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자락, 전남 구례에 가면 멸종위기종복원센터라고 있는데요, 거기 가면 반달 가슴곰들이 살고 있습니다. 뭐 옛날부터 살아온 아이들은 아니었고, 지리산에 반달곰을 복원하면서 풀어놓았다가, 적응 못해 '반품'된 곰들입니다. 올해 초에 이 아이들끼리 새끼 한 마리를 낳았는데, 그 새끼를 지난 1일 지리산에 풀어줬답니다. 그래서 며칠전인 10월 7일자에 신문 기사로도 썼죠.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10061353401&code=940701


이번에 풀어준 반달가슴곰은 수컷인데요.. 이름이라기 보다는 관리번호가 KM31 입니다. 예전엔 곰들에게 '천둥이' 네, '칠선이'네 이름을 붙여 줬는데 요즘은 이름을 붙이지 않고 번호로 부른답니다. 곰은 사실 야생동물인데. 우리가 곰한테 이름을 붙이고 사람처럼 대하는 것이 곰한테나 우리한테나 좋지 않다는 판단에서죠. KM은 아마도 Korea Male의 약자일 겁니다. 이 곰의 엄마곰은 'RF-04'인데 그건 Russia Female의 약자거든요. 러시아에서 온 암컷인거죠.

엄마곰은 2004년 지리산에 방사를 했다가 적응 실패로 회수됐다고 합니다. 다른 곰들이랑 놀지 않고 자꾸만 사람을 졸졸 따라다녀 등산객들을 놀래켰나 보더라고요. 복원센터에는 이런 '자연부적응' 반달곰이 4마리가 있는데, 이 엄마곰이 유일한 홍일점이죠

방사할 당시만 해도 생후 1~2년의 아기곰이었지만, 이 엄마곰도 이제는 훌쩍 자라 임신이 가능한 어른곰이 됐답니다. 곰은 6-7살이면 임신이 가능하거든요.


재작년부터 '2세 프로젝트'에 들어갔는데, 첫 해에는 그만 유산을 하고 말았답니다. 그리고 작년에 재도전해 낳은 아이가 바로 엊그제 풀어준 KM31입니다.


참 곰은 참으로 편리하게도 겨울잠을 자다가 새끼를 낳는다더라고요. ‘지연 착상'이라는 걸 하는데 일단 교미는 놀기 좋고 날씨 좋은 여름에 하더라도, 수정난이 바로 자궁에 착상되지 않는답니다. 겨울잠을 잘 때 쯤 되어서, 이제 좀 낳아볼까, 하면 그제서야 착상이 되고 아기는 겨울잠을 자는 동안 스르르륵, 낳는답니다. 사람도 어디 좀 그런 기능이 있었으면 싶답니다.



                                   이건 작년 야생에서 태어난 새끼 반달가슴곰입니다.
                                        태어날 땐 어른 팔뚝만하다네요. 정말 작죠? 
                                                사진/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곰은 모성애가 강한 동물이래요. 그래서 동영상 같은 데서도 보면 곰이 짚이나 풀을 끌어다가 새끼 잠자리를 마련해 주고 덮어 주고 이런 장면들이 나오더라고요.
겨울잠을 자는 동안은 몸의 체력이 거의 바닥난 상태인데도 새끼는 챙긴다고 하더라고요. 작년 초에 지리산에서 새끼곰이 태어났다 한달쯤 뒤에 엄마곰과 함께 죽어버린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는데요, 나중에 동영상을 보면 그 엄마곰이 동굴에 비가 새자 낙엽을 끌어다가 새끼곰을 막 덮어 줬다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이야기가 있었답니다.



이번에 방사된 이 KM31은 지난 여름까지 센터에서 엄마곰과 함께 지냈답니다. 엄마곰과 함께 나무도 타고, 나뭇잎을 먹기도 하고, 뒹굴기도 했답니다.
이 엄마곰이 사람을 지나치게 따르는 과거가 있었지만 새끼와 함께 있는 동안은 사람들한테 날카로웠다고 합니다. 다가가면 위협도 하고 소리도 지르고 했다네요.


                                KM31과 엄마곰의 단란했던 한 때.
                                  /국립공원관리공단 동영상 캡처.



어쨌거나 우리의 KM31은 지리산으로 갈 운명이었습니다. 지리산 반달곰 복원 프로젝트가 몇 년째 진행 중인데 한동안은 러시아나 중국에서 곰을 사서 풀어줬고 작년부터는 자기들끼리 새끼를 낳았고, 이제 복원센터에서 낳은 새끼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거죠.
KM31은 시설에서 자란 곰이 자연에 어떻게 적응하는지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연구 대상이랍니다.

그러나 엄마곰은 지리산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이 엄마곰은 사람 주위를 지나치게 맴돌아서 회수가 된데다, 지난 몇 년을 죽 사람들과 함께 보냈습니다. 그러니 야생에 내보내도 다시 센터로 돌아올 가능성 높다고 판단한 거죠. 엄마곰이 새끼곰을 데리고 다시 센터로 돌아오게 되면 소위 증식개체의 자연적응 프로젝트는 실패하게 되는 겁니다.

KM31은 9월부터 엄마곰과 격리돼 야생 적응 훈련을 받았답니다. 사람과 접촉하면 안 된다, 벌꿀 따 먹으러 오면 안 된다, 먹이를 스스로 구해라, 한달 동안 이런 훈련을 받고 1일 지리산 깊은 산 속으로 겅중겅중 뛰어서 사라졌습니다. 아직 한 살도 안 된 새끼곰인데..

