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끝났고 해서 원고 폴더를 정리하다 보니까, 책에 쓰려고 모아 뒀다가 못 쓴 사진들이 좀 있네요. 아니 사실은 많다는 ㅠㅜ. 북극 여행 팁을 쓰면서 혹시 사진이 필요할까 싶어서 정리를 해 뒀는데, 결국 그 팁 섹션은 사진 없이 가는 걸로 정리되면서 못 쓴 사진들입니다. 제 노트북 구석에 처박혀 영원히 울고 있는 것보다는, 방출하는 게 낫다는 자세로-. 




아이슬란드 F도로에서 볼 수 있는 표지판입니다. F도로는 4륜 구동 차량만 공식적으로 갈 수 있는 비포장 도로인데, 말이 비포장 도로지 길과 길 아닌 것의 경계가 모호한 곳들도 좀 있죠. 그리고, 굳이 길 아닌 곳을 찾아가는 모험심 강한 여행자들도 적지 않으셔서, 이렇게 '이러시면 안 됩니다' 표지판이 있습니다. 빙하 위나, 빙퇴석 자갈길 같은 곳들을 오프로드 차량이 너무 많이 휩쓸고 다니면, 연약한 툰드라의 생태계가 망가진다는...취지인 것 같습니다. 맨 오른쪽 사진은, 이만큼이나 땅이 패어 버렸어요! 이런 뜻인 것 같아요. 





아이슬란드 기상청 홈페이지 캡처. 너무하지 않습니까. 전국이 비. 하긴, 런던도 주간 예보를 보면 '앞으로 5일 내내 비' 뭐 이런 날들이 없지 않군요. 




아이슬란드 베루네스 호스텔에서 먹은 아침 식사. 봉지 안에 쌀이 들어 있어서 물 붓고 끓이면 되는 쌀밥, 3분 카레 데운 것, 그리고 검은 빵이랑... 에 저 거무튀튀한 것은 놀랍게도 즉석 미역국인 것 같습니다. 저랑 함께 다니는 북극곰은 (토끼도 아니면서) 정체성 모호하게도 당근을 좋아한다는... 통조림 당근도 있네요. 




알래스카 코르도바의 수퍼마켓에서 발견한 한국 김치 만들기 키트! 오른쪽 아래에 자세히 보시면 '메이드 인 하와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하와이와 알래스카가 보통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니까요. 




이건 아이슬란드 유스호스텔 멤버십 카드군요. 비크 호스텔에서 만들었습니다. 비크 호스텔 방 열쇠가 예뻐서 찍은 것 같아요. 열쇠 고리 자세히 보면 나무와 집이 있는 호스텔 아이콘이 있습니다. 




여긴 아이슬란드 흐볼 호스텔. 여기 마음에 들어서 가는 길에 한 번, 오는 길에 한 번, 두 번 묵었습니다. 침대 외에 없는 초간단 시설처럼 보이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거에요. 일단 히터도 있잖아요. 따뜻하고, 숙소도 깔끔하고, 귀신 나올 것 같지도 않고, 뭐 창 밖 풍경도 예쁘고 기타 등등... 




알래스카 원주민 센터에서 파는 인형입니다. <주간경향>에도 책에도 안 썼는데, 앵커리지 근교에 훌륭한 원주민 문화센터가 있어요. 몹시 좋은 곳입니다. 야외에 알래스카 5개 원주민 유형 별로 주택을 만들어서 전시해 놓고, 안에서는 공연도 보여주고 그래요. 상업 시설이 아니라 원주민 연합 조직에서 운영하는 곳이어서 문화적 자긍심도 높고요. 여기 가고 싶어서, 앵커리지에서 차 빌리자 마자 달려갔었거든요. ....그런데 왜 안 썼을까요? 그냥 앵커리지 편 쓸 때 홀랑 까먹었던 것...같습니다. (쿨럭)




같은 문화센터의 기념품 가게입니다. 원주민 수공예품 파는데 이런 스티커가 붙어 있었어요. 멋집니다.. 




여긴 어디냐...알래스카 페어뱅크스의 월마트이거나, 캐나다 매니토바주의 브랜든 월마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곰 접근 방지용 벨.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팔고 있었습니다. 곰 퇴치 스프레이도 있고, 사냥한 동물을 담아올 수 있는 큰 주머니도 팝니다. 앞에 사슴 비슷한 엘크가 그려져 있었어요. 대형 마트에서 파는 지역 물건은 재미있는 듯. 앵커리지 월마트에서는 랩에 말아놓고 파는 장작도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건 2004년 아이슬란드네요. 자작 네비게이션. 이 때 빌린 차가 토요타 야리스인데요, 이 차 정말 좋았습니다. 차도 조그맣고 기름도 적게 먹고 시속 140까지 씽씽 나갔어요. 맘에 들어서, 이 차 한국에 수입되면 내가 앞장서 산다고 생각도 했지요. 아이슬란드 링로드만 두 분이서 여행하실 거면 이 차면 될 것 같긴 해요. 


인랜드를 조금 들어갈 생각이 있으신 분들은 토요타 짐니Jimny 정도면 좋을 것 같고요. 짐니는 4륜이긴 한데 작고 가벼워서, 기름도 적게 먹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었습니다. 짐니도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이 차 한국에 수입되면 내가 산다, 고 했지요. 흑 사실은 수입 안 되고 운전석이 반대여도 갖고 싶어요. 차도 너무 예쁘다는... 음 혹시 누가 이 포스팅을 보시고 일본 수입차만 좋아하는 정신없는 된장녀로 몰아가실... 분들은 안 계시겠죠. 정작 저희 집은 몇년 전 자동차가 북극곰을 살리고 장렬히 한 줌의 고철로 산화한 뒤로 언제나 721번 버스를 제 차로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네, 피스 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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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옵니다! 


<주간경향>에 연재하고, 이 블로그에도 'Terra Incognita'라는 이름으로 올렸던 북극권 여행기가 책이 되어 나옵니다. <북극여행자>라는 제목으로, 작가정신 출판사에서 만들었어요. 이번 주말에 서점에 깔린다...는데, 정작 저자인 저는 다음주는 되어야 간신히 받아볼 수 있겠군요. 올림픽 때문에 부산한 가운데, 런던 화물 하늘길에 정체가 없어야 할 텐데요. 더불어 착한 로열 메일 아저씨가, '너 집에 없어서 너네 동네에서 무지무지 먼 화물 창고에 맡겨 놨으니 찾아가라'고 카드 한 장 달랑 남기고 가는 일도 없어야 할텐데요...ㅠㅜ 


연재물에 바탕을 둔 어떤 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이 책도 <주간경향> 연재물보다 분량도 대폭 늘어났고, 사진도 좀 더 넣었고, 끝머리에 여행팁도 달고, 아, 북극곰이 쓴 에필로그도 넣었습니다. 원래는 사이사이에 '아젠다' 라고 해서 생태관광 이슈들을 좀 추가를 해서, 반은 여행기 반은 생태관광책으로 만들려고 했는데요, 그렇게 해서는 서점에서 꽂아놓을 위치가 애매하다고 해서 결국 '여행기'로 정리했습니다. 쓰긴 했으나 넣지 못한 북극곰의 고독,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 고래며 원주민 관광 같은 것은, 언제 다른 책에 쓸 기회가 있겠지요. 


표지 사진은 캐나다 중부의 프레리 지입니다. 이게, 처칠에 북극곰 보러 가던 때 찍은 건데, 캐나다 중부에 일단 위니펙이 있고, 그 위니펙에서 한 시간쯤 가면 브랜든이라는 조그만 도시가 있고, 그 브랜든에서 하루를 달려 클리어 워터 레이크라는, 이름도 예쁜 호숫가에서 하루를 잤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 처칠로 가는 기차를 타려고 톰슨으로 달려가는 길에 찍었습니다. 그 캐나다 중부를 가로지르는 도로 중에 '나무와 호수의 도로'인가, 하는 이름의 길이 있어요. 언젠가 그 길을 다시 달려보자고, 이 길을 달리면서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톰슨에 조금 못 미쳐서, 조그만 휴게소에서 팬케이크랑 커피를 먹었던 기억도 나고요. 어쨌든, 캐나다 중부 프레리 지대의, 어느 가을날 아침 풍경, 넵넵. 저도 이 사진은 참 좋아하는데, 신문에 그 때 '처칠' 기사를 쓰면서도 못 썼어요. 아무래도 신문 기사용 사진은 아니잖습니까?


아래 사진은 작가 프로필로 쓰려고 보냈던 사진. 그러나 프로필에 사진을 안 쓰기로 해서, 결국 안 쓰게 됐습니다. 역시 캐나다 처칠이네요. 노던 스터디 센터 놀러 갔다가, 찍..은 건 아니고 찍혔네요. 저 꽁지머리 너무 마음에 들어요. 뭔가 자유로운 영혼처럼 보이는ㅎ




2001년부터 십 년간 경향신문에서 일했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가장 좋아하고 반경 삼 미터 이내의 식물은 모두 말라 죽게 만드는 능력을 지녔으나, 기자 생활의 절반을 여행과 환경 분야를 담당하며 보낼 운명이었다. 대학에서는 국문학과 사학을 전공했고, 영국 런던대학 킹스칼리지런던 지리학과에서 관광·환경·개발 과정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1년 가을부터 같은 대학에서 한국생태관광을 주제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서산 천수만에서 수천, 수만 마리의 철새가 제 이름을 부르며 날아가는장면을 목격하고는 큰 감동을 받아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생태관광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 후 동물원의 북극곰부터 순천만 흑두루미, 백령도 물범, 울산 장생포 고래, 알래스카 북극고래, 캐나다 북극곰, 아이슬란드 고래 등을 찾아다니며 여행하고 또 취재해왔다. 어디에도 없는 그곳 노웨어』 『수첩 속의 풍경』 『대한민국 대표 숲 33등을 공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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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인숙 2012.07.17 09: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새 북극, 남극에 왜 이리 가보고 싶은지. 사봐야겠어요.^^

  2. 윤신영 2012.07.17 1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누나 오랜만이에요. 건강하세요? >.<! 책 출간 축하 드려요. 표지부터 멋지다! ^_^ 누나보다 먼저 사서 볼게요. 영국은 이제 곧 시끄러워질 듯 하죠? 잠잠히 지나가길 바라며~

  3. 2012.07.17 15: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Ray 2012.07.17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꺅 드디어 책으로!!!
    친구들한테 블로그 추천 안해주고
    책추천을 할수 있겠군요!
    주말에 사러갑니다^^

  5. Ray 2012.07.17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무실에서 검색해보니 책이 주문이 가능해서 바로 주문했어요.
    수령 예상일은 24일이네요. 기대되요 ㅎㅎ
    올림픽기간 즐겁게 보내세요. ^^


  6. <Miguel> 2012.07.20 08: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지난주부터 아이슬란드와 아프리카를 주제로 사진전을 열고있는 이준현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사진전 서브이벤트로 아이슬란드 여행 다녀온 사람들끼리 모여 아이슬란드 핫도그 Pylsur도 만들어 먹고 각자 여행다녀온 이야기도 나누고 하는 자리를 가져보면 어떨지 싶어서 연락드리게 되었어요.
    너무 급작스레 연락드려 오실 수 있으실지 모르겠네요. 시간되시면 오늘 7.20(금) 7-8시 사이에 행사를 시작하려니 시간되시면 참석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장소는 아래 링크를 참조해주시고 오실 수 있으시면 junmiguel.lee@gmail.com 으로 연락 한 번 주세요.
    혹시 오늘 못오시더라도 8월15일까지 사진전을 하고있으니 홍대인근에 오실 일 있으시면 잠시 들러주세요 =)
    https://www.facebook.com/events/200729856722057/

  7. Ray 2012.07.20 1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책 받았어요 ㅎㅎ 예상수령일이 24일이여서 그러려니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왔네요 ㅎ
    주말에 쭉 읽어야겠어요 ㅎ
    입소문 낼게요! ㅎ

  8. Hoyun Son 2012.07.23 0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명애 작가 :) 축하! 영자본은 언젠나오나요?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길래... :) 알라딘 유에스에이에서 주문하였삼. 기대기대!

