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엔 병원에 갔다 왔습니다. 입국심사를 할 때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깨끗하지가 않다며 검사를 받으라더라고요.

학생비자로 입국하면 가끔 X레이를 찍는 경우가 있답니다. 우리나라가 아직까지 대표적인 결핵 국가 아니겠습까. 다른 사람들은 안 찍고도 잘 입국하던데, 저는 행색이 딱 결핵환자처럼 보이는 건지, 번번이 걸려 찍게 됐습니다. 입국하고 열흘 쯤 있다 집으로 편지가 날아왔더군요. 몇일 몇시까지 무슨 병원으로 가라, 하고요.




여기는 세인트 토마스 병원. 빅벤 맞은편에 있습니다. 

참고로, 영국은 NHS-National Healthcare System이라는 무상 의료 시스템을 갖고 있습니다. 6개월 이상 체류하는 유학생도 적용됩니다. 병의 진단과 치료가 무료죠. 일단 GP라고, 주치의와 병원을 등록해야 합니다. 동네 근처 병원에 예약을 하고 가면 서류를 몇 장 주면서 쓰라고 합니다. 그거 쓰다가, 마지막 페이지가 '예방접종' 이어서 머리에 쥐나는 줄 알았습니다. 알 수 없는 병명을 겨우 사전 찾아가며 이해했지만, ㅠㅜ그걸 접종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상당수가 갓난 아이일 때 맞은 거 아닌가요? ㅠㅜ) 대부분을 빈칸으로 가져갔더니 간호사가 '너 정말 이런 것도 접종 안했냐?'며 고개를 젓더라고요. 어쨌든 GP에 등록을 해 놓으면 가끔 뭐 검사해라, 이런 편지가 와요. 저도 편지 받고 부인병 검사를 한 번 받은 적이 있습니다. 

영국 사람들에게 NHS는 '신'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뭐 일단 영국 사람들은 미국이나, 유럽의 다른 나라들보다 종교적이지 않죠. 어쨌거나 NHS는, 아픈 데 돈이 없어서 죽는 사람은 없도록 하겠다, 는 강력한 의지의 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죽을 만큼 아프지 않으면, 굉장히 불편한 것도 사실인 것 같아요.

일단 병원에 가려면 예약을 해야 하고, 그것도 일단 GP를 만나고, GP가 전문의 추천해 주면 그 전문의 예약하고, 가서 만나고, 뭐 이런 식이어서 시간이 엄청 걸려요. 거기다가, A&E라고 응급실이 있긴 한데, 응급실은 한 번 가면 기본 2시간은 기다려야 한다고....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더군요. 그리고 왠만해서는 약도 안 주죠.

저는 예전에 유리잔에 손가락을 베어서 몇 바늘 꿰매야 하는 것 아닌가 덜덜 떨었는데, 영국 애가 "그 따위로 A&E 가 봐야 절대 안 기워준다"며 약국에 가서 약 사다 바르라고 충고해 준 적이 있었어요. 그나마 약국도, 상처는 놔두면 아물게 돼 있다며, 약을 안 주는 바람에, 몰래 반창고를 사다 발랐습니다. 감기 걸려서 병원 가면 "7일 후에도 증세가 계속되면 오세요"가 보통 처방이래요. 사실 감기는 왠만하면, 일주일 지나면 낫잖아요. 

물론, 죽을만큼 아프면 잘 해 주는 것 같긴 해요. 아는 분이 영국에서 사고가 나셔서 1년 정도 병원 신세를 지게 되셨는데, 그렇게 잘해 줄 수가 없더라고 하더라고요. 일단 병원비가 걱정이 없고, 사회 복지사를 한 분 붙여주고, 기타 등등. 

어쨌거나, 저는 '결핵 의심환자'로 분류가 되어, 결핵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TB테스트를 받게 됐습니다. 어렸을 때 불주사 맞을 때 했던 그, 팔뚝에 뭐 부풀어 오르나 안 오르나 보는 테스트 있잖아요? 그거요. 그리고 확실히 해야 한다며, X레이도 찍었습니다. 어렸을 때 나 그거 다 했다며, 어깨를 걷어 예방접종 흔적도 보여줬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결핵이 20여년 전부터 조금씩 늘고 있대요. 어렸을 때 한 예방 접종으로 예방이 안 되는 게 있다며, 일단 검사해 보자는 거죠. 

병원은 친절하더라고요. 간호사들도 좋고, 의사 선생님은 코빼기도 못 보긴 했지만, 뭐. 왜 이 검사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할 것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도 잘 해 주고요. 엑스레이 찍을 때 입는 가운이 우리랑 좀 달라서, 그걸 대여섯 번 입었다 벗었다 했던 걸 빼면 뭐 별 문제 없었습니다. TB테스트를 했으니, 48시간 후에 다시 오라, 고 했습니다. 그 자리가 부풀지 않으면 오케, 부풀면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거죠. 



