ㅠㅜ 




표지판이 때로 너무 많아서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겠는 상황도...ㅠㅜ 




그래도 무사히, 숙소에 도착. 트래블롯지는 유럽의 저가 호텔 체인인데요, 던디에서는 1박에 19파운드, 우리 돈으로 3만5천원이라는 경이로운 가격에 나와 있더군요. 앞으로도 유럽 자동차 여행을 할 땐 여기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서비스,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지만 규격화된 서비스에, 뭐 깔끔합니다. 이 트래블롯지에 대한 포스팅은 여기. 




역시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온 지도입니다. 




그러나 실제 길찾기는 아이폰이 담당. 렌터카 할 때 네비게이션 옵션이 있긴 했는데, 영어로 떠들면 더 헷갈린다고 해서 선택하지 않았어요.




아이폰의 3G 이용해서 구글 지도를 이용했는데,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사소한 동네 길도 GPS 잘 찾고, 안 틀리고 잘 나옵니다. 예상 소요 시간, 남은 시간 다 나오고요. 다만 배터리가 너무 빨리 닳아서 두 사람 아이폰을 교대로 충전하면서 이용했습니다. 한국에서 아이폰을 가져오신 북극곰님은, 영국에서 심카드 사서 10파운드(약 2만원) 충전해서 썼습니다. 10파운드 충전하면 3G 500메가 주거든요




설정 사진입니다. 저거 계속 툭툭 떨어져서 결국은 조수석에 앉은 제가 들고 가는 방향으로.




제일 싼 차여서 아무런 오디오 옵션이 없더라는...ㅠㅜ 라디오를 열심히 들었습니다. 이건 던디를 지날 때였는데, 그 동네 지역방송입니다. 




이건 스코틀랜드 지역 방송인 듯합니다. 게일어로 방송해서 뭔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계속 백파이프 부는 음악 나옵니다. 




이거 완전, 경기도 양평 어디를 지나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저 앞에 '라이브 뮤직' 표지판 보이시나요. 




뭐 이런 약간 그림 같은 풍경도... 북으로 북으로 계속 달렸습니다. 




조그만 동네에는 이렇게 간이 주유소...라고 부를 수도 있는 곳들이 있더군요. 




이건 도대체 어쩌란 말입니까. 주유소에 갔으나 기름이 없다는... 




무사히 주유소를 찾아서 주유에 성공. 요즘은 한국에도 셀프 주유소가 많이 생겨서 어렵지는 않습니다만. 주유기가 '카드 주유기'와 '현금 주유기' 두 가지가 있습니다. 카드 주유기는 기계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되고, 현금 주유기는 주유를 일단 한 다음, 가게에 들어가서 '몇 번 주유기로 주유했다'고 하면 얼마 내라고 알려 줍니다. 




기름값이 얼마였는지 잘 기억이... 한국보다 좀 비쌌던 것 같습니다만. 




슬프게도 가장 싼 주유소는 대형마트 주유소랍니다. 주유소 찾기가 힘들어서 기름 떨어지는 줄 알고 전전긍긍하다 간신히 찾은 테스코 주유소. 인버네스 근처의 조그만 마을이었는데, 엄청나게 큰 테스코가 있더라는... 여기서 아침밥 먹고, 기름도 채우고, 화장실도 가고...등등. 


참, 나중에 차 반환할 때에도 주유소를 못 찾아서 엄청나게 고생했어요. 공항 근처에 있겠거니 하고 갔는데, 없더라고요! 반환할 시간은 다가오고, 주유소는 없고, 발을 동동 구르는 데, 친절한 경찰 아저씨가 "공항에 주유소 없다"며 가까운 주유소 알려 주셔서 간신히 살았다는... 사실 공항 안에 주유소가 있긴 있어요. 그러나 그건 렌터카 업체 전용이랍니다. 그 '연료 빵으로 만드는 옵션'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렌터카 업체들이 담함하고 주유소 이용 못하도록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역시 관광객들의 푼돈 뜯는 걸 수치스러워하지 않습니다.  





고속도로에는 휴게소도 있습니다. 저 휴게소 마니아 - 자동차가 생긴 다음 처음 서점에 가서 '우리나라 휴게소 지도' 산 사람입니다. 반드시 가보겠다고 했으나, 고속도로 휴게소 찾기가 엄청 힘들었어요. 휴게소가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서 한참 가야 나왔습니다. 우리로 치면 서해안 고속도로 행담도 휴게소 비슷했습니다. 그러나 시시하게 영국 어디나 다 있는 코스타 커피와 버거킹이 있더라는... 


코스타에서 커피 두 잔 사서 나왔는데, 커피 값이 더 비싸더라고요? 연료도 비싸고요. 나중에 들으니, 영국은 고속도로 휴게소가 원래 뭔들 다 비싸대요. 거기까지 물품을 공급하느라 애썼기 때문이라는 주장이었으나, 그냥 제 생각엔, 역시나 급한 사람한테 푼돈 뜯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 고도 자본주의의 상술이려니... 




이런 아름다운 풍경도 지나갑니다. 스코틀랜드 북부의 '황야지대'예요. 인버네스에서 북쪽 해안 끝까지 이어지는 길입니다. 저희는 기름 떨어질까봐 전전 긍긍했으나, 10미터마다 '교행지점' 나오는 문명화된 지역이었다는... 그냥 '오지' 설정인 것 같습니다. 3G도 다 터지고, 동네 펍에는 무선 인터넷도 됩니다. 이런 되서 낙오되더라도 죽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피크닉도 했어요. 테스코에 '밀딜' 이라고 샌드위치+감자칩+음료 묶어서 파는 싼 (그래봐야 5000원ㅠㅜ) 점심 패키지가 있어요. 역시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온 요츠바라 8권. 




북쪽 끝의 오지 (설정) 마을들엔 자전거/바이크 여행자들이 많이 옵니다. 이 비앤비는 자전거, 바이크 모두 환영이라네요. 저희는 이 비앤비 맞은편의 체육관 개조한 유스호스텔에서 (속아서) 떨면서 잤다는... 




그렇게 달려 달려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여기는 영국의 북쪽 끝. 존 오 그로츠 라는 마을이에요. 남쪽 끝 콘월에서 자전거나 바이크를 타고 달려온 사람들이 여기서 '해냈다'는 표정으로 기념 사진을 찍고 갑니다. 우리로 치면 강원도 고성 전망대쯤 될 거에요. 말도 안 되는 바가지 가격의 카페와 식당이 한 채씩 있고, 햄버거며 피쉬앤 칩스를 파는 컨테이너가 한 대 있습니다. 줄 서서 햄버거를 사 먹는 바이크 아저씨들 뒤에 서서, 저희도 피쉬 앤 칩스를 사서 먹었습니다. 영국 북쪽 끝까지 달려가 본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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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인숙 2012.12.17 16: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선 홍수 속에서 이런 글 읽으니 더 잼나요.ㅎㅎ 아..대선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염.

  2. 딸기 2012.12.18 2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국 표지판 잼나다...
    Tongue Village도 있네? ㅋ 무슨 이름이 저래

  3. Mok 2012.12.30 17: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저도 영국가고싶어지는!
    근데 북극곰 선배 영국가셔서 운전하셨네요 ^^

  4. Ray 2013.01.06 04: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
    실은 댓글 줄줄 썼는데 핸폰이라 그런지 날려먹고 잠깐 상심했다 다시 써요 ㅠㅠ
    북극곰님은 한국을 지키신다더니 기자님 보러 영국을 가셨나보네요 ㅎㅎ 영국도 두루두루 둘러보시고 여행기 쓰셨으면 ㅎㅎ 그럼 책 내시면 제가 일빠로 살게요. 전 북극여행자 제가 젤 먼저 샀다고 믿고 있어요 ㅎㅎ
    변덕스런 영국 날씨에 건강 유의하시고.....
    또 좋은 글 기다릴게요^^

  5. toms outlet 2013.07.16 0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거지, 뭐가 이렇게 어렵고 복잡하냐구


원래 인간동물원 포스팅은 이걸 하려고, 시작했다가 엉뚱한 이야기만 하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ㅠㅜ. 동물원에 대해서 좀 기록해 두려고 했는데, 하겐베크 동물은 워낙 '인간동물원' 동물원이어서... 일단 하겐베크 동물원을 올리고, 틈 나는 대로 싱가포르 동물원과 런던 동물원도 올려 보려고 해요. 넵, 틈...나는 대로. 




하겐베크 동물원 입구입니다. 옛날 동물원 입구에 비하면 시시하기 짝이 없습니다만, 그래도 산뜻한 6월의 어느 오후입니다. 




제가 독일어를 못 읽어서 알수는 없지만, 전체적으로 '동물에게 먹을 걸 주지 마시고, 주려면 이런 걸 사서 주세요' 취지인 것 같습니다. 바로 옆에 무슨 단체에서 나와서 과일 주머니를 팔고 계셨거든요. 사람이 먹는 음식을 동물에게 주면, 그게 나트륨 함량이 너무 높아서 안 좋답니다. 도심의 비둘기들이 병이 많다는 연구 결과가 간간이 나오는데, 그게 사람이 먹는 쓰레기를 먹어서일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우리 사람은, 동물에게 먹이를 주고 싶은 마음을 정말 참기 힘들잖습니까. 그것도 코가 손인 코끼리 아저씨한테 줘 보고 싶은 이 마음은... 단체와 동물원이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이렇게 운영하시는 것 좋은 것 같아요. 단체도 그 돈으로 좋은 일 쓰시고요. 




음, 그러나 코끼리는 너무 먼 곳에 있어서.. 좀처럼 먹이를 주기가 어렵습니다. 코끼리와 사람 사이에 해자가 파져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공간을 만들어서 울타리 대신 안전을 확보하는 것 같아요. 이 동물원은 창살이 거의 없더라고요. 




X이 아닙니다! 흙이에요. 코끼리 사 안에 조그만 웅덩이가 있어서 코끼리가 흙목욕을 할 수 있답니다. 코끼리는 흙목욕 하는 걸 좋아한다더라고요. 




지금은 비어 있지만, 코끼리의 겨울 우리입니다. 코끼리는 더운 나라에서 왔으니까 겨울엔 춥겠죠. 겨울엔 실내에서 전시를 하는데, 전시관이 꽤 괜찮았어요. 건물도 고풍스럽고, 연못 같은 것도 있고, 꽤 널찍하고요. 




이게 뭘까요? 유인원사입니다. 나무가 꽤 커서 유인원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건물도 예전에 뭐 박람회장 같은 걸로 썼던 모양이에요. 이렇게 리모델링을 해 놓으니 꽤 좋아 보였습니다. 




이 새장 같은 게 '뷰잉 데크'입니다. 사람이 나무 높이로 올라가면 원숭이가 놀라잖아요? 그래서 위협을 느끼지 않도록 나무 집을 만들어서 가려 놓은 겁니다. 




유인원에게 먹을 걸 던져주심 안됩니다는 취지. 저 아저씨 손 자세가, 자 옛다 먹어라,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저 이거 꽤 맘에 들었어요. 유인원의 앞발과 뒷발을 어떻게 구분하나. 왼쪽이 손이고, 오른쪽이 발이겠죠? 애들도 다들 한번씩 만져보고 갑니다. 




요즘 동물원엔 이게 많은 것 같더라고요 - 타이거 패스. 호랑이가 보통 인기 전시물인데, 잘 보기 힘들잖아요? 언제나 자고 있고... 일종의 대체 전시 겸 교육물인데, 조그만 대나무 숲을 만들어서, 호랑이 사는 숲에 가시면 이런 걸 볼 수 있습니다, 라는 취지로 전시해 놓습니다.




호랑이 패스 지도. 뭐 별 건 없어요. 발자국이나 나무 더미 같은 거... 




무슨 뜻일까요? 호랑이는 냄새도 잘 맡고 귀도 밝으니 조심하세요? 




이건 무슨 새 전시장이었던 것 같은데, 어디 기업에서 후원했습니다. 이거, 외국 동물원엔 꽤 많은 것 같아요. 대기업들이 동물원의 특정 동물 보호 프로그램을 후원하는 거죠. 동물원의 본래 목적이 동물을 전시하는 것 보다는, 동물의 종을 보존하는 일종의 '은행'이거든요. 그래서 일단 여기 한 마리 데려다 놓았지만, 얘를 데려온 그 지역에서 얘네 동물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보전 프로그램을 실시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 보전 프로그램을 대기업들이 후원합니다. 약간 '그린워시' 같긴 하지만, 그래도 좋은 방법 아닌가 싶어요. 런던 동물원도 아시아 호랑이 보전 프로그램을 하는데, 후원자가 그 석유 기업 Esso죠. 