  9. 목정민 2012.07.29 1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배 한국 오심 책에 싸인해주세요 ^_^
    책들고 바로 달려나갈께요~!!!

  10. 가릉빈가 2012.08.17 1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북극 나라에 대한 단순한 동경보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불러 일으키게 만들었어요. ^^

  11. oneworld 2012.08.27 0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 우연히 블로그에 오게 되었는데, 어떤 나쁜사람이 남기자님 여행기 사진을 카피해서 올렸나 했더니 유심히 생각을 해보니, 북극곰이 그분이셨군요!! ㅎㅎ 혼자 씩씩대다가 다시 진정하게 되었습니다 :) 새로나온 책도 조만간 한국나가게되면 구입해야겠네요! 화이팅입니다~ 극지방 곰 관심이 많은데 이렇게 오게되어서 반가웠습니다!

  12. soongeeee 2012.08.28 2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작가님 :)
    이번 9월에 캐나다에 가는 학생입니다. 작가님의 '북극여행자'를 읽고 처칠 북극곰버기투어를 여행코스에 넣었습니다 :). 좋은 글 읽고 좋은 곳에 가게 되어 매우 기뻐요!
    이런저런 북극곰 관련 글 검색해보다 이렇게 작가님 블로그에까지 왔네요.
    괜히 설레고 부끄럽고 그렇습니다. 팬심 비슷한 마음인것 같네요 아하하.../ㅅ/
    수줍게 댓글 하나 남기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13. soondor2 2012.11.20 0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막 책을 다 읽었습니다.
    이 책 읽기 시작할 즈음, 여자친구한테 북극으로 신혼여행가자고 꼬셨는데 퇴짜맞았어요.
    책 다 읽어도 여전히 북극으로 신혼여행가고 싶어요.
    책 빌려주고 다시 한번 꼬셔볼려구요.이번엔 넘어오려나요...

    후세이에서 찍은 오로라 사진이 너무 맘에 들었습니다.
    ^^
    또 책 써주세요~

  14. Don 2013.05.03 17: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놀라운 일이 여기에 기록됩니다!

  15. louis vuitton outlet 2013.07.11 1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은 반짝반짝 빛이 나겠지,,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빛은 사라저버릴거야,지금 우리처럼




알래스카 인사이드 패시지를 다니는 여객선 타쿠호 선실의 2층 침대가 편한 것은 아니었다. ‘최소 공간에 최대 적재를 목표로 만들어진 세상의 모든 배 시설물답게, 누우면 정수리와 발바닥이 양쪽 벽에 짝 하고 달라붙었다. 나보다 한 뼘 쯤 긴 북극곰은 발목을 잘라내거나 무릎을 세워야 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자세로 잤다. 계속 잤다. 잘 수밖에 없었다. 원인을 찾으려면 72시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플로리다를 강타한 태풍 메이의 영향이 캐나다는 건너뛰고 알래스카에 미쳤기 때문이었다


미국 시애틀 다코마 공항을 정시에 출발한 우리의 알래스카 항공 69편은 케치칸 상륙을 20분 남겨놓고 시치미라도 잡아떼듯 운항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케치칸 대신 싯카로 갑니다며 방향을 틀었다.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내리는 싯카 공항에 망연히 서 있던 비행기는 다시 케치칸으로 향했으나 시간당 100밀리의 폭우에 넋을 잃은 케치칸 공항은 상륙 따윈 허가하지 않았다. 우리의 비행기는 공중에서 맴만 돌다 결국 알래스카의 주도, 주노로 향했다. 항공사에서 끊어 주는 호텔에서 2시간 20분을 자고, 새벽 비행기로 케치칸으로 날아와 2시간을 자다 나가 놀았다. 그날 밤 다시 3시간을 자고 새벽 배를 타서, 배 탐험에 정신을 팔다 다시 4시간을 자고, 일어나 점심을 먹고 다시 2시간을 잤다


(주노 공항에서 케친칸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자고 있는 북극곰)

3시간씩 몰아 잠자기를 몇 번 했더니, 그렇잖아도 시차 때문에 없는 정신이 시간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오늘이 어제인지, 어제가 내일인지 모를 지경이 됐다. 일 년의 3개월은 낮만, 3개월은 밤만 계속돼 시간 개념이 우리의 그것과 다르다는 에스키모의 사정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이 비몽사몽의 와중에서도 기항지에 도착했다는 뱃고둥은 어김없이 울렸다. 우리는 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두르고 몽유병 환자처럼 비틀거리며 갑판으로 나갔다. 케치칸에서 싯카까지 23시간의 항해 동안 타쿠호는 세 번 기항지에 들른다. 차례로 랭겔 Wrangell, 피터스버그 Petersburg, 케이크 Kake 라는 조그만 마을이었다


(피터스버그에서 비를 뚫고 인증샷을 찍고 있는 북극곰. 주요 시설물은 모두 화살표 왼쪽으로...)

다행히 랭겔과 피터스버그에는 터미널 주변으로 집도, 사람도 있었다. 다시 말해, 케이크에는 터미널 주변에 아무 것도 없었다는 이야기다. 원두막 같은 대합실과 케이크 원주민 투어 Kake Native Tours'라는 스티커가 붙은 버려진 버스 한 대가 전부였다. 틀링깃 인디언 중에서도 케이크 부족인 이 마을 사람들도 관광 산업에 뛰어들 긴 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서너 걸음을 더 걸어가 못 쓰는 주유소로 보이는 케이크 원주민 정유 Kake Tribal Fuel’ 앞에서 사진을 찍고 돌아왔다. 그래도 모든 것이 스타벅스’ ‘월마트아니면 인 미국에서 원주민 여행사나 주유소는 의미 있는 시도가 아니냐며, 대규모 독점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케이크의 현재와 그리고 미래를 기원했다.


한편 랭겔에서는 열심히 걸어 두 블록이나 떨어진 도서관까지 다녀왔다. 집집마다 마당에 색색깔 꽃과 풀을 가꾸는 예쁜 마을이었다. 부두로 돌아오니 아홉 살 쯤 돼 보이는 소녀가 조약돌같은 조그만 돌을 펼쳐놓고 팔고 있었다. 돌에는 자줏빛 구슬 같은 게 박혀 있었는데,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랭겔의 석류석이라고 했다. 아프리카 킴벌리의 다이아몬드는 들어봤어도 랭겔의 석류석은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어쨌거나 어른들은 캘 수가 없고, 아이들만 캐어서 조금씩 팔 수 있게 돼 있다고 했다. 구슬이 반쯤 묻혀 있는 돌을 하나 샀다. ‘돌 사세요말 한마디 못하던 아이가 수줍어하며 몸을 배배 꼬았다


(배는 랭겔을 향해 접근하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관련사진임.)


피터스버그는 이름이 같은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 페테르부르크와는 무관한 곳이었다. 피터라는 사람이 발견을 했는지, 건설했는지 해서 피터스버그라고 이름이 붙었는데, 지명은 러시아식, 공식적으로는 미국령, 실제로는 노르웨이인들이 모여 사는, 정체성이 혼란스러운 마을이었다. 크기로는 케치칸만 못 하지만 목재업이 발달해 형편은 훨씬 낫다고 했다. 그래서 케치칸처럼 관광 산업에 올 인할 필요가 없단다. 지역 안내 브로셔에 나올 법한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이유는, 피터스버그에 도착하자마자 장대비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터미널 의자에 앉아 브로셔를 꼼꼼하게 읽었다.


피터스버그의 역사와 문화와 전통에 대해 다 알게 됐는데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 다리를 박자 맞춰 흔들며 앉아 있는 우리만큼이나 승무원들도 심심해 보였다. 요리사처럼 흰 옷을 입은 바 승무원은 자동차가 주차돼 있는 카 데크에서 농구를 하고 있었다. 어젯밤 형광 막대를 흔들며 우리의 신분증을 검사하던 승무원은 어디서 구해 왔는지 종이컵에 흙을 담고 풀 한포기를 심고 있었다. 키울 모양인가보다. 그러고 보니 오늘 새벽 빈 식당의 승무원은 몇 번을 망설이다 다가와 볼이 빨개진 채로 니혼진 데스까라고 물어봤었다. 나는 정말이지 다정하게 대해 주고 싶었지만, 일본어로 아닙니다이에인지 아리마스인지 자꾸만 헷갈려 결국은 노 재패니즈라고 손을 흔들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배를 타고, 모든 기항지에 30분씩, 1시간씩 들르는 저들에게 시간은 아다지오의 속도로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어두움이 깔리는 먼 바다로 나가는 우리의 타쿠호. 수평선 위로 구름인가 꿈인가 머나먼 곳입니다)

그날 밤엔 전망 라운지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양 옆 외에 정면에도 창문이 나 있는 조그만 라운지였다. 오늘의 기항지를 모두 들른 배는 푸르스름하게 어두움이 깔리는 바다로 천천히 몸을 밀고 나아갔다. 쌍안경으로 내다본 바다의 끝에는 산들이 있었고, 산들의 머리엔 어김없이 만년설이 덮여 있었다. 저것이 구름인가, 빙산인가, 혹은 흘러내린 빙하인가.


이어폰에서는 아이슬란드 밴드 시규어 로스
잇츠 유 It's You’가 무한 반복 중이었다. 낮도 밤도 아닌 시간대에서, 눈 앞에선 빙하와 구름이, 귓전에선 바람 소리 같은 음악이 영원히 반복되고 있었다. 머리를 기대는데, 북극곰이 어깨를 툭툭 치더니 창 밖을 가리켰다. 저 멀리, 까마득한 끝에, 세 개의 점이 보였다. 바다사자나 바다새가 아니다. 저 정도면 고래다. 창에 눈을 갖다 댔더니 검은 지느러미가 우뚝해도 보였다. 나는 지금도 그들이 범고래 오르카라고 믿고 있다. 이것이 세계의 끝에서 내가, 고래를 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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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크루즈 여행 을 해 본 적이 있다. 첫 번째는 크루즈로 알고 탔다가 나중에 보니 홍콩 도박선이었으니, 뭐 굳이 크루즈가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별빛이 반짝이는 홍콩의 부둣가를 떠나 공해상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다시 홍콩으로 돌아오는 배였다. 밥도 주고, 쇼도 있지만 하이라이트는 카지노다. 홍콩에선 카지노가 불법이지만, 공해상에선 가능하기 때문에 크루즈로 운영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크루즈 기분을 낸답시고 새벽부터 갑판의 조깅 트렉을 따라 뛰었던 기억이 난다.

