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때 우리 집에는 아문센-난센-피어리-스콧을 한 권에 묶은 위인전이 있었다. 그 위인전 시리즈 편집자는 관련이 있는 인물을 네 명씩 묶어서 위인전 50권을 만들었다. 1권이 석가모니-예수-마호메트-소크라테스였던 것 같다. 그 덕분에 아직도 밀레를 들으면 무조건반사적으로 고흐-고갱-세잔이 떠오른다.


아문센 외 3명은 세기의 위대한 탐험가 콜렉션이었다. 아문센은 남극점을 세계 최초로 찍었고, 피어리는 북극점을 세계 최초로 찍었(다는 논란을 남겼)으며, 스콧은 아문센보다 늦게 남극점에 도착했다 돌아오는 길에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에도 나는 난센이 가장 좋았다. 병약해 보이는 모범생이 스키로 그린란드를 횡단하고 프람호로 북극점을 향해 나아갔다는 이야기는 몇 번을 읽어도 좋았다. 염소 같은 콧수염이 있는 난센 얼굴 표지를 넘기면 줄거리 요약 페이지였다.




(난센이 탔던 프람호의 식기. 이 식기와 똑같이 생긴 그릇을 박물관 기념품가게에서도 팔아요)

독후감 숙제를 내려고 줄거리를 베껴 쓰면서 나는 그 페이지 윗부분에 있는 배 사진을 보곤 했다. 고물과 이물 끝이 둥글게 말려 있는 나무 배였다.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바이킹의 배’. 연필 뒤꼭지를 이빨로 물어뜯으면서, 언젠가 나도 하인리히 슐리이만처럼 세계 여행을 떠나서 이 배를 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다른 위인전에 슐리이만이 트로이 유적 발굴로 떼돈을 벌어 마차를 타고 세계 여행을 다니는 사진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 꿈은, 2030년이 되면 날개 달린 신발을 신고 달나라로 걸어서 간다는 것처럼 불가능해 보였다.


오슬로를 가게 된 것은 비행기 마일리지 때문이었다
. 몇 년간 마구 신용카드를 긁고, 일부러 빙빙 돌아 둘러간 덕분에-예를 들어 런던을 가면서 굳이 싱가포르 항공을 타고 적도 찍고 가는 식으로-마일리지가 제법 쌓였다. 북극곰이 스타 얼라이언스 루트 계산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몇 달을 연구한 결과, 북극점에서 1300km 떨어진 세계 최북단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제도를 유럽 표준 마일리지 공제로 다녀올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서울-방콕-덴마크 코펜하겐-노르웨이 오슬로-노르웨이 트롬쇠-스발바르 라는, 비행기를 다섯 번 타는 일정이었다.

이것이 과연 마일리지로 가능한 일정인지 의심스러웠던 북극곰은 항공사 마일리지 부서에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확인을 했다
. 바쁜 낮에 전화하면 직원이 장난 전화인 줄 알고 짜증 내실까봐 한밤중에, 그것도 새벽 2, 3시를 기다려 전화를 걸었다. , 트롬쇠요, 트롬세탁기 할 때 트롬. 공항코드가 TOS, , 스칸디나비아 항공인데 편명이... 하품을 하고 있던 새벽 근무 직원들은 놀라지도 않고 좌석을 확인해 주곤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한밤중에 항공사로 별의별 전화가 걸려 온단다. 술이 취해 747 여객기 바퀴가 몇 개 인지 물어보는 사람도 있단다. 18개다. 인천공항에서 정말로 탑승권 세 장이 출력돼 나오자 감개가 무량했다. 트롬쇠와 스발바르행은 노르웨이에 가서 받아야 하는 바람에, 오슬로에서도 하룻밤 자기로 했다. 공항에는 축구 선수 홍명보가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에어컨 광고가 걸려 있었다. 월드컵 광풍이 도시를 달구던 6월이었다.