얘가 누굽니까! 두루미 아닙니까. 헐 두루미가 여기 사람들한테는 동물원에 한 두 쌍 전시된 희귀한 새군요. 




얘들은 농장 동물들 비슷한 시설이었던 것 같습니다. 쓰다듬고 싶지만 너무 먼....




대체로 정말 '공원'처럼 넓더라고요. 전시 공간도 넓고, 철조망 대신 대부분 조그만 나무 울타리나 냇물 같은 걸로 구획을 지어 놓고, 동물들이 구석에 숨어 있어서 찾기가 힘들었다는...




네, 뭐 이런 식으로...




이게 최고입니다. 오른쪽 끝에 사자가, 왼쪽 끝에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도 맹수는 맹수니까요, 이렇게 몇 겹으로 장치를 해 뒀습니다.




이 산양은 사람들 귀찮은지 집에 가고 있습니다. 저 바위 사이의 조그만 공간 보이시죠? 저기로 들어가 숨어 버립니다. 환경/동물단체들이 동물원 전시 관련해서 권고하는 원칙들이, 첫째 바닥이 시멘트가 아니어야 한다, 둘째, 동물이 숨을 공간이 있어야 한다, 등등인데요, 동물을 보기는 힘들어도 마음은 훨씬 좋았습니다. 




대신에 이렇게, 실내 전시실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이게 산양사였던 것 같습니다. 산양은 다 어디로 가고....ㅠㅜ 




이건 불곰사. 꽤 큽니다. 사진 한 장에 다 못 담았는데, 오른쪽 끝엔 조그마한 폭포도 있어요. 이런, 제 눈엔 괜찮아 보이는 환경 속에서도 불곰은 이상 행동을 보이더군요. 이쪽 끝과 저쪽 끝을 계속 왔다갔다 합니다. 곰은 워낙 영리한 동물이어서, 동물원 전시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이런 데 가둬 놓으면 그야말로 '멘붕' 상태가 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가 이런데 하물며, 우리나라의 조금 더 작은 전시실에서 살고 있는 곰들을 생각하니까, 좀 마음이....




조류사입니다. 새는 도대체 다 어디로 가고! 저 조형물은 예전에, 동남아시아 원주민들을 전시하던 공간이었습니다. 




북극곰과 해양동물사는 수리중이었어요. 동물원의 전시 '수준'을 보려면 북극곰사를 보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북극곰이 동물원에 전시하기에 적합치 않은 종이라네요. 일단 영리한 곰이어서 정신적으로 스트레스 받고, 또 기후가 좀처럼 안 맞죠. 예전에 싱가포르에서 북극곰 전시하다가 너무 더워서 온몸에 녹조가 끼는 바람에 '녹색곰'이 돼 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북극곰 전시에 대해서는 예전에 환경면에 한 번 쓴 적이 있어요. 베를린 동물원에서 태어난 아기곰, 크누트가 죽었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여기를 클릭!




능동 어린이 대공원의 북극곰 '썰매'가 최근에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어린이 대공원에 산책 갈 때마다 손 흔들고 인사했는데, 저와 함께 산책하는 인간 북극곰이 '썰매를 보내고' 취지의 조사를 신문에 썼죠. 여기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수리 중인 북극곰사입니다. 지금쯤은 다 끝났을래나요? 언제 기회가 되어서, 다시 한번 함부르크 박물관에 다녀오면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그 동안 혹시 다녀오시는 분들 계시면, 북극곰사 소식 좀 알려주세요, 넵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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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동물원'을 아시나요? 이 더운 여름에 갑자기 인간 동물원에 대해서 쓰고 있는 것은, 최근에 '인간 동물원'에 대한 책을 읽기도 했고, 지난번에 안다만 제도의 '인간 사파리'에 대해서 쓴 뒤로 뭔가 좀 더 후속으로 써야 할 것 같기도 했고, 동물원에 대해서 좀 정리해 둘까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갑자기 요 몇 주 블로그에 많은 분들이 들어오시는 바람에, 뭔가 업데이트를 해야 할 것 같다는 강력한 책임감 때문에...ㅠㅜ, 그렇습니다. 



인간 동물원이 어디 있나 - 없습니다. 다만, 인간 동물원이 있던 곳은 남아 있죠. 독일 함부르크의 하겐베크 동물원입니다. 정식 이름이 '티에르파크 하겐베크Tierpark Hagenbeck'일 거에요. 작년에 함부르크에 출장을 갈 일이 있었는데, 마침 세 시간이 딱 남아서 잽싸게 다녀 왔습니다. 시내에서 가까워요. 지하철로 대여섯 정거장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이 하겐베크 동물원에 왜 갔냐, 여기가 세계 최초로 '인간 동물원'을 만든 곳이거든요. 




하겐베크 동물원의 옛날 입구입니다. 지금 게이트는 따로 있고, 이 게이트는 '유적'으로 남아서 동물원 구석에 있어요. 이 동물원이 만들어진 게 1848년부터니까, 세계에서도 가장 오래된 동물원 중 하나일 겁니다. 하겐베크는 참, 사람 이름입니다. 어부... 라기엔 생선 잡이를 좀 크게 하시던 분이었는데, 생선 잡다가 딸려온 바다사자를 전시하기 시작했대요. 그 때부터 이 동물원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렇지만 통상 우리가 하겐베크 동물원을 이야기할 때 떠올리는 하겐베크는 아들, 카를 하겐베크에요. 이 카를 하겐베크는 유럽 최대의 동물 중개상이었죠. 아프리카에 지사 비슷한 걸 운영하면서, 유럽 전역의 동물원에 동물을 공급했답니다. 



하겐베크 동물원의 역사를 중심으로 동물원에 대해 쓴 훌륭한 책이 <동물원의 탄생> 입니다. 여기를 클릭하시면 서평 나옵니다.




하겐베크가 사람을 전시하기 시작한 건, 당혹스럽지만, 동물 값이 올라서였대요. 하겐베크의 큰 거래처가 아프리카 수단이었는데, 수단에서 1874년엔가 내전 비슷한 게 일어났대요. 동물도 구하기 힘들어지고, 동물 값도 오르고 해서 하겐베크가 떠올린게 '사람을 전시하자' 였답니다. 이듬해에 하겐베크는 핀란드 북부의 라플란드로 가서 랩 족 원주민들을 데려옵니다. 그게 세계 최초의 '인간 동물원'이 되는 거죠. 



그런데 사실, '인간을 전시한다'는 건 하겐베크가 처음 한 생각은 아니에요. 당시 유럽에서는 '원주민 쇼' 같은 형태의, 원주민 구경이 큰 인기였답니다. 1870년대, 영국과 미국이 열심히 제국주의 세력을 확장하던 때죠. 식민지 나라에서 피부 색 다르고, 생활 관습 다른 원주민들을 데려와서, 사람들에게 구경을 시켰답니다. 19세기 후반의 유럽은 몹시, 한편으로는 괴기한 시절이어서, 그 땐 별걸 다 전시했던 것 같아요. 왜, 신경숙의 소설 <리진>에 보면, 프랑스 공사를 따라 파리에 간 조선 궁녀 리진이 '모르그' 전시에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르그가 뭐냐, 영안실이죠. 괴기하게 죽은 시체들을 모아서 전시하고, 숙녀들은 파라솔 들고 구경 가서, 손수건 코에 대고 쓰러지고 뭐 그런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원주민 쇼는 '문화인류학적 관심'이 더 높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미국의 '인디언 쇼'가 상륙하면서 진정한 '원주민 쇼'로 거듭나게 됩니다. 미국의 '인디언 쇼'가 뭐냐 - 미국이 서부를 개척하면서 인디언들을 싸그리 멸망을 시키죠. 좌시하지 않겠다던 자세로 싸우던 인디언 부족들이 항복한 것 까지는 기억나는데....살아남은 인디언들은 '쇼 비즈니스'에 동원됐답니다. 피부색도, 복장도, 눈빛도 다른 원주민들을 구경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또 '위대한 우리 백인들이 이렇게 무식하고, 도끼 휘두르는 놈들을 정말 노력 끝에 몰아냈다'는 그런 인종차별적 정체성이나 역사관도 확립할 겸 해서요. 



그 인디언 쇼 중에 가장 유명한 게 '버팔로 빌의 와일드 웨스트'였답니다. 네, 버팔로 빌, 저는 언제나 버팔로 빌이 패밀리 레스토랑 스테이크 이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버팔로 빌은 '윌리엄 코디'라는 미국의 인디언 '정복자'의 별명이었습니다. 버팔로 빌이, 자기가 전투에서 이긴 추장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여기 저기 전시를 했죠. 그 중 가장 유명한 인디언 추장이 아마도, 제로니모와 시팅불인 것 같습니다. 



(http://www.bbc.co.uk/news/world-us-canada-13265069)



제로니모입니다. 아파치 인디언 추장이었던 제로니모는 버팔로 빌과 '운명을 건 한판승'을 실제에서도 벌이고, 인디언 쇼에서도 재연하게 됩니다. 차라리 어디 감옥에 넣어버리지, 사람을 그렇게 수십번 죽여서는 아니 되었던 것 아닐까 싶은...ㅠㅜ 얼마나 치욕스러웠을까요. 이 '제로니모'라는 이름이 혹시, 익숙하지 않으세요? 미국이 작년에 빈라덴을 사살한 그 공격명이 원래 '제로니모'였답니다. 제로니모는 실제와 쇼를 통해서, 울던 아이도 이름만 들으면 뚝 그치는, 야만족 전사로 이미지가 정리됐던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그 제로니모의 후손들이, 왜 우리 조상의 이름을 그런 추악한 공격에 써먹냐며 항의해, 공격명은 나중에 바뀌었습니다.) 이 제로니모는 영국 드라마 <닥터후>에서 (제가 사랑하는) 11번째 닥터의 캐치 프레이즈이기도 하죠. 뭐 시작할 때 닥터가 '제로니모!' 합니다. 


 (11대 닥텁니다. 제로니모!) 


(http://en.wikipedia.org/wiki/File:Sitting_Bull_2.jpg)



시팅불입니다. 시팅불은 수우 족 인디언의 전투 추장이었죠. (어찌 얼굴이, 민주노조 간부처럼 생기지 않았나요? 조끼만 입혀 놓으면 경향신문사 11층 민주노총 사무실 옆에서 왔다갔다 하셔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은....) 이 사진은 아마도 쇼 비즈니스를 위해서 찍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시팅불은 한국에도 번역돼 널리 읽혔던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의 그 인디언 추장입니다. 이 분은 안타깝게도 운디드니 전투가 채 벌어지기 전에, 암살 비슷하게 유명을 달리하시게 되죠. 



시팅불에 대한 이야기는 <시팅불, 인디언의 창과 방패>라는 책에 잘 나와 있습니다. 7년전에..ㅠㅜ 쓴 서평이 있네요(클릭). 



어쨌거나, 네네, 다시 유럽으로 돌아와서, 이 미국의 '인디언 쇼'가 1800년대 중반 드디어 유럽 순회 공연에 나섭니다. 아, 정숙한 (척하던) 유럽 사람들은 이 인디언 쇼에 깜짝 놀라게 됩니다. 원주민을 갖고 이런 것도 할수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죠. 그 전에 유럽의 '원주민 전시'는 '인류학박물관' 비슷했거든요. 원주민 유골이나 소장품 같은 거 전시하면서, 틈틈이 실제 원주민도 불러서 구경시키는... 뭐 그런 거였는데, 춤추고 노래 시키고 전투 장면 재연도 할 수 있는겁니다. 그 때부터 '원주민 쇼'가 런던과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 곳곳에 투어를 다니게 됩니다. 지금 개념으로 치면 써커스 -지금은 써커스가 거의 없는 것 같지만- 비슷했던 것 같아요. 



하겐베크는 이 원주민 쇼를 '동물원'에 유치한 최초의 사람이었습니다. 동물원 공간 넓지, 동물은 지금 돈 없어서 못 사오지, 그러니 대신 사람들 데려와서 '여기 살라'고 하고, 공연을 시킨 거죠. 랩 족을 데려온 게 1875년, 그 뒤로 세계 여기저기서 데려 옵니다. 인도네시아 자바 섬, 스링랑카, 아프리카 줄루 족, 에스키모, 그리고 당시로서는 세계 최남단이었던, 남아메리카의 땅끝, 티에라 델 푸에고에 가서 푸에고 사람들도 데려 왔습니다. 