두 번째는 하와이 크루즈였다
. 제대로 크루즈였다. 15층짜리 8만톤 급 배였는데, 수영장도 있고 자쿠지도 있었으며, 하루 정도는 등이 푹 패인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파티에 참석도 해야 하는 초호화 여객선이었다. 언젠가 로또에 당첨되면 식구들을 모두 데리고 지중해나 하와이의 크루즈를 타러 가겠다고 그 때 몇 번이고 결심했다. 그러니 우리의 세 번째 알래스카 여행이 알래스카 크루즈인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문제는 우리가 아직까지 로또에 당첨되지 않아
, 초대형 여객선사들이 운영하는 ‘1011일 알래스카 인사이드 패시지 크루즈 상품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인사이드 패시지 Inside passage알래스카 서부, 남쪽으로는 캐나다 밴쿠버부터 북쪽으로는 알래스카 하이웨이의 시작 지점인 스캐그웨이까지 가는 연안 여행이다. 러시아풍의 마을과,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리는 빙하와, 빙산과, 그리고 물범과 고래를 보는 여행으로, 당연히 죽기 전에 해 봐야 할 여행리스트에 꼭 나온다. 다행히 크루즈 선박 뿐 아니라 알래스카 연안 여객 시스템인 알래스카 마린 하이웨이도 같은 코스를 다니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여름 성수기엔 일주일에 한 번, 밴쿠버에서 주노까지 승객들을 실어 나른다. 크루즈선은 3000여명 정원이지만, 이 배는 360명 정원이었다. 뱃값도 수십분의 일이다. 우리가 탄 케치칸에서 싯카까지 23시간 구간 요금이 겨우 8만원이었다


(위풍도 당당하신 우리의 알래스카 마린 하이웨이 페리)

8월의 마지막 토요일. 알래스카 마린 하이웨이의 주요 정거장인 케치칸 터미널에는 북극곰과 나, 그리고 제 키만한 배낭을 짊어진 여행객 4명이 초조하게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착한 마을 사람들은 이미 잠에 곯아떨어진 새벽 4였다. 나는 북극곰에게 크루즈 여행이 얼마나 낭만적인지에 대해 설명했다. 배에 오르면 선장이 악수를 청하고, 스태프들이 꽃목걸이를 걸어주며 사진을 찍어준다고 했다. 북극곰은 멀리서 다가오는 배의 불빛을 쳐다보다 말고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나는 보풀이 잔뜩 인 털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칭칭 두르고 있었다. 닳아빠진 카메라 가방에서는 실이 터져 나왔고, 자꾸만 구멍으로 볼펜이 빠져나와 손수건을 쑤셔 넣어 막아 놓았다. 밀수선에 몰래 타는 보따리 장사 꼴이 따로 없었다. 그렇다고 북극곰도, 나머지 4명도 남 걱정할 처지는 아니었다. 스태프가 부둣가로 천천히 걸어 나오더니 타라는 손짓을 했다. 꽃목걸이 대신 형광 막대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갑판에는 전망 엘리베이터 대신 화물 겸용엘리베이터가 기다리고 있었다

알래스카 인사이드 패시지 크루즈는 오랫동안 부자들의 교과서적여행지였다. 1960년대 도입된 알래스카 마린 하이웨이 노선은 섬과 섬을 잇겠다는 실용적인 목표에서 출발했겠지만,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객들을 위한 B급 크루즈로도 기능했던 것 같다. 전망대 갑판의 벽에는 빛에 바래 노랗게 변해 버린 옛날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알래스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세요! 토템폴도 보시고 빙하도 구경하시고요!’ 사진 속 토템폴은 정말 황야에 버려진 듯 꽂혀 있었는데, 어림잡아도 20년은 된 사진처럼 보였다

(알래스카 B급 크루즈의 선베드에서 노란 셀로판지로 만든 빛 아래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접니다)

연어 통조림 공장이 유일한 산업이던 해안가 마을들은 크루즈 기항지가 되면서 관광 산업으로 업종을 바꿨다. 우리가 배를 탄 케치칸은 사실상 크루즈 식민도시였다. 초호화 크루즈가 정박해 있던 한낮엔 초록색 투어 버스가 마을을 헤집고 다녔다. 판초를 뒤집어 쓴 관광객들은 시청 앞 토템폴에서 줄을 서서 사진을 찍었다. 실제로는 비가 슬금슬금, 복덕감 영감님 중얼거리시는 것처럼 오는데도, 마을은 햇살이 비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반짝반짝 윤이 났다. 그러나 우리가 색스맨 네이티브 빌리지 Saxman Native Village’에 다녀온 오후 4, 크루즈선이 떠난 마을은 고스트 타운으로 변해 있었다. 상점과 식당들은 죄다 문을 닫았고, 케치칸 제 1의 관광 명소 토템 헤리티지 센터는 버젓이 오후 5시가 폐장 시간이라고 적혀 있는데도 벌써부터 문을 걸어 잠그고 진공 청소기를 돌리고 있었다.

(낚시로 밝혀졌던 색스맨 네이티브 빌리지의 토템폴-이거 대부분 관광객용으로 최근에 만든 겁니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토템 센터 앞의 개울가에 앉아, 폐장시간도 크루즈선도 모르는 연어 들을 구경했다. 일곱 색깔의 물고기가 헤엄치는 먼 바다에서, 상어 떼의 공격을 피해 산호 사이에 숨고, 구름의 속도로 느릿느릿 움직이는 고래의 그늘에서 숨을 돌렸다가, 그리하여 3년 만에 돌아온 고향이었다. 연어들은 야트막한 개울가에 모여 숨을 죽이고 검은 반점이 찍힌 지느러미를 조용히 흔들었다. 이따금 한 두 마리고 각오하고 물살보다 빠른 속도로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전 생애를 걸고 뛰어올랐다 물살에 휘말려 떠밀려가는 연어들을 보면서, 이들이 헤쳐 왔을 험난한 귀로를 떠올렸다. 열심히 살아야겠다

케치칸에는
5종의 연어가 돌아온다. 그 중에서도 지금은 핑크 연어의 계절이었다. 핑크색이어서가 아니라, 소도 아니면서 핑크색만 보면 달려든다고 해서 핑크 연어다. 그래서 잡기도 쉽다. 먼 바다에서 죽을 힘을 다 해 돌아온 연어들이 고향 개울가에 진을 친 관광객들의 낚싯대에, 그것도 핑크색 하나에 혹해 잡힌다는 사실은 허망하기 짝이 없지만, 어쨌거나 연어는 케치칸을 먹여 살리고 있다. 케치칸 1번가에는 전 세계 연어의 수도 the Salmon Capital of the World’라는 위풍당당한 아치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원래는 통조림 연어 Canned Salmon’ 였지만, 통조림 회사들이 타 지역으로 다 빠져나가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통조림을 뺐단다.

지금은 연어 통조림 대신 연어 관광객들이 케치칸을 찾는다
. ‘남동 알래스카 디스커버리 센터 Southeast Alaska Discovery Center’에는 개울 속의 연어를 볼 수 있도록 수중 카메라와 필드스코프 망원경이 설치돼 있었다. 필드스코프의 망원렌즈에 눈을 갖다 대니, 연어 대신 뉴욕 호텔 객실이 들어왔다. 동물보다 인간에 관심이 많은 어느 관광객께서 고정시켜 놓고 떠나신 모양이다.

(이런 걸 찍고 있는 저도 그 관광객과 같은 부류인 것 같습니다-_-)

우리는 10시간을 더 밤 비 내리는 케치칸을 방황한 끝에 배에 올랐다. 타이타닉호의 화려한 중앙 계단만큼은 아니지만, 적어도 손잡이를 잡으시오라고 적혀 있는 친절한 중앙 계단을 올라가니 객실이었다. 2층 침대와 옷걸이, 작은 화장실이 달려 있다. 작거나 허름하지만 있을 건 다 있었다. 하루 5끼가 나오는 프랑스 요리 식당은 아니지만, 하루 3끼는 꼬박꼬박 파는 카페테리아에선 모자를 쓴 승무원이 내일의 아침 메뉴를 적고 있었다. 바도 있었고, 스낵 자판기도 있었다. 선실 한 귀퉁이를 잘라 만든 어린이 놀이방의 미끄럼틀은 텅 비어 있고, 반대편 모퉁이의 게임기는 저 혼자 굴러가는 새벽 4. 자리마다 콘센트가 달려 있고 탁자 위엔 직소 퍼즐이 쌓여 있는 도서관(writing room)은 인상적이었고, 노란 셀로판지를 붙여 마치 태양광이 들어오는 것처럼 만든 솔라리움은 크루즈의 열대 온실(sanctuary)에 비견될 만했다. 늙었거나 젊었거나 마음만은 청년인 씩씩한 독립 여행자들의 알래스카 B급 크루즈선. 배의 이름은 타쿠였다. 요컨대, 이 배가 마음에 들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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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홍성균 2011.07.24 16: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간경향에 연재하신 북위 66.5도 그동안 잘 읽었습니다. 글을 참 위트 있게 쓰셔서 기자님 연재물 읽는 재미가 주간경향 읽는 재미의 절반은 됐던 것 같네요 :-)

    • glaukus 2011.07.25 1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고맙습니다. 격려해 주셔서 신나서 어젯 밤에 빵 글 올리다가 2시에 잤다는...ㅠㅜ 졸린 점심시간이에요.



호시노 미치오 란 일본인 사진작가가 있다. 어려서부터 북극을 동경했던 그는 1978년 알래스카로 건너와 평생을 여기서 보냈다. 이 여행기의 시스마레프편에도 잠깐 나온다. 까까머리 소년 시절에 시스마레프에서 여름 한 철을 보내기도 했으니까. 호시노 미치오는 알래스카의 자연과 사람을 렌즈에 담아 미국과 일본의 잡지와 출판물에 실었다. 15권에 이르는 그의 책은 2000년대 중반부터 우리나라에도 차례로 번역됐는데, 그 중 <바람같은 이야기>는 그 해 론칭한 대한항공의 알래스카 취항 광고 제목으로 쓰이기도 했다.


그 책에 칼라 화보로 실려 있던 카리부떼의 사진을 잊을 수 없다
. 여기에는 야생사진이라는 말로는 다 담지 못할 만큼의 삶과 죽음과 사랑이 가득 차 있다라는 그의 철학자스러운 멘트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호시노 미치오의 사진은 유난히 초록색이 쨍하게 잘 나오는 후지 벨비아 필름으로 찍은 것처럼 보이는데, 어떻게 보면 또 촌스러워도 보인다. 그러나 그의 그 투박한 사진과 세련되지 못한 글에서 나는, 말로는 어떻게 설명하지 못할, 진정성을 느꼈다. 지금도 느낀다. 그는 1996년 러시아 캄차카에서 불곰을 촬영하다 습격당해 목숨을 잃었다. 작정하고 연출하려해도 쉽지 않았을 자연 다큐작가스러운 죽음이었다.


(페어뱅크스 북극박물관 앞에서 본 풍경. 저 끝의 흰머리산이 데날리입니다)

나는 알래스카 중부 페어뱅크스 에 와 있었다. 정확히는 알래스카대학 페어뱅크스 분교의 북극 박물관 Museum of the North’ 복도였다. 박물관 복도에는 호시노 미치오의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호시노 미치오는 80년대 초반 이 대학 야생동물학부의 학생이었다. 호시노 미치오가 사망한 뒤 부인 나오코는 그의 사진 150여점을 이 대학에 기증했다. 평생을 극북의 마을들을 떠돌았지만 그의 은 페어뱅크스였다. 해안의 에스키모와 내륙의 인디언들이 교역하던 알래스카의 오랜 옛 마을. 지도에서 알래스카를 잘라 들고 연필 위에 세워 무게중심을 잡으면 그 끝은 페어뱅크스에 얹혀 있을 것이다.


