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에코 롯지'들은 대체로 부담스럽도록 럭셔리 하거나, 무섭도록 비싼 것일까. 나도 언제나 그게 궁금했다. 조금 웃돈을 더 내더라도 '친환경' 숙소에서 자고 싶은데, '친환경 숙소'라는 곳들은 언제나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


이따금 특급 호텔들이 어디어디가 선정하는 '친환경 숙소' 인증을 받았다고 하지만, 건물 디자인이 자연을 닮았다든가, 뭐 욕실에 스파 용품을 갖다 놨다든가 그런 식이었다. 특급 호텔 욕실에 '물과 전기를 아끼기 위해 수건을 다시 쓰시려면 랙에 걸어주세요'라고 적혀 있는 걸 본 적이 있는데, 그 옆에 일회용 샴푸와 비누들, 여름엔 춥고 겨울엔 더운 냉난방, 펑펑 쓰는 물 같은 걸 생각하면, 뭐 그다지 다시 랙에 걸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하룻밤에 수십만원이라는 가격이 더 무서웠다.


해외 여행의 소위 '에코' 숙소들도 마찬가지다. 열대우림을 베어내고 거기 지은 다국적 기업의 화려한 리조트라든가, 히말라야 산자락에 들어앉은 별 다섯 개짜리 호텔이라든가, 그런 곳들이 소위 '에코 롯지'를 지향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안다. '에코투어'라는 것이 지역 주민에게는 중요한 수입원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조금 돈을 더 쓸 자세가 되어 있는 관광객들을 위해, 럭셔리한 숙소를 지어놓고, 많이 쓰시도록 해 지역에 도움이 되도록 하자는 거다. 그러다 보면 말만 '에코'지 사실은 숙소가 환경을 파괴하는 일도 수없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다. 그리고 사실, 다국적 기업의 숙소는 지역 주민에게 그럴싸한 일자리도 못준다. 어쨌거나,


지난번 아이슬란드 여행을 하다가, 호스텔들이 '환경 강령'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이슬란드는 세계 최북단에 있는 섬나라 가운데 하나인데, 남한 정도 크기다. 크지 않다. 섬의 대부분은 화산과 빙하로 덮여 있어서, 싹 난 감자같이 생긴 섬을 한바퀴 도는 '링로드'를 제외하면 변변한 도로도 없다. 아이슬란드 여행자들의 필수 코스는 이 링로드를 따라 한 바퀴 도는 거다. 일주일에서 열흘 걸린다. 30만명밖에 살지 않는 섬인데다, 인구 4분의 3이 수도 레이캬비크에 모여 있기 때문에, 사실 이 링로드에 있는 마을 대부분은 200명, 300명이 사는 조그만 마을들이다. 변변한 숙소가 있을 리 없다. 대신 농가나, 가정집을 개조한 '호스텔'이 있다. 그것도 많다.


아이슬란드 호스텔 연맹 지도


아이슬란드 호스텔 연맹에서는 1999년 환경 강령을 만든 모양이었다. 호스텔마다 게시판에 이 환경 강령이 붙어 있다. 대체로, "자연과 여행에 대해 책임있는 여행을 할 수 있도록 호스텔 주인인 우리와 여행자들이 함께 힘쓰자"는 취지다. 쓰레기를 줄이고, 재활용을 하고, 지속가능한 여행과 환경에 대해 인쇄물과 대화로 알린다... 등등이 내용이 붙어 있다. 매년 '친환경 호스텔'을 선정해 상장도 준다.







비크의 호스텔에 붙어 있던 친환경 강령. 역시 친환경 숙소답게 불 때주는 데 인색했다. 담요 덮고 시트 둘러도 너무 추워서 밤새 벌벌 떨었다는...ㅠㅠ






아이슬란드 제 1의 관광지 중 하나인 스카타펠 폭포 근처의 흐볼 호스텔의 부엌. 쓰레기를 분리 수거하라고 돼 있다. 이 분리수거가, 우리나라는 일상화 돼 있는 편이지만 미국이나 유럽에 가면 보기 힘든 경우가 많다. 아이슬란드가 조그만 섬나라라는 걸 생각하면, 정말 애 쓰는 거다.






우리도 파스타를 끓여 먹고, 쓰레기를 시키는 대로 잘 분리해서 집어 넣었다. 다른 여행자들이 조용하게 쓰레기를 고분고분 분리 수거하는 것을 보면, 뭔가 나도 그래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 휩쓸리는 법이어서...이 호스텔 역시 아이슬란드의 다른 숙소와 마찬가지로 '뚝' 떨어져 있다. 밥을 안 주는데, 가장 가까운 수퍼는 25킬로 떨어져 있다.





이런 깜찍한 사인도.





