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결국 인랜드로 가기로 했다. 그 전에 레이캬비크부터 들러야 했다. 포장도로만 정속운행기능을 몰래 내장한 털털이 피에스타 렌터카를 반납하고, 수직 절벽도 거침없이 오를 수 있는 4륜 구동 이스케이프를 빌렸다. 렌털비가 두 배였다. 카드를 내미는 손이 떨렸지만 레이캬비크 트리프티 지점 직원은 방긋 웃으며 냅다 채어갔다.


인랜드 어디를 갈 지도 어렵잖게 정했다. 전세계 네티즌이 앞다퉈 저 다녀 왔어요여행 인증샷을 올리는 플리커 닷컴에 인랜드를 검색했더니 영화 <반지의 제왕>의 모르도르 같은 풍경들이 계속 나왔다. 영화가 나온지도 10년이 다 되어가는 마당에 잊어가는 분들을 위해 다시 한 번 설명하자면, 모르도르는 어둠의 제왕 사우론이 오크와 우르크하이를 조종해 지배하는 어둠의 땅이다. <반지의 제왕> 풍경이라고 요정들이 잠자리 날개를 달고 팔라랑 거리는 이그드라실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막 구워낸 것처럼 시커먼 땅에서 김이 마구 솟아오르고, 화가가 깜빡 잊고 나무 그리는 것을 잊어버린 것처럼 벌거벗은 산들이 침입자를 막아서는 땅. 산 너머 저쪽에는 도저히 무슨 풍경이 나타날 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땅. 그래서 바닷가에 터를 잡고 살아가던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유령과 트롤만이 살고 있다고 두려워한 땅. 그러다 보니 4륜 구동 차량만 가까스로 여름 한철에 오갈 수 있는 땅. 거기가 아이슬란드의 지붕’, 인랜드다.


그 광활한 인랜드에서도 우리는
Landmannalaugar, 아마도 랜드만나라우가로 읽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 곳으로 가기로 했다. 여름마다 인랜드를 찾아와 사진을 찍는다는 정체불명의 유럽 네티즌이 플리커에 올린 사진에 꽂혔기 때문이었다. 적사장처럼 생긴 모랫빛 산이 압도적으로 저 끝까지 펼쳐져 있었다. 그 위에 포토샵으로 그린 것처럼 무지개가 걸쳐져 있었다. 일단 도로가 열려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랜드만날라우가, 랜들만날라우가, ‘낸들 만날라우가 하나 붙어 있다고 생각하면 발음도 쉽다며 몇 번 연습하고 산장에 전화를 했다.

저기, 낸들만날라우인가요?”

, 긴장해서 를 빼먹었다.

, @#$%입니다

역시, 여기를 뭐라고 부르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거기까지 도로 나 있나요?”

“4륜이신가요? 산 넘고 물 몇 개만 건너 오시면 돼요.”

호호호 당연 4륜이죠라고 자랑하고 싶은 걸 애써 참고 물었다.

방 있나요?”

방이야 있지만, 침낭 있으세요? 침낭 없으면 부르나이의 술탄이라도 재워줄 수 없어요. 대여 서비스? 그런 거 없어요. 여기 오시는 분이 그 쯤은 챙겨 오셔야지. 어머어머, 전기가 떨어지려고 하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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륜도 빌렸고, 값비싼 카메라도 빌렸으며, 한국에서부터 그 무겁다는 국민 삼각대도 짊어지고 왔으며, 트레킹을 하려고 고어텍스 등산화도 장만했고, 비에 대비해 레이캬비크 시장에서 어부 냉동창고 작업복도 샀으나 침낭이, 침낭이 없었다. 주말 벼룩시장이 열리려면 일주일이 남았고, 아이슬란드 대표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66’은 배낭여행자를 위한 초저렴 특가 침낭 같은 건 팔고 있지 않았다. 국제통화기금에서 돈을 꿔 올만큼 폭삭 망했으면서, 아직까지 반성의 기미가 없다, 이 나라는. 재워만 준다면 가져간 모든 옷을 다 껴입고서라도 잘 수 있는데. 여기까지 와서 침낭 하나 때문에 인랜드를 포기할 순 없었다. 일단 가 보는거야


아이슬란드 남부 링로드에서 랜드만날라우가로 가는
F225 도로를 탔다. ‘마지막 주유소라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물도 샀다. 칫솔부터 목장갑과 망치까지 모든 걸 다 파는 주유소 구석에는 불과 얼음의 땅 아이슬란드라는 아이슬란드 남부 공짜 지도가 있었다. 인랜드에 대한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빙하와 화산이 나란히 놓여있을 뿐 아니라, 가끔은 빙하 아래에서 화산이 폭발도 한다. 마그마 열기에 녹은 빙하물이 빙하 틈새를 타고 콸콸 흘러 내려와 빙하가 끝나는 곳에서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그게 빙하 홍수, 요쿨라훕이다. 아이슬란드 남부 스케이다라르는 1996년 요쿨라훕으로 도로 교량이 휠 정도로 큰 홍수를 겪었다. 스카타펠 국립공원 방문자 센터에 가면 당시 요쿨라훕의 동영상을, 근처 커큐백클로이스터 마을에 가시면 아이슬란드 주요 화산 다큐멘터리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같은 안내문이 붙어 있는 주유소를 뒤로 하고 우리는, 문명 세계를 떠났다. 눈 앞에는 막막할 정도로 검은 사막이 펼쳐져 있었다.