그 페어뱅크스에 여름이면 일본인 관광객들이 전세기까지 대절해 날아온다. 호시노 미치오의 집으로 성지 순례를 오는 것이다. 이 무례하면서도 수줍은 관광객들이 집까지 찾아와 놓고는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어찌나 알짱거렸는지, 그의 부인과 아이가 제발 좀 그만해라고 애원했다고 한다. 우리가 묵은 B&B의 소심한 주인 아저씨는 일본인들에게 호시노 미치오는 신이라고 삐쭉거리면서도 간판 밑에 일본어로 방 있음이라고 붙여 놨다. 북극 박물관도 일본인 패키지 성지 순례코스여서, 아니나 다를까 박물관 숍에는 호시노 미치오의 사진집이 오로라 사진집과 패키지로 묶여 팔리고 있었다. 일본인 관광객을 위한 맞춤 상품 되겠다. 호시노 미치오 못지않게 일본 관광객들이 사랑하는 것이 또 오로라다. 전세계에서 가장 오로라가 잘 보이는 캐나다 옐로나이프의 오로라 관광객의 90%가 일본인이다. 신혼부부가 오로라를 보면 천재를 낳는다는 관광업계 발 전설도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에스키모 어린이들은 다 아인슈타인이 됐어야 하는 것 아닌가


(호시노 미치오의 사진집을 잔뜩 팔고 있는 '북극 박물관 기념품가게. 역시 박물관은 전시물보다 기념품가게가..)

알래스카 대학 페어뱅크스 분교(UAF)가 자랑하는 북극박물관은 명성대로였다. 가히 알래스카의 대영 박물관이라 할 만하다. 여기서 알래스카에도 대학이 있느냐고 묻는 분들께 말씀드리자면, 알래스카 대학 본교가 앵커리지에 있고, 페어뱅크스에 분교가 있다. 특히 UAF는 북극 연구가 특화돼 있다. 나는 언젠가 북극곰을 UAF 기후변화과정에 입학시키고 나는 싸커맘이 되어 두해 쯤 페어뱅크스에서 잘 살아 보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우리는 북극 박물관을 구경하러 가는 바쁜 길에 틈을 내 학교 행정실에 들러 혹시 석달쯤 해 볼 만한 어학연수 코스가 없냐고 물어봤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찼다.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가고, 주말에는 도시락을 싸서 빙하로 하이킹을 떠나고, 금요일 밤엔 알래스칸 라이프스타일 Alaskan Lifestyle’에서 곰 퇴치 스프레이며 방울 같은 것들을 사오는 거다. 행정실 직원은 냉정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아뇨, 어학연수하러 여기까지 몇 명이나 오겠어요?” 


다음날은 렌터카를 몰고 북쪽으로 달려갔다
. 노랗게 물든 자작나무 잎과 참새의 혀처럼 뾰족 내민 침엽수의 새 잎들이 점점이 찍혀, 풍경은 점묘화가의 작품 같았다. 우리는 교외의 UAF 연구소에 잠깐 들러 사향소 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사향소는 둥글게 말린 뿔 두 개가 갈기와 함께 달려 있는 북극 소다. 사향소떼가 씩씩거리며 눈밭을 달려오는 사진을 보면, 매머드와 함께 마지막 빙하기를 보냈어야 할 것 같이 생겼다. UAF 연구소에 연구용 사향소 농장이 있다고 했는데, 정말 사향소 십 여 마리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갈기는 침이라도 발라 빗어놓은 것처럼 단정하게 앞가르마가 타져 있었다. 크지도 않았다. 송아지만 했다. 나는 사향소가 매머드만은 못해도 코끼리만은 할 줄 알았다. 눈발이 붙어있는 갈기를 휘날리며 준엄하게 인류를 꾸짖을 줄만 알았다. 나의 실망한 마음 따위는 아랑곳 않고, 사향소들은 영구같은 얼굴을, 참으로 싹싹하게도, 자꾸만 들이댔다


(싹싹한 사향소들입니다. 뭐 먹을 거 업수?)

한 시간쯤 달리니 알래스카 송유관 이 나왔다. 북극해에서 시추한 석유를 알래스카를 가로질러 남부의 프린스 윌리엄 해협까지 옮기는 거대한 파이프다. ‘관제 설명은 알래스카에 강림하신 과학 기술의 경이를 칭송하고 있었는데, 얼어붙은 영구동토층에 파이프를 세우기 위해 3년간 노력한 끝에 1977년 첫 석유가 프루도 베이에서 송유관 속으로 들어갔다, 석유는 장장 800마일을 달려 한달 뒤에야 발데즈 해안 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소풍을 나온 가족이 송유관 그늘 아래 손바닥만한 잔디밭에 앉아 아이를 무릎에 앉혔다. 송유관 조사팀에서라도 나온 듯 면밀하게 다각도로 사진을 찍던 관광객 아저씨는, 주머니에서 지구 모양의 조그만 공을 꺼내더니 송유관 이음새 틈에 끼우고 사진을 찍었다.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가을날 오후였다.


그러나 알래스카 송유관은 원주민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 송유관이 지나가면서 원주민들은 처음으로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연방정부는 석유가 발견되는 땅에 사는 부족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했다. 북극해에 면한 배로우는 같은 에스키모 마을이라도 부자 마을이다. 한편으로 배당금 제도는 에스키모 우민화 정책이란 비판도 받았다. 일자리는 주지 않고, 돈만 주는 거다. 이런 정부의 돈 폭탄에도 넘어가지 않은 부족이 있었으니, 바로 알래스카 중부의 아크틱 빌리지(Arctic Village)에 사는 그위친족이다. 광활한 알래스카를 유목하며 살아온 그들은 석유 배당금 대신 살 권리를 선택했다. 연방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으며 세금도 내지 않는다. 누구든 아크틱 빌리지를 방문하려는 자는 부족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북극곰은 몇 년 전 아마도 한국 기자로는 최초로 아크틱 빌리지를 다녀왔다. 장작을 패서 불을 떼고, 원주민과 친해 보고자 순록 고기를 집어 먹다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기도 했다


(페어뱅크스 교외를 가로지르고 있는 알래스카 송유관. 나무 키를 보시듯이, 엄청 큽니다)

페어뱅크스 시내의 걸리버 북스토어에는 알래스카섹션이 따로 있었다. 훌륭한 서점이었다. 새 관측 가이드만 책장 하나다. 개썰매를 몰고 캐나다에서 알래스카까지 24번 탐험했다는 크누트 라스문센이며, 알래스카 북부 국립야생동물보호지구에 사는 덫사냥꾼 하이모 코스며, 오지의 마을과 섬들을 연결하는 소규모 독립 항공의 부시 파일럿들의 이야기도 책장 가득이었다. 알래스카와는 관련 없지만, 부시 미국 대통령 사진을 하루하루 붙여 놓은 365일 달력도 있었는데, ‘1년 동안 꾸준히 보시면 다시는 찍지 않으실 겁니다라는 광고 문구가 붙어 있었다. 우리는 10권의 책을 사고, 9장의 지도를 샀다. 주머니를 탈탈 터니 39달러와 동전 한 줌이 남았다. 이번 여행은 여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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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렌디피'티'와 오르카 서점이 어깨를 나란히 한 코르도바 시내의 모습)

북극곰은 우리가 코르도바로 가는 길에 고래를 볼 수도 있다고 했다. 바다사자는 확실히 볼 것이고, 해달 정도는 여기저기서 불쑥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알래스카 위티어에서 코르도바로 가는 페리 안에서, 나는 포경선의 일등 항해사처럼 엄숙한 자세로 고래가 나타나는지 감시했다. 그러나 한 시간이 흐르고, 두 시간이 흐르고, 페리가 돌연 경로를 바꿔 발데즈에 들러 수학여행 온 학생들을 태우고 엉금엉금 코르도바로 가는 동안에도 고래는 나타나지 않았다. 탐조 망원경을 손에 들고 번갈아 불침번을 선 우리가 본 것은 부표 위에서 게으르게 일광욕하는 바다사자 두 마리가 전부였다


생각난 김에 말해두자면
, 바다사자는 물개와 비슷한 해양 포유류다. 물개보다 체격이 작고 영리해 동물원 물개 쇼에서 물개 대신 애쓰고 있다. 해달도 해양 포유류인데, 바다에 사는 수달이라 할 수 있다. 수달보다 얼굴이 동글동글하고 귀엽다. 일본 애니메이션 <보노보노>에 나오는 하늘색 보노보노가 바로 해달이다. 코르도바 페리 터미널에는 아니나 다를까 해달 두 마리가 배영 자세로 둥둥 떠 있었다. 뭘 몰래 훔쳐 먹다 딱 걸린 듯한 얼굴을 하고, 해달들은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생선을 먹었다. 이따금 우로 취침, 좌로 취침, 물 속으로 한바퀴씩 데구르르 구르기도 했다. 엄마 해달의 배 위에 누워 있던 아가 해달도 엄마와 함께 데구르르 굴렀다. 너무 귀여웠다



(아구작 아구작 생선 갉아먹는 소리를 내며 배영하는 해달들)

해달은 코르도바의 상징적 동물이다. 철원 독수리나 강화도 저어새, 천성산의 도룡뇽쯤 된다. 1989년 사상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가 코르도바를 덮쳤다. 지난해 멕시코만 기름 유출 사고가 사상 최악을 경신했으니, 이제는 사상 제 2의 사고쯤 되겠다. 알래스카 북극해의 기름을 미국 본토로 실어나르는 액손사의 유조선이 발데즈 앞바다에서 암초와 부딪쳤다. 마침 해류가 코르도바 방향으로 흘렀고, 피해는 코르도바가 몽땅 뒤집어썼다. 주민 대부분이 어부이거나 생선 통조림 공장 직원인 코르도바 주민들은 버선발, 장화발로 달려 나가 기름을 퍼 냈지만, 다가오는 검은 파도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생선 찌꺼기나 좀 얻어먹을까 싶어 통조림 공장 주변에서 배회하던 해달들은 미처 피하지도 못한 채 기름을 뒤집어썼다. 귀여운 얼굴을 하고 기름에 전 채 죽어간 해달은 액손 발데즈 사건의 상징이 됐다. 바로 그 액손 발데즈 사건의 현장에, 한국의 저널리스트인 우리 두 사람은, 팔자 좋게도 여름 휴가를 온 길이었다.