이 아이가 작년, 올해 지리산에서 태어난 다른 새끼 반달곰들을 만났을까요? 그 반달곰의 식구들도 만났을까요? 아니면 지리산 깊숙이에 4-5마리 남아있다고 전설처럼 전해지는 그 천연기념물 지리산 토박이 반달가슴곰들을 만났을까요?

혹시 지리산에 원래 있던 곰들이 괴롭히면 어떻게 하지. 엄마가 보고 싶으면 어떻게 하지. 새끼곰이 사라진 엄마곰이 울면 어떻게 하지. 그런 멍한 생각들을 해 봅니다.


야생에서 곰은 엄마곰과 한동안 함께 생활하며 생존 기술을 배운답니다. 그런데 우리 지리산에 방사된 곰들은 사실, 거의, 잡초처럼 살아온 아이들입니다.

네, 쎈 놈들입니다. 러시아나 중국에서 생후 1년 정도에 물 설고 땅 설은 지리산으로 건너와 알아서 자기들끼리 살았답니다. 먹이 구하는 방법, 교미하는 방법, 새끼를 돌보는 방법, 그런 걸 가르쳐 줄 엄마곰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작년에 처음 새끼곰이 태어났을 때, 손바닥을 가슴에 얹고, 아아' 하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이 천애 고아 곰들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아서 도토리 따 먹고 밤 주워 먹고, 알아서 짝을 짓고, 알아서 새끼도 낳더니, 새끼를 지키다가 얼어 죽기까지 하더라고요. 가르쳐 주지 않아도 그런 것들은 DNA 깊숙이에 기록이 되어 있는 걸까요? 자연은 경이롭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KM31도 파이팅입니다.



어쨌거나, 곰을 위해, 뭐 제가 따로 해 줄 수 있는 건 없고 그냥 올 가을 등산길에서는 도토리를 주워가지 않겠다, 는 결심 정돕니다. 곰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도 도토리를 먹고 산다네요. 네네.


Posted by orca35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갈매 2010.10.08 1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새끼곰 정말 귀여워요!!!!

    근데 번호로 불리고 관리되는 것이며 '회수'라는 표현도 그렇고.. 동물에게 인격을 부여하는 것이 좋지 않아 그렇다 하지만 일반인 입장에서 볼 땐 어째 쫌 씁쓸하네요.. 다른 방법은 없는걸까요??

    냐하하. 도토리를 주워가지 않겠다니..
    곰들은 잡식성 아닌지요?

  2. 토토삐삐엄마 2010.10.08 2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 접근차단으로 나오죠?

  3. 토토삐삐엄마 2010.10.08 2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심속에 방사되는 반달곰도 중요하지만 평생을 쇠사슬에 갇혀서 쓸개즙만을 위해 사육되어지는 곰들에 관한 기사도 써주세요..

  4. 토토삐삐엄마 2010.10.08 21: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이 수정이 안되네요..자꾸 비밀번호가 틀렸다고 나와서..댓글이 죄송하게 길어져버렸네요..얼마전 뉴스데스크 40주년 출동카메라에 나왔던 사육곰 뉴스를 보고 더 좌절했네요..벌써 30년전에 나왔던 문제인데..바뀐건 하나도 없다니..그 넋을 놨던 곰의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답니다..올 6월에 법개정문제가 나왔었는데 지지부진하네요..잔인한 곰에 대한 사육은 언제 멈추게 될까요..국가에서 오히려 보장하고 있으니..

  5. 딸기 2010.10.10 17: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야 숨 돌리고 찬찬히 읽어보았네. 너무 재미있으면서도 어쩐지 마음이 아프다...

  6. Ray 2011.07.05 0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사도 잘 읽어봤습니다^^
    근데 나라에서 만일 매입을 한다면 지리산 센터로 보내지게 되는건가요?
    아님 꼭 매입을 안하더라도 센터에서 인수해서 지리산으로 방사시킬순 없는건가요?
    궁금하네요..^^

    • glaukus 2011.07.22 01: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만약 나라에서 단계적으로 매입하더라도 지리산으로 방사할 것 같진 않아요. 지리산에 있는 애들은 비교적 우리나라 고유종과 가깝게 혈통 관리를 해 온 애들이거든요. 그런데 거기에 사육곰 아이들이 섞이게 되면 우리 고유종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종이 태어나게 될 가능성이 높죠. 그러다가는 우리 고유종은 영원히 없어지게 될 수도 있다... 뭐 이런 우려입니다.

      참, 아산에 베어트리 파크라고 있는데, 거기도 반달곰이 150마리쯤 있다고 하더군요. 거기도 한 번 가보고 싶어요. 거기가 건물이 예뻐서 <마이 프린세스>? 김태희 나오는 드라마에 나왔다는 것 같더라고요.

  7. sq9391 2011.07.17 2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쓰신 분이 참 재미있게 잘 쓰셨네요. 글솜씨가 좋으십니다 부러워라. 저도 다음에 가족과 함께 구례에 가면 센타에 들려서 뭔가 기여를 하고싶습니다.

    • glaukus 2011.07.22 0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맙습니다 흐(꾸벅) 반달곰 복원사업이 반달곰 자체를 복원하는데는 얼마나 기여하는지는 몰라도, 우리 국민의 자연에 대한 인식 향상에는 엄청난 기여를 하는 것 같아요.

      아, 그러고 보니 엊그제 중국에서 7마리인가 더 들여온다는 것 같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