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트 호프에는 상업적 의미의 숙소랄 게 있었다
. ‘포경 선원의 집(Whaler's Inn)’은 매트리스가 가라앉기 시작하는 대학 기숙사 같은 방 한 칸을 당황스러운 가격에 내 줬다. 그러나 시스마레프 비상응급구조센터의 솜 터진 소파 위에서 사흘 밤을 보낸 나는 체크무늬 침대보만 보고도 감격했다. 노트북과 자명종 시계를 얌전히 책상 위에 놓고, 오리털 파카도 탁탁 털어 옷걸이에 걸었다. 종종 찾아오는 북극 연구자들을 위해 숙소를 열었다고 했는데, 이날은 다른 투숙객이 없어 보였다.

식당은 몇 년째 휴업 중이었다. 벽에 붙은 메뉴판을 보니 햄버거, 감자튀김, 스파게티와 피자를 어이없는 가격에 팔고 있었다. 바로 옆방이 부엌인 것을 모르고 찾아오는 순진한 손님에게 뽕을 뽑겠다는 자세라 하겠다. 바퀴 달린 이동식 책장에는 읽고 돌려주세요라는 쪽지가 붙은 페이퍼백이 수십 권 꽂혀 있었다. 우리 북극 연구자들께서는 빨간 책들을 읽으며 긴긴 백야의 밤들을 견디셨나보다. ‘장밋빛 모텔에서의 하룻밤’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등등의, 어김없이 몹시 괴로워하는 남녀의 모습을 표지로 한 책들이 꽂혀 있었다. 그러고보니 놈 공항에도 이런 책들이 잔뜩 꽂힌 한권에 1달러간이 책 대여점이 있었다. 베링해 부녀자 조합에서 운영하는데, 빨간 책 대여하고 받은 돈으로 (부조리하게도) 불우 여성과 어린이들을 돕는다고 했다.

포인트 호프 는 알래스카 북단
, 북위
68.3도의 에스키모 마을이다. 이누피아트 에스키모 900여명이 산다나는 시스마레프와 마찬가지로, 기후변화 취재를 온 길이었다. 이글루가 녹아내리고, 에스키모도 반팔을 입고, 냉장고까지 사는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등등을 취재할 예정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에스키모는 더 이상 이글루에 살지 않는다. 집 안에서는 다들 반팔을 입는다. 냉장고는 물론, 파는 줄만 알았다면 김치 냉장고라도 사들였을 것이다. 다만, 북극고래는 줄어들고 있었다. 포인트호프 앞바다인 추크치해는 북극고래와 벨루가 고래의 회유경로다. 수천년 동안 고래를 먹고 살아온 포인트호프 사람들은 고래가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지구 온난화와 북극해의 석유 시추로 고래의 생태가 교란되고 있다는 것이다. 숙소 로비에서는 알래스카 북극권 원주민 연합쯤 되는 티키각 코포레이션이 근처 광산에서 일할 계약직 노동자를 모집하고 있었다. 풍채 당당한 에스키모 아줌마 한 명이 어눌한 말투로 물어보는 중이었다.

혹시, 여기 고래뼈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신청서를 쓰다 말고 아줌마가 나를 쳐다봤다. 시청 앞에서 덕수궁 어디 있냐고 물어보는 사람을 봤다는 얼굴이었다.
...여기, 저기.”
걸어갈 만 한가요?”
시스마레프에서 학습한 나는 영리하게도 이제, 버스나 택시가 있느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당연히 그런 것 없다. 아줌마가 다시 나를 쳐다봤다.
...그러고 싶으면...”
그녀는 목운동을 하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렸다.
, 기름값만 내 준다면 내가 태워다 줄 수도... 소변 검사 좀 하고...”
일자리를 얻으려면 마약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소변 검사로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에스키모 사회에서 마약이 만연해 있어서. 티키칵 코포레이션 직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에드나 아퉁아나-그녀의 이름이다-4륜 오토바이 뒷좌석에서 나는 왜 그녀가 고래뼈를 보여주세요에 당혹해 했는지 알게 됐다. 고래 뼈가 천지였다. 고래 뼈는 발받침처럼 현관에 놓여 있고, 고래 수염은 재활용 쓰레기처럼 마당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마을 입구에는 지난해 잡은 고래의 뼈가, 산까지는 못돼도 언덕처럼은 쌓여 있었다. 에드나는 이 따위는 고래 뼈도 아니라는 듯 묵묵히 앞만 보고 달렸다. 오토바이가 멈춘 곳은 묘지였다. 수백, 수천 개의 고래 갈비뼈가 무덤을 둘러싸고 있었다. 고래 뼈도 십자가처럼, 십자가도 고래 뼈처럼 보였다.


