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틀랜드에는 배를 타고 갔다. 스웨덴과 라트비아 사이, 발트해에 떠 있는 섬이다. 스웨덴엔 참고로 Gotland도 있고, Götland도 있다. (아마도 발음이) 괴틀랜드는 뭍이다. 스웨덴 남부의 평야지대다. 인쇄가 잘못됐나 싶은 öland도 있었는데, 거기도 실존하는 지명이었다. 가이드북을 펼쳐 고틀랜드를 찾으면 자꾸만 Götland가 나왔다. 몇 줄을 읽다 아, 참 여기가 아니지, 하며 목차를 다시 펼쳤다. 고틀랜드는 우리로 치자면 제주도나 강화도 비슷한 섬인 모양이었다. 선착장에는 수학여행이라도 가는지 청소년들이 바글바글했다. 배낭에 주렁주렁 꽃을 매단 히피 포스의 배낭여행객들도 보였다.


이들 모두는 지치지도 않는지 스톡홀름을 출발한 배가
3시간 뒤 고틀랜드에 도착할 때까지 결연하게 떠들었다. 배에서 읽으려고 스웨덴이 자랑하는 세계명작동화, <닐스의 이상한 여행><삐삐는 개구장이>를 챙겨 왔는데, 닐스나 삐삐나 저 애들이나 우당탕거리기는 매한가지지 싶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아이는 삐삐였다. 어렸을 때 텔레비전에서 볼 때는, 그저 사랑스러운 개구쟁이인줄만 알았는데, 이제 와 새삼 다시 읽어보니 이 아이 진짜 이상하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약속은 지키는 법이 없다. 그 시간 대 다른 채널에서 하던, 역시 주근깨 빼빼마른 빨강머리 앤과 헷갈렸던 것 같아서 앤 셜리한테 새삼 미안했다. 백 년 전 이미 삐삐를 읽게 한 스웨덴 부모들은 정말 개방적인 분들이다. 반쯤 읽다 도저히 삐삐를 이해할 수 없어 접어두고, 배 안에서 파는 핫도그를 사 먹었다. 빵 대신 감자를 으깬 매쉬드 포테이토를 소시지와 함께 준다.




(매쉬드 포테이토와 함께 주는 핫도그)

스톡홀름을 출발한 배가 도착한 비스비는 아름다운 중세 도시였다
. 얼마나 아름답냐면, 스페인 남부의 중세 도시 톨레도보다도 특이하고, 스위스 꽃의 도시 루체른보다도 화려하고, 프랑스 남부의 성곽 마을 보나보다도 사랑스럽다. 즉 그 때까지 내가 알던 그 어떤 유럽의 중세 마을보다도 아름다웠다. 호이징거의 <중세의 가을>을 시멘트로 쓴다면 그것은 비스비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낮은 언덕을 성이 둘러싸고 있고, 자갈을 깐 구불구불한 골목들이 그물처럼 이어진다. 길을 잃고 고개를 들면 폐허가 된 돌 건물이 나타나는데, 교회다. 무너져 내린 것처럼 지붕의 벽돌이 떨어진 교회들이 수백 년 전부터 그랬다는 듯이 서 있다. 담쟁이덩굴이 벽돌을 따라서 뻗어 올라가고, 바닥에는 물기를 머금은 풀들이 무성하다. 폐허가 되지 않은 교회에서는 아직도 일요일 아침 미사가 열린다.









(비스비의 무너진 교회들. 여름 한철에만 문을 열어서 창틀 속으로 손을 넣어 사진을 찍었습니당-_-)

교회들은 수백 년 보다 더 오래 전 만들어졌다
. 비스비는 12~13세기 한자동맹의 중심 도시였다. 냉정한 상인들은 돈을 모아 교회를 세우고 자신들의 배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었다. 겨우 제주도만한 섬인데, 고틀랜드에는 150여개의 개척교회가 세워졌다. 늦은 밤 교회에서 종소리가 울리면, 사람들은 횃불을 들고 항구로 모여들었다. 일요일 아침이면 상인과 그들의 가족이 목까지 빳빳하게 하얀 칼라가 올라오는 검은 옷을 입고 평안과 부를 빌었다. 유럽 대륙을 떠나 먼 섬으로 온 수도사들은 흰 벽에 프레스코를 그렸다. 어른보다도 더 고뇌에 찬 아기 예수의 얼굴을 채 다 그리지도 못했는데, 비스비는 번영의 절정에서 무너졌다.