(역전 아스트리아 호텔 창밖의 낮비 내리는 오슬로)

오슬로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의당 바이킹 배가 전시된 박물관으로 달려가야 했지만, 일단 먹을 것부터 찾았다. 바이킹 배라도 뜯어먹고 싶을 만큼 배가 고팠다. 밥 좀 먼저 준다고 도도하게 베지테리언 밀을 부탁했더니, 당근, 오이와 무 삶은 것만 나왔다. 기차역의 냄새도 맛있어 보였다. 눈 앞의 편의점에서 샌드위치와 콜라, 물을 사고 몇 걸음 가지 못하고 피자 스탠드에서 샐러드와 조각 피자도 샀다. 역 푸드코트 의자에 앉아 꾸역꾸역, 목이 막힐라 쑤셔 넣었다.


(새우가 너무 많아서 징그럽지 않습니까?)

먹을 게 들어가고 나니 날씨도 맑아 보였다. 역 앞 광장의 호랑이 동상 으로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 네 명이 깔깔거리고 기어 올라가 노래를 불렀다. 동전이라도 던져 줘야 하나. 지갑을 꺼내는데 영수증이 따라 나왔다. 그런데 이게 뭐냐. 편의점 샌드위치 1만원, 콜라 3000, 샐러드와 피자 세트 3만원. 출장 왔던 모씨가 별 생각 없이 공항에서 택시 탔다 20만원을 냈다는 이야기가 그제야 생각났다. 이 도시의 물가는 서울의 딱 3배였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여기는 노르웨이 오슬로였다
. ,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도시다. 그렇잖아도 비싸다는 북유럽 3국 물가는 서쪽으로 갈수록 고공 행진이었다. 헬싱키는 그래도 견딜 만 했고, 스톡홀름은 불평할 만 했지만, 오슬로는 그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이 식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빵 한 조각 살 때마다, 커피 한 잔 마실 때마다 재빨리 머리를 굴려 한국 돈으로 얼마인지 계산하고, 주먹을 불끈 쥐고 도둑놈들!” 이라고 소심하게 저항하는 일이 매번 반복됐다.


중국집에선 남는 음식을 싸달라고 해서 다음날 도시락으로 먹었고
, 파스타 집에선 1인분만 주문해 나눠 먹었다. 그 때마다 박노자 교수 생각이 났다. 우리 안의 숨은 파쇼성을 발견해서가 아니었다. 오슬로대에서 한국학을 가르친다던데, 어떻게 이 비싼 도시에서 먹고 살 수 있을까 궁금해서였다. 지금도 만나면 꼭 한번 물어보고 싶다. 그 박노자 교수가 계실지도 모를 오슬로대 앞 분수 광장에서 어린이 동상의 뒷태를 구경할 즈음엔 반짝반짝 햇살이, 돈도 받지 않고, 빛났다.



(소녀 & 시티)


(처녀 & 시티)

그렇지만 이 아름다운 북국의 도시는 관대하기도 했다. 뭉크 상설전이 열리는 내셔널 갤러리는 공짜였다. 낡은 관공서처럼 생긴 2층 건물에는 노르웨이가 자랑스러워하는 화가, 뭉크의 그림이 빼곡하게 걸려 있었다. 영화 스크림에 나오는 하얀 가면 같은 절규도 있었고, 몽환적으로 아름다운 마돈나도 있었다. 특이한 점은 이 두 그림이 액자 채 벽에 박혀 있다는 것이다. 몇 년 전 도난 사건 이후 경비가 강화됐기 때문이다. 도둑이 유유히 창문을 열고 들어와 벽에 걸린 그림을 떼 갔단다.


간도 크게 성큼성큼 그림을 들고 걸어 나간 도둑도 도둑이지만
, 그렇다고 그림을 아예 벽에다 못으로 박아버리는 발상도, 참으로 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싸나이십니다하지 않을 수 없다. 배를 타고 가다 육지가 나오면 배를 뒤집어 머리에 쓰고 전진했다는 바이킹의 후예답다. 바이킹의 후예들, 노르웨이 곳곳에선 대인배의 풍모가 풍겼다. 난센의 프람호를 정박된 그대로 박물관으로 바꿨고, 우리가 앞으로 가려는 스발바르에서는 외국인에게도 제한 없는 거주와 상업의 자유를 허용했다. 그 대인배들 앞에서 나는 소심하게도, 이 그림들을 서울 미술관에 가져갔으면 12000원씩 세 번에 나눠서 전시했을 것이라고 종알거렸다.