(http://circusnospin.blogspot.co.uk/)



하겐베크 동물원에 전시돼 있던 원주민들입니다. 스링랑카에서 오신 분들인 것 같습니다. 원주민들은 그렇다고 목에 쇠사슬을 걸어 감금해 놓거나 그런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책 같은 걸 보면, 동물원의 '공연자'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계약서도 쓰고들 왔는데, 하루에 8-10시간 정도 일을 했다고 합니다. 전통 공연 보여주고, 동물원 동물들이랑 퍼레이드 하고, 나중엔 일상 생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나무 조각도 하고, 밥도 해 먹고 그랬답니다. 하겐베크는 이 원주민 문화가 '순수'하게 유지되도록 갖은 조치를 했던 것 같습니다. 통역 한 두 명 빼고는 유럽어 못 배우게 하고, 현지인과 접촉 못하도록 애썼죠. 그래야 '공연'이 되니까요. 그래도 사랑은 싹트는 법이어서, 원주민 청년과 독일 여성들 사이에서 애가 태어났다는 기록이 1870년대부터 있답니다. 




지난해에 찍은 하겐베크 동물원의 조류사에요. 여기가 예전에 동남 아시아 원주민들을 전시했던 곳입니다. 저 사진의 분들도 아마 이런 데서 지내셨겠죠.




(사진 출처 http://eng261.blogspot.co.uk/2011/02/savages-on-display.html)


이누이트(에스키모) 가족들도 떼로 왔습니다. 그렇지만 이누이트에게 유럽의 박테리아는 치명적이었죠. 이누이트 공연단은 모두 유럽 풍토병으로 죽었고, 저 멀리 땅끝에서 데려온 티에라 델라 푸에고의 원주민들도 병으로 다 세상을 떴습니다. 결국 기후에 적응을 그럭저럭 했던 랩족과 자바 주민 정도가 오랫동안 남았다고 합니다. 하겐베크의 '인간 동물원' 모델이 꽤 인기를 끌면서,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됐답니다. 



이 인간 동물원은 그러나 20세기로 넘어가면서 슬슬 인기를 잃게 됩니다. 원주민들 중 일부가 유럽식의 생활 방식을 빠르게 받아들이셔서, 술마시고 담배피고, 카드를 치는 바람에 전시 관계자들을 당혹케 하셨답니다. 무엇보다도, '원주민 쇼' 자체가 인기가 없어졌답니다. '영화'가 등장한 거죠. 세계의 끝에 사는 원주민들을, 굳이 여기서 인공적인 환경 만들 것 없이, 현지에서 찍어 와서 극장에서 보여 주는 게 더 인기가 있었답니다. 



또 배나 기차 같은 교통 수단이 발달하면서, 이제는 더 이상 대단한 식민지 사업가가 아니어도 아시아나 아프리카에 갈 수 있게 됐답니다. 가서 볼 수 있는데, 굳이 여기서 인공적인 쇼를 할 필요가 없는 거죠. 그러나 현지 원주민들의 생활도 빠르게 바뀌었고, 관광객들은 여전히 '이국적 원주민'을 기대하면서, 현지에서 '원주민 쇼'들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게 요즘 우리가 앙코르와트에 가서 보는 압사라쇼나, 하와이에서 보는 폴리네시안 원주민 쇼의 기원이죠. 거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따로 한번 쓸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전에 어디 써 놓은 게 있어서...




다시, 하겐베크 동물원의 옛 정문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중간에 코끼리가 있고, 기둥 위에 북극곰이랑 호랑이가 있고, 양쪽 가장자리 기둥에 사람이 보입니다. 




네, 인디언입니다. 이 정문이 몹시도 상징적으로, 이 동물원이 한때 사자와 호랑이와 북극곰과 인디언을, 다 함께 전시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게 하겐베크 동물원에 남아있는 유일한, 인간 동물원의 흔적입니다. 나머지는 싸그리 다 없앴어요. 한 줄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저는 '예전에 우리가 이랬는데 앞으로는 안 그러겠다, 이런 끔찍한 시절도 있었다' 뭐 이런 안내판이라도 있을 줄 알았지요. 그러나 없습니다. 나중에 박물관 기념품 가게에 갔더니, '하겐베크 동물원의 역사' 책을 팔더라고요. 거기에 보면, 당시 사람들을 전시했던 사진이 나옵니다. 책이 서울의 집에 있는 관계로 찍어서 올릴 수가 없다는...ㅠㅜ



왜 그랬을까요? 왜 하겐베크 동물원은 '인간 동물원'의 역사를 싹 지우고 시치미를 떼고 있을까요? 



아마도 '쪽팔리는 줄 알아서' 일 것 같습니다. 인간을 동물원에, 동물과 함께 전시했다는 사실은, 지금의 인류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지 않습니까. 특히 독일처럼 특정 인종을 다른 인종과 분리해서 차별했던 나라는, 더욱 그런 수치스런 과거는 지우고 싶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위에 쓴 것처럼, 그렇다고 사람들을 노예처럼 채찍으로 때린 것도 아니었고, 하루에 16시간씩 일 시킨 것도 아니었는데, 뭐가 그렇게 부끄럽다는 걸까요?



그것은 아마도, 이 '인간 동물원'이라는 것이 '식민주의'의 표현이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겐베크와 유럽의 나라들이 전시했던 원주민들은, 대부분 영국과 프랑스 제국주의의 '식민국가'에서 왔습니다. 미국의 인디언 쇼도 마찬가지고요. 그 식민지 국가의 원주민들을 전시한 것이, 이렇게 이국적인, 그러나 미개한 식민지 주민들을 우리가 '문명화' 시켜야 한다는, 자기들 나름의 식민주의 정당화 차원이었던 것 같습니다. 더불어 우리가 이렇게 저 멀리 이국적인 애들까지 다 관리한다, 는 제국에의 도취였기도 하고요. 



뭐, 걍 돈이 되니까 했겠지, 싶기도 하지만, 일본도 비슷한 원주민 쇼를 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일본이 1895년에 교토에서 세계 박람회 비슷한 걸 했는데, 거기서 '원주민 전시관'을 만들었답니다. 누구를 전시했을까요? 아이누, 타이완 원주민, 오키나와 원주민, 말레이 원주민, 자바 원주민, 그리고 네, 조선인이었습니다. 일본의 제국주의는 그 지도대로, '원주민'들을 근대화시키면서, 뻗어나가게 됩니다. 



우리가 '인간 동물원'에 분개하는 것은 -사실 '인간 동물원'은 이름만 들어도 분개가 저절로 되지 않습니까? - 기본적으로는 인류가 다른 인류를 가두고 전시해서는 안된다는 인도적인 차원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정치적'인 차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식민주의가, 실제로는 형태를 바꿔 여기저기서 하고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우리의 세계에서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반성이겠지요. 



원주민들, 이국적인 게 사실입니다. 멋지잖습니까? 얼굴에 물감을 칠하고 전투에 나가는 수우 족 전사들이나, 바다코끼리의 뿔을 갈아 파이프를 만드는 이누이트나, 구슬이 가득 달린 머리 장식을 쓰는 태국 고산족이나, 그런 다른 세상의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정말로, 큰 즐거움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 '차이'를 이유로 그들을 '차별'해서는 아니 되는 것 같습니다. 인간 동물원은 그런 '차이'에 대한 우리의 열망을 이용해, '차별'을 정당화하는 도구였습니다. 그리고 인류는 이제 더 자랐으니까, 그 '차별'이 부끄러운 줄 알고 있습니다. 올 여름, 다른 세상의 어디론가 떠나실 때, '차이'에 감탄하시돼, '차별'은 경계하는, 에에, 꽤 괜찮은 여행자가 되자고, 주장해 봅니다. (아, 이거 왜 이렇게 끝나고 있죠? 저 하겐베크 동물원 사진 올리려고 시작했는데, 그건 시작도 못하고 딴 이야기만 실컷 하다가...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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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코츠월드 2012.08.01 1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랫만에 함브르크이야기 들으니 귀가 솔깃
    24년전 공부할 때 시부모님이 함브르크에 오셔
    갈 곳 찾다가 간 곳이 Hagenbek Tierpark 에 갔지요.
    유럼 최초의 동물원인데 Hagen이 돈벌이의 귀재라 결국
    사람도 전시를 했다는 소리는 들었죠.
    동물원 어디에도 그 흔적이 없는데 인디언 상이 있다는 것에 대해
    의아해 했거든요 ㅎㅎㅎ

  2. 포탈 2012.08.05 17: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
    인간 동물원이 있었다는게 놀랍네요. 다시는 저런일이 일어나지 않겠지요?

  3. 여행객 2012.08.05 2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한국 정부가 파나마에서 열리는 국제포경위원회(IWC) 에서 과학적 목적의 포경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했죠. 그 소식이 채 우리나라에 알려지기도 전에 전세계로 빠른 속도로 타전됐습니다. 미국 국무부도 성명을 발표하고, 호주와 뉴질랜드도 '좌시할 수 없다'고 강력하게 반대 뜻을 밝혔지요. 특히 호주는 주한 호주 대사를 시켜 항의도 하면서 펄쩍 뛰고 있지요.

왜 그럴까요? 왜? 다른 나라도 아닌 호주가 그렇게 펄쩍 뛰는 걸까요? 호주가 유난히 자연보호 의식이 높은 '선진국'이어서 그럴까요?

 

(바로 이 분이 한국의 포경 재개를 강력 반대하시는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십니다. 사진은 연합뉴스)

 

호주가 전세계에서 가장 동물과 자연을 사랑하는 나라여서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뭐 호주는 광활한 대자연이 있으니까 좀 사랑할 것 같긴 합니다만, 그런 이유로 외교 분쟁을 불사하지는 않겠죠. 그보다는 한국이 일본처럼 되는 건 아닌가 싶어 경계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일본이 과학 목적으로 매년 밍크 1000마리를 남빙양에서 잡고 있습니다. 남빙양이 어디냐, 남극해입니다. 호주 앞...은 아니고 뒷바다죠. 일본의 포경 때문에 호주 인근의 밍크 고래가 줄어들고 있고, 이건 호주의 고래 관광 산업을 위협하는 거죠.

 

호주는 뉴질랜드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고래관광이 발달한 곳 중 하나입니다. (네, 호주와 함께 뉴질랜드도 한국의 포경 재개에 펄쩍 뛰었습니다) 지금에야 그렇지만 호주도 우리나라처럼 예전엔 고래를 잡았답니다. 호주가 본격적으로 포경에 뛰어든 것은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일인데요, 10년 정도 잡다가 고래 개체수가 현저히 줄어들면서 그만뒀죠. 그러다 90년대 초반부터 고래 관광으로 전환합니다.

 

슬그머니 시작해 본 고래 관광은 엄청난 수의 관광객을 불러들였습니다. 호주 고래 관광객이 91년에 33만5200명이었는데, 98년에는 2배가 넘는 73만5000여명으로 늘어납니다. 고래를 돈으로 세자니 좀 아니다 싶지만 어쨌거나, 98년 고래 관광 수입이 직접 수입만 1187만 달러, 호텔이며 교통편이며 해서 간접 수입까지 합치면 5600만 달러였습니다. 고래 아마 지금은 몇 배 이상 늘었을 겁니다. 이 조사를 하신 국제야생동물보호기구(IFAW)의 호이트 박사께서 2001년 이후로 조사를 안 하셔서...ㅠㅜ 이 분은 스코틀랜드에 사시는데, 언젠가 아마존으로 이분 책을 샀더니 본인이 직접 파시는 거더라고요. 어쨌거나, 고래를 잡아서 이용하는 것보다, 살려서 이용하는 게 이익이 된다는 거죠.

 

이렇게 포경에서 고래 관광으로 탈바꿈한 대표적인 지역이 바로 탕갈루마 리조트 입니다. 요즘은 한국인 신혼 여행객들도 많이 간답니다. 심지어 홈페이지에 한국어 버전도 있습니다. 호주 북동부, 브리스번 근처의 모튼이란 섬에 있네요. 인터넷에 탕갈루마 리조트 쳐 보시면, '야생 돌고래 먹이 주기는 꼭 하고 오세요' 뭐 이런 것 나옵니다. 이 리조트의 대표적인 상품이 고래 관광 보트를 타는 것과, 돌고래 먹이 주기 두 가지죠.