빙하호수 요쿨라훕이 궁금하세요? 클릭! 하늘에서 떨어지는 쓰나미 요쿨라훕


나는 이날, 그 동안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며 남발한 압도적이라는 말을 죄다 거둬들였다. 그 단어는 인랜드를 위해 아껴 놓아야 했었다. 무엇을 상상했든, 그 이상이었다. 수족관 바닥에서 건져 올린 것처럼 이끼가 덮인 돌들이 이어지다, 흰 눈이 설탕 가루처럼 내린 코코넛빛 언덕과, 마법사의 고깔모자 같은 뾰족한 산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또 나타났다. 갑자기 수백 수천마리의 양떼가 차 앞을 막아섰을 때엔, 눈을 비비고 이게 파타 모르가나는 아닌가 싶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파타 모르가나는 환상을 보는 일종의 북극 신기루다
. 갑자기 북극의 너무 차갑고 맑은 공기에 노출되면 거리 감각이 상실되는 형태로 종종 나타난다. 예전에 아이슬란드 북쪽 아큐레이리에서 비행기 한 대가 착륙하다 강물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을 봤다고, 그게 파타 모르가나라고 나는 우겨왔다. 이 양떼도 파타 모르가나가 아닌가 싶어 운전대를 잡고 있던 북극곰의 손을 꼬집으려고 했지만, 북극곰은 이미 양떼 속으로 뛰어들어 있었다. 평생의 꿈인 아이슬란드 목동이 되기 위해 양떼몰이 아저씨에게 인턴으로라도 써 달라 협상하려는 듯했지만, 그와 아저씨 사이엔 꾸역꾸역 양들이 360도 전방위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아무리 비포장도로라지만, 랜드만날라우가 산장까지 53킬로를 달리는 데 3시간이 걸렸다. 도저히 차창 밖으로 보는 데 끝내지 못하고, 문턱이 닳도록 차에서 내렸다 올랐기 때문이었다.



(자세히 보면 무지개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인랜드)

산장은 조그마했다
. 지리산이나 덕유산에서 볼 수 있는 국립공원 대피소 같은 통나무 집이었다. 사무실과, 숙소와, 화장실 겸 취사장까지 세 채였다. 노천 온천도 한 곳 있었는데, 아이슬란드의 전형적 온천답게 거짓말 같은 하늘색 물이었다. 몇 년 전 여기서 피부병을 일으키는 벌레가 발견됐는데, 구제하느라고 하긴 했지만 아직 남아있을지 몰라요. 온천할 분들은 알아서 하세요라는, 책임의식이 있다고 해야 할지 무책임하다고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안내판이 잉크가 물에 젖어 뿌옇게 된 채로 걸려 있었다. 기세 좋은 여행자 두 명이 웃통을 벗고 와다다다 달려와 온천물에 풍덩, 뛰어들었다. 역시 젊음은 피부병 따윈 두려워하지 않는다.


투숙객은 거의 없어 보였다
. 사무실 나무문을 열고 직원이 엉덩이를 흔들면서 다가왔다. “투숙하시게요? 2층 더블룸 보여 드릴까요? 어휴, 난방 다 돼서 따뜻해요. 침낭요? 저희 것 남는데 그냥 쓰세요. 오호호호.” 역시, 전화 문의는 많아도 투숙객은 거의 없나보다. 전기가 안 들어온다기에, 돌아가려는 듯 오버액션을 취하자 사무실 전원을 잠깐 빌려 주겠단다. 전봇대가 들어올 리 없는 이 산장은 태양열을 모아서 오후 730분부터 밤 10시까지만 전기를 공급한다. 당연히 인터넷도 안 된다. 부엌 오븐은 가스로 작동한다. 부엌에서 양초를 하나 훔쳐 19세기 남극 원정대가 된 심정으로 비장하게 일기를 썼다. 북극곰은 비상용 손전등을 켜고 랜드만나라구아 트레킹 지도를 연구했다. 직원한테 들켜 혼날까봐 창문에 담요를 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산장 밖으로 보이는 풍경. 수채화는 아니고..., 유채화 같은 풍경 아니겠습니까?)

다음날은 산장 옆 산을 트레킹했다
. “오늘 오를 산이라며 북극곰이 엄숙하게 손가락을 들어 해 뜨는 저편을 가리켰지만, 시멘트를 찌그러진 피라미드 모양으로 잘 쌓아 올려놓은 흙더미밖에 보이지 않았다. 300미터만 올라가면 된다고, 트레킹 가이드에도 1시간이면 올라갈 수 있다고 나와 있었다. 그런데 그 등산로라는 게, 정확히 피라미드의 빗변 위를 하염없이 걸어가야 하는 것임을 20분쯤 오른 뒤에야 깨달았다. 한 사람이 겨우, 그것도 미스코리아처럼 일자로 걸어가야 하는 길이었다. 빗면에는 풀 한 포기 나 있지 않았다. 내 발에 채인 돌들이 데굴데굴 굴러서 저 멀리 아득한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한 발짝이라도 헛디디면 내가 저 돌 신세가 될 판이었다.