(커피 앤 시티)

그날 저녁엔 축구를 봐야 했다
. 비행기 안에서 본 헤럴드 트리뷴은 검은 돌풍가나와 이탈리아가 16강에 진출한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축구 팬들은 우리가 몇 년 월드컵 쯤 여행 중인지 짐작하실 수 있겠다. 이날 밤 오슬로 현지시각 오후 9시에는 스위스-한국전도 열린다. 이미 가방 깊숙이 챙겨 온 붉은 악마 티셔츠를 꺼내 입은 차였다. 우리 2인조 붉은 악마 노르웨이 원정대는 보무도 당당하게 카를 요한슨 대로를 활보했다. 환전소 청년은 우리의 붉은 옷을 보고 감개무량한 얼굴로 한국이 아직도 안 떨어졌구나! (오늘 경기가 있다는 말을 듣고는) 내 손가락과 발가락을 다 꼬아서 행운을 빌겠다!”고 격려해 주었다. 호텔 텔레비전으로 볼 것인가, 펍에서 백만 시청자와 함께 볼 것인가, 그것만이 문제였다

.

(카를 요한슨 거리의 스포츠 펍)

카를 요한슨 거리의 스포츠펍들에게도 이날은 장날이었다. 간판을 들고 있는 안내판들도 축구 유니폼을 뒤집어썼고, “100인치 LCD TV로 완전 중계!” (로 추정되는) 안내판들도 눈에 띄었다. 중계 예정 경기 대전표를 읽으며 우리는 적당한 펍 사냥에 나섰다. “...-프렌..프랑스” “..-...” “..-...” 모두 토고-프랑스전이었다. 축구도 못하면서, 노르웨이 사람들은 동양의 숨은 강자, 아시아의 빛나는 별, 지난 월드컵 4강에 이어 이번에도 16강에 진출한 한국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제는 축구 팬이 아니어도 우리가 몇 년 월드컵 때 여행 중이었는지 짐작하실 수 있겠다. 분필로 깨알만하게 적어 놓은 글자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읽은 끝에 간신히 스위스-한국 전을 중계하는 펍 한 곳을 찾아냈다. 토고-프랑스 전을 중계하는 1층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2층은 한가했다. 우리를 포함, 4 테이블이 고작이었다. 한가운데 걸린, 100인치는 못 되고 50인치쯤은 되어 보이는 텔레비전으로 낯익은 붉은 색 유니폼이 보였다

.


(남방 안에 붉은악마 티셔츠가 숨겨져 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우리 선수들은 감당할 수 없는 적과 싸워 최선을 다했으나 졌다. 2인조 붉은악마 노르웨이 원정대가 테이블 위에 올라가 ~한민국!”을 외치기를 기대하는 소수의 축구 팬들의 눈길을 애써 외면하며, 우리는 쓸쓸하게 경기를 관전했다. 노르웨이 축구 해설자는 백분토론 진행자만큼이나 침착했다. 언제 공이 들어갔는지 자막을 봐야 간신히 알 수 있었다. 관객보다 먼저 흥분하고, 관객보다 나중에 절망하는, 차범근의 열렬한 해설이 너무도 그리웠다. 조금은 덜 쓸쓸할 것 같았다. 펍 밖으로 나오니 해가 지고 있었다. 가로등도 교회도 피리 부는 거리의 악사도 한참 붉게 물들고 있는 중이었다. 자정이 몇 분 남지 않은 북유럽 백야의 한밤중. 이 날이 우리가 노르웨이에서 유일하게 노을을 본 날이었다. 그 다음날부터는 24시간 해가 지지 않았으니까



Posted by orc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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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쏘댕기자 2011.04.08 14: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녀&thecity는 없나요

  2. 갈매 2011.04.14 1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거 보고 뒤늦게.. 다시 스타얼라이언스 마일리지 프로그램 다운받아 돌렸는데.. 아직도 안익숙해..
    하지만 세계지도를 보고 어디론가, 낯선 나라에 가본다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은 좋아지더군..

    스발바르 제도.. 나도 가보겠어!! some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