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에 '런던 얼터너티브 투어 London Alternative Tour' 라는 단체 (홈페이지는 여기) 에서 하는 '얼터너티브 도보 투어'를 다녀왔습니다. Alternative 라고 돼 있어서 저는 '대안관광'인 줄 알고 갔는데 - 뭐 말하자면 노숙자 투어 (클릭) 비슷한 -, 그 얼터너티브는 뭐랄까, 음악 하는 분들이 이야기하시는 '얼터너티브' 비슷한 것 같더라고요. 런던 동북부에 쇼디치라는 지역이 있는데요, 거기 그려진 그래피티들을 구경하는 투어였어요. 그래피티도 기존 사회 질서에 저항하는 의미가 크니까, 제가 생각하는 '대안 투어'와 형제는 몰라도, 사촌 쯤은 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거나 굉장히 인기가 많은 투어입니다. 트립 어드바이저 같은 사이트에서도 평이 몹시 좋고, 여름 관광철에는 몇달 씩 기다려야 하기도 한답니다. 매일 하는 건 아니고, 주말과 주중의 특정 요일에만 하는데요, 저도 두달 전부터 주말 투어를 예약해놓고 기다렸답니다. 그리고, 우하하 이게 가장 좋은 부분인데, 공식적으로 공짭니다, 공식적으로.

 

 

 

이 잘생긴 청년분이 오늘의 가이듭니다. 쇼디치 입구의 '염소상' 앞에서 만나서 갔어요. 스무명 쯤 되는데, 절반은 영국 국내 관광객들이더라고요. 외국인 관광객도 많고요. 이 단체 자체가 비영리여서, 이 청년분도 자원봉사를 하는 겁니다. 그래피티가 너무 좋아서요. 저 짝다리를 보셔요. 어딘가 좀 얼터너티브 예술 하시는 분의 포스가 풍기지 않습니까?

 

어쨌거나, 이 작품은 모노톤의 엄숙한 장군님입니다. 전통적인, 몸바쳐 나라를 구하는 훌륭한 장군님의 모습이죠.

 

 

 

그러나 그 벽의 반대편엔 이런 그림이 있습니다. 똑같은 모자를 쓴 장군님이, 엄숙하게 말을 타고, 어이없게도 게임에나 나올 법한 괴물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에 걸려 있는 그림에선 상상할 수 없는 설정이죠. 이런 권위에 대한 도전이, 바로 그래피티의 정신이...라는 거죠.

 

 

 

 

그 골목 모퉁이엔 이런 아름다운 그래피티도 있었습니다. 이 작가 이름은 기억해 두고 싶습니다-로아 ROA 라고 합니다. 원래는 타조를 그리려고 했는데, 지나가던 동네 사람이, 어 너 학 그리는구나, 해서 갑자기 학으로 바꿔서 그렸답니다. 이런 즉흥성이 바로 그래피티의 매력이 아니겠느냐....고 합니다. 어쨌든, 유명한 그래피티 작가인 뱅크시도 원래 이 동네 주변에서 그래피티를 그리면서 유명해졌대요. 그 뒤로 이 동네에 수많은 그래피티 작가, 혹은 작가 지망생들이 이렇게 그림을 그린답니다.

 

 

 

이 동네가 쇼디치, 브릭 레인 뭐 이런 지역인데요, 사실 부자 동네는 아니랍니다. 여기 동네 치안이 좋지 않아서 잘 안 간다는 사람들도 있고요. 건물들도 좀 허름하고, 재개발하는 것처럼 부숴진 건물도 많고 그렇더라고요. 이 동네는 크게 세 번의 '이민자 물결'을 통해 만들어졌답니다. 17세기 무렵에 프랑스 신교도들이 박해를 피해 바다 건너 영국으로 와 여기에 자리를 잡았고, 그 다음엔 20세기 중반 유태인들이 나치의 박해를 피해 여기로 건너왔고, 60년대에 방글라데시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건너왔대요. 어떻게 보면 약간, 쫓겨온 사람들의 새로운 땅, 비슷한 거죠. 이 동네에 '방글라 시티'라는 이름의 수퍼가 있는 것도 그런 이유랍니다.

 

 

 

 

그래서 어떤 작가는 이 동네에 이렇게, 방글라데시 어린이의 모습을 그렸답니다.

 

 

 

동네 구석에 이렇게 주차장이 있어요. 저 트럭들이 서 있는 어디에 원래 뱅크시 작품이 있었답니다. 이 주차장 맞은편과 그 주변 벽들에 그래피티가 많았어요.

 

 

 

주차장 맞은편 벽. 어디까지가 '작품'이고, 어디까지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른쪽 위의 저 게임 캐릭터 같은 건 '인베이더'죠? 여기 뿐 아니라 유럽 여기저기에도 있는 것 같습니다. 맨 아래 괴물 브로치 같은 것도 꽤 유명한 작품이라는 것 같고, 그 옆의 물방울 흘러내리기 같은 것도 작품입니다. 가운데 '조심' 안내판도 작품인지... 몹시 헷갈립니다.

 

 

 

동네에 소매치기가 많은가 봅니다. 여러 언어로 소매치기 조심!

 

 

 

이 체 게바라풍의 혁명동지 그림은 사실 굉장히 조그맣습니다. 옆에 세워둔 생수병보다도 작아요. 작가 이름은 파블로 델가도. 조그맣게 마이크로 사이즈로 그리는 게 특징입니다. 이 사람 작품도 여기 저기 꽤 많더군요.