이거 마음에 들었는데, 읽은 책 꽂아두고 읽을 책 가져가세요 코너. 호스텔마다 있긴 한데, 보통 책등이 다 갈라진 SF 소설이나 촌스런 옛날 배우들이 표지에 등장하는 책들이 많다. 그런데 여기는 꽤 읽을만한 책들이, 주인이 애써 골라놓은 자세의 책들이 꽤 있었다. 다른 '친환경 행동'들과 디자인을 맞춘 것도 예뻤다.



그 밖에 '생수 대신 아이슬란드 물을 드세요. 진짜 깨끗하답니다' 라든가, '카풀을 이용해서 여행하세요' 이런 조언들도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는...






또 다른 인상적인 친환경 호스텔이었던 후세이 호스텔. 후세이는 아이슬란드에서도 가장 구석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메인 도로인 링로드에서 비포장길로 30킬로미터를 들어오면, 이 집과 주인집 한 채가 있다. 그게 전부다. "끝까지 가도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매력" "참을 수 없는 고독을 만나고 싶으면 여기로 가셔라"고 가이드북에도 나온다.


정말이지 아무 것도 없었다. 까치발을 하고 내다봐도 멀리 보이는 것은 수평선과, 수평선이 아니라면 막혀 있는 산들 뿐이었다. 엄청나게 많은 새와, 물범과, 양과, 말들도 함께 있긴 했다. 이 고독함과 쓸쓸함이 무서워서, 배낭을 메고 걸어오는 다른 배낭 여행자 두 명의 그림자만 보고도 기뻐서 박수를 쳤다.







그런데 이 작은 호스텔도 나름대로 분리 수거를 하고 있었다. 우유팩도, 깡통도 다 따로 버린다. 심지어 '적십자 주게 헌 옷은 여기 담아 주세요'도 있었다. 호스텔 주인 겸 농부를 겸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커플은 정말이지, 애쓰고 계셨다. 그물 쳐 놓고 생선도 잡아야지, 물범 잡아 가죽도 벗겨야지, 닭알도 줍고 젖소도 짜고 건초도 말리고, 틈틈이 털실로 옷도 짜야 하는데, 이렇게 나름 노력하시는 거다.






거기다 나름, 유기농 식품도 있었다. 아이슬란드 유스호스텔 가이드북에는 ‘후세이 유스호스텔엔 주방 용품은 있지만 음식을 살 데는 아무데도 없다"고 적혀 있었다. 호스텔 벽에 붙여놓은 농장 물품 리스트에서 약간의 먹을 것을 살 수는 있다. 물범 고기라든가, 농장에서 갓 짠 우유라든가, 계란이라든가, 물범 가죽이나 양털이나 그런 것들을 나쁘지 않은 합리적인 가격에 판다.






베란다를 개조해서 만든 거실. 풍경도 몹시 훌륭하다. 낮에는 채광이 좋아서 따뜻하기도 하다. 벽에는 아저씨가 잡아서 말렸다는 물범 가죽과, 양털과, 손으로 짠 듯한 스웨터와 순록의 두개골과 뿔들이 여기 저기 널려 있었다. 데코레이션으로 게에 실을 달아 걸어놓은, 매우 특이한 장식품도 보였다. 방마다 걸어 놓은 그림이며, 사진들도 예사롭지 않았다. 집 주인들이 직접 찍은 사진에 종이를 덧붙여 만든 엽서들도 보였고, 손으로 쓴 버드와칭 가이드 월페이퍼도 있었다.



그리고 이날 밤 호스텔 창문에 코를 박고, 북쪽 하늘에 떠오르는 오로라도 봤다 (자랑).



호스텔 계단 옆 벽에는 이렇게 '상장'이 붙어 있었다. 이 후세이의 작은 호스텔은 아이슬란드 호스텔 연맹이 선정한 '친환경 호스텔' 가운데 하나다. 할 수 있는 만큼, 소박하지만 착하게, 노력해 보는 것. 이런 게, 친환경 호스텔이 아닐까. '친환경 숙소'라는 말을 들으면, 아무에게라도 후세이 호스텔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진다. "내가 말이지, 이상한 호스텔에 간적이 있는데 말야...,"

 


Posted by orc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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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갈매 2010.12.09 2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베란다에 누워계신 모델은 남*군? 아니 저 뒤로 보이는 풍경이 너무 멋진데.. 이거 막 가고 싶어지잖아!!! 저래서 북반구에 가는 거였던거야?? 아아아. 오로라~~~
    후세이 호스텔의 주소는? 홈페이지는 없는가? 물범고기의 맛은 어때? 너무너무 궁금한게 많다. 답하라 오바.

  2. 쏘댕기자 2010.12.30 1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BBC에서 스웨덴의 tree hotel이 나왔는데, 친환경이라고 하나 무지 비싸보였다오. 아직은 3개 뿐이고, 앞으로 5년간 비행접시 모양(!)을 포함해 24채를 더 지을 거라 하는데... 줄서고 비싸면 난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