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파나마에서 열리는 국제포경위원회(IWC) 에서 과학적 목적의 포경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했죠. 그 소식이 채 우리나라에 알려지기도 전에 전세계로 빠른 속도로 타전됐습니다. 미국 국무부도 성명을 발표하고, 호주와 뉴질랜드도 '좌시할 수 없다'고 강력하게 반대 뜻을 밝혔지요. 특히 호주는 주한 호주 대사를 시켜 항의도 하면서 펄쩍 뛰고 있지요.

왜 그럴까요? 왜? 다른 나라도 아닌 호주가 그렇게 펄쩍 뛰는 걸까요? 호주가 유난히 자연보호 의식이 높은 '선진국'이어서 그럴까요?

 

(바로 이 분이 한국의 포경 재개를 강력 반대하시는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십니다. 사진은 연합뉴스)

 

호주가 전세계에서 가장 동물과 자연을 사랑하는 나라여서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뭐 호주는 광활한 대자연이 있으니까 좀 사랑할 것 같긴 합니다만, 그런 이유로 외교 분쟁을 불사하지는 않겠죠. 그보다는 한국이 일본처럼 되는 건 아닌가 싶어 경계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일본이 과학 목적으로 매년 밍크 1000마리를 남빙양에서 잡고 있습니다. 남빙양이 어디냐, 남극해입니다. 호주 앞...은 아니고 뒷바다죠. 일본의 포경 때문에 호주 인근의 밍크 고래가 줄어들고 있고, 이건 호주의 고래 관광 산업을 위협하는 거죠.

 

호주는 뉴질랜드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고래관광이 발달한 곳 중 하나입니다. (네, 호주와 함께 뉴질랜드도 한국의 포경 재개에 펄쩍 뛰었습니다) 지금에야 그렇지만 호주도 우리나라처럼 예전엔 고래를 잡았답니다. 호주가 본격적으로 포경에 뛰어든 것은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일인데요, 10년 정도 잡다가 고래 개체수가 현저히 줄어들면서 그만뒀죠. 그러다 90년대 초반부터 고래 관광으로 전환합니다.

 

슬그머니 시작해 본 고래 관광은 엄청난 수의 관광객을 불러들였습니다. 호주 고래 관광객이 91년에 33만5200명이었는데, 98년에는 2배가 넘는 73만5000여명으로 늘어납니다. 고래를 돈으로 세자니 좀 아니다 싶지만 어쨌거나, 98년 고래 관광 수입이 직접 수입만 1187만 달러, 호텔이며 교통편이며 해서 간접 수입까지 합치면 5600만 달러였습니다. 고래 아마 지금은 몇 배 이상 늘었을 겁니다. 이 조사를 하신 국제야생동물보호기구(IFAW)의 호이트 박사께서 2001년 이후로 조사를 안 하셔서...ㅠㅜ 이 분은 스코틀랜드에 사시는데, 언젠가 아마존으로 이분 책을 샀더니 본인이 직접 파시는 거더라고요. 어쨌거나, 고래를 잡아서 이용하는 것보다, 살려서 이용하는 게 이익이 된다는 거죠.

 

이렇게 포경에서 고래 관광으로 탈바꿈한 대표적인 지역이 바로 탕갈루마 리조트 입니다. 요즘은 한국인 신혼 여행객들도 많이 간답니다. 심지어 홈페이지에 한국어 버전도 있습니다. 호주 북동부, 브리스번 근처의 모튼이란 섬에 있네요. 인터넷에 탕갈루마 리조트 쳐 보시면, '야생 돌고래 먹이 주기는 꼭 하고 오세요' 뭐 이런 것 나옵니다. 이 리조트의 대표적인 상품이 고래 관광 보트를 타는 것과, 돌고래 먹이 주기 두 가지죠.

 

 

(네 여깁니다. http://www.qldtravel.com.au)

 

 

(탕갈루마 리조트 근처에서 보이는 고래. 등지느러미로 보니 밍크인 것 같습니다. 바로 우리나라 연근해에서 많이 보이는 고래도 밍크죠. http://www.whalewatchingqueensland.com.au)

 

이 탕갈루마 리조트는 사실 호주 최대의 포경 항구였답니다. 포경기지가 1952년에 세워졌는데, 그 뒤 10년간 혹등고래만 6700여마리를 잡아들였죠. 지금 탕갈루마 리조트 관계자들이 이 사실을 상기하면 땅을 칠 겁니다. 혹등고래가 고래 관광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멋진 고래 중 하나거든요. 몸집도 커서 15-20미터쯤 되고 (밍크는 4-5미터 '밖에' 안됩니다), 물 위로도 펄쩍 펄쩍 잘 뛰어올라요. 고래 관광 사진에 항상 나오는 바로 그 고래, 이겁니다.  