 

 

(네 여깁니다. http://www.qldtravel.com.au)

 

 

(탕갈루마 리조트 근처에서 보이는 고래. 등지느러미로 보니 밍크인 것 같습니다. 바로 우리나라 연근해에서 많이 보이는 고래도 밍크죠. http://www.whalewatchingqueensland.com.au)

 

이 탕갈루마 리조트는 사실 호주 최대의 포경 항구였답니다. 포경기지가 1952년에 세워졌는데, 그 뒤 10년간 혹등고래만 6700여마리를 잡아들였죠. 지금 탕갈루마 리조트 관계자들이 이 사실을 상기하면 땅을 칠 겁니다. 혹등고래가 고래 관광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멋진 고래 중 하나거든요. 몸집도 커서 15-20미터쯤 되고 (밍크는 4-5미터 '밖에' 안됩니다), 물 위로도 펄쩍 펄쩍 잘 뛰어올라요. 고래 관광 사진에 항상 나오는 바로 그 고래, 이겁니다.  

 

(멋진 혹등고래 입니다. 위키피디아에서 퍼왔습니다)

그러나 포경으로 혹등고래는 씨가 말라버렸죠. 포경 기지가 세워진 52년만 해도 1만여마리가 있었다는데, 60년대 이후엔 300 마리도 안 남았다고 합니다. 대부분은 잡혔고, 일부는 '내 이 땅, 아니 이 물을 다시 밟나 봐라' 면서 박해를 피해 떠났겠죠. 고래는 영리한 동물이니까요. 어쨌거나 60년대 이후엔 고래가 안 보였고, 포경기지는 문을 닫았습니다. 원래 풍경이 나쁜 곳은 아니어서 그 뒤로 관광 산업을 좀 해 보려고 했지만 쉬원찮았죠.

 

그 탕갈루마 리조트가 고래 관광지로 바뀐 것은 1992년입니다. 현재 이 리조트를 운영하는 회사가 망해 가던 숙소를 사 들여서 업스케일 휴앙지로 대대적으로 리모델링 했습니다. 지금 리조트 자리가 바로 포경선 선원들의 숙소 자리입니다. 인터넷 블로그를 보면 탕갈루마 리조트 부두에서 배를 탔다, 비치에서 맥주 한 잔 했다, 이런 이야기 자주 나오는데, 그 부두가 바로 50년 전 포경선을 정박시키던 항구입니다. 리조트에서 고래 관광 보트도 운영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고작 30년 안 잡은 걸로는 고래 개체수가 회복이 안 됐나 봅니다. 고래 목격 확률이 조금씩 높아지긴 했지만 허탕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리조트가 고안해 낸 게 '야생 돌고래 먹이 주기' 였습니다. 근처에 돌고래가 좀 보인다는 사실에 착안해서, 해변에서 먹이 들고 기다리고 있는 거죠. 영리한 돌고래는 밥 때가 되면 공짜 밥을 찾아서 잘 찾아왔습니다. 먹이도 먹고, 관광객과 눈인사도 했죠. 이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탕갈루마 리조트의 대표 상품이 됐습니다. 덕분에 탕갈루마 리조트도 친환경, 친동물, 에코투어의 선봉 뭐 그런 이미지를 갖게 됐죠. (이거 뭐 리조트 광고를 하는 기분이...ㅠㅜ) 더불어 호주 전체가 캥거루와 고래와 월러비를 사랑하는 나라, 자연의 나라 뭐 이렇게 인식됩니다.

 

(바로 이 프로그램입니다. 저도 꼭 해보고 싶어요 흑흑 http://www.tm6.net/travel/whale-watching-at-tangalooma/)

 

호주가 남의 나라 포경 재개에 펄쩍 뛰는 건 바로 이런 이유와 경험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고래를 죽여서 이용하는 것보다 살려서 이용하는 것이 훨씬 이익이 된다는 거죠. 우리나라가 과학 목적으로 포경을 재개한다고 해서, 일본처럼 당장 남빙양까지 달려가 고래를 잡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일단 포경을 허용하면, 우리나라 주변에서 남빙양으로 영역이 확대되는 것은 순간일 겁니다. 그러니 호주가 펄쩍 뛰는 것 같습니다. 고래가 죽은 고래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걸 그들은 경험적으로 배웠으니까요.

 

사실 우리나라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2009년부터 울산 장생포에서 고래 관광 을 하고 있답니다. 고래를 살려서 이용하는 관광을 하면서, 동시에 고래를 죽여서 이용하는 고래 고기를 파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형태의 고래 관광지입니다. 정부의 포경 선언 이후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보면 '고래가 불쌍해요' '왜 포경을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런 글들이 많은데, 그렇다면 울산으로 고래 관광을 가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관광객 백만명이 살아있는 고래를 보러 오겠다는데, 정부가 포경을 재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장생포 고래 관광, 나름 재미가 있습니다. 장생포 고래 탐조 배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싼 고래 탐조 보트 여행일 겁니다. 외국에서 고래 탐조배 한 번 타려면 한 사람이 100달러는 쥐어야 하는데, 여긴 2만원입니다. 물론 배가 엄청 크고 (대신 큰 배는 덜 흔들리는 장점이...) 갑판이 한낮의 가요무대로 바뀌는 (뒷 갑판으로 피신하면 됩니다) 단점이 있긴 하죠. 고래가 잘 안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고래 탐조 관광 자체가 원래 그렇습니다. 세계 어디서나 고래 관광을 하면, 운이 아주 좋지 않은 이상, 아마 고래의 등짝을 잠깐 보거나, 고래 그림자 비슷한 걸 보는 정도에 그칠 겁니다. 또 모르잖아요? 고래가 떼로 나타나 주실지도. 저는 장생포에서 관광 탐조선 세 번, 조사선 한 번 이렇게 네 번 배를 탔는데, 한번은 밍크 보고, 다른 한번은 바다의 이 쪽에서 저 쪽 끝까지 메운 돌고래 떼를 봤습니다.

 

돌고래 쫓아가다 월북할 뻔한 이야기는 여기를 클릭! 허접하지만 돌고래 동영상도 있습니다

 

(고래 바다 여행선입니다)

 

그리고 다른 자잘한 재미들도 있습니다. 고래 박물관이 있는데 -환경단체들은 포경 박물관이라고 걱정하는 곳이기도 하죠 - 여기서 우리나라 포경의 역사와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포경사가 재미있었는데, '반구대 암각화에 고래가 나온다' 그 다음이 '1900년대 일본이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포경을 시작했다' 입니다. 중간에 서너 줄 더 있긴 하지만, 고래가 목격됐거나, 어떻게 이용했다는 거지, 고래를 잡았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목격됐다는 것과 포경을 했다는 건 좀 다른 문제죠. 아, 1900년대 초반에 노르웨이 포경 선원이 장생포에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을 겁니다. 세상에 그 분은 어떻게 까마득한 그 시절에 '세상의 끝'에 오셨을까요.

 

(고래 박물관 전경이에요)

 

(고래 생태체험관입니다. 살아있는 돌고래가 전시돼 있는 곳이죠)

 

(장생포 부두의 고래 고기 전문점 중 하나입니다.)

 

장생포에서 고래 관광을 하시고 나면 많은 분들은 복잡한 심정이 되실 것 같아요. 저도 그랬거든요. 고래를 해체하는 사진도 한 장 걸려 있었는데, 전시하는 입장에선 지역 문화로 걸어 놓으셨겠지만, 그걸 '살해 장면'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거고요. 어쨌든 장생포에서 1900년대 이후 고래를 잡은 것은 사실이고, 그것이 지역 문화의 일부인 것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고래 고기 식용 문제 때문에 장생포가 겪은 우여곡절도, 지금의 포경 재개 논란도 바로 그 문화의 일부일 것 같고요. 그렇지만 우리가 멸종 위기에 있는 야생동물을 전통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서라며 잡아도 되는 걸까요? 아니, 멸종 위기에 있지 않다 하더라도 그런 대형 포유류를 잡아도 되는 걸까요? 혹시 우리가 고래를 보호한다면서 장생포의 주민들을 '아직도 고래고기를 먹는 사람들'이라며 따돌리고 있는 건 아닐까요? 혹시 고래 고기와 포경은 이제는 청산해야 할 우리 모두의 역사적 과거는 아닐까요? 

 

장생포에서 관광객들은 지역 문화, 전통 문화, 지역 개발, 우리의 일부인 자연, 살아있는 생명의 보존, 수족관에 갖힌 돌고래, 식민지 문화 이런 것들에 대해, 고민하게 되실 겁니다. 바로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바로 지금의 장생포에 가는 거죠. 그리고 그런 (머리 아픈) 여행이 내 삶의 방식을 바꾸고, 그런 여행자가 십만명 백만명이 될 때 우리 문명의 방향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여행은 힘이 세니까요.

 

참, 고래 고기는 아마 못 드실 거에요. (다행히도) 비쌉니다 ㅠㅜ. 고래가 아니어도 식당에는 이것 저것 많이 팝니다. 저는 부둣가 어디에서 자장면을 먹었는데, 그게 어찌나 맛있었는지 지금도 가끔 생각 납니다.

 

 

장생포 어딘가 벽에 그려져 있던 그림입니다. 초등학생들이 그린 고래 그림이랍니다. 나와 도요새와 상괭이가, 그리고 울산 앞바다의 밍크 고래와 돌고래가 함께 행복한 세상, 괜히 뭉클한 그림입니다. 그런 세상을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Posted by orc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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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딸기 2012.07.07 1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재밌다. 언젠가 기사로 쓴 적이 있긴 한데, 아주 짧게 건드리느라고 제대로 보지를 못했는데...
    역시 고래전문가가 설명해주니 다르네! 호주의 돌고래 관광은 정말 꼭 해보고 싶다 ㅠ.ㅠ
    (참 그런데 '국무성'->국무부. 국무성은 일본 표현... 지금은 국무성, 수상, 이런 말 안 씀)
    근데 왜 울나라가 포경산업 하겠다고 저 난리인지... 하는 짓이 어째 허구헌날 그 모양인지...

  2. 쎾쓰 2012.07.08 0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쎾쓰

  3. 이인숙 2012.07.09 1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배, 글 너무 잘봤어요...지금 이 상황이 한눈에 이해되는. 때맞춰 넘 잘올려주셨어요^^ 열씨미 여기저기 알려야겠네요.

  4. Ray 2012.07.14 0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의 글 반가웠어요^^
    들어올때마다 업뎃은 안되있나 궁금햤는데 오랜만에 기자님 글 보니 넘 즐겁게 읽었답니다^^ 며칠전엔 경향에 연재하신 북극권 나라 이야기를 정주행 했더랬죠 ㅋ
    고래 포경 뉴스는 얼마전 봤었는데 호주가 반대하는 이유가 있었군요. 전 왜 반대하나 했는데 속사정이 따로 있군요. 늘 깊이 있고 좋은정보를 재밌게 풀어주시니 좋네요^^
    아직 영국에 계시나요? 한국은 이제 장마 아닌 우기로군요. 늘 건강 조심하시길 바랄게요. 아참, 글도 자주 뵈었음 좋겠네요^^


지난달 초에 '런던 얼터너티브 투어 London Alternative Tour' 라는 단체 (홈페이지는 여기) 에서 하는 '얼터너티브 도보 투어'를 다녀왔습니다. Alternative 라고 돼 있어서 저는 '대안관광'인 줄 알고 갔는데 - 뭐 말하자면 노숙자 투어 (클릭) 비슷한 -, 그 얼터너티브는 뭐랄까, 음악 하는 분들이 이야기하시는 '얼터너티브' 비슷한 것 같더라고요. 런던 동북부에 쇼디치라는 지역이 있는데요, 거기 그려진 그래피티들을 구경하는 투어였어요. 그래피티도 기존 사회 질서에 저항하는 의미가 크니까, 제가 생각하는 '대안 투어'와 형제는 몰라도, 사촌 쯤은 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거나 굉장히 인기가 많은 투어입니다. 트립 어드바이저 같은 사이트에서도 평이 몹시 좋고, 여름 관광철에는 몇달 씩 기다려야 하기도 한답니다. 매일 하는 건 아니고, 주말과 주중의 특정 요일에만 하는데요, 저도 두달 전부터 주말 투어를 예약해놓고 기다렸답니다. 그리고, 우하하 이게 가장 좋은 부분인데, 공식적으로 공짭니다, 공식적으로.

