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0

안동 봉정사는 '봉황이 닿았다' 이름을 갖고 있는 절이다. 부석사를 짓던 의상대사가 종이로 봉황을 접어서 날렸는데, 그것이 고개 너머 안동 천등산에 떨어져 그 자리에 절을 지었다는 것이다. 이 천등산이란 이름은 '하늘의 등불'이라는 뜻. 이 절에서 홀로 수도하던 스님을 위해 하늘에서, 반딧불이나 눈같이 사소한 것 대신, 대범하게 선녀와 등불을 내려줬기 때문이다.

 

국화차를 따라주며 이 황당한 창건설화를 이야기하던 봉정사 귀일 스님은 잠시 말을 멈추고, "웃기지요?"라고 말했다. 나는 의상이 접었다는 종이 봉황은 어떤 모양이었을까, 얼마나 종이접기의 달인이 돼야 봉황씩이나 접을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근데, 나는 믿어요. 진짜로."

 

귀일스님은 25년전 머리를 깎고 절로 들어왔다. 젊고 혈기 왕성하던 청년 중 시절, 다른 스님들이 하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코웃음을 쳐댔단다. 그러나 지난 25년간 그는 수없이 많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봤다. 그러면서 세상엔,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고, 어찌할 필요도 없는 일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삼국유사요, 그거 순 뻥 같지요? 김알지가 알에서 태어났다고? 사람이 어떻게 알에서 태어나노.(손바닥을 내보이며 으쓱). 그런데, 지금 저는 믿어요. 김알지가 진짜로, 진짜로 알에서 태어났을 거라고."

 

귀일스님은 '기와장에 그림 그리는 스님'으로 꽤 유명하다. 신문이나 방송에도 이미 많이 나왔다. 스님은 지난해 봄 봉정사 앞에 팔각형 모양의 찻집 겸 기와그림전시관을 지었다. 스님이 그림을 굳이 전시, 판매할 것까지 있냐 싶었지만, 여튼 지었단다. 스님이 무슨 돈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사재 8억원을 털었단다.

 

이 혈기방장한 스님이 "국화차는 숙취해소에 그만" "안동 간고등어 간재비는 간고등어 공장의 공장장" "이 땅 아도쳐서 사봐야 몇억밖에 안하는데" "안동 간고등어와 국화차는 번들로 팔아야 한다"고 말할 때 나는, 몰래 고개 숙이고 웃느라 혼이 났다. 그러면서, '말말말'로 써도 좋을 스님의 화려한 이야기들 중에서, "나는 믿어요, 진짜로"만은 기억하기로 했다. 나도, 믿고 싶으니까, 진짜로.

 

이 손은 스님의 손이다. '매스컴 마인드'가 발달한 스님은 "기왕이면 예뻐 보여야 한다"며 국화를 가득 넣고 차를 따랐으나, 차 주둥이가 국화에 막혀버렸다. 스님은 과감히 주둥이를 입으로 불다가 "앗뜨거거거거" 하며 '방정'을 떠셔야 했다. 스님은 위엄을 갖춰 "다선앵아, 다선앵아, 다건 좀 가져와봐라"고 했고, 그 '다선앵'은 "스님, 걸레밖에 없는데요"라며 엉덩이를 흔들고 달려왔다. 가을 햇살이 따스하던 찻집 '만휴'의 오전이었다.


Posted by orc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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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갈매 2010.10.28 1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더운 물에 부푼 국화꽃송이가 참으로 몽글몽글, 탱글탱글~
    정성가득 담아 만든 차 같습니다.

    근데 스님. 너무너무 웃기세요~~
    차 주둥이가 국화에 막혀버려 과감히 입으로 불었다는 대목에서 저도 모르게 푸하하하 웃음이...
    게다가 다건이 아니라 걸레라니..
    다선앵아, 다선앵아는 '다선생'의 경상도 사투리인건가요??

    넌픽션인지, 픽션인지 헷갈릴 정도로 재밌었습니다~ ^^
    안동.. 가게 되면 만휴스님, 저도 찾아봐야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