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도시를 뭐라고 읽는지 나는 아직까지 모른다. Tromso. 트롬쇠, 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지난해 런던에서 이 도시를 다녀왔다는 영국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트롬소라고 했다. “, 트롬쇠가 아니라 트롬소인가요?” 그는 움찔 뒤로 물러나며 낸들 어떻게 알아요, 트롬쇠인지 트롬소인지. 어차피 노르웨이말인데.” 그는 우아하게 베르겐에서 트롬쇠까지 피요르드를 따라 크루즈를 타고 올라갔지만, 나는 비행기를 타고 갔다. 스칸디나비아 항공의 저가항공, SAS Braathens를 타고 갔다. 오타가 아니다. ‘a’가 원래 두 개다.


트롬쇠
(로 해 두자)는 세계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마을 중 하나다. 북위 70도 쯤 된다. 겨울이면 바다가 꽁꽁 얼어붙는 러시아 해군 기지 무르만스크보다도 위도가 높고, 그 옛날 영국인 선원들이 에스키모에게 총을 주고 물범 가죽을 사 오던 캐나다 캠브리지 베이보다도 높으며, 소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에 나오는 그린란드 이누이트 스밀라의 고향, 그린란드 누크보다도 높다. 트롬쇠의 캐치 프레이즈는 북극의 입구, the Gate of the Arctic’. 상점에는 ‘Arctic’ 이나 ‘Polar’를 접두어처럼 단 간판들이 걸려 있었다.

(몹시 몽환적인 트롬쇠 공항 앞의 주차장)

그러나 우리는 오로라 펜션도, 아틱 호텔도, 폴라 비앤비도 다 놔 두고 아네모네 비앤비으로 갔다. “아름다운 보라색과 노란색의 아네모네가 뜰에 가득 피어있어요라는 홈페이지 소개글 때문이었다. 그리고 두고두고 후회했다. 일단 거기가 어딘지 아무도 몰랐다. 공항 택시 기사는 트롬쇠같이 조그만 마을에 내가 모르는 숙소가 있을 리가 없다는 듯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얼굴로 이 집 저 집으로 택시를 들이댔다. 트롬쇠 관광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동네였다. 택시에서 내리는 우리에게 기사는 아무도 모르는 곳가장 최근에 문을 연 집이라고 온몸으로 이야기했다. 옅은 금발 머리에 키 큰 집주인 아저씨는 어머머, 그럴 리가 없어요라며 호들갑이었다. 이름이 Oyster, ‘이었다. 뜰에는 아네모네가 가득은 아니지만, 조금은 피어 있었다. 아네모네 꽃 옆으로 자전거가 보였다. 빨간색 한 대, 초록색 한 대였다.

혹시 이거 빌릴 수 있나요?” 굴 아저씨가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 이거 엄청 비싼 건데..., 최고급 마운틴 바이크인데..., 그렇지만 손님이 원하신다면 빌려드려야죠. 싸게 드릴게요.” 굴 아저씨는 우리를 앉혀 놓고 30분 동안 자전거 사용법에 대해 설명했다. 페달은 앞으로 밟아야지 뒤로 밟으면 안 되며, 자전거를 걷어차거나 넘어져서는 안 된다는 등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묵직한 공구 세트를 자전거 뒷바퀴에 달았다. “이건 특별히 비싼 거니까, 자전거 주차해 놓을 땐 꼭 따로 떼어 들고 다니세요.”

속았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비앤비 앞 골목을 벗어나자 광활한 내리막길이었다. 이 집은 언덕 꼭대기에 있었다. 관광지도에 나오는 트롬쇠 다운타운이 언덕 아래에서 반짝거렸다. 자전거 페달에 얹어 놓은 다리가 떨렸다. 결국 핸들을 두 손으로 잡고, 자전거를 소처럼 몰고 내려갔다. 자꾸만 뒷바퀴가 내 뒷다리를 쳤다. 떼어버리고 싶었다. 다시 끌고 올라올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까마득했다. 북극곰은 이미 언덕 밑으로 내려가고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운타운은 자전거 따윈 필요 없을 만큼 작았지만
, 빌린 게 아까워 일 없이 몇 바퀴를 뱅글뱅글 돌았다. 최고급 마운틴 바이크의 안장은 돌을 쪼아 만들었는지, 엉덩이에 안장 모양의 푸른 멍이 드는 것 같았다. 웬만한 한강다리보다 더 긴 다리를 울면서 건너 북극 대성당에도 다녀왔다. 삼각 기둥을 포개어 놓은 것 같은 하얀 성당은 몹시 아름다웠다. 십자가 대신에 흰 옷 입은 예수가 새겨진 스테인드 글래스가 걸려 있었다. 성당에서는 이날 밤 백야 음악회가 열린다고 했다. 그러나 자전거를 언덕 위에 갖다 놓고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자전거는 내 것이 아니어서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음악회를 포기했다.


