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여행기는 이번 회로 끝납니다. 다음회부터는 스웨덴을 쓸까 해요. 나름대로는 지구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 설정입니다. 이렇게 한바퀴를 돌면, 하루를 잃겠군요. -_-

어쨌거나 아이슬란드, 5년에 한번씩은 가 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레이캬비크 메트로폴리탄 호텔 침대에 누워 발가락으로 리모컨을 이리 저리 돌리다 보면 영국 방송 스카이 뉴스가 나온다. 그러나 스카이뉴스 세계 일기 예보에는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가 나오지 않는다. 물론 고개만 들어 창 밖을 보면 날씨를 알 수 있긴 하다. 어차피 흐렸다 개었다 때때로 비이기 때문에 일기 예보 쯤은 나도 할 수 있었다. 다만 좀 안됐다, 싶은 생각이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리에게야 어차피 이지만, 나름대로 대륙판을 공유하는 유럽에서도 아이슬란드는 잊혀진 변방의 저 먼 나라인 모양이었다. 아이슬란드가 가득 하트를 날리며 위성 접시로 영국 뉴스를 받아 보는데, 영국은 아이슬란드 방송은커녕 일기예보에 한 줄 넣어 주는 것도 홀랑 잊고 있는 것이다.
 

스코가 민속 박물관 으로 가는 길엔 괜히 대인배의 심정이 되어 아이슬란드를 걱정했다. 물론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내 마음을 알았다면 한국은 도대체 어디 붙어있는 나라냐며 어이없어 했을 것이다. 지난번 아큐레이리 우체국에서 한국에 보낼 우표를 달라고 했더니, 머리를 총총 땋은 우체국 직원이 5초쯤 뒤 난감한 얼굴로 물어본 적도 있다. “그거, 유럽에 있는 나라죠?” “그럼요. 터키와 몰도니아 사이의 산악 국가에요.” (엽서는 한달 뒤 무사히 도착했다.)


스코가 민속 박물관은 아이슬란드에 오기 전부터 가고 싶었다
. 전통 가옥부터 옛 주방도구, 공구, 화석, 자동차, 버스표까지 아이슬란딕 라이프의 모든 것이 수집, 전시돼 있는 아이슬란드 최고의, 그리고 유일의 민속 박물관이다. 장흥 같은 유원지에 가면 가끔 있는 그 때 그 시절박물관이지 싶었다. 가이드북이 제작된 당시에 85살이던, 그러니 지금은 이미 90세가 넘었거나 저 세상으로 가셨을 지도 모를 수집가 쏘르도르 토마슨 이 평생 되는 대로 다 긁어모아 만든 박물관이다.



(아이슬란드 전통 주택, turf house 입니다. 지붕에 풀이 나요)

이 토마스 할아버지의 수집벽과 포부는 상상 이상이어서, 전통 아이슬란드 마을 하나를 아예 이 박물관에 구현했다. 박물관 건물을 중심으로 교회, 학교, 창고, 옛날식 초가집, 근대 나무 주택, 현재 주택까지 건물을 옮겨 오거나 새로 짓고, 그 안에 학교면 학교, 교회면 교회 식으로 수집품을 채워 넣었다. 이쯤 되면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골치 아픈 사람이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 속을 뛰어 박물관으로 달려가면서 나는 이 영감님이 개량 바이킹 복을 입고 배꼽까지 내려오는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박물관 입구에서 거드름을 피우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토마슨 할아버지는 안내 창구 앞에서 풍금을 치고 있었다
. 백발은 성성했지만 짙은 회색 조끼에 감색 조끼 차림이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을 박자 맞춰 불러도 되는 걸로 보아, 모르긴 해도 아이슬란드 전통 민요인 것 같았다. 많지는 않았고, 십수명의 관광객이 하얀 레이스 커버가 씌워진 풍금 옆에서 박자를 맞췄다. 벽에 걸린 액자는 나라 문화 창달에 이바지한 바가 크다는 취지의 공로패였다. 그는 풍금에서 일어나더니 관광객들에게 고개를 까딱여 보이고는 가이드 투어 마이크를 꽂았다. 쭈뼛거리던 관광객들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


