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사비크에는 가로등에 점점이 불이 들어오는 저녁 무렵 도착했다. 민박집 주인인 엄마는 딸을 보러 갔다며, 70년대 미국 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단발 파마머리 아주머니가 나는 집을 봐 주러 와 있을 뿐이라며 문을 열어줬다 (즉 본인도 딸이다). 7년 전에도 후사비크에서는 민박집에 묵었다. 호텔이랄 게 없는 작은 바닷가 마을이다. 창틀에 올려놓은 가족들의 사진과 꽃 화분을 보니, 아무래도 이 집이 그 때 그 집 같았다. 창틀을 식탁삼아 도너츠와 커피를 놓고 먹은 기억이 났다.


골목에 나와 보니 그러나
, 집집마다 창틀에 화분이 올라와 있었다. 모두 민박집이었다. 딱히 간판이랄 것도 없고, 그냥 가정집 빈 방에 여름 한 철 손님을 받는다. 분필로 현관문에 ‘X’ 표시라도 그려야 하는 것 아닌가 심각하게 고려할 즈음 주유소와 편의점이 나왔다. 여기서부터 바닷가를 따라 식당, 여행사, 성당, 박물관, 문 닫은 보너스 마트, 공구점 같은 가게들이 쭉 나온다. 성당 맞은편 통나무집은 고래 관광 매표소다. 편의점에 분필은 없고, 콜라와 맥주 한 캔을 샀다.



(점점이 불이 들어오는 후사비크의 저녁 풍경. 빙하가 쌓인 산들이 오르카 등짝 같습니다)

후사비크고래를 보러 온 길이었다
. 예전부터 고래가 보고 싶었다. 누구는 현빈을 좋아하고, 누구는 ‘2PM’을 보고 싶어하는 것처럼, 나는 그냥 고래가 보고 싶었다. 기왕이면 송대관이나 설운도보다 공유나 이선균이면 좋겠듯이, 기왕이면 범고래 오르카면 좋을 것 같았다. 몸에 흰 얼룩이 있고, 지느러미가 우뚝한 대형 고래다. 다른 고래를 잡아 먹어서 킬러 웨일이라고도 하는데, 얼마 전 미국 올랜도 씨월드에서 조련사를 익사시킨 것도 바로 이 오르카였다. 영화 프리윌리의 그 고래다.



-오르카는 왜 조련사를 공격했을까.
Dying to entertain you
-조련사를 익사시킨 돌고래 틸리컴 이야기- 안까먹으려고 쓰는 블로그가 안 까먹고 알려주기를 클릭,
-돌고래쇼를 더 봐야 할까요. 영국엔 돌피나리움이 없다



프리윌리의 주연, 오르카 케이코의 고향이 바로 아이슬란드다. 아이슬란드 앞바다에서 잡혀 미국으로 팔려간 케이코는 각종 고래 쇼를 전전하다 헐리우드까지 진출하게 된다. 영화 속 윌리는 방파제를 뛰어 넘어 자유를 얻었지만, 현실 속 케이코는 영화 촬영이 끝난 뒤 수족관 속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 황당한 아이러니에 전세계가 프리 케이코(케이코를 풀어주세요)’ 캠페인을 벌였다. 결국 케이코는 자유를 찾았지만, 일평생 야생에서 한 번 제대로 살아보지 못했던 이 고래는 자꾸만 인간을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케이코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두 달 동안 먹지도 쉬지도 않고 헤엄을 쳐 북극해를 건너 노르웨이에 닿았다. 그리고 며칠을 시름시름 앓더니 죽고 말았다. 후사비크 고래 박물관에는 케이코의 안타까운 사연이 패널로 전시돼 있었다. 대학생들이 봉사활동 나온 김에 벽화라도 그려 놓고 간 것처럼 생긴 컨테이너 가건물이지만, 후사비크 고래 박물관은 유네스코로부터 상도 받은 세계 최고의 고래 박물관이다.