우리는 코르도바에서 트레킹으로 시간을 보냈다
. 30층 아파트 높이에서 3분에 한 번 씩 우르르 쿵쾅 천둥 소리를 내며 무너지는 차일즈 빙하에 다가가 물수제비를 던지고, 도시락을 싸 들고 새들백 빙하로 피크닉도 갔다. 가지 끝마다 솜사탕 같은 이끼 뭉치를 매달고 있는 온대 우림의 나무들과 악수하며 걸어가다 보면 길 끝에 빙하와 호수가 나온다. 가이드북은 집채라고 했지만 실상은 개 집만한 빙산들이 호수에 떠 있었다. 빙하가 만들어 낸 호수의 가장자리에서 손수건을 깔고 앉아 우리는 샌드위치를 먹고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떼를 지어 여행하는 나무들을 봤다. 알래스카 내륙 평원의 가문비나무들이 유콘 강을 따라 베링해로 흘러 들어갔다, 해류를 타고 남으로 내려와 쿠퍼 강 삼각주에서 마지막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차일즈 빙하로 향하는 길은 그림엽서같이 아름답습니다)

여행하는 나무는 동물학자 윌리엄 프루이트가 쓴 알래스카 자연 에세이 와일드 하모니의 첫 장 제목이기도 하다. 그는 1960년대 포인트 호프 인근에서 진행되던 핵실험 계획, 채리엇 프로젝트의 환경영향평가 담당자였다. 핵실험이 연약한 북극의 생태계를 한번에 날려 버릴 수 있다는 고민 끝에 그는 양심선언을 했고, 원주민들의 대규모 핵실험 반대 시위로 이어져 결국 채리엇 프로젝트는 저지된다. 그러나 프루이트는 미국 본토 대학에서의 자리를 잃고 떠돌다 캐나다 매니토바에서 여생을 보내게 된다. 역시 알래스카에 몸과 영혼을 묻은 일본인 사진작가 호시노 미치오는 그를 기려 여행하는 나무라는 에세이를 썼다. 부지런히 전세계를 걸어 다니고 있는 도보여행가 김남희씨도 여행하는 나무라는 이름의 홈페이지를 갖고 싶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안타깝게도 travelingtree.com여행하는 나무에 매료된 누군가가 이미 사들이고 없다. 어쨌거나 나무들은 패키지로 여행하고 있었다. 외롭지 않아 보여 다행이었다

(이끼가 카펫트처럼 푹신하게 깔린 트레킹 길)

우리는 아침엔 킬러 웨일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저녁엔 피자집 암브로시아에 가서 스파게티를 먹었다. 굶지 않으려면 잽싸게 움직여야 했다. 카페는 오후 3시면 문을 닫고, 그나마 3개 있는 식당도 7시면 의자를 치운다. 킬러 웨일 카페 맞은편은 오르카 서점이었다. 킬러 웨일=오르카=범고래로, 범고래가 이 지역에서 꽤 인기있는 간판 이름임을 알 수 있다. 진짜 범고래는 마을 컬쳐 센터에 있다. 2000년 범고래 한 마리가 코르도바 앞바다로 밀려들었다가 결국 죽고 말았는데, 그 고래의 골격이 전시돼 있다. 내가 묵고 있는 비앤비 주인인 마크 킹 아저씨도 열심히 해체와 복원에 참여했다고, 전시물 안내에 적혀 있었다


코르도바는 액손 발데즈 사건을 겪으면서
, 우리나라 식으로 말하자면, ‘의식화가 됐다. 순한 어부들이던 주민들은 연어와 해달의 떼죽음을 목격했고, 장화를 신고 기름을 걷어 냈으며, 액손사를 상대로 길고 오랜 싸움에 들어갔다. 1993년엔 액손사의 배가 어민들의 해상 시위로 코르도바로 입항하지 못하고 발데즈로 돌아가기도 했다. 주민 상당수는 아직도 액손사와 소송 중이다. 컬처 센터 한 귀퉁이에는 토템폴을 패러디한 쉐임 폴 shale pole'을 전시하고 있었다. 액손사 부회장의 얼굴에서 기름이 잔뜩 뿜어져 나오는 모습을 거꾸로 새긴 조각이다. 알래스카 인디언 하이다 부족은 저주하는 사람의 얼굴을 거꾸로 토템폴에 새겨 넣었다고 한다


(간판이 거꾸로 매달려 있어요. 자세히 보면 가로등에 해달이 그림도 매달려 있음)

기풍은 골목골목에도 넘쳐흘렀다. 오르카 서점의 창문에는 도로 개통 반대 NO ROAD’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도로 없이 살 수 없다 주민들은 분노한다식의 개발 촉구 플래카드에 익숙해 있는 나는 당혹스럽고도 신선했다. 코르도바도 도로가 이어지지 않아 배나 비행기로만 접근이 가능한 오지다. 굳이 주정부에서 도로를 뚫어 주변 대도시와 연결시켜 주겠다고 나섰는데, 주민들이 고유한 문화와 전통이 사라질 수 있다며 반발했다는 이야기다. 이 담대한 주민들은 지역 박물관에 조그맣게 액손 발데즈 코너를 만들어 당시 흙과 방제복, 자료 같은 것들을 전시하고, 액손사로부터 사이언스 센터를 얻어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환경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서점 옆 삼각주 환경 센터에서는 알래스카 송유관에서 기름이 유출될 경우 알래스카의 생태계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그림과 도표로 무시무시하게 설명해 준다.


(커뮤니티 박물관에 전시된 액손 발데즈 기름 유출 사건 당시의 자료들)

공동체의 활력은 전방위로 넘쳐흘렀다. 매년 2월이면 눈 속에 산다고 전설처럼 전해지는 눈 벌레, ‘아이스 웜축제가 열린다. 주민 자원 봉사로 꾸려지는 아이스 웜 홍보 센터에서는, 옆 찻집에서 차를 마시던 할머니가 입술을 닦고 나와 설명을 해 줬다. 피자집 아저씨가 피자를 내 놓고, 찻집 아줌마가 차를 준비하고, 아이들이 눈벌레 복장으로 가장 행렬을 벌이는 주민 축제란다. 나는 여기서 충남 태안의 삼성중공업 기름유출 사고에 대해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기름으로 못 쓰게 된 어장에서 하루하루 날품을 팔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어버렸고, 벌써 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삼성중공업이 10여차례 남몰래 기름을 닦고 갔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 뒤로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수십년이 흘러 태안 앞바다에 상괭이와 뿔논병아리들이 다시 돌아오게 될 때, 그 때 구름포와 만리포의 공동체는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아니, 그 때까지 존재할 수 있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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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왼손을 펴서 책상에 얹어보자. 나는 지금 알래스카에서 가장 이상한 마을, 위티어의 지정학적 위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내가 지어낸 말이 아니다. 앨런 타일러라는 여행작가가 그렇게 말했다. 알래스카에서 가장 이상한 마을이라는 책도 써 놓고, 본인은 알래스카를 떠나 ‘48도 이남(Lower 48)’으로 튀었다. 미국 시애틀에 산다. 48도 이남은 북위 48도 아래를 가리키는데, 알래스카 주민들이 본토를 부르는 말이다. 어쨌거나 다시 왼손으로 돌아오자면, 검지와 중지가 만나는 부분, 거기가 위티어다. 두 손가락 사이의 오목한 공간이 고요하고 잔잔한 프린스 윌리엄 해협, 검지와 엄지가 만나는 어디쯤이 앵커리지라 할 수 있겠다. 앵커리지에서 위티어로 가려면 검지손가락의 불룩한 관절, 즉 추가흐 산맥을 걸어서 넘거나, 배를 타고 검지손가락을 빙빙 돌아서 가야 한다.


복잡하게 설명했지만 요는 위티어의 입지가 예사롭지 않다는 거다
.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산에 둘러싸인 데다, 일년 내내 구름과 안개가 낀다. 전투기가 작정하고 폭격하려 해도 찾을 수 없지만, 위티어에서 마음만 먹으면 고요한 프린스 윌리엄 해협을 타고 태평양으로 짜잔, 하고 나타날 수 있다. 비밀 병기를 양성하기에 이만한 곳이 없었다. 2차 대전 당시 일본이 알류산 열도를 침공하자 충격을 받은 미국은, 고심 끝에 위티어를 찍어 해군 양성 기지로 만들었다. 병사들은 빙하 물에서 목욕하고 곰의 쓸개를 핥아먹으며 복수를 다짐했지만, 이런 이야기의 끝이 언제나 그렇듯, 제대로 출동 한 번 못 해 보고 전쟁이 끝나버렸다. 군인들은 1964년 위티어에서 철수했다. 그러나 기왕 살게 된 것, 하며 남은 사람들이 있어서 아직도 3000여명이 산다. 한때는 3만명이 살았다


(콘도 건물을 닮은 베기츠 타워의 전경)

우리의 숙소는 위티어 제
2의 고층 건물, 15층짜리 베기츠 타워 였다. 위티어에는 두 채의 고층 건물과 20여 채의 단층 건물이 있다. 베기츠 타워는 직육면체에 성냥개비를 쑤셔 창문을 뚫어 놓은 것 같은 건물이었다. 실용성이 유일한 미덕으로, 우리나라 과천 정부종합청사를 생각하면 된다. 과천 청사는 <한국 건축 100년사>에도 나오는데, 두 번 다시는 이런 건물을 지어서는 안 된다는 예로 나온다. 실용성만 따지자면야 베기츠 타워도 더 할 나위가 없었다. 위티어 주민의 90%가 이 한 건물에 산다! 우리 숙소는 14, 주인집은 15층이라고 했다. 거의 모든 관공서와 상업 시설도 이 건물 1층에 입주해 있었다. 기숙사처럼 좁은 복도를 따라 수퍼마켓, 술을 파는 리쿼 스토어, 방 한 칸을 나눠 쓰는 비디오 테이프 대여점과 태닝 스토어, 우체국과 교회가 이어지는 식이다


오후에는 마을 뒤 포티지 빙하 로 트레킹을 하러 갔다
. 마을 뒷산을 올라가 빙하의 입구까지 가는 루트였다. 맞바람에 날려 온 모래를 씹으며 철길을 걷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산자락 자갈길을 올라갈 땐 그저 울고 싶었다. 북한산은 커녕 뒷산 약수터도 안 가는 내가 아닌가. 북극곰은 내가 돌아가자고 할까봐, 이미 저 멀리 성큼성큼 내빼고 없었다. 빨갛게 언 뺨을 문지르며, 두 번 다시 등산화 챙겨오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라고 결심할 즈음 빙하가 나타났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나 <디스커버리 채널>에 나오는 풍경이 내 앞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빙하가 녹아 흘러내린 물에 손을 씻으면서 나는, 앞으로 그냥 사람이 아니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잘 한 결심이었다


(넵! 직찍입니다. 포티지 빙하를 향해 마구마구 다가가고 있는 북극곰)

위티어는 오랫동안 고립의 대명사였다. 기차는 자주 다니지 않았고, 배는 더욱 뜸했으며, 비행기를 운행하고 싶어도 활주로를 닦을 만한 넓은 평지가 없었다. 산 때문에 전파도 가로막혀, 80년대에야 비로소 텔레비전이 나왔다. 아파도 방법이 없었다. 꾹 참았다 1주일에 한번씩 오는 의사를 기다리거나 헬리콥터를 불러야 했다. 성질이 급한 사람들은 기차가 다니는 철도 위로 자동차를 몰았다가, 결국 헬리콥터 부르는 비용보다 더 비싼 견인비를 내야 했다. 주민들이 시위용품으로 만들었던 위티어의 포로들 Prisoners of Whittier’ 티셔츠가 수집가들의 인기 아이템이 된 이후에야 비로소 지난 2000년 자동차 터널이 뚫렸다. 그나마도 편도 터널이어서 여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마지막 자동차를 끝으로 터널이 닫히고
, 우리는 이 아름다운 마을에서 하룻밤 쯤 묵어가지 않는 것은 여행객의 예의가 아니다, 라며 콜라잔을 들고 완벽한 고립을 축하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모든 것을 다 파는 잡화점에 들러 알래스카에서 가장 이상한 타운, 위티어책도 사 왔다. 다운타운과 베기츠 타워는 지하 터널로 연결돼 있었다. 지하에서는 엘리베이터로 바로 숙소까지 올라갈 수도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우리를 흘끔 쳐다보다 자기들끼리 반갑게 인사를 했다. 손마다 아이스크림 봉지가 들려 있었다


집주인 아줌마가 아침식사 용으로 가져다 놓은 사과를 베어 물면서 나는 아까 사온 책을 펴들었다
. 베기츠 타워는 아까 우리가 걸어온 지하 통로 공사 노동자들의 숙소로 1958년 만들어진 건물이었다. 1964327일 규모 9.2의 강진이 위티어를 강타했다. 오일 탱크가 뒤집어지면서 불이 붙었고, 땅은 금간 듯 쩍쩍 갈라졌다. 32미터 높이의 파도가 위티어를 덮쳐 베기츠 타워의 10층까지가 침수됐다. 당시 70여명이던 주민 가운데 13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그러나 베기츠 타워는 금 하나 가지 않았다.... 어떻게? 작가는 회의적인 어투로 계속 쓰고 있었다. ...아직도 위티어에는 갖은 루머가 나돈다. 뷰크너 타워가 핵 잠수함을 만들기 위한 기지였다든가, 실제로 사망한 주민은 13(thirteen)명이 아니라 30(thirty)명이라는 등의...”