1361
년 덴마크의 침공으로 이 아름다운 도시는 폐허가 됐다. 2000명이 죽었고, 200년 넘게 버려졌다. 비스비에 사람이 다시 살기 시작한 것은 1600년 이후의 일이었다. 그러나 교회를 재건하고 도시를 다시 세울 수 있을 만큼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폐허를 이웃삼아, 빨간 지붕의 중세 성곽 마을에서 여전히 살고 있다. <닐스의 이상한 여행>에도 비스비가 나온다. 기러기 떼를 따라 라플란드로 날아가던 닐스가, 이 예쁜 마을은 폐허가 되었구나, 하고 쓸쓸해한다.


운타운의 노천 카페에 앉아 있으니, 발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다른 많은 중세 마을들과 마찬가지로 비스비도 관광이 제 1산업이다. 덕수궁 앞 해태처럼, 돌로 깎은 양에 앉아서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었다. 자동차가 들어오지 못하게 받쳐놓은 턱이었다. 양 머리가 진짜 찜질방에서 수건으로 만드는 양 머리와 똑같이 생겼다. 거위 몰텐의 목에 매달려 북쪽으로 날아가던 닐스처럼, 우리도 자동차를 타고 북쪽으로 달려가야 했다. 이번엔 보통 때보다 더 털털거렸다. 물가 비싼 스웨덴에서 한 푼이라도 아끼겠다는 자세로 중고차만 전문 취급렌터카에서 빌렸기 때문이다. 16만 킬로를 뛴 빨간색 골프 자동차였다.


목적지는 고틀랜드의 북쪽 끝
, 페로 섬 이었다. 그 섬에 가면 아무것도...이번엔 없지가 않다. 석회암 거석들이 있다. <론리플래닛> 가이드북의 손바닥 만한 사진 속에서 페로 섬 최북단의 석회암 거석들은 이스터 섬의 모하이들 같았다. 열 몇 기의 거대한 바위 기둥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정체 불명의 고대인들이 깎아 세워놓고 간 것은 아니고, 바람과 파도가 수십만 년 깎아 만든 것이었다. 띄어읽기 따위는 없는 Langhammarshammaren 이란 긴 이름의 이 거석군은 간단히 줄여 망치라고 부른다. 고틀란드 끝까지 달려 페로 섬으로 가는 페리에 차를 실은 것은 해가 아직 한 뼘쯤 남아 있는 늦은 오후였다.


그 뒤로 여러 번
여기가 세상의 끝으로 가는 길이구나싶은 길들을 다니게 됐지만, 그 때는 망치로 가는 그 길의 세상의 끝으로 가는 길 같았다. 길가에는 언덕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낮은 둔덕이 이어졌다. 여기 전체가 석회암 지대인지 잘게 부서진 하얀 흙들이 한 움큼 집어들고 흩뿌려 놓은 것처럼 둔덕을 덮고 있었다. 풀과 나무가 자라 보려고 애는 썼지만 자라지는 못하고 배를 비집고 뒤틀어 누운 것처럼 땅으로만 뻗어 있었다. 양들이 도도하게 고개를 들고 줄을 지어 걸어가다 차를 보고 멈추어 서 우리를 빤히 쳐다봤다. 둔덕을 넘어 다음 번 양떼도, 그 다음번 양떼도 마찬가지였다



(망치 가는 길의 돌 달팽이. 스톡홀름에 있는 민속촌 비슷한, 스칸센에도 이런 게 있어요)