(정박되어 이는 두 척이 고래 탐조선이에요. '오늘은 안하니 내일 오세요')

고래 관광선은 이틀 뒤에야 탈 수 있었다
. ‘미리 공부를 하고 가겠다며 고래 박물관에서 종류별 고래 골격과, 고래의 한 평생과, 중세 괴물과 현대 고래의 대차 대조표까지 꼼꼼히 다 읽고 매표소로 갔지만, 후사비크 제 1의 고래 관광 여행사 노스 세일링날씨가 개어야 표를 판다며 기다리라고 했다. 박물관 기념품 가게에서 아이슬란드에서 보이는 다양한 고래들티셔츠를 사고, 길 건너 일반 기념품 가게로 건너가 웨일 와칭 가이드를 훔쳐보고, 텅 빈 성당에 들어가 고래 보게 해 달라며 간절히 기도까지 올렸지만, 후사비크 제 2의 고래 관광 여행사 젠틀 자이언트사람도 없고 고래도 안 보이니 내일 다시 오라며 매정하게 셔터를 내렸다. 3의 여행사는 없다. 이 두 업체가 후사비크 고래 관광을 맡고 있다. 고래가 꽤 잘 보이는 아이슬란드에서도 고래 관광 하면 후사비크다. 아이슬란드 고래 관광의 90%가 여기서 이뤄지고, 고래 관광객의 95%가 고래를 본다.


다음날 아침 노스 세일링의 고래 탐조선을 탔다. 아무래도 우리가 이 배의 평균 연령을 힘겹게 끌어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관광버스로 온 노인 단체 관광객 팀에 끼어 있었다. 무릎을 두드리며 배에 오르던 할머니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빛의 속도로 탐조복을 챙겼다. 3시간 동안 배 위에서 고래가 오시기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바지부터 모자까지 우주복처럼 하나로 연결된 탐조복이 준비돼 있다. 역시 노스 세일링친환경 방침이 있는 업체다. 탐조복은 십수년 째 재활용한 듯 솜도 튀어나오고 얼룩도 져 있었다. 다리 한 쪽에 두 다리가 다 들어가고도 남을 큼직한 탐조복을 질질 끌고 갑판을 구경했다. 배도 30~40년 된 낡은 포경선을 개조해 만들었다. 후사비크는 아이슬란드 11개 포경 기지 가운데서도 가장 고래를 많이 잡던 곳의 하나였다. 지금은 완전히 고래 관광으로 전환했다. 노스 세일링도 공공연하게 포경을 반대하며, 수익금의 일부를 국제 고래 보호 프로그램에 기부한다. 고래 박물관 연구자도 수첩과 쌍안경을 들고 고래 탐조선에 매번 동승한다.



(망망대하를 떠도는 경쟁사의 고래탐조선. 배가 거의 가라앉을 듯 갑니다)

그 많다는 포포이스 돌고래도
, 파일럿 고래도, 관광객 앞에서 펄쩍펄쩍 뛰어 오른다는 혹등고래도 모두 파업 중이었다. 2시간을 꼬박 망망대해를 떠돌았으나, 고래는커녕 암초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눈이 빠질 때 쯤 되자 머리에 빙하를 인 먼 산도 오르카처럼 보였다. 심심한 갈매기들만 배를 따라 날아오다 수면 위로 내려앉았다. 새우깡이 없어 아쉬운 대로 아이슬란드 초코바 니짜를 흔들어봤지만 갈매기들은 코웃음만 쳤다. 고래 목격 확률 95%라는 주장이 한국 기상청의 일기 예보 적중도 90% 주장과 비슷한 것임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당사자의 주장과 일반인의 체감 사이에 엄청난 거리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디든 한 방울이라도 비가 오면 예보가 맞은 것처럼, 고래의 등짝이든 지느러미든 물줄기든 뭔들 한번 어렴풋하게라도 보이면 고래를 본 거다. 그러나 이대로는 고래 그림자도 보기 어려워 보였다.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우리는 갑판 아래 선실로 내려가 어깨를 기대고 잠시 졸았다. 고래가 나타난 것은 그 때였다.


이렇게 쓰면 드라마틱해 보이지만, 실상은 갑판으로 올라와 잠시 하품을 하는 동안 마스트에서 망을 보던 가이드가 “3시 방향!”을 외친 것이었다. 거무스름한 그림자 비슷한 것이 비쳤다. 겨울 아침 종각역 비둘기떼처럼 오종종 모여 떨던 관광객들이 일제히 3시 방향으로 카메라를 들이댔다. 수면 위로 잠시 삼각형 모양의 지느러미가 보였다. 밍크, 일 것이다. “11시 방향!” 관광객들이 일제히 반대쪽 갑판으로 뛰었다. 배도 덩달아 기우뚱거렸다. 그러나 고래는 이미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배 아래로 잠수해 이 쪽에서 저 쪽으로 옮겨간 뒤 유유히 사라졌을 것이다. 북극곰이 가이드의 메가폰 소리에 선실에서 튀어나와 갑판으로 뛰어올라올 만큼의 시간이었다. 밍크 고래의 등짝 2초씩 두 번. 그것이 그날 우리가 본 고래의 전부였다.