갑자기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왜 이 방은 비어 있었던 것일까? 게스트하우스라기엔 누군가가 살던 흔적이 너무도 역력한 방이었다. 탁자 위에는 낡은 잡지들이 펼쳐져 있고, 침실에는 독특한 취향의 호피무늬 침구 세트가 깔려 있었다. 셜록 북극곰이 손가락을 부딪쳐 따닥, 소리를 냈다. “누가 죽어서 빈 집이 생기면 게스트하우스로 내 놓고, 수익은 마을 사람들이 나눠 가지는 걸까?” 냉장고로 달려갔다. 역시, 커다란 초코 아이스크림이 들어 있었다. “아이스크림! 이걸 먹어야 생명이 유지되는 거야. 벽에 걸린 사진 속의 해파리며 불가사리가 사실은 여기에 투숙했던 손님들인 거지. 아이스크림을 안 먹어서 해산물로 변한 거라니까. 회색의 뇌세포를 좀 쓰라고...” 포와로 형사를 흉내 냈지만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버려진 뷰크너 하우스의 전경. 저 빨간 차는 어제부터 우리를 감시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헉)

다음날 아침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든든히 먹고 산책을 나섰다. 아침 햇빛 아래 동네는 버려진 산업단지 같았다. 녹슨 자동차에 폐타이어, 이끼가 핀 요트, 박살난 화분이 골목에 뒹굴었다. 북극곰이 분위기를 밝게 해 보겠다고 휘파람을 부르는데, 하필이면 드라마 트윈픽스주제가였다. 꼭 이런 마을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다룬 드라마다. 청년 두 명이 일요일 아침부터 삽으로 땅을 파다 말고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여기가 네놈들의 무덤이다, 뭐 이런 얼굴이었다


언덕 끝의 뷰크너 하우스는 지하
2, 지상 6, 길이가 150미터가 넘어 학교나 병원처럼 보이는 건물이었다. 당초 2차 대전 군인 막사로 지어졌던 이 야심만만했던 건물은 주민들이 베기츠 타워로 이주한 뒤 버려졌다. 카페테리아, 암실, 볼링장, 우체국, 감옥, 이발소, 약국, 극장까지 모든 것이 한 자리에서 구현되는 집합 주택을 만들고자 한 것이었다. 시멘트만 발라놓은 것 같은 잿빛 건물은 공상과학 만화에 나오는 폐허의 도시 같았다. 무너진 벽 사이로 떨어진 세면대며 삐죽이 튀어나온 철골, 반쯤 타다 남은 스펀지가 보였다. 흰 옷의 독일 간호사가 주사기를 들고 또박또박 걸어온다고 해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탐조 망원경으로 건물 안을 유심히 들여다보는데, 벽에 스프레이로 휘갈긴 글자가 보였다. “너는 420분에 죽는다(You will die @ 4:20)” 북극곰과 나는 동시에 얼굴을 마주봤다. 탈출할 시간은 아직 6시간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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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 호프에는 상업적 의미의 숙소랄 게 있었다
. ‘포경 선원의 집(Whaler's Inn)’은 매트리스가 가라앉기 시작하는 대학 기숙사 같은 방 한 칸을 당황스러운 가격에 내 줬다. 그러나 시스마레프 비상응급구조센터의 솜 터진 소파 위에서 사흘 밤을 보낸 나는 체크무늬 침대보만 보고도 감격했다. 노트북과 자명종 시계를 얌전히 책상 위에 놓고, 오리털 파카도 탁탁 털어 옷걸이에 걸었다. 종종 찾아오는 북극 연구자들을 위해 숙소를 열었다고 했는데, 이날은 다른 투숙객이 없어 보였다.

식당은 몇 년째 휴업 중이었다. 벽에 붙은 메뉴판을 보니 햄버거, 감자튀김, 스파게티와 피자를 어이없는 가격에 팔고 있었다. 바로 옆방이 부엌인 것을 모르고 찾아오는 순진한 손님에게 뽕을 뽑겠다는 자세라 하겠다. 바퀴 달린 이동식 책장에는 읽고 돌려주세요라는 쪽지가 붙은 페이퍼백이 수십 권 꽂혀 있었다. 우리 북극 연구자들께서는 빨간 책들을 읽으며 긴긴 백야의 밤들을 견디셨나보다. ‘장밋빛 모텔에서의 하룻밤’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등등의, 어김없이 몹시 괴로워하는 남녀의 모습을 표지로 한 책들이 꽂혀 있었다. 그러고보니 놈 공항에도 이런 책들이 잔뜩 꽂힌 한권에 1달러간이 책 대여점이 있었다. 베링해 부녀자 조합에서 운영하는데, 빨간 책 대여하고 받은 돈으로 (부조리하게도) 불우 여성과 어린이들을 돕는다고 했다.

포인트 호프 는 알래스카 북단
, 북위
68.3도의 에스키모 마을이다. 이누피아트 에스키모 900여명이 산다나는 시스마레프와 마찬가지로, 기후변화 취재를 온 길이었다. 이글루가 녹아내리고, 에스키모도 반팔을 입고, 냉장고까지 사는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등등을 취재할 예정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에스키모는 더 이상 이글루에 살지 않는다. 집 안에서는 다들 반팔을 입는다. 냉장고는 물론, 파는 줄만 알았다면 김치 냉장고라도 사들였을 것이다. 다만, 북극고래는 줄어들고 있었다. 포인트호프 앞바다인 추크치해는 북극고래와 벨루가 고래의 회유경로다. 수천년 동안 고래를 먹고 살아온 포인트호프 사람들은 고래가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지구 온난화와 북극해의 석유 시추로 고래의 생태가 교란되고 있다는 것이다. 숙소 로비에서는 알래스카 북극권 원주민 연합쯤 되는 티키각 코포레이션이 근처 광산에서 일할 계약직 노동자를 모집하고 있었다. 풍채 당당한 에스키모 아줌마 한 명이 어눌한 말투로 물어보는 중이었다.

혹시, 여기 고래뼈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신청서를 쓰다 말고 아줌마가 나를 쳐다봤다. 시청 앞에서 덕수궁 어디 있냐고 물어보는 사람을 봤다는 얼굴이었다.
...여기, 저기.”
걸어갈 만 한가요?”
시스마레프에서 학습한 나는 영리하게도 이제, 버스나 택시가 있느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당연히 그런 것 없다. 아줌마가 다시 나를 쳐다봤다.
...그러고 싶으면...”
그녀는 목운동을 하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렸다.
, 기름값만 내 준다면 내가 태워다 줄 수도... 소변 검사 좀 하고...”
일자리를 얻으려면 마약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소변 검사로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에스키모 사회에서 마약이 만연해 있어서. 티키칵 코포레이션 직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에드나 아퉁아나-그녀의 이름이다-4륜 오토바이 뒷좌석에서 나는 왜 그녀가 고래뼈를 보여주세요에 당혹해 했는지 알게 됐다. 고래 뼈가 천지였다. 고래 뼈는 발받침처럼 현관에 놓여 있고, 고래 수염은 재활용 쓰레기처럼 마당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마을 입구에는 지난해 잡은 고래의 뼈가, 산까지는 못돼도 언덕처럼은 쌓여 있었다. 에드나는 이 따위는 고래 뼈도 아니라는 듯 묵묵히 앞만 보고 달렸다. 오토바이가 멈춘 곳은 묘지였다. 수백, 수천 개의 고래 갈비뼈가 무덤을 둘러싸고 있었다. 고래 뼈도 십자가처럼, 십자가도 고래 뼈처럼 보였다.


(고래의 갈비뼈가 나무기둥처럼 세워져 있는 포인트 호프 마을 묘지입니다)

감격을 추스르지도 못했는데, 에드나는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었다. 눈이 쌓인 바닷가였다. 분홍색 고래 살점이 사과상자 크기로 잘라져 흩어져 있었다. 옆에서는 에스키모 할머니 한 명이 턱수염물범의 가죽을, 책에서나 보던 반달 모양의 에스키모 칼 울루로 벗겨내고 있었다. “, 뼈는 벌써 치웠나보네. 자 타!” 에드나는 충격과 흥분 속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나를 질질 끌어 뒷좌석에 앉혔다. 잠시 뒤 우리가 멈춘 곳은 옛 거주지, 올드 타운 사이트였다.

우리는 에스키모가 이글루에 사는 줄 안다
. 아니다. 지금은 조립식 주택에 살고, 예전엔 땅속에 살았다. 바람이 너무 거센데다, 나무 한 그루 없어 땅 위에 집을 지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땅굴에 카리부의 가죽을 문 삼아 단 소드 하우스가 알래스카 에스키모의 전형적 가옥이다. 이글루는 사냥이나 여행 때 후딱 지어 쓰는 임시 숙소였다. 일종의 텐트라 하겠다. 에드나는 소드 하우스의 입구를 가리켰다. 고래 뼈가 기둥 대신 지붕을 받치고 있었다. 포인트 호프 주민들은 1970년대 소드 하우스를 버리고 현재의 조립식 주택 단지로 이주했다.

(알래스카 에스키모의 전통 가옥입니다. 여기가 입구. 못 박혀 있는 기둥은 고래 뼈에요.)

마을에 돌아오자 에드나가 친절하게 저녁이나 먹고 가라며 아무 집에나 불쑥 들어갔다. 주름이 잔뜩 잡힌 할머니가 아는 척도 하지 않고 부엌에 백조 수프 끓여놨으니 먹어라고 말한 뒤 다시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우리 집에도 없는, 40인치는 넘어 보이는 최신형 완전 평면 TV였다. 아이들은 소파에서 뒹굴며 닌텐도와 플레이스테이션을 주먹으로 부수고 있었다. 현관에는 털부츠 대신 구멍 숭숭 뚫린 크록스 슬리퍼가 뒹굴었다. 맙소사, 세계는 하나가 아닌가. 여자 아이 하나가 스프링처럼 튀어 나와 부엌으로 달려가더니 수프 한 그릇을 담아 내밀었다. 마사키, 내 또래의 일본 여자였다. 나는 에드나와 마사키 사이에 끼어 수프를 마시고 고기를 뜯었다. 자꾸만 이 새가, 멸종위기야생동식물 2급종인 희귀 조류라는 사실이 생각났다. 입 안에 돌처럼 뭐가 씹혔다. 비비탄이었다. “, 그거 많아. 엊그제 그걸로 잡았거든.”

아무도 내가 어디서
, ,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아무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백조 수프가 바닥이 보이자 마사키가 재킷을 들고 일어섰다. 내 옷이었다. , 내 오...을 채 발음하지 못하고 나는 마사키를 따라 길 건너 집으로 들어갔다. 얼떨결에 또 수프를 한 그릇 얻어먹었다. 반 쯤 먹다 물어보니 벨루가 수프라고 했다. 벨루가는 북극권에 서식하는 흰돌고래다. 기분이 늘 좋은 것은 아니겠지만, 하여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는 얼굴을 하고 있다. 북극곰과 나는 벨루가를 보러 캐나다 밴쿠버의 아쿠아리움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 방긋 웃는 벨루가를 한 점 한 점 떠 넣으려니 저절로 목이 메었다.