다행히 이틀 밤 자고 났는데, 크게 부풀지는 않았어요. 한국 사람은 예방접종을 두 번 해서 대부분 양성으로 나온다는데, 저는 음성이라더군요. 엑스레이도 깨끗하다고 하고. 그러나, 여기는 영국,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가는 나라 아닙니까 ㅠㅜ (예전에 어떤 분이 밥 먹다 생선가시가 목에 걸려 병원에 갔더니 X레이를 찍었다고 하더라고요) 확실히 해 두기 위해 피검사도 하잡니다. 피 뽑아 놓고 가면, 자기들이 분석을 해서, 결과를 통보해 줄 날을 우편으로 통보해 줄 테니 (전화라는 편리한 통신 수단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요?) 그 때 와서 검사 결과를 들어라.. 뭐 이런 것이었습니다.

어쨌거나 혈액 검사. 혈액 채취실이 따로 있더라고요. 무슨 은행처럼, 커튼이 쳐 진 카운터가 예닐곱 개 있고, 사람들이 번호표를 뽑아서 자기 순서를 기다리고 있어요. 전광판에 번호가 뜨면 그 방으로 가서 혈액을 뽑습니다. 편리한 시스템이긴 하겠지만, 아 저는 좀 낯설어서... 병원이 무슨 수퍼마켓도 아니고.... 이상한 자동안내 목소리가 '2번 방으로 가세요' 뭐 이렇게 안내하는 걸 들으니 좀 섬뜩하더라고요. 

하여튼 이렇게 해서, 다음달 중순 쯤 되면, 혈액 검사 결과와, 에 또 TB테스트 및 엑스레이 결과-간호사들이 봤을 땐 문제가 없지만 그런 말은 의사가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본인들은 모르겠다며 ㅠㅜ-를 알 수 있게 되겠습니다. 넵넵. 

하여간 NHS가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고, 괜히 실력이 없는 것 같기도 해서, 영국에서도 돈이 있는 사람들은 요즘 사설 의료기관을 많이 이용 한답니다. 특히 이빨 같은 건 대부분 사설 치과를 간대요. 영국 시트콤 <미란다>에서도, 미란다가 정신과 진단서를 받으려고 사설 정신과로 가는 에피소드가 나오죠. "NHS로 갈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런 데 안 간다"고, 미란다 엄마가 엄청 도도하게 이야기 하시죠. 렇지만, 어쨌든 사람이, 아파서 죽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겠다, 는 이상은 꽤 훌륭한 것 아닌가, 싶더라고요. 실제로는 정말 속 터지는 행정과, 예산과 인력의 낭비를 겪더라도요. 

저는 국내에서 병원에 갔다가, 보험이 갑자기 안 되는 바람에 큰 돈 내고 피검사를 한 번 한 적이 있었어요. 원래 피 검사가 1만원 안쪽의 비용이 드는데, 보험이 안 되니 3배를 내야 하더라고요. 그 때 새삼 '국민건강보험' 이라는 체계가 얼마나 훌륭한 건가,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요. 국가가 국민에게 해야 하는 서비스가 바로 이런 것 아닌가, 통제와 감시의 전근대 국가에서 근대 국가로 이행하면서 이런 기제들이 나온 것 아닌가, 뭐 그런 기타 등등의. 국가가 하여간 국민이 돈이 없어서, 죽지는 않도록, 방화벽 같은 걸 치는 거잖아요. 그것보다는 무상 의료로 가면 더욱 좋겠지만요. 넵, 대략 무상의료 체험기, 정도로 해 두죠. 






  



Posted by orc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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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ay 2011.10.01 08: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국에 가셨군요. 오랜만에 들어와보니 업뎃이 되어있어 무척이나 반가웠답니다~ gp얘기는 읽고 한참 웃었습니다. 저도 그런적이 있거든요~ 며칠전 오마이뉴스에서도 영국 NHS얘길하던데요, 전 울나라와 영국의 의료시스템을 반반 섞었으면해요ㅋ 그런데 몇년씩이나 공부를 하시게 되었으면 북극곰님은..같이가신건가요? 아무쪼록 건강하시고 하시는 공부 잘되시길 바래요~^^

  2. 본댄디 2011.10.30 23: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무 이상 없다니 다행입니다. 글 늘 재밌게 보고 있어요. 공부하러 멀리 떠나신 모양이군요. 건강하게 원하시는 일들 이루시길. 그나저나 글 보니 우린 약을 과다복용하고 있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제약회사 로비 같은 건 그곳에선 적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