나는 전시물들이 꽤 마음에 들었다
. 아이슬란드를 달린 자동차와 기차 객차, 헬기 같은 것들을 전시해 놓은 창고도 나쁘지 않았고, 영국이나 독일에서 수입해 썼다는 200년 전의 찻잔이나 가구도 흥미로웠다. 자동차만 10대가 넘어서, 이걸 다 모은 토마슨 할아버지는 얼마나 대단한 재력가인가라는 생각을 한두 번도 아니고 세 번은 했다. 지붕에 풀이 돋아 오르는 전통 주택에서는, 내가 누워도 발목은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작은 침대를 보면서,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혹시 체구가 작았던 것일까 혹은 <백설공주>처럼 난장이 침대를 가로로 붙여 놓고 잤던 것일까 고민도 해 봤다. 엉뚱하게 아프리카 지도가 걸려 있는 학교 교실에서는 저요! 저요! 손을 들고 학교 놀이도 했다.


그러나 안경까지 꺼내 쓰고 들여다 본 것은 아이슬란드 전통 생활사 전시실이었다. 죄다 뼈였다. 아이 몸통만한 고래 척추 뼈는 한 칸을 떼어내 도끼 받침으로 썼고, 속을 파내 그릇으로도 썼다. 양 뼈는 갈아서 신발에 달아 스케이트로 썼고, 말 방광은 바람을 불어 넣어 습도계로도, 축구공 대신으로도 썼다. 이게 다 아이슬란드에 나무다운 나무가 없어서다. 절반은 툰드라에 절반은 화산 지형인 아이슬란드에는 나무랄 게 없었다. 잘 자라지도 않았고, 기껏 애써 자라봐야 화산 한번 폭발하면 그대로 묻혀 버리기 일쑤였다.아이슬란드 숲에서 길을 잃었을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일어서면 됩니다라는, 리얼리티가 번뜩이는 농담도 있다. 그러니 바다에 밀려 온 고래와, 생선과, 한 여름 겨우 돋는 귀한 풀을 놓아먹인 말과 양은 가시 하나 버릴 것 없는 존재였을 것이다.



(양뼈에 짚을 붙여 만든 장난감. 목각 말인형 비슷한 것 같습니다)

뼈로 만든 생활용품 중에서도 가장 애틋한 것은 아이들 장난감이었다
. 토마스 기차나 건담 로봇 대신에 아이슬란드 아이들은 말 뼈에 말린 건초를 조금 붙여놓은 말 인형을 갖고 놀았다. 레고세트 쯤은 될 농장 세트도 있었다. 말 뼈는 말, 양 뼈는 양, 개 뼈는 개. 이렇게 뼈들을 죽 세워놓고 농장이라고 생각하면서 놀았다는 거다. 농장 세트를 갖추려면 엄청난 수의 말과, 양과, 개가 필요했기 때문에 부잣집 아이들이나 농장 세트를 갖고 놀 수 있었다고 한다. 호두까기 인형으로 병정 놀이를 하던 유럽의 아이들이 아이슬란드의 친척을 찾아 왔다 으아앙 울음을 터트리지 않았을까.



(말뼈 소뼈로 만든 아이슬란드 레고 세트.)

먹을 건 더 심각했다
. 풀이 자라지 못하니 곡식이 없고, 곡식이 없으니 빵이 없고, 나무가 없으니 과일이 없었다. 먹을 것이라곤 바다에서 나는 생선밖에 없었다. 박물관 큐레이터는 벽에 걸린 대구포를 내려 통째 뜯는 시늉을 하며 삼시 세끼 이것만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했다. 대구포는 그래도 문명화 된음식이었다. 간식으로는 생선 머리의 뺨 부분을 뜯어 오물오물 씹었고, 상어를 삭혀 별미로 먹었으며, 생선의 눈알이나, 양의 창자나, 양의 뇌 같은 몬도가네음식도 즐겼다고 한다. 독일, 영국, 프랑스에서 온 관광객들은 으으, 라며 고개를 돌렸다. 나도 덩달아 혀를 내밀고 으으, 하려고 했는데,


잠깐
, 그게 다 우리도 먹는 것 아니었던가. 홍어는 삭혀 먹고, 소의 창자는 볶아 먹고, 생선의 눈알은 눈에 좋다고 꼭꼭 씹어 먹고 흑염소의 눈깔도 눈에 좋다고 꿀꺽 삼키면서 살아왔다. 호두까기 인형을 들고 놀던 노란 머리 유럽 어린이들이 나를 보고 으아앙 울며 엄마에게 달려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달려가 엉덩이를 때려줄까 싶었다. 어떻게 잡은 생선이고 어떻게 기른 양인데, 피 한 방울까지 아껴서 먹어야지, 요놈.