 

(멋진 혹등고래 입니다. 위키피디아에서 퍼왔습니다)

그러나 포경으로 혹등고래는 씨가 말라버렸죠. 포경 기지가 세워진 52년만 해도 1만여마리가 있었다는데, 60년대 이후엔 300 마리도 안 남았다고 합니다. 대부분은 잡혔고, 일부는 '내 이 땅, 아니 이 물을 다시 밟나 봐라' 면서 박해를 피해 떠났겠죠. 고래는 영리한 동물이니까요. 어쨌거나 60년대 이후엔 고래가 안 보였고, 포경기지는 문을 닫았습니다. 원래 풍경이 나쁜 곳은 아니어서 그 뒤로 관광 산업을 좀 해 보려고 했지만 쉬원찮았죠.

 

그 탕갈루마 리조트가 고래 관광지로 바뀐 것은 1992년입니다. 현재 이 리조트를 운영하는 회사가 망해 가던 숙소를 사 들여서 업스케일 휴앙지로 대대적으로 리모델링 했습니다. 지금 리조트 자리가 바로 포경선 선원들의 숙소 자리입니다. 인터넷 블로그를 보면 탕갈루마 리조트 부두에서 배를 탔다, 비치에서 맥주 한 잔 했다, 이런 이야기 자주 나오는데, 그 부두가 바로 50년 전 포경선을 정박시키던 항구입니다. 리조트에서 고래 관광 보트도 운영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고작 30년 안 잡은 걸로는 고래 개체수가 회복이 안 됐나 봅니다. 고래 목격 확률이 조금씩 높아지긴 했지만 허탕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리조트가 고안해 낸 게 '야생 돌고래 먹이 주기' 였습니다. 근처에 돌고래가 좀 보인다는 사실에 착안해서, 해변에서 먹이 들고 기다리고 있는 거죠. 영리한 돌고래는 밥 때가 되면 공짜 밥을 찾아서 잘 찾아왔습니다. 먹이도 먹고, 관광객과 눈인사도 했죠. 이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탕갈루마 리조트의 대표 상품이 됐습니다. 덕분에 탕갈루마 리조트도 친환경, 친동물, 에코투어의 선봉 뭐 그런 이미지를 갖게 됐죠. (이거 뭐 리조트 광고를 하는 기분이...ㅠㅜ) 더불어 호주 전체가 캥거루와 고래와 월러비를 사랑하는 나라, 자연의 나라 뭐 이렇게 인식됩니다.

 

(바로 이 프로그램입니다. 저도 꼭 해보고 싶어요 흑흑 http://www.tm6.net/travel/whale-watching-at-tangalooma/)

 

호주가 남의 나라 포경 재개에 펄쩍 뛰는 건 바로 이런 이유와 경험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고래를 죽여서 이용하는 것보다 살려서 이용하는 것이 훨씬 이익이 된다는 거죠. 우리나라가 과학 목적으로 포경을 재개한다고 해서, 일본처럼 당장 남빙양까지 달려가 고래를 잡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일단 포경을 허용하면, 우리나라 주변에서 남빙양으로 영역이 확대되는 것은 순간일 겁니다. 그러니 호주가 펄쩍 뛰는 것 같습니다. 고래가 죽은 고래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걸 그들은 경험적으로 배웠으니까요.

 

사실 우리나라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2009년부터 울산 장생포에서 고래 관광 을 하고 있답니다. 고래를 살려서 이용하는 관광을 하면서, 동시에 고래를 죽여서 이용하는 고래 고기를 파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형태의 고래 관광지입니다. 정부의 포경 선언 이후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보면 '고래가 불쌍해요' '왜 포경을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런 글들이 많은데, 그렇다면 울산으로 고래 관광을 가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관광객 백만명이 살아있는 고래를 보러 오겠다는데, 정부가 포경을 재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장생포 고래 관광, 나름 재미가 있습니다. 장생포 고래 탐조 배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싼 고래 탐조 보트 여행일 겁니다. 외국에서 고래 탐조배 한 번 타려면 한 사람이 100달러는 쥐어야 하는데, 여긴 2만원입니다. 물론 배가 엄청 크고 (대신 큰 배는 덜 흔들리는 장점이...) 갑판이 한낮의 가요무대로 바뀌는 (뒷 갑판으로 피신하면 됩니다) 단점이 있긴 하죠. 고래가 잘 안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고래 탐조 관광 자체가 원래 그렇습니다. 세계 어디서나 고래 관광을 하면, 운이 아주 좋지 않은 이상, 아마 고래의 등짝을 잠깐 보거나, 고래 그림자 비슷한 걸 보는 정도에 그칠 겁니다. 또 모르잖아요? 고래가 떼로 나타나 주실지도. 저는 장생포에서 관광 탐조선 세 번, 조사선 한 번 이렇게 네 번 배를 탔는데, 한번은 밍크 보고, 다른 한번은 바다의 이 쪽에서 저 쪽 끝까지 메운 돌고래 떼를 봤습니다.