 

 

 

이 잘생긴 청년분이 오늘의 가이듭니다. 쇼디치 입구의 '염소상' 앞에서 만나서 갔어요. 스무명 쯤 되는데, 절반은 영국 국내 관광객들이더라고요. 외국인 관광객도 많고요. 이 단체 자체가 비영리여서, 이 청년분도 자원봉사를 하는 겁니다. 그래피티가 너무 좋아서요. 저 짝다리를 보셔요. 어딘가 좀 얼터너티브 예술 하시는 분의 포스가 풍기지 않습니까?

 

어쨌거나, 이 작품은 모노톤의 엄숙한 장군님입니다. 전통적인, 몸바쳐 나라를 구하는 훌륭한 장군님의 모습이죠.

 

 

 

그러나 그 벽의 반대편엔 이런 그림이 있습니다. 똑같은 모자를 쓴 장군님이, 엄숙하게 말을 타고, 어이없게도 게임에나 나올 법한 괴물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에 걸려 있는 그림에선 상상할 수 없는 설정이죠. 이런 권위에 대한 도전이, 바로 그래피티의 정신이...라는 거죠.

 

 

 

 

그 골목 모퉁이엔 이런 아름다운 그래피티도 있었습니다. 이 작가 이름은 기억해 두고 싶습니다-로아 ROA 라고 합니다. 원래는 타조를 그리려고 했는데, 지나가던 동네 사람이, 어 너 학 그리는구나, 해서 갑자기 학으로 바꿔서 그렸답니다. 이런 즉흥성이 바로 그래피티의 매력이 아니겠느냐....고 합니다. 어쨌든, 유명한 그래피티 작가인 뱅크시도 원래 이 동네 주변에서 그래피티를 그리면서 유명해졌대요. 그 뒤로 이 동네에 수많은 그래피티 작가, 혹은 작가 지망생들이 이렇게 그림을 그린답니다.

 

 

 

이 동네가 쇼디치, 브릭 레인 뭐 이런 지역인데요, 사실 부자 동네는 아니랍니다. 여기 동네 치안이 좋지 않아서 잘 안 간다는 사람들도 있고요. 건물들도 좀 허름하고, 재개발하는 것처럼 부숴진 건물도 많고 그렇더라고요. 이 동네는 크게 세 번의 '이민자 물결'을 통해 만들어졌답니다. 17세기 무렵에 프랑스 신교도들이 박해를 피해 바다 건너 영국으로 와 여기에 자리를 잡았고, 그 다음엔 20세기 중반 유태인들이 나치의 박해를 피해 여기로 건너왔고, 60년대에 방글라데시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건너왔대요. 어떻게 보면 약간, 쫓겨온 사람들의 새로운 땅, 비슷한 거죠. 이 동네에 '방글라 시티'라는 이름의 수퍼가 있는 것도 그런 이유랍니다.

 

 

 

 

그래서 어떤 작가는 이 동네에 이렇게, 방글라데시 어린이의 모습을 그렸답니다.

 

 

 

동네 구석에 이렇게 주차장이 있어요. 저 트럭들이 서 있는 어디에 원래 뱅크시 작품이 있었답니다. 이 주차장 맞은편과 그 주변 벽들에 그래피티가 많았어요.

 

 

 

주차장 맞은편 벽. 어디까지가 '작품'이고, 어디까지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른쪽 위의 저 게임 캐릭터 같은 건 '인베이더'죠? 여기 뿐 아니라 유럽 여기저기에도 있는 것 같습니다. 맨 아래 괴물 브로치 같은 것도 꽤 유명한 작품이라는 것 같고, 그 옆의 물방울 흘러내리기 같은 것도 작품입니다. 가운데 '조심' 안내판도 작품인지... 몹시 헷갈립니다.

 

 

 

동네에 소매치기가 많은가 봅니다. 여러 언어로 소매치기 조심!

 

 

 

이 체 게바라풍의 혁명동지 그림은 사실 굉장히 조그맣습니다. 옆에 세워둔 생수병보다도 작아요. 작가 이름은 파블로 델가도. 조그맣게 마이크로 사이즈로 그리는 게 특징입니다. 이 사람 작품도 여기 저기 꽤 많더군요.

 

 

 

그래피티가 비록 불법이지만, 작가들도 나름 사인을 남겨 놓습니다. 이 작품은 네이슨 보원..? 이라고 읽으면 될래나요? 이 사람 작품은 관광객들 많이 가는 버로 마켓 근처의 벽에도 있어요. 공사장인데, 공사장 노동자들이 소변이 마렵거나, 성질을 내고 있거나, 깔깔 거리고 있는 그런 포즈로 있는 모습을 그려 놓았죠.

 

 

 

이 작품은 참 아름답지 않습니까. 안타깝지만 작가 이름은 기억이....

 

 

 

가까이서 보면 이렇게 총으로 쏜 것처럼 물감을 쏴서 흐르게 만들어서 그린 거랍니다. 예전에 미술 시간에 배운 일종의 점묘 화가인가봐요.

 

 

 

같은 분의 또다른 작품입니다.

 

 

 

이 건물 아랫벽 전체에 이렇게 '안티안티안티'라고 적혀 있습니다. 재작년에 런던에서 '디자인 페스티벌'이 열렸는데, 일부 그래피티 작가들이 기성 디자인 질서에 항의한다는 의미로 이 벽에 이렇게 '안티 안티' 라고 그려 놨답니다.

 

 

 

그런데 이 '안티' 벽 맞은편은 '프로 프로 프로' 벽입니다. 이 건물에서 일하는 분들이, 매일 아침 저 '안티'를 보며 출근하려니 인생이 우울하다며, 그래피티 작가들한테 뭐 좀 긍정적인 걸로 벽 좀 그려달라고 해서, 이렇게 그렸답니다. '안티 안티'는 모노톤이지만, 이 '프로'는 색깔도 화려합니다. 그래서 이 골목이 한쪽은 '안티', 반대쪽은 '프로'인, 재미있는 골목이 됐죠.

 

 

 

이, 어딘가 익숙한 이 우주인 모양의 그래피티는 스티크 라는 작가의 작품이래요. 주변에 이것 저것 다른 작품들도 많죠. 그래피티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어제 있던 작품이 오늘 가면 없고, 내일 가면 새로운 작품이 그 위에 그려져 있고, 이런 식의 예측 불가능함이랄까, 언제나 '만들어 지고 있는 과정'에 있는 거라고나 할까, 그런 거래요.

 

작품들이 없어지는 건 새로운 작품이 만들어져서이기도 하지만, 나라에서 지우고 다니기 때문이기도 하죠. 우리나라처럼 영국도, 타인의 건축물에 허가 받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그래피티는 불법이니까요. 물론 작가들이 집주인한테, "나 여기 그림 그려도 되냐"고 물어보기는 하죠. 그러나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고, 공공 건물도 많고 그래서, 이 동네 그래피티의 90%가 불법 그래피티라네요.

 

어쨌거나 뱅크시를 계기로 그래피티가 '예술', 특히 돈이 될 수도 있는 '예술'이라는 생각이 생겼고, 영국 같은 경우는 몇년 전 워털루 다리 밑에서 아예 '그래피티 축제'를 열기도 했죠. 자, 여기 마음 놓고 그려라, 하는 그런 행사였던 모양이에요. 그렇지만, 그렇게 자리를 깔아주면 그건 더 이상 그래피티가 아닌 것 같기도 해요. 그래피티의 정신은 원래 저항하는 건데, 그걸 제도화하고, 돈으로 가치를 매기기 시작하면 더 이상 그래피티가 아니게 되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지금처럼 이 괜찮은 작품들이 내일이면 없어질 지도 모르는 상황에 있는 것도 좀 아쉽고. 음... 갑자기 생각났는데, 저희 동네에 매일 주차돼 있는 차 중에 '그래피티 제거 전문' 차량이 하나 있던 것 같다는...

 

 

 

이 작품은 이 동네에 가장 최근에 등장한, 아주 매력적인 그래피티랍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이 외국 작가님은 어디 가는 길에 런던에 하루 머무르시면서 하룻밤에 뚝딱 이 그림 그려놓고 가셨답니다. 제가 하룻밤에 할 수 있는 건, 음..음... 음... ㅠㅜ

 

 

 

투어 마지막에 기찻길을 지나게 됐는데, 마침 이런 게 적혀 있더라고요. '우린 아무것도 부탁하지 않을 거다. 우린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을 거다. 우리는 그냥 가질 뿐이다. 점령!" - 뭔가 그래피티의 정신에 대해 상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더불어, 좀 비슷하게, 미국 뉴욕의 월 스트리트와 세계 곳곳에서 벌어졌던 '오큐파이' 운동과도 상통하고요.

 

어쨌거나, 이 투어는 두 시간이 좀 못되게 끝났습니다. 공식적으로는 '공짜' 지만, 투어 끝에 '후원해 주시면 거절하지 않겠습니다'며 모자를 돌리는데, 워낙 애쓰신 걸 봐서 조금씩은 다 넣게 되더라는... 사실 저는 그래피티나 언더 예술을 잘 몰라서, 그러려니 하고 따라 다녔지만, 그런 것 좋아하시는 분들은 정말 좋아하실 것 같아요. 더불어 그런 젊은이들의 저항 문화라든가, 이런 데 대해 생각할 계기도 되는 것 같고요. 이 블로그가 지향하는 바가, 여행은 나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뭐 이런 건데, 그런 면에서 그래피티 투어도 우리 생각의 지평을 넓혀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트립 어드바이저처럼, 강력히 추천할까 싶습니다.

 

 

 

 

 

 

 

 


Posted by orc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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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ike free run 2013.07.11 0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 매력있어, 자기가 얼마나 매력있는지 모르는게 당신매력이야

  2. ugg boots 2013.07.13 1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창밖을 봐 바람에 나뭇가지가 살며시 흔들리면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널 사랑하고 있는거야.




4월1일은 버마 총선 보궐 선거가 있는 날입니다. 어쩐지 요즘 텔레비전이나 신문에 저 분, 아웅산 수치가 자주 나오더라 했더니, 싶었다면, 네 그겁니다. 수치가 누구냐. 버마 민주화 운동 지도자...노벨상도 받았던 것 같고... 넵 ^^ 공식적으로 수치는 버마 야당인 '버마민주민족동맹'(NLD) 지도자죠. 이번 선거는 21년간의 가택 연금에서 풀려난 수치가 처음으로 출마하는 선거입니다. 버마는 오랫동안 군부가 독재 지배하다, 최근 들어 조금씩 변화를 보이고 있는데요, 수치와 NLD가 이번 선거에서 이겨, 버마 정치의 새 판을 짤 수 있을 것인가, 이 때문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답니다. 


뭐 그러나 이 블로그가 그걸 토론하려는 건 아니고요. 어쨌든 그래서 전세계 민주화 지도자들과, 정치인들과, 저널리스트들이 버마를 주목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요한 건 배낭을 둘러멘 한 떼의 여행자들도 열심히 국경을 넘고 있다는 겁니다. 왜냐, 아웅산 수치의 가택 연금이 해제되면서 지난 15년 동안 끌어온 '버마 여행 보이코트' 운동도 사실상 해제됐기 때문이죠. 네, '버마 여행 보이코트' 그겁니다. 


(http://ruscombegreen.blogspot.co.uk)


이 피로 쓴 포스터가 바로 '버마 여행 보이코트' 포스터랍니다. "버마 여행 보이코트가 풀렸어요!" 라고 말하는 게 이게 마치, "서태지-이지아 이혼했대요!" 말하는 것 같네요. -_- 그들이 결혼했었다는 것을 몰랐던 것처럼, 우리는, 전세계가 버마 여행을 보이코트 해 왔다는 사실을 잘 몰랐잖습니까? 어쨌거나, 우리나라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유럽, 특히 영국과 호주에서는 이게 일종의 '여행 상식'으로 통할 정도였답니다. '군부 독재가 지배하는 한 버마를 여행하지 않는다'는 거죠. 이 '버마 여행 보이코트'는 여행자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특정 국가 여행하기를 집단적으로 거부한, 전 세계적으로도 독특한 사건일 겁니다. 비슷한 사건이, 2008년 초에 우리나라 티벳 여행자들이 인사동에서 중국의 티벳 침공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인 적이 있었죠. 