(방긋 웃는 벨루가 고래의 얼굴 @인터넷에서 펌)

식탁에 에스키모치고는 참으로 일본 사람처럼 생겼다 싶은 남자가 한 명 있었는데, 정말 일본인이었다
. 벨루가 수프의 바닥이 보이자 이번엔 그 일본인 신고가 내 옷자락을 잡고 옆집으로 들어갔다. 얼떨결에 이번엔 고래 고기였다. 껍질과 지방을 물에 삶은 마크탁, 에스키모들이 그렇게 좋아한다는 요리다. 지난해 잡은 북극고래라고 했다. 내 평생 이렇게 짧은 시간이 이토록 많은 멸종위기종을 먹어치우기는 처음이었다.

마크탁은 꼭 수육 같았다
. 소금을 쳐서 먹다 보니 김치 생각이 났다. 집주인이 미안해했다. “김치는 마침 없어. 마크탁과 김치가 딱인데, 그치?” 근처 대도시인 배로우에 한국인 상점이 있어 종종 김치를 사 온단다. 북극 에스키모 마을까지 진출한 한식의 우수성을 자랑스러워해야 할 지, 북극 에스키모 마을까지 집어삼키고 있는 세계화의 위력을 경계해야 할 지 난감한 심정이었다. 새벽 4시인데도 창밖이 늦은 오후처럼 환했다. 에스키모 어린이들에게 새벽 4시는 잠자리에 들기엔 너무 이른 시간. 얼떨결에 이번엔 그 틈에 끼어 농구도 하고, 뜀박질도 하고, 산책도 하고, 도요새 목에 끈을 감아 괴롭히는 아이들을 준엄하게 꾸짖기도 했다. 숙소로 돌아가니 아침 7시였는데, 해가 떴던 것 같기도, 뜨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에스키모 VS 이누이트
지난번에 이 글을 <주간경향>에 싣고 나서 모처럼 독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에스키모가 아니라 '이누이트'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표현이라며, 똑바로 알고 써라, 그런 취지였다. 에스키모는 '날고기를 먹는 사람'이란 뜻이고, '이누이트'는 그들의 말로 '사람'이란 뜻이다.

맞다. 캐나다 북부와 그린란드의 원주민들은 '에스키모'를 경멸적인 표현으로 여기고, 스스로를 '이누이트'라고 부른다 (캐나다 북부의 준주 '누나버트'는 그들의 말로 '우리의 땅'이다). 그러나 알래스카 원주민들은 스스로를 '에스키모'라고 부른다. 처음 시스마레프 원주민 마을에 도착해서 '이누이트'라고 부르면 되냐고 했을 때, 그들은 벙찐 표정으로 '에스키모를 에스키모라고 부르지 뭐라고 부르냐'고 오히려 되물었다. 그들은 '에스키모'라는 단어에 대해 특별히 정치적/문화적인 맥락을 부여하지 않고, '이누이트'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여행기에서는 알래스카 원주민들은 '에스키모'로, 캐나다/그린란드 원주민은 '이누이트'로 부르기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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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쏘댕기자 2011.06.13 1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으음, 일식을 줬으면 더 좋아했을 최망.

  2. Ray 2011.06.16 18: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에 와서 글 잘 읽고 갑니다^^
    최기자님 트위터 있길래 팔로우했어요 ㅋ
    새글 올라오면 꼭 트윗해주세요 ㅋ

  3. 비톤 2011.07.08 16: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포스트 잘 보고 갑니다.



포인트호프에서의 사흘을 나는 그렇게 빈둥거렸다. 동네 사람들은 언제부터 나를 알았다고,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눈웃음을 치며 손을 흔들었다. 둘쨋날부터는 나도 따라했다. 남의 집 식탁을 싹슬이하고 소파와 텔레비전 중간에서 뒹굴다 시시콜콜한 동네 소문들도 주워들었다. 벨루가 고래 수프를 끓여준 엠마 키니바크는 페어뱅크스로 유학까지 다녀온 똑똑이지만 백혈병에 걸려 고향 마을로 돌아와 공무원으로 있다든가, 고래 고기를 잘라 준 팝시와 에바 키니바크가 포인트호프의 복음화에 앞장서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든가, 일본인 청년 신고가 15년 째 여름마다 포인트호프를 찾아온다는 등이었다. 에스키모가 되고 싶던 이 말 없는 소년은 어느 날 무작정 포인트호프로 찾아와 바닷가에 텐트를 쳤단다. 동네 사람들이 그날 밤 손짓 발짓으로 이러다 북극곰에게 잡혀 먹힌다며 마을로 데려와 귀한 생명 하나 구했다고 한다.


하루는 마을 외곽 고래뼈 무덤에 앉아서 징징 짜는 비행 청소년 상담도 해 줬다
. 조카를 봐 주러 오빠네 갔는데, 오빠가 배고프냐고 물어보지 않았다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 그의 고민이었다. 포인트호프에서는 누구든 다른 사람의 집에 들어가 냉장고 문을 열고 먹고 마실 권리가 있다. “안녕하세요대신 배고프지 않니?”가 인사다. 틈틈이 일도 했다. 레게머리에 검정 선글라스를 낀 양아치포스의 부족장 잭 세이퍼를 만났고, 인디언과 에스키모의 혼혈인 시 정부 공무원 릴리 투츨루유크를 인터뷰했으며, 전현직 고래잡이 선장들을 만나 지구 온난화로 겪는 고충에 귀를 기울였다. 결코 이 글이 나를 출장 보낸 매체에 실리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포인트호프 부족장 잭 셰이퍼. 한 때 좀 놀아보신 포스다)

포인트호프의 고래가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포인트호프가 국제포경위원회(IWC)로부터 받은 북극고래 포획 쿼터는 한 해 10마리다. 한 때 3만마리가 드넓은 북극해를 헤엄쳤지만, 이제는 7000~9000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그나마 한 마리는 엊그제 내가 먹었다.) 원주민 생존 포경이 허용된 알래스카에서도 세인트로렌스섬에서 카크토비크까지 10개 마을에서만 북극고래를 잡을 수 있다. 포인트호프에서는 고래가 얼음의 갈라진 틈으로 숨을 뿜으며 북상하는 늦은 봄 고래 사냥을 한다. 해빙이 얼어붙으면 너무 이르고, 녹으면 너무 늦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로 얼음이 녹는 시기가 빨라지면서 고래잡이 시즌은 짧아지고 있다. 올해는 2마리, 지난해에는 3마리를 잡았다. 루크 크누크가 고래잡이 선장을 하던 1970년대만 해도, 못해도 한해 예닐곱 마리는 거뜬히 잡았다고 한다. 여든 살의 루크는 포인트 호프 최고령 고래잡이 선장이었다.


루크는 포인트호프의 소년이면 누구나 그랬듯 열세 살부터 고랫배를 탔다
. 고래잡이는 그들이 가혹한 북극에서 살아남는 생존 방식이었다. 젊고 힘깨나 쓰는 장정 30여명이 고랫배의 선장을 맡았고, 배마다 10여명의 선원이 따라붙었다. 여자들은 봄이 오기를 기다리며 우미아크를 수선했다. 물범의 가죽 예닐곱 장을 붙여 만드는 고래잡이 보트다. 나무배는 빙산과 충돌하면 그대로 박살나지만, 우미아크는 급한 대로 재빨리 꿰매 쓸 수 있다. 고래잡이 시즌이 되면 마을 전체가 흥성거렸다. 남자들은 작살과 노를 손에 들고 바다로 나갔고, 여자들은 바닷가에 텐트를 치고 스토브에 물을 끓였다. 지난해 잡은 고래는 이미 바닥이 났고, 새알을 줍고 열매를 따기엔 이른 계절이었다. 먹을 것이라고 해 봐야 차와 비스킷이 전부였다.
 
지금은 집에서 스파게티를 삶고 도넛을 데워 스노머신에 실어 배로 보낸다. 예전처럼 목숨을 걸고 작살을 던지는 대신, 총을 쏘아 잡는다. 사람들은 더 이상 카리부 가죽으로 만든 파키나, 울버린 털로 만든 부츠, 마클락을 신지 않는다. 고래 뼈와 카리부 가죽으로 지탱한 땅속 집에서 나고 자란 루크는 조립식 주택의 거실에 앉아 인터넷으로 미국 본토의 손자들을 만난다. 인생은 너무, 쉬워졌다. 그의 한 평생 동안 모든 것이 변했다. 변하지 않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그의 옆에 앉아 있는 부인 앤지 뿐이다. 부모를 잃고 친척에게 입양돼 포인트호프로 온 소녀는 에스키모 언어 이누피아크를 말하지 못해 외톨이가 돼 울고 있었다. “그 때 루크가 나를 알아봐줬지. 조숙한 소년이었어. 나는 아홉 살, 루크는 열두 살.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됐고, 스무 살이 되던 해에 결혼했어.”

(할머니가 만들어준 전통 파키를 입고 활짝 웃는 설정의 에스키모 소녀)

팝시 키니바크는 처음 고래를 잡았던 그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어지게 좋았지.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에 쳐들어와 아무거나 다 벗겨 가는데, 그래도 그냥 좋더라고.” 고래잡이 선장이 첫 고래를 잡은 날 하루는 동네 노인들이 선장의 집에 와 무엇이든 집어갈 수 있다. 새로 장만한 혼다(4륜 바이크), 울버린 모피 코트도, 심지어 우미아크의 가죽까지 벗겨갔지만, 팝시는 그저 좋기만 했단다. 고래가 도착하면 동네 사람 모두가 모여들어 23일 횃불을 밝히고 고래를 처리한다. 동네 개들도 좋아서 날뛰는 때다. 컷팅의 영광은 작살수의 몫이다. 선장과 선원들이 가장 좋은 부위를 갖고, 고래잡이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조금씩 몫을 떼어 준다. 고래는 마을 사람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에스키모들은 고래가 잡힌것이 아니라 잡혀준것이라고 믿는다. 바다에도 신이 있다면 그것은 고래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팝시는 내게 죽은 고래의 눈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설마, 그랬을 리가.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쓰풀, 베리 피-쓰풀.


콧수염을 길러 에스키모보다는 중앙아시아의 부족장처럼 보이는 팝시는 포인트호프에서도 알아주는 동네 유지였다
. 조립식 주택이지만 서울의 34평 아파트보다 큰 집에서 없는 것 없이 산다. 선물이라고 파인애플을 내밀었는데, 바나나를 넣고 구운 케이크를 잘라 주는 바람에 민망했다. 냉장고에는 가족 여행으로 다녀온 하와이 워터파크 사진이 붙어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고래를 잡고, 겨울이 되면 전통춤을 연습해 페어뱅크스에서 열리는 에스키모 올림픽에 나간다. 에바 키니바크는 세상에 별 일도 다 있다는 말투로, “신고가 일본에서 처음 왔을 때 보니 음식을 숨기고 먹더라고. 우리가 에스키모 문화를 가르쳐야 했어. 눈을 마주치면 인사하는 법,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 법, 그런 거 말야라고 했다. 나는 귀를 의심했다. 북극의 조그만 마을에서 고래를 잡아먹고 사는 사람들이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 일본, 그것도 도쿄진에게 미개하다고 훈계하는 것이었다. 신고는 멋쩍은 웃음만 짓고 있었다. 포인트호프의 그들처럼 자부심과 자존감이 드높은 원주민 집단을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나는 본 적이 없다.


