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렌터카에는 두 종류가 있다. ‘부자렌터카와 가난뱅이렌터카다. 공학적으로는 '4륜'과 '2륜'이다. 4륜은 아이슬란드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있지만 2륜은 포장도로만 달릴 수 있다. 그런데 그 포장도로가 아이슬란드를 한 바퀴 도는 일종의 해안도로, 링로드밖에 없다. 잊을만 하면 화산이 활동하는 내륙은 비포장이라기엔 한없이 오프로드에 가까운 길이 나 있다. 비가 한번 오면 길이 바뀐다. 새로 파인 구덩이도 지나가고 강물도 건너가야 한다. 도로 이름 앞에 ‘F’가 붙어 있으면 ‘Four wheel’, 4륜 전용이란 이야기다. ‘F285’-얼마나 여행자의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이름이란 말인가.


그러나
4륜 렌터카는 2륜의 2배값이었다. 레이캬비크에서 남쪽으로 가는 S1번 도로를 달리고 있던 우리의 빨간색 피에스타2륜이었다. 렌탈 계약서에는 “F도로를 절대 달리지 않는다도 들어 있었다. 털털거리는 소리 만큼은 4륜 못지 않았다. 시속 90킬로 정속으로 달리고 있는 우리 옆으로 부자’ 4륜차들이 빵빵거리지도 않고 추월해 지나갔다.



(아스팔트 도로만 정속으로 다리는 우리의 피에스타)


햇살과 비와 먹구름이 교대로 오가는 날씨였다
. 조수석에는 햇살이 비치고, 운전석 창 밖으로는 이름도 알 수 없는 실폭포들이 떨어지고, 차창 정면으로는 비가 뿌려대는 진기한 기상 현상들도 나타났다. 먹구름 아래 햇살이 낮게 스며들어 들판의 풀과 이끼들이 반짝거렸다. 카메라 플래시를 아래에서 터트린 것처럼 땅은 밝고 하늘은 어두운 풍경, 그 음산한 아름다움이 아이슬란드의 정서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멀리 차창 밖으로는 화산 헤클라가 따라왔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인지, 그 경계가 희미한 바다. 아릅답다고 생각합니다)


모자, 혹은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 활화산은 아이슬란드의 심장쯤 되겠다. 8세기부터 분출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헤클라1104년 크게 폭발해 근처 바이킹 거주지를 싹 쓸어버린 뒤 지금까지 적어도 15번은 분출했다. 100년 동안 줄기차게 연기를 뿜어대던 헤클라가 1947년 마지막 김을 힘겹게 뿜어내고 휴식에 들어가자, 사람들은 이제 드디어 헤클라가 활동을 중단했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 화산은 1970년 다시 한번 크게 폭발한 뒤 10년 단위로 폭발하고 있다. 다음번 폭발은 2010년이다. 헤클라는 16세기에 지옥의 입구로 결정됐다고 한다. 사람들이 모여 여기는 지옥의 입구, 땅땅땅’, 하고 정했다는 게 어이없지만, 그렇게 믿었을 만은 하다. 화산의 검은 연기와 재가 언제나 덮고 있어 헤클라의 정상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따금 까마귀떼라도 날아들면 지옥의 전령처럼 보였을 것이다.

 

지금은 씩씩한 트레커들이 정상까지 열심히 기어 올라간다. 8시간이면 지옥의 입구까지 간다. 정상에는 빙하가 있지만 화산의 열기 때문에, 혹은 8시간 산을 타서 온 몸에서 열이 나서, 전혀 춥지가 않다고 전해진다. 그 헤클라로 가는 입구 헬라에서, 우리는 계속 달려야 했다. 오직 4륜차만이 헤클라 입구로 갈 수 있다. 뒤따라오던 은색 부자차가 보무도 당당하게 좌회전 깜빡이를 켰다. 앞머리를 단정하게 자른 것처럼 착하게 생긴 아이슬란드 말들이 풀을 뜯다 말고 가엾다는 듯 우리를 쳐다봤다. 몇 시간 뒤 라키입구에서도 우리의 피에스타는 잠시 주춤하다 직진할 수밖에 없었다. ‘라키19세기 후반 폭발해 지구 반대편 일본의 농작물에까지 피해를 입혔다는 악명 높은 화산 아니었던가.