때가 묻은 건지 원래 그런 건지 군데군데 털이 새카만 양들이 정면으로 차를 노려보자 괜히 무서워졌다
. 뿔도 크고 둥글게 말려 있어서, 그림책에 나오는 순하고 착한 양이 아니라, 데쓰메탈 음악 재킷 표지에나 출연하는 악마적인 양처럼 생겼다. 저 먼 북쪽 나라에서 목동이 되는 것이 장래 희망인 북극곰도 양 떼와의 눈싸움을 견디지 못하고 재빨리 눈을 내리깔았다. 양들의 사악한 시선을 뒤로 하고 우리는 바다로, 바다로 달렸다.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자동차가 반갑다고 헤드라이트를 두 번 깜빡 깜빡 했다. 그 차가 그날 페로 섬에서 본 유일한 차였다.


포장도로가 끝나고
, 덜컹거리는 흰 자갈밭도 끝이 났을 때, ‘망치가 나왔다. 기둥의 아랫 부분이 파도에 깎이고 패여, 망치들은 마치 먼 바다를 응시하는 사람의 모습 같았다. 망치를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의 속도가 자꾸만 떨어졌다. 바람이 거세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다. 망치들은 4-5층 건물 높이는 되어 보였다. 아무도 없었다. 여기는 너희가 올 곳이 아니라고 양 떼들이 그렇게 빤히 쳐다봤을까. 사색적인 망치들의 긴 그림자 사이로 북극의 긴 여름해가 잦아들었다






(망치는 키가 큽니다. 코 모양 끝에 보이는 점탱이가, 앉아있는 접니다)

다음날 아침엔 산책을 나섰다
. 페로 섬에 있는 단 세 개의 숙소 중 유일하게 주인이 집에 있어 우리를 노숙 신세에서 구원해 준 (고마우신) STF 호스텔은 바다 가까이 있었다. 달맞이꽃이 그려진 호스텔 머그컵에, 한국에서 가져 간 커피믹스 커피를 한 잔씩 담아서 한 손에 들고, 나머지 한 손은 뒷짐을 졌다. 페로 섬은 영화감독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고향이었다. <7의 봉인>이나 <화니와 알렉산더>처럼 대학 때 영화의 이해교양과목 시간에 자주 나오던 감독이다. 페로 섬의 댐바라는 마을에서 죽기 전까지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이 세계적인 감독은 해외 영화제 한번 다녀오려면 정말 산 넘고 물 건너 집에 오셔야 했겠다. 일단 세계 어딘가에서 비행기로 스톡홀름으로 와서, 고틀랜드 행 배가 출발하는 니샴까지 차로 와서, 고틀랜드까지 배를 타고 온 뒤, 차로 다시 페로섬 입구까지 와서, 페리를 타고 페로섬에 도착한 다음, 다시 차를 타고 집에 오면 된다. 우리도 그렇게 왔다. 닭이 울고, 기러기가 날아 오르고, 문자 그대로 아침 이슬에 젖은 풀이 발목을 감싸는 길이었다




(바닷가의 조그만 낚시 오두막이에요. 북극곰이 어흥, 들여다보고 있어요)


길의 끝까지 가니 바다가 나왔다
. 신이 실수로 푸른색 잉크를 엎지르고는 어이쿠, 하고 머리를 감싸 쥔 것처럼 검푸른 발트해다. 북유럽 신화는 최고신 오딘의 한쪽 눈알이 떨어져 발트해가 되었다고 한다. 차갑고 거친 이 바다가 햇살이 자갈 틈새까지 스며든 아침에는 한껏 부드러워 보였다. 나무로 지은 낚시 오두막 몇 채가 바닷가에 그림처럼 서 있었다. 기러기들이 닐스를 매달고 북쪽 하늘로 날아가기 시작하는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나는 팔을 앞으로 쭉 뻗어 손바닥을 바다로 향하게 하고는 눈을 감았다. 주문을 외우는 거다. 시간아 멈추어라, 너는 참으로 아름답다.



Posted by orc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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