(http://kopisusu2.blogspot.co.uk)


이 대규모 '여행자 운동'을 설명하려면 버마의 복잡하면서도 슬픈, 그리고 좀 여러모로 우리나라를 닮은 역사를 간단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버마가 어디냐, 저 지도에 '미얀마'라고 적혀 있는 저기가 버마입니다. 우리나라 공식 외국어 표기법은 '미얀마'일 거에요. 군부 독재측은 '미얀마'라고 부르는데, 거기에 저항하는 쪽에서는 '버마'라고 부른답니다. 예전에 버마에서 학생운동 하다가 한국으로 망명하신 버마분 말씀이, '미얀마'가 아니라 '버마' 라고 불러달라고, 간곡하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네, 버마. 우리는 사실 좀 버마에 대해 무심하지만, 동남아에서는 태국에 이어서 2번째로 큰 나라랍니다. 지도를 다시 보시면, 정말 그렇습니다. 


버마는 1960년대 초반부터 군부가 강력한 독재 정치를 펼쳐왔습니다. 학생과 재야인사들이 중심이 돼 여러 차례 민주화 시위를 벌였고, 그 중 가장 강력했던 시위가 88년의 대규모 항쟁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90년엔 처음으로 총선이 실시돼고,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NLD가 압승하죠. 여기까지는 우리나라와 비슷하죠? 그런데 버마는 여기서 엉뚱한 길을 걷게 됩니다. 개표 다음 날 군부가 선거 결과를 무효화하고, NLD를 해체하고, 아웅산 수치를 가택 연금 시킵니다. 모든 정치적 발언과 집회가 차단되고, 체포와 구금이 일상화되는 '공포정치' 시대가 열린 겁니다. 버마 민주화 인사들은 체포와 암살의 위협을 피해 세계 각지로 망명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도 탈출한 버마 학생 운동 지도자들이 몇 분 와 계세요. 그 분들이 망명을 신청했는데, 우리나라가 오랫동안 망명 인정을 안 해 줬죠. 어쨌거나 버마 역사는 이렇게 거꾸로 흐르고, 버마 군부의 비민주적 행태에 비판하는 뜻으로 전세계 대부분 국가가 버마와의 교역을 중단합니다. 경제적으로 고립시키자는 거죠. 


궁지에 몰린 버마 군부가 발견한 유일한 외화 벌이 방법이 바로 '관광'이었습니다. 버마 군부는 해외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인프라 조성에 박차를 가했죠. 그 덕분에 외국인 관광객이 연간 2만명에서 90년대 중반에는 20만명으로 껑충 뛰었습니다. 이 와중에 호텔 짓고 관광지 조성하면서 지역 주민들을 강제 동원한 것도 나중에 문제로 지적돼죠. 군부는 내친 김에 96년을 '버마 방문의 해'로 선포하고 '아시아의 마지막 낙원'으로 대대적인 마케팅을 벌입니다. 이 때 집안에 갇혀 있던 아웅산 수치가 전세계에 메시지를 날렸습니다. "군부 독재가 종식될 때까지 버마 관광을 중단해 달라"고요. 군부가 숙소와 여행사, 교통 수단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쓴 돈이 군부 독재를 유지하는 데 쓰인다는 거죠. 


아웅산 수치는 그 때 이미 전세계적인 정치인이었죠. 이 분은 버마 '민주화의 봄'이 산산이 부서졌던 이듬해, 91년에 이미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가택 연금 상태여서 시상식에 갈 수 없어서, 당시 10대였던 아들이 대신 가 떨리는 목소리로 엄마의 소감문을 읽었답니다. 수치는 버마의 유명한 독립운동 지도자의 딸이랍니다. 그러나 군부가 들어서면서 아버지는 암살됐고, 엄마와 함께 미국과 영국을 떠돌며 오랫동안 망명 생활을 했습니다. 오빠들은 정치에 손을 담그지 않겠다고 했고, 아빠와 엄마의 뒤를 이어 본인이 총대를 맸죠. 정치에 뛰어들기 전엔 영국에서 정치학을 공부해서 박사학위도 받았습니다. 학생 때 만난 또래의 영국 학자와 결혼해 아들도 둘 낳았고요. 


그러나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고, 가택 연금을 당하면서 수치는 가족들과는 만날 수 없는 운명이 됐습니다. 남편이 암으로 투병하면서, 죽기 전에 아내를 보고 싶다고 버마에 가려고 했지만, 버마 군부가 비자를 내 주지 않았답니다. 그러면서 수치 보고, 남편 보고 싶으면 너가 가라고 그랬다죠. 버마 땅을 벗어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게 될 것을 알았기에, 수치는 가지 않았고, 결국 두 사람은 다시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남편은 2000년 무렵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가슴 아픈 수치의 이야기는 여러 사람의 심금을 울려, 지난해 뤽 베송이 <더 레이디>라는 영화도 만들었답니다. "더 레이디"는 버마 사람들이 수치를 부르는 이름이랍니다. '그 분' 정도 될까요. 



둘째아들이던가요? 수치의 아들입니다. 가택 연금이 잠깐 풀렸을 때 상봉했던 건가, 하여간 옛날 사진입니다. (http://blog.tsemtulku.com)


어쨌거나, 이 '버마 여행 보이코트'는 전세계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특히 영국의, 관광 감시 민간단체쯤 될래나요, '투어리즘 컨선'은 버마 여행 보이코트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였습니다. 여기서 어찌나 캠페인을 해 대고 여행사들을 '쪼아' 댔는지, 영국 여행사 10곳이 버마 여행 상품 판매를 중단했습니다. 여행 가이드 북 시리즈인 '러프 가이드'는 '버마' 편 출판을 아예 중단했죠. 


한편 '론리 플래닛'은 버마편을 꾸준히 출간합니다. 론리 플래닛 본사가 있는 호주 사무실에서는 손바닥에 피를 묻혀 찍은 '피도장 엽서'가 매일 수백장씩 날아 들었답니다. 론리 플래닛 대표인 토니 휠러가 참다 못해 영국 국회에 탄원서를 내기까지 했어요. 토니 휠러의 자서전 비슷한 책이 우리나라에도 출판돼 있는데, 거기도 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쨌거나 이 '버마 여행 보이코트'는 BBC의 인기 시사 프로그램인, 우리로 치면 밤 11시 뉴스쯤 되는 '뉴스 나이트'의 토론 소재로도 나왔어요. 결국 영국 정부는 2004년 '버마 여행 상품을 판매하지 말아 달라'고 여행사들에게 공식 권고를 하고, 호주도 2006년에 버마 여행 중지를 선언하게 됩니다. 


버마 여행 중단 캠페인 사진입니다. 피켓을 보시면 '여행자들이 쓴 돈이 준타(군부) 총 사는데 쓰인다' '호텔과 도로 닦는데 강제 노동력이 동원됐다' 뭐 이런 게 있습니다. (http://burmadigest.info)


한편, 버마의 실상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버마를 여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았어요. 토니 휠러도 그 쪽의 하나죠. 배낭 여행자들이 주축인 이 여행자들은 '군부가 운영하는 시설은 이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버마의 국경을 넘었답니다. 군부 시설이 값도 싸고 시설도 좋지만, 몇 배의 돈을 내면서 지역 주민들이 운영하는 허름한 숙소에서 자고, 낡은 버스를 타고, 군부를 비판하는 '지하 공연'을 관람했답니다. 유명한 '지하 공연' 중에 '콧수염 형제'의 코미디가 있었는데, 아웅산 수치의 가택 연금을 비판했다가, 형제 세 명 중 두 명이 체포돼 버렸죠. 나 홀로 남은 '콧수염 형제'의 '리허설'을-공연은 불허됐으니 리허설을 하는 걸로 대체한 겁니다-, 그의 늙은 어머니가 문 밖에서 보초를 서는 가운데, 관광객들은 관람을 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도보 여행하는 김남희씨의 아시아 여행기에도 나옵니다. 


아웅산 수치와 NLD는 지난해 초 공식적으로 "버마 여행을 재개해 달라. 보이코트를 걷는다"고 밝혔습니다. 버마의 정치 지형도가 빠르게 바뀌고 있기 때문이죠. 2010년 가을 버마 군부는 20년만에 총선을 허가했고, 지난해 4월에는 이른바 '민간' 정부로 권력이 이양됐죠. 거기에 다시 보궐 선거까지 찾아오는 겁니다. 다만, '버마 여행 보이코트 해제'는 조건이 있습니다. 여전히 관광 시설 대부분을 군부가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의 생계에 직접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소규모'의, '지역 중심 관광'을 해 달라는 겁니다. 


버마의 '앙코르 와트'라는 바간-다소 사진빨 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아름답습니다. (http://www.roughguides.com)


'버마 여행 보이코트 철회'를 여행자도, 여행 업계도 두 팔을 벌려 환영하고 있습니다. 신문 기사들을 찾아보면, 버마 여행 문의가 폭주하고 있나봐요. '암흑기'에도 '책임여행' 버마 상품을 판매해 왔다는 어떤 여행사 주장으로는, 버마 여행 문의가 5배 늘었다는군요. 어찌나 흥분들을 하고 있는지, <Wanderlust>라는 잡지는버마를 '올해 최고 뜨는 관광지'로 주저하지 않고 꼽았습니다. 이 잡지는  94년부터 버마 여행을 다룬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서도요. 버마 여행객 수는 '보이코트'가 시작된 90년대 중반부터 걍 매년 20만명 수준이었는데, 지난해엔 상반기에만 벌써 24% 늘어났답니다. 


힐러리 클린턴과 아웅산 수치가 손을 맞잡고 있습니다. 혹시 버마 가시는 분 계시면 저 이 엽서 한 장만 사다주....-_-


버마는 아름다운 나라.... 일 겁니다. 만달레이 베이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같은 데 아시아의 마지막 남은 야생 지역으로 가끔 나왔죠. '바간'이라는 도시는 버마의 '앙코르와트'랍니다. 사진만 봐도 그런 것 같습니다. 관광객들은, 이제 모두 풀려나 제대로 '트리오'가 된 '콧수염 형제'의 리허설이 아닌, 공식 공연을 본 답니다 - 코미디라고 하기엔 너무 재미가 없다는-_- 평도 있지만, 뭐 어떻습니까. 지난해 다녀갔던 힐러리 클린턴과 아웅산 수치가 악수하는 사진은 엽서가 돼 팔리고 있답니다. 택시를 타면 기사가 흥분해 '더 레이디'네 집 안 갈거냐며, 꼭 봐야 된다며 데려 간답니다. 트래블 트랜스퍼런시라는 단체는, 소규모 독립 여행자를 위한 버마 여행 시설들을 홈페이지 에 속속 업데이트 하고 있습니다. 쓰다 보니 저도 너무너무 가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여행하지 않는 것이 '윤리'였던 나라. 여행만 힘이 센 것이 아니라, 여행하지 않기로 한 여행자들의 힘도 세다는 사실을 보여줬던 사건. 더 레이디와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이제는 여행할 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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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정애 2012.04.03 1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식적인 이름은 미얀마 입니다.
    버마에서 미얀마로 바꾼지 좀 됐습니다.

    미얀마 여행을 세번정도 했었습니다.
    몇년전 2007년에 잠깐 동안 우리나라에서 직항이 (아시아나 항공)이
    양곤으로 들어갔었습니다.
    하지만 곧 미얀마는 항공을 닫았고
    태국을 통해 들어가야만 했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제 3국을 경유해야 들어갈수 있습니다.

    미얀마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정말 아름다운 나라 라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만달레이나 바간 혜호...
    셔터만 눌러대면 다 엽서가 되던 그곳...


    수치여사가 당선됨으로써 개방의 물결을 급속도로
    이뤄지겠지만
    역시 여행객들의 수가 많아짐으로 해서
    그 아름다운 나라가 얼마나 그 순수를 지켜나갈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건 .. 지나친 기우일까요...

    • 독자 2012.04.03 17: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본문에 이런 내용이 있네요.

      "우리나라 공식 외국어 표기법은 '미얀마'일 거에요. 군부 독재측은 '미얀마'라고 부르는데, 거기에 저항하는 쪽에서는 '버마'라고 부른답니다. 예전에 버마에서 학생운동 하다가 한국으로 망명하신 버마분 말씀이, '미얀마'가 아니라 '버마' 라고 불러달라고, 간곡하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공식 국명을 바꾼지는 꽤 되었는데 군부가 독단적으로 바꾼 것이므로 이전 국명을 쓴다는 것입니다. 민주화 운동 세력이 '미얀마' 국명을 인정했는지는 모르겠네요.