(마을 외곽의 고래뼈 무덤에서 비행하고 있는 청소년들. 둘은 '보이'와 '프렌드'사이다)

그러나 알래스카의 여느 원주민 마을처럼 포인트호프도 높은 청소년 자살율과 마약 문제를 겪고 있다. 원주민 차별, 낮은 교육 기회, 취업의 어려움 등 세상의 벽 앞에서 미래가 없는 아이들은 자살을 택한다. 청소년 혼전 임신률도 높다. 고래 뼈 무덤에서 만난 틸리는 열 세 살인데, 형제가 10명이 넘는 것까지는 맞는데, 몇 명인지는 정확하게 모른다고 했다. 아빠는 세 번 이혼했고, 엄마는 지금까지 결혼한 적이 없다. 아홉 살 난 에이미는 사탕을 빨면서 태연하게 내가 두 살 때 언니가 술 취해서 가스 중독 비슷한 걸로 죽었다고 말해 나를 당혹케 했다. 혼전 임신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가족과 친척들이 입양해 거둬 키우고 있었다. 30년 뒤에도 고래는 여전히 이들의 운명일까. 내 수첩의 마지막 페이지는 이런 환경에서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는 아이는 사실상, 거의 없어 보인다로 끝나고 있었다.

공항에는 비릿한 고래 비린내가 안개처럼 깔려 있었다. 비행기 프로펠러 아래서 조종사가 출석을 불렀다. “...묭아이초이? 몸무게는요?” 비행기가 작아 무게 균형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좌석도 시키는 대로 앉아야 한다. 뒷좌석 사람이 어깨를 쳤다. 팝시 키니바크의 아내, 에바였다.
가는 거야?”
, .”
다음에 칼르기 때 다시 와. 6월에 하는 고래축제인데, 그 때는 정말 볼만하다우. 참 그런데...”
에바가 귓속말이라도 하듯 몸을 붙여왔다.
“‘
라는 설교자가 있지 않나? 미국 한인 방송에서 봤는데...정말 복음이 가득하신 분이더라고. 한국 가면 꼭 한번 이야기 해 줘요. 여기 북극 에스키모들이 설교해 주십사 한다고.”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님, 알래스카 에스키모의 성도들께도 복음의 은총을 꼭 한번 부탁드립니다.


Posted by orc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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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나가는과객 2012.07.06 1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3년전에 저도 알래스카 다녀왔습니다. 렌트해서 달튼 하이웨이 따라 데드호스 다녀왔는데, 가는길의 풍광을 잊을수가 없네요. 전에 어느 신문기사에서 본것같은데 북극곰님은 한겨레 기자가 아니신지요?

  2. jhdh 2012.12.07 16: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아 방주 발견 뉴스 보시러 오세요. 성탄절 맞아 츄리도 예쁘게 했습니다. 그럼



우리는 알래스카를 가기 위해 대만으로 출발했다. 인천에서 타이베이로 간 다음, 타이베이에서 뉴욕 행 비행기를 타고, 중간에 한 시간 쉬어가는 앵커리지에서 내리는 루트다. , 뭔가 이상한데, 라고 생각했다면 고등학교 때 지리 시간에 80점 이상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알래스카는 우리나라 동쪽에 있고, 대만은 우리나라 서쪽에 있다. , 우리는 동쪽으로 가기 위해 서쪽으로 출발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서울에서 강릉을 가기 위해 일단 인천까지 갔다 다시 강릉으로 가는 식이다. 그게 다, 인천에서 알래스카 직항이 없어서다.

물론 다른 루트들도 없지는 않다
. 인천에서 알래스카를 지나 미국 시애틀까지 날아간 다음, 시애틀에서 미국 국내선을 타고 알래스카로 되돌아와도 된다. 인천에서 하와이 호놀룰루로 날아간 다음, 호놀룰루에서 앵커리지까지 알래스카 항공을 타는 루트도 있다. ‘가장 특이한 항공노선 조합 연구소의 상임이자 유일한 연구원인 북극곰의 초강추 루트다. 열대의 섬과 북극의 빙하를 두루 찍고 돌아오는 울트라 초 익스트림 루트라 하겠다.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 우리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시간도 돈도 없었다. 북극곰과 나는 같이 두 번, 따로 한 번씩 도합 네 번 알래스카를 다녀왔는데, 그 중 세 번을 인천-타이베이-앵커리지 루트를 이용했다. 덜 비싸고(결코 싸지는 않다), 알래스카에 오전에 떨어져 시간도 벌 수 있어서였다. 타이베이 카오슝 공항의 기도실에서 목사 놀이를 하고, 미니어처 아리산 고산 마을 열차에서 사진을 찍으며 놀다 지칠 때 쯤 되면 게이트에 안극뇌기(安克雷奇)’가 깜빡거렸다. --레이-. 앵커리지다.

(쿡 인렛을 바라보는 쿡 선장의 뒷모습)

오랫동안 내 머릿 속은 앵커리지캡틴 쿡과 한 세트로 기억해 왔다. 먼저 앵커리지를 다녀온 북극곰이 지직거리는 국제전화 너머로 물기에 가득 젖은 목소리로...는 아니고, 풍선과 이모티콘이 날아다니는 메신저로 여기 네가 좋아하는 캡틴 쿡의 동상이 있어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18세기 영국의 탐험가이자 지도 제작자였던 쿡 선장은 서구인 최초로 알래스카를 항해한 인물이었다. 논쟁의 여지없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탐험가였다. 그는 뉴질랜드와 태즈메이니아를 발견하고 남극 대륙의 존재를 확인했으며, 하와이, 뉴칼레도니아, 바누아투, 통가, 이스터 섬 같은 우리가 이름을 알 만한 남태평양의 섬 대부분을 지도에 그려 넣었고, 북으로는 알래스카 최북단의 아이스 케이프까지 여행했다. 나는 오랫동안 남몰래 캡틴 쿡을 흠모해 왔다. 몇 년 전 하와이에서는 캡틴 쿡이 죽은 자리에 세워진 비석을 향해 개헤엄으로 나아가다 성게 더미에 허벅지를 찍혀 피를 본 적도 있다. 앵커리지에서 1번으로 갈 곳은 당연히, 캡틴 쿡 동상이 세워져 있는 캡틴 쿡 레크리에이션 파크였다.


캡틴 쿡 파크는 숙소인 쿠퍼 훼일 인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였다. 쿡 동상은 자신의 이름을 따 쿡 인렛이라고 불리는 내해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물이 빠진 갯벌에는 도요새들이 긴 부리를 쑤셔 넣고 먹이를 찾고 있었다. 캡틴 쿡이 알래스카를 찾아온 것은 그의 마지막 항해였던 디스커버리호 모험(1776~1779)에서였다. 많은 역사책은 쿡이 그 시대의 다른 탐험가들, 그러니까 잔인한 코르테스나 무정한 마젤란과 달리 원주민들을 존중하고 이해하려 노력했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냉엄한 법이어서, 쿡 탐험대의 상륙은 원주민 사회를 궤멸시켰다. 선원들의 몸에 묻어온 질병 앞에 원주민들은 속수무책이었고, 하와이에서는 원주민의 98%가 사망했다. 알래스카의 에스키모도 10%만이 살아남았다.

(별볼일 없고 쓸쓸한 앵커리지 시내 입니다. 멀리 눈 쌓인 산이 보이긴 해요)

다운타운의 한 쇼핑몰 앞에도 캡틴 쿡의 세 차례 세계 탐험을 기리는 동판이 세워져 있었다. 소비에트 풍의 건조한 건물 위로 하늘까지 낮게 깔려 모형으로 만든 배들은 더욱 쓸쓸해보였다. 앵커리지는 호놀룰루나 나이로비처럼 고층 건물이 블록을 따라 이어지는 신도시였다. 층수가 조금 낮고, 한여름에도 쌀쌀해 재킷의 깃을 세워야 한다는 정도가 차이였다. 우리는 몇 블록을 걸어 서커스 천막을 친 식당에서 알래스카 킹 크랩을 먹었다. 포크와 나이프로 게 껍데기와 전쟁을 벌이다 보니 한국 대게집의 게 포크와 가위가 몹시 그리웠다. 게살은 질기기만 했다.

저녁에는 월마트에 가서
‘ALASKA’라고 적힌 두꺼운 스웨터를 한 벌씩 샀다. 이듬해 혼자 앵커리지를 가게 됐을 때에도 월마트에 들렀다. 이번엔 파인애플과 자몽을 하나씩 샀다. 나는 며칠 뒤 알래스카 북단의 에스키모 마을로 날아갈 예정이었다. ‘지구 온난화로 피해를 입고 있는 에스키모 부족장을 인터뷰 해 와라는 한 줄의 미션을 받고 출장 온 길이었다. 파인애플과 자몽은 그 미지의 부족장에게 잘 보이기 위한 선물이었다.

오후에는 시내의 앵커리지 박물관에 갔다
. 원주민의 클랜 하우스(씨족 공동주택)라든가, 전통 복장을 입고 고기를 잡고 옷감을 짜는 모습이라든가, 그런 것들을 재현해 놓은 곳이다. 터치 스크린이 즐비한 요즘 박물관에 비하면 시시하지만, 알래스카 기준으로는 최상급이었다. 한 줌의 사람들이 몰려 사는 조그만 마을엔 소장품을 유리 진열장에 넣고 박물관간판을 내건 곳이 많다. 알래스카 남부 코르도바의 고래 박물관에서는 바다에 둥둥 떠 내려 온 유리병에 구슬을 붙여 만든 원주민 아트가 주요 전시물이었다. 유리병 중 하나의 뚜껑에 ‘C1 소주라고 적혀 있어서 감개가 무량했던 기억이 난다. 부산 소주인 시원 소주 병뚜껑이 먼 항해 끝에 알래스카 남부 해안까지 밀려온 모양이었다.

나는 꼼꼼하게 전시물들을 구경했다. 알래스카는 에스키모의 땅이라고들 생각하는데, 사실 알래스카 원주민은 2개의 에스키모 부족과 3개의 인디언, 1개의 알류트 부족으로 구성돼 있다. 에스키모는 해안가에 살고, 인디언은 내륙에 산다. 알래스카의 광활한 내륙은 사실 인디언의 땅인 것이다. <컬러학습대백과>에 나온 것처럼 이글루를 짓고 고래를 사냥하고 코를 부비며 인사하는 에스키모는 알래스카 북서부 해안의 이누피아트 족이다. 2만여년 전 베링해를 건너 북미 대륙으로 전진한 몽골로이드의 후손이라는데, 정말 깜짝 놀랄 만큼 우리와 비슷한 데가 있다. 박물관 이누피아트의 생활을 체험해 보세요코너에는 짚단을 엮어 새끼를 꼬는 체험도 있었다. 옛날 시골집에서 할아버지가 손바닥으로 꼬던 바로 그 새끼다. 여자 아이들은 실뜨기를 하고, 갓난아이는 후드 티셔츠 같은 주머니에 넣어 업어 키운다.


(에스키모처럼 새끼를 꼬아 보아요)


고래의 뿔이며 수염이 걸린 전시장 귀퉁이에는 동양인 여성이란 이름의 조각이 하나 있었다. 돌을 쪼아 만든 엄지손가락 만한 입상이었다. 얼굴은 에스키모처럼 동글납작했지만, 쪽 진 머리며 길게 늘어뜨린 옷고름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는 조선 여인이었다. 하이다 부족의 조각. 19세기 후반. 퀸 샬롯 섬의 연어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던 중국인 노동자로 추정.”

그녀는 어떻게 100년도 더 전에, 우리가 알래스카라는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몰랐을 그 시절에 알래스카 남부까지 오게 됐을까. 하이다 인디언은 왜 그녀를 돌에 새겨 넣었을까. 그녀는 많은 세월이 흐른 뒤, 조선에서 온 또 다른 여인이 자신의 조각을 뚫어지게 쳐다보게 되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진시황의 연인들이 중화민국과, 현대에 차례로 환생하는 영화 진룡이 생각났다. 참으로 현대에서 온 사람답게, 나는 청바지에 디지털 카메라를 든 차림이었다. 이쯤되면 그녀의 유령이라도 나타나줘야 하는 것 아닌가.


Posted by orc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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