이대로 우리는 기름 떨어질 때까지 바닷가만 달려야 한단 말인가. 다음날 바닷가 마을 비크 뒷동산에서 자동차 성능 시험을 해 봤다. 원래 차란 것이 웬만한 곳은 달릴 수 있게 만들어진 게 아니었던가. 그러나 피에스타의 바퀴는 자갈밭 언덕을 채 20미터도 올라가지 못하고 헛돌았다. 엑셀을 밟으니 아예 푹 빠졌다. 결국 조용히 후진으로 언덕을 내려왔다. 이 자동차는 아이슬란드 렌터카 협회가 2륜차로 F도로를 달리지 못하게 하려고 개조해 내놨음에 틀림없다.


비크
는 작고 예쁜 마을이다
. 여기서 작다는 개념이 다른데, 아이슬란드 인구가 30만명이고 4분의 3이 레이캬비크에 산다. 나머지 대부분이 제2의 도시 아큐레이리와 제 3의 도시 에길스타디르에 산다. 그리고 나머지가 손으로 집어 휙 뿌려놓은 것처럼 점점이 바닷가에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다. 많으면 수백 명, 적으면 수십 명이 한 마을이다. 아이슬란드의 여느 바닷가 마을처럼 비크도 식당과 수퍼마켓도 겸하는 주유소가 마을의 중심지다. 커피숍을 겸해 여름에만 문을 여는 호텔이 한 곳 있고, 교회와 호스텔도 하나씩 있다.


이 작은 마을 앞바다는 미국의 한 여행잡지가 선정한
세계 10대 해변에 들어간다. 모래사장이 새카만, 몹시 보기 드문 검은 해변이어서다. 아스팔트를 갈아 뿌린 것 같은 새카만 해변 끝에는 비크가 자랑하는 기암 괴석 3점이 있다. 딱 애국가 화면에 나오는 촛대바위여서, 코끼리 바위, 신선암, 형제봉, 곰바위 등 현무암 해안 절경에 익숙한 우리 두 한국인 여행자의 눈길은 끌지 못했다.



(비크 전경. 언덕 중턱에 빨간 지붕의 교회가 있어요)



(세계적 사진작가의 포스를 풍기는 북극곰의 고독한 모습)


비크에서는 호스텔에 묵었다. 다음날 흐볼에서도 호스텔에 묵었다. 그 다음날 베루네스에서도 호스텔에 묵었으며 다음 다음날도 다음 다음 다음 날도 호스텔에 묵었다. 가난뱅이여행자이기도 했지만, 대부분 호스텔이 유일한 숙소였다. 아이슬란드엔 아직까지 쉐라톤도 래디슨 호텔도 없다. 여름엔 학생들이 빠져나간 학교 기숙사에 에다 호텔 체인이 깃발을 걸고 영업하지만, 그 외의 계절엔 전국에 30여개 점점이 흩어진 호스텔밖에 없다. 냄새나는 양말을 벗어 거는 독일인 트레커도, 미국 패키지 노인 관광객도, 역시 부자나라에서 와서 번쩍이는 4륜차를 끌고 다니던 일본인 커플도, 하루에 세 번씩 네놈은 차도 아니야라며 자동차를 구박하던 우리도 모두 평등하게 호스텔에 묵었다. 흐볼 호스텔 부엌에서는 낮에 트레킹을 하다 마주친 여행자들이 파스타를 끓이고 수프도 데우고 있었다.


호스텔 브로셔엔
식사 제공 가능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호스텔 주인 아줌마는 방 키를 주면서 그제서야 여름에만이라고 덧붙였다. 햇반과 3분 카레를 데우고, 물만 부으면 되는 냉동동결건조 김치찌개로 저녁을 차렸다. 한국에서 고이 공수해 온 김치찌개는 그러나 정말이지 아무 맛도 없었다. 썰매의 가죽끈을 끓여 국물을 마셨다는 프랭클린 선장과 북극탐사 대원들도 이 김치찌개는 꿀꺽꿀꺽 삼키지 못했을 것이다. 유효기간이 지난 김치 사발면에서 빼온 것 같은 김치를 질겅질겅 씹었다. 그 때 종일 마주치던 일본인 커플이 우아하게 두 손 가득 노란 비닐 봉지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섰다.