다음날 아침 레이캬비크 사가 박물관 에 갔더니 정말 대구포를 뜯어먹는 여자가 있었다. 사가 박물관은 아이슬란드 역사의 주요 17장면을 골라 밀랍 인형으로 만들어 놓은 전시관이다. 한마디로, 유물 한 조각 없이 과거를 관광 어트랙션으로 만들어놓은 곳이라 할 수 있겠다. 입장료도 더럽게 비쌌다. 미술관의 음성 가이드 같은 걸 나눠주는 데, 귀에 꽂고 설명을 들으며 순서대로 밀랍 인형을 보는 거다. 헤드폰에서는 으악! 푸시식! 챙강! 화르르! ! 꺄악! 같은 단말마가 민망하게 터져나왔다. 눈 앞은 더 난감했다. 땟국물이 졸졸 흐르는 치마를 입고 대구포를 뜯어먹는 여자는 그렇다 치고, 그 옆은 이제 막 불이 붙어 화형을 당하려는 수녀였다. 흑사병으로 죽어 나가는 시체와 해골들과, 장렬하게 순교한 주교의 목이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가장 화끈한 것은 동족을 살리기 위해 자기 한 몸 희생했다는, 말하자면 아이슬란드판 논개였는데, 자기 젖가슴을 칼로 잘라내기 위해 칼을 들이대고 있었다.


아아 이 북국에는
,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거친 정서가 있다. 예전에 노르웨이 오슬로의 스칸센 야외 박물관에서, ‘18세기 노르웨이 농가의 모습이라며 아버지는 술 취해 엎어져 있고, 아이는 바닥에서 엉엉 울고 있는 모습을 재현해 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이 과격한 분들의 조상 되시는 노르웨이 바이킹이 아이슬란드의 초기 정착자다. 한 뿌리에서 난 정서라 할 수 있겠다.


사가 박물관의 설명에 따르자면
, 아이슬란드에 처음 정착한 이들은 노르웨이 바이킹 이었다. 거기에 도저히 고향 땅에서 살 수 없게 된 범죄자나 도망자들이 인생 세탁하는 심정으로 세상의 끝을 찾아 아이슬란드로 왔다. 여자들은 대체로 아일랜드 북부와 주변 섬에 흩어져 살던 켈트 족이었다. 여자가 필요했던 초기 정착자들이 아일랜드로 침공해 들어가 잡아왔던 것이다. 그 중엔 아일랜드의 공주도 한 명 있었다. 노예로 잡혀 와 바이킹의 아들까지 낳은 그녀는 그제서야, 나는 사실 공주다, 라고 비밀을 털어 놓았다고 한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유럽의 선진 문화에 대해 경외심과 열등감을 가진 채 지난 1000년을 살아왔을 것으로 보인다.


100
년 전만 해도 채 5000명이 살지 않던 곳에서 고등 교육이나 문화의 부흥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난 놈들은 덴마크나 노르웨이의 덕망 높은 귀족이 알아보고 데려가 교육을 시켰다. 스카타펠 국립공원의 한 마을엔 공덕비비슷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이 마을 출신으로 덴마크에서 법학자가 됐다는 난 놈의 동상이었다. ‘우리 마을에서도 서울대 갔어요비슷한 거다. 서울대를 졸업해도 고향 마을로 돌아오진 않듯이, 이 유학파들도 좀처럼 아이슬란드로 돌아오지 않고 유럽에서 평생을 보냈다.