  2. Ray 2012.04.11 0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핸드폰에 북마크 해두고 가끔 들어왔는데 요새 글이 좀 뜸해서 바쁘신가하여 서운(?)했더랍니 다 ㅎㅎ 며칠전 뉴스로 수치여사가 보궐선거에 서 승리했다는 기사는 보았더랬지요. 버마에도 봄이 오는것같아 다행입니다. 요새 영국생활은 어떠신지... '4seasons in 1day' 날씨도 잘 견디시고 하시는 공부 무사히 건강히 마치고 돌아오 세요. 북극권나라 이야기는 더 이상 쓰실일이 없으신지도 궁금하네옷. 책으로 내시면 바로 서점에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말이죠. 건강 하세요^^ 또 좋은글 기다리고 있을게요~

  3. Ray 2012.04.25 02: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억해주시니 기쁘네요 ㅎㅎ 실은 되게 자주 들어 오는데 글마다 댓글남기면 스토커(?)인가 오해하실까봐 ㅎㅎ 알래스카 이야기는 너무 좋아해서 스무번은 넘게 읽었답니다~ 제가 유통쪽에서 일해서 크리스마스 패키지 이야기에는 공감도 했구요~ 글 자주 올려주세요^^ 많이 기다리고 있어요~ 저말고도 숨은 독자가 많을거예요 ㅋ 출판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ㅋ 출판사에 제 댓글 꼭보여주세요~ㅎ



최근에 인도양의 섬에서 원시 부족 '인간 사파리' 투어를 한다고 해서 논란이 됐었죠. 영국 일간 <가디언>의 주간지 격인 <옵저버>에서 폭로 기사를 썼는데요, 저희도 학교에서 이걸로 토론도 하고, 분개도 하고 시끄러웠습니다.


문제가 되었던 게 바로 이 비디오 클립들이었습니다. 거의 벌거벗은 부족 여성들이 관광객 앞에서 춤추고, 노래도 부르고 그러죠. 이 필름 클립들은 가디언 온라인(클릭)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 로이터>


일단 이 '인간 사파리'가 이뤄진 곳이 어디냐. 바로 여깁니다. 인도와 버마 사이의 인도양, 벵갈만에 안다만 제도가 있습니다. 거기 섬 중 하나죠. 여기 안다만 섬의 남쪽에 거대한 정글 보호 구역이 있는데, 거기가 바로 자라와 Jarawa 부족이 사는 곳입니다.  



<출처: 가디언 웹사이트 Credit: Giulio Frigieri>



자라와 부족은 현재 400명 정도 남아 있는 소수 부족입니다. 원시 부족이나 자연이 별로 없는 우리로선 상상하기 어렵지만, 아마존이나 보르네오 섬의 정글 같은 곳엔 아직까지 외부 세상과 거의 접촉하지 않은 부족들이 살고 있답니다. 자라와 족은 96년에야 외부 세계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젊은 사냥꾼 하나가 사냥하다 조난당했는데, 어찌어찌 도움을 받아 외부 세계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답니다. 돌아온 그가 '바깥 세상은 어떻더라 저떻더라' 하면서 98년 처음 외부와 접촉이 시작됐죠. 40-50명 정도가 무리를 이뤄서 노마드처럼 사는데, 남자들은 화살로 돼지나 거북이를 잡고, 여자들은 꿀이나 과일을 채집해서 먹고 삽니다.

외부와의 접촉 통로가 바로 이 도로입니다. 정글 보호 구역을 가로지르는 '안다만 트렁크 로드' 예요. 관광은 98년 시작됐는데, 그냥 차로 이 도로를 가로지르는 겁니다. 정글 구경도 하고, 그러다 자라와 족이 보이면 하이, 인사도 하는 그런 취지였겠죠. 그러나 문제는, 이게 말 처럼 안 된다는 거죠.



<출처: Survival International>

일단 관광객들은 '희귀한 장면'을 사진에 담아 가져오고픈 강한 욕망이 있죠. 분명 보호구역 입구에 '사진 찍지 마시오' '자연이고 동물이고 아무것도 건드리지 마시오' 라고 적혀 있지만, "나 하나 쯤이야" 생각한 관광객들이, 한두명도 아니고, 하루에 차량 130대에 버스 25대 분량으로 꾸역꾸역 밀려 들어왔습니다. 원래 합의한 것은 차량 8대였다더군요. 관광객들이 사진만 찍는 게 아니라, 주민들에게 바나나도 던지고, 비스킷도 던지면서 그야말로 '인간 사파리'가 됩니다. 관광객을 '아빠'로 태어난 아이들도 있답니다. 부족 공동체 사회에서 용인되지 않기 때문에 이 아이들은 살아남지 못한답니다.



<출처: Survival International>

부족민들도 관광객들을 굳이 찾아 왔습니다. 사냥 하려면 힘들고 귀찮지만, 도로변에 가면 관광객들이 먹을 걸 주거든요. 관광객들이 돈을 주면, 잘 모아 두었다가 경찰에게 주면, 경찰이 술도 갖다 주고, 담배도 갖다 주고 그랬답니다. 관광객들이 부족민들 방해 못하게 감시하라고 경찰을 붙여 놨더니, 경찰들이 돈 개념 없는 부족민들을 이용해 '장사'를 한 거죠.


인근 대도시에 가면 "100% 원주민 목격하게 해 드립니다"는 여행 상품을 파는데, 그게 경찰들에게 200파운드, 우리 돈으로 40만원 정도 뇌물을 주고 하는 거라네요. 그럼 경찰들이 원주민들도 (소떼처럼) 몰아 오고, 구걸하는 것도 가르치고, 춤 추라고도 시키고 한답니다. 관광객-원주민-경찰-여행사가 뭔가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지기는 하지만 참 어이가 없는....ㅠㅜ



<출처: Survival International>

'인간 사파리'에 전세계가 광분한 것을 보면, 적어도 우리가, 인간이 다른 인간을 상품화하고 소비해서는 안 된다는 데 대체로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어쩌면 그보다는 이 '인간 사파리'라는 용어 자체가 언론이나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해서일수도 있겠지만요. (이 포스팅의 제목을 '인간 사파리'로 달고 쓰고 있는 저도..ㅠㅜ )


인간 사파리 14년째를 맞는 자라와 부족의 삶은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이 사진을 보시다시피, 멀쩡히 사냥해야 할 청년이 애를 데리고 와서 관광객 지나가는 길목에 기다리고 앉아 있습니다. 사냥을 안 해도 되어서 좋을까요? 원주민들도 좋든 싫든 외부 세계와 접촉할 수밖에 없는 걸까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방식이 옳은 것일까요?


자라와 족은 2000년대 이후 두번의 큰 돌림병을 겪었답니다. 고립된 채 살아왔기 때문에 외부 세계의 질병에 면역력이 없는 거죠. 홍역이나 말라리아가 이들에겐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서구의 습격' 이후 에스키모의 90%가 다른 것도 아니고, 감기로 죽었다고 하잖아요. 그리고 외부 세계와 접촉하면서 받게 되는 문화 충격도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런 원시 부족들이 외부와 본격 접촉하게 되면, 보통 정부에서 나서서 집도 주고, 돈도 주고, 직업도 주면서 먹고 살게 해 준답니다. 원주민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다시 구걸을 하거나, 아파 죽거나, 혹은 자살을 해 버린대요. 문화와 언어에 대한 자긍심이 없어지면서, 삶과 미래에 대한 의지도 사라진답니다. 안다만 섬의 가장 큰 원주민 부족은 18세기 말만 해도 1만명이었는데, 지금은 50여명으로 줄었답니다. 그 동안 세계 인구는 풍선처럼 늘었는데도요. 이 자라와 족이 그 원주민 부족의 전철을 밟을까 두렵습니다.

이 사태가 전세계에 일파만파 알려진 뒤, 인도 정부가 여행사 3곳을 영업정지 시키고, 여행사 직원 2명에게 7년형을 구형했답니다. 이 직원들은 강력히 항의했답니다 - 우린 관광객을 데리고 갔을 뿐이다, 거기서 사진 찍고 먹을 것 던져 준 건 관광객 잘못이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죠. 관광객들도 할 말이 없지 않겠죠 - 우린 상품이 있어서 갔을 뿐이다. 춤 추길래 돈이나 먹을 것으로 답례를 했다. 자라와 족 입장에서도, 사람들이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기에 갔을 뿐이다. 우린 원래 외부인에게 친절한 부족이다, 라고 말하겠죠.

 

자라와 족 등의 원주민 부족 보호 운동을 펼치고 있는 국제 단체 '서바이벌 인터내셔널'이 내놓은 답은 이겁니다. 정글 보호구역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폐쇄하라고. 이미 2002년에 인도 상급법원이 이 도로를 폐쇄하라고 했지만, 여행사들도 미적거리고, 동네 주민들도 미적거리면서 아직까지도 폐쇄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모두가 이 '인간 사파리'의 공범인 거죠.


'서바이벌 인터내셔널'은 인도 정부에 도로 폐쇄를 촉구하는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여기 를 클릭하시면, 페이스북으로도 할 수 있습니다.


<출처: Survival International>

자라와 부족 어린이의 모습입니다. 자라와 족은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현생 인류 가운데 아시아로 건너온 무리의 후손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나무 밑에서 썩도록 두었다가, 그 뼈를 추려서 가지고 돌아온답니다. 사냥할 때 행운을 준다네요. 문화적 자긍심이 높고 아름다운 이 부족이, 오랫동안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때로는 관광을 멈추는 것이, 윤리적 관광객이 되는 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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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새해 결심 하시면서, "올해는 고기를 줄이고 채식을 해 보겠다" 고 결심하신 분은 안 계시나요? 혹시 그런 결심을 하신 분이 있을지도 몰라서(^^;) 새해 특집으로 만들어 본 "채식 기내식" 포스팅입니다. 이 블로그의 뚜렷한 정체성은, 여행과 환경의 중간 어디쯤! 아닙니까. 

저는 살짝 베지테리언인데요, 채식'주의'라고 하기엔 '주의'가 너무 없고, 고기는 안 먹지만 돈까스는 먹고, 물에 빠뜨린 생선은 안 먹지만 구운 생선은 먹고, 심지어 훈제 연어는 좋아하기까지 하기 때문에 정색하고 '채식주의자'라고 할 수는 없겠더라고요. 엄밀히는 편식, 그러나 스스로는 기회주의적 베지테리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네. 


제 이 기회주의적 채식주의가 극단적으로 발현되는 게 비행기 탈 땝니다. 평소에 고기 잘 못 드시는 분들 중에, 비행기, 특히 외국 항공사 비행기에서 주는 고기는 너무 질기고, 냄새도 많이 나서 못 먹겠다, 하시는 분들 계시지 않으세요? 저도 그런 이유로, 항공사 안내문에서 '채식 등 특별식 주문 가능합니다'를 보고 전화를 걸어 채식 식사를 미리 부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벌써 10년이 넘어가서, 밥 먹을 때마다 찍어놓은 사진이 꽤 되네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베지테리언 기내식 분투기, 되겠습니다. (스크롤 압박 쎄게 있습니다)


아, 참, 베지테리언 기내식은 항공권 끊고 항공사에 전화해서 신청하시면 됩니다. 요즘은 온라인으로 좌석 배정 할 때 선택할 수 있도록 돼 있더군요. 비행기 타기 일주일 전에는 신청해 주셔야, 미리 준비가 된답니다. 




처음엔 저도 일단 항공사에 전화해 "채식 특별식이요" 했답니다. 그렇게 하면 이런 식사 줬습니다. 삶은 감자와 당근이 메인 디쉬인 몹시 슬픈 채식 식사입니다. 외국 항공사였나 봅니다. 샐러드 자리에 나물이 있네요. 밥도 없이 나물만 주면 어떡하란...ㅠㅜ  




역시나 슬픈 아침식사예요. 삶은 감자와 삶은 ...풀... 자세히 보시면 에어 캐나다임을 알 수 있습니다. 2005년 사진이네요. 




푸딩 같은 데 보면 'VL'이라는 스티커가 있지요? 저게 베지테리언 이라는 표시입니다. 옥수수 죽 비슷한 것과 삶은 야채로 구성된 간단 채식 식사. 