두 사람은 파스타를 만들어 식탁에 앉더니 와인잔에 콜라를 붓고 짠
, 하고 건배를 했다. 북극곰은 그들의 식탁 위에 놓여 있는 1.5리터 콜라병을 보며 꿀꺽 침을 삼켰다. 나도 꼴깍 침이 넘어갔다. 콜라 한 잔이면, 종일 젖었다 말랐다 퉁퉁 불은 발가락도, 얼었다 녹았다 추위에 떨었던 몸도 다 풀릴 것 같은데. 비포장, 그러나 피에스타가 간신히 기절하지 않을 정도로는 나 있는, 도로를 따라 3킬로를 들어와야 하는 흐볼엔 호스텔과, 주인 집과, 창고로 추정되는 건물 한 채밖에 없었다. 그 흔한 콜라 자판기도 없었다. 오후 7, 가장 가까운, 25킬로 떨어진 키쿠백야르클로시어에 있는 보너스 마트도 이미 셔터를 내렸을 시각이었다.


흐볼 호스텔 창문에는 한 사람이 거울처럼 투명한 바다 위에 서 있는 사진이 붙어 있었다
. 칠레 우유니 소금 사막처럼 하늘과 사람이 반으로 접었다 편 것처럼 바다에 비쳐 보인다. 육지가 둑이 되어 만들어진 이 얇고 아름다운 내해의 이름은 잉골프 쉐파디 라군 이었다. 자동차로는 갈 수가 없다. 그래서 여름에만 동네 농부가 돈을 받고 트랙터에 관광객을 태워 데려간다. 하늘이 파랗고 햇볕이 쨍쨍해야 저렇게 보인다는데, 다음날 아침에도 역시 비가 내렸다. 동네 농두 아저씨네 집 앞 노란 트랙터에도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차를 돌려 다시 링로드로 들어섰다.


 
(스카타펠 국립공원. 하트 모양의 호수입니다. 저 끝의 하얀 건 빙하에요)

트집을 잡자고 작정해서 잡는 그런 불평을 제외하면
, 아이슬란드는 아름답고, 여행하기 좋은 곳이었다. 브루나이의 술탄도 눈을 질끈 감아야 여행할 수 있을 만큼 비싼 곳이었다지만, 경제 위기 이후는 적어도 숙소와 비행기 값은 견딜만한 수준이 됐다. (아직까지 음식점과 여행지의 크고 작은 뮤지엄과 여행사는 좀 더 호되게 위기를 겪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렌터카는 편리했고, 호스텔은 편안했다.



(요쿨살롱의 수륙양용 관광차)


(요쿨살롱 입구 카페에서 파는 생선 수프. 맛있다고 합니다만, -_-)



(빙산들이 둥둥 떠 있는 요쿨살롱입니다. 꽤 괜찮아요)


스케이드라르산두르를 가로질러 왼쪽 차창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빙하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며
, 우리는 잠깐, 알래스카에 넋이 팔려 아이슬란드를 버려 두었던 지난날들을 짧게 반성했다. 스카프타펠 국립공원 에서 요쿨살롱 까지 100킬로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빙하 드라이브 루트였다. 아이슬란드 남부를 덮고 있는 바트나 요쿨의 손가락이라는 작은 빙하들은 끊어지면 또 나타나고 끊어지면 또 나타났다. 빙하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어떤 빙하들은 가까이 다가가, 빙하 앞에 고여있는 호숫물에 발을 담글 수도 있었다. 요쿨 살롱에서는 노란색 수륙양용 오리버스를 타고 수십 수백 개의 빙산으로 다가갔다. 짙은 먹구름 사이로 햇살이, 잊고 있었다는 듯 비쳐들면서, 빙하가 파랗게 빛났다. 얼음을 건져 조금 잘라 씹어 먹었다.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Posted by orc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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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1.20 1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두번째 사진... 환상적이네요.

  2. skygirl 2011.02.09 02: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너무 재밌어요 ㅋ 아이슬란드 검색하다 왔어요 가보고 싶은 곳이네요 :)

  3. Ray 2011.03.03 05: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재밌네요 ㅋㅋㅋ
    혹시 책으로도 출판이 되었나요? 아님 혹시 계획은 없나요?

  4. Ray 2011.03.11 2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럼요 기꺼이 사드리고 광고까지 할 생각인데요 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