(먼 바다를 향한 바이킹 조형물. 레이캬비크 해안에 세워져 있습니다)

아이슬란드가 먹고 살 만하게 된 것은
20세기 이후의 일이다. 동력선이 개발되면서 어업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했다. 마침 북극 한류가 연안을 끼고 돌아 대구며 헤링이며 생선 하나는 풍부했다. 근근이 말 키우고 양 키워서 먹고 살던 이 작은 국가는 세계적 어업 전진 기지로 부상한다. 영국과 스페인에 생선을 수출하고, 납작한 생선들은 말려 멀리 일본으로 수출했다. 우리집 앞 마트에도 아이슬란드 날치알을 판다. 어민은 전 국민의 10%이지만 어업은 국내총생산의 90%. 심지어 동전에도 생선을 종류별로 그려 놓은 나라다. 그렇게 번 돈으로 아이슬란드는 유럽 곳곳의 부동산을 사 들였고, 세계 최고의 부자 국가 중 하나가 됐다. 그러나 2008년 미국발 부동산 금융 위기가 대서양 건너 아이슬란드를 타격하면서 모래성은 무너졌다. 아이슬란드는 결국 IMF에 긴급 금융을 신청하게 된다. 1000년 가난 속에서 힘겹게 살아오다 좀 살 만 해 지는가 싶더니, 다시 가난 속으로 곤두박질 친 것이다.


박물관 밖엔 전 방위로 우박이 쏟아지고 있었다. 휘청거리는 3단 우산으로 힘겹게 우산을 막아 냈다. 영리하게도 스프링을 달아 놓은 피자집 간판이 바람 따라 한껏 삐걱거리고 있었다. 피자와 음료 세트에 550 아이슬란드 코로나, 우리 돈으로 5000원쯤 된다. 나름대로 우리나라 IMF 때 나왔던 ‘1000원 자장면인 모양이었다. 귀와 입술에 피어싱을 한 두 청년이 건들거리며 피자집에서 걸어 나왔다. 쟤들도 우리처럼 일자리 찾기가 어려울까. 영국 가수 트래비스 노래를 틀어놓고 소극적 헤드뱅잉을 멈추지 않다 결국 세 번이나 계산을 틀리게 했던 렌터카 회사 직원도 우리처럼 미래가 갑갑할까. 저들도 우리처럼 물범을 살리기 위해 댐 공사 반대 운동을 하고, 경제를 파탄에 빠트린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일자리와 집값을 걱정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인이니까.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가, 하루 아침에 IMF에 긴급 금융을 지원받고, 제어할 수 없는 속도로 세계 자본주의 속으로 편입되는 한국에서 온 나는 더 이상 아이슬란드가, 케플라비크 공항에 도착하던 첫 날처럼 낯설지가 않았다. 그것은, 아이슬란드처럼 우리도 생선을 삭혀 먹고, 북어를 말려 뜯어먹으며 천년 넘게 살아왔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북극곰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Posted by orc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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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갈매 2011.02.25 15: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아이슬란드의 전통주택은 <고고학의 모든 것>에서 본, 캐나다 어디엔가 남아있는 10세기 무렵 바이킹 족의 거주지와 매우 유사하구랴.
    에 또.. 동물뼈로 만든 놀잇감을 보니, 중국 내몽골 에벤키족 박물관에서 본 동물뼈로 만든 장기판 등도 생각나고. 나무가 없으니, 동물의 뼈를 이용해 생활용품을 만들었다는 생각을 그때는 못했을까..

    정말이지 이따금 한국과 다른 스케일의 지형, 기후가 있는 지역에 가면, 인간의 생활양식 뿐 아니라 사고관, 가치는 지형이나 기후 등 자연에 종속될수 밖에 없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한다니까.

    시리즈를 보니 나도 북반구를 따라 돌고싶구려..

  2. 2011.04.09 0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이세연 2011.07.12 0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코로나?~~~~ Krona 를 아무리 대충 읽어도 어떻게 코로나라고 읽을수 있는지.... 유치원생이 웃고 가겠네요

  4. 2013.10.16 14: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잘 읽었어요. 8월에 아이슬란드 다녀왔는데(영세민인 전 걍 링로드만 ㅠㅠ) 아직도 놓여나질 못해서 기웃거리고 정독했습니다. 전 5년에 한번은...힘들것 같지만 10년내 다시 가려구요 재미있게 잘 봤어요 ㅎㅎ