(고래는 못 보고, 돌아오는 길엔 시나봉과 몹시 단 코코아를 나눠줍니다. 줄을 서서 먹고 있는 관광객들)

고래는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첨예한 환경 이슈다
. 아이슬란드는, 먹지도 않으면서 매년 100여마리의 고래를 잡는 포경 국가다. 주로 밍크를 일본으로 수출한다. 노르웨이, 일본과 함께 사실상의 상업 포경을 허용한 몇 안 되는 국가여서 전 세계 동물 운동가와 환경 운동가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의 모라토리움 선언에 따라 공식적으로 포경을 중단 했지만 계속 잡았다, 말았다 하다가 2007년엔 아예 과학적 목적의 포경을 허용했다. 그러나 이번엔 이미 포경에서 고래 관광으로 전환한 후사비크와, 아이슬란드 관광 업계와, 전세계 여행자들의 항의가 쏟아졌다. 더 많은 고래를 살려서 보여줘야 하는 고래 관광과, 고래를 사냥해서 줄이는 포경이 공존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실제로 그 해 아이슬란드의 관광 수입은 감소했고, 아이슬란드 정부는 수출용 고래는 안 잡고 내수용 고래만 잡겠다는 애매한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고래 고기가 딱히 인기있는 것도 아니어서, 내수용 고래는 좀처럼 팔리지 않고 있다.


다음날 우리는 흐발 피요르드 포경 기지로 잠입 여행했다. 흐발 피요르드 포경 기지는 현재 아이슬란드에서 유일하게 고래를 잡아서 해체하는 곳이다. 상업포경이 재개되면서 20년 된 낡은 기지의 먼지를 털어 다시 돌린다. 멀리 포경 기지가 보이는 곳부터 참을 수 없는 이상한 냄새가 공기를 타고 흘러왔다. 에스키모들이 고래를 잡아 뼈를 세워놓는 알래스카 해안의 고래 비린내도 아니고, 고래 고기의 냄새도 아니었다. 동물 기름을 34일쯤 끓여서 나오는 것처럼 메스꺼운 냄새였다. 자연스러운 관광객처럼 보여야 한다며, 실제로 관광객이지만, 우리는 브이자를 그리며 차례로 사진을 찍었다.



(철조망 안 쪽이 고래 기지에요. 바다도 손수건만큼 보입니다)

이 고래 기지는
1986년 포경에 반대하는 환경운동가로부터 테러를 당한 바로 그 곳이다. 그린피스 활동가 두 명이 몰래 잠입해 포경선에 구멍을 내고 유유히 사라져 아이슬란드 포경 업계를 국제 망신시켰다. 혹시라도 붙잡혀 고문 받다 차가운 레이캬비크 감옥에서 일평생을 썩게 될까봐, 우리는 수백 미터 거리에서 망원 렌즈로 몰래 사진을 찍고, 혹시 직원이 물어보면 가이드북에 있어 신기해서 와 봤다고 명랑하게 말하기로 입도 맞췄다. 론리플래닛 가이드북에 진짜로 한 줄 나오긴 나온다. 그러나 이 고래 기지는 그 뒤로도 보안에 있어 별 반성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공장 앞마당의 직원은 우리를 흘낏 보더니 호수로 물을 뿌려 마당을 쓸어냈다. 분홍빛 살점이 떨어져 있었다. 고래였다. 혹시라도 어제 우리 배 밑을 지나갔던 그 밍크일까. 혹시 그 아이의 친구나 동생은 아닐까. 바람에 진한 비린내가 실려와, 한 손으로 다시 코를 움켜쥐었다.



(창살 속으로 손을 넣어 몰래 찍은 고래 해체장 작업 풍경. 고래야 돌아와)


Posted by orc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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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kygirl 2011.02.09 02: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프리윌리의 고래이야기는 정말 슬프네요. 고래 대차대조표에서 빵 터졌습니다 ㅋㅋ 글과 사진 정말 잘 보다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