새삼 아이슬란드가 얼마나 대담한 나라인지
, 피부병 뿐 아니라 관광객의 생명도 관광객 스스로에게 맡겨 놓은 나라임이 저절로 깨달아졌다. 유럽 최대의 폭포라는 데티포스에도 울타리 하나 없어 폭포 가까이 다가가 그 물에 손도 씻을 수 있는 나라 아니던가. 부들부들 다리를 떠는 내게 북극곰은, 여긴 모래밭이어서 떨어져도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위로로 보기 어려운 위로와 격려를 보냈다. 도대체 누가 이런 데 길을 내 놓은 것인지 그 사람을 원망하고, 이걸 등산로라고 실어놓은 트레킹 가이드 편집자를 원망하고, 이 길을 따라나선 나를 원망하고, 떨어져봐야 죽기밖에 더 하겠냐는 말을 문자 그대로 이해까지 했지만, 아직도 올라야 할 산은 까마득했다. 이 봉우리가 정상인가 싶으면 저 봉우리가 나타나고, 저 봉우리에 올랐다 싶으면 또 다른 봉우리가 고개를 내밀었다. 결국 오른 정상은 해발 900미터.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이었다. 어제 오후 우러러보던 랜드만나라우가의 복숭아빛 첩첩산이 발 아래 펼쳐져 있었다. 여기는 인랜드다, 사람아 너는 내려가라, 고 풍경은 웅변했다. 나는 그렇게 들었다. 마침 눈과 안개가 섞인 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등산로 표지판입니다. 그 뒤로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던 ㅠㅜ)


감당할 수 없는 적을 만난 병사들처럼
, 우리는 퇴각하기로 결정했다. 남측으로 돌아 랜드만날라우가를 빠져나가는 F208번 도로의, 역시나 불가해한 풍경이 발목을 잡았지만, 서둘렀다. 그렇게 쉽게는 보내줄 수 없다는 듯, 모퉁이를 틀 때마다 출렁이는 강물이 나타났다. 자동차의 기어를 1단으로 낮추고, 속력을 다해 건너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발목이 잠기는 얕은 개울부터, 자동차의 바퀴가 다 잠기는 개울까지 건너고 또 건넜다. 자동차가 강바닥의 한가운데를 뚫고 달릴 때면 물방울이 내가 앉아 있는 조수석 유리창까지 튀어 올랐다. 산장에서 만난 네덜란드 청년들은 두어 개만 건너면 된다고 했는데, 십여 개를 건넜는데도 또 개울이 나왔다. 네덜란드에선 자동차 차체가 푹 빠지지 않는 한 개울로 안 치는 건가, 얘들이 등산로 입구에서도 조금만 더 가시면 됩니다고 태연히 말하는 동료 등산객 모드로 말한 건가, 아니면 땅이 변한 건가.



(조심해서 강을 건너세요! 라는 안내판과 강 건널 준비를 하고 있는 우리의 이스케이프)

아이슬란드에서 강물 건너기 동영상-안 까먹으려고 하는 블로그가 안 까먹고 알려줍니다


마지막 개울을 건널 때 쯤에야 땅이 변한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혹시 오늘 아침 내린 눈에 개울물이 불어난 걸까. 잊을 만하면 화산이 폭발하고, 홍수가 나고, 강물이 생겼다 없어지고, 지각이 서로를 밀어내는 인랜드에서는 등고선과 갈림길을 꼼꼼히 표시한 대축적 지도가 의미가 없다. 그래서 길도 났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 또 난다. 포장도로로 들어서자 자동차 소리가 이상했다. 아무래도 아까 끝에서 두 번째 강을 건너다 부속을 하나 망가뜨린 것 같다.


Posted by orc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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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세연 2015.06.21 1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부좀 제대로 하시지....인랜드라니요... 당췌 내가 모르는 아이슬랜드 지명도 있나해서 봤더니 내륙지방을 말씀하시는거였구요..

    아이슬랜드 내륙지방을 부르는 말은 인랜드가 아니라 하이랜드입니다... 기자라고 하시는분이 여기는 가본사람이 없을거라는 거만한 태도로 글쓰시는거에 비해서 성의가 없으시네요.

    그리고 말씀하신 그곳은 아이슬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중에 하나이고 또 세계 3대 트레킹코스에 뽑히는 유명한 지역인데 뭐 혼자만 다녀온것처럼 자랑하시는 것도 그렇네요.

    • 홍성균 2011.07.24 15: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을 참 감정적이고 교양 없이 쓰셨네요. 최기자님한테 억하심정 있는 분인가요? 글을 보니 거만하고 한심하게 느껴지는 건 이세연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