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알래스카를 가기 위해 대만으로 출발했다. 인천에서 타이베이로 간 다음, 타이베이에서 뉴욕 행 비행기를 타고, 중간에 한 시간 쉬어가는 앵커리지에서 내리는 루트다. , 뭔가 이상한데, 라고 생각했다면 고등학교 때 지리 시간에 80점 이상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알래스카는 우리나라 동쪽에 있고, 대만은 우리나라 서쪽에 있다. , 우리는 동쪽으로 가기 위해 서쪽으로 출발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서울에서 강릉을 가기 위해 일단 인천까지 갔다 다시 강릉으로 가는 식이다. 그게 다, 인천에서 알래스카 직항이 없어서다.

물론 다른 루트들도 없지는 않다
. 인천에서 알래스카를 지나 미국 시애틀까지 날아간 다음, 시애틀에서 미국 국내선을 타고 알래스카로 되돌아와도 된다. 인천에서 하와이 호놀룰루로 날아간 다음, 호놀룰루에서 앵커리지까지 알래스카 항공을 타는 루트도 있다. ‘가장 특이한 항공노선 조합 연구소의 상임이자 유일한 연구원인 북극곰의 초강추 루트다. 열대의 섬과 북극의 빙하를 두루 찍고 돌아오는 울트라 초 익스트림 루트라 하겠다.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 우리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시간도 돈도 없었다. 북극곰과 나는 같이 두 번, 따로 한 번씩 도합 네 번 알래스카를 다녀왔는데, 그 중 세 번을 인천-타이베이-앵커리지 루트를 이용했다. 덜 비싸고(결코 싸지는 않다), 알래스카에 오전에 떨어져 시간도 벌 수 있어서였다. 타이베이 카오슝 공항의 기도실에서 목사 놀이를 하고, 미니어처 아리산 고산 마을 열차에서 사진을 찍으며 놀다 지칠 때 쯤 되면 게이트에 안극뇌기(安克雷奇)’가 깜빡거렸다. --레이-. 앵커리지다.

(쿡 인렛을 바라보는 쿡 선장의 뒷모습)

오랫동안 내 머릿 속은 앵커리지캡틴 쿡과 한 세트로 기억해 왔다. 먼저 앵커리지를 다녀온 북극곰이 지직거리는 국제전화 너머로 물기에 가득 젖은 목소리로...는 아니고, 풍선과 이모티콘이 날아다니는 메신저로 여기 네가 좋아하는 캡틴 쿡의 동상이 있어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18세기 영국의 탐험가이자 지도 제작자였던 쿡 선장은 서구인 최초로 알래스카를 항해한 인물이었다. 논쟁의 여지없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탐험가였다. 그는 뉴질랜드와 태즈메이니아를 발견하고 남극 대륙의 존재를 확인했으며, 하와이, 뉴칼레도니아, 바누아투, 통가, 이스터 섬 같은 우리가 이름을 알 만한 남태평양의 섬 대부분을 지도에 그려 넣었고, 북으로는 알래스카 최북단의 아이스 케이프까지 여행했다. 나는 오랫동안 남몰래 캡틴 쿡을 흠모해 왔다. 몇 년 전 하와이에서는 캡틴 쿡이 죽은 자리에 세워진 비석을 향해 개헤엄으로 나아가다 성게 더미에 허벅지를 찍혀 피를 본 적도 있다. 앵커리지에서 1번으로 갈 곳은 당연히, 캡틴 쿡 동상이 세워져 있는 캡틴 쿡 레크리에이션 파크였다.


캡틴 쿡 파크는 숙소인 쿠퍼 훼일 인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였다. 쿡 동상은 자신의 이름을 따 쿡 인렛이라고 불리는 내해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물이 빠진 갯벌에는 도요새들이 긴 부리를 쑤셔 넣고 먹이를 찾고 있었다. 캡틴 쿡이 알래스카를 찾아온 것은 그의 마지막 항해였던 디스커버리호 모험(1776~1779)에서였다. 많은 역사책은 쿡이 그 시대의 다른 탐험가들, 그러니까 잔인한 코르테스나 무정한 마젤란과 달리 원주민들을 존중하고 이해하려 노력했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냉엄한 법이어서, 쿡 탐험대의 상륙은 원주민 사회를 궤멸시켰다. 선원들의 몸에 묻어온 질병 앞에 원주민들은 속수무책이었고, 하와이에서는 원주민의 98%가 사망했다. 알래스카의 에스키모도 10%만이 살아남았다.