(아름다운 북극 대성당, the Arctic Cathedral 입니다)

오후에는 폴라 뮤지엄에서 시간을 보냈다. 간판에 바다코끼리가 그려진 조그만 통나무 집인데, 극지방 생활사와 북극 탐험의 역사를 모아 놓은 박물관이었다. 원주민인 이누이트를 제외하면, 극지방 생활사는 사실상 사냥의 역사였다. 사냥꾼들은 극지방의 척박한 섬에 통나무집을 짓고 고래, 바다코끼리, 북극곰이나 물범을 마구 잡았다. 실물 크기로 재현한 사냥꾼의 통나무집 처마에는 기러기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역시 노르웨이 사람들은 두려움을 모르는 바이킹의 후예인가. 물론 사냥이 이 지방의 문화유산이긴 하겠지만, ‘열심히 순록을 해체하는 사냥꾼의 모습’ ‘나무 기구를 이용해 북극곰을 잡는 사냥꾼의 기지뭐 이런 전시물만 반성 없이 계속됐다. 박물관 한켠에는 노르웨이가 자랑하는 탐험가 아문센과 난센의 사진과 유품도 전시돼 있었다.


로알드 아문센프리초프 난센은
19세기말과 20세기초 탐험의 시대를 개척한 세기의 탐험가다. 이미 대학 시절 스키로 그린란드를 횡단했던 난센은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북위 86.14도까지 진입해 북극점 탐험 시대를 열었다. 노르웨이 국민의 열망을 한 몸에 안고 북극점으로 향하던 아문센은 미국인 피어리에게 선수를 빼앗긴 뒤 기수를 반대로 돌려 191112월 잽싸게 남극점에 노르웨이 깃발을 꽂았다. 한 해 내내 남극 로스 빙붕에서 과학 탐사를 하던 영국인 스콧의 탐험대가 남극점에 도착해 나부끼는 노르웨이 깃발을 보고 절망한 뒤 귀환길에서 세상을 떠난 이야기는 유명하다. 마음이야 스콧 탐험대의 비극에 애틋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나라도 신속한 극점 정복이 목적이었다면 아문센의 탐험대에 합류했을 것이다.

(스발바르 제도에서 마구 잡아 거의 멸종 위기에 이른 바다코끼리 골격)

아문센은 난센이나 스콧과는 다른 인간이었다. 그는 난센처럼 미지의 세계를 낭만적으로 동경하지도 않았, 스콧처럼 국가를 위해 임무를 수행하지도 않았다. 그는 도전과 성취가 직업인, 세계 최초의 프로 탐험가였다. 남극점 정복이후에도 그는 탐험을 계속했다. 한번은 결국 안전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난 비행선 노르게에 몸을 싣고 스발바르에서 알래스카까지 북극을 횡단하기도 했다. 스발바르의 관문, 트롬쇠의 폴라 뮤지엄 앞에는 아문센의 흉상이 세워져 있었다. 언제 봐도 뭔가 떨떠름한 얼굴이다. 그 때는 몰랐지만 나는 2년 뒤 알래스카 놈에 가게 될 것이었다. 아문센의 노르게가 도착한 곳. 똑같은 흉상이 거기도 있었다. 아문센을 따라 간 것이라고 해 두자.

(있어 보이는 폴라리아의 로비. 그럴싸한 자연사 박물관입니다)

다음날에는 또 다른 북극 박물관인 폴라리아에 갔다. 북극의 자연 현상과 동물을 대부분 모아 놓고, 그걸 또 인형으로 만들어 팔고 있는 자연사박물관이다. 그 전에 굴 아저씨 비앤비에 복수부터 했다. “... 노르웨이 장인들이 한 알 한 알 손수 따서 만든 잼과 아...유기농으로 구운 빵으로 아침 식사를 차려 줄 거에요.” 굴 아저씨는 앙드레김 말투로 말했지만 식탁엔 34일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마른 쨈과 빵이 전부였다. 방명록을 펴 들고 일단 영어로 나이스 스테이!”라고 썼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볼펜을 고쳐 쥐었다. “자전거는 절대 빌리지 마세요. , 이 집 아저씨는 소심남임.”

(트롬쇠 시내의 버거킹. '세계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버거킹' 되십니다)

 


Posted by orc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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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쏘댕기자 2011.04.13 19: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아 왠지 내 엉덩이가 아픈 것 같다.

  2. 박재 2011.04.18 1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홋 최기자의 런던에서도 여러군데 돌아다녔군요...
    재미있게 봤어요...

  3. 산N제동 2011.04.18 15: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르웨이,하이웨이for she is.

  4. koreansk 2011.05.11 18: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트룸쇠'로 읽으시면 됩니다.
    글이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기자신가 보군요. 잘 읽고 갑니다. :-)

  5. koreansk 2011.05.24 18: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발바르와 롱예르뷔엔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