(고래의 갈비뼈가 나무기둥처럼 세워져 있는 포인트 호프 마을 묘지입니다)

감격을 추스르지도 못했는데, 에드나는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었다. 눈이 쌓인 바닷가였다. 분홍색 고래 살점이 사과상자 크기로 잘라져 흩어져 있었다. 옆에서는 에스키모 할머니 한 명이 턱수염물범의 가죽을, 책에서나 보던 반달 모양의 에스키모 칼 울루로 벗겨내고 있었다. “, 뼈는 벌써 치웠나보네. 자 타!” 에드나는 충격과 흥분 속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나를 질질 끌어 뒷좌석에 앉혔다. 잠시 뒤 우리가 멈춘 곳은 옛 거주지, 올드 타운 사이트였다.

우리는 에스키모가 이글루에 사는 줄 안다
. 아니다. 지금은 조립식 주택에 살고, 예전엔 땅속에 살았다. 바람이 너무 거센데다, 나무 한 그루 없어 땅 위에 집을 지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땅굴에 카리부의 가죽을 문 삼아 단 소드 하우스가 알래스카 에스키모의 전형적 가옥이다. 이글루는 사냥이나 여행 때 후딱 지어 쓰는 임시 숙소였다. 일종의 텐트라 하겠다. 에드나는 소드 하우스의 입구를 가리켰다. 고래 뼈가 기둥 대신 지붕을 받치고 있었다. 포인트 호프 주민들은 1970년대 소드 하우스를 버리고 현재의 조립식 주택 단지로 이주했다.

(알래스카 에스키모의 전통 가옥입니다. 여기가 입구. 못 박혀 있는 기둥은 고래 뼈에요.)

마을에 돌아오자 에드나가 친절하게 저녁이나 먹고 가라며 아무 집에나 불쑥 들어갔다. 주름이 잔뜩 잡힌 할머니가 아는 척도 하지 않고 부엌에 백조 수프 끓여놨으니 먹어라고 말한 뒤 다시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우리 집에도 없는, 40인치는 넘어 보이는 최신형 완전 평면 TV였다. 아이들은 소파에서 뒹굴며 닌텐도와 플레이스테이션을 주먹으로 부수고 있었다. 현관에는 털부츠 대신 구멍 숭숭 뚫린 크록스 슬리퍼가 뒹굴었다. 맙소사, 세계는 하나가 아닌가. 여자 아이 하나가 스프링처럼 튀어 나와 부엌으로 달려가더니 수프 한 그릇을 담아 내밀었다. 마사키, 내 또래의 일본 여자였다. 나는 에드나와 마사키 사이에 끼어 수프를 마시고 고기를 뜯었다. 자꾸만 이 새가, 멸종위기야생동식물 2급종인 희귀 조류라는 사실이 생각났다. 입 안에 돌처럼 뭐가 씹혔다. 비비탄이었다. “, 그거 많아. 엊그제 그걸로 잡았거든.”