 

 

 

그래피티가 비록 불법이지만, 작가들도 나름 사인을 남겨 놓습니다. 이 작품은 네이슨 보원..? 이라고 읽으면 될래나요? 이 사람 작품은 관광객들 많이 가는 버로 마켓 근처의 벽에도 있어요. 공사장인데, 공사장 노동자들이 소변이 마렵거나, 성질을 내고 있거나, 깔깔 거리고 있는 그런 포즈로 있는 모습을 그려 놓았죠.

 

 

 

이 작품은 참 아름답지 않습니까. 안타깝지만 작가 이름은 기억이....

 

 

 

가까이서 보면 이렇게 총으로 쏜 것처럼 물감을 쏴서 흐르게 만들어서 그린 거랍니다. 예전에 미술 시간에 배운 일종의 점묘 화가인가봐요.

 

 

 

같은 분의 또다른 작품입니다.

 

 

 

이 건물 아랫벽 전체에 이렇게 '안티안티안티'라고 적혀 있습니다. 재작년에 런던에서 '디자인 페스티벌'이 열렸는데, 일부 그래피티 작가들이 기성 디자인 질서에 항의한다는 의미로 이 벽에 이렇게 '안티 안티' 라고 그려 놨답니다.

 

 

 

그런데 이 '안티' 벽 맞은편은 '프로 프로 프로' 벽입니다. 이 건물에서 일하는 분들이, 매일 아침 저 '안티'를 보며 출근하려니 인생이 우울하다며, 그래피티 작가들한테 뭐 좀 긍정적인 걸로 벽 좀 그려달라고 해서, 이렇게 그렸답니다. '안티 안티'는 모노톤이지만, 이 '프로'는 색깔도 화려합니다. 그래서 이 골목이 한쪽은 '안티', 반대쪽은 '프로'인, 재미있는 골목이 됐죠.

 

 

 

이, 어딘가 익숙한 이 우주인 모양의 그래피티는 스티크 라는 작가의 작품이래요. 주변에 이것 저것 다른 작품들도 많죠. 그래피티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어제 있던 작품이 오늘 가면 없고, 내일 가면 새로운 작품이 그 위에 그려져 있고, 이런 식의 예측 불가능함이랄까, 언제나 '만들어 지고 있는 과정'에 있는 거라고나 할까, 그런 거래요.

 

작품들이 없어지는 건 새로운 작품이 만들어져서이기도 하지만, 나라에서 지우고 다니기 때문이기도 하죠. 우리나라처럼 영국도, 타인의 건축물에 허가 받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그래피티는 불법이니까요. 물론 작가들이 집주인한테, "나 여기 그림 그려도 되냐"고 물어보기는 하죠. 그러나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고, 공공 건물도 많고 그래서, 이 동네 그래피티의 90%가 불법 그래피티라네요.

 

어쨌거나 뱅크시를 계기로 그래피티가 '예술', 특히 돈이 될 수도 있는 '예술'이라는 생각이 생겼고, 영국 같은 경우는 몇년 전 워털루 다리 밑에서 아예 '그래피티 축제'를 열기도 했죠. 자, 여기 마음 놓고 그려라, 하는 그런 행사였던 모양이에요. 그렇지만, 그렇게 자리를 깔아주면 그건 더 이상 그래피티가 아닌 것 같기도 해요. 그래피티의 정신은 원래 저항하는 건데, 그걸 제도화하고, 돈으로 가치를 매기기 시작하면 더 이상 그래피티가 아니게 되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지금처럼 이 괜찮은 작품들이 내일이면 없어질 지도 모르는 상황에 있는 것도 좀 아쉽고. 음... 갑자기 생각났는데, 저희 동네에 매일 주차돼 있는 차 중에 '그래피티 제거 전문' 차량이 하나 있던 것 같다는...

 

 

 

이 작품은 이 동네에 가장 최근에 등장한, 아주 매력적인 그래피티랍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이 외국 작가님은 어디 가는 길에 런던에 하루 머무르시면서 하룻밤에 뚝딱 이 그림 그려놓고 가셨답니다. 제가 하룻밤에 할 수 있는 건, 음..음... 음... ㅠㅜ

 

 

 

투어 마지막에 기찻길을 지나게 됐는데, 마침 이런 게 적혀 있더라고요. '우린 아무것도 부탁하지 않을 거다. 우린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을 거다. 우리는 그냥 가질 뿐이다. 점령!" - 뭔가 그래피티의 정신에 대해 상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더불어, 좀 비슷하게, 미국 뉴욕의 월 스트리트와 세계 곳곳에서 벌어졌던 '오큐파이' 운동과도 상통하고요.

 

어쨌거나, 이 투어는 두 시간이 좀 못되게 끝났습니다. 공식적으로는 '공짜' 지만, 투어 끝에 '후원해 주시면 거절하지 않겠습니다'며 모자를 돌리는데, 워낙 애쓰신 걸 봐서 조금씩은 다 넣게 되더라는... 사실 저는 그래피티나 언더 예술을 잘 몰라서, 그러려니 하고 따라 다녔지만, 그런 것 좋아하시는 분들은 정말 좋아하실 것 같아요. 더불어 그런 젊은이들의 저항 문화라든가, 이런 데 대해 생각할 계기도 되는 것 같고요. 이 블로그가 지향하는 바가, 여행은 나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뭐 이런 건데, 그런 면에서 그래피티 투어도 우리 생각의 지평을 넓혀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트립 어드바이저처럼, 강력히 추천할까 싶습니다.

 

 

 

 

 

 

 

 


Posted by orca35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nike free run 2013.07.11 0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 매력있어, 자기가 얼마나 매력있는지 모르는게 당신매력이야

  2. ugg boots 2013.07.13 1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창밖을 봐 바람에 나뭇가지가 살며시 흔들리면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널 사랑하고 있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