저의 이 슬픈 채식 식단은 그러나, "락토 오보 베지테리언"을 발견하면서 즐거운 채식 식사로 바뀝니다. 채식도 종류가 많더라고요. 일단 동양식, 서양식으로 나뉘어 지는데, 동양인이라고 동양식을 시키셨다가는 정말로 삶은 무와 야채로 구성된 밥 드시게 됩니다. 거기서의 동양식은 대체로 인도나, 동남아의 종교적 이유로 육류를 전혀 안 먹는 동양식을 가리키는 것 같아요. 상대적으로 서양식을 달라고 하면 치즈 같은 게 들어간 좀 더 "화려한" 식사가 나오는 것 같더라고요. "락토 오보 베지테리언"은 우유와 계란을 먹는 채식인데, 유란채식이라고도 합니다. 저같은 '짝퉁 베지테리언'한테는 딱 좋더라고요. 




밥 위에 붙어 있던 이 스티커! 락토 오보 베지테리언 밀 되겠습니다. 




당장에 화려하지 않습니까? 계란과 우유를 넣으니, 케이크가 나옵니다. 이 페스트리는 안에 치즈 같은 게 들어있었는데요, 너무 맛있어서 싹싹 긁어먹답니다. 




근접샷입니다.




채식 식사라고 해서 야채 삶은 것만 주는 게 아닙니다. 덮밥 류도 꽤 많아요. 이건 채식 카레와 덮밥. 오른쪽 빵 옆에 'Flora'라는 조그만 버터가 보이시죠? 버터가 아니라 마가린이랍니다. 베지테리언은 동물성 지방인 버터 대신, 식물성 지방인 마가린을 줍니다. 스웨덴 가는 타이항공 비행기에서 찍었네요. 




역시 베지테리언 카레였던 것 같아요. 다양한 종류의 콩으로 구성된 샐러드를 보셔요. 

 



국수도 자주 나와요. 이 다채로운 채식 식사는 필리핀 가는 아시아나 항공이네요. 어쩐지 식사가 좋더라니. 나물을 얹은 유부초밥이 샐러드로 나와 있네요. 




국수 맛있었나 봅니다. 접사까지 찍어 놓은 걸 보면.




음, 유부초밥은 항공사의 인기 전채인가 보지요? 여기도 나옵니다. 컵 옆에 조그만 노란 버터통이 보이시나요? 컨트리 어쩌고 하는 건데, 저것도 마가린입니다. 채식 식사에 자주 따라 나와요. 




파스타도 빼 놓을 수 없죠. 피를 토한 것처럼 보이는 토마토 파스타. 알래스카 가는 중화항공 비행기였던 것 같습니다. 




야채 볶음 국수 입니다. 빵 오른쪽에 납작한 새카만 빵 보이시나요? 북유럽에서 많이 먹는 밀 빵인데, 덴마크에서 돌아오는 타이항공 편이었네요.  




아침 식사도 종류가 다양하답니다. 이건 전형적 베지테리언 아침 식사. 락토 오보 베지테리언은 계란과 우유를 먹기 때문에 오믈렛도, 버터 들어간 크로와상도 먹습니다. 




요플레 뚜껑에 자세히 보면 'VLML'이라고 적혀 있어요. 락토 오보니까, 요플레도 냠냠. 




망고 소스가 곁들여진... 뭔 빵이었겠지요? 기억이 안 네요 ㅠㅜ 영국에서 한국 가는 네덜란드 항공편이었습니다. 




이런 오믈렛도, 




감자 으깬 것이 밥 대신 들어있는 베지테리언 아침 식사. 




여느 기내식도 마찬가지지만, 베지테리언 식사도 항공사에 따라 천차만별이랍니다. 서비스 좋기로 유명한 싱가포르 항공 기내식입니다. 저 호박 파내고 찰밥 넣은 것 좀 보세요. 오른쪽은 남미에서 많이 먹는다는 쿠스쿠스입니다. 2008년에 인천에서 알래스카 갈 때 찍었네요. 




포장이 죽여주는 네덜란드 항공 기내식. 




포장지 벗겨보면 토마트 파스타였습니다. 맛있었어요!




에어프랑스였던 것 같습니다. 볶음밥과 구운 야채가 함께 나오는 푸짐한 식사. 




한편 삶은 야채만으로 구성된 단촐한...-_- 상해 가는 중국계 항공사였습니다. 10만원짜리 저가항공권 답습니다. 




일본 항공에서 준 간식입니다. 베지테리언은 간식도 야채와 과일로..늘 주는 건 아니고, 주기도 한답니다. 왼 횡재냐 싶었지요. 




이게 딱 전형적 베지테리언 식사의 모습인 것 같아요. 컨트리 어쩌고 마가린과, 오이나 야채로 구성된 간단한 샐러드가 파스타와 함께 나옵니다. 미국 시애틀에서 날아오는 싱가포르 항공이네요. 




저 밥상에 함께 놓여 있는 베건 쿠키. 베건은 고기와 생선, 유제품을 전혀 먹지 않는 베지테리언이에요. 베건 쿠키나 케이크는 버터나 우유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보통 쿠키보다 약간 더 파삭한 기분이 들긴 한데, 맛있어요!

베지테리언 기내식에도 동양식, 서양식, 락토-오보 외에 베건도 있습니다. 통상 베지테리언을 구분할 때에도 락토-오보, 페스코(육고기는 먹지 않고 생선은 먹는 베지테리언), 베건으로 많이 나눕니다. 베건이야말로 진정성 있는, 진정한 의미의 베지테리언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네, 아직까지 갈 길이 머네요.

어쨌거나 결론은, 의외로 다양한 베지테리언 기내식의 세계, 나도 한번 도전해 보자 베지테리언 기내식, 뭐 이 정도입니다. 




Posted by orc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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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혜 2012.03.20 2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에는 식사가 천편일률적으로 나오던거 같던데 정말 다양하네요.
    예전에 미국오갈때 KAL에서 주던 단순한 식사를 생각하니 베지테리언 식사지만 화려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요즈음은 많이 달라졌겠지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2. Michael Kors outlet 2013.07.12 0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내가사랑할 만한 사람이 아니예요,사랑하지 않으면 안될 사람이예요.





지난 주에 런던에서 열린 '월드 투어리즘 트래블 마켓'에 다녀왔습니다. 세계 최대의 여행/관광 박람회 중 하납니다. 최근 포스팅만 보면 마치 이 블로그가 환경 블로그 같겠지만, 엄연히 환경과 여행의 중간 어디쯤 블로그, 아니겠습니까. 제목도 '여행은 힘이 세다' 고요. 험험.






11월7일부터 10일까지 4일 동안 열리는 행사인데요, 일반인 참관은 8일부터 사흘간이에요. 당일에 가면 입장료가 65파운드, 우리 돈으로 10만원이 넘는데, 미리 인터넷으로 신청하면 무료로 입장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여행과 관련 있는 회사에 일하고 있어야 한다는 애로가.... 저도 그래서 은근슬쩍 경향신문으로 신청했습니다. 신문사로 신청했더니 자동으로 '프레스'로 등록이 되더군요. 현장에 가 보니 기자실도 있고, 바람결에 전해지는 소문으로는 거기 먹을 것도 있다고 했지만 양심상.... ㅠㅜ



박람회이긴 하지만 관련 세미나나 강연도 굉장히 많아요. 박람회장 귀퉁이에 세미나실에 10여개 있는데, 종일 빠듯하게 많은 세미나가 열리더라고요. 저희 학교에서도 관광 공부하는 학생들은 견학도 할 겸, 일자리도 알아볼 겸, 세미나도 들을 겸 해서 단체로 가더라고요. 




저도 <책임여행의 성장>이라는 세미나를 들었습니다. 깜짝 놀랐어요, 이 세미나가 엄청 인기가 있어서 한 200명 들어가는 강의실이 다 차고, 사람들이 복도에 서서 듣더라고요.
사진의 어르신이 유명하신 해롤드 굿윈 교수님입니다. 리즈 메트로폴리탄 대학 책임여행 과정 교수님인데, 이 분이 세미나 사회를 보시더라고요. 



책임여행은 한마디로, 관광객이 관광지의 문화, 경제, 환경에 대해 책임 의식을 갖고 여행에 임하는... 여행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종의 여행 버전 윤리적 소비죠. 책임여행에 대해서는 2007년에 쓴 기사가 있습니다. 클릭!





이 책임여행 시장은 지난 5년간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고 하더라고요. 사람들의 윤리 의식이 높아진 것도 있고, 업계의 새 트렌드이기도 하고 겸사 겸사입니다. 영국에서 가장 큰 여행사가 토마스 쿡인데, 토마스 쿡에는 책임여행/지속가능한 여행을 담당하는 부서가 따로 있답니다. 패키지 여행 상품을 팔더라도 동물을 학대하는 여행지나, 아동 노동이 이뤄지는 여행지는 안 가는 거죠. 현지에서는 여행이 현지인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현지 사람으로 가이드를 고용하고,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소를 이용하고, 식당을 이용하고... 대체로 그렇게 하자는 취지입니다. 그래서 '여행자'와 '여행지'의 관계가 일방적 소비가 아닌, 서로가 윈윈하는 방향으로 만들어보자는 지향을 갖고 있습니다. 음 문득 우리나라 최대 여행사 ㅎ사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지는....


그러나 현실은 그다지 녹록진 않죠. 책임여행인 척 하는 가짜 여행들도 많고요. 이날도 캄보디아 여행 관련 엔지오에서 일하는 분이 발표하시는데, 요즘은 '고아원 관광 orphanage tourism'이 엄청 인기랍니다. 지난 번에 포스팅한 '노숙자 투어(클릭!)'와 비슷한 도시 빈민관광 Urban poverty tourism의 한 형태인데요, 고아원에 가서 아몬드같이 눈망울이 또랑또랑한 제 3세계 어린이들과 놀아주고, 경제적 도움도 주는 일종의 '자원봉사관광'이죠. 그런데 지난 5년간 캄보디아 고아원 관광객의 수가 3배 늘었고, 같은 기간 캄보디아 고아의 수도 2배 늘었답니다. 고아원 관광객이 많으니 부모들이 애들을 고아원으로 보낸데요. 캄보디아 고아원 고아의 72%가 부모가 있답니다. 이걸 어떻게 봐야 할지...ㅠㅜ





하여간 부스들도 예쁘더라고요. 이렇게 상담 코너들이 있는데, 여행사와 호텔, 관광청 뭐 이런 분들이 상담을 하는 '업자' 코너입니다. 



예쁘게 잘 만들지 않았나요? 상담도 하고 차도 한잔 마시고 등등.



이벤트도 계속 열리는데요, 이 분은 에콰도르에서 오신 미의 여신. 손에 들고 있던 장미꽃을 주시면서, 5분 뒤에 에콰도르 민속 공연도 하고 먹을 것도 주니까 오라고...
 



여기는 기억이 나지 않는 아프리카 어느 나라의 부스입니다. 외국의 관광 지도는 또 우리나라 지도와 굉장히 다른 것 같아요. 우리는 관광 박람회를 하면 중국 코너가 꽤 큰데, 여기는 중국이나 일본 부스가 조그많고, 아프리카와 중남미가 대세더군요. 




힐X 호텔 부스입니다. 정말 호텔 로비처럼 만들어 놓지 않았나요?



여긴 입지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던 오만 부스. 



이탈리아는 역시 관광 대국인지, 엄청나게 크게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요즘 상황을 보면야, 언제 폭삭 망할지 모를 것 같아서 기념으로 한 장 찍어 두었습니다.



한국 부스입니다. 수줍어서 살짝 지나가면서 찍었어요. 수지침 비슷하게 마사지 해 주는 코너를 운영하는데, 인기가 많았나 보더라고요. 이미 오늘은 다 찼으니 내일 와서 예약하고 받으라는...


 
이건 영국 여행 부스였는데, 해리포터 촬영지 관광? 뭐 그런 컨셉인 것 같습니다.

네네, 여러분은 혹시 우리나라에서 관광 박람회 할 때 가 보시나요? 저는 가끔 갔는데, 뭐 일 때문에 간 건 아니었고 관광 박람회 가면 여행정보도 많고, 비누며 열쇠고리며 부채 같은 소소한 기념품도 많이 준답니다. 대체로 입장료는 없어요. 홈페이지에 가서 입장권 프린트 해 가면 되거든요. 그런 심정으로 간 런던 박람회도 의외로 쏠쏠했습니다. 히히. 러시아 무르만스크랑, 야크추크 여행 책자를 얻어 왔거든요. 언젠가는 북극의 아틱 서클을 따라 야크추크를 지나 무르만스크로 가 볼 겁니다. 네네. 


Posted by orc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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