 

돌고래 쫓아가다 월북할 뻔한 이야기는 여기를 클릭! 허접하지만 돌고래 동영상도 있습니다

 

(고래 바다 여행선입니다)

 

그리고 다른 자잘한 재미들도 있습니다. 고래 박물관이 있는데 -환경단체들은 포경 박물관이라고 걱정하는 곳이기도 하죠 - 여기서 우리나라 포경의 역사와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포경사가 재미있었는데, '반구대 암각화에 고래가 나온다' 그 다음이 '1900년대 일본이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포경을 시작했다' 입니다. 중간에 서너 줄 더 있긴 하지만, 고래가 목격됐거나, 어떻게 이용했다는 거지, 고래를 잡았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목격됐다는 것과 포경을 했다는 건 좀 다른 문제죠. 아, 1900년대 초반에 노르웨이 포경 선원이 장생포에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을 겁니다. 세상에 그 분은 어떻게 까마득한 그 시절에 '세상의 끝'에 오셨을까요.

 

(고래 박물관 전경이에요)

 

(고래 생태체험관입니다. 살아있는 돌고래가 전시돼 있는 곳이죠)

 

(장생포 부두의 고래 고기 전문점 중 하나입니다.)

 

장생포에서 고래 관광을 하시고 나면 많은 분들은 복잡한 심정이 되실 것 같아요. 저도 그랬거든요. 고래를 해체하는 사진도 한 장 걸려 있었는데, 전시하는 입장에선 지역 문화로 걸어 놓으셨겠지만, 그걸 '살해 장면'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거고요. 어쨌든 장생포에서 1900년대 이후 고래를 잡은 것은 사실이고, 그것이 지역 문화의 일부인 것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고래 고기 식용 문제 때문에 장생포가 겪은 우여곡절도, 지금의 포경 재개 논란도 바로 그 문화의 일부일 것 같고요. 그렇지만 우리가 멸종 위기에 있는 야생동물을 전통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서라며 잡아도 되는 걸까요? 아니, 멸종 위기에 있지 않다 하더라도 그런 대형 포유류를 잡아도 되는 걸까요? 혹시 우리가 고래를 보호한다면서 장생포의 주민들을 '아직도 고래고기를 먹는 사람들'이라며 따돌리고 있는 건 아닐까요? 혹시 고래 고기와 포경은 이제는 청산해야 할 우리 모두의 역사적 과거는 아닐까요? 

 

장생포에서 관광객들은 지역 문화, 전통 문화, 지역 개발, 우리의 일부인 자연, 살아있는 생명의 보존, 수족관에 갖힌 돌고래, 식민지 문화 이런 것들에 대해, 고민하게 되실 겁니다. 바로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바로 지금의 장생포에 가는 거죠. 그리고 그런 (머리 아픈) 여행이 내 삶의 방식을 바꾸고, 그런 여행자가 십만명 백만명이 될 때 우리 문명의 방향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여행은 힘이 세니까요.

 

참, 고래 고기는 아마 못 드실 거에요. (다행히도) 비쌉니다 ㅠㅜ. 고래가 아니어도 식당에는 이것 저것 많이 팝니다. 저는 부둣가 어디에서 자장면을 먹었는데, 그게 어찌나 맛있었는지 지금도 가끔 생각 납니다.

 

 

장생포 어딘가 벽에 그려져 있던 그림입니다. 초등학생들이 그린 고래 그림이랍니다. 나와 도요새와 상괭이가, 그리고 울산 앞바다의 밍크 고래와 돌고래가 함께 행복한 세상, 괜히 뭉클한 그림입니다. 그런 세상을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Posted by orc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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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딸기 2012.07.07 1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재밌다. 언젠가 기사로 쓴 적이 있긴 한데, 아주 짧게 건드리느라고 제대로 보지를 못했는데...
    역시 고래전문가가 설명해주니 다르네! 호주의 돌고래 관광은 정말 꼭 해보고 싶다 ㅠ.ㅠ
    (참 그런데 '국무성'->국무부. 국무성은 일본 표현... 지금은 국무성, 수상, 이런 말 안 씀)
    근데 왜 울나라가 포경산업 하겠다고 저 난리인지... 하는 짓이 어째 허구헌날 그 모양인지...

  2. 쎾쓰 2012.07.08 0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쎾쓰

  3. 이인숙 2012.07.09 1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배, 글 너무 잘봤어요...지금 이 상황이 한눈에 이해되는. 때맞춰 넘 잘올려주셨어요^^ 열씨미 여기저기 알려야겠네요.

  4. Ray 2012.07.14 0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의 글 반가웠어요^^
    들어올때마다 업뎃은 안되있나 궁금햤는데 오랜만에 기자님 글 보니 넘 즐겁게 읽었답니다^^ 며칠전엔 경향에 연재하신 북극권 나라 이야기를 정주행 했더랬죠 ㅋ
    고래 포경 뉴스는 얼마전 봤었는데 호주가 반대하는 이유가 있었군요. 전 왜 반대하나 했는데 속사정이 따로 있군요. 늘 깊이 있고 좋은정보를 재밌게 풀어주시니 좋네요^^
    아직 영국에 계시나요? 한국은 이제 장마 아닌 우기로군요. 늘 건강 조심하시길 바랄게요. 아참, 글도 자주 뵈었음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