아무도 내가 어디서
, ,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아무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백조 수프가 바닥이 보이자 마사키가 재킷을 들고 일어섰다. 내 옷이었다. , 내 오...을 채 발음하지 못하고 나는 마사키를 따라 길 건너 집으로 들어갔다. 얼떨결에 또 수프를 한 그릇 얻어먹었다. 반 쯤 먹다 물어보니 벨루가 수프라고 했다. 벨루가는 북극권에 서식하는 흰돌고래다. 기분이 늘 좋은 것은 아니겠지만, 하여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는 얼굴을 하고 있다. 북극곰과 나는 벨루가를 보러 캐나다 밴쿠버의 아쿠아리움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 방긋 웃는 벨루가를 한 점 한 점 떠 넣으려니 저절로 목이 메었다.

(방긋 웃는 벨루가 고래의 얼굴 @인터넷에서 펌)

식탁에 에스키모치고는 참으로 일본 사람처럼 생겼다 싶은 남자가 한 명 있었는데, 정말 일본인이었다
. 벨루가 수프의 바닥이 보이자 이번엔 그 일본인 신고가 내 옷자락을 잡고 옆집으로 들어갔다. 얼떨결에 이번엔 고래 고기였다. 껍질과 지방을 물에 삶은 마크탁, 에스키모들이 그렇게 좋아한다는 요리다. 지난해 잡은 북극고래라고 했다. 내 평생 이렇게 짧은 시간이 이토록 많은 멸종위기종을 먹어치우기는 처음이었다.

마크탁은 꼭 수육 같았다
. 소금을 쳐서 먹다 보니 김치 생각이 났다. 집주인이 미안해했다. “김치는 마침 없어. 마크탁과 김치가 딱인데, 그치?” 근처 대도시인 배로우에 한국인 상점이 있어 종종 김치를 사 온단다. 북극 에스키모 마을까지 진출한 한식의 우수성을 자랑스러워해야 할 지, 북극 에스키모 마을까지 집어삼키고 있는 세계화의 위력을 경계해야 할 지 난감한 심정이었다. 새벽 4시인데도 창밖이 늦은 오후처럼 환했다. 에스키모 어린이들에게 새벽 4시는 잠자리에 들기엔 너무 이른 시간. 얼떨결에 이번엔 그 틈에 끼어 농구도 하고, 뜀박질도 하고, 산책도 하고, 도요새 목에 끈을 감아 괴롭히는 아이들을 준엄하게 꾸짖기도 했다. 숙소로 돌아가니 아침 7시였는데, 해가 떴던 것 같기도, 뜨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에스키모 VS 이누이트
지난번에 이 글을 <주간경향>에 싣고 나서 모처럼 독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에스키모가 아니라 '이누이트'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표현이라며, 똑바로 알고 써라, 그런 취지였다. 에스키모는 '날고기를 먹는 사람'이란 뜻이고, '이누이트'는 그들의 말로 '사람'이란 뜻이다.

맞다. 캐나다 북부와 그린란드의 원주민들은 '에스키모'를 경멸적인 표현으로 여기고, 스스로를 '이누이트'라고 부른다 (캐나다 북부의 준주 '누나버트'는 그들의 말로 '우리의 땅'이다). 그러나 알래스카 원주민들은 스스로를 '에스키모'라고 부른다. 처음 시스마레프 원주민 마을에 도착해서 '이누이트'라고 부르면 되냐고 했을 때, 그들은 벙찐 표정으로 '에스키모를 에스키모라고 부르지 뭐라고 부르냐'고 오히려 되물었다. 그들은 '에스키모'라는 단어에 대해 특별히 정치적/문화적인 맥락을 부여하지 않고, '이누이트'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여행기에서는 알래스카 원주민들은 '에스키모'로, 캐나다/그린란드 원주민은 '이누이트'로 부르기로 정했다.

Posted by orc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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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쏘댕기자 2011.06.13 1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으음, 일식을 줬으면 더 좋아했을 최망.

  2. Ray 2011.06.16 18: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에 와서 글 잘 읽고 갑니다^^
    최기자님 트위터 있길래 팔로우했어요 ㅋ
    새글 올라오면 꼭 트윗해주세요 ㅋ

  3. 비톤 2011.07.08 16: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포스트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