(별볼일 없고 쓸쓸한 앵커리지 시내 입니다. 멀리 눈 쌓인 산이 보이긴 해요)

다운타운의 한 쇼핑몰 앞에도 캡틴 쿡의 세 차례 세계 탐험을 기리는 동판이 세워져 있었다. 소비에트 풍의 건조한 건물 위로 하늘까지 낮게 깔려 모형으로 만든 배들은 더욱 쓸쓸해보였다. 앵커리지는 호놀룰루나 나이로비처럼 고층 건물이 블록을 따라 이어지는 신도시였다. 층수가 조금 낮고, 한여름에도 쌀쌀해 재킷의 깃을 세워야 한다는 정도가 차이였다. 우리는 몇 블록을 걸어 서커스 천막을 친 식당에서 알래스카 킹 크랩을 먹었다. 포크와 나이프로 게 껍데기와 전쟁을 벌이다 보니 한국 대게집의 게 포크와 가위가 몹시 그리웠다. 게살은 질기기만 했다.

저녁에는 월마트에 가서
‘ALASKA’라고 적힌 두꺼운 스웨터를 한 벌씩 샀다. 이듬해 혼자 앵커리지를 가게 됐을 때에도 월마트에 들렀다. 이번엔 파인애플과 자몽을 하나씩 샀다. 나는 며칠 뒤 알래스카 북단의 에스키모 마을로 날아갈 예정이었다. ‘지구 온난화로 피해를 입고 있는 에스키모 부족장을 인터뷰 해 와라는 한 줄의 미션을 받고 출장 온 길이었다. 파인애플과 자몽은 그 미지의 부족장에게 잘 보이기 위한 선물이었다.

오후에는 시내의 앵커리지 박물관에 갔다
. 원주민의 클랜 하우스(씨족 공동주택)라든가, 전통 복장을 입고 고기를 잡고 옷감을 짜는 모습이라든가, 그런 것들을 재현해 놓은 곳이다. 터치 스크린이 즐비한 요즘 박물관에 비하면 시시하지만, 알래스카 기준으로는 최상급이었다. 한 줌의 사람들이 몰려 사는 조그만 마을엔 소장품을 유리 진열장에 넣고 박물관간판을 내건 곳이 많다. 알래스카 남부 코르도바의 고래 박물관에서는 바다에 둥둥 떠 내려 온 유리병에 구슬을 붙여 만든 원주민 아트가 주요 전시물이었다. 유리병 중 하나의 뚜껑에 ‘C1 소주라고 적혀 있어서 감개가 무량했던 기억이 난다. 부산 소주인 시원 소주 병뚜껑이 먼 항해 끝에 알래스카 남부 해안까지 밀려온 모양이었다.

나는 꼼꼼하게 전시물들을 구경했다. 알래스카는 에스키모의 땅이라고들 생각하는데, 사실 알래스카 원주민은 2개의 에스키모 부족과 3개의 인디언, 1개의 알류트 부족으로 구성돼 있다. 에스키모는 해안가에 살고, 인디언은 내륙에 산다. 알래스카의 광활한 내륙은 사실 인디언의 땅인 것이다. <컬러학습대백과>에 나온 것처럼 이글루를 짓고 고래를 사냥하고 코를 부비며 인사하는 에스키모는 알래스카 북서부 해안의 이누피아트 족이다. 2만여년 전 베링해를 건너 북미 대륙으로 전진한 몽골로이드의 후손이라는데, 정말 깜짝 놀랄 만큼 우리와 비슷한 데가 있다. 박물관 이누피아트의 생활을 체험해 보세요코너에는 짚단을 엮어 새끼를 꼬는 체험도 있었다. 옛날 시골집에서 할아버지가 손바닥으로 꼬던 바로 그 새끼다. 여자 아이들은 실뜨기를 하고, 갓난아이는 후드 티셔츠 같은 주머니에 넣어 업어 키운다.


(에스키모처럼 새끼를 꼬아 보아요)


고래의 뿔이며 수염이 걸린 전시장 귀퉁이에는 동양인 여성이란 이름의 조각이 하나 있었다. 돌을 쪼아 만든 엄지손가락 만한 입상이었다. 얼굴은 에스키모처럼 동글납작했지만, 쪽 진 머리며 길게 늘어뜨린 옷고름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는 조선 여인이었다. 하이다 부족의 조각. 19세기 후반. 퀸 샬롯 섬의 연어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던 중국인 노동자로 추정.”

그녀는 어떻게 100년도 더 전에, 우리가 알래스카라는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몰랐을 그 시절에 알래스카 남부까지 오게 됐을까. 하이다 인디언은 왜 그녀를 돌에 새겨 넣었을까. 그녀는 많은 세월이 흐른 뒤, 조선에서 온 또 다른 여인이 자신의 조각을 뚫어지게 쳐다보게 되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진시황의 연인들이 중화민국과, 현대에 차례로 환생하는 영화 진룡이 생각났다. 참으로 현대에서 온 사람답게, 나는 청바지에 디지털 카메라를 든 차림이었다. 이쯤되면 그녀의 유령이라도 나타나줘야 하는 것 아닌가.


Posted by orc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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